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아끼는 길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
I. 본문해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앞부분에서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교리에 대해 장엄하게 설교를 끝낸 후에 이제 우리의 실제적인 삶을 후반부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우리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기업을 바라보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그런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답게 이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방탕하고 어리석음 속에서 살아가는가를 말하면서 그와 대조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혜롭게 살아가야 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16절의 말씀 속에 한 교훈으로 나타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말이죠.
‘아낀다’라는 말은 무엇인가 제한이 있는 것을 사용하면서도 가장 필요적절하게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을 가리켜서 ‘아낀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우리가 공기를 아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숨을 많이 쉬면 환경오염이 심할텐데’하면서 숨을 덜 쉬는 사람은 없습니다. 동양 사람들은 모든지 널널한 면이 있습니다. 특히 남의 것에 대해 널널합니다. 우리도 물을 낭비하는 것이 참 심합니다. 교회 관리 간사들이 남녀 화장실에 전자 감응식으로 되어있는 수도를 틀면 나오는 것으로 바꿔달라고 하는데 제가 허락을 안했습니다. 그 이유는 전자 감응식은 손을 대야만 물이 나오기 때문에 훨씬 절약이 됩니다. 언젠가 교회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어느 지체가 수도를 틀어놓고 양치질을 하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습니다. 상당한 시간 동안 양치질을 하는데, 물을 왜 틀어놓는지 이해가 안됐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전자 감응식을 설치를 했습니다. 만약 이것에 계속 돈이 들어간다고 하면 생각이 달라졌겠죠!
중국 대학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거기도 물 사정이 그렇게 좋지가 않습니다. 학생들이 얼마나 물을 헤프게 쓰는지 학교가 감당할 수가 없어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손을 씻는 수도 시설에 카드를 꽂아야지만 물이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적은 액수, 일분 내내 써봐야 우리 돈으로 몇 십 원 정도 나가게끔 조절을 했는데도 물 소비가 훨씬 줄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귀한 것은 아끼는 것입니다. 또 아껴도 오늘 여기서 세월을 쓰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는 것들은 안 쓰면 안 됩니다. 안 써서 주인에게 혼난 사람이 있죠? 누구죠? 한 달란트를 맡았던 종. 한 달란트를 맡았는데 땅에 묻어두었다가 도로 가져왔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하는 말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러면서 나무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원은 쓰라고 주신 자원입니다. 저는 엄밀히 말해서 사람이 참으로 덕성스럽게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버는 법을 배우기 전에 쓰는 법을 먼저 교육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버는 것은 어렸을 때 겨우 부모에게 용돈을 타는 것이지만,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자기가 돈을 벌기 전에 쓰는 것부터 먼저 실행을 하기 때문에 쓰는 훈련을 잘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제가 아는 교회가 한 군데 있었는데, 그곳 목회자와 장로님들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괴로워했습니다. 이유인즉, 그 교회 장로님 한 분이 있는데, 노랭이라서 별명이 노장로님이예요. 심지어는 외부에서 강사가 와서 자기네 교회 학교 수련회를 3~4일을 인도를 하고 갔는데, 사례금을 20만원을 넣어주면서 ‘이거면 노잣돈으로 충분하지’하는 교회거든요. 그러니까 함께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고통을 받아요. 그분이 방직공장을 운영했는데, 직원의 사례비나 목회자의 생활비를 계산할 때, 방직공장 직공들한테 해주던 방식으로 교회를 운영해 나갔습니다. 더구나 그런 노장로님이 교회 경제의 실권을 쥐고 있으니 그 교회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연말이 되어서는 “올해도 이만큼의 돈을 남겼습니다. 교회의 통장에 이만큼의 돈이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자랑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원을 맡겨주신 것은 흘러가라고 맡겨주신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잘 쓰는 것입니다. 사용을 안 하면 일을 안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잘 아껴 써서 적은 돈으로 최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그런 경제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아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식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모으기는 했지만 그것을 옳게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은 탐심으로 가득차고 고쳐져야 할 세상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방치되어 있는 광경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사명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에게 주신 자원이 올바른 쪽으로 흘러가서 망가진 이 세상을 고치고 펼치는 일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식의 삶을 살면 안 됩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삶이 마치 고매한 성화의 삶인 것처럼 말하는데, 그 노랭이 안에 있는 돈에 대한 탐심을 주님만이 아십니다. 