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상한 마음인가?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나의 환난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시 77:1-3)
녹취자: 현경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은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마음은 우리의 모든 인격과 삶의 사령부와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마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삶을 통해서, 말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낼 수 밖에 없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마음으로 하고, 또 우리들이 신앙을 버리는 범죄도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항상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마음을 점령하기 위해서 악한 마귀와 그리고 또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유혹들이 밀려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언 4장 23절에서 잠언의 기자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명의 근원이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난다. 마음을 놓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없는것은 이끌어 내봤자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히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가 되고, 그 마음이 세상사랑에 사로잡히면 아주 세속적인 신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마음이 누구에게 점령당하고 누구에게 사로잡히느냐에 의해서 우리의 신앙생활과 우리의 인생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염려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재물을 사랑하지 말도록 우리에게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래서 보물을 이 땅에 쌓아두면서 사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말씀하신 후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또, 우리의 눈이 등불이기 때문에 그 등불이 어두워지게 되면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무엇에 의해서 지배되어가고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그 마음의 사랑하는 것에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사랑에 빠지고 나면 그 다음에 모든 생각과 가치관, 판단 이런 것들이 그 마음의 생각에 의해서 좌우되고 거기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철저한 싸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성도로서의 의무가 어떤 것인가를 배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든지 그것을 지키면서 살수 있는 그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항상 지켜질 때 그때에 우리의 신앙생활이 마치 생명의 원천에 뿌리를 박은 것 같은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다 이겁니다.
젊어서는 이성의 강력한 유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절대 연애 못하게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은 세상에 요즘시대에 김목사가 너무 고루하다 그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깊이 잘 생각해 보며는 제 이야기가 굉장히 사려 깊고 성경적이라는 것이 여러분들은 깨닫게 될 겁입니다. 그러고 거기에 대해서 충분한 대안도 가지고 있다 그겁니다. 젊어서 받는 그 유혹의 대부분은 이성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그 소문만 불륜으로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이런식으로 수많은 것들에 의해서 뺏기도록 그렇게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도전을 받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이냐면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고 그것을 실제로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냐면 그것이 우리들이 사랑하고 마음에 집착을 갖는것은 그게 있고 없고 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만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있는 사람보다 돈 없는 사람들이 돈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만 지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위가 아예 없는 낮고 천한 사람이 더 큰 명예욕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실제로 무슨 그런 어떤 범죄가 이루어지느냐 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추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추구해서 우리마음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시인이 하나님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 라고 하는 그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속상하다 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에 목마른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근데 젊었을 때에는 이성으로부터 그런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때가되면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합니다. 열렬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열렬히 결혼해야 합니다. 그 대신 한번만 해야 됩니다. 그렇게 삽니다. 그치만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될 것은 뭐냐하며는 우리가 하나님만을 깊이 사랑하게 되어서 그 하나님 때문에 다른 것들도 사랑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랑해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러사람이 같이 있는건 같이 있는 게 아닙니다. 단 둘이 있는거만 같이 있는거구, 한 사람을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은 소유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 혼자 소유해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그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갖는 겁니다. 충족되지 않는 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의 마음이 그런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성간에 빠지는 그 사랑은 아주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가서가 그렇게 풍부한 진리를 표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을 가장 근접하게 묘사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예증이 남녀 간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아가서가 그렇게 풍부한 진리를 묘사해 낼수 있는 것입니다. 