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산다는 것
녹취자 : 이경순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들이 너무 중요하지만 평상시에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그러한 삶들 이런 것들을 한번 우리들이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로 한번 말문을 열어보고 싶습니다. 저희 딸이 지금 대학교 3학년인데 고등하교 졸업식 할 때 교실에 가보았습니다. 전에는 모두 운동장이나 강당에 모여서 졸업식을 했는데 이제는 시설이 그렇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텔레비전을 놓고 각 교실에서 졸업식을 하였습니다. 졸업식 끝날 때 쯤 갔기 때문에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눈길을 끄는 한 풍경이 있었습니다. 교실 한쪽에 급훈이라는 것이 달려 있었습니다. 이것은 가운데 국기가 있고 한쪽에 교훈이 있고 급훈이 있는데 그 급훈이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 학교 다닐 때는 급훈이 정직 근면 청결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 되자 등등 이런 것이었는데 급훈이 ‘경쟁은 엄연히 존재 한다. 살아남자 ’그것이 급훈 이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와서 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얘야 나는 그 급훈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단다. 그 급훈을 누가 정한 것이냐고 물었고 난 당연히 담임이 정했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 부터 걸려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답니다.
1950대에는 학교에 가면 ‘무찌르자 공산당’ 이라는 표어가 있었습니다. 60년대에는 ‘증산 수출 건설 그렇게 해서 나라가 부강하자 했습니다. 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유신으로 번영하자 ’학교마다 있었습니다. 80년대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을 때에는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였습니다. 그담에 1990년대에는 누가 웃자고 하는 이야기겠지만 그때 무선 호출기가 있었습니다. 삐삐가 있었는데 삐삐는 진동으로 , 2000년대에 들어선 지금에는 하얗게 칠해져 있다는 겁니다. 아무 글씨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80년대 이후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앞에 무찌르자 공산당 증산수출건설, 유신으로 번영하자 그리고 나라에 충성 부모의 효도 이것들은 각각 차이는 있지만 무엇인가 그래도 일관성 있는 무엇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구호에 동의하든 안하든 그것은 상관없이, 그런데 ‘삐삐는 진동’으로는 앞에 나온 구호와는 완전히 다른 가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 툭 주어진 것 입니다. 그리고 이 천 년도에 와서는 거기다가 무엇을 써놓는 것 자체가 굉장히 촌스럽고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는 것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 명절에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경제가 넉넉해졌으니까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여러 사람에게 용돈을 집중적으로 받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용돈을 주면서 어른들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하는 말이 항상 똑같았습니다. 네가 몇 학년이지 ?많이 컸구나, 너는 이다음에 훌륭하고 착한 사람이 되라 그리고 정말 네가 이다음에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이웃에 정말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어라, 이것이 칭찬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칭찬을 들어보지 못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누군가 조카나 쓰다듬으면서 너는 바르고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 요즘 이렇게 안하잖아요. 언제부터 안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뭔가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스승의 날이면 학생들이 늘 부르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참되어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시네 그런데 지금은 교육하는데 있어서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인 사회통념상으로 볼 때에 참되고 바르게 라고 하는 이것이 사실은 유능하게 더 점수 잘 받고 훌륭하게 보다 절대 더 높은 가치로 강조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뭔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고 그래서 사람들의 심성 속에 무엇인가 이전에 공통적으로 알고 추구해오던 가치에 대한 신념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예를 들자면 86년도 87년도에 있었던 민주화운동 그리고 얼마나 국가의 권력이 부패해 질수 있는가, 그리고 권위는 있는데 그 권위의 정당성의 근거를 잃어버려서 거기에 복종하면서 사는 것 자체에 대한 의무를 느끼지 못하는 이런 일들이 생겨나면서 일시에 분출을 하면서 사실은 이런 권위와 기존의 질서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들이 민주화의 물결과 함께 확 밀려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은 80년대 90년대에 공식적으로 봇물처럼 터졌지만 사실 이런 일들은 미국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잘 알다시피 월남전 참전 문제라든지 마르틴 루터킹 사건이라든지 말콜멕스 사건이라든지 이런 사건들 속에서 이미 미국에서 이런 권위와 미국적인 하나의 개신교적인 질서자체에 대해서 회의를 품는 반권위적인 분출들이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들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상적으로 계몽주의가 붕괴되면서 부터 이런 일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계몽주의는 