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수고한 사람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롬 16:12).
사도 바울은 그야말로 불세출의 지도자 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기에는 이 사람이 죽은 사람도 살리고 병든자도 고치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아주 놀라운 일들을 이루었고 그래서 아마 이 사람은 혼자 엄청난 일들을 해 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이제 로마서를 마치면서 부록처럼 16장에 언급하면서 약 35명, 30명이 훨씬 넘는 35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거론이 됩니다. 참 특이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 한사람 한사람의 섬김을 거론하면서 그 사람들의 이름을 실제로 거명하면서 그들을 격려하고 칭찬하고 또 그들을 로마 교회에 소개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 이렇게 소개하는 이유는 아마도 로마 교회 교인들도 이렇게 은혜를 받았으니까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이 일에 헌신하도록 불러내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12절을 읽었지만 12절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드루베나 드루보사 버시 이런 사람이 모두 한번 밖에 안 나오는 이름입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도들을 가까이에서 섬겼던 사람들 중에서 일곱 집사와 같이 그렇게 걸출해서 모든 교회에 이름만 대면 알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사도 바울 가까이에서 섬기던 눈에 띤 수 많은 사람들 중에 몇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버시라고 하는 이 사람에게 사도바울이 다른 사람에게 했던것과는 다른 수식어를 많이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가 하면 드루베나와 드루보사에게는 주 안에서 수고한 사람이라고 해 놓고 차별 대우 하듯이 그 뒤에 가면 주 안에서는 똑같은데 많이가 붙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 서신을 기록하는 사도 바울의 머리 속에도 다 고생했지만 누가 더 특별히 고생했는지 떠 올랐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 이름이 바로 버시 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면 이 사람이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이것 이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오늘 오후에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선 첫째 이 버시라는 여인의 섬김은 주 안에서의 섬김이었습니다. 사실은 이 말보다 더 포괄적이고 섬김에 대한 핵심을 지적하는 어구가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주 안에서 섬겼다. 우리들이 주 안에서라는 말이 에베소서에 또 나옵니다. 주안에서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그래서 이런 어구들이 나올때 주 안에서 라는 한정 어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주님 안에서 섬겼다 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섬기는 것이 모두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는 양태도 있지만 자기 배짱으로 섬기는 것도 있습니다. 혈기로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우리야 제직회 안수집사이상들 권사들 모여서 하고 질서 정연하게 끝나는데 교회가 은혜가 떨어지면 그 제직회가 난장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리집사들까지 모두 참석해서 떠드는데 누가 이렇게 이렇게 보고를 했더니 어느 위원장이 돈을 많이 쓴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안 좋게 보던 평소에 안 좋았나 봅니다. 교회에 돈도 없고한데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썼냐고 하면서 교회 돈을 그런데다가 써도 되냐고 면박을 주니까 이 사람이 나중에 신경질을 내면서 내면 될거 아니야 하면서 그 자리에서 자기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서 돈을 집어 던졌습니다. 섬긴건 섬긴것인데 주 밖에서 섬긴 것입니다. 그런 예는 종종 일어 납니다. 그래서 몇십만원 썻다고 하니까 지갑에서 꺼내서 봉투에 넣어 가지고 그 사람 앞에 집어 던지면서 내가 내면 될거 아니야... 섬긴 것은 섬긴 것입니다. 그런데 주 밖에서 섬긴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마음에 만약에 버시가 그런식으로 섬겼더라면 그렇게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 밖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가서 저녁 대접을 받았습니다. 부흥회를 가서 지방에 있는 큰 교회인데 담임목사님이 저를 데리고 가는데 그렇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그런 집에 가서 금방 집회하기 때문에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어쨎든 감사하게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담임목사님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교인들은 참 이상합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하나님 앞에 헌금하라고 하면 손 드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강사 대접할 사람 하면 서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해야 된다고... 