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참된 목양과 심방
녹취자 : 김세나
오늘 아침에는 저에게 심방에 대해서 말을 해달라고 그랬는데 사실 제가 그 영혼을 돌보는 이 주일학교 사역을 하면서 은혜를 받은 곳은 사실은 그 신학교에 가기 전에 은혜를 받고 봉사하던 두 번째 교회에서였습니다. 이게 두 번째 교회에서였는데, 기도부터 해야겠네요. 기도부터 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이 저희를 사랑해주셔서 이처럼 아침부터 모여 저희들이 교사대학 이틀째날 시간을 갖으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과 함께해 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옵소서. 영혼에 대한 사랑과 기도와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전도자의 열정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따뜻하고 착한 마음이 저희 가운데 충만하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네. 그랬는데 두 번째 교회에서였는데 거기는 교인이 100명정도 모이는 교회였어요. 그 당시에는 그 교회가 작다고 그럴 수가 없는 게 그보다 더 작은 교회도 많았고 그리고 100명 모였지만 그 교회는 그래도 예배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배당이라야 교육관도 없고 지하실이라야 손바닥 만한 기도실 하나 있고 그저 땅 위에 빨간 벽돌 쌓고, 목사님이 직접 지으셨으니까, 빨간 벽돌 쌓고, 슬레이트 지붕 얹어서 한 150명 그 정도 들어갈 만한 예배당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어쨌든 단독적인 교회를 갖은 그런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가난하다 보니까 목사님 사례비 드리면 빠듯하고, 그래서 중고등부를 위해서 전도사님 한분은 불렀는데, 주일학교를 위해서는 교역자를 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제 제 그 교회 간지 1년 쯤 되었을 때 목사님이 저를 불러서 그 교사였었는데, 저를 제가 24살에 집사가 되었거든요. 교회가 조그마니까, 하도 사람이 없으니까 총각 집사였죠. 정말이에요. 그래서 집사가 되었고 집사로서 그 교회학교의 부장을 시켰어요. 그러니까 집사로서 교회학교 부장이 되니까 그 부장은 여러분들처럼 가끔 나타나서 인사나 하고 교사들 대접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냥 저 설교부터 시작해서 전도사 하는 일을 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때부터 설교를 하기 시작했죠. 제가 그 때 신앙의 상태가 별로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그 21살 때 회심은 했지만 깊이 주님을 만났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 때는 나름대로 깊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이것은 별로였어요.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여러 가지 갈등도 많고 그랬죠. 그래서 술, 담배도 아직 정리를 못하고 그랬어요. 저는 회심하고도 술, 담배 하는 사람들 좋게는 생각 안 하지만 이해는 해요. 미디어실 내가 앉았는데 조정해야 되지 않나. 그랬는데 그래서 이제 어떤 때는 토요일날 친구들과 술 먹고도 주일날은 교회를 가야 돼. 주일학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나서 설교를 하려니까 양심에도 걸리고 하여튼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이제 교회를 떠나려고 목사님께 제가 딴 교회로 가야 되겠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인간적으로 통 사정을 하는 거예요. 교회 형편이 이런데 김 집사님이 간다니까 어쩔 수 없지만 12월까지만 있어 달라고. 그러다가 거기에서 두 번째 회심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살아온 과정을 이렇게 보면 결국은 한 사람의 영혼을 돌보는 사역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 자신이 은혜를 받고 주님을 만나는 그 역사하고 같이 가는 거지, 일을 잘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주님을 깊이 만났어요. 24살 때인데 하여튼 매일 별의 별 내 인생에 대해 별의 별 생각을 많이 하면서, 그러면서 꿈을 가지고 있는데 하여튼 여러 가지로 하나님이 나를 당신이 원하시는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그렇게 연단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있었느냐 하면, 내가 참 섬김이라고 하는 것을 무시할 수 없는게 그거예요. 25살 되던 해였어요. 25살 되던 해인데, 제가 부장이 되고 나서 24살에 집사가 되었지만 부장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그러니까 24살 때 저를 집사로 만들어 놓고, 나중에 보니까 1년 하는 것을 목사님이 본 거예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제 설교고 뭐고 당신이 하라 그런 거예요. 제 기억에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설교는 중등부 전도사님과 돌아가면서 했나 그랬어요. 하여튼 25살 되던 해에 하도 오래된 기억이어서 희미한데, 25살 되던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여름성경학교가 돌아온 거예요. 그런데 그 전까지는 그 성경학교를 제가 직접 관여하지 않고 그저 교회학교에 총무교사처럼 해가지고 전도사님이 하시던 일을 거들어 드렸거든요. 그런데 그 해부터는 전도사 지휘 받지 말고 김 집사 당신이 다 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처음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 돌아오는데 그 때에는 이제 제가 그 25살 되던 해에 봄인가 그 쯤 되어서 담배를 끊게 되었어요. 그 이야기를 끝이 없는데 어쨌든 담배를 끊게 되었어요. 그때 제가 한갑 반씩 담배를 피웠거든요. 그래서 담배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참 감사하면서 하여튼 참 너무 좋아했어요. 특히 비오는 날이면 담배를 참 좋아하고, 토요일 저녁이면 방안에 배 깔고 누워서 성경을 펴고 그리고 이제 옆에 공과책 피고 공과 준비하면서 담배를 한 대 딱 피고 그러면서. 여러분들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저는 그 때 말이 되었어요. 그리고 후 하고 불면 공과책 위로 담배 연기가 쫙 하고 갔어요. 그렇게 섬겼어요. 그런데 그 때는 저는 뭐 지금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그 때에 자기 주관 같은 것도 강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뭐가 문제냐 그러면서 나름대로 자기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쨌든 그렇게 하는데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 줄게요.
