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19~31)
녹취자: 현경수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좋은 저녁에 여러분에게 좀 인생의 문제에 근원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는 성경의 본문을 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생이 단지 눈에 보이는 인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미래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면서 그 유명한 부자와 나사로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 놓으셨습니다. 스토리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부잣집이 있고, 그 부잣집 대문 앞에서 밥풀이나 주워 먹고 사는 거지가 있었는데 그 부자는 죽었는데 지옥으로 가고, 거지는 비참하게 살았지마는 천국으로 갔다 그 이야기입니다. 흔히, 우리들은 이 이야기를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이렇게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우리 앞에 있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비유가 아님을 먼저 밝히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인생에 사는 이치와 그리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말씀하실 때에 예수님은 이해하지 못하는 인생들이 불쌍하기 때문에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실제로 있지는 않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을 예화로 들어서 혹은 비유를 해서 이렇게 우리 에게 진리를 이해시키시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는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이 속에 나오는 사람조차도 분명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부자와 한 거지가 아니라 부자와 그리고 나사로라는 분명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로 드시면서 우리의 인생이 이 세상만을 위해 태어난 인생이 아님을 보여주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한 부자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부자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고민은 매일같이 오늘은 누구를 불러다 잔치를 벌이고 내일은 무슨 핑계로 파티를 열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사람의 고민거리였습니다. 아무리 써도 써도 모자라지 않는 돈이 장롱에 그득했고, 곳간에는 퍼다가 아무리 떡을 하고 빵을 해도 모자람이 없는 곡식들이 그득하였습니다. 파티 때마다 새 피륙을 끊어서 옷을 지어 입어도 모자라지 않는 옷감들이 장롱에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파티를 열 때, 그 때에 수많은 고관대작들이 이 집을 단골로 드나들고, 이 사람은 그 고을에 사교계에 명사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색옷과 고운 베옷만을 입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자색옷은 돈 많은 사람들이 입는 그런 색깔의 옷이었습니다. 또 이때는 색깔 있는 옷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리고 곱게 짠 베옷을 입으며 호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일 년에 한번정도 잔치를 했다면,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오늘 성경은 날마다 잔치를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집에는 잔치만 전담하는 청지기들과 일꾼들이 있어서 매일매일 잔치를 벌이고, 매주 마다 커다란 파티를 열면서 끊임없이 초청장을 찍어서 수많은 사람을 그 파티로 불러들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고민은 좀 더 화려한 파티, 좀 더 멋있는 잔치, 좀 더 유명인들을 불러 모으는 아름다운 잔치였을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성능 좋은 가라오케가 판치고, 그리고 TV에서도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는 유명한 연예인들을 불러다가 노래를 부르게 하고, 춤을 추게 하고, 악기를 연주하게 해서 그 잔치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어떤 영리를 목적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는 수많은 사람을 불러다가 먹이고 마시우고 춤추게 하고 놀게 하고 즐겁게 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집안에 아름다운 풍악소리가 높이 울려 퍼지고, 그리고, 고급술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일어나고, 아름다운 무의들이 춤추는 그 아름다운 정경이 그 집에 홀에 가득할 때, 더 비참하게 덜덜 떨면서 추운 밤을 지내며 그 집에서 내어버린 쓰레기통에 머리를 박고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그 속에서 생선 내장이나 혹은 부스러진 빵부스러기나 아니면 먹다버린 반찬 같은 것을 꺼내서 더러운 손으로 그것을 먹고, 그리고 그 대문간에서 지내고 있는, 초청받지 않은 식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거지였습니다.
