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보게 하라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요 4:28-30).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사마리아 여인을 예수님이 만나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는바와같이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변절의 땅이라고 여기던 곳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지방은 위로부터 갈릴리 가운데가 사마리아 맨 아래쪽 부분이 유대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는 바로 옛날에 예수님때로부터 약 700년전쯤을 기준으로 보면 부강국 이스라엘의 수도가 바로 사마리아였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라고 하는 말 자체가 부강국을 가르키는 제육법적인 언어로 쓰여집니다. 그런데 그 땅이 먼저 아수르라는 나라 역사적으로 배운 아스리아라는 나라에서 멸망을 먼저 당합니다. 그렇게 멸망 당하고 나서 그 후에 180년전쯤 지나고 난 다음에 망하게 됩니다. 아수르에 의해 나라가 망한 다음에 아수르는 3인 정책이라고 해서 이 땅 자체를 국제화 하는 정책을 세웠습니다. 민족적인 동질성을 말살시키는 제일 훌륭한 방법은 피를 섞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민족성 자체가 서로 결혼을 통해서 중화가 일어나서 민족적인 고유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민족적으로 쉽게 섞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그들이 율법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부터 사람들은 여기에 많은 혼혈아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불결한 땅이라고 여기고 그래서 도저히 종교적으로 왕래를 안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이들은 사마리아 5경이라고 하는 5경에 뼈대를 두고는 있지만 많은 해석이 첨가된 자기 나름대로의 해설서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이랬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지역을 들어가신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었고 또 여기에 물을 길러 나오던 여자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있는 자도 자기의 남편이 아닌 그런 비참한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말을 건네고 말하자면 전도를 하신 것입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이 전해주는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바로 자기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믿음을 갖는 것은 결코 외모에 속하지 않습니다. 참 신기한 것이 그래서 우리들이 전도를 해 보면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이 참 신기하게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해 보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이 신비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도해 보면 우리가 믿은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여자에게 말씀을 전했더니 유대인들이 다 멸시하던 이 여자가 오히려 유대인들은 거절한 복음을 사마리아 땅에서 받아 들였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이 여자가 행한 일이 제일 먼저 나오는데 그것이 뭐냐면 사람들에게 들어가서 제일 먼저 전도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이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이것은 자기가 복음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그 기쁨의 삶을 살아가면 그에게 강요하지 않아도 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은 그 사람을 통해서 많이 전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은 결국 마음에 큰 기쁨을 느끼고 감격한 사람에게 감격한 사람들이 즐거워 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전도를 위한 훈련은 필요하지만 전도는 계획을 하고 밀어부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마음속에 예수를 만난 기쁨이 있을때 그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의 과거를 돌아보면 언제 전도를 제일 많이 했는가 하면 우리가 주님 만나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고 기뻤을때, 오늘 열린신문 뒷페이지 간증을 읽어 보십시요.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고 은혜에 감격하고 나니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가족들 그리고 친척들, 이웃들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동이까지 버려두고 읍내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도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고 만났으면 이것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속에 충만해지도록 그렇게 우리의 신앙생활을 복음을 중심으로 감화를 받도록 그렇게 우리의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이 여자가 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전한 메세지 입니다. 그런데 내용이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은 사도들이 설교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따라서 시편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라 오셨고 우리들이 죄가 많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우리의 십자가을 위해 죽으셨고 저주를 받으셨는데 그것은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이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신것도 바로 이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전한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에게 한 말이 무엇인가 하면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렇게 외쳤습니다. 