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회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요 21:15-19)
녹취자: 최원정
목사장립과 강도사 인허의 시간이 왔습니다. 특히 신학교에서 3년 이상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아 목사가 되신 분들에게 더욱 뜻깊은 시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안수를 기점으로 여러분들은 이전의 인생과 이후의 인생이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어간 선지자들과 신약에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했던 사도들의 후예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어떠한 이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할까요?
첫 번째로, 오늘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3번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것을 3번을 반복해서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 잘못에 대해서 한 번씩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것 같지 않습니까? 같은 질문을 세 번 들었을 때에 베드로의 마음은 슬픔에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진심을 안 믿어주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주님 사랑하는 것을 아십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한 가지 부탁을 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목사가 되는 가장 중요한, 혹은 강도사가 되는 가장 중요한 자격은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임무는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섬김과 목회는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을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 이외에는 물어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신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많은 사람을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살든지 죽든지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목회를 하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이기게 만드는 힘이 어디서 올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든 고난을 당할 때 그 모든 고통을 통해서 자신을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날마다 예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 크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목회에서 오는 모든 시련과 고통을 감당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가르치신 것은 ‘당신을 따르라’ 였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길을 따라 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꽃길만 걸어가셨습니까? 존귀와 영광만 받으시는 길만 걸어가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나 많은 세월들을 핍박과 고난 속에서 견디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데도 그분의 생애는 시련으로 가득 찬 생애였습니다. 그때의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셨습니까?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셨습니다.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사람을 따르는 길은 때로는 넓습니다. 때로는 영광이 있습니다. 때로는 친구도 많습니다. 그리고 영광도 받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주님을 따르는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외롭습니다. 영광도 없습니다. 때로는 멸시와 모욕을 당합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친구도 나를 버립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그 사랑에 사무쳐서 목회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예수의 큰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잠잠히 입을 닫고 그 사랑을 증거하지 않기에는 우리가 너무 받은 사랑이 큽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하고 목회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우리가 변함없이 예수를 따를 결단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정말 나는 예수만 따를 준비가 되어있는가?’ 여러분들이 목사 안수를 받음으로 또 강도사가 됨으로 예수만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더라.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고백한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렇게 훌륭한 고백을 한 사람에게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약속하지 않으셨을까요? 오히려 예수님은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베드로가 순교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요약을 하면 이렇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예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하니?’ ‘예 정말 사랑합니다.’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지?’ ‘예 제가 정말 정말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래? 그러면 날 위해 죽어버려라.’ 이게 목회자에게 주신 부르심입니다.
그러면 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면서 순교를 예언하셨을까요? 그것은 왜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 수고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것으로 보상해주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아주 명백합니다. 영원을 위해 헌신하는 목회의 사역은 너무 고귀한 섬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보상을 하나님의 나라에서 해주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가 목회하는 동안에 하나님은 많은 것으로 베드로를 도와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를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고 싶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의 죽음은 비참하였으나 그 죽음으로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함께 당신을 배반했던 나머지 모든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었으며, 또한 그 뒤를 따라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주신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안수를 받는 여러분들, 강도사 인허를 받는 여러분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