화려한 삶을 살아가고, 써도 써도 남음이 없는 모자람이 없는 그러한 부를 누리는 사람, 화려한 대문 앞에 비참하고 저주받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 거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대문에 요즘말로 말하면 수입제 대리석이 깔린 그 번쩍번쩍하고 의리의리 한 대문 옆에 가끔 경비원들이 호루라기를 불고, 소리를 지르면 골목으로 도망갔다가는 그래도 다시 그 집 대문 앞에 와서 거적때기를 쓰고, 깡통을 옆에 찬 체, 춥고 긴 밤을 지내며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한 거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문을 드나들었으나,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에서의 삶은 두 사람의 삶이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나고, 불공평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마는, 그러나 어느 순간에 두 사람 모두 죽었습니다.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은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예정된 그 시간에 두 사람을 찾아왔습니다. 춤추고 노래하며, 먹고 마시고, 고급 양주에 취해서 비단이불을 덮고 드러누우며 그는 내일의 파티를 생각했으나 그 날 운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지도 죽었습니다. 왜 죽었을까요? 여러분들은 말할 것입니다.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아마 간에 질환이 생겨서 죽었나보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신나게 놀다가 가라오케에다 대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가 너무나 신나서 열을 받아서 그만 뇌출혈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은 창경원에서 복권이 당첨된 다음에, 그거를 들여다보고 억, 억, 억 그러다가 억 하고 죽었습니다. 일억 원이 당첨됐는데, 너무 놀라서 억 억 하다가 억 하고 죽었습니다. 이 사람도 너무나 신나는 놀이를 하다가 그만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죽음의 이유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다르게 말합니다. 왜 죽었습니까?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분 나쁜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들이 기분 나빠하든, 좋아하든 그런 거 하나님께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때가 되면 각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여기서 설교하고 있는 이 사람도 내일일지, 혹은 내년일지, 10년 후일지, 20년 후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때에 누구하고도 의논하지 않고, 하나님은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옛날 지혜로운 선인들은 삶이 무엇인가를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죽음이 깃든 초상집에 찾으라고 말했습니다. 제 취미중 하나가 무엇인지 소개하면 여러분들은 깜짝 놀랄 겁니다. 제 취미는 상갓집에 가서 죽은 사람을 한번 안아보는 것입니다. 여러 번 안아봤습니다. 그 중에는 할머니도 있었고, 할아버지도 있었고, 젊은 부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죽어서 싸늘하게 식은 시체를 품에 안을 때, 그때 생이 무엇인지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이 부자에게는 이 죽음이 얼마나 억울한 것이었겠습니까? 창고에는 아직까지도 먹고 마실 수 있는 술과 고기와 쌀이 그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응접실에는 1년 치 파티 스케줄이 짜져 있었습니다. 출장 뷔페와 계약도 끝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수많은 연예인들을 동원할 계획도 다 짜져있었을 것입니다. 초청장은 계속 쌓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시간표였고 하나님의 시간표는 끝났습니다. 마치, 흥겹게 아이들이 땅따먹기를 하며 골목길에서 놀다가 뉘엿뉘엿 해가 지고 나며는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엄마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나와서 수동아, 길수야, 아니면 개동아 하나씩 둘씩 부르고, 다 돌아가고 땅 1cm 더 따먹기 위해서 악바리질을 치면서 친구하고 싸우고, 멱살잡이를 하던 그 놀이터에는 몇 개의 줄친 자국만 남아있고,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돌멩이만 몇 개 덩그러니 남아있고,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죽음은 우리를 부르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는 할아버지, 엄마, 아들, 손자, 형, 동생 순서대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갈 때는 이런 순서와는 상관없이 아들이 아비보다 먼저 가는가하면, 딸이 어미보다 먼저 가기도 하고 손자가 할머니보다 먼저 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자기의 인생의 종말을 계산할 수 있겠으며 누가 자신의 이 인생의 수한이 어디까지인지를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 자신의 인생을 그래가지고 살아갑니다마는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이 끝났다 선언하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은 거절 없으시지마는 하나님이 우리를 죽음으로 부르시고, 우리의 이 이상이 세상에 이 일 있을 때에 우리는 인생의 무대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이 이르렀을 때에 이 부자에게는 얼마나 원통하고, 처참한 순간이었겠습니까? 보다 더 많은 즐거움과 신나는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수많은 재산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말만 하면 자기의 말에 복종해서 자기를 즐겁게 해 줄 수많은 종들이 자기 일손에 있었습니다. 