24살인가 여름으로 기억이 되는데요. 술을 먼저 끊게 된 계기가 되었었어요. 술을 그 아버지 때부터 술이 체질적으로 잘 안 받아요. 그래서 많이 안 먹었는데 포도주 1잔정도 밖에 못 먹어요. 여름에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여름이었어요. 24살 여름에 금식 기도를 했었어요. 3일 딱 금식 기도하고, 제 동생 김남근 장로님과 함께 집에서 살때인데, 야, 이거 실화에요. 야, 형이 금식이 끝났는데 금식이 끝난 기념으로 술을 좀 먹자. 내가 생각해도 참 하여튼 그 상상할 수 없는 아마 만약에 요새 그런 교인이 있으면 연구 대상이라고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그 때 이제 저 그 뭐지, 깨어진 소반에다가 차갑게 해 놓은 맥주 한 잔하고 안주로 또 뭘 가져 왔냐 하면 원주 밀감이라고, 밀감 캔에서 왜 냉장고에 집어넣은 것 그것을 가져 온 거예요. 그러니까 미쳤지. 금식을 했으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런데 막 목이 타고 그러는데 시원한 맥주가 너무 먹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한잔을 따라서 한잔을 먹고 그리고 원주 밀감, 차가운 것 얼음이 사각사각 하려는 것을 두 개 먹었어요. 그것 먹고 이렇게 미친 짓이지. 3일 동안 금식을 했는데 죽을 집어넣어야지, 술을 집어넣었으니 위에 통증이 오는데 밤새도록 대굴대굴 굴렀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하면서, 요만큼도 거짓말 없는 실화에요. 그래서 통회 자복하면서 이 통증을 멎게 하시면 다시는 술을 안 먹겠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그 후로 여태까지 술을 입에 안 댔어요. 그런데 그렇게 이제 술을 끊었는데, 담배는 그렇게 되지 않고 네 번을 결심을 했어요. 일기장에다가 이것으로 끝이다 그리고 담배를 거기에다가 눌렀어요. 그것을 네 번을 했어요. 내가 생각해도 참 재미있어요. 네 번을 그렇게 했는데 결국은 못 끊었어요.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 몰라요. 둘이서 직장 생활을 해서 둘이서 막 뭐라고, 뭐라고 그리고 담배 갑과 라이터를 가져 오더니 우리가 담배를 피면 니 새끼다 그랬어요. 둘이서 담배를 피우면 돈을 내기로 했는데 한 사람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옥상에 올라가서 숨어서 담배를 피웠는데 거기에서 둘이 만났어요. 너희들은 내 새끼다. 그렇게 끊기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어떻게 천신만고 끝에 끊으려고 결심을 했는데, 주님이 하시려고 하는 일은 확실히 달라요. 그런데 마음의 결심이 확고하더라고요. 10일동안 금단 현상으로 무지하게 시달렸어요.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담배를 끊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정리를 한 상태에서 여름이 온 거예요. 그런데 이게 생각이 나요. 여름성경학교가 오는데 막 한 번도 그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막 떨리는 거예요. 이것 어떻게 하나. 이 아이들을 내가 여름성경학교를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그러면서 일주일 금식에 도전을 했어요.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그리고는 일주일을 금식을 하고 퇴근하고서는 교회에 바로 와서 교회에서 세수하고 그리고 교회에서 계속 기도하면서 금식을 했어요. 그리고 밤이면 잠깐 자고 새벽예배에 참여하고 그리고 다시 직장에 가고, 그리고 이틀에 한 번씩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그러면서 지내는데 그렇게 그 때 정말 오랜만에 하나님이 그 마음을 아주 가난하게 하시면서 그러면서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셨어요. 왜냐하면 전도사가 인솔할 때에는 말도 잘 듣는데 이제 집사가 인솔하니까 말도 안 들어요. 그렇게 해가지고 그 때 주일학교 아이들이 80명인가 그렇게 모였어요. 유치부부터 시작을 해서 미취학에서 6학년까지. 성경학교가 돌아오는데 교사할 사람 손드니까 5명밖에 안되는 거예요. 큰일 났어요. 한 학년에 한 명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금식 기도를 하면서 저녁때는 와서 교사들과 강습회를 하고 이렇게 하면서 여름성경학교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교회가 돈이 있겠어요, 뭐가 있겠어요. 그렇게 하고 이제 드디어 여름성경학교가 다가왔는데 그렇게 금식하고 기도하는데도 선생님들은 아주 냉담해요. 그 당시 선생님들은 아주 못된 사람들이었어요. 그 교회가 영적으로 너무 어렵고 지금 생각하면 회심 했을까 의심되었던 교사들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어쨌든 마지막 날이 되었는데 토요일이 되었는데 겨우 미취학 하나, 1,2,3,4,5,6 하나 나까지 일곱 명의 교사가 있는 거예요. 서기인가 뭔가 하는 사람 하나 하고. 그렇게 일주일을 금식을 하고 휴가를 내고 그리고 이제 주일날 월요일날 부터 인데 주일날 그, 그 전 주일이군요. 전 주일에 월급 타서 내가 바칠 수 있는 최대한의 헌금을 주일학교를 위해서 하고 그리고 일주일을 금식을 하고 그렇게 해서 갔는데, 마음이 상했던 게 뭐냐 하면 모든 주일학교가 우리 시작했던 주일과 똑같이 시작을 하는 거예요. 주일날 새벽서부터 그러니 다른 데는 돈도 많지, 그 다음에 유능한 전도사님, 경험도 많은 사람들이지, 그렇게 시작했는데 그렇게 기도를 많이 했는데 아 이게 새벽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데, 새벽서부터 장대같이 비가 쏟아지는 거예요. 이 속에서 막 실망이 되는 거예요. 금식기도를 했는데 이렇게 뭐 청대같이 비를 쏟아지게 하시나 그래가지고 갔는데, 애들이 빗자루와 삽하고 들고 한 30명이나 될까. 스물 댓 명이 모였어요. 여름성경학교 새벽기도 끝나고 동네 골목 청소하기로 해서 빗자루와 이제 부삽하고 들고 그리고, 그리고 새벽에 올라가서 설교를 하는데 한심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밖에는 청대같이 막 비가 내리는 거예요. 애들은 열심이 있으니까 그래도 온 거예요. 그 때에 이제 뭘 설교했느냐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같이 못 박혔던 강도에 대해 설교를 했어요. 생전 처음이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비가 청대처럼 퍼붓는데 설교를 쭉 하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쭉 설교를 하는데 반은 그 설교가 슬퍼서였지만, 반은 바깥에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처량한 마음에 생전 처음으로 설교하다가 눈물을 흘렸어요. 그런데 하여튼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주셨어요. 