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보이는 사람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눅 1:7-13)
녹취자: 이시내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어느 복음을 보든지 처음에 시작이 그리스도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는 탄생으로 시작되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그 사건을 기록하기 전에 반드시 그 앞에 나오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요한의 출생에 관한 기사입니다. 오늘 누가는 특별히 역사적인 순서를 따라서 글을 쓰기를 좋아했고 또 특별히 그림과 같은 묘사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역시 다른 복음서 기자와 마찬가지로 세계요한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세례요한이 태어난 이야기나 혹은 장성한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게 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어떻게 해서 세례요한이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나이 많은 사가랴와 그리고 엘리사벳 그 사람들의 결혼생활로부터 시작을 해서 세례요한의 출생의 그 근원을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성경 우리들에게 읽어드린 그런 본문인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이 서곡이 조금은 약간 절망적인 말로 끝났습니다.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그랬습니다. 자연적으로 볼 때에 엘리사벳은 생산할 수 없는 그런 여인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무자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나이가 또 많더라” 그랬으니까 더 이상 애를 날수 있는 가망성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이들 부부를 통해 한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예수님 오시는 앞길에 길을 내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뒤 이어 이 땅에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 이후로 400년 동안 닫힌 하늘의 문을 여시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기를 원하시는 일들이 바로 이같이 절망적인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기대해볼 것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역시 구원의 역사가 오직 하나님의 손안에만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은 당신이 정하신 뜻을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아무리 불가능하고 사람의 눈으로 생각하고 인간의 판단으로 생각하기에 아무리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정해지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고야 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는 사가랴라는 사람이었고 그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이 사가랴가 제사장으로서 성전에서 분향을 할 때에 그때에 사가랴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세례요한의 태어남을 예고해주시는 사건을 오늘 우리에게 밝히 보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골로새서에 나오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문제와 연관 지어서 이제 이 본문을 좀 다루어서 지난주에 연이어서 우리가 신앙생활의 유익을 발견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성소에서 행하게 되었다 그랬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에는 많은 제사장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만 8,000명 정도나 되는 많은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그 제사장들이 한꺼번에 성전에 들어가 버리면 제사장들로만 꽉 찰것입니다. 그러니까 만 8,000명의 사람들이 각기 흩어져서 자기 고향에서 살아가다가 이제 반열의 차례대로 24반열로 나누어서 절기가 있을 때에는 한꺼번에 다 올라와서 함께 말하자면은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일들을 돕고 워낙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24반열로 나누어서 그 순서대로 교대로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일 년이면 24번이면 두 번 많이 돌아오는 사람은 세 주 정도 그렇게 성전에 올라와서 예배를 드리고 수종을 들고 나머지 주간에는 무엇을 하겠습니까? 생업에 종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평범한 삶을 각 처소에서 살아가다가 그러다가 하나님 앞에 올라와서 자기가 때가 되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제사장의 직무도 아주 많은데 그 많은 제사장의 직무들을 올라온 제사장들이 둘러앉아서 제비를 뽑는 것입니다. 제비를 뽑아서 각자 그 섬기는 때에 해야 할 일들을 선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일들 중에서 모든 제사장들이 모두가 한결같이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무엇이었겠습니까? 목사들이 한 30명이 나와서 예배의 순서가 많이 있는데 맨 처음에 묵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반주, 특송을 어느 교회에 의하니까 목사님들이 하도 많으니까 목사님이 나와서 특송도 하고 그 다음에 축도도 있고 기도도 있고 성경봉독도 있고 광고도 있고 다 있는데 그 다음에 안내도 있고 다 있는데 목사님들이 제비를 뽑을 때 무슨 순서가 당첨되기를 바라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제사장들에게 있어서 뽑을 때 가장 영광스러운 직분은 무엇이냐면 분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소에서. 그래서 향을 피워서 하나님 앞에 올라가게 하고 거기서 제사장이 기도하고 밖에서는 백성들이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일은 모든 사람이 너무나 하고 싶어 하는 바이기 때문에 한번 뽑히면 그 사람은 뽑기에서 제외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사람이 운이 좋아서 계속해서 똑같은 것을 뽑으면 다른 사람은 못하니까 영광스러운 직분은 한번 딱 뽑히면 한번만 감당하고 다음에 뽑을 때는 그 사람은 제해놓고 뽑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제사장이 된 다음에 한 번도 이 영광스러운 분향의 직무를 해보지 못하고 제사장이 끝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가랴는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기 위해서 올라왔는데 뽑았는데 당첨이 되었습니다. 무엇이냐면 하나님 앞에 분향하는 사명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겠습니까? 제가 첫 번째 설교하던 때를 기억을 합니다. 설교를 하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떨렸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주일학교 선생도 몇 년 하고 나면 이제 오래 되가지고 그다음에 와가지고 공과공부도 제대로 안 해서 와가지고 뭐라고뭐라고 그러다가 가는 경우도 있지만 처음에 시켜주면 정말 열심히 합니다. 처음부터 안한 사람은 말 할 필요도 없고. 아주 처음엔 느낌이 너무 틀립니다. 이 사람이 딱 뽑았는데 분향하는 직무를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땠겠습니까?