말만 하나 하고, 초대장만 하나만 보내면 모두다 여기 와서 자기와 함께 놀아줄 수많은 이웃들과 친구들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너무나 원통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 생의 보람도 없이 이 화려한 부자의 집 대문 앞에서 쓰레기통이나 뒤지며, 때로는 쉰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서 데굴데굴 구르며 신음하고, 그러고 모진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던 이 거지 나사로에게는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해방이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사람은 각기 달리 살았지만, 죽음은 두 사람에게 공평하게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이 두 사람에게 동일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역시 두 사람은 살아서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도 놀라운 차이가 났습니다. 부자는 장사되었다고 기록해있고, 거지는 죽었으나 장사되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부자는 산 것만큼 죽는 그 순간도 대단히 화려했습니다. 부자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 그 부자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못다 누린 부와 영화를 마지막 상여가는 그 길에 최후로 누리기라도 하듯이 수많은 문상객들과 거창한 화환과 엄청난 꽃들이 상여를 뒤덮었습니다. 복잡한 장례예식이 행해지고, 꽃가마가 나가자 뒤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리고 상복을 입고, 그 죽은 부자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의 묘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양지바른 곳에 묘실이 있었을 것이며, 거기에는 훌륭한 대리석과 훌륭한 돌들로서 깎아 만든 훌륭한 무덤이 축조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미리 자기가 묻힐 무덤들을 준비해놓았을지도 모릅니다. 관 하나에 수천만 원 하는 최고급 관에 묻혀서, 그리고 그 상여를 타고 동네를 돌며 수많은 명사들의 눈물을 뿌리는 환송을 받으며 그는 정들었던 자기의 집을 작별하고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부자의 죽은 날을 기억해주고 있었지마는 불행히도, 이 거지 나사로의 죽음은 아무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오래전에 가족과 헤어졌거나, 혹은 가족들과 사별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아내도 없고, 자녀도 없고 아무도 돌아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 시체는 청소부들이 와서 치워다가 시립 화장터에다 화장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무덤도 없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날 밤. 모두 장례식이 끝난 뒤에 그 죽은 장례식 뒤에서는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 부자는 지옥으로 이름은 음부라고 하는 곳에서 치열하게 타오르는 불길 가운데 고통을 받고 있었고, 이 나사로 이 사람은 천사들에게 그 영혼이 받들려서 천국으로 이름은 아브라함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왜냐하면 이 나사로는 비록 이 세상에서 저주받은 것과 다름없는 인생을 산 사람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로라는 이름 그 자체가 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사로, 그 이름은 하나님의 도움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부자의 집에서 떨어지는 음식 찌꺼기로 배를 불리며 살아가야 하는 저주받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안 믿는 사람은 그렇게 떵떵거리고 잘 먹고 호위호식하고 잘 사는데, 왜 하나님을 믿는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부자의 대문 앞에서 생선의 가시 살을 추리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비참한 신세로 살았는가? 나는 그 이유를 말할 수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그것이 궁금하신 분들이 있거들랑 저에게 묻지 말고, 목사님에게 묻지 말고, 세상 사람들에게 묻지 말고 하나님에게 직접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지로 살다가 가고, 하나님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는지 기독교는 그런 거에 대해서 답해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밤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분명하게 설교자로서 여러분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가 나사로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거지로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저주받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고, 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놀라운 큰 물질을 누리며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았지마는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인생에 있어서 이 모든 모순을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그 모든 모순을 해결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처음에 법을 잘 지키고 정직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아낌없이 자기의 것을 나눠주고 그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잘 살고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렇게 대답하기에는 왠지 석연치 않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믿음을 따라 살기를 원하지만, 왠지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축복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모든 악이란 악은 다 행하면서도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굽실거리는 속에서 높이 여김을 받고 물질의 부도 누리고, 그래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 속을 부글부글 끓어오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임마누엘 칸트라는 사람은 말했습니다. 