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땅에서 주를 찾으라 2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 63:1-5)
그래서 이 다윗은 자신의 일생일대의 커다란 시련과 환란을 만났습니다. 단지 자기의 왕국이 대적들에게 빼앗기게 된 그것 만으로 마음 아픈 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 나라가 역사를 이어가다 보면 반역이 일어나기도 하고 내란이 일어나기도 하고, 또 적군과 더불어 전쟁을 하기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의지하고 또 싸우면서 한 나라를 그 역사를 이어가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통은 단지 나라가 반역을 맞아하게 되었다는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다윗에게 있어 가장 큰 고통은 그런 반란을 일으키고 커다란 말하자면, 반역을 일으킨 우두머리가 자기 속으로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처리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그러나 사실 그런 반란의 무리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반란의 수괴가 처단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자기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하서에서 난이 평정되고, 아들 압살롬이 살해되었다,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이 다윗은 정신없이 통곡하며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토로하게 되었던 것도 바로 그런 고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 큰 고통과 아픔 속에서 다윗은 오늘 우리에게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주의 영광과 권능을 보려하여, 주의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이건 이상한 말이죠. 이제 법궤도 버려두고 성전도 버려두고 망명길을 떠나 도망을 가서 국경을 넘기 전에 유대 광야에 잠시 머물러 있었을 때에 어디서 주의 성소에서 주의 영광과 권능을 보려하여 주를 바라보았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다윗이 전쟁이 일어나고 반란을 맞게되자 그가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여호와의 도움을 바라보며 기도했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 다윗이 평소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도망나오기 전에 물론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알고 그랬을 때에 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런 커다란 시련을 만나서 이제 망명길로 이르기 전에 다윗이 어떤 삶을 살았는 지를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비록 한때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하나님 앞에 허물을 입어서 징계를 받지 아니하면 안되는 그런 상황이 되었지만, 오늘 이 다윗은 그때에도 이미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찍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의 간음사건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는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는 깨뜨려진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힘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제목이요,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주님의 명령을 어기고 인구조사를 한 후에도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가 떠나가고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거두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이 시인은 이미 환란을 당하자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목마른 것처럼 이렇게 궁핍한 땅에서 주님을 찾기에 갈망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 앞에 범죄했던 특별했던 순간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꾸준히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보기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고, 또 찾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삶은, 그리고 이러한 고백은 다윗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었는 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 하나님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을 때에도 하나님께만 소망을 둘 수 있었습니다. 법궤를 가져가자는 부하들의 제안에 대해서도 그는 단호하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면 내가 다시 돌아와 그 법궤를 보고 하나님을 뵈올 것이라고 고백을 하고, 자기를 욕하는 시므이를 처단하자는 부하들의 요구에도 그는, 하나님이 그를 통해 자신을 욕하시는 건지도 모른다고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평소에 하나님을 바라고,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고 있던 사람들은 환란과 시련을 당할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이깁니다. 시련이 오면 그 시련 때문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형통할 때에는 형통하기 때문에 주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인생의 참된 소망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있다고 믿을 것 같으면, 우리는 자주 바뀌는 세상의 환경과 우리 앞에 펼쳐지는 여건들 때문에 흔들리거나, 당황하거나 고통하거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받거나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가 백척간두에 있는 커다란 반란을 당하고 이제 통치자의 영광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j없는 몸으로 이방의 땅으로 도망을 가야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을 향해 묻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됩니까?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신앙이 정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는 결코 신앙이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나오고 제법 기독교인다운 생활을 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여러분들의 인생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정으로 도움을 주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리고 우리 마음의 중심의 애정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지 아니하면, 우리의 교회 생활은 결코 우리의 인생에 도움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이렇게 뜻밖의, 예상하지도 못했던, 그리고 가장 사랑하던 자신의 육신으로 낳은 아들에 의해 반역을 맞이하고, 인간적인 배신과 왕국의 위기를 동시에 느끼면서, 사랑하는 부하들과,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언제 돌아올 지 모르는 