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보험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삼 1:4).
이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가이요라고 하는 사람과 그 집의 식구들에게 보낸 편지일 것이다 라고 여겨집니다. 이것이 교회에서 두루 회람 형식으로 읽히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진 책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에서 요한은 가이요가 어디 사는 사람인지, 뭐 성경을 보아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같이 살고 있지는 않고 떨어져 있는데, 그 목회를 하면서 만난 목자와 양의 관계겠죠. 이 사람에 대한 소식을 누군가 인편에 전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도 역시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 안에 있는 형제였어요. 그래서 와서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사람들이 이 가이요 안에서 진리를 보았다는 거예요. 진리를. 그러니까 이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진리가 마음과 삶 속에 깊이 베어서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인 이 진리를 깊이 보여주면서 살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것을 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형제들이 같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때에 이 장로라고 표현되고 있는 요한이 너무 기쁜 나머지 이 서신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는 물론 여기에서는 지금 이게 자기가 직접 낳은 자식이 아니라 영적인 자녀이죠. 그 영적인 자녀로서 이 장로가 이 요한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 기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여기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면 만약에 이 자녀가 영적인 자녀가 아니라 만약에 우리 몸으로 직접 낳은 자식들이라면, 그러면 그 자식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되 진리가 자신의 삶속에 깊이 베여서 그래서 그 진리를 드러내 보여주는 삶을 산다고 인정을 받는다면, 부모의 마음에 얼마나 기쁘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은 예전에도 교육열이 대단했지만, 지금의 이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이 욕구는 사실 과거의 그 교육의 욕구와는 강도도 다르지만, 방향도 많이 달라요. 그 강도라는 것은 뭐냐 하면 옛날에도 교육을 강조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냥 그냥 그냥 대충 학교를 다니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그냥 대충 공부를 따라가는 아이들은 따라올 수 없고 계속 뒤처지게 되고, 그래서 부모들이 비정상적으로 이렇게 많이 물질과 모든 것을 들여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 것이죠. 방향에서도 마찬 가지인게, 예전에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 물론 좋은 학교를 들어가고 이러한 것도 중요했었지만, 그것과 함께 그래도 잘 교육을 받아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러한 것들이 굉장히 강조가 되었어요. 요즘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도 잘 안쓰는 것 같아요. 들어봤어요?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훌륭하다라는 개념에는 물론 자기가 경쟁에서 이겨서 좋은 지위에 오른다는 것도 포함되지만,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갖춘 것이 있고, 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존경과 덕망 같은 것들도 포함된 개념이었거든요. 그래서 또 더 사라진 것은 착한 사람이 되라. 그 말은 완벽하게 사라진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자녀들에게 그런 말을 해 본적이 있나 궁금해요. 시대 정신이 그러한 말들을 막 쓸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착한 사람이 되거라, 그러한 말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교육의 방향이 뭐냐 하면, 어떻게 하면 이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겠느냐 그거예요.
(예화) 그러면 생각해 보세요. 어느 부모가 그러한 이야기를 합디다. 옛날에 언젠가 오래된 일인데, 그 대학이 기부금을 받고 자녀들을 입학해 준 것 때문에 발칵 뒤짚힌 적이 있었어요. 돈이 그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 돈이었어요. 그래서 이제 이것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불평을 했더니 돈있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그거예요. 예를 들면 좋은 대학교를 들어가는데, 백억을 줘야 한다고 치자 이거예요. 백억까지는 아니고, 십억을 줘야 한다고 치자 이거예요. 십억이라고 하는 돈을 자녀에게 쥐어주면, 그것이 자녀 손에서 잘 번식이 되어서 사업을 하든지 재산을 유지해서 그 아이가 평생 그것을 가지고 있을 20%도 안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아이가 만약에 좋은 대학을 나오면, 그 자체가 이 아이를 위한 아주 훌륭한 보험이 된다는 거죠.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면 그렇기 때문에 교육에 대해서 그렇게 치열하게 애를 쓰는 거죠. 요즘 보니까 이제는 대학 입학 고사 보고 이럴 때, 이제 그 사람의 단순한 실력만이 아니라 무슨 그게 뭐야, 저 무슨 책을 얼마나 읽었나 그러한 것들도 이제는 본대요. 그랬더니 이제 그것을 어떻게 많이 본 경력을 쌓을 수 있을까 하는 과외가 또 나왔어요. 그래서 결국은 소위 영어로는 있지도 않은 영어이지만, 스펙인지 무엇인가를 쌓는 도구가 되는 거예요. 그러한 식으로 이제 자꾸 교육이 변질되는 이유도 결국은 뭐냐 하면, 아이를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며 살 수 있는 그러한 보험으로서 아이들에게 교육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에요.