천국이 있다 없다 말하기 전에 그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왜? 이 세상은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깔려있고 우리 인생은 분명한 모순을 가지고 이 세상이 우리의 눈앞에 전개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죽음 이후의 이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문제를 해결하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하나님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인생의 모든 모순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정리하시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부자는 비록 이 세상에서 모든 것들을 누렸지만 그는 지금 죽음 이후에 비참한 징후의 형벌을 받으며 고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즉시 생각하실 것입니다. 아마 이 사람은 부자였지만, 대단히 나쁜 사람이었을 것이다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성경은 이 사람이 부자였다고 말하지 악한 사람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사람은 나쁜 짓을 하고, 투기를 하고 비자금을 조성해서 모은 재산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합법적으로 물려받은 유산. 정직하게 상속세도 내고 모든 세금도 내고, 자기네 집에서 일하는 품꾼들에게 풍족한 품삯을 주고도 돈이 하도 많아서 그 돈을 주체를 못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파티를 열고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위해 봉사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사람을 악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을 그럼 오늘 이렇게 끔찍하게 치열한 불꽃이 타오르는 이 맹렬한 불길이 타오르는 고통스런 지옥 가운데 이 사람을 잊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그가 이 세상에서 악을 행하고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너무나 부요했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세계를 위한 준비를 할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돈이 많아서 죽음 이후를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떤 사람은 이 세상 살기가 너무 고달파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준비할 겨를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이 너무나 잘 나가기 때문에 예수를 믿을 시간이 없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인생이 너무나 막차를 탔기 때문에 고달파서 예수를 믿을 기회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지, 결과는 똑같은 것입니다.
(예화) 어느 집사님이 길거리 나갔다가 전도지를 하나 주워 가지고 왔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이 전도지 좀 보십시오. 이상하게 생겼습니다.” 전도지의 제목은 대부분 ‘행복하시려면’,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쉼을 주리라’ 그렇게 돼 있었는데 이 시뻘건 전도지의 제목은 꼭 공산당 선전용 전단지 같이 생겼는데 제목이 이런 제목이었습니다. ‘지옥 가는 방법.’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황당해서 어떻게 하면 지옥을 가나 그러고 탁 펴보니까 백지였습니다. 인쇄가 잘 못되나 그러고 뒤를 넘겨보니까 뒤에 쬐그만 글씨로 쓰였습니다. ‘여러분. 정말 지옥 가시고 싶으십니까? 그냥 그렇게 계속 사십시오. 지옥으로 갑니다.’
여러분, 지옥 가기 위해서는 아무 노력할 필요 없습니다. 특별히 죄를 지으려고 애를 쓰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예수 안 믿고 사시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오늘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공부도 했다는 사람이, 신학교 선생이라는 사람이 개명한 이 시대에 무슨 놈의 지옥을 이야기하는가? 여러분, 그러나 나는 말합니다. 누군가가 만약에 나에게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지옥이 없다고 말해주어서 나를 설득할 수 있다면 나는 40년 전 지켜온 기독교 신앙을 그 자리에서 버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이 없다면 천국의 약속도 믿을 수 없고, 천국의 약속이 거짓말이라면 나머지 모두 거짓말하신 그 입으로 가르쳐 준 예수의 교훈을 나는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즉시 기독교신앙을 버리고 이 세상에서 여러분과 똑같이 살아가겠습니다. 주어 시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책임져야 할 절대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개명한 이 시대에 누가 지옥의 말을 믿겠는가? 당신이 누구 길래 지옥을 말하겠는가? 당신이 천국을 보았는가? 당신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보지 못하고 제가 어떻게 여러분들에게 와서 천국과 지옥을 논하겠습니까? 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와서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해서 실감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천국과 지옥은 여러분들 앞에 반드시 놓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믿든지 말든지 그거는 오늘 내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내셨고,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 나를 대신해서 여러분들이 흔히 들을 수 없는 인생의 신시에 대해서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밤이 여러분들이 이 인생의 신시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예화) 6. 25 때의 일입니다. 아군이 밀리고 밀려서 낙동강까지 밀렸습니다. 이제는 나라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부대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있었습니다. 내일 새벽이면 돌아올 수 없는 전투에 약 1500명 되는 군인이 투입돼야 하는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설교할까? 