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돌아봄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 5:8)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바울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교회에서 과부들을 돕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를 교훈하는 가운데에 나온 내용입니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많은 과부와 고아들이 있었고,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경건의 훌륭한 표지였습니다. 특히 과부는 사회적으로 절대 약자였고, 실질적으로 모든 생활에 있어서 위협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교회의 돌봄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과부들을 교회가 동일하게 돌보았던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전적으로 돌보는 과부들은 참 과부들로서 교회에 등록된 사람들이어야 했습니다. 교회의 과부로서 등록되어 전적으로 교회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한 남편의 아내였던 여자로서 60세가 넘은 사람이어야 했고, 믿음과 모든 선한 행실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덕망을 쌓은 사람들이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보다 더 어려운 과부들을 잘 교회가 돌볼 뿐 아니라 그들을 잘 돌보아서 그들의 선한 행실과 믿음으로 이 세상에 영향도 끼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참 과부의 대상이 된다고 할지라도 교회가 무조건 도와준 것은 아니고 먼저 그 여자에게 자식들이나 혹은 손자들이 있는지를 조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들이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그 과부를 잘 돌보고 봉양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의 맥락에서 사도는 친족, 특히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이라고 강력하게 선언하며 가족들을 돌보도록 모든 성도들에게 의무를 촉구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II. 국가와 가정을 통해 배우는 것
하나님이 인류 사회를 지탱하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세 개의 기본적 기관이 있습니다. 그것이 국가와 가정과 교회입니다. 국가는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서 마지못해서 주신 것이고, 교회와 가정은 하나님이 당신이 의지를 가지고 세우셔서 우리 인간에게 기쁘게 주신 제도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교회도 없었을 것이고, 국가도 없었을 것이지만 교회는 가정이 곧 교회가 되었을 것이니 별개의 문제이고, 국가는 없었을 것입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이런 형태의 국가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커다란 백성으로 만드시고, 그 민족을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당신이 직접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신정 국가를 의도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 다른 이방 나라처럼 왕을 소유하기를 원했고, 하나님은 이것을 매우 분노하셨으며 분노함으로 왕을 주시고, 진노함으로 그 왕을 폐하시는 섭리를 이루어 가셨던 것입니다. 아무튼 국가와 가정, 교회를 통해서 우리 인류 사회를 지탱할 중요한 가치들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로 국가를 통해서는 가장 중요한 덕목 하나를 배우게 되는데 정의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참으로 행복해지려면 올바른 법이 세워지고, 법이 법대로 집행되는 나라에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 법과 정의가 인간의 권력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 그리고 재물의 많고 적음에 이리 휘고 저리 굽는 국가는 올바른 국가라고 말할 수 없고, 그런 사회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국가가 존립하는 최고의 가치는 소속된 백성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가정의 가치는 사랑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서 부모 아래 태어나고, 그리고 그 아래로는 자식들을 낳고 좌우로는 동기간들과 함께 섞여 살면서 그 위, 아래 좌우의 인간관계 속에서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가족 속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이고, 어떤 의무를 가족들에게 행해야 하는지를 배우면서 사랑을 익혀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의 존립 가치는 정의를, 가정의 존립 가치는 사랑을 배우는 것인데 교회는 바로 이 정의와 사랑이 합치되는 것을 배우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사회의 법과 같은 엄격한 규칙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같이 부족하고 모자라도 끊임없이 용납하고 결코 가족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의절하고 끊어지는 일이 없는 것처럼 교회 안에 있는 이 지체됨도 나뉘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 안에서 사랑을 통해 정의를 완성해 가는 그 정의와 사랑의 일치를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국가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가정에서 우리가 참으로 사랑을 배우고 그리고 자녀들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또 교회에서 이 정의와 사랑이 일치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우리는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자신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길이며 가족들과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국가에 대해서도 정치적인 의무와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필요한 권리를, 주어진 권리를 최대한 행사함으로써 이 국가가 정의롭게 세워져 가도록 우리는 돕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이제 이 가족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가정생활 안에서 참다운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배워가고 그것은 교회에서 배우는 정의와 사랑의 일치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아무리 참 사람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려고 할지라도 가족이 신앙으로 일치될 때 비로소 그러한 의도는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III. 가족을 돌아봄