그것은 시커멓고 더러운 마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서는 넉넉하고 풍족하냐하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과연 불쌍하고 연약한 지체들을 남모르게 구제하고, 불편할 정도로 자신의 재물이나 물질들을 헌신해서 돕는 은밀한 섬김이 있을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자기가 마땅히 내야할 교회의 헌금, 특히 십일조 같은 것으로 장난을 하며 야비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는 하나님 앞에 절대 칭찬 받을 수 없습니다. 지도자의 삶이라는 것은 아무나 지도자라고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남모르는 자기 꺾음과 희생,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넉넉하게 살아가는 속에서도 더 높은 덕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자기를 버리는 희생 같은 것들이 뒤따를 때에 그 사람이 사회에서 신망과 존경을 받듯이 교회에서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어느 권사님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 가운데 제 생애에 잊혀지지 않는 좋은 조언을 주셨습니다. “목사님,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말은 많아지고 노랭이가 되는데, 젊은 사람들에게 환영 받기 위해서는 입은 닫고 지갑은 여는 노년이 되어야지만 젊은이들한테 칭찬을 받습니다.” 어쩜 그렇게 간결하게 ‘입은 닫고 지갑은 열고’라고 표현을 했는지! 교회에서 교회 살림살이 가지고 침 튀기는 사람들은 대개 지갑은 굳게 닫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교역자로 섬기던 교회의 목사님은 예산을 가지고 공동의회를 할 때 누가 돈 쓰는 것 가지고 이야기하면 항상 한 침을 놓으셨습니다. “손을 드는 것은 자유지만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입을 닫으십시오.” 그거 가지고 목사님이 십일조 안 하는 사람은 교인도 아니라 그랬다고 뒤에서 궁시렁대고 그러는데, 이런 사람들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잘 아껴야 합니다” 여기서 ‘아낀다’는 것은 안 쓴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절한 소비로 최상의 효과를 거두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돈과 같아서 한정이 있습니다. 사실 돈보다 더 한정이 있죠. 돈은 가지고 있는 재산을 까먹을 염려도 있지만 점점 불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언제 죽을 것인지를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저도 오늘 하루 종일 마음이 슬퍼지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제는 지나가는구나! 언젠가는 허덕거리며 달려왔던 인생길이 끝날 때가 있겠지! 그때가 언젠인지 그 직전까지 나는 모르지만 주님의 책에는 다 기록되어 있을텐데... 그때가 언제일까?’ 촛불이 타들어 가듯이 정해진 우리의 인생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매우 건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은 많이 남아있고 덜 아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방법이 서서히 증발하듯이 자연적으로 생명의 기운이 사라지고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서 인생을 마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사실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조금은 동의가 됩니다. 왜냐하면 아주 건강하고 생명력이 넘치면 남보다 더 오래 살 것이고, 그러면 50년을 살 사람에게 한 시간과 3일 후에 죽을 사람에게 1시간의 의미는 같지 않겠죠! 동의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50년을 살 수 있는 사람이 1시간을 아끼지 않는 것은 아주 조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죽음이라는 것은 꼭 그렇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생명의 기운이 많고 힘이 철철 넘쳐나는데 곧바로 하나님이 죽음으로 데려가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아직 생명의 기운이 남아있는데 강력한 죽음의 기운이 들어오거나, 크게 구멍이 나서 생명의 자원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저는 올해 아버지를 여이면서 인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미리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것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건강 상태나 모든 것으로 볼 때 아직 10년은 더 사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생을 새벽 4시에 일어나셨고, 부지런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닮지 않아서 낙천적이지 못하지만 저의 아버지는 정말 야속할 정도로 낙천적이신 분이셨습니다. 저 시점에서는 좀 우울해지셔야 되는데... 정말 야속할 정도로 낙천적인 분이셨습니다. 입원을 하셨을 때도 우리가 가니 펄쩍 뛰시면서 뭔 일이 났다고 왔냐고 빨리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손 사래를 흔드신지 3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올 때는 순서대로 오지만 갈 때는 순서대로 안 갑니다.