수많은 장병들의 얼굴을 볼 때, 적어도 이중에서 90퍼센트는 모두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지옥에 대해서 설교하며 회개하고 오늘밤에라도 예수를 믿으라고 권했습니다. 지옥을 설명하며 치열하게 타오르는 불길과 그 속에서 고통당하는 울부짖음을 설명할 때에 무례하게도 어느 젊은 대위 한 사람이 저 뒤에서 설교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서 설교를 중단시키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지옥에는 불이 탄다구요? 그러면 우리가 가며는 전부다 바비큐가 되겠네요?” 수많은 병사들이 웃었습니다. 웃음이 그칠 때까지 목사님은 눈을 감고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웃음이 그치자,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대위님,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잠시 후, 당신이 거기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지금 그 사람이 오늘 제 설교를 듣고 있을 것입니다. 치열하게 타오르는 지옥의 불길 가운데서, 그 한 가운데서 마지막 하나님께서 (안들림) 후회하며, 오늘 부산에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 젊은 설교자의 입에서 외쳐지는 미래에 대한 증언, (안들림) 대한 증언을 그는 귀를 기울이고, 자기가 회개할 기회를 한번 놓친 것이 자기의 인생을 얼마나 바꿔 놓았는가를 후회하며 통곡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죽음의 순간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보지 못한 죽음 너머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먼저 죽었던 사람은 돌아가서 우리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떤 곳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고, 가지 않은 사람은 가지 못했기 때문에 책임 있게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증언해줄 수 없고, 증언해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인생에 대해서 말하고, 잘 사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행복한 삶에 대해서 말하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고상한 삶을 살 수 있을 거지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가 죽음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는 인생에 대해서 책임 있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은 여러분과 같은 인생이 아니라, 온 천지를 창조하시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친히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아들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천국을 만드신 그 분이,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이 기다리는 낙원이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옥을 친히 만드시고, 이 세상의 모든 모순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모든 모순을 하나님의 공의로 해결하기 위하여서 지옥을 만드신 그 분이 우리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으므로 너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죽음 이후의 세계를 예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지옥 속에서 단말마의 고통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치어 오르는 불꽃과 그리고 죽기를 원해도 죽을 수 없는 극한 고통이 영원히 계속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그는 고민하며, 고통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그 부자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의 기회를 잘못 선용하였던 것입니다.
(예화) 여러분, 어느 대학의 철학교수가 창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학생이 가방을 메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겁니다. 세웠습니다. “학생, 왜 뛰나?” “교수님, 비켜주세요. 수업시간이 늦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늦으면, 어떻게 되냐?” “수업시간에 늦으면, 결석체크가 되죠” “그럼, 어떻게 되냐?” “점수가 안 나오죠.” “점수가 안 나오면 어떻게 되냐?” “그럼 졸업을 못하죠.” “그러면 졸업을 하면, 어떻게 되냐?” “취직을 하죠.” “취직은 왜 하냐?” “장가를 가야죠.” “장가는 왜 가냐?” “가야지 애를 낳죠.” “그 다음엔?” “정년 퇴직 하죠.” “그 다음은 뭐하는데?” “죽죠.” 그럼, 중간에 다 빼고, “너 왜 뛰었니?” “죽을라고.” 그러더니, 분명히 시간은 늦었는데 가방을 옆에 끼고 뛰지를 않고,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하면서 걸어갔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속히 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저보다 훨씬 연로하신 분들이 많습니다마는 그러나 저는 36, 37년 전인 제 기억으로 닿을 수 있는 그 최초의 기억들은 시골에서 선교사가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니며 성경말씀을 배우고 그리고, 나무 블록으로 장난을 놀고 판자로 만든 담장아래서 쑥을 뜯으며 그러면서 소꿉장난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36, 37년의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만 감으면 그날이 아스란 하게 손에 잡힐 것 같은 지난주의 일처럼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고백이 아닙디다. 그래서 늘 생각합니다. 이렇게 잠깐 흘러간 세월이 한 번 더 지나고 나면 이중에서 아마 반 정도는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얼굴이 팽팽하던 형제자매들은 이제 노인네가 되어서 이 자리에서 흰머리를 쓸어 넘기며 설교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인 것입니다. 그것도 이 세상에서 자기의 수를 누리는 사람들이 선택된 행복한 사람들이 맞이하는 종말입니다.