A. 영혼의 형편을 돌아봄
그래서 사도는 신앙심이 깊은 사랑하는 모든 교인들을 향하여 이 자기의 친척, 특히 자기의 가족을 돌아보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족을 돌아본다고 하는 것은 어떤 방면의 것들을 돌아볼 때에 그것을 진정으로 가족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가족들의 영혼의 형편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 영혼의 형편을 돌아보는 모본을 이 사도바울이 보여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사도가 되기 전까지 전도양양한 유대인 종교 지도자의 길을 걸어가던 젊은이였습니다. 가족도 있었고, 친척도 있었고, 친구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길이 참 생명의 길인 줄을 알아 그리스도께 돌이켜 선후에는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과 원수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족들은 수없이 그를 핍박했고, 그리고 죽이고자 하였고, 모든 인간적인 혈연이 거의 끊어진 상태에서 예수만 바라보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도바울의 마음속에는 자기의 동족과 골육지친을 향한 사랑이 언제나 불붙고 있었고, 그 골수에까지 사무친 이 동포에 대한 사랑, 골육지친에 대한 사랑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께 저주를 받아서 끊어질 지라도 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하는 뜨거운 구령의 열망으로 나타났고 이것이 바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선교적인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땅히 여러분의 가족의 영혼의 형편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종종 성도들의 가정에 장례가 나서 가는데 그 가족이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동기간이, 심지어는 자녀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서 죽은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목회자로서 그 가정에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적합한 언어를 찾기 힘듭니다. 물론 그들이 완악하게 반항하고 불신앙을 고집하였기 때문에 그 가족들이 많이 노력했는데도 예수를 믿지 않은 불신 상태에서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그 가족들이 사랑으로 영혼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가족의 영혼을 위해서 간절히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섬겼더라면 그들 중 더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고백하고 죽지 않았을까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음 이후에 당하게 되는 그 지옥의 형벌들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기회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 여러분의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의 영혼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그들의 영혼의 형편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그들의 회심이 진실한 것인지를 진지하게 물어보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먼저 예수를 믿은 사람으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 앞에 매우 죄송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금년에 여러분이 온 마음을 다하여 구원받지 못한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 가족들을 구원받게 한다면 금년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데려가셔도 좋습니다 라고 하는 절박한 마음으로 구원받지 못한 가족의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영혼의 비참한 형편을 인하여 스스로 울 수 없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대신 울어주어야 하고, 그 첫 번째 의무를 가족들이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멀리 있든지 가까이 있든지 여러분의 부모나 형제,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과 가까운 친척들의 영혼의 구원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어떻게 그들을 도와야 할지를 깊이 생각하고, 실질적으로 그 일을 위해서 여러분이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은 주님의 자녀들이 은혜에서 미끄러져 부패하게 되면 하나님을 안 믿을 때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매일매일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가족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으로 자만하지 말고, 그 가족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는지를 진지하게 탐색하고 그들이 은혜에서 미끄러졌다면 또한 그들의 영혼의 회복을 위하여 빌어야 하고 어찌하든지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이 낙심한 자리에서 일어나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여러분이 온 마음을 다해 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물을 것입니다. “내가 우리 가족들의 유모입니까? 