그러니 확실한 것 하나는, 우리의 인생이 언젠가 동날 때가 있기에 우리의 인생을 아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저보고 심각하게 “과로하지 마십시오, 건강을 챙기십시오” 그러시는데, 제가 가끔은 약하지만 아직은 성성합니다. 그렇지만 요새 만나는 사람마다 건강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그럴 때 이렇게 말합니다. “메뚜기도 한 철입니다.” 좀 더 세월이 흘러가면 일이 나를 더 이상 불러주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뤄 살아가느냐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몸이 좀 약해지는 것 같아서 계단을 올라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내가 30대에 너무 건강을 낭비했어. 후회는 없지만 좀 더 아껴 썼더라면 지금 더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껴야 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빼앗아 가는 것은 펄펄 뛰고, 명예를 빼앗아가는 것도 마음 아파하는데 시간을 뺏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예민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고 말합니다. 좋은 비전이 있고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계획이 있고, 그 일을 실행할 수 있는 헌신된 마음이 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많은 재물이 있어도 우리에게 쓸 수 없는 세월이 없으면 주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함께 죽었던, 그러나 회심하였던 한편 강도를 기억하시죠?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십자가에서 변화되었습니다. 평생을 강도짓을 하며 마지막에는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어서 죽임을 당하는 가치 없는 인간이 되었는데, 어두운 눈이 뜨여져서 죽기 직전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자기가 죄인인 것과 십자가에 못 박하시는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 분을 통해서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인생이 얼마나 새롭게 다가왔겠습니까? 이제는 눈의 비늘이 벗겨지고, 영혼의 어두움이 사라지고, 이제는 사랑할 분을 발견하게 되어서 그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는데 섬기고 싶은 꿈도 있고, 마음도 있고, 아직 기억도 남아있었는데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강도의 안타까운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세월을 아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II. 세월을 아끼는 길
그러면 세월을 어떻게 하면 아낄 수 있을까? 세월을 아끼는 것은 돈을 아끼는 것과 다릅니다. 돈을 아끼는 것은 안 쓰면 됩니다. 그리고 노랭이같이 굴면 됩니다. 그러나 세월을 아끼는 것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한 번 세월의 노랭이가 되어 보십시오. 흘러가는 시간을 누가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시간의 흐름을 누가 붙들어 맬 수 있겠습니까? 가는 홍안, 오는 백발을 누가 붙잡으며 오지 말라고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는 길이 무엇이겠는가? 세 가지로 요약을 할 수 있습니다.
A. 은혜 아는 사는 길
첫째는 은혜 안에 사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이죠! “세월이 악하니라” 시대가 악한 것과 세월을 낭비하는 것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행할 것이라고 말하셨습니까? “허탄한 것에 몰두하게 되리라” 의미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목숨을 걸고 거기에 빠져서 몰두하는 그런 때가 되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어린 학생들뿐만 아니라 청년, 심지어는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도 컴퓨터 게임이나 잡기에 빠져서 잡기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있는데, 이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언젠가 외국에 갔을 때 후배 목사님 집에서 며칠을 묵었습니다. 그분이 목사이고,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는 사람인데 자기 공부방의 침대를 빌려주며 며칠을 묵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펴고 묵상을 하다가 컴퓨터 앞에 있는 메모를 보고 씩 웃었습니다. 그 목사님, 얼마 안 있으면 교수의 길을 갈 사람이 컴퓨터 앞에 메모를 써 붙였어요. “결심, 결심!! 게임은 절대 하지말자!!” 얼마나 유혹을 받았으면 목사가 거기다 그것을 써 놓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세월을 아껴야하는데 그 비결이 은혜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은혜 가운데 살면 헛된 일은 헛된 일인지를 압니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세상의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은혜 안에 있으면 헛된 것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세월을 아끼게 되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고유한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저도 반성할 점이 많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도 그렇게 부럽지 않고, 좋은 집을 쓰고 있는 사람도 한 번도 부러워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학문이 깊은 사람, 의미 있는 재주에 아주 능한 사람, 가치 있는 예술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굉장히 부럽습니다. 그리고 저 사람이 나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비교될 수 없어서 해박하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 어떤 때는 땅에 미끄러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느낌 갖는 것은 별로 좋지는 않아서 조심하는데, 그래도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아, 나는 이게 뭘까?’라고 말이죠. 언젠가 글을 쓰는데 그 분야에 대한 학자들의 박사 논문들을 읽었습니다.