중세에 있었던 교회 하나님의 은총과 계시 아래서 사람들이 순종하고 복종하고 삶으로서 인간은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고 그 안에서 인간은 가장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 이런 신앙적인 신념들이 거부 당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교회의 부패 그러면서 교회가 교권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억압하고 하는 이런 잘못된 관행과 제도적인 폭력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분출하면서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고 르네상스운동이 인문주의로 인문주의에서 계몽주의로 넘어가게 되면서 그러면서 우리가 잘 아는 데카르트라든지 아니면 아이작 뉴턴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나와서 이 모든 세계가 사실은 엄격한 기계적인 질서 속에 이루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서 사실은 우리들이 꿈꾸던 종교와 신비에 이런 것에 속하는 많은 영역들이 사실은 과학으로 다 설명된다고 해결해 버리고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소위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태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18세기 이때쯤 되어서는 이미 이런 계몽주의가 한참 물이 오르고 이런 것들이 쓰나미처럼 유럽대륙을 뒤엎으면서 사람들을 이성주의에 다 굴복을 시킨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속에는 하나의 합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비록 신은 부인하고 혹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기독교사상이나 신앙은 우리들이 동의하지 않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인간에게는 모두 양심이 있고 그리고 하늘이 우리에게 준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와 법칙들이 있고 우리 인간은 성경이나 신앙의 도움이 없이도 이것을 공통적으로 찾아갈 수 있는 감각들이 우리 안에 있다 학문에서는 이것을 신테르시스라고 하는데 그 신테르 시스가 있기 때문에 무엇이 경우이고 올바른 도리인가 하는 것을 인간이 찾아갈 수 있으니까 우리들이 감정에만 너무 치우치지 말고 이성적으로 잘 생각하면 아름다운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들이 무너진 것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무너진 것 입니다. 1차 세계대전에는 아직 병기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도 피해가 적었는데 그 후에 한25년 정도 이후에 있었던 2차 대전 때는 엄청나게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어마어마한 무기들이 양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이미 미사일이 나와서 영국 런던을 독일이 폭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기술이 발전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광경을 보면서 그때 무슨 회의가 생기냐면 과연 인간의 이성이라고 하는 것이 믿을만한가 신앙을 버리고 이성을 따랐는데 과연 그 이성은 믿을만한가 라고 했을 때 그들은 마지막에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공통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공통이라는 것을 너무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진리인 것이 저 사람에게 진리가 아닐 수도 있고 나에게 아름답고 좋은 것이 저 사람에게 싫은것일수도 있다 이런 서로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그냥 살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우리가 바깥에 호소할 예를 들면 국가에 충성해야한다 라고 하는 객관적인 가치 인간은 마땅히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 라고 하는 도덕적인 가치 이런 것들이 근거를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단순히 도덕에만 나타난 게 아니라 모든 예술에도 나타났습니다. 작년에 레이디 가가가 패션쇼에 나타났는데 의상 패션쇼 이었는데 온몸에 의상을 고기를 앏게 썰어서 옷을 만들어서 입고 나타났습니다. 그런 식의 파격 그리고 백남준 씨의 데뷔 작품은 거대한 피아노 두 대를 다 때려 부수는 것과 그리고 자기의 스승을 샴푸를 부어서 머리를 감기는 퍼포먼스들로 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건축에도 나타납니다. 미스반낼 노에라고 하는 건축가는 기존에 있었던 곡선과 모든 것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질서와 미적가치 같은 것을 부인하고 돌멩이는 돌멩이만 유리는 유리만 그래서 네모반듯하게 만들어서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자꾸 조작을 해서 예쁘게 만들려고 하는 시도자체를 버리고 목표가 뭐냐면 돌멩이는 돌멩이대로 느껴라 유리는 유리인 것만 느껴라 쇠는 쇠인 것만 느껴라 이런 방식들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가우디나 이런 사람들이 했던 건축이론하고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이론들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음악 회화 심지어는 칸젠스키의 발레 같은 데서도 이런 초현실적인 소위 말하는 아방가르드들이 도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속에서 제가 오늘 던져보고 싶은 화두는 이런 세상에서 우리들이 모두 소위 얘기하는 상대주의에서 살고 있는데 이렇게 모든 것들이 상대주의인 속에서 우리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진리를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이세상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면서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이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이것들을 우리들이 한번 서로 솔직하게 토론하고 그리고 거기서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할 좌표들이 찾고 싶은 것 이것이 오늘 제가 여기서 말씀을 드리는 이유입니다.
사회자 : 목사님 요즘 근황은 어떠하신지 요?
