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충성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계3:14).
예수님이 말씀 하시는 것은 이제 이 요한에게 라오디게아 교회 사자에게 편지를 해라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라고 하는 것은 라오디게아를 목회하는 그런 목회자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그 목회자에게 편지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제 당신 자신 다시말하면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먼저 설명해주고 난 다음에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예수님이 아멘이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라고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별명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별명이 아멘이셨다 아다시피 아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명령 하실때 혹은 사람이 말해도 사람이 말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할 때에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멘입니다. 그래서 아멘이시요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별명이 아멘이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 오셨고 오신 이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인생을 사시면서 이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것은 아멘이셨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22명의 일꾼들이 임직을 했는데 이분들 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 아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모든 것이 주님의 교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아멘의 마음으로 봉사하지 않는 것은 언제든지 처음에는 유익을 주는 것 같지만 그러나 나중에 보면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고 봉사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 섬김의 기본이 아멘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뜻이 워낙 강하고 주장이 강해서 자기의 주장하는 바와 그 뜻이 워낙 강해서 아멘이 없이 봉사를 하게 되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지 상관 없이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고 뒤틀리면 무슨 행동이든지 해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섬김은 벌레 먹은 사과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꾼이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꾼이 되기 전에 먼저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이 무엇이든지간에 그 주님의 말씀이 때로는 사람이 보기에 어리석은 것을 허용할지라도 거기에 아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교회를 섬길 때 그 섬김이 교회에 덕이 되고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본질적인것 같아도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이 있고 또 본질적이지 않은것 같아도 본질적인 것이 언제나 있게 마련입니다. 유능하고 돈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 있으면 교회는 큰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있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주는 유익과 신앙이 없고 똑똑하고 돈 많은 사람이 교회에 주는 유익은 다른 종류의 유익입니다. 이 유익도 좋고 저 유익도 좋기는 하지만 이것은 없어서는 안되는 유익이고 저것은 없어도 되는 유익입니다. 조금 더디게 교회가 발전을 하고 교회가 조금 쉽게 할 일을 조금 어렵게 할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신앙의 근본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는 교회에 많은 손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바보 같은 질문인지 모르지만 크고 건물이 훌륭하고 조직이 잘 되어 있는 질서 있는 교회에서 은혜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원하시겠어요? 아니면 초막이나 작은 판자집 같아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은혜가 있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하겠습니까?
질문 자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질문 입니까? 그래서 아멘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런 아멘이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지만 그가 무슨 직분을 받든지간에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실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그 모든 삶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끊임없이 자기를 꺽고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정말 낮아지고 자기를 꺽을 수 있는 사람이 주님의 사람들이고 그 분들이 바로 주님의 교회를 올바로 섬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교회에서의 섬김은 미련해 보이기도 하고 돌아가는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지력이 모자라고 지혜가 부족해서 그럴때도 있지만 때로는 모든것을 다 알고 지혜도 있는데도 돌아가야 되는 경우도 있고 천천히 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함께 교회를 섬기고 그 교회를 섬기는 목적 자체도 사람들의 영혼이 잘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다 아는 길인데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돌아 가야 하는때도 있고 나는 빨리 뛸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쉬어가야 하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별명이 아멘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 전체는 주님께 아멘 하셨기 때문에 거기에서 사람들을 두려워 하지 않는 신앙이 나왔고 또 사람들에게 겸손한 그분의 성품도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충성된분 이었습니다. 충성되었다고 하는 것은 목표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보다 더 귀한 가치있는 것이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세와 많이 성경에서 비견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의 온 집에 충성하였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머리의 교회가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충성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종으로서 충성하였으나 예수님의 그 집의 아들로 오셔서 충성 하셨으니 그것은 근본적으로 충성의 원리는 같아도 충성의 신분 자체가 달랐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노예요 종으로서 주님의 집에 충성하는 품꾼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셔서 주님을 위해 충성하게 하셨으니 우리에게는 모세도 우리들에게 충성스런 삶의 모본이 되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더 직접적인 모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충성된 삶을 사셨으니까 그분처럼 충성되게 사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의 마음도 주시고 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셔서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때문에 