다 하나님 섬기는 것인데 굳이 그럴 이유가 뭐가 있는지 교통정리 하느라 혼났다고 강사는 한 사람인데 대접하겠다는 사람은 여럿이 나타나니까... 경상도쪽으로 내려가면 더 심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다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침은 새벽예배 끝나고 기도 좀 하고 가려고 하면 뒤에서 계속 기침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빨리 밥 먹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면 해장국이나 간단히 먹으면 되는데 데리고 가서 어쨎든지 간에 그렇게 먹입니다. 먹고 나면 숙소에 가서 씻고 나오면 바로 아침 집회 시간인데 아침 집회 은혜가 없으면 금방 끝나는데 은혜가 있으면 길어져서 10시30분쯤 시작해서 12시 30분쯤 끝날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점심 먹으러 가서 기다리는데 가까운데가면 되는데 좋은데 데리고 간다고 차로 40분을 갔습니다. 가서 점심을 먹는데 한 없이 나오는 겅ㅅ입니다. 이것도 고역입니다. 그래서 먹고 숙소에 들어오니까 4시입니다. 그런데 5시에 다시 초인종을 누르는 것입니다. 저녁 먹으러 가자고... 왜냐하면 7시 집회이니까... 이것은 완전히 고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안 하겠습니다 그래서 점심만 대접 받고 아침 저녁을 자유롭게 하겠습니다 했더니 어느 교회에 갔더니 안됩니다 하는 것입니다. 아니 왜 안됩니까 했더니 성도들이 실족합니다. 다 짜 졌습니다. 이것이 누구를 위한 대접인지 모른겠습니다. 그래서 저녁 먹으러 가서는 그냥 숟가락만 들었다 오는 것입니다. 그것도 주님 밖에서 섬기는 섬김이 많습니다. 데리고 가서 맛나는 것 먹고 카운터 앞에 가서 만원짜리를 한 없이 세던데 그것을 봉투에 넣어서 감사헌금 할 마음은 적은 것이 현실이다 담임목사님이 그러니까 알지 우리 교인들이 그런적도 없고 우리는 강사들 불러서 부흥회 한 적도 별로 없으니까 그런 것을 모릅니다. 제가 강사 였습니까... 대접은 받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것도 주 안에서 섬기는 것이 정말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주안에서 섬겼습니다. 주 안에서 섬긴다는 것이 그런 외형만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사람이 섬길때 오늘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마음을 가지고 섬겨야지 그렇지 않으면 삯꾼이라고 했습니다. 삯꾼 어미 , 삯꾼 아비 오늘 청년부에서 제가 삯꾼 자식도 이야기 했습니다. 자기 아버지를 뒷돈 대는 사람으로 알고 자기 엄마를 밥해주는 식모 정도로 알면 그것이 진짜 참된 세끼이냐 그것이 삯꾼 자식이지 그래서 새로운 용어를 4부에서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마음에서부터 충심으로 우러 나와서 섬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의 은혜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은혜 안에 있으면 영혼 한명을 맡겨줘도 그렇게 눈물이 나고 하나님 앞에 감격하고 그렇게 되지만 섬기는 사람이 주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의 섬기는 모든 것들은 말 할 수 없이 퍽퍽하고 그리고 사역하는 그곳에서도 끊임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역도 이렇게 보면 비록 구역장이 성경을 가르치는데 능하지 못해도 윤기가 흐르는 구역이 있고 사람이 많이 모이고 말은 잘하는데 퍽퍽한 구역이 있습니다. 옛날에 제가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에서는 일년에 꼭 한번 온 구역이 교회에서 모이는 연합구역 예배를 일년에 두 번인가 6월에 한번 12월에 한번 하는데 그때는 구역식구들이 교회 구석구석에 모여서 점심을 각자 도시락 싸 가지고 와서 모입니다. 그때는 제가 전도사 였으니까 저도 구역을 하나 맡아서 그때는 교역자가 구역인도자고 구역장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역장이 그렇게 하는데 일년에 두 번 6개월에 한번 모이는데 보면 천차만별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구역이 잘 되서 열심히 나오면 뭐도 준비해 와라 뭐도 준비해 와라 맡길 수가 있지만 구역이 튼튼하지 못할때에는 그것이 불가능 합니다. 그래도 구역장이 은혜 아래 있을 때에는 한달 전부터 그 구역 모임을 위해서 기도하고 왜냐하면 그때가 기회이니까 구역식구들 예배시간에 못가게 하고 불러내어 모이는 시간이고 그리고 그 교회는 한달에 한번 밖에 구역모임을 했습니다. 그래서 구역식구들간에 결속력도 많지 않았습니다. 어쨎든 그날을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기도하고 준비를 했는지 그래봐야 구역식구들 많아봐야 예닐곱이고 적으면 두세명 밖에 안되는데 마음에 맞는 사람 데리고 빈대떡도 부치고 전도 부치고 그렇게 알록달록 해 가지고 그것도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둘러 앉아서 자기가 머리 속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지고 옵니다. 선물도 가지고 와서 뽑기도 하고... 그리고 뽑은 사람이 6개월 동안 구역생활 한것에 대하여 발표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구역장이 자식들 사랑하면서 이런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배어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구역에 들어오지도 않다가 붙잡혀서 거기에 왔다가 감동을 받고 구역이라는 것이 있구나 사람들이 참 좋구나 하는 인상을 가지고 그 다음에 전화를 하면 구역모임에 참석을 하고 이렇게 발전을 합니다. 그것이 구역에 윤기가 흐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역장이 주 안에 있어서 은혜를 받으니까 윤기가 흐르는 것입니다. 어느 구역에 가 보니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데 교역자이니까 어떻게 하나 하고 도는데 세상에 구역식구 네명이 모였는데 까만 봉지에 소보로빵 네 개하고 우유하고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구역 식구들은 앉아서 도시락도 먹고 김밥도 먹고 하는데 그 구역은 소보로빵하고 우유를 먹다가 또 그것을 쏟았습니다. 