내가 우리 친척들을 낳은 어미입니까? 내가 왜 그 모든 무거운 짐을 져야 합니까? 그러한 짐은 오히려 목회자가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 의무만을 생각하면 왜 이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져야 하나 하는 그런 마음이 여러분에게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그러한 의무를 주실 때에 하나님은 의무만 주시지 않고 항상 은혜를 통하여 의무를 주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어머니가 여러분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다면 어머니가 베푸는 자가 되고 여러분이 아마 어머니로부터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더 큰 은혜를 주셔서 이 영적인 의무를 느끼게 하셨으니 이는 여러분이 여러분 모든 가족들 중 가장 하나님께 사랑을 많이 받고 은혜를 입은 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이 사랑의 크기를 생각하며 가족들의 영혼의 형편을 돌아보고, 그들의 영혼이 잘되기를 위하여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B. 육체의 형편을 돌아봄
두 번째는 육체의 형편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족들의 영혼을 위해 많이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기도하고 가족들의 영혼에 관심을 갖는 것만큼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여러분의 가족들의 육체적인 형편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많이 기도하면서도 실제적으로 가족들의 육체의 형편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영혼의 형편을 돌아보는 것은 순수한 사랑이 없어도 형식적인 기도로 때울 수 있지만 육체의 형편을 돌아보는 것은 구체적인 희생을 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가족들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권면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가족들 중에서 가족들을 위해 가장 기꺼이 희생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때만 나면 동서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며느리가 명절날이면 가서 손끝 하나 움직이기 싫어해서 동서들이 다 차려 놓은 상에 가서 숟가락 하나 얹어놓고 떡국 먹은 후에는 친정으로 내빼겠다고 그렇게 개념 없는 행동을 해서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통해서 사람들을 보지만 믿음이 없는 우리의 가족들은 보이는 우리의 행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된 삶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가서 의무를 감당하기는 하는데 그 표정과 태도가 불만으로 가득차서 폭발할 것 같은 태도로 일한다면 그를 통해서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겠습니까?
통계에 의하면 구정이 끝나고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가 이혼소송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구정에 열 받은 며느리들이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폭발하여 이혼을 결심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주님께 많이 받은 여러분이 형제를 위해서 더 많이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 힘들어도 남보다 몇 시간이라도 먼저 가서 돕고 그리고 물질로 섬겨도 다른데 아껴 쓰고, 그렇게 큰 명절에 부모를 섬기거나 동기간들을 도와야 할 경우에는 자신이 좀 더 희생을 하려고 애쓰고 굳은 일과 힘겨운 인들을 스스로 하려고 애를 쓸 때에 이것이 선교적인 삶인 것입니다. 몇 달 동안 공들여 전도하고 명절에 가서 한데거리 하고 다 쏟아버리고 돌아와서 회개를 하는데 자신은 회개하자마자 회복이 되지만 그 개념 없는 행동으로 상처를 받은 가족들은 그렇게 빨리 회복이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결국 전도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벽이 높아져 가고, 핑계 대는 김에 우리 시댁 식구들은 유난히 강퍅해 라고 말하지만 누가 강퍅한지는 하늘나라에 가 봐야 알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의 형편을 돌아보면서 하나, 하나 사랑은 세심한 섬김을 동반합니다. 더욱이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무엇인가 물질적으로 돕고 그리고 이것들을 통하여 가족들을 섬기려고 할 때에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그로 인하여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 한다든지 혹은 조금 도와주고 쓰나미 같은 감동을 기대한다든지 하는 태도는 옳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너희는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불신 가족들에게 베푸는 거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부모가 나에게 유산을 많이 물려줬기 때문이고, 동기간에게 내가 선행을 하는 것은 이미 동기간이 내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기 때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일은 악한 사람이라도 할 줄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가족들을 위해 깊이 사랑하고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고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물질이나 여러 가지 도움을 주어서 그들이 꼭 필요할 때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입증해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신 상환해 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는 보증이나 이런 