길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거두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려움을 당했기 때문에 즉시 생겨난 마음, 즉시 나타난 태도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곤핍한 땅에서 물을 찾기에 사모하는 사람, 물을 얻기에 갈급한 짐승들처럼 그는 그렇게 평소에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그는 성소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뵈옵기를 구했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위해서만, 하나님이 자신의 나라를 통치해 주실 수 있고, 자신의 나라를 그렇게 영광과 권능으로 통치해 주실 때만 자신의 왕국과 자신의 인생이 안정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 다윗은 우리에게 고백합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낫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오는 많은 과정들을 통해서 이 다윗은 하나의 깊은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진리는 바로 자기의 생명보다 더 훌륭하고 나은 것은, 하나님의 자비라고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라고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자기는 비록 범죄하였고, 또 반란이 일어나 이렇게 커다란 위기에 처하게 된 것도 이미 범죄한 후에 자기를 향해 예정된 하나님의 예고를 따라 일어나는 일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이 큰 시련과 환란을 통해 반란의 주동자 되었던 아들을 원망하거나, 혹은 자기의 사랑을 받았던 부하들이 육신의 영달을 위해 자기를 배반하고, 반역자의 우두머리에게로 정치적으로 견제를 한 것을 인해서 고통하고 원망하는 대신에, 그는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인자에 소망을 걸었습니다. 내가 적군들의 손에 의해, 혹은 악한 세력의 손에 의해 내 목숨을 보존하는 것보다 더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인자가 나를 에우시고,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그 사랑이 나를 두르시는 것이야말로 생명보다 더욱더 존귀하고 내 인생을 건지는 데 가장 요긴하리라고 믿는 그런 신앙을 다윗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인생을 사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재미로 인생을 산다고 고백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 시련을 만날 때에도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은혜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나 물질이 우리 인생을 영원히 보호해 주지 못하리라고 하는 사실을 압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 그리고 우리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 때문에 인생을 이어가고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어김없이 베풀어주시는 그 은혜, 그리고 그 넘치는 사랑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깊이 인식하고 살아가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사도들은 우리에게 소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오늘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음으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합니다. 주님을 찬양할 수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노래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가장 커다란 위기, 생명이 위태로운 때 왕국이 위협을 받고 왕의 영광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버린 받은 자 처럼 되어 백성들의 저주를 받으며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는 데도 불구하고 다윗은 오히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낫기 때문에 내가 입술로 주를 찬양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경험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한없이 느끼면서 감격하는 사람들은 환경을 넘어서 이렇게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가장 곤고하고 어려운 때를 오히려 찬양으로 지냈던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캄캄하고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인생의 그 곤고한 때를 오히려 하나님께 경배를 돌리고 영광을 돌리면서 지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형통한 여건 때문에 주님을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고통을 당하는 그 상황 속에서 주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자비와 그 은혜가 곤고한 그 영혼에 밀려들 때에 그들의 눈에는 고통스러운 그 환경과 눈에 보이는 이 세상 살이가 그 마음을 주장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한없는 자비와 은혜가 그에게 찬송의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고통하는 모든 상황속에서 우리가 같이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비밀은 남들이 모두 슬퍼할 때 오히려 기뻐할 수 있고, 남들이 모두 기뻐할 때 오히려 거룩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삶입니다.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상황에서도 느끼는 것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같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도 반응하는 바가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끊임없이 도전과 시련이 가득찬 이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시렵니까? 다윗과 같이 어려움을 만나거나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신 받을 때 혹은 우리가 원하고 마음먹은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우리의 인생에 고난이 겹치고 시련이 우리를 에워쌀 때,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을 향한 노래가 그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뿌리 채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어디서든지 환경을 능가하고 여건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입니다. 형통할 때 그 성소에서 주의 영광과 권능을 보기를 사모하고, 주께서 자기를 긍휼히 여겨주실 때까지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려고 하는, 마음이 하나님께 기울어지고, 중심이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 이런 사람들만이 인생의 가장 어려운 때를 믿음으로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를 향한 넘치는 자비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자각 때문에 오히려 낙망해야 할 때 찬송하고, 비탄에 빠져 눈물 흘려야 할 때 찬송을 부르며, 고난 속에서도 넘치는 하나님의 지비를 찬송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 하나님 앞에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 아침에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