그래서 걸레를 찿느라고... 이것이 무엇을 보여 주는 것이냐면 거기서 그냥 도망가고 싶은데 담임목사님이 하도 그러니까 그냥 거기에 붙잡혀 나와 있습니다 지금 12월인데 1월이면 구역장 그만 둡니다 라는 것이 얼굴에 쓰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럴 경우 어떻게 됩니까?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맡은 영혼들에 대해서 애틋한 마음을 갖게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인턴쉽 14기를 했습니다. 인턴쉽마다 학생들이 어떤때는 좋은 학생들이 들어오고 덜 좋은 학생들이 들어오고 하는데 좋다 나쁘다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자기들이 하는 이야기고 기껏해야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많이 섞였느냐 어릿어릿한 학생들이 있느냐 그런 것 아닙니까? 14기를 다 모집해 놓고 우리 교회 인턴쉽을 담당하는 교역자가 그럽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이번 기수는 지난번 기수에 비해서 그렇게 총명하고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뭔 상관이냐 일단 우리가 뽑았으면 열심히 봉사하면 되지... 그런데 늘 제가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월요일 아침 8시30분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은데 하나님이 저에게 그런 기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실력있고 탁월한 사람이 지난 기수에는 들어오고 이번 기수에는 덜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셨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배우겠다는 초롱초롱한 학생들 가르치면 되지하고 14주인가 15주를 하는데 매일 제가 아침을 공급했습니다. 오다가 파리바케트에 들러서 오븐에서 금방 나오는 따끈따끈한 빵 그것을 비닐 봉지에 넣지 않고 종이 봉지에 차곡차곡 쌓아서 받쳐들고 와서 따끈따끈할 때 먹어라 하고 4층 테라스에서 추워서 덜덜 떨떄까지 야외 수업만 했습니다. 그래서 옷들을 두툽하게 입고 오는데 그것을 먹었습니다. 8시30분쯤 오니까 아침 안 먹고 옵니다. 제가 다 알죠 스케줄이 뭐가 있는지... 스케줄이 있으면 9시에 모일 것을 8시30분에 모이고 해서 시간을 땡겨서라도 한번을 결석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참석해서 외국에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참석해서 먹고 그 다음에 교제하고 열심히 추운데도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이 전도사들 마음에 아주 깊이 다가왔다고 합니다. 저한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두바퀴 돌아서 저에게 들어 온 이야기입니다. 14명인가 15명이 수료했는데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그들중에 몇 명이 교회를 사직하고 열린교회 평신도로 오겠다고 그래서 일년정도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배우고 싶다는 그런 사람들이 나올 정도로 그런 감동과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 자신이 은혜 아래 있으면 영혼이 제일 소중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마음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설레는 마음으로 구역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 안에 있을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주 밖에 있으면 맨날 교회 불평이나 하고 구역식구들 모아 놓고 나서 허튼소리나 하고 모여서 세상적인 이야기나 하고 음식이나 배터져라 먹고 그렇게 세속적인 모임을 하면 그것이 주안에서의 섬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버시를 생각할 때 주 안에서 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일이 무엇이든지 주 안에서 섬기는 모든 사람들과 아름다운 연결을 이루면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턴쉽 하면서 그렇게 여러명의 학생들이 열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사모하고 내가 인턴쉽을 공부하면서 내 신앙 자체의 기반이 부실하고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열린교회에 와서 목회자가 되기 이전에 성도로서 한번 살아 보고 싶습니다. 정말 처음입니다. 몇 명이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처음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신앙생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섬기는 사람의 힘은 이처럼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섬기는 사람은 주 안에서 섬기는 기쁨이 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있지만 또 그때의 위로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루만져 주시는 사랑도 있습니다. 이러면서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생기면 그 어려움 때문에 점점더 이기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 안에서 섬기는 섬김입니다. 나는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지만 주님 안에서의 교회의 일치와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저렇게 나 자신을 고치고 바꾸어가면서 하나님 안에서 은혜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 주안에서 섬기는 섬김입니다. 