아이들과 간절히 기도하고 눈을 뜨니까 비가 멎은 거예요. 그리고 이제 드디어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된 거예요. 교회당이 어른이 150명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아이들 조금더 집어넣으면, 150명도 안 되죠. 120명 정도, 한 130명 정도 들어갈까. 아이들을 가득 집어넣으면 150명정도 들어갈까 그런 정도였어요. 이제 주일날은 그렇게 하고 주일날 오후부터 아이들이 몰려오는데 하여튼 주위에 그렇게 큰 교회가 여름성경학교를 하는데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학교로 보내주시는데, 80명 모이던 교회학교에서 320명이 모였어요. 그래서 도저히 거기에 안 들어가가지고 의자를 거기 가장자리에다가 꺼내서 쌓아놓고 밑에다가 신문지를 깔고 그리고 모이고 골목에서 볼 수 있도록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저기 문으로 부흥회를 했어요. 그러니까 뭐 온 교회가 커다란 충격이었죠.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아무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주일학교를 인도하는데 거기에서 아이들이 회심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었어요. 회심의 역사가. 그래서 아이들이 그 속에서 놀랍게 은혜를 받는데 얼마나 기가 막히냐 하면 아이들이 전도하러 나갈 때에는 비가 딱 그치고, 돌아올 때는 청대같이 퍼부어서 그래서 슬레이트 위로 빗물을 부어 주어서 열기를 식혀 주어요. 그 당시에는 뭐 에어컨이나 그런 것이 없고, 비오면 창문도 못 여니까 그렇게 하니까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그래서 성경학교가 끝났더니 80명밖에 안 모이던 주일학교가 150명으로 늘어났어요.
그 때에 이제 많은 회심집회에 대한 생각들을 갖게 되었는데 그 때에 저는 심방하는 것에 대해서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되었어요. 그 전까지는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보여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그 때 아이들과 전도다니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 집 한 집 찾아다닐 때에 잘은 모르지만 어린 마음에 하나님이 이 일을 매우 기뻐하신다라고 하는 마음, 이 마음속에 들었어요. 여름성경학교가 끝나는 날이면 항상 아이들을 그 교회가 아주 빼곡이 들어선 집 한 가운데 있었어요. 주택가에.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어요. 이놈의 교회가 말이지 왜 아이들을 밤 중에 수 백명을 끌어다가 떠드냐고, 파자마 바람으로 와가지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떠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아이들 이제 금요일 마지막 날 토요일 날인가, 목요일 날인가 마지막 날이 되면 아이들이 이제 한 반씩 한 반씩 지하에 데리고 가서 거기에서 이제 회심 기도회를 했어요. 아이들이 뭐, 그 저 뭐야. 비닐 장판을 깐 그곳에서 그렇게 회개하는 거예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정말 아이들에게 신앙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고난주간이 되면 너도 나도 금식을 하는 거예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녁이 되면 모이는 거예요. 성경 읽고 기도하고 너무 열심을 냈죠. 출근할 때에는 교회 와서 기도하고 아이들 데리고 학교 데려다주고 전철 타고 직장가고, 돌아오면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고 전도하고 심방하고 그 때 심방에 대해서 처음 눈을 뜨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제가 그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한 번 더 교회를 옮기고 이제 시간으로 쭉 흘러가서 제가 35살 쯤으로 건너뛰게 되는 거예요. 그런 배경들이 저에게는 영혼을 돌보는 것에 대한 많은 통찰을 얻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우리 전도사님들보고 항상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교사 잘 하던 사람들이 전도사도 잘 하고 목사 잘 한다. 두고 봐라. 왜냐하면 목사 되고 교회에서 직분을 갖게 될수록 그것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내수동교회로 가서 고등부, 어저께 말씀 드린 대로 사역을 하는데 이제 거기에서 이제 그 심방을 이제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알다시피 그 때 저는 박사과정 다니면서 그 다음에 또 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이렇게 했으니까 시간이라는 게 너무 없고요. 어쨌든 다른 생각 할 겨를 없이 계속 바쁘게 살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원래는 선생님들에게 이렇게 한반씩 맡기잖아요. 선생님들이 열심히 심방을 하면 좋은데, 그렇게 하지 않는 반들이 훨씬 더 많아요. 그래서 전도사가 만약에 그 반을 선생님에게 맡겼다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탁 놓으면 도저히 아이들을 돌보고 하는 것들이 불가능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이제 선생님들을 데리고 심방을 하는 교육과 시범을 보여주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만 둘 때까지 매주 그렇게 심방을 했어요. 남는 날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토요일 하고 주일 밖에 없고, 토요일은 학교 강의가 없고, 토요일과 주일 밖에 없는데 월요일부터 수업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토요일은 설교 준비를 해야 하는데, 남는 날은 월요일 밖에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 일 년에 두 번 대심방을 했어요. 아침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방학 때 한 두주에 걸쳐서 80명 내지 100명을 두 주에 걸쳐서 전부다 심방을 했어요. 그렇게 심방을 해서 여름수련회 따라가게 하고 겨울에 심방을 해서 겨울 수련회를 따라가게 하고 그렇게 해서 주일날은 이제 따로 심방을 하는 거예요. 주일날 이제 심방을 하는데 어떻게 하냐 하면 이제 누구를 심방할 것인가 놓고 결정을 해요. 결정을 하면 선생님하고 거기 이제 우리로 말하면 총무교사죠. 