목사님 :목회자의 삶이 늘 그렇듯이 저도 한 교회를 목회하는 한 교회 목사고 그 이외에도 저는 연구하고 글을 쓰는 일이고요 이번에도 지금 강의하는 것과 고민을 같이 나누는 그 내용들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책을 제가 두세 주에 걸쳐서 한권 썼습니다. 책 쓰는 일과 공부하는 일이 두 번째 일이고 세 번째 일은 제가 총신대학교 교수로 있으니까 일주일에 한번 가서 우리 대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일이 있고요 네 번째는 해외와 연관이 되어서 이번에도 시카고에 있는 트리니티 신학대학에 초청을 받아서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특강을 했습니다. 이런 네 가지 카테고리로 저의 사역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회자 :특별히 목사님께서는 청교도들의 믿음의 선배들의 사상과 철학이 담겨있는 경건서적들을 많이 쓰셨고 지금도 쓰고 계신대요. 목사님께서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목사님 :1994년도쯤 하용조 목사님이 제가 쓴 잡지의 글을 보시고 원고를 하나 보내주면 책을 한 번 내보고 싶다 그러셨어요. 그래서 그때 처음 쓴 책이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된다. 라는 책이었고 그 당시에 저는 사실 무명이었는데 그런데 그 책이 나오고 나서 15일에 3000권씩 찍었습니다. 그래서 단번에 3만권 이상 나갔고 그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으로서 굉장히 센세이션이었습니다. 두 번째 책도 썼는데 두 번째 책도 비슷하게 잘 나갔습니다. 세 번째 책은 좀 안 그랬고요 네 번째 책은 요즘말로 출판사에 대박이 터졌습니다.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라는 책인데 한번에 4만부 5만부가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독자들이 제 책을 즐겨서 읽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글을 쓰게 되었고 지금 여태까지 50권정도 썼고요 200만부 정도 나갔습니다. 대단한 숫자인데 만부가 8톤트럭 한 대 입니다.
사회자 :가장 궁금한 목사님청년시절은 어떠 셨는지요?
목사님 : 청년시대에 저는 괴테가 이야기 한 것처럼 질풍과 노도의 시기였습니다. 사춘기가 일찍 왔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사춘기가 안 끝났어요. 그래서 지금도 보면 학교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아요. 아주 나쁜 것은 아닌데 썩 좋지않구요. 그때 집도 가난해서 등록금을 잘 못 내서 수시로 학교 갔는데 결석으로 했습니다. 그때는 아침마다 일어나면 제일 무서운 게 내가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도 인간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이 굉장히 무서웠어요, 그런데 누구하고도 그 대화가 통하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저의 그 당시에 그때 신앙도 없었는데 나의 구원이 길은 책을 읽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문학작품 사상서 철학 이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읽었던 것 갔습니다. 그러면서 방황했고 제가 이런 이야기 하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영어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사실은 내 친구보고 내가 몇 번 자살하려고 했는데 영어가 너무 재미있어서 자살이 안 된다고 고등학교 이학년 말쯤 되어서 고3때 쯤되어서는 버트간트러셀, 서머셋 모음 이런 사람의 책을 자유롭게 읽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못합니다. 그러면서 그런데 사실 눈뜨고 나면 것은 사실 그 사람들의 해답이지 인간의 고민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읽고 나서 감동을 그런데 사실은 인간의 고민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사회자 :니체나 러셀은 대표적인 무신론자들 아니었습니까? 읽고 나서 감동은 했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뭔가 허무하고 그런 과정 중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계기가 되어서 믿게 되었습니까?
목사님 : 적극적으로 전도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전도가 된 게 아니고 밤에 공부를 해야 되었습니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공부할 수가 없어서 밤에 일어나서 공부를 했는데 새벽 네 시쯤 되면 저희 집이 변두리에 있었고 넓은 밭과 벌판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교회가 벌판 한가운데 교회가 있었는데 종소리가 들렸는데 나중에는 종소리가 나면 항상 공부하다가 연필을 놓고 뒤뜰에 나가서 벌판에서 안개를 뚫고 들려오는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어떤 무언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던 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스로 오래 고민하다가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나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사실은 톨스토이였습니다. 지금 읽으면 그렇지 않겠지만 도스토예프스키도 읽고 카프라든지 실존주의 작가들 책을 읽었는데 어떤 책을 읽어도 마음에 평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책 중에서 두 권을 읽으면서 마음의 평화가 느껴졌습니다. 하나가 부활이라는 책이었고 또 하나는 인생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기독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 목사님 직장생활하시다가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목회자로서의
사명은 언제 그렇게 얻게 되셨는지요?