것들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몫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여러분이 기꺼이 가족들을 돕고,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들을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을 도움으로써 여러분이 언제나 자신들 가장 가까이 있어서 자신을 기꺼이 돕고,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새겨 주어야 합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가 베풀면 우리 동기간들은 이용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이용을 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어리석게 이용당하지 마시고 지혜롭게 이용을 당하여 그래서 정말 필요할 때에 여러분이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렸지만 동기간들에게 물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설 때에는 그냥 90% 정도는 이거 빌려가고 내 동생이, 우리 형이, 우리 누나가 혹은 우리 삼촌이 안 갚을 거다. 그래도 나는 마음 하나 구겨지지 않고 기쁘게 우리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정도 안에서만 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증을 서도 그런 정도 안에서 “그래 보증을 서주면 지가 잘 갚겠다고 했지만 안 갚으면 내가 갚아 줄게” 라고 마음속으로 대뇌일 수 있을 정도의 액수에만 보증을 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도 추호도 마음 상하지 않고 얼마나 어려운 형편 이길래 그거를 못 갚을까? 얼마나 어려운 형편이길래 보증을 서 줬는데 의무를 이행하지 못해서 이 빚 갚는 일이 나에게로 돌아오게 하였을까? 생각하면서 관계가 손상당하지 않도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아내도 몰래 혹은 남편도 몰래 동기간을 사랑한다는 이름 하나로 커다란 보증을 서거나 혹은 재물을 빌려줌으로 마지막에 돈도 잃어버리고 관계도 깨어지는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실제로 남편 몰래 혹은 아내 몰래 집을 저당 잡혀서 동기간들에게 빌려주고 마지막에 그 가정까지 깨뜨려지는 경우를 수시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는 기꺼이 동기간들에게 이용을 당해도 괜찮습니다. 이용을 당할 때에 인간에게 이용당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셔서 저들의 필요를 채우신다고 생각하면서 기꺼이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가족을 돌아보는 사람들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육체의 형편들을 돌아보며 물질적으로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실제로 특히 건강을 잃어버리고 노동의 능력을 잃어버린 가족들 그리고 친척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는 굳게 마음을 닫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을 교회의 지체들이 끊임없이 방문하여 위로하고 필요를 채우고 그들을 장기간 도움으로 마음을 열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은 더더욱 여러분의 결점을 이미 본 사람들이니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는 것을 통해 불신자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더 많은 희생과 진실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주님이 여러분에게 베푸신 그 사랑에 부흥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족들의 형편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그 가족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베푸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C. 관계적 형편을 돌아봄
마지막 세 번째는 관계의 형편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물질뿐만이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여러분은 먹을 양식과 입을 옷, 누울 잠자리만 있으면 언제나 행복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소태처럼 쓰고, 입을 옷이 있어도 마음은 헐벗은 것 같고 누울 따뜻한 잠자리가 있어도 얼음판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고통스러웠던 시절들이 있습니다. 그때에는 먹고, 입고, 마시고, 잠자는 것만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만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여러분의 가족들, 동기간들, 가까운 친척들도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먹고, 입고, 마시고, 잠자는 것 가지고는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러분의 친척과 그리고 여러분의 가족들은 그저 물질로만 도와주면 금방 행복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자살합니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형편이 많이 나아졌는데도 자살로 말하자면 OECD 국가 중에서도 선두에 서있는 수치스러운 나라입니다. 한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기도하기 때문에 그 자살하는 사람들만을 구조하는 구조대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실제로 한강 다리에 가보면 뾰족뾰족하게 못을 박아 놓아서 높은 곳으로 못 올라가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미끄러운 기름을 잔뜩 발라서 올라가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그런다고 죽을 사람들이 죽지 않겠습니까? 자살하는 그 순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어 준다면 눈물 흘리며 함께 손잡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동감하며 들어줄 수 있는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아마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외로움 속에서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도움만이 아니라 사랑의 도움입니다.