외국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어떻게 인간이 이 주제에 있어서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고, 제 글을 들여다보니까 너무 조잡하고 부끄러운 거예요. 마치 외제 양복을 빼 입고 있는 사람 앞에 너덜너덜한 청반바지와 색깔도 안 맞는 찢어진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낙심을 했더니, 그 얘기를 듣고 누가 저를 이렇게 위로를 했습니다. “목사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은 평생을 그 공부를 했고, 목사님은 교회를 하셨는데 그것도 그 사람들하고 똑같아지려고 하면 목사님은 욕심쟁이죠!” 그래도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종종 마음을 잘 다스립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하늘에는 크고 작은 별, 더 빛나고 덜 빛나는 별들도 많은데 각각 빛의 밝기와 크기, 거리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세상은 아름답지 않은가! 내 옆에 있는 큰 사람이 더 빛날 수 있다면 나도 이 별들이 모여 있는 것 같은 세상에 나도 아름답게 되기 위해 기여하는 한 사람이 아닐까?’하고 위로를 하지만 위로가 안 되죠! 그래서 내리는 결론은 사람이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조금밖에 없구나하는 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저는 50이 가까워서 그것을 겨우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인간이 생각이 모자라고 혈기 방자했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마지막 바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내가 하여야하는 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고유한 그 일을 위해서 헌신하자. 그리고 거기에 집중하자. 거기에 남은 나의 모든 자원을 다 써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세월을 아끼는 비결입니다. 이것저것 건드려보다가 마는 사람보다는 한 가지 사명을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는 사람, 그 사람이 세월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제가 요새 바쁜데, 우리 교회가 이번에 46개의 위원회를 만들고 11개의 분과를 만들었습니다. 그 11개의 분과를 한 개씩 만나면서 교회 운영 전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 분과에서 어떤 정신으로, 어떤 사업들을 해야 하는지를 피력하는 시간들을 거의 10번 정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가지면서 제가 받는 느낌은, 우리들이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데 자기가 맡은 분과, 어느 위원회에서 열심히 그 사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항상 교인들을 향해 섭섭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는 지금 해외 선교에 헌신하고 있는데 ‘성도들이 선교에 대해 왜 이렇게 무딜까? 선교 안하고 뭐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또 국내 전도에 꽂힌 사람들은 ‘세상에 여리고 전도도 안 나오고 그 시간에 탱탱히 놀면서 도대체 뭐하는 걸까?’ 또 교정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도 갇힌 자를 돌아보라 하셨는데 왜 갇히지도 않은 사람들을 찾아서 자꾸 해외로만 가는 걸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정리를 했습니다. “그러지 마라, 누군가 각자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에 모두 마음이 꽂힌 사람은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한 가지에 꽂힌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그 일을 그 사람에게 고유한 사명으로 주신 것이다. 그대들이 해외 선교를 눈물을 흘릴 때 어떤 사람들은 교도소를 위해 울고, 어떤 사람들은 지체장애자들을 위해 울고, 어떤 사람들은 쓰러져가는 교회를 위해 울고,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는 미숙한 신자들, 미끄러지는 영혼들을 위해 운다. 사람들에게 너는 왜 그것만 위해 우냐? 해외 선교를 위해 울어야지, 너는 왜 해외 선교만을 위해 우냐? 우리의 이런 일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그들은 그들대로 그렇게 울면서 섬기게 둬라.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서. 우리는 그 사역을 잘 모르지만 거기서도 하나님은 일하시니 거기에서 그 사람들을 통해 일하게 두고, 우리는 많은 잠자고 있는 성도들을 깨워서 그 성도들을 이 섬김의 대열에 동참시키고 이렇게 하면서 우리의 동역자들을 만들고 걸어가야 한다.” 제가 그렇게 따뜻하게 잘 타이르고 격려를 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는 비결은 자기에게 집중된,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사명에 온전히 헌신하는 것입니다. 한 방울씩 똑똑 손바닥에 떨어지는 그 물이 무슨 힘이 있어 보입니까? 그런데 그것이 바위를 팝니다. 교회는 이것저것 거드는 사람들의 상시적인 섬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을 위해 목숨을 바꿔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도 이 일을 위해 살고, 죽어도 이 사역을 위해 죽나니하는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귀한 사람들입니다. 