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면서 온 몸이 흥분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 모든 제사장들이 부러워하는 이 거룩한 직무를 감당하게 되었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뜻을 알리고 보이시기 위해서 이 사람을 제사장 중에서 분향하는 일에 당첨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당신 앞으로 불러내셔서 당신의 뜻을 보이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거룩한 뜻을 사가랴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를 다른 곳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면전 앞으로 불러내어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 대면하게 하시고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 사가랴를 향해 알리고 싶으셨던 일들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자기의 뜻을 보이시고 사자를 보이셨는가? 우선은 하나님의 직무를 감당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사가랴가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서 제비를 뽑고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을 하고 있을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이 사가랴에게 당신의 뜻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기쁘게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온 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는 이 사가랴에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신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삶의 목표가 하나님을 향해 고정되고 그리고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하나님 앞에 투명하고 분명한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나타내셔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매모호하고 그리고 혼탁한 영성 그 뒤에는 반드시 삶의 동기가 혼탁해진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신령한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 속에서 살아가던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삶의 동기가 깨끗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지 자기를 위해서 사는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도 분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가랴는 무슨 일을 행하는 그 가운데 다른 곳에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이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비번일 때에는 고향에 돌아가서 세상의 많은 사람과 다름이 없는 생활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오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뵈어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그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뵈옵기는커녕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많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사람은 단순히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그 제사상의 직무를 그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였다고 되어있습니다.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였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는 하나님이이 사람을 만나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 선지자들의 예언이 그치고 포로시대에도 다니엘이나 에스겔과 같은 혹은 예레미야와 같은 신령한 사람들의 거룩한 증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은 그러나 예수님 시대직전까지 하나님의 계시가 그치고 하늘이 닫힌 캄캄한 침묵의 시대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분향했으나 하나님은 한사람 사가랴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어느 순간에 사가랴가 그렇게 하나님이 보낸 천사를 만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가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서 행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는 하나님 앞에 산 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면서도 타락한 제사장들의 역사를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면전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행하지 않는 그런 수많은 사람들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 사가랴는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서 행했습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아무리 거룩하다고 할지라도 그 일이 하나님 앞에서 행해지는 일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의 천사를 뵈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나와서 우리는 목사는 설교하는 일로 집사님들은 교회를 섬기는 일로 교사들은 영혼을 가르치는 일로 그리고 구역을 돌아보는 사람들은 구역의 식구들을 살피는 일로 주방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은 설거지 하고 밥하는 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 앞에서 행하고 있는가? 우리는 되물어 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존전 앞에 서있는 의식을 느끼며 하나님을 의식하고 우리의 상급과 소원과 섬김과 모든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동기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섬기는 일을 통해 하나님 앞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꽃꽂이를 하는데 꽃꽂이 하는 두 사람이서 한사람이 꽃꽂이를 해놓으면 확 잡아당겨서 다른 사람이 다른 꽃꽂이를 갖다놓고 이러고 꽃꽂이하는 두 사람이 싸웠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오시더니 꽃꽂이를 다 치워버렸습니다. 