셋이 한 조가 되어서 움직이는 거예요. 운전은 내가 하고, 그리고 이제 여기에서 심방이 끝나면 떨구고 다른 교사 태워서 심방을 가고 주일이면 많이 하면 8명 그렇지 않으면 4명 정도 심방을 하는데, 놀라운 게 주일날 열심히 심방 하면 한 10명씩 출석이 늘었어요. 10명씩, 15명씩 그렇게 늘었어요. 그런데 심방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우리들이 심방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러는데 사실 심방 그 자체가 그 사람을 바꿔 놓지는 못해요. 그런데 영혼들 중에는 양 떼들 중에는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 그리고 연약한 상황에 있는 그런 양 떼들이 있어요. 그들은 아무리 기도하면서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그래서 찾아 가야 해요. 그래서 마태복음 9장에도 보면 예수님이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다는 대목이 나와요. 대형교회 하나 예루살렘에 크게 세우고 믿을 마음 있는 사람들은 여기에 모여라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그리고 하나하나 찾아 다니셨어요. 그래서 이 심방을 하게 될 때에 가장 중요한 준비는 진실한 마음이에요. 양 떼를 깊이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 그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러면 방법은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이 심방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목양적인 심방, 사교적인 심방, 그 다음에 정치적인 심방, 명목적인 심방, 이렇게 대충 분류가 되요. 명목적인 심방은 뭐냐 하면 가보니까 없대요. 가보니까 없대요. 전화하니까 안 받대요. 그것은 영혼을 꼭 심방해야 되겠다는 것 보다는 주일이면 모두 교사들이 모여서 출석부를 내놓고 누가 안 왔고 누가 안 왔고, 그래서 주일날 안 온 사람들 물어보고 보고서를 내죠. 그러면 전화해도 안 받음. 갔더니 문이 잠겼음 그리고 나오는 거예요. 형식적인 심방이에요. 두 번째는 여러분들과 같이 주일학교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지만, 장년들에게는 정치적인 심방이 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교회에서 자기를 도와줄 그런 정치적인 입지를 가진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심방하고 그러는 행태죠. 사교적인 것은 뭐냐 하면 영혼을 심방하는데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반적인 차원에서 사교를 위해서 그래서 심방을 하게 되는 경우에요. 오늘날의 많은 심방이 이런 경우이죠. 목양적인 심방은 뭐냐 하면 그 사람의 영혼의 상태를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으며 그 영혼을 위해서 심방하는 것을 가리켜요. 거기에서 목양이라고 하는 것이 적용이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심방을 할 때, 우선 가져야 할 마음이 뭐냐 하면 영혼을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이에요. 영혼에 대한 사랑 없이 심방을 하게 되면 심방을 떠나는 것 자체가 말할 수 없는 부담이고 같이 만났을 때 상대방은 비록 말로 고백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서 만났을 때 영혼에 대한 사랑, 그 사람이 깊이 그것을 간직하고 자기를 심방하러 왔는지 아닌지를 영혼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그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에요. 거기에서 모든 영적인 권위와 힘 같은 것들이 나오는 것이에요. 그런데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어제 말씀 드린 것처럼 그 영혼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염려, 그리고 그 영혼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근심이 교사의 마음에 있게 되면 이 심방이 아주 커다란 유익을 심방하는 교사 자신에게나 심방을 받는 양 떼들에게나 이렇게 줍니다. 그런데 이게 대부분 심방할 때 보면 전화 한 두통 하다가 찾아가거나, 아니면 그것도 안 하다가 심방을 하라고 교역자가 그러니까 하는 수 없이 가는 경우가 있죠. 그게 아니라 우선 심방하러 갈 때에는 먼저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두드린 다음에 심방을 하는 것이 좋아요.
저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오래 사귀고 그러면 그저 변하지 않고 그렇게 따뜻하게 교제하고 그러지만 이렇게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잘 못하거든요. 그런데 상황이 할 수 밖에 없잖아요. 선생님들은 아이들 잘 안 돌보죠. 그 다음에 아이들은 계속 결석하죠. 아이들이 이 일 저 일 생겨서 신앙에서 계속 멀어지죠. 기도를 해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죠. 찾아 나서야 되잖아요. 그런데 항상 엽서를 그 교사의 가방 속에는 엽서, 펜, 이런 것들이 들어있어야 해요. 그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고, 이메일도 없었으니까 엽서를 많이 가지고 다녔어요. 그러면서 엽서를 많이 가지고 다녔어요. 그러면 버스를 기다린다든지 어쨌든 쪼가리 시간이 남잖아요. 그러면 편지를 쓰는 거예요. 그 때 쓴 편지를 누가 좀 가지고 있으면 좋을텐데 작은 엽서 하나에다가 원고지 한 50매 정도를 쓰는 거예요. 그러한 편지가 감동을 줘요. 그래서 타이프로 치고 그러지 않고 깨알 같은 글씨로 앞뒤로 쓰면 50매 정도 되고, 뒷면만 쓰면 30매 분량이에요. 30매이면 A4용지 3장 분량이에요. A4 용지 3장 분량을 관제엽서에 가득 들어가게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펜을 사용할 때는 보통 펜은 안되고, 꼭 플러스 펜 검은 색을 가지고 저 위에서부터 아주 빼곡하게 정성으로 진심을 다해서 편지를 적는 거예요. 집회 같은 것 갔다가 일찍 가서 시간이 남았다, 그러면 쓰는 거예요. 쭉. 그것을 받아보면 깜짝 놀라는 거예요. 까만 편지가 왔는데 들여다보면 글씨에요. 벌써 아이들의 마음이 변해요. 그리고나서 그 다음에 이제 아이들도 보내보고 상태가 어떻더냐. 그리고 선생 시켜서 전화도 해보고 그 다음에 찾아 가는 거죠. 찾아 갈 때는 꼭 만나야 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해요.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꼭 만나야 되겠다는 의지를 갖으라.