여러분들이 내년에 많이 섬길텐데 이번에 구역장 수련회에 가서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느꼈겠지만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 사람들이야말로 나와 함께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열린교회의 역사를 써가는 사람들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나 신실한지 모릅니다. 어느 부목사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구역장님들 중에는 제가 본 받아야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것이 바로 주 안에서 섬기는 섬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로는 수고한 사람으로서 사도바울의 머릿속에 버시가 기억이 되었습니다. 수고한 사람으로서... 수고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길로 가기위해 겪는 괴로ㅇ움과 원하지 않는 질서의 고통이 바로 수고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사람이 자기 즐거움을 위해서 애쓰는 것은 사실 수고라고 생각을 안 합니다. 제가 지금은 많이 나아 졌는데 어렸을 때는 정말 외골수 였습니다. 한번은 하모니카가 너무 배우고 싶은데 그래서 그것을 간신히 샀는데 비싸고 좋은 것을 샀으면 안 그랬을텐데 하모니카를 한참 정신 없이 부는데 누가 옆에서 “너 입이 왜 그러냐?” 피가 계속 입에서 줄줄 나는 것입니다. 하모니카를 맨날 계속 불었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계속 야단 치셨습니다. 하모니카를 부는 것은 이해 하겠는데 계속 불다가 양쪽에 입이 찢어져서 피가 나도록 하모니카를 부는 놈이 어디 있냐? 미친놈이라고... 그래도 아프거나 말거나 계속... 그래서 그때 터득해서 지금 하모니카 꽤 붑니다. 그런데 요즘 안 분지가 10년도 넘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가져다 놓으면 왠만한 찬송 부를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타를 언제 배웠습니다. 물집이 생기도록 그것을 또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수고와 고생이라고 가만히 앉아 있는 나에게 쇠덩어리를 들이대고 입이 찢어져서 피가 나게 하면 제가 가만 있겠습니까? 자기가 좋은 것을 하는 것은 수고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때 뭔가 아구가 맞아서 착착 돌아 가면서 수고하면 그것이 취미생활이지 봉사 생활입니까? 원래 그것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이고 그것이 하나님 섬기는 일입니다. 여러분 정말 재미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참 이상한 것이 무엇인가 선한 뜻을 세우려고 하면 꼭 방해하는 것이 생겨납니다. 그것이 신기하게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그런 어려움이 있는 것은 뜻을 품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것에 굴복하고 복종하면 패배 하는 것이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끊임없이 애를 쓰면 그것이 바로 수고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많이 수고하고 라고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시골길을 걸어 가다가 큰 고목나무를 보았습니다. 고목나무이니까 가운데 구멍이 뻥 뚤려 있었습니다. 갑자기 고목나무 근처를 가더니 고목나무를 어루 만지면서 “애야 너는 목회도 안했는데 왜 가슴이 뚤어졌냐?” 그것이 얼마나 자기 살아온 세월이 힘들었으면 고목나무를 보고 어루만지면서 애야 너는 목회도 안했는데 왜 가슴이 뚤어졌냐? 자기의 처지를 그 고목나무를 통해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 많이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고생 많이 시키고 하나님께서 많이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사람은 고난을 많이 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섬기면서 어려움을 많이 만나고 힘이 들면 나만이 힘들다 생각하지 말고 내게 주신 은혜가 많다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구나 이렇게 선하게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은혜를 주셨으면 그 고통을 받게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들이 핍박이 일어날 때 실컷 두들겨 맞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서 고난을 받게 해 주신것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크면 이런 정도의 고통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 해 주셨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감사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지어 주시는 십자가의 크기를 보면 우리가 받은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 못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무거운 짐을 맞겨주시지 않습니다. 혹시 사람이 실수해서 그런 짐이 맡겨지면 부작용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버시는 많이 수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은혜가 많으면 수고한 것이 보이지 않고 주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가 기억이 나는데 은혜가 떨어지면 하나님께 사랑 받은 은혜는 생각이 나지 않고 고생한 생각만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과거를 추억해도 은혜의 상태에서 추억하는 것과 고갈의 상태에서 추억하는 것은 틀립니다. 