아마 여러분들도 똑같이 우리나라같이 아직 사회보장이 충분하지 않고 미래가 불안정한 나라에서는 자녀들에게 무엇인가 보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제로 보험을 들면, 보험이고, 그 보험을 대치할 수 있도록 유산을 남겨준다든지, 좋은 학벌을 남겨준다든지, 아니면 망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좋은 집에 시집을 보낸다든지 등등의 보험들을 우리들이 생각을 하고 있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결국 우리의 행복과 안전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재산이나 물질, 그리고 사회적인 그러한 경력, 이러한 것들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에요. 결국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이 그리고 간 궤적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어린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부모의 통제를 잘 따라서 부모의 마음 안에는 이 자식이 내 손안에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 아이들이 통제할 수 없는 자녀들이 되는 것이에요. 어렸을 때에는 부모이게 껌 딱지처럼 달라붙으니까 부모가 그 친근함을 가지고 권력처럼 활용해서 아이를 복종시킬 수 있고, 좀 큰 다음에는 아이들을 완력으로 때리거나 야단을 쳐서 폭력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복종시킬 수 있어요. 좀 머리가 큰 다음에는 용돈이라는 미끼를 가지고 권력으로 삼아서 아이를 지배할 수 있어요. 그러나 아이들이 더 성장하고 철이 들게 되면, 부모들로서는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거예요. 이렇게 될 때에 이 자녀들을 누가 통제할 수 있을거냐 이거죠.
그래서 늘 말씀드리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칠 수 있는 두 시기가 오는데, 두 기회가 오는데 한번은 아주 부모를, 특히 엄마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유아기이고, 그 다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즉시 회심했을 때의 그를 이끌어 주는 사람이에요. 그가 목회자 일수도 있고, 구역장일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있고, 선생님일 수도 있어요. 공통점은 뭐냐 하면, 하나는 육체적인 유아기이고, 하나는 영적인 유아기라는 거죠. 이때에 아이들에게 살아갈 길, 인생의 길을 가장 잘 가르쳐 줄수 있고 그러니까 가장 좋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고, 그런데 이제 이 유아가 유아가 아닌 어른이 나이가 든 사람들이 회심했을 때에는 회심했을 그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어린 아이처럼 받아들이려고 하는 마음이 있지만, 이미 하나님 없이 살아온 삶이 자신의 마음 안에서 바깥에서 상당히 굳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굳어있는 사람들이 결국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에는 그 말씀대로 잘 살지만,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지 못할 때에는,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수가 없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미 몸에 익은 완고함이 영적인 유아기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은혜에서 멀어지기만 하면, 강한 힘으로 작용해서 옛 생활로 돌아가게 만드는 저항력으로 작용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뭐냐 하면 어렸을 때, 아직 타락하고 악한 성품이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충분히 발현되고 자기 안에 뿌리를 내리기 전에 그때에 아이들이 회심을 해서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잘 붙들리는 사람들이 되면, 최상의 케이스가 되는 거예요.