오늘 이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서 천국에 이르고 있을 때에 이 부자는 이 극단적인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이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더 끔찍한 고난과 고통을 겪으며 그 어두운 지옥의 세계에서 고통하며 울부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지옥에서 그의 간절한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물 한잔 마시는 건 엄두도 못 내고 한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바짝 타오르는 자기의 입술에 한번 바르는 것이 지옥에서의 평생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원은 끝내 성취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음부의 불 가운데서 고통을 받게 된 것은 이 세상에서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이 지옥의 불길 가운데 있었던 것은 자신의 육신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준비했습니다. 매년 건강진단을 받았습니다. 운동을 했습니다. 헬스클럽을 다녔습니다.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고, 철마다 새 옷을 사 입고, 아름다운 옷을 지어입고 건강에 좋다는 보약은 다 먹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는 관심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그 영원에 대한 무관심이 그를 오늘 치열하게 타오르는 이 불길가운데 고통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맘과 뜻과 성품을 다해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든지 말든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지옥의 불길을 예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이 세상에서 자기의 영혼을 위한 아무준비도 하지 않고 살아갔던 사람들이 마지막 그 영혼을 추수하시는 그 때에 지옥의 불길 가운데 고통하며 타오르는 치열한 불길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을 갖고, 신앙의 눈을 갖고 믿음의 귀를 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기도할때마다 우리는 거대한 용광로에 타오르는 그 뜨거운 불길소리와 그 불에 타오르며 울부짖고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울부짖음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나는 확신하건대 사랑하는 이 수영로교회가 이 우짖음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여러분들을 이 곳에 초청한 것입니다. 교회가 이곳에 와서 여러분들이 이 예배에 한번 참석해주는 것을 통해 무슨 덕을 보겠습니까? 여러분 교회에 여러분들이 이 교회 나와서 헌금을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상업적인 문제로 이런 잔치를 여러분들에게 베풀었습니까? 만약에 그런 일들이 있었다면 그것은 올바르지 못한 것이겠습니다. 교회의 모든 소망은 여러분들이 (안 들림) 아닌 것입니다. 잠시 후에 (안 들림) 상관없이 다가오고야 말 영혼이 추수하기를 할 그때를 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시는 음성을 듣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운명의 순간 앞에서 우리는 단 한 번의 기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만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죽음 이후에도 제 2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말합니다마는 모두 거짓말입니다. 기회는 오직 살아 있을 때 한번인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그래서 말했습니다. 인생이 무엇일까? 그것은 인생이라는 바로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거리손님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잠깐 대합실에서 기다리면서 어떤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린다고 말입니다. 그들이 함께 어깨를 맞대고 담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대합실에 쭈그리고 드러누워서 하고 한일들은 잠시잠깐 같은 장소를 공유하지만, 잠시 후 기차가 오면 만날 수 없는 곳으로 헤어지고, 중간 부류의 사람들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내가 분명히 죽어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은 확실하게 이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고통하고 있는 연락하던 이 부자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만나게 될 그 때에도, 그 사람은 여전히 누가복음 16장에서 울부짖었던 그 탄식과 고통으로 물 한 방울만 찍어서 내 입술에 발라다오. 여러분들이 당신 그렇게 해달라고 맞닿을 수 있는 천국을 향해 울부짖은 것이 몇 년이나 됐소. 하면 그는 말할 것입니다. 2천여의 세월을 물 한 방울 구하며 울부짖었지만, 아직도 그 한 방울의 물이 내 입술을 적시지 못했다오. 말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정말 잠깐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고 우리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예화) 저희 친척 가운데 한분이 계셨습니다. 법조계에 있으면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신 분이었습니다. 그 인생은 그야말로 죄악 덩어리였습니다. 3번이나 장가를 가고, 함께 살았던 여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에 죽어가던 그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여보, 여보, 나 좀 도와주오. 저 사람들이 나를 잡아가려고 와. 막 때려. 나 좀 살려줘.” 단말마적으로 울부짖는데 놀라는 것은 막 때린다고 울부짖고 난 다음에 옷을 벗겨보니까 온몸이 몽둥이로 맞은 것 같이 피멍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뜨고 그리고는 비참하게 울부짖으며 생을 마쳤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 앞에 살았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이 올 때에 말했습니다. 꼬마가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아빠, 죽는 게 뭐야?” “죽는 게 뭐야?”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네가 TV보다가 거실에서 소파에서 누워서 잠들었을 때 있지?” “응” “근데, 그 다음날 아침에 눈떠보니까 어딨디?” “내 침대에 있데” “그게 바로 죽음이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 돼야 된다.” 어떻습니까? 