목사님 : 제가 25살 때쯤 그렇게 해서 멀리 떠났다가 21살 때 스스로 교회 찾아와서 회심을 했습니다. 지금도 굉장히 안타까운 것은 나는 예전에 내가 고민했던 그것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하고 연결되는지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어리석은 마음에 나는 이제 예수님을 발견했고 성경이 있으니까 이것들은 모두다 쓰레기 같은 사상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완전히 끊고 더 이상 그런 쪽에 독서를 아예 안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은혜가 충만했을 때는 고민이 없었는데 이 고민이 사라지고 나니까 내가 예수 믿지않을때 못지않게 고민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다가 이제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때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 그러다가 제가 계기가 있었어요. 조그만 변두리 교회였는데 전도사님을 모실만한 교회 형편이 안 되니까 나한테 주일학교를 맡겼습니다. 제가 총각집사였는데 25살 때 전도사님 없이 혼자 여름성경학교를 하는데 너무 대책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일주일을 금식을 했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금요일 날 교회에 엎드려서 일주일동안 기도하는데 그날 하나님이 마음을 녹이시면서 그래 내가 이제 예전에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믿었던 그 부르심 나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위해서 살자 그때에 성령의 강한 감동이 있으면서 그때에 소명을 느꼈고 응답을 했고 그 후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자 :아멘 저절로 대답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인하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시잖아요. 그리스도인으로서 빛으로 산다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저희가 궁금할 때가 많아요.
그 말씀은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16절 사이에 나오는데 문맥을 좀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마태복음 4장에서 고치시고 5장에서는 그 사람들과 제자들이 모두 팔복 산으로 올라갑니다. 예수님이 언덕 높은 곳에서 좌정하셔서 아래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설교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 설교 속에서 제일먼저 팔복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말씀하신다음에 곧바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이 구절을 해석할 때 빛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를 보라 여기 빛이 있다 사실은 원래 의미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빛을 가지고 비추는 것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두운 방에서 불을 켜고 생활하는 것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두나니 라고 할 때 말은 우리 곡식 재는 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등경위에 둔다. 그래서 그 빛이 그런 등불 빛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빛이라 할 때 집에 전기가 나가면 촛불을 켜지 않습니까? 온 식구가 촛불을 보려고 촛불을 켜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들고 무엇인가를 다른 것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너희는 빛이라는 뜻입니다. 너희들이 무엇인가 빛을 비추어서 너희들을 사람들이 보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때문에 하나님과 세상과 도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라 그런 의미입니다.
사회자 :크리스천 참 유익한 힘이 되는 말씀이신데요. 목사님께 멘토 역할하신분이 계셨습니까?
목사님 :저는 멘토라고 그러면 둘로 나눕니다. 토털 멘토와 파샬멘도입니다. 파샬멘토는 어느 부분에 있어서 나에게 선생이 되어 말합니다. 예를 들면 정직하라 에 대해서 나에게 귀감이 되어주셨던지, 아니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든지 이런 멘토들은 사실 많았습니다. 토탈 멘토는 사실은 살아오면서 별로 못찾았구요 그 대신 책속에서 끊임없이 찾으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 우리에게 항상 만족스러운 멘토가 될 수 없으니까 살아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미 죽어서 말하고 있는 사람들 까지 찾으면서 그 사람들과 함께 교감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회자 :지금도 기독교인들은 공부하고 많은 책을 봐야한다. 게으를 시간이 없다고 이렇게 말씀하신 기억이 나는데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책을 읽는 것 독서는 어떤 의미로 설명을 해주실 수 있습니까?