근데, 이제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사랑 한다 그러면은 남편도 사랑하지 말고, 아이들도 사랑하지 말고, 난 내 직장도 사랑하고, 내 일도 사랑하는데 그런 것도 사랑하지 말라는 건가? 나에게는 사명이 있어서 교회도 사랑스럽고, 내 사역도 사랑스러운데 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런게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깊이 뜨겁게 사랑하고, 그 하나님만을 사랑하다 보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둘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첫째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도 이와 같으니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주님이 첫째, 둘째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두개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것입니다. 일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 하나님과 깊은 사랑에 빠져서 도무지 다른 것들과 사랑에 빠지지 않으며는 자신의 존재를 지탱하거나, 외로움을 달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건강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유혹을 젊어서는 받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다 달라는 건 아닙니다. 누구를 만나서 이성을 좋아한다고 할 때, 그 마음을 다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나누어갖자는 겁니다. 그게 첫 번째입니다. 나누어갖는데 나중에는 나누어갖다가 결국은 모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 이제 기반이 잡히게 되면, 그러면 사람들은 일에 대한 사랑에 빠집니다. 한참, 유능하게 일하면서 뻗어 나갈 때니까 말입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열심히 노력하면 사회적인 대우가 달라지는 그때가 30~40대 그 사이입니다. 그런데 이제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 상대방은 정해졌고, 남자들은 일에 막 미친 듯이 빠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빠지는 겁니다. 그런 사랑이 자꾸 또 그런것을 요구합니다. 나이가 들면 그 다음에는 물욕에 깊이 빠지게 되잖아요? 그러다보면 물질로서 자신을 보호해보려는 욕심에 빠집니다. 그 다음에는 물질에 대한 애착과 집착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명예에 대한 집착과 애착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일평생 사는 동안 우리의 마음을 향해서 수없이 더러운 손길들이 손을 내밉니다. 한번 만져보고, 한 번 빼앗아가고, 안되면 조금이라도 덜어갈려고 수없이 손길을 내미는 겁니다. 그거는 죽는날 까지 계속 되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일평생 하나님 앞에 단 한순간도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다가 죽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라는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말하지만, 하나님의 참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 분의 그 놀라운 사랑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근데, 이제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마음을 상한다 라고 할때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염려 때문에 마음을 상하는 것이고,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 때문에 마음을 상하는 겁니다. 희랍어로 염려한다는 말은 마음이 쪼개진다 라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나뉘어지는 겁니다. 염려하며는 마음이 나뉘어집니다. 이게 바로 세상 사랑의 정서와 하나님 사랑의 정서가 다른 겁니다. 세상 사랑의 정서는 이렇게 나뉘어 집니다. 그래가지고, 뭔가 이렇게 마음이 상하게 되며는 단일하던 사고가 쪼개지고, 감정적으로도 하나 되었던 것들이 막 흩트러지면서 혼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럼 혼란을 가져오게 되며는 사고가 헝클어지게 되고, 판단이 흐려지게 되어서 결국은 아주 쉽게 선악을 판단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또 선에 대한 올바른 것에 대한 집착이 약화되는 겁니다. 쉽게 미혹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시험에 들면 십중팔구는 악으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기도하신 다음 가르쳐주신 다음에 다만 악에서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겁니다.
근데,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상한 마음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상한 마음은 상하면 상할수록, 더 하나님을 향해서 집중이 되고 흩트러졌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집니다. 근데,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상한이라는 이 말이 히브리어로 말하자면 죽도록 두들겨 맞아서 멍이 든 상태가 됐기 때문에, 건드리기만 해도 죽을 것처럼 아픈 그런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살짝만 건드려주셔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것 같은 마음. 시편 42편에서 시편기자에게 말합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하다 그렇게 고백을 하는 겁니다. 근데, 망명 갔는데 그 동네사람들이 와 가지고, 야 너희 하나님이 어디있냐? 그렇게 한마디 했습니다. 너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너 왜 이렇게 우리나라 도망 왔냐? 한마디 하니까, 눈물이 막 쏟아지는데 뭐라고 고백하냐면 그 눈물로 음식을 삼을 정도로. 눈물이 하도 쏟아져서 그 눈물로 음식을 삼을 정도로. 그러니까 그 흐르는 눈물 때문에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그렇게 마음이 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해서 막 상해있는 그 마음에 ‘네 하나님이 어디 있냐?’ 그랬더니, 그냥 그 막 두들겨 맞아가지고 뭐라 그럴까? 두들겨 맞아서 의치러진 그 상처를 한번 가격을 하는 겁니다. 그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서 상한 마음입니다. 근데, 무엇인가를 집착하고 깊이 사랑하면, 다른 것들을 그렇게 사랑하고 애착하면 그런 마음이 안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들이 그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하고 그런 모습들을 이렇게 보며는 제가 별명을 붙이기를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돌가슴, 철마음 경연대회를 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그렇게 마음이 딱딱하다는 말입니다. 눈물도 없고, 웃음도 없고 그냥 지체를 봐도 휴지조각 본 것 같고, 기쁜 일도 없고 애통할일도 없고, 그런 겁니다. 그런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던져져도 항상 탕탕 튀기는 겁니다. 어떤 말씀이 던져져도 탕탕 튀기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잔뜩 뿌려놔도 땅이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훅 불면 그 사람이 다 날라가 버리는 겁니다.