죽음 이후의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수많은 범죄를 낳게 합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 세상의 권력과 돈 아니면 나를 보호할 아무것도 없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으로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 이중에 설교하고 있는 저 같은 사람들. 여러분을 인도한 수영로교회의 식구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은 말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때가 이르렀을 때에 말합니다. 오라, 죽음이여 내게 오라. 내가 그 죽음의 장막 길에서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뵈올 것이며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이 모든 시련이 끊어지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천국의 땅에서 내가 여호와와 함께 영원히 영생을 노래하리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때 우리의 노래는 언제나 끊어졌습니다. 시련이 올 때 우리의 마음의 찬송이 사라지고, 기쁨으로 주님을 찬송하던 우리의 마음에 근심이 깃들 때 우리는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나고 나사로를 해방시켰던 이 죽음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해방시키고 영원한 생명수 물가에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럼 이제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 그렇게 죄와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으로 천국의 장소로 옮길 수 있겠습니까? 미래에만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이미 주실 미래의 천국을 오늘 우리가 누리고 그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20여 년 전, 저는 이 세상에서 모든 실패하고 병들어있는 염세주의를 꿈꾸는 그런 젊은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19살에 자살을 시도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온 실패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젊은 날을 좌절과 실의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를 만났습니다.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허망한 사람들이 이 책 하나에 생명을 거는 사람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죽음을 동경할 정도로 삶이 고통스러워지던 그 순간에 한 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리고 내게 말하셨습니다.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이 세상 사람이 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조금도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랑을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누리며 천사와 성도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린 대가가 이 세상에서는 고난과 시련과 박해였지만, 그러나 오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셔서 30여년이 넘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천지를 지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결핍과 고통 속에서 아파하시며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 이 가난한 사람과 고통 받는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소외받은 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여러분, 모인 여러분들 가운데는 남이 알지 못하는 깊은 고통스런 상처를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누구도 이 세상의 누구한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의 깊은 병을 가지고 계신 분 계실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끊임없이 인생이 고통 받고 억눌린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은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고통을 이해하십니다. 찾아오셔서 고통 하는 자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시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서 버림을 기꺼이 받으셨습니다. 부요한 자들을 찾아가지 아니하시고, 천하고 그리고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함께 우시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가진 것을 베푸시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매달려 못 박아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천국에는 이런 팻말이 써 붙어있습니다. ‘아무나 오라’ 천국을 쑥 들어가고 나니까 천국 뒤에는 또 다른 문패가 붙어있습니다.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만 들어온 곳’ 누구든지 오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남이 알지 못하는 죄악이 있고, 남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양심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또 여러분들이 어떤 형편과 처지에 놓여있을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여러분들 각자 각자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만약에 여러분 한 사람만 이 세상에 살고 있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것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에 살며 지치고,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인생길에 망망한 모든 사람들이 와서 그의 흘리신 보혈의 샘에서 고통의 눈물을 씻고, 영생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들을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여러분들을 부르실 때에 여러분들은 그저 ‘주여, 내가 죄인이옵나이다. 주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주께서 나를 위해 영생을 예비하신 것을 내가 믿사오니 오늘 살았다고 일컬음을 받는 오늘이라고 하는 이 날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나는 공로 없사오나 나를 받아주시옵소서.’ 부르는 사람들을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 모두 먼 훗날에 생명수 물가에서 우리 함께 만나서 손에 손을 맞잡고 새 노래를 부르며 오늘 아름다웠던 전도 집회를 기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