그것들을 통해 다른 사역들이 완전해지는 것이니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정말 세월을 아끼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고유한 사명에 집중하면서 살아야지만 세월을 아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한동안 아침마다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가지고 있는 물질에는 오병이어의 복을 빌어주지 않아도 좋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시간에는 그렇게 축사해 주시옵소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해 주시옵소서. 제게 있는 24시간이 오병이어의 역사를 일으켜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나에게 지혜를 주시고, 슬기를 주옵소서.” 사실 그런 경험들이 게으름에 대해 많은 눈을 뜨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시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참 놀랍습니다! 어떤 글을 쓰거나 연구를 할 때에 그렇게 여러 시간을 허비하고 자료를 풀리지 않는데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어떤 때는 그 자료가 스스로 굴러들어 옵니다. 몇 시간을 절약해 줍니다. 그러면 말할 수 없이 기쁘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을 만나서 조언을 받게 되면 세월을 더 절약하게 되죠.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쓰는 시간은 낭비가 아닙니다. 얼마 전에 제가 기독교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할 때, 군산 해양 경찰서에 갔을 때 우리가 가까운 시일 내에 선교선을 건조해서 도서 지역의 외로운 사람들에게 복음을 실어 나르겠습니다 했더니, 그 방송을 본 어느 목사님이 전화를 했습니다. “저희가 그런 경험을 20년 가지고 있는데 목사님께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빨리 오시라고 해서 그 이야기를 한참 들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 돈을 아끼기 위해서! 그러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 중 많은 부분에 대해 보완을 하고 도움을 얻게 되었고 확신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이 있는데, ‘이런 꿈을 나보다 먼저 품은 사람이 있었구나!’ 그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꿈은 초라해서 얘기를 못하겠더라구요, 4000톤, 5000톤짜리 배를 사 동남아로 가서 거기에 종합병원 시스템을 만들고, 단기 선교팀을 수백 명을 싣고 가서 거기에 풀어놓고 의료지원을 하며 도시를 선교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계시면서 제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하는 말이 “목사님, 입을 크게 벌리십시오. 배가 너무 적습니다. 목사님 말씀을 들어보지 더 큰 것으로 사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저도 좀 오그라들더라구요. 그게 뭐죠? 하나님이 우리의 시간을 축복해주실 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도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라는 책을 쓴 후의 일입니다. 미국에 갔을 때 이미 중년을 지난 목사님 한 분이 제게 그랬습니다. “목사님, 이 책을 한 20년 전에 쓰셨으면 제 인생을 10년은 절약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도 그때는 몰랐죠! 저도 그때는 과외비를 열심히 지불하면서 인생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우리의 마음에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드리고 싶도록 타오르는 것이 주님을 향한 사랑이라고 하면 그 사연을 써내려갈 수 있는 편지지는 세월입니다. 시간이 없으면 그것을 써내려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껴야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축복이 정말 필요합니다. 주님이 어떤 사람을 축복하십니까? 당신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을 복주십니까? 당신의 품안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복주십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서 “하나님, 저의 시간에 복을 주시옵소서. 저의 이 시간에 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해주시옵소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한 사람의 식사밖에는 안되었지만 수만 명이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길이는 물리적인 길이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젊고 육체의 자원이 많아도 삶의 자세가 다르면 이미 머리가 백발이 되어 인생이 몇 년 남지 않았지만 지혜롭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사는 사람보다 훨씬 주님의 일을 못하고 의미 없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의 자원을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이 손을 높이 들어 은혜를 주시도록, 하나님이 축복해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지혜롭게 살아가서 정해진 여러분들의 인생 안에서 더 많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