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주시리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시 67:7).
복의 개념은 사람마다 틀리지만 복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복을 비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복을 받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받을 복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복이 가지고 있는 공동체적인 성격에 대해 마음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1인칭 복수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1절에 나오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그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라고 하는 것도 똑같은 맥락에서 복의 공동체적 성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공동체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언약백성으로서의 공동체입니다. 나라가 곧 교회였고 가정도 교회 안에 있는 하나의 작은 지체였습니다. 이런 사상이 후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되겠느냐고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속에 그대로 반영이 됩니다. 그들이 공동체로서 주님께 같은 기도 제목을 부여 받았습니다.
시작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계시록으로 넘어가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졌을 때 거기에서 그 복락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도 똑같이 공동체입니다. 성경 속을 흐르고 있는 면면한 공동체 사상입니다. 개개인이 받는 복은 공동체의 지체로 받는 복입니다.
이런 것이 다 깨뜨려지고 근대에 접어들면서 개인주의화 되면서 다른 사람들의 복에 대해선 관심이 없고 내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복을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내가 복을 받는데 방해할지도 모르는 경쟁의 대상이고 투쟁의 대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런 생각들이 심지어 가족 공동체에도 스며들어옵니다. 가족의 공동체가 와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극단적으로 개인 행복을 취하고 그것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상태를 깨뜨릴 자세까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멀리는 자연과 관계를 맺고 보다 근원적으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면서 비로소 인간이 행복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이 하나님의 언약백성들 속에 공동체적으로 주어짐을 가르칩니다. 우리의 행복한 상태는 우리의 투쟁과 몸부림을 통해서 물질들을 획득하는 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이 흐르는 것처럼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내린 비를 저수지가 많이 머금고 철을 따라서 물을 흘려보낼 때 저수지 아래 맞닿아 있는 많은 논밭들이 그 물을 공급받으면서 생명을 움튀어 온 땅에 식물을 가득하게 하고 번영을 이루듯이 성도 개개인의 복도 그렇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여러분들은 가까이는 물길 옆에 있는 작은 논밭이고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저수지가 있고 그 저수지 위에는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복을 받은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면 교회가 복된 상태가 되도록 기여해야 합니다. 성도의 복은 하나님이 항상 예루살렘을 통해서 내리는 복입니다.
그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도성이고 그 한가운데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성전의 임재로 충만하신 하나님이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뵌 하나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당신의 왕권을 펼치십니다. 그것들이 흘러 내려가면서 공법과 정의가 온 언약 백성들의 삶을 덮게 될 때 그들 각자가 걸어가는 그 삶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 그들을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택하신 목적에 기여하는 쪽으로 갑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데려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선하신 하나님 때문에 그 선함과 자비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 이것이 복입니다.
복의 가장 큰 핵심은 하나님 자신이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만복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 교회가 하나님 앞에 참으로 복 받은 상태가 되는 것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이 관심이 없습니다. 아주 극단적인 이기심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교회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이바지하는 수단이 됩니다. 자신이 오히려 복의 원천이 되고 정말 하나님의 복을 담고 있을 수원지가 되는 교회는 자신의 행복 그 아래 있는 존재가 됩니다. 모든 것이 좋을 때, 그 복을 교회로부터 받을 때는 반드시 그 교회가 복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됩니다.
교회가 복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교회에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충만하게 계실 때가 있었고 하나님이 계신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아 전쟁에 나가면 거의 패배하고 흉년이 오면 기근이 드는 때가 있었습니다.
원리적으로는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에 하나님이 언제나 계시지만 실재적으로는 어떤 때는 그 교회에 충만하게 계시고 어떤 때는 그 교회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은 건조함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임재는 무엇이 결정합니까?
교회의 복된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건물이나 목회자의 학력이나 수효가 아니라 교회라고 하는 한 몸이 정말 하나의 공동체적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때 하나님이 그 교회에 충만하게 계십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 찬 상태가 됩니다.