근데, 재밌는 게 뭐냐 하면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향해서 그 돌가슴, 철마음이 되어버린 그 딱딱한 가슴이 이상하게 세상적인 욕망에 대해서는 아주 부드러운 밭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잘 뿌리를 내리는 그 마음 밭은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아주 딱딱합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을려고 합니다. 심겨지지가 않습니다. 유혹이 와도 유혹은 존재합니다 늘. 그런데, 훅 불면 그 유혹의 씨앗이 다 날라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마귀나 이 세상의 편에서 보면 아주 못된 마음입니다. 좀 자기들 향해서는 말이지, 옥토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지, 갖다 탁 뿌리며는, 야 저 짓해. 탁 갖다가 씨를 뿌리며는 탁 떨어지면서 쭉 뿌리를 내리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생각이 생각의 반복을 부르고, 반복된 생각이 행동을 부르고, 행동의 반복이 습관을 부릅니다. 습관의 반복이 인격을 고착화시켜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악한 것이 그 사람의 인격적인 특징이 되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사람들이 신앙의 세계에서 이 돌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것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이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 그 척박한 마음이 되었을 때에는, 그냥 척박한 마음이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자라서는 안 될 이 세상에 대한 수많은 욕망과 사랑, 죄악의 뿌리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뿌리를 내리고, 숲을 이루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세상에서 상한 마음, 세상 때문에 상한 마음은 상하면 상할수록, 자꾸 갈라지는데, 혼란에 빠지는데, 하나님 때문에 상한 마음은 계속 예리한 칼처럼 집중이 되고,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고 생각이 하나로 집중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한분을 향해서 그 생각과 의식과 모든 마음이 예리하게 모아지는 겁니다. 그러고, 그것은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는 겁니다. 그런 마음이 그런 마음에 기도가 실리면, 하늘보좌를 움직이는 겁니다. 그런 마음에 설교가 실리면, 가장 강퍅하고 냉담한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 마음에 섬김이 실리면, 자신을 딱 그 섬김을 위해서 산화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 마음이 전도에 실리면,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들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옛날에 찰스 피니가 맨하탄거리에서 아침에, 다른 사람들은 출근하는데 털썩 주저앉아서 땅바닥을 치면서 통곡하면서 하나님 저 사람들이 다 지옥으로 가는데, 나는 무얼 해야 합니까? 어린아이처럼 펑펑 운 게 그런 마음인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경이 볼 때에 그런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그리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으로 주님께 인정되는 겁니다. 그러한 신앙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런 질문을 할 겁니다. 그러면, 그 말이 사실이다 그럴 것 같으면, 그럼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말고 살아야 되겠습니까? 그 대답은 맞습니다. 그 질문은 맞는데, 아까 이야기했듯이 문제가 되는거는 뭐냐 하며는 하나님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사랑들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근데, 사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많은 사랑들은 그런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접어두고 서라도 놓칠수 없다 라고 하는 집착. 심지어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싫다 그래도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이것을 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을 집착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 시인과 같이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집중하고, 상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 자신의 손길을 바라는 그런 모습이 안 되는 겁니다. 여기에 보며는 그럼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이제 그만두셨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이제 다 하였는가? 하고 이제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은혜를 안 베푸실까? 이거는 진짜 하나님이 은혜를 안 베푸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한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하나님 한 분만을 갈망하는 간절한 갈망으로 짓이겨진 것 같이 상한 마음이 되었을 때에는 이미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성큼 들어온 상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주님이 말씀하신 겁니다. 이미 그런 마음, 그렇게 하나님과의 사랑,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 자기가 하나님께 소유되고 싶고, 자신이 하나님을 소유하고 싶은 그런 갈망에 사로잡혀 있는 그 마음의 상태 자체가 하나님의 통치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는 그런 마음이 생겨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간절히 갈망하며 기도하면, 그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결코 썰렁할 수 없습니다. 오늘 시인이 그런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 마음이 얼마나 나뉘어지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너무나 많은 행사를 하며는 안됩니다. 결혼식이야 어쩔 수 없지마는, 결혼식 하는 것 보고 또 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자꾸 많이 하십시오. 자주. 매주 해도 나는 얼마든지 주례 설 체력이 되니까. 제발 좀 매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빨리빨리들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대신, 결혼하기 위해서 헐떡거리는 청년들로 가득찬 교회가 돼서는 희망이 없다 이겁니다. 정말 하나님을 향한 갈망,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어떡하면 내가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의 빛 아래서 비쳐본 내 자신의 허물 많은 모습. 그리고 그런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보다 완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그런 현실을 아파하는 고통이 있는 그러한 마음으로 가득 찬 지체들이 모여 있는 교회. 