목사님 : 독서에 대해서 저는 건물을 짓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높고 큰 건물을 지을수록 땅을 많이 팝니다. 기둥을 튼튼히 하고 기초공사를 넓게 잡고 그 위에 건물을 쌓아가듯이 앞으로 그냥 다른 생각 아무것도 안하고 어떤 기술 하나 막 해서 그것으로 밥이나 벌어먹고 산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무 많은 책을 읽을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게 아니라 나의 존재와 삶의 기반을 지식위에 두고 싶다 하면 많은 책을 읽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난 그 자체가 하나님이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대해서 공부하라고 태어나게 하셨다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데 많은 책들보다 우선 한 책에 사람의 되어야 합니다. 그 한 책은 성경입니다. 그리고는 그담에 책을 읽어야 되는데 어렸을 때 아이들이 동요를 잘 좋아하고 부르면 얘내들이 커서 가곡을 좋아하고 예내들이 좀 더 크면 클래식을 아주 선호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려서 유행가를 부르면 죽을 때까지 그런 노래를 싫어합니다. 책 읽는 것도 어렸을 때 인문학에 관한 책 특히 섹스피어나 그리스 로마신화 이렇게 문학작품들을 읽혀서 인간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갖게끔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질문을 하겠금, 해야 합니다. 제가 영국에 갔을때 일인데 영국 사람들은 우리는 섹스피어면 청소년 교육이 충분하다고 믿느답니다.왜그러냐고 하니 섹스피어 전집이 인간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물음표에 대하여 거의 다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물음표를 많이 갖고 성장하면 고등학교 때쯤 들어가서 철학을 배우기 시작하고 답을 찾을 때 질문하고 맞아 떨어지면서 아 하며 감탄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러면 사상적 수준 있고 더 깊은 책을 읽으려고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 성숙하게 살아가는 자아상들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자 : 강의내용으로 돌아가서 불변하는 절대 진리가 지금은 흔들리고 상대주의 다원주의가 팽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얼마나 그것으로 인해서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목사님 : 다원주의라고 하는 것은 이차원 평면에 원을 그리면 중심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만약에 유리로 만든 하얀 공이라고 치면 그것은 어디에 점을 찍느냐에 따라서 그게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원주의입니다. 사실 이것은 성경이 이야기 하는 진리에 대한 사상하고는 일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우리들이 받아들이지를 않고 다원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예를 들자면 진리와 별로 상관이 없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이런 음악을 좋아한다, 나는 저런 음악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도덕과 관련해서는 인간사회의 모든 질서와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피터 징어라고 하는 미국의 교수가 몇 해 전에 어떤 이론을 내놓았느냐면 지금 우리는 한참 동성애야 동성애 반대냐에 대해서 논쟁을 하는데 더 과격하게 결혼을 과연 인간과만 해야 되느냐 그러면서 동물과의 결혼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면서 동물과의 결혼을 제안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들이 절대적인 진리를 일단 부인하게 되면 그것을 반박할 근거를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성애자의 눈에는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는 것을 고집하는 자체가 오래된 고정관념이고 편견이고 남성우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남성들의 아주 고도의 전략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동성애는 그럼 어떻게 볼 것이냐면 그게 왜 문제가 되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럼 동물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 보여 다오 이런 것들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한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은 유명합니다. 스와핑이라는 단어가 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너무 자유로운 거예요 그런데 심심한 겁니다. 야, 우리 마누라를 바꿔서 살아보면 어떨까 사람들이 합의를 하고 이집여자가 저 집에 가고 하면서 스와핑이 일어났어요.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인 문화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스와핑에 대한 글들이 최근에 내가 들은 이야기는 전에는 스와핑 모임하면 와서 했는데 지금은 안 되고 주민등록하고 호적등본하고 떼어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로 부부관계라는 객관적인 증명이 되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스와핑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조금 사라졌는데 한 7 ~8년 전에 에이트 밀리미터 8미리 미터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 이였는데 그 장르를 스너프라고 하는데 스너프가 뭐냐면 예전에는 섹스물과 잔혹한 폭력물들이 나뉘었었는데 이것을 접목 시킨게 스너프 라는 장르입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죄책감을 안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절대적인 기준이 사라지고 나니까 아무거나 못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더 끔찍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과연 인간이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욕망을 표출하며 살면 그 순간은 행복하지만 사회전체가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위대한 힘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상의 힘 지식입니다. 하나는 윤리의 힘 그것은 사랑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돌아가도록 만드는 동력이 있는데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은혜를 받음으로서 세상사람 다 그렇게 살아도 난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세상사람 다 안 믿어도 난 믿을 수 있어 이런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세 개의 톱니바퀴를 항상 기억을 하시면 됩니다.
사회자 :은혜로서 우리가 바꿔야 되는데 어떤 사람 분들은 크리스천이면서 뜨거운 은혜를 체험했다가도 식어서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고 다시 또 죄를 짓고 본을 보이지 못하고 어떤 삶의 비전을 보이지도 못하고 이러니까 교회갈 때는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예배를 결국은 안보기도 하고 이런 많은 일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방황하는 분들에게 어떤 변화를 갖기 위해서 어떤 지침을 주시면 어떨까요?