(예화) 여러분, 보면 제가 아주 싫어하는 것인데, 저는 분제를 아주 싫어해요. 가끔 분제를 선물로 가져 오는데, 복도에다가 내놓습니다. 아주 이쁜 것이라도, 제가 싫어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정말 예뻐요. 충청도 인가 어디 가면 정2품 소나무 있잖아요. 벼락 맞아서 뿌러졌는데, 뿌러지기 전에 오죽 했으면 정2품 소나무겠어요. 대칭이 정확하게 맞아요. 정말 예뻐요. 그것을 어쩌면 조그만 소나무가 그것과 똑같이 닮은 거예요. 그래서 감탄을 했어요. 가까이 가서 보니까 그게 파란 잎사귀 속에 가느다란 구리 철사로 칭칭 감겨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꺾어서 그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것을 딱 보는 순간에 마치 나를 칭칭 구리로 감아 놓은 것처럼 아주 혐오 스럽게 느껴 졌어요. 그래서 저 나무가 그 자기 자라고 싶은게 있을텐데, 저렇게 사람이 만들어서 잎사귀로 가려 놓으니까 안 보이잖아요. 그것을 보면서 분제를 싫어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어요. 할수만 있으면 사람들을 억압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똑같이 나무들을 그렇게 여러 가지 형형 색색의 모양으로 분제를 만들 때, 거기에다가 성장 억제제를 주고 그렇게 해서 나무가 자라지 못하도록 해서 하는 거예요. 주먹만한 나무가 백년이 되었느니, 오십 년이 되었느니 그러거든요. 그렇게 하면서 자라는 거거든요. 그 나무들을 어떠한 형태로 만들 때에 이미 자란 나무는 안돼요. 이미 다 자란 나무를 아무리 쇠 파이프로 두르고, 무슨 구리로 두르고 잡아가지고 안돼요. 그래서 나무가 어렸을 때에 프래임을 쳐서 그 프래임을 따라서 자라게 할 때에, 그 때에 나무가 자라는 거예요. 가끔 보면 여러분 나무 같은 것들이 넝쿨을 지어서 통로처럼 터널처럼 되어 있는 곳 가끔 보잖아요. 나무가 이쪽에서 이렇게 자랐을 때, 쇠 덩어리나 돌 덩어리들을 매달아서 추를 매달아서 이쪽에서 잡아 당깁니다. 활처럼 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면 아직 나무가 약하기 때문에 계속 자라면서 활처럼 휜 채로 자라게 되는 거죠. 그러면 쉽게 휘고 꺾어질 그러한 나무를 반듯한 것으로 붙들어 매어서 감아 놓으면 똑바로 자라겠죠.
아이가 어렸을 때 회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부르짖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에요. 여러분 중에 상당수는 이미 성인이 다 되고 배울 것 다 배우고 굳어질대로 다 굳어진 상태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죠. 그때에 여러분 자신도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도 쉽게 변화되어지지 않는 자신, 은혜를 받을 때에는 잡아 댕겨서 꺾어 지는 것 같은데, 잠깐만 식으면 다시 원위치로 튕겨져 돌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죽도록 괴로웠던 적이 많을 거예요. 그러면 그것이 바로 어른들이 되어서 그 행실이나 모든 것을 고쳐보려고 할 때에 경험하는 한계이며, 어려움이에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린 아이일 적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깊이 회심하게 되면 그러면 이 아이들은 부모가 통제하지 않아도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는 아이들이 되는 것이죠. 이 중생자의 특성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움직이는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들이 이제 부모의 용돈 안주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고, 매맞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을 정도의 나이가 되고 나면, 이 실제적으로 부모는 아이를 통제할 수단을 잃어버리게 되요. 야단을 치고 매를 들어도 어렸을 때지, 이미 커버리고 나면 부모가 완력으로 아이들을 야단치는 것이 불가능하여 그때 가장 좋은 무기는 잔소리죠. 하여튼 듣기 싫을 정도로 계속 잔소리를 하면, 아이들이 귀찮아서 가끔 그 말을 들어준단 말이죠. 그런데 이것은 진정으로 자녀를 통제하는 것이라 말할 수 없어요. 잔소리는 부부지간에도 마찬가지이고, 자녀와 부모 지간에도 마찬가지이고,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면 관계에 상처가 생기게 되요. 말의 무게와 공정성이 떨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중요할 때 이야기를 하는대도 무게 없는 잔소리로 듣는 거예요. 그렇게 되지 때문에, 사실 실제적으로 다큰 자녀들을 통제할 수단이 부모에게는 거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중생하고 회심하게 되면, 이 아이들의 심령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경향성들이 생겨나게 되요. 중생한 자녀들, 회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안 자녀들의 마음속에는 주님의 음성에 대한 감각이 있어요.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음성이 자신의 마음속에 들릴때에 성령으로 역사하시면 자신을 꺾을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이것이 사실은 아이들을 교육하고 가르치는 부모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에요.