세일즈맨들에게서 나오는 일화인데, 이제 영업 교육을 받고 그리고 이제 아파트마다 방문을 해서 벨을 눌러요. 사람이 나와야 물건을 팔 것 아니에요. 딩동 딩동 하면서 속으로 나오지 마라. 나오지 마라. 아무도 없었으면, 아무도 없었으면 한 대요. 딩동 딩동 하면서. 그 마음을 버려야 해요. 그리고 내가 니가 있다면 바다 끝에라도 찾아 가리라 진짜 우리가 사랑하는 애인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 너무 사랑한다. 그러면 못 갈 데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니가 바다 끝에 가도 나는 너를 따라 가리라. 나는 너를 만나니라.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리고 찾아 가는 거죠.
그러면 장년 심방이 얼마나 점잖아요. 집사님, 우리가 심방 가거든요. 언제 갈까요? 7시에 오세요, 목사님. 아, 그 때는 시간이 안 됩니다. 다른 데 가야 하기 때문에. 8시에 갈테니까 기다리셔야 합니다. 네 알았습니다. 방청소 싹 해 놓고, 상 갖다놓고, 성경 찬송 갖다놓고, 감사헌금 봉투까지, 그리고 딸기까지 씻어 놓고 기다리잖아요. 그런데 애들 심방은 그런 것 없거든요. 얘네들은 심방을 간다고 하면 간다고 전화를 하고 가면 도망을 가. 그래서 심방이 오히려 더 안 돼. 그리고 심방을 간다고 할 때, 예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할 정도의 아이면 심방 안 해도 돼. 교회로 오라고 하면 되니까 그래서 10명이면 3명 정도 4명 정도는 전화를 하고 약속을 하고 가지만, 5명, 6명 정도는 상태가 나쁘면 연락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심방을 가게 되는 거예요. 그 때는 뭐가 필요한가 하면, 정보가 필요해요. 이 아이의 동선. 평일의 동선 그 다음에 토요일의 동선, 주일의 동선. 이 동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가까운 친구들이에요. 그러면 그 동선이 거의 정확해요. 그러면 이제, 이제 약속을 못했으니까 가는 거죠. 어떤 때는 아예 이 동선 조차도 파악이 안 될 때가 있어요. 동선이 파악이 되면 이제 학교 앞, 그 다음에 도서관에 가서 면회 신청을 한다든지 학원 앞에서 기다린다든지 그렇게 하면 되는데 동선이 전혀 파악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교제도 끊어지는 경우가 있으면, 집 앞에 가서 기다리는 거죠. 그래서 이제 먼저 약속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을 다 심방을 하고 마지막에 약속을 할 수 없는 친구들은 어차피 약속을 안 했으니까 한 명을 해도 되고 두 명을 해도 되고 네 명을 하면 더 좋고 그렇게 되는 것 아니에요. 기다리는 거예요. 그런데 참 놀라운 게 뭐냐 하면요. 만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잖아요. 반드시 만납니다. 그래서 심방을 심방을 갔는데 심방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 주니까 도망을 갔다가 이제 충분히 기다리다가 갔겠지 하는 그 시간에 돌아오다가 만나요. 그래서 어떤 때는 이제 인내심을 가지고 두 시간씩, 그렇게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만나요. 대게 주일날 밤이잖아요. 주일날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났을 때. 주일날 교회 와야 할 아이가 교회 안 다니고 아주 모범생이라고 한다면 학원에서 놀던지 도서관에서 놀던지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다른 데 친구들과 거짓말치고 돌아다니다가 왔을 텐데. 그 때 영혼이 얼마나 곤고하겠어요. 그러면 오는 모습 자체가 활기가 없고 아주 곤고한 게 눈에 띄어요. 기도하면서 기다려요. 드디어 온다. 어떤 때는 이제는 그 오는 길이 잘 보이는데 마침 제과점이라도 있으면 빵이라도 먹으면서 오나 감시를 하면서 계속 쉬기도 하는데 대부분 그렇게 안되면 샌드위치라도 사서 공원 벤치에 앉아서 아파트 들어가는 동선을 보면서 아이가 지나간다. 그러면서 그 동안에 선생님들과 교제하고 주일학교 이야기도 하고 신앙적인 이야기도 타일러주고 시간을 보내요. 온다 그래요. 그러면 이제 선생님이 제일 먼저 가요. 그러면 이제 야, 너 교회 안 와서 전도사님이 찾으러 왔다. 그러면 깜짝 놀라죠. 그러면 이제 만나요. 집에는 못 들어가죠. 안 믿는 부모, 믿는 부모라도 그렇게 심방하러 오는 것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제 공원 앞에서 만나죠. 뭐냐면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때 잘해야 해요. 첫 마디가 지난 주일에 왜 교회 안 나왔니. 사실은 교회 안 나오는 이유는 합당한 이유가 아니거든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내가 이 사람에 의해서 교회학교의 한 숫자로 취급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해요. 그래서 수에 대한 관심사가 아니라 자기의 영혼, 자기의 처지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심방하러 왔다는 것을 갖게 해줘야 해요. 그래서 뭐냐 하면 숫자 가치 생각하지 말고 왜 주일날 교회 안 나왔니 그렇게 묻지 말고 일단 그 아이가 거기에 서 있으니까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묻지 말고 항상 이 아이 편에 서서 교회를 못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라고 생각을 하고 물어줘야 해요. 그리고 오히려 지난 주일날 교회 안 나온 이야기 묻지 말고, 요즘에 네 마음이, 내가 잘 던졌던 질문이 이거예요. 요즘에 네 마음의 상태가 어떠냐. 그것을 물어 보는 거죠. 그 다음의 질문은 요즘에 공부는 잘 하냐. 제일 싫어하거든요. 제일 싫어해요. 금기시해요. 집안에는 별일이 없냐. 엄마하고는 잘 지내냐. 이런 질문들이에요. 아무개 친구와 싸웠다는데 화해는 했냐. 이런 질문들이에요. 그러다가 이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풀어나가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충분히 자기를 공감해 주는 사람들. 심방을 시작하면서 입이 열리면서 온갖 교훈을 막 퍼붓는 교사들 있거든요. 심방은 말하러 가는 게 아니라 들으러 가는 거예요. 의외로 입을 열면서 자기 속에 있는 진심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는 안 하던 이야기들이에요. 그래서 쭉 쏟아져 나와요. 때로는 가정의 은밀한 이야기들 까지도 쏟아져 나와요. 그러면서 이 아이가 마음을 열고 대화, 자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 자신 속에서 심령이 정화의 작용이 일어나는 거예요. 카타르시스적인 그런 작용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이제 대화를 시작해요.