섬김에서 일어나는 모든 다툼과 불만과 그리고 생기 없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섬기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사가랴가 이 제사장의 직무를 현실적으로 감당할 때 천사를 보내어 나타나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감당할 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런 섬김과 영적인 삶이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의 일을 섬기면서 사람이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사람의 감시와 감독과 사람으로부터 받는 비난이 내 마음에 섬김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람은 제사장의 직분를 맡고 그 분향하는 일에 딱 당첨되었을 때 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설교를 하라고 보내고 영혼을 돌보라고 특별히 임명해서 보내주었는데 맨 처음에 임명을 받을 때 대충하고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사가랴가 오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그 신령한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며 분향을 하게 된 이것은 뽑을 때에 훌륭한 일이 거룩한 직분이 뽑혔기 때문에 그 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하나님 앞에 살아왔기 때문에 오늘 이 성소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눅 1:5-6) ‘하나님 앞에’라는 말이 다시 한 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의로운 삶을 산 사람들이었고 하나님 앞에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주목하며 어찌하든지 자신들의 모든 삶이 그 율례와 규례에 맞게끔 살아가는 삶이 되도록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일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늘그막에 분향을 하는 이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날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을 여기서 느끼고 충만하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충만하게 느끼고 그렇게 드려지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 옷만 좋은 옷 입고 와가지고 단정하게 머리를 숙이고 있는다고 해서 하나님 면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일주일동안을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예배를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마음으로 살아간 사람들 그 사람들만이 오늘 이 주일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동안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가던 하나님을 예배시간에 한 시간 동안 그 하나님을 느낀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 한 시간의 예배를 건성으로 드리거나 하는 사람들은 지난 주 한 주일을 건성으로 살다가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주일 하루 예배를 그렇게 건성으로 드리니까 일주일동안의 삶이 승리하는 삶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사가랴는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때 하나님 앞에서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번인 동안에도 고향에 돌아가서 살아가는 그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었기 때문에 오늘 이 거룩한 날에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그 영광스러운 섬김의 기회를 하나님 앞에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일주일동안을 자신을 죽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끼면서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왔던 일주일이 있으면 오늘하루 하나님 앞에 나와서 섬길 때 자신이 있습니다. 영혼을 대면하는 용기가 납니다. 그리고 어찌하든지 이 섬김을 통해서 영혼과 하나님의 교회가 유익을 받을 것이라는 그러한 확신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가장 커다란 방해는 무엇입니까 솔직히 말해서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은 기도를 못하는 중요한 방해가 되지만 더 큰 문제는 기도할 때 자꾸 방해가 생깁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딴 생각이 자꾸 납니다. 그러다가 기도하다가 자꾸 딴생각이 나게 돼서 딴 생각을 쫓아가다가 한참 쫓아가다가 다시 기도로 돌아오고 그것은 꼭 무엇과 똑같으냐면 한방에서 하나남과 마주 이야기 대화를 하다가 하나님께는 잠깐 실례한다는 말도 안하고 벌떡 일어나서 밖에 막 돌아다니고 전화 받고 편지 쓰고 할 일 다 하다가 그 다음에 쑥 들어와서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습니까? 이렇게 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하면 들어주시니까 다행이지 대통령만나서 아마 막 이야기하다가 말도 안하고 밖으로 확 나가서 화장실 갔다 오고 편지 쓰고 노래듣고 음악 듣고 딴 생각한참 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습니까?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가랴는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이 성경을 우리들이 살피면서 다시 한 번 무엇을 하던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그것이 우리가 건강한 영적인 삶을 이어가는 첩경이 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세 번째로 이 사가랴가 무엇을 하는 순간에 주님은 사자를 보내셨습니까? 바로 그가 분향을 하며 당연히 기도하는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사가랴에게 당신의 사자를 보내어 당신의 뜻을 알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가랴가 기도할 때에 당신의 커다란 계획을 보이시기를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세례요한의 출생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세례요한의 출생의 신비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사가랴이었습니다. 단순히 사가랴가 요한의 아버지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사벳에게는 왜 아니었겠습니까? 단순히 제사장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가랴를 당신의 면전 앞으로 불러내어서 그리고 모든 백성들을 위해서 분향을 하고 있을 그때에 사가랴가 그 향단 앞에서 무엇을 기도했겠습니까? 성경에는 나오지는 않지만 분향을 하면서 ‘하나님 아들놈 하나 점지해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했겠습니까? 그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대표해서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간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서 분향하고 그 향기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그 순간에 이 사가랴가 무슨 기도를 했을까 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지 않습니까?