이 안에 있는 성도들은 그 교회와 연관을 이루고 있고 생명적인 연결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거기로부터 하나님의 복들이 흘러 들어갑니다. 우리 한사람은 공동체의 상태를 떠난 개인적인 축복을 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가 참으로 이 세상에서 복 받은 사람들이 되기 위해선 우리의 많은 관심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교회가 복된 상태가 되도록 우리의 마음을 많이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일주일에 한번 우르르 모였다 흩어지는 곳처럼 보여지지만 이 교회는 칼빈 선생님이 고백한 바와 같이 모든 성도의 어머니입니다. 그 품에서 여러분들이 그 젖을 먹고 신앙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의 품에서 때로는 징계를 받고 야단을 맞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받으면서 한사람의 진실한 성도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칼빈 선생은 말하기를 교회를 어머니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교회를 이용하려고 하는 모든 태도는 진정으로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자리로 나아가는 삶의 태도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공경과 사랑은 보이는 언약 공동체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납니다.
여러분들에게 복 받은 상태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삶을 살면서 복을 얻어 보려고 하는 그 복은 하나님 밖에 있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가 하나님 밖에 있는 어떤 복을 얻으려고 하는 마치 목마fms 사람이 소금을 퍼 먹는 것과 같습니다. 반드시 그를 파멸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밖에서 복을 얻어 보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을 배반한 사람으로 봅니다. 하나님 밖에 있는 복을 꿈꾸는 것으로도 하나님께 대한 정절을 저 버리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복된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2. 교회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를 아프게 한다는 것은 세 대상을 한꺼번에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1)자신의 영혼 : 자신이 아프게 하는 그 교회의 몸에 자신도 한 지체로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그 교회에 진정한 지체로 접붙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영혼이 매우 병들어 있으므로 영혼의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2) 다른 지체들의 마음에 고통을 줍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달려 간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기 위함이었지만 형제들에 대한 박해를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박해로 여기셨습니다. 교회를 아프게 하는 것은 머리이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통증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므로 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행복한 상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혹시 먹고 산다면 불순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리시던 일반적인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결코 영혼을 어루만져 주시는 축복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한해에는 교회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교회에 고통을 주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일을 태만히 하고 사명을 감당하되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감당하므로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태도에서 자신의 사명을 쉽게 저 버리는 죄를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복이 갖는 공동체적인 성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형제에 대한 은근한 미움과 노골적인 불신, 분쟁과 다툼 깊이 회개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것을 잘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복을 받기를 원하오니 나를 축복하소서. 주께서 나를 축복 하시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겠습니다.’고 부르짖는 기도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악인은 부르짖어도 얻지 못하나 의인은 마음에 소원을 품어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여러분들이 복을 받기 원하는데 그 동기가 무엇입니까?
정말 이 복은 교회를 통해서 자신에게 흘러오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교회에 고통을 주고 주님의 마음에 못을 박고 지체들 가슴에 칼질을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지난 한해를 깊이 뒤돌아보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았는가를 깊이 뉘우치고 삶과 관계를 바르게 할 때 비로소 우리가 비는 복을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습니다.
이 복은 어떤 복입니까?
성경은 두 가지 복을 가르칩니다.
1. 일반 섭리의 복
내 주변에 있는 사물과 질서를 변경하시면서 주시는 복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영적인 효과가 큽니다. 은혜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느끼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은혜가 없는 사람은 재수로 돌립니다.
신앙심이 아주 깊어지게 되면 일반 섭리의 많은 축복들을 보면서 생생하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신령한 방식으로 사고의 구조가 변모됩니다. 늘 감격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심을 느끼게 되며 은혜가 크다. 영혼의 상태에 따라서 일반 섭리의 복이 스며드는 것이 다릅니다.
2. 영적인 축복
일반 섭리의 복보다 훨씬 뛰어난 복입니다. 차이점은 일반 섭리의 복은 그 사람의 심령의 상태에 의해 영적인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는 정도가 틀립니다. 영적인 축복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다가오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그 영혼을 어루만지시는 복입니다.