그런데 이렇게 골목에서 기다리면서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집에 있는데도 문을 안 열어 주는 경우가 있어요. 이 때에 이제 말하자면 그 만나고자 하는 의지가 어느 정도인가가 판단이 되는 거죠. 한번은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애가 뺀질뺀질 해요. 그 때 심방을 갔는데 딩동딩동 누르니까 분명히 안에서 누구세요. 그러면 선생님이 그 아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데 저 교회에서 왔는데요. 그 다음서부터 아무 소리가 안들리는 거예요. 딩동딩동 눌러도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그래서 철문으로 되어 있고 벽돌로 되어 있는 허름한 달동네 집이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그냥 가지요 그리고 옆에 있는 총무교사가 그러니까 자매가 무슨 소리에요. 여기까지 왔는데 만나고 가야죠. 딩동딩동 해서 아이가 안 열어 주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야, 아무개야. 나 너 거기 있는 것 다 안다. 물 열어라. 안 열면 나 들어간다. 여 선생님이 담을 넘더라고요. 대단해요. 결국은 잡아 냈죠. 담 열고 들어가서 방문을 여는데 고개를 숙이고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나와서 집에서 이야기 할 처지는 안 되어서 나와 가지고 추운 겨울이었어요. 그래서 아까 이야기 한 것 똑같은 요령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죠. 야, 어떻게 지내냐. 교회 안 나온 이야기 일체 안 하고,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예요. 뭐 할 이야기는 없죠. 문도 안 열어 줬지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따뜻하게 이야기를 해 주는 거예요. 짧은 시간인데도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야, 너도 그렇게 신앙생활 안하고 교회 안 나오는데 행복하디? 곤고하지. 눈물이 쭉 흐르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심방을 거의 한 거예요. 그 다음에 이제 이야기를 듣다가 이야기를 해 주는 거죠. 하나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그렇게 하지 마라. 그리고 따뜻하게 충고를 쭉 해주는 거예요.
이 때 항상 교사들이 마음속에 말씀을 준비해 가지고 다녀야 해요. 유형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믿다가 낙심한 사람, 그 다음에 믿으려고 하는데 시련과 괴로운 일이 많아서 믿음 생활하기 너무 힘들어 하는 사람, 기도가 안 되는 사람, 아이들의 경우에는 상당히 많은 경우가 교회에서 친구들과 싸우는 거예요. 다투고 편 갈라서 이런 것. 그 다음에 부모님이 윤리적인 문제나 가정의 문제로 자신을 실망시키는 것, 그 다음에 학교 공부가 잘 안 되는 것, 10가지 내지 15가지 정도가 있어요. 그것을 딱 적절한 성경 구절을 딱 외워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그러면서 딱 가서 대화해 보면 나와요. 그때 거기서 성경을 펴자, 뭐하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안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할 수 있을 때는 뭐 펴고, 그래서 그때도 가로등이 있는 겨울이었어요. 꽤 추웠는데, 얼굴이 보여야지 이야기를 하죠. 그 달동네에서. 그래서 담장 그 아래서 가로등이 있는데, 옛날에는 보안등이라고 했잖아요. 가로등이라고 안 하고. 보안등 이렇게 골목에 있는 것, 양철 뚜껑 씌워놓은 등불이 있는데 거기에 앉아서 거기 서서 그래서 이제 이야기를 하는 거죠. 성경도 한 구절 읽어주고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는 거죠. 바람이 부니까 양철 뚜껑이 덜렁덜렁덜렁 해요. 거기서 이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 때 결국은 교사의 마음이에요. 왜냐하면 이 아이를 너무 사랑하고 이 아이의 영혼이 곤고한 게 내가 곤고한 것처럼 내 마음 속에 느껴지게 될 때 거기에서 진심이 나오는 거예요. 진심이. 기도를 해요. 꼭 이 100% 울어요. 자기도 이렇게 신앙으로부터 멀어져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곤고하겠어요. 대부분 거기에서 울어요. 거기에서 말씀을 하나 딱 주고 간절히 기도하는 거죠. 그러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요. 그래서 이제 전도사인 나도 울고 교사는 교사대로 그를 위해 많이 기도했으니까 마음에 아픈 마음에 눈물 흘리고 아이는 어리기는 하지만, 어리긴 뭐가 어려요. 정말 자기 영혼을 사랑해 준다라고 하는 것이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떠나올 때 되었는데 여러 아이들이 엽서를 보내왔는데, 지금도 가지고 있는 엽서가 있는데 거기 보면 우리의 영혼이 곤고할 때 늘 대신 울어주던 전도사님, 그렇게 하면서 그런 편지를 받은 기억이 나요. 그래서 누가 이 세상에서 자기의 영혼이 그렇게 곤고하고 괴로울 때 대신 울어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자기 부모도 안 울어 주는데, 거기에서 깊이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떠나 올 때 다음 주일날 꼭 교회 나와라. 알았지, 약속해. 그렇게 할 필요 없어요. 그냥, 그냥 신앙생활 잘 하거라. 그리고 떠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 시켜서 전화를 하는 거예요. 금요일 날 쯤 전화를 해요. 전도사님 그렇게 심방 가셨는데 교회 나와야지. 어김없이 주일이면 교회 나와요. 그래서 갈 때는 어떻게 했냐 하면 항상 선물을 준비해요. 포장을 해가지고 그것 있지 그 선물이 아니라 뇌물처럼 느껴져요. 그러지 말고 그저 이렇게 가벼운 것. 커다란 귤 하나. 오다가 니 생각나서 하나 샀다. 그 당시에는 귤도 귀했어요. 큰 것 가방에 넣었다가 너 가져라 주거나. 요즘도 그런 것 있을 거예요. 작은 책. 작은 책 시리즈. 그 때 뭐 800원. 500원, 비싸봐야 1500원 하는 존 맥아더의 책이나 이런 포켓북 조그만 것들이 있었어요. 아니면 CCC에서 나오는 그런 책들, 성령 충만 하려면 이라는 책도 있었고, 그런 작은 책들을 가지고 있다가 그 다음에 가서 지금 네 상황에 딱 좋을 거다. 그러면서 주기도 하고, 그리고 후에는 이제 설교하고 나면 그 설교를 선생님이 녹음을 해 주면 집에서 막 복사를 해다 주면 그것 가지고 포장해가지고 가서 지난 주일날 너 없을 때 설교한 것인데 집에 가서 들어 보거라. 그리고 온다든지 이렇게 해서 평소에 써 놓은 편지를 준다든지, 더 감동적인 것은 그런 거죠. 너한테 보내려고 준 편지인데 집에 가서 읽어봐라. 그런데 일곱 장 붙어 있는 거죠. 그래서 뭐냐 하면 걔가 생각날 때마다 써놓은 편지들을 안 붙여 가지고 쭉 연결을 해서 모아다가 주는 거예요. 그것은 보통 정성 가지고는 안 돼죠. 펴 보니까 1월 8일, 1월 13일, 1월 20일, 1월 17일 그러다가 2월 3일에 심방을 간 거야. 하나 둘 셋 네 개가 각각 다른 펜으로 다르게 써서 그때 그때 상황을 모아서 준 거야. 문제는 그런 아이들은 감동을 원해요. 감동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에 대한 깊고 진실한 사랑이 있어서 그 아이에게 나의 마음이 집중했을 때 심방하면 놀라운 일이 생기는 거죠.