충성스럽게 살아 가는 사람들은 주님의 마음을 앎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충성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 때문에 충성하는 것과 자신의 명에나 사람의 높임때문에 충성하는 것은 사실 분간하기 힘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두개가 잘 구분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평소에는 그렇게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중에 진짜 다이야 반지와 가짜 다이야 반지를 휘향 찬란한 불빛아래 올려 놓고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분이 몇분이나 될지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자신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문방구에서 파는 반지하고 보석상에서 파는 반지가 무엇이 다른지 가격표를 보고 추측할 뿐이지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거의 똑같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위기가 오거나 어려움이 생기거나 혹은 무엇인가 문제가 생길 때 쏟아져 나오는 것이 사람의 욕망이고 혈기이면 그것은 충성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충성된 사람은 처음부터 사람때문에 그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 실망하게 하여도 그 실망시킨 사람들 때문에 일에 실망하거나 주님께 실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 앞에 충성된 사람은 사람이 실망시킬때 주님을 더 굳게 붙듭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의 가르침은 은혜롭고 좋은 교회를 따라서 메뚜기처럼 뛰어 다니는 것은 종교 개혁자들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오늘날은 심지어 목회의 성과를 못낸다고 목사들을 쫒아내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정신이 교회에 침투한 것입니다. 그것은 각자 자기가 하나님 앞에 분량을 따라서 살아갈 뿐이고 모든 사람이 어떻게 모두 다 잘 하겠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그 교인보다 훌륭한 교인들도 많고 그 목사보다 훌륭한 목사도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왕에 목회자를 모시려면 그때 잘 해야 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기도 많이 하고 그리고 검증에 검증을 하고 그렇게 해서 모셨으면 주님의 뜻이지 그것을 교인을 모으지 못한다고 일하는 것이 답답하다고 쫒아 낼 궁리를 하고 그렇게 하면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마치 가게처럼 되지 않겠습니까? 물건을 잘 팔고 종업원 교육 잘 시켜서 친절한 식당에는 손님들이 메어 터져서 표를 가지고 줄을 서고 그리고 옆에 있는 교회들은 전부 다 문 잡고 도산하고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정말 교회에 그런 모습을 원하시겠습니까? 무한경쟁 체제에 들어 가서 교회가 그렇게 되는 것을... 그래서 한 도시에 어마어마하게 큰 교회 몇 교회 남고 나머지는 전부 다 문을 닫는 그런 것이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교회를 다녔는데 다행히 그 교회 목사님이 말씀도 잘 전하고 인격도 훌륭하고 그런 사람은 없으리라고 확신하지만 그리고 교회를 경영하는 능력도 있어서 사람을 몇만명씩 모으고 부자들 앉혀 놓고 설교 한번 하면 다 울면서 몇억씩 헌금하게 해서 교회에 충당하고 그러는 목사님이 만약에 있다고 칩시다. 감사한 것이죠. 그리고 그냥 감사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내 주신 하나의 기업이고 그렇지 못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자기 보다 열등하고 거기에서 신앙생활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깊이 기도하고 의지하면서 충성 스러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충성 스럽게... 그래서 충성스럽다 하는 것은 하나님 한분 만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충성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에 영암에 F1 포뮬러 경기가 열린다고 하는데 저는 본적도 없고 텔레비젼에서 보았는데 글쎄요 저는 거기에 가도 그렇게 흥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최고로 빨리 달릴때 시속 320킬로미터 라고 합니다. 몸이 자동차에 달라 붙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시간을 타고 나면 2리터의 땀이 흐르고 5킬로그램이 빠진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리는데 뻘라 달리면 가상자리가 안 보입니다. 그리고 빨리 달릴 수록 시야가 좁아 지는데 320킬로미터로 달리면 야구공만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시야가 나머지는 하나도 안 보이고 야구공만큼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주님을 향해 충성하지 않으니까 이것 저것 보이고 이 사람이 이렇대더라 저 사람이 저랬대더라 나는 왜 찌그러지나 다른 사람은 대접을 해 주고 나는 왜 몰라 주나 이것이 딴청을 하니까 그런것이 눈에 다 들어 오는 것이지 예수에 미쳐서 다름박질 하면 하나도 안 들어 오는 것입니다. 무엇이 들어오겠습니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것이... 그래서 예수님은 그렇게 충성되신 분이였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에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거기에만 당신 자신이 매진한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예수님은 참된 증인이셨습니다. 무엇때문에 아멘합니까? 무엇때문에 충성됩니까? 무엇때문에 오래도록 참습니까? 무엇때문에 물질적으로 헌신합니까? 결국 마지막에는 증거하는 일들을 위해서 그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신학도서관 총회 모인다고 갔는데 그렇게 해서 도서관을 만들고 미래의 신학교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책을 보고... 목표가 무엇입니까? 야! 이것 참 재미 있구나! 야 참 좋다! 무슨 추리 소설 보듯이 그렇게 엔조이 하라고 그렇게 준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주님의 사람으로 잘 준비 되어서 증거하는 자들이 되게 하려고... 그러니까 워낙 사람들이 마음이 강팍해서 안 믿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하면 올바로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능력있게 전할 수 있을까? 마지막 관심사는 증인 입니다. 그래서 보면 교회에서 많은 사람이 헌신해도 그것이 하나님이 이 충성을 받으시기 위한 마지막 목적지로 향하지 않으면 각자가 충성한 것을 가지고 성도들이 누리며 살다 죽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아주 나쁜 형태에 속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충성의 목적은 참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예수님은 참된 증인으로 사셨습니다.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결국은 진리를 전한다는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것 아닙니까? 그러면 교회의 일꾼이 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복음을 전하고 증인으로 사는 이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이 말씀을 많은 이웃들에게 전파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라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불러 주시고 또 직분을 주셔서 세워 주셨으니 어찌 이것이 교회의 선거를 통해서 세워진 직분자들만을 위한 것이 되겠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들 이렇게 주님께서 세워 주시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더욱더 주님의 일에 힘쓰고 참된 증인으로 살아 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충성 증인 이 세가지의 삶으로 주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