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은 은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
녹취자: 유은수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항상 어디 가든지 풍부한 풀과 물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때때로 목동들은 양떼를 이끌고 꽤 먼 길을 이동하며 목초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대로 유목을 해왔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상당히 먼 길을 짐승들을 데리고 그렇게 풀을 찾아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종종 양떼들은 목자와 함께 계곡 사이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보신 적이 있겠지만 나무나 풀도 별로 없는 사막과 모래로 된 높은 계곡 사이를 지납니다. 그러나 이 계곡에는 항상 강도의 위험이 있고 혹은 맹수가 습격할 위험도 있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목자는 수도 없이 이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이 양떼를 인도하고 또 도적이나 혹은 맹수로 부터 이 양떼를 보호해야 할지를 잘 압니다. 그렇게 해서 목동은 양떼를 이끌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목동으로써 이러한 경험을 풍부히 갖고 있었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도해 오신 일생을 돌이켜 반추해 보니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자기 인생을 인도해 오신 것과 아주 유사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윗은 한편으로는 양을 치는 목동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주님의 손에 기름을 받는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하는 이 다윗을 목동이 양을 안전하게 인도하는 것처럼 인생의 굽이굽이 고난이 골짜기 시련의 계곡에서 그를 하나님이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시인을 강한 손으로 붙드시고 이끄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어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다윗의 생애에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은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도움이 모두 끊어진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자신의 시편 여러 곳에서 '하나님이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혹은 '하나님이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며 몸부림치는 기도를 여러 곳에서 올렸던 것입니다. 자기 혼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곳에 외롭게 버려졌다고 생각했지만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이 시인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시인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해'라고 하는 것은 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죽음의 위협이 있는 계곡을 지나가면서도 자신에게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자기를 누군가가 해치지를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신앙이 이 시인으로 하여금 극단적인 시련과 극단적인 어려움과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시고 붙들어 주신 체험을 우리에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가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을 느낄 때나 느끼지 못할 때나 혹은 그것을 알 때나 모를 때나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홀로 있고 버려진 것 같은 때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셔서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 시인 다윗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우리의 인생에 종종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인생의 깊은 시련을 지날 때가 있다는 것을 우리 게에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시지만 그래서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고 또 우리의 죽었던 영혼을 다시 소생 시키시는 분이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평탄한 길을 걷고 잔디밭만 걸어가도록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매우 큰 뜻이 있으셔서 우리를 종종 시련과 고난의 골짜기 저녁때 눈을 감으면 아침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눈뜨고 싶은 그런 시련에 골짜기를 지나게 하십니다. 그런 모든 시련과 고난의 계곡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도록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지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연단하시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과 허물이 있다가 보다는 우리를 연단하셔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려고 우리를 시련과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게 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인도하시고 도우셔서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답게 만들어 가십니다.
(예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의 길을 지나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약 40년 기간 동안 그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이제는 아무 희망이 없고 우리는 망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아무 희망이 없다’고 하는 때를 자주자주 경험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부르짖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부르짖고 간구할 때 마다 그들을 붙드시고 도우셔서 하나님의 도움을 얻도록 인도 하셨던 것입니다. 시인은 바로 그렇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인생길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지 않고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사랑과 은혜를 충만하게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시인의 인생길을 통해서 교만할 수 없게 만드시고 하나님이 은혜로 자기를 붙들지 않으시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처절하게 느껴 주님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특별히 아끼셔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긍률히 여기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인생에 눈을 뜰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의 시기를 지날지라도 거기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 주님을 굳게 붙드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매우 위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양은 처음 하나님이 그것들을 창조하실 때부터 어차피 그 하나님의 돌봄과 사랑을 받으며 그분 곁에서 은혜를 입으며 살게끔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 가까이 그것들을 두셔서 당신이 목자의 마음으로 돌보며 살도록 그렇게 창조된 사람이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인간이 누구인지 인수가 없는 존재 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통해서만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기가 누구이고 그리고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어디로 부터 왔고 누구를 향해 살고 그리고 어디를 향하여 가야할지 이것이 설명되는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 자신이 여기에 있는 만큼이나 확실한 존재이고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에 일어나는 많은 시련과 축복들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예를 들어 봅시다. 