저도 이것은 직접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 인데, 어느 교회 목사님이 심방을 가셨는데 교인이 뺀질 거리면서 교회를 안 나와요. 심방을 갔는데 가보니까 목사님이 이제 자기 결석해가지고 심방 올 것 같으니까 월요일날 도망을 간 거예요. 그래서 집에 없어요. 그래서 저녁때 돌아오는데 그 옆집에 사는 사람이 그러는 거예요. 당신 저 교회 다니지? 그래서 그럼요. 교회 다니지. 당신 교회 잘 다녀야 되겠더라. 왜요. 나는 예수 안 믿어서 잘 모르겠지만 니네 교회 목사님이 너를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더라. 그런 목사님 마음 아프게 해드리면 벌 받는다. 그게 뭔 소리에요. 너가 아침에 외출하고 목사님이 열한 시쯤, 열시 반쯤 심방을 오셨는데 아무리 벨을 눌러도 사람이 없으니까 그 마침 그 소리를 듣고 어디서 오셨어요? 교회에서 왔습니다라고 그러더래요. 심방 대원 없이 당신 혼자. 교회가 작으니까 그랬겠죠. 누구 찾으세요? 그러니까 아무아무개 찾아서 왔는데요. 아, 그집 아침에 외출했어요. 그러면 당연히 갈 줄 알았더니 목사님이 다 낡은 가방 들고 심방을 와서 내가 그 집에 아무도 없다고 분명히 이야기 했는데도 그 저 대문에서 기둥에다가 손을 얹고 그렇게 간절히 너희를 위해서 한참 동안 기도하다가 가시더라. 그 노인의 발길을 보니까 너 진짜 그 예수 잘 믿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전해 주더래요. 그래서 심방을 못했는데도 그 이야기를 듣고 이 사람의 마음이 많이 찔려서 교회 생활을 다시 잘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심방은 그러한, 그러한 강한 흡입력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매우 특별한 방법이 그런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영혼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고 심방 가는 그 날이 심방하는 날이 아니라 평소에 그 아이에 대해서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심방 준비야. 여러분, 심방을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게 바쁩니다. 아이들이 시간이 잘 안 맞습니다. 그것 아니에요. 심방을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평소에 영혼들에 대해서 관심을 쏟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짜 심방이 필요할 때, 이 때다 일어나서 심방을 실행할 힘이 없는 거예요. 힘이 없는 거예요.
이번에 돌아가셨죠. 10대들의 쪽지를 발행하셨던 김영모 전도사라고 끝까지 목사 안수를 안 받았는데, 우리 지하실 교회에 있을 때도 와서 한두 번 강의하고 참 영혼을 사랑하던 분이셨는데 아직 젊으신데 결국은 질병으로 갑작스럽게 가셨어요. 참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그 분이 한번은 간증을 하는 거예요. 어느 교회에서 중고등부를 맡아 달라고 하는데, 자기는 하는 사역이 많다고 해서 자기는 교회 사역은 못합니다. 다 필요 없고, 어차피 당신 주일 지키니까 우리 교회에 와서 청년 학생들에게 설교만 해달라고 그러더래요. 목회는 안 해도 좋으니까. 그렇게하고 이제 거기를 맡았는데 말이 그렇지 사실은 그게 가능해요? 중고등부를 맡아서 말씀을 전하는데 한 녀석 하나가 그렇게 못되게 굴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배 시간에 방해하고 그러더라는 거예요. 수련회를 가는데 버스 안에서도 그렇게 못된 짓을 하고 그러더래요. 이분도 성격이 좀 격하신 분이라가지고 앞 자리에 앉았다가 버스 뒷자리에서 말도 되지 않는 소리 하고 나쁜 짓 하는 그 놈을 따귀를 냅다 갈겼대요. 그랬더니 이 녀석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야, 이 전도사가 사람 팬다고 막 전도사가 사람 팬다고 말이지. 고발할거라고 소리소리를 지르더래요. 그러니 아무리 걔가 잘못했어도 혈기로 교역자가 애를 때렸으니 그 사람은 기도가 되겠어요? 그래서 너무 괴로워서 야, 그 때 내가 미안하다. 잘못했다. 그래도 쳐다도 안 보고 계속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 전도사한테 맞았다고 돌아다녔어요. 그래서 이제 김영모 전도사가 매일 편지를 썼대요. 매일. 매일 그러니까 읽거나 말거나 매일 편지를 썼대요. 그렇게 몇 주 편지를 쓰고 그 아이를 회심하게 했던 간증을 제가 들었어요.
