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의 영적해독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 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6:6-12)
여기에서 나온 말은 얼핏 보면 생활의 근면을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육신적인 삶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영적인 삶을 포괄할 수 있는 그런 놀라운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참 사랑을 알고 나면 깊이 체험하고 나면 모든 것에 있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변화는 자기의 모든 감각에까지 미칩니다. 그 모든 변화를 이 자리에서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지요.
그 변화가운데 이 성경 본문과 관련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나면 자신의 삶을 즉각적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돌아보면서 자신의 각성이 그쳐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랑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틀림이 없습니다. 사랑은 자꾸 우리에게 새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리고 사랑은 우리에게 이전에 있던 것도 우리의 인식이 달라지게 만들어 줍니다. 사랑에 빠지고 나니까 아침에 눈을 떠서 들리는 새 소리도 어제까지는 우는 새 소리였는데 오늘 아침에는 노래하는 새소리가 되고,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도 의미가 다르고 밀려오는 파도도 의미가 다르다. 그러니까 사랑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게 되면 계속해서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와요 그리고 이것이 영적인 예민함과 깊이 관련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소위 이야기 하는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은사라든지 영적인 특징이라고 하는 것도 그의 인격이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심령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사랑의 경험과 나뉘어져서 얘기할 수 없는 것이에요. 나뉘어져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하나의 직업적인 종교 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인격이 주님을 사랑하는 은혜의 체험이 우리를 즉각적으로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에요. 그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부지런함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게으르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깊이 자책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도 그런지 모르겠어요. 저는 은혜가 충만하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느꼈을 때 항상 일찍 일어났어요. 이렇게 말하면 늦잠 자는 사람은 ‘나는 늦잠 자는 체질인데 그러면 나는...주님의 사랑이 없나보다..’ 그게 아니라 아침에 눈을 딱 떴을 때 제일 먼저 뭐가 떠오릅니까? 탁 깨었을 때 ..하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부지런함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나면 주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나면 ‘게으른 삶’ 이런 것들에 대해 자신이 용납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게으르게 살아가는 자신이 -어떤 때는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을 때가 있잖아요 후회하면서도 - 그 때 자기가 미워지는 거예요. 자신이 너무 미워지는 거지요.
사랑은 언제나 우리에게 삶에 대한 깨달음을 줘요.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자신의 삶을 돌아볼 게 없어요.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부지런함이에요 그러면서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가르쳐 주는 거예요. 감독자도 없고 간역자- 간역자가 뭡니까? 일 하는 것을 감시하는 사람이에요. 비슷한 말이죠. -도 없고 두령도 없지만 부지런히 여름 동안에 겨울 동안에 먹을 양식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을 보지 않느냐 거기에 가서 지혜를 얻어야 된다.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정말 불꽃같이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머리가 나쁜 사람도 있었고 공부를 못한 사람도 있었고 말씀을 어눌하게 전하는 사람도 있었고 글재주가 없는 사람도 있었고 모난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게으른 사람은 없어요. 부지런한 모든 사람이 신령한 사람은 아니지만 거룩한 삶을 살아간 신령한 삶을 살아간 사람은 모두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거룩한 삶이라고 하는 그 자체가 투쟁 가운데 얻어지고 고통 가운데 쟁취되는 삶이기 때문에 그러한 거룩한 삶이 투쟁과 고통 가운데 쟁취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근본적으로 부지런한 삶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도한 수면 과도히 어떤 오락에 탐닉하는 것 경솔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열매 없이 하나님이 주신 날들을 허비하는 것 그런 것들은 우리 영혼에 커다란 독이 되는 것입니다. 매 순간순간 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살아가야 되겠지만 특별히 우리들이 이렇게 주님이 받으실만한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한 순간 한 순간에 근면함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정말 그런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됩니다.