이런 사랑을 가족들에 베풀며 살려고 할 때에 가장 큰 어려움은 이미 그 가족들이 우리에게 많이 우리에게 끼쳐준 상처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상처를 기억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그런 상처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께로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로다” 라고 고백했던 다윗처럼 우리는 이런 상처를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섭리로 본다면 나빠 보이는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히려 좋은 것으로 넉넉히 갚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혹시 가족들로부터 실제로 상처를 입고, 명백하게 객관적으로 여러분의 가족들이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요셉이 자기를 노예로 팔았던 동기간들을 용서했던 것처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이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나에게 악을 행하였으나 하나님은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셨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좋은 것을 통해서만 좋은 것을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나쁜 것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니 여러분은 가족들로부터 받은 이 상처를 너무 깊이 기억하지 말고, 오히려 이 상처 때문에 가족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크고 넓은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처에 대한 집요한 집착은 이기심이 발로입니다. 이기심 때문에 그 상처에 집착하는 것이지 사랑의 사람들은 이 상처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처를 기억하며 과거에 매여 있기에는 오늘 이 상처를 통하여 만난 하나님과의 관계가 귀하고, 이 하나님 때문에 새롭게 사랑하게 된 가족들과의 관계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가족을 진심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가족들과의 관계가 깨어졌다면 그 가족들과의 관계를 이번 명절에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이 여러분에게 잘못하고 여러분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이 있다면 여러분이 찾아가서 진심으로 용서해 주고 그리고 여러분이 가족과의 관계 속에 돌아오도록 여러분이 그들에게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믿음의 자녀이면서도 동기간에 의절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고, 간혹은 목회자이면서도 동기간에 얼굴도 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 하나님께 결코 칭찬 받을 수 없고,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무슨 섬김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복 받을 줄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을 배반하고 어찌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으며 불신자보다 악하면서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바로 이렇게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이 모든 가족들 중 여러분을 먼저 불렀고, 여러분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가족들이 여러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악하고 나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족들로 인하여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 모든 어려움들을 이기고 가족들을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고자 애쓰는 모든 헌신을 고결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이길 수 있는 사랑을,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열고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셔서 그 모든 것들을 이겨 극복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상처가 운명이고, 미움이 결국은 원수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상처를 영광으로 바꾸고,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고, 수치를 영광으로 바꿀 수 있는 원대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관계를 맺고 계신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자원을 기준으로 본다면 여러분이 가족들 중에, 동기간들 중에서, 그리고 친척들 중에서 부자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자원이 있습니다. 그 충만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를 용서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그 은혜의 세계의 비밀을 터득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극복하기 어려운 상대를 만날 때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놀랍게도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극복하며 살 수 있는 은혜와 용기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명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날이 오는 것을 매우 힘겨워 합니다. 왜냐하면 명절이 올적마다 깨어진 가족들과의 관계와 그 깨어진 가족들과의 관계 안에서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아무 힘이 없는 무력한 자신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께 순종하고 당신의 계명을 따르는 사람을 망가진 가정의 주인공으로 삼아주십니다. 그래서 그를 통하여 한 알의 밀알로 삼으셔서 그를 한 알의 밀알로 삼으셔서 그리고 썩게 하심으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거니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주님이 친히 그 본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을 미워하는 사람은 많이 있었지만 주님이 미워하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께 악을 행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주님은 복수한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신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셨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간악한 죄인들도 그들이 하나님 앞에 벌 받지 않도록 주님께 용서와 그리고 은혜를 빌어주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용서 받게 하셨고, 그래서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의와 공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자기를 기꺼이 버리신 예수의 사랑 때문에 값없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 땅과 하늘의 자원을 누리며 살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으니 가족들의 허물과 상처에는 눈 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지극히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용당하는 마음으로 희생하고 그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의무이고, 그리고 여러분이 이 어두운 세상을 빛의 자녀로 사는 방식인 것입니다.
IV. 적용과 결론
여러분이 오늘날 이렇게 여러분의 가족을 위해서 한없이 희생하고 그리고 섬기며 사는 그 일이 어렵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고 말입니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주님을 의지하며 가족들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오늘 명절입니다. 특별한 설명할만하고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다면 모두 여러분의 가족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들에게 베푸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그들의 관계를 기뻐하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우리 가족이 참으로 하나라는 것,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참 사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가족들을 섬겨서 기쁨의 명절을 맞이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아가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