은혜의 상태에서는 과거를 생각하면 힘들고 아팟던 것이 기억에 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데 이렇게 형통케 해주셨는데 그리고 찬송이 옵니다. 그러다 불평이 쌓이고 은혜가 떨어지면 그렇게 감격했던 것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고 힘들었던일 괴로웠던 일 나를 괴롭혔던 인간 이런것들만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각기 다르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많이 수고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버시가 바로 그렇게 많이 수고한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하는 것 없이 하는 일 없이 인생을 사는 것이 많습니다. 정말 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바람처럼 세월이 흘러가고 이제 아무것도 한 것이 없구나. 그런 생각을 느끼게 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사실 교회를 시작하기 전에는 더 크고 위해한 일에 쓰임을 받을줄 알았습니다. 그것도 교만 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도 나에게는 너무 과중한 일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은혜를 준 사람을 절대로 그냥 버려 두시지 않고하나님이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좀더 수고 했더라면 희생을 했더라면 안 이루워질 일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BBC 방송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40년대에 일어난 일로 기억하는데 여왕폐하가 나오셔서 중계방송을 할때의 일 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이 끊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방송 사고가 날것 같으니까 긴 시간동안 여왕폐하가 연설하는 동안에 양쪽 전기줄을 붙들고 직원이 자기 몸을 전선 삼아서 그것을 통하게 해서 방송을 내 보낸 것입니다. 잘못하면 그것 심장마비로 죽습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그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정말 절시하게 마음에 아주 애절함을 담아서 여러분들에게 내가 눈물은 안 흘리지만 진짜 마음으로 울면서 호소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평신도 사역을 접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 왜냐하면 이 평신도 사역이라는 것은 우리 교회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10년 될 때 까지는 교역자 중심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자라면 직원을 채용해서 사역을 했고 그래서 교인들은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때에도 교회 봉사할 일이 많고 했지만 그러나 리더쉽 자체를 교역자가 쥐고 있었고 그리고 평신도들은 교역자들이 시키는 일을 심부름하면 교회가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그런 체제를 가지고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진짜 제가 자랑이 아니라 진짜 열심히들 했습니다. 제가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월요일에 휴무하기 시작한 것이 여기 이사와서 2년 지난 다음에 월요일에 휴무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교역자 월요 휴무도 없었고 방배동 교회 있는 동안 까지 교역자들이 일주일 휴가를 다 쓴 사람이 없을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깊이 생각하니까 교회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를 보면 4장 15절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자와 교사와 이런 사람들을 세우는데 결국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성도들을 섬기게 하기 위한 뜻이 최종적인 목적입니다. 그런데 보면 우리는 그 모든 일들을 하기는 하는데 성도들이 그렇게 온전한 사람들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이렇게 성도들이 모든 섬김을 위해서 전체적으로 희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급기야 목회의 문제를 가져오기 시작하는데 어떤 문제를 가져 오는가 하면 물이 흘러 들어가기만 하고 흘러 나가지 않으면 반드시 썩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은혜를 받고 감격을 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고 삶으로서 그 은혜를 소명 삼아 하나님께 봉사 하지 않으면 결국 그 은혜는 마음 속에서 썩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그 마음이 변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썩는다기 보다도 은혜 받은 그 마음이 변질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를 돌아 보십시오. 