그 교회가 소망이 있는 교회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정말 하나님 앞에 이런 자세와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이 말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마음이 상하는도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이게 하나님을 향한 절절한 사랑이 없이는 이런 마음이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주 깊이 상합니다. 아무것도 그 마음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이고, 그 한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인도 다른 것을 사랑하지 않았겠습니까? 틀림없이 이 시인도 자기 나라를 사랑했을 것이고, 자기 일을 사랑했을 것이고, 또 사랑하는 가족들도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시인에게 있어서는 차이점이 뭐냐 하며는 그런 모든 것들은 독립해서 존재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조금도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리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사랑에 온전히 복종된 그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온 사랑입니다. 아주 좋은 예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예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에 깊이 빠지게 되면, 이 세상에 사랑에 빠지기 전에 이 사람은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병이 있어도 병원에도 안가고 막 몸뚱아리를 굴리면서 막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열렬한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새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 사람 때문에 살아가는 그런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갑자기 건강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제 운동도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 병원에도 자주 드나들게 되고, 치료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친절하게 치료해주는 의사도 사랑스럽고 헬스클럽의 주인도 사랑스러운 겁니다. 자꾸 하니까, 운동도 사랑스러워지는 겁니다. 근데, 기분 나쁜 가정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열렬하게 사랑하던 그 남자가 어느 날 죽었다. 그럼, 그 사람은 다시 헬스클럽에도 안가고 다시 병원에도 안 다닐 겁니다. 어쩌면은 따라서 죽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순애보처럼 말입니다. 그것 보십시오. 그래서 그 여자가 그 남자를 깊이 사랑하게 되어서 순결에 대한 사랑도 생기고, 건강에 대한 사랑도 생겼는데 순결, 건강 그 다음에 운동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사랑이 생겼는데 그 사랑이 그럼 그 남자에게 바칠 사랑 중에 몇퍼센트의 사랑을 떼어내서 운동에도 주고, 순결에도 주고, 또 뭐 헬스클럽에도 주고 뭐 그렇게 나누어 준겁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사랑은 통합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 통합된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이렇게 예배시간이 따로 분리되고, 기도시간이 또 따로 분리되고 또 뭐 하는 시간이 따로 분리되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마음으로 함께 흐르는 시간입니다. 문제는 예배드리려 와서만 마음이 하나님의 것 되게 하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스위치가 안됩니다. 있던 데로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갈 때 또 그대로 가지고 갑니다. 약간씩 변하기는 하지마는, 그러나 그렇게 자기가 생각하는 것처럼 딱 여기 왔을 때는 갑자기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차고, 세상에 탁 나갔을 때는 그 마음이 싹 사라지고 그렇게 스위치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일주일동안 하나님의 마음을 잘 간직하기 위해서 예배하는 것이고, 또 예배하러 오기 위해서 일주일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의 것 되도록 그렇게 간직하고 사랑하면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살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가는 사람.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지나가는 것이고, 우리들이 집착하고 있는 모든 만남과 인연.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모든 사물들은 다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우리들이 아무것도 집착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 빈 마음이 하나님을 저절로 사랑하고, 뜨겁게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수많은 집착들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가득차고, 그렇게 해서 우리들이 순결해지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뵈옵게 되는 그런 지존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옳지 않은 생각이다 이것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자산은 사람들의 숫자나 화려한 건물이나 아니며는 외국에서 유학을 해 와가지고 학위를 받아 가져온 목회자의 이력이나 학력, 경력 그런 것들 아닙니다. 심지어는 목회자의 고상한 인품도 그 교회의 자산일수 없습니다.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최고의 자산이 뭘까? 뭘 꺼 같습니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뛰어난 자산이 뭡니까? 그게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성도들입니다. 그게 최고의 자산입니다.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지금 말한 것 다 바뀝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랑하고, 하나님에게만 고정되고, 그 하나님을 향해서 상한 마음으로 부르짖지 않을 수 없는 불붙는 마음을 성도들이 모두 가지고 있다고 칩시다. 교회 없으면 그 마음으로 달라고 부르짖으면 주시고, 목회자가 좀 무모하거나 혹은 부족하면 그 사람 바꿔달라고 기도하면 아마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땅이 없으면 땅을 달라고 기도하면 그 마음으로 기도하면 땅을 주실 거고, 또 뭐 필요합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보십시오. 무얼 안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에 합한데 무얼 안주시겠습니까? 존재 그 자체가 하나님에게 그리움이고, 하나님에게 그 사람이 거기 있다고 하는 존재 그 자체가 하나님에게 가슴 벅찬 기쁨인데, 무얼 안 주겠습니까? 무얼 안 주겠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다 주실 겁니다. 바로 그것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자산입니다.