영적인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침체가 오래 계속 되는 것은 죄의 문제 영혼의 여러 문제 모두 복합적인 문제가 있지만 그 복합적인 모든 문제는 게으름의 지원이 없으면 힘을 낼 수가 없습니다. 죄 그리고 무지 그리고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 쾌락에 탐닉하는 것 주님께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죄인의 완고함 자기의 아집 그릇된 신념 이 모든 것들이 게으름과 함께 합력해서 악을 이루어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게으름들을 타파하고 버리고 정말 정결함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의 삶 속에는 순결이 없어요. 오히려 게으른 삶 속에는 나태와 쾌락과 더러움이 있는 것이지요. 이런 것으로부터 떠나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삶이 하나님 앞에 간절해야만 기도가 간절해지고 하나님 앞에 분투하는 삶이어야 예배에 대해서 절박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 결국은 분투하고 절박하게 살고 간절하게 살고 하는 모든 것들이 부지런함을 제외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찾는 일에 있어서나 모든 일에 있어서 더더욱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쏟아 부어주시는 일은 개인의 성실함만을 가지고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은혜의 자리에 나오게 하는 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성실함 쉽게 살려고 하는 육신의 소욕을 야멸차게 거절하는 단호한 정신이 그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까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이것이 육신의 소욕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곧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요 그렇게 부인하는 것이 곧 거룩한 삶과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늘 말씀드립니다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언제든지 모든 회복 모든 좋은 은혜 모든 깨달음 거기에서 오는 삶의 전환 이 모든 것들은 마음을 사용하셔서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교훈들을 가슴에 새겨야 됩니다. 성경에 너무 자주 나오는 게 그거 아닙니까 너의 마음에 이 말씀을 새기라 마음에 새기라 가슴에 새기고 심령에 새기고... 그래서 그 말씀이 우리에게 명령하고 지시하는 바가 우리의 마음에 어떤 작용을 일으키도록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이러한 삶의 간절함을 원할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우리의 나태한 삶을 돌아보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배우고 아는 많은 지식이 우리를 단지 게으른 말쟁이로 만들 뿐이라는 것을 기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은 거룩한 목표를 가진 생활 속에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목표를 가지고 성취되는 삶은 반드시 간절한 바램 속에서 순간순간을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서 사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삶 이런 삶 없이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삶 이러한 것들이 있을 때 바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도 부산에 내려가서 집회를 하면서 특별히 부흥에 관해서 둘째 날 교회사의 예를 들면서 강론을 하다가 그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가끔 우리가 보면 높은 목표를 가지고 살면서 종종 깊은 좌절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흥을 목표로 한다든지 믿음의 눈으로 커다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변화를 위해 기도를 하다가 스스로 낙심하는 사람이 있지요. 그런 사람들은 하나는 배우고 둘을 배우지 못해서입니다. 목표에 대해서 불타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배웠지만 목표를 쫒아서 부지런히 살아갈 때에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즐거움과 거룩한 삶을 추구해 나가면서 자신이 거룩하게 변해가는 그 그리스도를 닮는 진정한 즐거움을 못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좌절하고 선한 일을 시작하다가 낙심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해요 뭔가 인생에 있어서 큰 목표를 가지고 산다 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불꽃처럼 산다든지 진하게 우리의 인생을 산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커다란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에요. 눈에 보이는 어떤 가시적인 성취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어요. 그 사람들은 끊임없이 목표에 매료된 삶을 살지만 그러나 그런 단순한 가시적인 목표에 비전을 두지 아니하고 정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교회 그런 세상 그런 데 꿈을 두고 그런 변혁을 위해서 자신이 쓰임받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모든 소망들이 자신 속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일어나고 있지 아니하면 결코 그러한 삶의 태도를 견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충성되고 불꽃같은 삶을 산다 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목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것과는 거리가 멀고 주님을 위해 큰 꿈과 간절한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나라에 기여하는 그런 인생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그런 커다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인생 그 자체가 가시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지나친 기대 속에서 고통 받지 않습니다. 결국은 사용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비교의식을 갖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자기를 각자 부르신 절대적인 부르심 앞에서 정직해지고 부르심을 하나님 앞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그런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과 목표는 그렇게 커다란 하나님의 나라의 성취에 있지만 그러나 매 순간순간 살아가면서 우리들이 먼저 자신 속에서 자신들이 꿈꾸는 나라가 이루어지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기대치를, 자기가 그 기대치 이상의 삶을 살아가야 해요. 그렇지 않아요? 자기가 희망하고 꿈꾸는 그 나라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런 삶 그 이상의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이 먼저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가 말하는 것은 단지 앵무새의 이야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커다란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성취되지 않았어도 주님이 자신 속에 계속해서 주시는 증거들을 통해서 그런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소망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참된 즐거움을 알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를 고요히 기다리고 또 받아들이는 겸비한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을 쫒다가 죽는다면 정말 불행한 인생이에요. 일은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리지 못해요. 왜? 어떤 뛰어난 사람이 일평생 한 일도 하나님의 손끝 하나로 순간에 이루실 수 있기 때문이에요. 주님이 감동을 받으시는 것은 일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그 자체를 통해서 감동을 받으시는 것이에요. 우리가 만약 하나님 앞에 베짱이와 같이 게으른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러면서도 우리들이 안일한 생활에 빠져있다면 그 안일과 나태에 빠져있는 그 문제가 단지 존재와는 분리된 삶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패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예요.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마음으로 그렇게 충성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그런 충성되고 성실한 종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존재를 입증하시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것 아닙니까?
그 일의 성취는 하나님의 뜻에 달렸으나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해 성취되기를 노심초사하면서 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렇게 매 순간순간을 긴장하는 마음으로 깨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부지런히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이 하고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않는 삶 그러한 태도 이것이 우리의 모든 몸에 배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실하게 그렇게 살아서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인생을 주셔도 그 이상의 삶은 우리들이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고백하리만치 그렇게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이 광음을 그렇게 아끼면서 하나님 앞에 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