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회의 선교 방향성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빛으로 우리에게 비취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시 67:1-3).
Ⅰ. 들어가는 말
오늘 성경은 선교의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첫째는 하나님이 먼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고 얼굴빛을 비춰주십니다. 복을 주시는 것이 영육간의 자원이라면 그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인정하시면서 우리와 교제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구원의 도를 만방 중에 알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은 수많은 민족들이 그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도를 보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는 이런 삼중적인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Ⅱ. 열린 교회의 선교역사
1. 초창기 방배동
사실 저희들이 회고해보면 창립하고 10년까지는 사실 선교에 대한 그런 것들이 강력하게 교회 안에서 사실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우선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들이 그 십년 어간사이에 사실 교회를 엄격하게 말하면 두 번이나 옮기는 커다란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랬고 또 그 십년 어간에 교회가 가파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왔어요. 그래서 7명이 시작해서 250명이 될 때까지는 거의 4년 8개월 정도가 걸렸는데 그 250명에서 1000명까지 올라가는 데는 3년 6개월 정도가 걸릴 정도로 그렇게 가파르게 성장을 했어요. 그 이야기는 무슨 뜻이냐 하면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그렇게 교회가 가파르게 성장했다는 것은 자원의 측면에서 보면 일할 사람도 많이 늘어났고 헌금도 많이 늘어나게 되지만 그러나 이제 그렇게 가파르게 늘어나다 보니까 교회 내부적으로 그 사람들을 돌보는 그 일이 우리가 여러분들 평신도들이 상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엄청난 압력으로 다가왔어요. 지금은 그래도 훈련받은 평신도들이 많이 있어서 목회자의 목양의 일을 많이 돕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사실 지금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훈련되지 않은 열악한 상태였거든요. 그리고 교회의 중직이라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 그런 상태였으니까 모든 것을 교역자들에게 의존하면서 이 일들을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왜 평신도들을 참석시키지 않느냐고 그러는데 안수집사를 시키려고 그래도 3년 이상 교회를 다닌 사람이 없었어요. 그럴 정도였어요. 그러니까 심지어 안수집사를 하는데 2년 6개월을 다닌 사람이 안수집사의 투표에서 당선된 그런 희극 같은 일까지 벌어졌으니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랬고 세 번째는 나 자신이 선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비전을 강력하게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래도 선교를 먼저 엮어냈겠지요. 그렇지만 나 자신이 어쨌든 목양에 대해서 더 많이 꽂혀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든든히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굉장히 많은 역량들을 사실은 성도들을 올바로 길러내는 그 일에 집중했기 때문에 이런 몇 가지 요인으로 인해서 이제 선교가 사실은 지체가 된 것이죠.
2. 평촌에서
그러다가 여기에 와서 저희들이 교회가 세워지고 정확하게 말하면 1993년 12월에 교회가 세워지고 여기에 2002년 4월 30일 날 여기로 이전해서 첫 번째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본다면 결국은 9년 정도 후에 와서 이제 교회가 지어지고 모든 것들이 세팅이 된 다음에 우리들이 본격적으로 이 선교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산발적으로 고민했지만 이것을 어떻게 하든지 평신도를 중심으로 하는 사역 속에 이것을 담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사실 제가 선교에 구체적으로 involve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였어요. 그리고 이제 중국을 드나들면서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신학교 선생을 했으니까 여기 신학교육이 어떻게 제대로 이루어지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러면서 이제 우리들이 선교에 대한 본격적인 비전을 갖기 시작하고 그리고 이제 선교 담당목사도 등장하게 되고 그리고 선교위원들도 등장하고 그리고 선교사도 파송하고 등등의 이런 발전과정들이 있게 되었고 그런 과정 중에서 우리들이 해외 아웃리치를 시작해서 그 아웃리치에서 우리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더 큰 은혜를 받으면서 이제 선교에 대한 비전들에 눈을 뜨게 되고 그리고 이제 교역자가 중심으로 움직이던 선교에 대한 주입된 비전보다는 성도들 자신이 해외에 나가서 그런 아웃리치의 비전을 보면서 그러면서 단기선교에 나가는 지체들도 생겨나면서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교회가 17년이 되었으니까 사실 그렇게 정착돼서 퍼지기 시작한 것이 한 7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① 그런 와중에 우리가 그러면 그동안에 돌아보면 선교사역들을 어떻게 우리들이 해왔느냐를 보면 우선 손에 꼽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변화가 우리들이 오랫동안 고민하던 CRTS 가 설립이 된 것이죠. 그래서 거기에서 이제 설립된 것이 벌써 3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2,3학년들이 모이게 되었거든요. 그것이 굉장히 커다란 중요한 업적이었고 사실은 건물도 없이 세 들어 하는 CRTS이지만 그러나 사실 엄격하게 보면 그것은 엄청난 우리들의 땀과 노력이 거기에 들어갔고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셔서 자기의 뜻을 이루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난 7년 동안 있었던 가장 커다란 하나의 열매였다고 보고요.