사실 자기가 행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섯번 시집갔지만 지금 있는 남편도 자기 남편이 아닌 부끄러운 과거 아닙니까? 이것을 사실 동네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거의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이 싫어서 남들이 물 길지 않는 한낮에 물동이를 이고 조용히 혼자 이 우물가를 찿았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게 부끄러운 과거를 안고 있고 사람들에게 자기의 일신상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알려졌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화제에 오르기를 싫어하던 여자 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사람들에게 예수님 한테 자기가 가장 충격 받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해 준 것입니다. 가장 충격 받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물을 주겠다 무엇을 하겠다 이것보다 더 충격을 받은 것은 네게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가 남편이 없다고 하는 말이 옳도다 하는 그 말씀속에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자기에게 받은 가장 충격적인 인상을 담보로해서 사람들에게 네게 일어난 놀라운 일들을 이 사람이 다 알고 있었는데 메시아가 아니시라면 어떻게 이 모든것을 알고 나에게 가르쳐 주실수 있었겠느냐 그러니까 너희는 이 분을 와서 만나 보라 라고 권한것입니다. 사실 가장 좋은 전도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했던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만나고 교리의 내용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서 그래서 사람들에게 찿아가서 이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물어보면 이 모든것을 대답할 수 있고 그렇게 전도하는것이 최고이 전도이고 그것이 진짜 전도입니다. 전도라는 것은 도를 전하는 것인데 그 도는 곧 길이요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하셨으니까 결국은 예수님을 가르키는 것인데 그러면 자기가 무엇을 알아야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온전히 가르칠 수 있다면 그것이 확실한 전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도 이것이 외적인 부르심으로서 명확한 요건을 갖추려면 몇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인간의 죄인됨, 그리스도의 구속, 그를 믿는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 이런것들을 충분히 내용이 있게끔 전해야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그 영혼을 부르시는 부르심으로서 유효한 내용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이 여자가 와 보아라 한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제대로 된 전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방금 예수님을 만났고 무엇인가 예수님에 관해서 체계적을 말할 수 있는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여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예수님께 데리고 가서 예수님께 직접 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직접 물어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하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은 다 진술할 수 없는 복음의 내용을 예수님으로 부터 직접 들려주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와 보라 하고 그렇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그들이 묻고 논쟁할 때 그 모든 것을 답하는 것은 우리들이 충분한 훈련이 필요하고 또 어떤 사람은 충분히 가르쳐주어도 말 주변이 모자라서 그것을 말로 못합니다. 그냥 속으로 끙끙대면서 저것은 아닌데 저것은 아닌데 할 뿐 입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잘 이해할 뿐 아니라 가르칠 수 있는 은사도 있어서 그것을 가르쳐주면 마음속에서 잘 정리해서 이모저모로 구획을 지어서 사람들의 입에 떠 넣어주고 또 반론을 제기할때는 아주 놀라운 순발력으로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변증하고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그런 역할들을 합니다. 그것이 참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을 못해도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사람에게 데리고 와서 그 사람에게 복음을 듣게 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교회에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복음을 듣게 하는 그 일은 우리가 조금만 애를 쓰면 할 수 있는 일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여자처럼 예수님이 이 여자에게 이렇게 주님은 만나는 은혜를 주신후에 전도하라는 말씀이 한번도 안나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예수님이 시켰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진리의 말씀을 듣고 영혼이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으니까 그것을 깊이 깨달은 후에는 곧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지 못한 영혼들이 불쌍하다는 마음이 밀려 오는 것입니다. 그 불쌍한 마음이 밀려오자 이 여자는 예수님의 명령이 없어도 예수님의 마음 안에 있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달려 가서 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우리는 견고해 져야 하는데 견고해 진다고 하는것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속에 진리의 빛과 은혜의 열이 부어지는 가운데 생명이 있을때 이것이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나무가 뿌리를 쭉 뻗고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지어 놓고 몇년이 지나가도 큰 나무에 묶어 놓은 그러한 버팀목들을 빼버리지 못하고 붙여 두는 것 여러분 아마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저 나무를 심어 놓고 거의 일년이 넘도록 그 나무를 빼버리지 못하고 버팀목으로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몇그루의 나무가 죽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죽은 나무는 빼 버리고 다시 새 가족이 오고 이렇게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6-7년이 흐르니까 이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면서 끄떡 없습니다. 