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의 길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눅 1:80)
세례요한은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구약이 흘러내려오는 강과 신약이 시작되는 바다 어구에 있는 사람입니다. 한편으로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고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 오실 앞길을 예비할 선구자였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본받고 싶은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 확 끌리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한 30년 전에 이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정말 제가 닮고 싶은 모델이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나타납니다. 제일 먼저 “아이가 자라며…”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장을 가리킵니다. 여러분에게도 성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한 여러분은 아직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같이 공부를 하다 보면 신학의 세계가 얼마나 드넓은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지적인 성장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언제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온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은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30년을 넘게 신학을 공부했고 지금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같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목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깨닫는 사실이 있습니다. 정말 내가 아는 것은 드넓은 기독교 지성의 바다에서 아주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공부를 잘 한다고 하더라도 진실한 목회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이 없이 참된 목자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여러분에게 높은 표준을 가지고 개혁신학을 가르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부지런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직 마음을 모아서 공부하는 일에 헌신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나 성장이 지식의 성장만은 아닙니다. 인격적인 면에서 계속 성장해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 목회를 할 때에는 지식을 가지고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님을 알아가고 섬겨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많은 고통과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고난이 없는 목회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고통이 없는 사역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인격입니다. 그것은 성품에 관한 문제입니다. 지식도 단기간에 습득하기가 쉽지 않지만 성품을 순식간에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버리고 죽이는 그런 훈련의 과정을 통해서 주님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여러분이 성장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지식과 인격적인 측면에서 끊임없이 성숙해가야 합니다.
성경 본문은 또 다른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심령이 강하여지며…”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영적인 성장 혹은 영적인 강함을 의미합니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목회사역도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이러한 원리에 비추어볼 때 여러분은 영적으로 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학교의 공부가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이고 또 여러분의 영적 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문과 경건의 결합이 필요합니다. 치열하게 공부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역과 가정, 학교생활과 직장생활, 신자로서의 삶과 사역자의 생활, 이 모든 영역에 있어서 온전함을 이루려고 애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서 몸부림 칠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씩, 조금씩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신학을 공부하는지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뜨거운 사랑에 빠진 차가운 지성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열애하고 있는 지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신학 공부하는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최고의 신앙으로 최고의 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기도도 많이 하고 열렬했던 사람들이 신학공부를 하면서 차가워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신학공부 하는 내내 건전한 교회에 소속되어서 뜨겁게 주님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로 영혼들을 섬기며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학이 여러분에게 습득될 수 있습니다. 신학교 때 흘린 눈물은 30년 동안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 정신들이 그렇게 오래도록 목회를 지배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그렇게 열렬한 신앙으로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생각해 볼 것은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 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하나님이 때가 되자 그를 이스라엘에게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잘 준비하면 하나님이 쓰실 날을 예비하십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회가 와도 그것이 기회일 수가 없습니다.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가 기회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자기를 사용하시는 주님의 주권을 기대해야 합니다. 높아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어 높임을 받으려고 그렇게 노력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가리켜서 ‘둘로스 크리스투’, ‘그리스도의 노예,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의 정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다만 옛날에 노예는 채찍과 그리고 권리에 매였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생이 주님의 손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큰 인물이 되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사용하시든지 주님이 기쁘시도록 그렇게 사용되면 거기에 우리의 일생의 보람이 있습니다.
마지막 요소는 그때까지 이 사람은 빈 들에 있었습니다. 희랍어에 ‘에레모스’라고 나오는 이 단어는 바로 광야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단어는 ‘하나님 말씀하시다’라고 하는 ‘다바르’와 관련이 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 한분밖에 의지할 수 없는 외로운 곳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경제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하나님을 찾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데도 끊임없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과 공부할 수 없게 만드는 환경사이의 갈등도 꽤 괴로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감사의 제목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런 고통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몸부림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몸부림칠 때 하나님 한분 이외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 학교에서 3년 혹은 4년 동안 공부할 때 평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놀랍게 여러분의 선배들은 그 모든 고통 속에서도 신학을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마쳤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고난을 이기고 꼭 유종의 미를 거두셔야 합니다.
우리 어제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순자』의 ‘수신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김 선생에게 건네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인상 깊은 말이 나옵니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지만 둔한 말도 열 배의 노력과 시간을 들이면 준마를 따라 잡을 수 있다.” 저는 한 번도 탁월한 수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늘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노력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애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공자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유능한 자가 노력하는 자를 따라올 수 없고 좋아서 그것을 하는 사람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따라올 수 없다.” 그만큼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고 자기가 하고 있는 그 일을 즐거워하면서 하는 것이 좋다는 뜻입니다. 저는 일생동안 참 많은 책을 읽었고 지금도 공부를 좋아합니다. 신학은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한 번도 무거운 의무감에서 신학을 공부한 적은 없습니다. 그 책을 모두 읽진 못했지만 지금도 저는 제 방에 5만권의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 공부하는 것 자체가 언제나 나에게 기쁨이고 즐거움입니다. 괴로운 일과 고통이 있으면 신학을 공부하면서 해소합니다. 교만하고 우월감을 느낄 때에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겸손해집니다. 여러분을 그렇게 훈련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다루십니다. 그래서 학교 다니는 동안에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제가 들었던 유익한 예화 하나를 소개하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위쪽 북해도 지방에서 청어가 많이 잡힙니다. 그런데 유럽 사람들이 청어를 참 좋아합니다. 특히 소금에 절여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런던까지 청어를 싣고 오는데 살아있어야지만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청어는 물고기 중에서도 아주 신경질적인 물고기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살던 바다를 떠나서 통속에 집어넣으면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금방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그 고기를 큰 탱크로리에 수천마리를 싣고 8시간, 10시간 이상 밤새도록 달려서 런던에 도착해서 열어보면 절반 이상이 죽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운송업자가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거기서 잡히는 바다물메기라는 큰 물고기가 있습니다. 이 바다물메기가 청어를 아주 잘 잡아먹습니다. 그래서 탱크에다가 가득 청어를 넣고는 바다물메기를 한 두 마리정도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이 바다메기가 밤새도록 돌아다니면서 청어를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그럼 청어가 밤새도록 도망을 다닙니다. 그래서 런던에 도착하니까 아무것도 안 죽고 쌩쌩하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 바다메기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감사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여러분을 살아있는 신자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여러분도 그렇게 좋은 신학공부를 해서 훌륭한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