우리가 자녀들에게 나쁜 어떠한 성향이 있을 때 매를 든다면, 그것을 움츠리게 만드는 것이지, 없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잖아요. 용돈을 가지고 협박을 해도 더 큰 이익 때문에 사실 굴복을 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그렇게 그 마음 속에서 그 일을 하고 싶은 악한 경향성이 사라진게 아니잖아요. 이러한 것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으로 자녀들을 다루는 한계에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자녀들 스스로 신앙을 갖고,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유일한 대안이고 그리고 자녀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이에요.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에게 먹인다 할지라도, 이 아이가 정말 거듭나고 회심한 아이가 아니면, 그 하나님의 말씀도 이 아이에게는 잔소리로 밖에 들리는 것이 아니에요. 중생한 자녀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느끼는 사랑과 권위가 있어요. 그것은 우리가 자녀들에게 손에서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가르쳐 넣어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니에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께서 직접 그 마음에 오셔서 하실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러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 자녀들이 자신이 잘못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부모가 여러차례 혼낼 때에는 겨우 잔소리에 그치지 않지만,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으로 역사하여 그 아이를 회개시키고 그 아이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을 그 때에 아이는 그 행실에서 돌이킬 수 있는 큰 힘을 갖게 되는 거죠.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자녀를 보고 말 안듣는다고 야단을 치지만, 말 안듣는 것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이잖아요. 목회자가 말한다고 말 잘 듣습니까? 아니잖아요.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거기에 순종을 합니까. 그렇게 고분고분. 안하잖아요. 그러면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자녀들을 굴복시키고 복종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에요. 그래서 제일 좋은 것은 여러분들의 자녀를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말하였던 유언적인 설교처럼 그 아이를 주와 및 하나님의 말씀께 부탁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이 속에 주님의 말씀이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해서 그가 스스로 기도속에서 예배속에서 만나는 하나님 앞에 복종하고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신앙생활을 스스로 하게 되는 것이죠. 부모 때문에 이 일을 하고, 부모 때문에 이 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애에게 직접 영향을 행사하셔서 그래서 그를 옳은 길로 이끌어 주는 것이죠. 물론 부모의 도움이 언제나 필요하지만, 사실은 우리보다도 더 완전한 부모님은 하나님이시죠. 아이들이 부모인 여러분의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보장이 없겠죠. 그렇지만 그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나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는 보장이 없어요.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여러분의 인생관으로 훈련을 시키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으로 훈련을 시킨다면 만약에 여러분들이 처한 것과는 다른 세계 속에서 이 아이가 살게 되고 여러분들의 인생관을 형성한 환경과는 다른 속에서 이 아이가 살게된다면 그 아이는 부적응자가 되고 말거에요. 그러나 그 아이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은 모든 세계, 모든 상황과 관계를 맺으시기 때문에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지혜 안에서 그는 슬기로운 삶을 살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것이고, 이것이 여러분들의 자녀를 위해 들어줄 수 있는 최고의 보험이에요. 최고의 보험이에요. 최고의 보험이에요.