그러니까 마귀의 입장에서는 교회가 그런 사람들로 가득차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어마어마한 위협입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그런 갈망하는 사람이 서너명 모이는 교회가 되도록 내버려두기 보다는 그건 끝까지 방해를 하고, 돌가슴, 철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수 만명의 교회를 메우는 것은 내버려둡니다. 왜? 아무것도 아니니까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해전술로 오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져오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데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오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들이 이러한 신앙의 원리를 지키면서 계속 신앙생활을 하나님 앞에 해 나갈 때 직분이 계속 주어지고, 그리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리고,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가면 자라갈수록 더 겸손해지고 성품이 하나님 닮아가고 주님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런 것들이 없는 가운데서 교회에서 자꾸 직분을 주며는 교회에 직분의 귀족화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동아리를 딱 치고 그리고 자신들의 텃세를 부리는 그런 교회로 바뀌어나가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결국은 노가다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몸으로 떼우는 식으로 그냥 막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잘 보십시오. 처음 주님을 영접하고 신앙의 첫발을 들여놓는 사람들의 마음은 여립니다. 돌가슴, 철마음이 아닙니다. 돌가슴, 철마음의 주인공들은 다 오래도록 교회 다녀서 산전수전, 화생방전까지 다 겪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묘리, 교회 돌아가는 거 다 알고 그래가지고 교회의 직분에 대한 존중심도 없고, 다 자기는 알거 안다면서 그런 사람들이 돌가슴, 철마음입니다.
결국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요구하는 다른 것들을 철저하게 벗겨내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의 참된 비밀이 하나님과의 완전한 사귐.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해서 자기를 모두 주신 것처럼 우리는 지금은 그렇게 살 수 없지만, 그러나, 하루하루 그제보다는 어제가,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가 하나님께 고백하고 바치는 이 사랑과 삶의 이 품질이 더 고결해져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에 부합한다라고 하는 그러한 발전을 이루면서 살아가야 됩니다. 이건 노가다 신앙이 아닙니다. 이건 진짜 거룩한 신앙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뭐 세월이 흘러가가지고 뭐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해 가지고 돈명함이 저절로 된다든지 우리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이미 교회를 오래다니면 저절로 돌가슴이 되게 돼있다. 그렇게 딱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여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깨뜨려지고 주님의 사랑에 대한 눈물과 감격이 있는 것은 초보시절의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패역한 생각이고, 그런 것들이 교회의 생명의 씨를 말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걸터앉아서 목회하고, 교회를 다스리니까 조국교회가 이렇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여린 마음이 어떻게 유지됩니까? 노가다 신앙으로는 유지가 안 된다 말입니다. 노가다 신앙이 뭡니까? 은혜 오면 받고 말면 그만두고 그리고 뭔가 목표가 있으면 그냥 몸으로 밀어붙이는 그런 식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한계가 있습니다. 텅빈머리로 말입니다. 그냥 뜨거운 불이나 받아야 되겠다고 박수치면서 기도원 쫓아다니는 그런 신앙은 결국 노가다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가 어떠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깊이가 어떠한지를 깊이 헤아리면서 그 진리 앞에서 진리의 빛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러한 신앙적인 생활이 얼마나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깊은 목마름에 기초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 수시로 점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의 경험을 보면 말입니다. 돌가슴, 철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죽어도 회개 안합니다. 그러니까, 회개도 역시 신앙의 초보에 일어나는 일이지 교회에서 오래 되가지고 말이지 딱딱해진 신자가 되고 나며는, 회개를 안합니다. 그 회개는 어떤 때 일어나는 현상이냐 하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기울어지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따스하게 유지될 때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거의 짓지 않았어도 하나님과의 따스한 사랑의 교제를 되찾거나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이 회개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재미있는 현상이 어떤 현상이 일어나냐면 말입니다. 하나님을 깊게 사랑하고, 주 안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살아있는 신앙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회개합니다. 적게 죄를 지은 사람일수록 더 많이 회개하고 주님의 마음을 조금 아프게 해드린 사람일수록 그 마음 아프게 해드린 것에 대해서 더 많이 아파한단 말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앉았던 자리에서 하나님만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가슴이 저미는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고 울어본 적이 언제인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그렇게 의롭습니까? 그게 결국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잃어버리고, 그럼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잃어버렸는데도 마음 자체가 오늘 시인이 이야기하는 상한 마음이 안 되는 겁니다. 왜? 쓸데 없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많은 겁니다. 필요 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 너무나 강하고,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하나님보시기에는 사랑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겁니다.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도 거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을 버리며 사는 것 같아도 집요한 집착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모든 것들을 분별하는 것이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세상을 내려다보시면서 쉬지 않고 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각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셔서 저울에 달아보시는 일입니다.