그렇게 눈물 펑펑 흘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감격하던 사람이 완전히 시들해져 가지고 신앙이 거의 없는 사람처럼 살아 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하나도 섬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그렇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교인들이 은혜를 받을 때는 감격하고 아무일도 안 하고 있다가 그 다음에 다시 부패하고 그러다가 교회 나가고 아니면 남아서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그 중에 어떤 사람은 회복하고 어떤 사람은 주저 앉아서 그냥 미끄러져 버리고 이런 일들이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10년 세월이 지났는데도 교회의 모든 교인이 전기줄에 앉은 참새같이 언제 라도 힘들면 날라갈 태세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자인 저의 느낌이었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기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깨닫고 이것은 힘들더라도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 하고 평신도 사역을 연 것입니다. 이제 한 4-5년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리더쉽 자체를 평신도와 교역자가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작년에 교역자와 직원 20명 가까이 우리들이 줄이고 감당해 나가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어떻게 되냐면 여러분들이 맡은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안하면 그 부분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에... 왜냐하면 어떤 위원장들은 정말 열심입니다. 부장이나 위원장이나 분과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열심이어서 챙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진작 했어야 하는데... 만약에 교역자를 시켰더라면 저렇게 꼼꼼하게 챙기지 않았을 텐데...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교역자가 시킬때는 그져 자기 심부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평신도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고 토요일 새벽마다 나와서 눈물로 기도하고 봉사 하니까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해 나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위원장들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안하면 그 일이 어디로 가냐면 저에게로 그대로 돌아 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저에게로 바로 돌아 옵니다. 장로님에게로 돌아 가지 않고 한다리 두다리 건너서 저에게로 그대로 밀려 옵니다. 그러면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냐면 옛날 방법대로 목사가 사람을 사고 품 사고 그 다음에 교역자 시켜서 그렇게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엊그제 우리가 직원 예배를 드리는데 어느 간사 한 사람이 기도를 하는데 목사님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백번 기도해도 그것이 기도 응답이 되려면 여러분들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오죽했으면 그랬습니다. 우리 직원들 보고도 내가 편안하게 말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너희들이 섬기면 하늘나라에서 상이 클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게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에게 상을 줄 것이다. 어떤때에는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 속에서 눈물이 납니다. 이제 내가 섬겨봐야 시간으로 따지면 얼마나 남겠습니까? 15년 목회 했는데 3,300편 설교 했습니다. 앞으로 15년을 더 한다고 해도 3,300편까지 더 못할 것 아닙니까? 왜냐하면 그때는 30대 40대 펄펄 기운이 있었고 이제는 주일날 이렇게 하고 가면 수요일이 되어야 몸이 회복이 됩니다. 그러면 점점 더 설교할 기회는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이것저것 빼고 나면 아마 15년 동안 목회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한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내가 2,500편 정도 설교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남은 동안에 우리의 날이라는 것은 정해 있어서 온전히 쏟아 붇고 살아야 하는데 어제도 신문을 보니까 우리 교회에서 특강했던 김용모 목사라고 여러분 아시나 모르겠는데 어제 죽었습니다. 췌장염으로 죽었는데 굉장히 건강하고 강의하면 펄펄 날 정도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해진 시간안에 우리들이 자신을 온전히 쏟아 부어서 의미있는 사역을 해야겠는데 담임목사가 해야 할 것이 아닌것 복사기나 고치러 다니고 그 다음에 칠 잘했는지 못했는지 구경이나 하러 다니고 방송 장비가 제대로 수리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그것이나 보러 다니고 하면서 세월을 보내면 어떤때는 마음속에서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쌓여 있는 것들이 너무 많고 내가 아니면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우리 신학교 세우는 곳에 드나 들면서도 생각하는데 여기에 정말 내 마음을 가지고 여기서 학장노릇을 할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월달에는 한주 걸러 한번 두 번을 가야 합니다. 안가면 안됩니다. 한번 가면 삼일인데 마음이 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하겠습니까? 자가용 비행기가 있어서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오겠습니까? 