다윗이 맨 처음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 아버지의 집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목동에 불과 하였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의지할 데가 없었고 자기의 편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윗은 하나님이 특별히 함께 해 주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시인은 일생을 살았습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빚진 자, 억울한 자, 한맺힌 자들이 다윗을 따랐고 하나님은 그렇게 이 사울의 치하에서 고통 받고 소외받은 목자 잃은 양같이 불쌍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나라를 일으켜 세울 그때에는 다윗이 순수하기 짝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련과 고난이 다 지나고 이제 평탄하게 되었을 때 그는 교만해 졌고 범죄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서 고난과 시련이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축복의 기회가 되기도 하고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형통한 복들이 오히려 교만하여 하나님 앞에 미끄러지는 타락의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쓰라리게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런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붙듭니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 주님을 굳게 의지합니다. 그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이 자기만을 도우시는 은혜로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깊이 경험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안위한다.' 라는 말은 '위로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나에게 위로가 됩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 두어야 합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는 모두 나무로 만든 것이지만, 그러나 용도가 달랐습니다. 즉 이 지팡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이 즐겨 사용하던 지팡이 인데 이것은 기다랗고 끝이 이렇게 둥그렇게 휘어져 있는 그런 지팡이 입니다. 그래서 이것으로 이 목자는 길을 걸어갈 때에 자기를 보호하기도 하고 양들이 멀리 갈 때에 그 지팡이를 거꾸로 들고 양의 목에 걸어서 그래서 양을 돌아오도록 이끌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지팡이는 자기와 양떼를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이에 비해서 막대기는 나무로 만든 것이지만 아주 단단한 나무를 구해서 끝을 뾰족하게 깎아 무기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밤이면 양떼를 지키며 맹수의 공격으로 부터 자기의 양떼들을 보호하였던 것입니다. 만약에 맹수가 이 양들을 해치려면 목자와 싸워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목자는 목숨을 걸고 자기 양떼를 지키는 선한 목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막대기는 맹수들을 때려눕히고 공격으로 부터 양떼를 보호하는 그런 용도로 사용되는 막대기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실 때에 그냥 우리로 하여금 환란을 당하게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길을 보호하고 인도하실 때 한편으로는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고 돌보시고 이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대하시지만 우리를 해치고 교회를 허물어뜨리려는 대적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날카로운 막대기로 그것들을 때려눕히고 막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 당신의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을 멀리 떠날 때에도 올바른 길로 이끄시고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당신의 양떼들을 해치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막대기로 무찌르듯이 그들을 하나님이 공격하시고 징벌하여 주님의 자녀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행하셔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아가 하나님만이 나의 인생에 있어서 의지할만한 유일한 보호자요 도움이시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화) 십년도 넘는 이야기입니다만 우연히 미국의 집회를 가게 되었는데 바로 그 동네가 여러분들이 잘 아는 헨렌 켈러라고 하는 미국의 작가였던 여자가 살았던 고향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를 구경시켜 주기에 가봤더니 그 집이 엄청나게 커다란 저택입니다. 지금은 관광지로 사용이 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눈도 안보이고 귀도 먹고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당시 신문사 사장이었고 부유한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설리번 선생님을 고용해서 그래서 이 어린 헨렌 켈러에게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교육 시켰습니다. 자라면서 우리는 물건들을 보기에 “엄마 이게 뭐야? 저게 뭐야? “라고 말하지만 헬렌 켈러는 처음부터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이 아이를 데리고 펌프로 가서 펌프에 물을 푸면서 손에 그 물을 닿게 하고 그리고 손바닥에다가 "물"이라고 써주면서 언어를 익히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그 장애와 고난을 딛고 불행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많은 글들을 남겼습니다. 그가 살던 집에는 그 헨렌 켈러가 간난 아이 때 부터 죽기 직전 까지의 여러 사진이 있었고 그 원숙한 나이에 찍은 큰 초상화 아래에는 자필로 글을 남겨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원하지 않는 시련을 당할 때도 있고 고난을 격을 때도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고난과 슬픔이 없었다면 우리가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을 까요? 언제나 내 힘으로 넉넉히 살 수가 있고 햇빛 비치는 맑은 날만 계속 된다고 믿었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나를 인도하는 목자가 되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을 까요?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홀로 있는가. 같을 때, 버려져서 나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은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해 주셔서 그 시련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주님이 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두 형통한 길을 걸어가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종종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인생의 때를 지나게 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죄 때문에 혹은 우리의 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큰 섭리 속에서 시련과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손으로 붙드셔서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변함없는 목자이심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찬양)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찬양)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 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버릴 때가 있지만 주님은 어느 때에든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고 그분을 의지하면서 산다면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은혜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새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