오랫동안 죄 가운데 살던 사람이 자기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회심의 역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는 그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시고 할 때에 그 복이 이런 영적인 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는 복은 두 가지였습니다. 일반섭리의 복과 영적인 축복을 빌었습니다. 마음의 평정이 없이 떠도는 것처럼 불안하던 사람이 주안에서 한없는 평안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영혼을 어루만지시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던 사람의 마음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밀려드는 것, 언제나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던 십자가의 사랑이 나의 가슴 속에 경험되는 것,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크신 은혜에 대해서 아무것도 느낄 줄 몰랐던 가슴 속에 주님의 그 피자국과 나를 위한 눈물이 느껴지는 것, 그 은혜와 사랑 속에서 살고 싶은 뜨거운 소원이 생겨나는 이 모든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영혼을 직접 어루만지는 축복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 영혼을 어루만지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모든 환경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평강이 밀려들어옵니다. 수십 년 동안 실패를 운명처럼 생각하고 살았던 사람인데 그것을 도전할 용기가 생겨나게 됩니다. 오랫동안 원수지고 미워했던 사람인데 뜨겁게 사랑하고 용서하고 무릎을 꿇어 사랑하는 지체의 발을 씻는 섬김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것은 일반 섭리를 통해서는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원수에게 얼마를 받으면 그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도 한사람의 축복이 교회의 복 받은 상태를 통해 흘러온다고 할 때 그 교회의 복 받은 상태도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일반 섭리의 복, 하나님이 신기하게 교회가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셔서 순적하게 교회가 평안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오랫동안 시간이 지나가도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이 없이 평안하게 성도들이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예배의 시간에, 기도회의 시간에, 찬양을 부를 때, 성도들이 교제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 하나님이 영혼들을 어루만지시고 복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가슴 뛰게 하는 기쁜 소식이 무엇입니까?
어떤 영혼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어둠 속에서 헤매던 인생들이 변화되어서 밝은 빛을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할 때, 심히 험악한 인생을 살아오던 사람들이 가던 길을 돌이켜 살아계신 하나님을 따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 우리는 가장 가슴 벅차고 행복합니다. 먹지 않아도 배부릅니다.
놀라운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교회가 영적인 축복을 받고 있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교회가 그런 상태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런 복이 교회에 충만히 부어지도록 헌신할 때 거기에서 흐르는 물처럼 개개인의 삶속으로 복이 흘러 들어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복을 통해 자신이 복을 받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행복에 방해가 되면 교회도 파괴하고 교회도 버리고 고통을 줍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 있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갖고 하나님이 없는 상태가 되기보다는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이라면 모든 것이 있어도 결국은 없는 것이지만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이 계시면 그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는 복의 선교적 성격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복을 받는 것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데 이바지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우리가 전하는 그 복음대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 받은 상태를 보여 줄 수 있다면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가장 훌륭한 선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우울하고 불행하고 일반 섭리에 있어서 복이 없고 영혼이 곤궁한 상태에 살고 있다면 누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신뢰하겠습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복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일반 섭리의 많은 복을 받으십시오. 거처가 없어 방황하던 사람들에게는 편안한 거처가 생기고, 직장이 없어서 불안하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는 좋은 직장이 구해지고, 하던 사업의 위기를 만나서 근심으로 밤을 새우던 사람에게는 그 사업에 활기가 불어 넣어지기를 바랍니다. 할 수만 있으면 물질의 복도 많이 받아서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반 섭리의 복을 많이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축복이 없이는 그렇게 받은 복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게 만들어 주는 작용은 대부분 우리 주위에 있는 환경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영혼과 마음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지만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그에게 만약에 은혜가 없었더라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불의한 길로 갔을 가능성이 죄인이므로 있습니다. 그가 받은 일반 섭리의 복은 오히려 그가 받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 때문에 더욱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결국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갈하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터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던 메마른 영혼에 하늘이 열리고 말씀의 단비가 떨어져서 거미줄처럼 갈라지던 갈급한 영혼이 그 은혜로 적셔지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기억들이 샘솟듯 솟아나고 거기에 새싹들이 돋게 될 때 그 메말랐던 마음에 은혜의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될 때 물댄 동산과 같은 은혜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많은 복의 자원들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을 따라 흘러가서 많은 이웃들을 살리고 하나님 나라의 번영을 이루고 교회의 온전함을 이루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새해 한 해에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아서 주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신실한 종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복을 주옵소서 우리가 복을 받기 원하면서도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교회의 마음을 상처내고 지체들의 마음에 고통을 주면서 복을 구했던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일반 섭리에 있어서, 영적인 축복에 있어서 하나님 안에 복을 받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