심방, 그러니까 내가 평소에 사랑하는 영혼들은, 사랑하고 관심을 받던 영혼들은 심방할 때 자신이 있어요. 내가 간다. 선생님이 보호해 줄게. 내가 지켜줄게. 그런 자신이 있어요. 그러면 뭐냐 하면 평소에 우리가 섬기면서, 사역을 하면서 관심이 분산되어 있어서 영혼이 우리의 주된 관심사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1주, 2주 들락날락 들락날락 하고 영혼이 미끄러지고 막 번민하는데도 이 아이를 거의 돌보지 않은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심방하려고 할 때 마음속에 자신감이 없는 거예요. 영혼을 대하는 것 자체가. 그래서 심방을 못하는 거예요. 그게 제일 어려운 이유가 그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해요. 한주에 한 두통 정도는 늘 편지를 써야 해요. 사역이 끝나고 나면 일년이나 이년 정도 사역이 끝나고 나면 종이 박스에 아이들로부터 받은 편지나, 지금은 이메일 같은 것을 더 많이 하니까 그렇겠지만 얼마나 편해요. 하나만 가지면, 핸드폰 하나만 가지면 이메일도 쓰고 이메일에다가 나도 잘 몰랐는데 그 꼬박꼬박 내 생일 때 카드를 보내 주신 분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제 생일을 챙겨주시냐 그러니까, 신청을 하면 그 회사에서 계속 보내준다 하더라고요. 그 다음부터 감동이 별로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그런 것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받은 편지가, 그게 바로 목회거든요. 그게 바로. 그렇게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한통도 안 버리고 모아 놨어요. 하나도 안 버리고. 여러분들이 보내 준 것도 열린교회 하면서 라면 박스 세 개쯤 돼요. 라면 박스보다는 작은 박스인데 세 개쯤 돼요. 그래서 초창기 80년대부터 다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해요. 그게 교사로서 기본적인 삶이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평소에 그 아이의 영혼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그러면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아 어떻게 하고 있을까. 사람이라는 게 이게 여러분 이렇게 만나는 것과, 광림수도원이라도 가서 만나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광림수도원 식당에서 저녁 기다리면서 만나면 또 다르잖아요. 집에 가서 만나는 마음 다르고, 그래서 여기에서 열지 않았던 마음을 거기에서 열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평소에 관심을 영혼들에게 쭉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필요한 영혼들을 찾아가서 심방하는 거예요. 그 때에 항상 마무리는 감동적인 기도로, 감동적인 기도로 그렇게 해서 간절한 기도 속에서 그래서 마무리하게 되는 거죠.
아이들은 특히 청소년 같은 경우는 마음 둘 곳이 없어요. 그때에 선생님들이 그렇게 따뜻하게 심방을 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선생님을 좋아하고 부모한테 절대 안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털어놔요. 그래야지만 목양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이 아이와 한 마음이 되어서 간절히 기도할 때, 저는 그 시간이 제일 좋았어요. 그래서 때로는 집 앞에서, 골목에서 공원에서 심지어는 제과점에서 어디에서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부어 주셨어요. 그래서 아이의 마음을 깊이 움직이시는 거죠. 아주 놀라운 일이에요. 특히 방학 때 같은 때에 여름에 심방할 때에는 거기 이화여대도 있고 그랬거든요. 아이들이 자기 네 집 근처로 오는 것을 너무 싫어하면 이화여대 뒷문에서 만나자 그러면서 뒤에 산 있잖아요. 갈 때 김밥 몇 개 사가지고 가서 이제 같이 심방한 다음에 펼쳐 놓고 가면 교제도 되고요. 아주 많은 방법이 없어요. 사랑은 모든 창의력의 원천이에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의 마음 속에 너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고, 너를 사랑하는 선생님과 목사님이 혹은 전도사님이 계시다. 그리고 너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속에 심어 주는 거예요. 그렇게 해가지고 아이들이 심방을 받고 깊이 은혜를 받으면 그 다음에 그 아이들이 자기 친구들을 심방해요. 그런데 잘 될 때에는 아이들이 상황이 다 맞아 떨어지면, 선생님이 심방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심방할 때 오히려 더 강한 이끌림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돼요. 그러면서 그렇게 영혼에 대한 사랑은 전염성이 있어서 그래서 교역자가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교사들에게 전달되고 교사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어서 그래서 그 영혼들이 하나님 앞으로 이렇게 돌아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마음을 다해서 영혼을 사랑하고 그렇게 심방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하루에 주일에 전체를 심방할 필요는 없잖아요. 모두 심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대심방 같은 때에는 심방 하지만 처음 맡고나서 쭉 심방하고, 여름성경학교 들어가기 전에 쭉 심방하고 두 번만 심방하면 돼요. 그리고 나머지는 아이들을 정해놓고 심방을 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위급한 사람들을 먼저 심방하고 두 번째는 마음에 심방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심방하고 그래서 차례대로 분류해서 나누어서 그래서 심방을 하는 거죠. 그래서 교회 잘 나오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심방을 할 필요성이 없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교회는 잘 나오지만 일단 목양을 하려면 그 아이를 알아야 해요. 그러니까 순위가 좀 밀리기는 하지만 심방을 하는 거죠. 그래서 대심방이 유용한 이유가 그거예요. 하나씩 심방을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영혼을 돌보는 사역에 정말 많은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이제 그 심방을 그 이제 교역자와 대심방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안 가르쳐 줬어요. 전도사님들이나 목사님들이 하실 일이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차원에서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심방을 하면 정말 학급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혹시 한 7분 정도 남았는데, 혹시 질문이나 저한테 하실 것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질문이 없는 것은 강의가 워낙 탁월했든지, 아니면 질문할 기력이 없든지 둘 중의 하나인데 전자로 해석을 하고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