왠만한 것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서 그렇게 잎과 가지를 뻗어 내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렇게 생명력 있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계속 받고 그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보십시요. 우리들이 말씀의 지식으로 말하자면 처음 믿은 사람만 하겠습니까?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지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말하자면 이제 믿기 시작한 사람하고 꼭 같겠습니까? 오래 믿은 사람이 훨씬 낳습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 좋은 지식, 좋은 봉사, 좋은 헌신,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속에 하나님의 복음이 끊임없이 역사해서 영혼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사랑이 가슴속에서 계속 솟구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바로 그렇게 복음이 역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부끄러운 자기의 과거를 재료 삼아서 내게로 오라 여기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 이 분을 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는 길거리에서 전도 부인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전도 부인들인 늘 한복을 입고 다녔니다. 그리고 시장 어구 같은데서 사람들에게 간증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약장수 하고 똑같습니다. 손에 신약과 구약이 들려 있다는 차이뿐이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땀을 뻘뻘 흘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가 어떻게 결혼을 했고 그 다음에 남편을 사별했고 6.25를 만났고 이런 이야기를 고생한 이야기를 하면서 에수님이 자기에게 찿아 오셔서 은헤를 베푸셨다는 그런 이야기를 쭉 하면 마지막에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예수를 믿겠다고 손을 들면 같이 따라 다니는 사람이 저는 어려서 잘 모르겠는데 아마 결신 카드를 쓰고 교회가 어디라고 소개해 주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젊은 여자들이 전도 부인의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는 그 간증을 저도 여러번 들었는데 들으면서 거기서 손을 들고, 시장 바구니 옆에 들고 손을 들고 자기도 예수 믿겠노라고 하는 광경을 지금의 길음시장이라 이런곳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참 놀라운 것입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돈을 준다면 그 일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먹을 것을 준다면 그 일을 하겠습니까? 그 천한 시장 바닥에서 사람들에게 에워쌓여서 때로는 조롱도 받고 했을텐데 진짜 예수 믿은 간증이 가슴속에 역사 하니까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이 사람들이 그렇게 절실하게 하나님 앞에 외치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오늘날 이런 열정이 필요 합니다. 아마 그런 전도부인의 역할은 오늘 교역자들보고 하라고 해도 굉장히 힘들어 할 것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사람들 보다 약간 높은데 블록 몇장 놓고 올라가서 그렇게 열렬하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황당해 보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 믿고자 하는 소원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니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 났는데 동네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다가 왔습니다. 사실 이 여자가 그 동네에서 아주 유력한 귀부인이었다면, 돈이 많은 재산가 였다면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선한일을 많이 해서 자비를 베푼 사람이었다면 이 광경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네 사람에게 낙인 찍힌 죄인 이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정상적인 시집이 아니고 지금 있는 그 사람도 자기의 남편이 아닌 그런 사람으로 낙인 찍혀서 아무 희망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분이 내게 모든 일을 말한 그 분이다. 그리스도가 아니시겠느냐? 이분께 나아와라 하고 사람들에게 전할때 그것은 역설적으로 아주 놀라운 권위를 가지고 사람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권위라고 하는것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가 직접 보고 들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간증이 가지는 유익이 그것입니다. 내가 그 교회에 다녀 봤더니 변화 되더라 그럴때에는 변화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놀라운 권위를 갖는 것입니다. 나를 보아라. 내가 바뀌었지 않느냐? 아주 굉장한 권위를 갖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마리아 여인의 간증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 왔습니다. 여러분들의 평판이 동네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여자도 이렇게 전도할 수 있었으면 아마 여러분들은 더 잘 전도할 수 있겠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지만 누구도 당신이 직접 찿아 가셔서 전도 하는 사람 없고 대부분의 경우 모두 자기의 사랑을 안 사람을 보내어서 그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을 파송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주님께로 돌아 오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온 마음을 다해서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잘 감화시켜 그래서 교회에 와서 주님의 복음을 듣게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