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은 우리 안에, 생명은 너희 안에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4:11-12).
녹취자: 이새봄
세상에 있던 종교는 도가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애를 썼고, 인류역사의 철학은 진리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생명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결국 예수님이 종교가 찾았던 모든 도의 참 도이시며 모든 어긋난 진리에 대한 탐구에 참된 진리가 예수였으며 그 위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아들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셨고 누구든지 그 아들을 믿고 구원을 얻는 사람에게 이 생명을 누리게 하셨지만 그 생명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때에는 그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이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성경을 붉은 모서리로 칠하지 않습니다만 예전의 성경은 모두 이 가장자리가 이런 금빛이 아니라 핏빛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이 성경말씀이 전해지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라는 것입니다. 남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있는 자신과 동역자들의 마음속에 예수의 생명이 넘쳐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조성용 선교사와 원나연 선교사로 부름을 받는 두 분에게 제일 먼저 여러분 자신에게 예수의 생명이 넘치길 바랍니다. 그것이 선교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 살아난 영혼으로 죽은 사람을 살게 하시지,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살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두 분은 예수의 생명이 넘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이 예수의 생명이 넘치는 비결인데 그것이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겨졌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넘겨졌다”, 예수님이 어떻게 죽음에 넘겨졌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자신이 짓지 않은 죄로 모함을 당하여 형벌을 받아 죽음에 넘겨졌습니다. 목회자의 삶은 일평생 어떻게 보면 구차하기 그지없는 삶입니다. 평신도 때에는 교회에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불평도 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했는데 목회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두 분이 담임목사로 가시면서 예수의 생명이 자신 안에 나타나는 비결은 예수의 죽음에 넘겨지는 것입니다. 이 죽음에 넘겨진다고 하는 것은 외적인 권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정말 폭발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고 죽으신 예수가 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맡겼는데 이 교회를 위해서 내가 참아야 됩니다. 그게 예수의 죽음에 넘겨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혈기, 내가 표현하고 싶은 육욕, 나의 모든 욕심, 이런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죄 때문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내가 이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죽음 때문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교인 때문에? 아닙니다. 교회 때문에? 그것도 아닙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가 생각이 나서 그리스도 때문에 그분을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그 분 앞에서 내려놓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가 잘 한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예수의 사랑에서 나왔고, 내가 교인 때문에 죽은 것도 아니고 교회 때문에 양보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내가 모본을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거기서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내가 그 죽음으로 내가 산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나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과 목사가 되어가는 과정은 일치합니다. 어마어마한 교회의 부흥을 이루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자기가 예수와 함께 끊임없이 참고 죽고 견디면서 살아온 모든 목회자에게 있어서는 성자의 냄새가 납니다. 교회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전 아직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결국은 목회자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살아나니까 이 생명이 성도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입니다. 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저 목사가 오늘 올라가서 하는 설교가 뼈 사이에서 나오는 설교인지 어디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투박하고 거칠고 아직 다듬어지지 않고 세련되지 않아도 주님을 향하여 죽고 다시 사는 사람의 증언은 언제나 핏빛입니다. 한 목사가 교인들에게 하는 평범한 이야기가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가 되기까지에는 잔인하리만치 오랜 세월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고 또 죽고 사는 일을 반복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에는 피가 묻어있고 그의 기도에는 예수의 눈물이 배어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목사는 교회를 위해 잘 죽으려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럼 우리는 죽기만 하는가? 아닙니다. 그렇게 죽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자기를 잊어버려도 외롭지 않고 그리고 마음에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세계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의 목회에, 그가 교회로 가는 길에 꽃길을 깔아줘도 그는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조 목사님이 가셔서 예수의 생명이 먼저 마음에 넘쳐나길 바라고 그를 위해서 예수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죽고 마지막에 그 생명은 성도들의 가슴 속에 역사해서 많은 사람이 주 앞에 생명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게 하길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랫동안 열린교회를 섬기던 조 목사님 부부가 이제 홍콩의 애진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기 위해 선교사 파송을 받나이다. 주께서 오늘의 이 말씀이 저희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새겨지게 하셔서 주님의 교회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