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틀림없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밖에서도 그 백성들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처럼 하나님 앞에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기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가랴가 아들을 낳게 된 이 놀라운 사건을 예고 받은 것은 개인적인 사건이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백성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향단에서 분향하며 하나님 앞에 서있을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자신들의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영광과 구원을 위해 간구하게 하시고 그 기도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자를 보내셔서 당신의 뜻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기도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교회의 진정한 회복과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날들을 위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을 찾아오셔서 당신의 뜻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때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가장 캄캄하고 어두운 때였습니다. 예언의 말씀은 그치고 하늘을 닫혔습니다. 땅에는 곡식이 나고 있었으나 그러나 하늘은 닫혀졌고 영적인 삶은 황폐하게 되어져가는 때였습니다. 누구도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말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구약에 수많은 예언들이 주어졌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 예언을 옳게 해석함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하나님을 뵈옵게 해주고 옛날의 예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오늘 그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의 대열이 그쳤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에게 당신의 구원의 계획의 위대한 서막을 여는 장면을 첫 번째로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바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가랴를 찾으신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오던 사람이었고 또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섬기던 사람이었고 성소에 들어가면서 그는 틀림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거룩한 하나님을 생각하며 이 성소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절박하게 필요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이 섬김이 잠깐 동안에 그 제비 뽑아서 얻은 그 일을 때우고 나오는 그래서 월급이나 받는 그런 일들이 되기를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이 성소에서 뵈옵기를 원했고 그리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음성을 다시 한 번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면 기대할수록 제사장 사가랴의 마음속에 파고드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성소에 들어가서 그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하는 이 사가랴의 기도는 정말 하나님 앞에 하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간절히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백성들도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분향하고 간절히 기도할 때에 기도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옛날에 왕년에 받은 은혜 금년에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주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가슴에 간직한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을 오늘 이 시간에도 찾아서 당신의 뜻을 보이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제사장의 기도와 백성들의 기도가 하나 되어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가랴만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신령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오늘 이스라엘의 구원의 사자로 오는 세례요한의 출생을 예고 받도록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사가랴가 성소에서 분향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성소 바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성소에 들어간 제사장의 기도를 들어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목회자와 성도의 기도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당신의 교회에 보이시는 한 장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저는 이번에 전방으로 설교하러 가서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쇼킹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기도한다고 해서다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보여주시면서 한 예화를 들었는데 그 교회에서 그 교회가 하도 부흥이 안 되니까 어느 목사님이 40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네 끼 금식해보셨습니까? 네 시간은 가끔 해보셨을 것입니다. 네 끼 금식해보셨습니까? 네 끼만 금식해도 온 몸에 힘이 쫙 빠지는데 40일입니다. 40일 그것은 죽으려고 기를 쓴 것입니다. 벌써. 그러니까 사실 금식기도 하면서 죽을 각오 안하고 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40일 금식기도를 마쳤습니다. 하나님이 안도와주시면 그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40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사는 게 불가능하다고 의학에서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양창선씨가 옛날에 탄광에서 뭐 초인적인 뭐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며칠입니까? 겨우 16일입니다. 그것의 세배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그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목사님 그렇게 해서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그 교회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 생각에는 40일 금식기도가 끝나고 나니까 교회가 놀랍게 부흥해서 2층, 3층, 4층 올리고 오늘날에 수많은 간증을 남기는 교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40일 금식기도가 끝나고 나서 목사님이 시름시름 앓더니 영력이 점점 떨어지더니 설교단을 자꾸 비우기 시작하더니 교인들이 시들시들하더니 교회를 떠나가고 목사님이 죽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여쭤봐야 되겠지만 그러나 분명한 사실하나는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는 언제나 지금 이 장면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지도자가 있고 하나님 앞에서 분향하듯이 기도하는 지도자가 있고 그 지도자의 기도를 이해하며 함께 그 성소바깥에서 기도하는 백성들의 위대한 기도가 만날 때 그때 한 번의 역사가 변화되는 위대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미스바의 성회를 주도했던 사무엘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내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 그는 기도하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 