그 아이들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들이 너무 많은 유산을 물려주고, 너무 평탄한 환경이 계속되면 아이들은 반드시 부패합니다. 이 세상에 누가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또 물질이 부족하고 너무 가난해 보십시오. 그 자체가 아이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쳐서 아주 나쁜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어떻게 막을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환경에 놓여 있든지 간에 그 환경에 의해서 그 사람이 행복하게 되고 안전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에요. 모든 문제는 결국은 그 사람속에서 나오는 것이죠. 심지가 곧고 올바른 어떠한 사람들은 시련을 만났기 때문에 더욱 강인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숙하고 좋은 환경을 만났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너그러울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삶으로 살아가서 이웃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만약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움직여지지 않는 사람이 된다면, 자기 자신의 부패함으로 말미암아 어느 환경과 접촉하든지 간에 망가진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그러한 망가진 사람을 위하여 들어줄 수 있는 물질, 교육, 장래의 환경, 건강, 이러한 것들에 대한 보험이 그를 영구히 붙들어서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한 것이죠. 그래서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진리에 속하는 삶을 사는 것이에요. 물론 진리에 속한 삶을 산다고 해서 그 아이가 모두 이 세상에서도 권력과 재물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것은 삶의 양상이지, 본질은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을 비우고 정직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자식들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로 한번 적용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돈이 많고 그리고 인간성이 망가뜨려져서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끊임없이 고통을 받으며 그렇게 부적응자의 삶을 택하겠습니까. 아니면 물질이 적어도 자유롭고 인간다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아이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최고의 부자가 될지, 기독교 신앙은 이 아이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권력자가 될지, 기독교 신앙은 그 아이가 어떻게 하면 최고의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지 그러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러한 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생각을 안하고 양상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공부를 잘 하게 하고 싶으면,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하게 만드세요. 무슨 말이 있는가 하면, 재주좋은 녀석이 노력하는 녀석을 따라갈 수 없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즐기면서 하는 사람을 능가할 수가 없대요. 아이를 공부를 좋아하게 만들어 보세요. 그러면 아이가 계속 공부 할 것입니다. 공부하면 지식이 쌓이는 것이고, 안 쌓이면 텅빈 아이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나 그것을 기독교가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그것을 가지고 있고 안 가지고 있는 것은 여러분들의 그 아이들을 교육적으로 잘 훈련시키지만, 기독교 신앙은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가지고 있는대로 하나님 앞에 올바른 길을 사는 인간이 되는 것을 가르쳐 주고,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가지고 있지 않은대로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사는 인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기독교라 이거예요. 그러면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할 것이냐는 문제가 아니죠. 다만 이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올바로 믿기 위해서는 공부하기를 포기하고, 부자 되기를 포기해야지만 하나님 앞에 올바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얻지도 못했으면서도 신앙이 없는 자녀가 이 세상에는 많아요. 그럴 경우에는 부모들이 굉장히 책임이 큰 거죠. 아이를 공부도 못시키고, 신앙의 사람으로도 못 기른 거예요. 둘다 다 할 수 없어도, 한 가지라도 할 수 있어야 했을텐데, 둘다 안한거죠. 그러면 이 세상에서 부모로서 자녀들을 잘 교육시키는 데도 실패한 것이고, 그 아이를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인생의 길을 걸어갈 사람으로 참 인간으로 기르는 그 일에 있어서도 실패한 것이죠. 그러한 무책임한 부모들이 많은 거예요.
부모의 기쁨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들의 자녀를 향한 큰 기쁨은 무엇이겠어요? 아이들이 집에 돌아와서 엄마, 엄마 이번 사경회에 나 은혜를 받았어. 내가 주님을 만났어 그럴 때에는 알았다, 밥 먹고 자라. 씻고 자라 그리고 엄마, 나 90점 맞았어. 어디 시험지좀 보자. 그리고 그것을 들고 아파트 이 집 저 집에서 자랑을 한다면, 아이의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세요. 그렇잖아요. 그렇잖아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자녀들에게 누구든지 이제는 자녀들을 공부만 잘 시키는 것 만으로는 안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돼요? 여자 아이 가진 부모들은 앞으로 돈을 더 잘벌어야 해요. 왜냐하면 이제는 수리를 해야 되니까요. 수리를. 수리를 해야 돼요. 그 옛날에 어떠한 자매가 그러한 이야기를 해요. 이제 정년기가 되면 부모들이 만나서 그룹을 지으면서 시집, 장가들을 보내는 거예요. 