한번에 가면 3일 최소한 3일만에 돌아 오는데 밤잠 안자고 비행기 타고 와도 3일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이 알수 없는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더 많이 진리를 연구하고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고 개인적으로 이런속에서 현저하게 기도가 부족하다는것을 느끼면서 마음에 많이 고통을 느끼고 있는데 이것이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전부다 저에게 일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식당의 설계하고 망가진 것 고치고 하는 것 까지 돌아 다니고 교육관에 내려 가서 전열기구하고 화제날 위험까지 다 조사하고 돌아 다녀야 하니까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그 자리에 서서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지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 십시오. 내가 안하면 누가 하겠지 그 누가가 김목사입니다. 다른 사람 있겠지? 아닙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질문하는 여러분들은 남이 안 한것을 대신 해본적이 있습니까? 명쾌합니다 답이... 그렇게 질문하는 여러분들은 남이 안 한것을 대신 해본적이 있습니까?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안하면 누가 하겠지 그 누가가 김목사입니다. 나한테 옵니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 식당에 밥 하는것부터 시작을 해서 문짝 고치는 것까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은 못하지만 어떻게 사람 시키면 할 수 있는지 압니다. 그런데 그렇게하면서 돌아치면서 다니면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엊그제도 마음 아픈 전화를 받았는데 제가 섬기던 교회에 아주 훌륭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벌써 팔순이 다 되셨는데 그 아들한테 전화가 왔길래 이런저런 통화를 하다가 김장로님 잘 계시냐고 하니까 장로님 지금 많이 아프십니다 왜 아프세요 하니까 교회를 새로 짖느라 공사를 하는데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돌아 볼 수 있는 분이 장로님밖에 없으니까 노구를 이끌고 현장을 지휘하시다가 2층에서 떨어 지셨다고 합니다. 다리가 부러지셨는데 부러진것은 별것이 아닌데 나이가 그렇게 많다 보니까 뼈가 붙지를 않는 것입니다. 급기야 결국은 수술을 하셨다고 하는데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정말 충성스러운 장로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자기 맡은 자리에서 내가 안하면 이것은 목사님의 일이다 그리고 내가 일을 안해서 이것이 목사님에게 넘어 가면 말씀 사역을 갉아 먹는 것이다 말씀 사역의 한부분을 훼손하는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정말 제가 그나마 여러분들에게 말씀 전하면서 책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디어디라고 지적은 안하지만 분과 보고 받으면서 어느 부분에서는 정말 눈물이 나옵니다. 어쩜 저렇게 충성스럽게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전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이상의 애정을 가지고 철두철미하게 그 일을 소화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제가 글이라도 한자 더 보고 여기 엎드려서 기도라도 하는 것이지 그 사람들까지도 도망가거나 아니면 자기 직무를 소홀히 한다고 할 것 같으면 아마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은 맡겨진 자리에서 미적미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이제 미룰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여러분들이 할 의지가 없으면 아주 정직하게 이야기를 해서 저는 도저히 섬길 수가 없습니다 하고 정확하게 의사표시를 하십시오. 그러면 행정실장하고 수석 부목사하고 의논해서 일할 사람으로 바꾸어 줄 것입니다. 하다보면 그럴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여러분들이 미적미적하고 뒤로 미루게 되면 누가 해주겠지 그 누가가 바로 저입니다. 그래서 그 짐을 다 제가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맡은 그 자리에서 많이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이 버시처럼 많이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사랑하는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희랍어 성경에 보면 수동태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버시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도바울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표현하자면 사랑받는 버시입니다.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하고 충성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그 충성심이 혈기로 잘못 번져서 자꾸 부딪히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일은 열심히 하는데 시가하는 사람도 많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교회 전체를 위해서 화합을 이루는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인백보는 불여백인일보라. 한사람이 백 발자국을 달려가는 것은 쉽고 백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한걸음을 옮기는 것은 힘이 든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되고 주 안에 있으면 어려운 일을 맡겨주면 이 일 때문에 함께 일할 사람들을 수소문하고 마음을 통하고 하는 가운데 일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함께 세웁니다. 자기도 자라고... 