목사님 : 우리가 아무리 진리라고 생각을 해도 우리의 생각은 생각대로 가고 마음은 생각을 안 따라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구하고 싸웁니다. 머리에서 말합니다. 야 그 말은 하지마 그말 하면 너 나중에 후회한다 그말 하지만 그런데 이 속에서는 이 나쁜 자식 하고 확 하고 쏟아져 나옵니다. 나중에 사과할지라도 인간이 그런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어디에 훌륭한 지름길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상의 체계를 세우는 게 중요하고 아까 말씀한 것처럼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쉽게 식어버린다는 것은 여기에 두 개의 불길이 있는데 하나는 많은 지푸라기를 많이 쌓아놓은것이고 여기에는 장작을 쌓아놓았습니다. 어느 불이 더 활활 타오르겠습니까? 지푸라기가 더 활활더 타오릅니다. 불도 잘 붇고 한 번에 확 타오릅니다. 그런데 이것은 금방 탑니다. 타오르는 것을 사랑 은혜 경험 이라고 말한다면 장작은 지식입니다. 지식이 충분할 때 오래도록 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철저하게 공부하고 사상의 체계를 가져서 그것을 부인할 수 없는 체계를 갖는 것이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두 번째는 그 체계를 기꺼이 붙들고 살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윤리적인 삶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회자 : 이러한 종교다원주의 사회에서 믿음의 학부모들이 과연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면 좋을지 말씀해 주세요.
목사님 :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이 행복한 길이 무엇일까 ? 첫 번째가 안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도 태어났다 그러면 빨리 죽는 것이다. 그래도 살아있으면 어떠하냐. 그러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가장 좋은 법이 만들어져서 법대로 시행되는 나라에서 태어날 것, 두 번째는 정말 인간다운 인간인 부모의 슬하에서 태어날 것 그리고 교육을 받을 것, 세 번째는 참 인간의 길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만날 것, 네 번째는 정말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싶어하는 좋은 친구들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부모들이 자기의 실존을 가지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참된 인간으로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그런 생각이 너무 없으니까 아이들이 내가 어렸을 때 가진 고민을 나처럼 표현을 못하지만 거의 똑같은 고민을 갖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그것을 부모에게 털어 놨을 때 그것을 만족스럽게 답변 해줄 수 있을 정도로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별로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교육의 한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버려둘 순 없습니다. 교회하고 잘 힘을 합쳐서 부모들도 이런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독서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해답을 발견하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전달 해주고 그렇게 끊임없이 똑같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가기를 하나의 동료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자 : 이 프로그램이 크리스챤멘토 로서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해주는 프로그램인데요. 목사님 아무래도 마무리하기 위해서 목사님의 신앙의 멘토로서의 말씀을 기다리는 젊은 사람들에게 요약해서 메시지를 전해주세요
목사님 :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젊었을 때에는 너무 편하게 그리고 무엇인가를 많이 누려서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이런 방식의 인생을 생각하면 미래가 없습니다.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면 젊은 사람들은 너무 맛있는 음식 좋은 옷 편안한 주거환경 이런 것들이 허락되면 그렇게 되겠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을 해서 자기가 본래적으로 가야할 그 길에 방해를 받을 정도로 집착을 하면 미래가 없다
두 번째는 자기의 육체와 물질생활을 유익하게 하는 일에 힘을 쏟는 것과 자기의 정신과 영혼을 풍부하게 하는 일에 힘을 쏟는 것 사이에 균형을 가져라 균형을 갖지를 못하고 그냥 신앙과 교양 정신 이런 것은 상관없이 그냥 돈을 벌고 이 세상에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스펙을 쌓는 일에 자기를 매몰시킨다면 그것은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또 한편으로는 신앙에 열심히 있는 청년은 거기에 푹 빠져서 자기의 의무를 게을리 합니다. 젊음이라고 하는 것은 30년 후에 갚기로 되어 있는 지불 만기어음이다 그런 점에서 이 두 가지의 의미를 기억하라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가 이 모든 의문들을 제기했지만 결국은 하나님 없이 신앙이 없이 우리의 모든 문제는 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신앙이 그런 기둥이 있을 때 거기에 이 모든 이성적인 사고들이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케에르케고가 말년에 유럽에서 너무 유명한 학자가 되었을 때 어느 기자가 찾아와서 위대한 철학자에게 당신의 일생의 비전이 무엇이냐 하니까 ‘한 사람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산다면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 살든 지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도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지 않는가. 자신감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회자 :목사님 말씀 들으니 우리가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녹아 살지만 한편으로는 그 많은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하는 마음도 동시에 가지면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좀 더 깊이를 깊게 우리가 깨닫게 된 시간이었던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