시집, 장가를 보내는데, 와서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목사님 참 그런 곳에 가보면 놀랍게 정확하게 수준대로 맞추어서 짝을 이룬대는 거예요. 그래서 넌, 부잣집에 시집가고 싶어하는데, 수준을 높이면 안되냐 그러니까 별볼일 없는 집에서 태어나고 대학도 좋은 데 못나오고 그랬어도 아주 남들이 부러워하는 집안으로 시집을 가는 경우가 가끔있대요. 배우같이 생기면 된대요. 그것으로 점프를 하는 거예요. 지금 시대가 지나고 앞으로 10년정도 흐르고 나면,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가고 있어요. 그래서 어떠한 돈을 들여서라도 자기 아이들을 예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죠.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의 용모에 대해서 부모가 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 여러분들의 자녀들의 용모에 대해서 갖는 관심이 아이들의 영혼의 신앙에 대해서 갖는 관심보다 훨씬 더 크다고 아이들의 가슴에 새겨졌을 때, 아이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자신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암시를 받게 되는 것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예화) 저는 그분으로부터 직접 간증을 들었는데, 그 옛날에 우리나라의 6,25 전쟁도 지내었고, 군 원로죠. 27살에 별을 달았답니다. 그 장로님이 한번은 간증을 하는데, 아마 여기 유사에 없는 일이겠죠. 그래서 자기는 별을 달아서 27살에 별을 달았으니까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별 달자마자 차를 두 대나 몰고 어머니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는 거예요. 동네에.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전부다 손을 흔들고 우리 동네에서 장군이 나왔다고 다들 기뻐하는데, 어머니 저 왔습니다. 그리고 경례를 하니까 어머니가 문을 열더니 탁 하고 닫더래요. 아들이 너무 충격을 받은 거죠. 그래서 문을 열고 어머니, 아들이 왔는데, 아들이 장군이 되어서 왔는데 기쁘지도 않으세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아들 앞에서 조용히 치마를 걷어 올리더래요. 치마를 무릎 까지 걷어 올렸는데, 무릎이 정말 굳은 살이 다 배겼더래요. 내가 일평생 너를 위해서 매일 기도했는데, 그것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러한 교육을 받으면서, 정말 하나님이 중요하구나. 그리고 신앙이 중요하구나. 장군이 되고 부자가 되고 그리고 학자가 되는 삶의 양상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이것이 인생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구나하는 것을 깨우침을 받게 되는 거예요.
오늘 사도요한이 가이요라는 사람에게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뭘 그렇게 기뻐했습니까. 돈을 많이 벌었답니다. 그래서 기뻐했습니까? 심지어는 땅 투기를 했는데 대박이 터졌답니다. 그래서 만약에 요한이 빙긋이 웃고 좋아했다면, 십일조 때문에 웃은 거지, 가이요 때문에 웃은 것이 아닐 것 아니에요. 그러나 이 목자인 요한을 기쁘게 했던 소식은 두 가지도 아니고, 한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나의 사랑하는 자녀 가이요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더라. 어쩌면 요한은 가이요가 무슨 사업에서 무슨 사업으로 직업을 전환을 했는지 그리고 신수는 예전보다 더 훤해 졌는지 사회적으로 무슨 직함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떠한 새로운 유행하는 좋은 옷을 입게 되었는지 그러한 것을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단 하나,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아주 기뻐하면서 부모로서 이 아이를 자신의, 이 아이가 자신의 자녀인 것을 인하여 한없이 기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을 위한 가장 안전한 보험은 신앙을 물려주는 것이에요. 부모가 없어도 이제는 하나님 때문에 서는 것, 여러분들은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예수님이 만난 여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여자가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마음속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달려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 놀라운 그 예수 만난 기쁨을 동네 사람들에게 증거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여자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께 가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이 여자가 예수님에 관해서 이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랬더니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제 내가 그분을 믿는 것은 네 말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에 믿는 것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에는 여러분들의 말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되었지만, 이제 회심하고 변화를 받아서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그 아이들에게 직접 심겨져서 그래서 그 아이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있을 때 그것은 이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한 보험이 될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이 오면 그 풍랑을 인해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고, 번영과 그리고 축복을 주시면 그것 때문에 자신을 부요케 하신 하나님을 찬송할 것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자녀들은 여러분이 있건 없건 여러분 때문에 주님을 믿는 자녀들이 아니라 자기를 구원하시기 까지 사랑해 주신 하나님 때문에 주님을 믿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더욱 더 이 자녀들이 하나님 사랑을 알고 변화받도록 기도하고 주님 의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