모든 순간에 그런 경험을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사람들을 미스바에 모을 때까지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그 지도자가 함께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만나게 되었을 때 유명한 미스바의 대각성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생생한 증거를 우리는 에스라서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에스라가 포로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을 보면서 그 타락을 슬퍼하며 엎드려 울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위기 때 기도하는 그 기도의 깊이를 보면 평소에 어떻게 기도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깊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이 성전 앞에 엎드려서 통곡하며 기도하고 있는 에스라를 흘끗흘끗 쳐다보고 있는 동안에는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고 그 에스라 옆에서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남녀노소 어린아이들이 구름떼처럼 모여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에스라의 대부흥인 것입니다. 오늘 기도에 예민한 감각을 가졌던 이 누가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세례요한이 이 땅에 올 것이라고 하는 출생을 예고해주시는 가운데 구원사의 놀라운 서막이 다시금 열리게 되는데 이 구원사의 놀라운 서막이 바로 제사장과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제사장들을 위해 기도하는 백성들의 기도하는 그 기도가 분향하는 시간에 하나로 어우러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이 이 성소에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도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여러분들을 만나서 여러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셨을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들에 주셨던 가장 커다란 사명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그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리하여 삶의 동기가 날마다 정화되어서 모든 섬김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섬기게 할 수 있었던 그 모든 원동력을 부여받았던 사람 이 사람이 기도하는 그 순간에 백성들의 기도가 어우러진 그 순간에 하나님 앞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열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포함해서 여러분의 여태까지의 이십년 삼십년의 전 신앙생활을 다 통틀어서 교회에서 수없이 예배드리고 수없이 기도회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목자와 모든 성도들이 한마음이 되어서 기도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 우리의 기도를 받고 계시다는 그런 기도의 순간을 삼십년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몇 번이나 경험하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큰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어찌하든지 간에 기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목자만 기도하게 버려두든지 아니면 성도들이 기도하게 하고 목자가 못하게 하든지 아니면 양쪽 다 못하게 하든지 어떻게 하던지 간에 성소에서 드려지는 기도와 뜰에서 드려지는 이 기도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향로와 같이 하나님께 올라가는 그 일을 필사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새롭게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며 기도하는 지도자와 그리고 성막 뜰에서 그가 그 성소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하여튼 한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교회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이러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하나님 앞에 주께서 주의 천사를 보내신 것은 오랫동안 기도해오던 사람에게 보내셨던 것입니다 13절에 보니까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야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사가랴의 기도가 하늘에 들렸습니다. 그의 간구하고 기도한 바가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한순간의 기도나 어쩌다 한번 의식적으로 해본 한순간의 기도가 천사로부터 너의 간구가 하늘에 들린지라 라고 하는 반응을 얻어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모세를 보내기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나에게 들린지라 그랬습니다. 얼마나 부르짖었습니까? 그들은 430년 동안 부르짖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고넬료의 놀라온 기사가 나오지 않습니까? 고넬료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의 기도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며 구제를 베풀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기억한바 되었습니다. 사가랴의 일평생의 기도제목은 아들을 낳는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백성들의 종교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제사장의 집안이 축복을 못 받고 그 태가 하나님 앞에 열림을 얻지 못해서 아이를 낳지 못하고 무자하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그는 정말로 거룩하고 신령한 사명을 감당하는 제사장으로서 가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나이 많아 늙고 수태될 수 없는 상황이 될 때까지 그는 계속해서 자녀를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또 나아가서 사가랴는 경건했던 믿음의 선조들처럼 이스라엘의 구원과 세례요한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몰랐지만 그러나 분명히 어떤 종류이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은 너의 기도와 간구가 들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한번 기도한 사람이 아니라 계속 기도해온 사람이었습니다. 계속 기도해온 그 사람이 간구하고 기도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당신의 뜻을 그에게 보여주셨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구원의 역사의 한 서막의 뚜껑을 여는 이 장면에 쓰임 받았던 사가랴를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섬겨온 사람이었고 또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도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사가랴는 자신의 입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당신을 섬기는 사람들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사가랴와 같이 좋은 신앙생활을 하셔서 하나님께 응답받고 교제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