그런데 이것이 은혜가 없으면 어려운 일을 맡겨주면 이 일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원망하면서 부딪혀서 싸움질을 하고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욕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충성하라고 일을 맡겨 주었는데 그 일 때문에 사람이 틀어져서 가문끼리 쳐다도 안보는 그런 상황까지 발전하는 예가 전설속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실제속에 많이 일어 납니다. 이런것들은 모두 일은 하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에게 인정 받고 사랑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섬기면서 하나님 앞에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섬기면서 그 섬김의 동기가 예수께로부터 받은 큰 은혜가 된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러면 그 큰 은혜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섬기고 봉사하고 사랑하는 그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엊그제 어느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그럽니다. 자기는 교회에서 공표를 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은 치리 하겠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사람들을 책망할 때야 언성을 높일 수 있겠지만 교인들이 함께 섬기면서 언성을 높이면 그 자체가 교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하면 안 됩니다. 정말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많이 섬기고 나면 그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는 그런 섬김의 길을 여러분들이 걸어가셔서 많은 동지를 거느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이름이 버시 였습니다. 버시의 뜻이 무엇인지는 제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이 버시라고 하는 이름이 페르시아 여자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올라와 있는 이 사람은 사실 유대인도 아니었고 헬라인도 아니었고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페르시아의 이방인 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이방인 우리로 말하자면 외국인근로자 같은 처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많이 수고하고 헌신해서 사도바울의 마음에 그 사람 생각을 하면 주의 은혜안에 있고 항상 많이 수고하고 그러면서도 성품이 고아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이 버시라는 여인이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대접을 받는 직분도 있고 혹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그렇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겨야 하는 직분이 있습니다. 그 어느것이라도 하나님 앞에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태도에 의해서 하나님은 그 사람을 평가하시고 그에게 은혜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번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열린교회에 장로로, 권사로, 분과장으로, 위원장으로, 부위원장으로, 교사로, 새가족위원으로, 전도자로, 식당 봉사자로 이렇게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연초에 봉사를 하겠다고 사람들이 넘쳤는데 가는곳마다 안 돌아 갑니다. 맨 처음에는 제가 장담을 했지 않습니까? 봉사자가 없는 곳은 문을 닫아 버리겠습니다 했는데 사실 그럴까도 생각을 했는데 그것을 보면서 사실 성도들이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습니까? 그 앞에서 깊이 회개하고 돌이킬 사람이라면 그 봉사 자원하고 나서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지 않습니다. 열린공간, 도서관, 서점, 식당 청소등 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봉사 하겠다고 한 것을 헌신짝처럼 버려서 결국은 사람을 사서 일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어쩔수 없는 사정 속에서 그런 사람도 있고 또 그중에 어떤 사람은 헌신적으로 봉사했기 때문에 교회가 이렇게 아름답게 20명의 교직원들이 없어져도 감당하면서 살아올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 지난 한해 동안에 특별히 무엇인가 일이 잘 안돌아간 것이 있었습니까? 여러분들이 예배 드리고 신앙생활하는데 우리 교역자들이나 직원들이 불편을 끼쳐 드린것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깊이 들어가 보면 그랬기 때문에 우리 들이 못해내고 있는 알지 못하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것들을 보면서 우리들이 항상 생각을 합니다. 정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의 정신으로 그렇게 섬기는 사람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는가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난 한해는 모두 잊어버리고 새해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직분을 맡겨 주시든지 이번에는 정말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또 다른 성도들과 주님께 많이 사랑을 받아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길때 주님의 성품을 더 많이 알아가는 복된 섬김의 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