정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오늘 이 시인이 바라고 있는 것 같은 이런 얻어맞아서 누르기만 해도 자지러질 것 같이 아픈 이런 마음. 그래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상한 마음. 하나님 자신을 필요로 하는데 하나님이 너무나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데서 비롯되는 아픈 마음. 그런 목마름. 이런 것들이 정말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들의 모든 신앙생활에 빛이 들어오고, 활기가 넘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그런 마음으로 열렬히 찬양하고, 그런 마음으로 설교하고, 그런 마음으로 구제하고, 그런 마음으로 섬기고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사는 삶.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전심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며 사는 삶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창조하신 아름다운 산, 산에 묻힌 아름다운 금광, 모든 것들이 주님의 것이고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것이 아닌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마음입니다. 근데, 그것도 하나님의 깊은 사랑속으로 들어가서 그 분과 깊이 포옹하고 있는 상태가 되면 내 마음이 그분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분이 너 이거해라, 즉시 그 분의 조종대로 움직이는 겁니다 이게. 해야지. 너 죽어라! 죽어야지. 너 가라! 가야지. 너 이거 하지마라. 하지 말아야지. 즉각 즉각 옵니다. 근데, 그런 하나님과의 참된 사랑에서 멀어지고 나며는 하나님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마음대로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주인이 우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그렇게 간절하게 뭐라고 권했습니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와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니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 주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바쳤다는 뜻입니다. 그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과의 따뜻한 교제, 하나님께만 깊이 집중된 그런 상한 마음에서 성취된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 이런 것들이 없을 경우에 마음의 주인이 뭐 하나님꺼라구요? 절대 하나님꺼 아닙니다. 하나님도 억지로 못하십니다. 그 마음을. 자기 것이랍니다. 자기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에 없는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수없이 예배를 참석했는데, 그 사람은 바뀌지 않습니다. 수없이 하나님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이 그를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수없이 기도했는데, 부르짖는 소리는 교회당을 뒤흔들지만, 하나님의 보좌는 썰렁합니다. 수없이 많이 섬겼지만, 그거는 하나님을 사랑한 동기에서 한 것이 아니라, 다 제 좋아서 한 일입니다. 상 받을 것이 없다 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 주인은 우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들이 정말 이번 사경회에도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면 마음을 먼저 청소하고 와야 합니다. 쓸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과도하게 집착하던 것들 버리십시오. 그리고 매일 이런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걸림돌이 되었었지 생각되는 것들 버리십시오. 그리고, 그런 집착들을 버리십시오. 사람에 대한 과도한 기대, 인간에 대한 지나친 집착, 이런것도 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참된 사랑의 대상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한분에 의해서만 내 자신의 마음과 삶 전체가 정복되는 것이 만족스럽습니다 라는 고백이 있을때 그때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모든 생명의 원천이 되어서 그래서 우리의 삶을 그 생명의 샘의 원천에서 흘러나온 은혜의 물이 두루 적시면서 흘러서 척박하던 우리의 삶에 꽃피고 새 노래하는 개울이 흐르고, 그리고 풀벌레들이 깃드는 그런 아름다운 정원과 같은 생명이 있는 삶으로 바꿔 놓으시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이런 변화를 이번 사경회 때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에 깊이 청소하는 그런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 자신 때문에 지치러질 것 같이 그런 상한 마음으로 우리들이 이 사경회에 참석한다면 하나님이 왜 우리를 거저 돌려보내시겠습니까?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