②두 번째는 우리들이 벌써 선교사를 여러 사람 파송하게 되었어요. 그렇지요? 그래서 CRTS에 관련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CRTS 보다도 더 커다란 일들을 전망에 두고 지금 현재 그쪽에 4가정이 파송되어있고 필리핀에 선교사 한사람을 파송했고 캄보디아에 한명 파송했고 이렇게 여섯 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김옥수 선교사는 지금 다시 국내사역으로 전환하는 가운데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리고 협력선교사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우리들이 관련을 맺으면서 이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두 번째 성과였고
③세 번째는 이제 선교에 대한 의식들이 교회적으로 굉장히 높아졌다는 것이죠. 매년 80명 내지 150명의 단기선교를 꾸준히 보내고 그 사이사이에도 지금 열 명은 족히 넘을 듯한 그런 단기선교사로서의 파송들이 있었고 정식으로 파송장은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선교의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서 간 많은 젊은이들 그리고 사업을 하거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선교를 돕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모두 어우러져서 선교에 대한 전체적인 눈들이 놀랍게 떠지고 그리고 그 일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커다란 세 번째 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④그리고 이제 또 하나를 굳이 꼽자면 이렇게 열린 교회가 선교 사역을 하고나서부터 좀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대 후반으로 올라가지만 그때부터 시작해서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해외선교지에서 저를 필요로 하는 집회나 그런 협력요청이 들어오게 되면서 내가 활동하는 것이 내 개인이 아니라 열린 교회와 함께 하는 것이니까 그런 사역들로 상당히 분주하게 영역들이 많이 넓어져 갔다고 저는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⑤그리고 이제 또 하나 우리들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중대한 변화는 우리 교회에 외국인 선교사역이 그래서 결국은 평신도들 차원에서 그냥 모여서 기도나 하던 모임이 어쨌든 아직 정식으로 교역자는 아니지만 선교사 후보생들로서 외국인 선교회가 있어서 그래서 두 분 신학생들이기는 하지만 그분들이 일을 주도해서 어쨌든 시설까지 마련해주고 스리랑카 팀, 태국 팀, 중국 팀, 등등이 일단 정기적인 모음을 갖고 자기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와 시설들을 갖고 뭔가 정해진 규칙을 따라서 그들이 사역을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도 사실 지난 한 10년 이후 17년 역사의 흐름 동안에 잘 형성된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 사람들이 많이 헌신해주었고 외국인 선교 같은 경우는 전에 있던 위원장이 아주 헌신적인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사역들을 키워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웃리치를 통해서 맺어진 많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가지면서 이제까지 우리들이 해온 것이에요. 이것이 사실은 10년부터 시작해서 17년 사이에 이루어진 가시적인 발자취라고 우리들이 이야기하며 되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 향후 길면 10년 변화가 훨씬 더 빠르다면 오늘 이야기하는 것이 근간이 되어서 나머지 것들이 한 5년 정도 후에 궤도 수정되면서 내용들이 더 추가될 것이라고 보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골간은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것들이 줄거리를 이루면서 향후 10년 더 다양하게 선교사역이 뻗어나가지 않겠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 선교사역은 제일 중요한 것은 이미 잘되고 있는 것들은 올바르게 잘되도록 합리화하고 그리고 우리들이 타성에 젖지 않고 그 사역을 통해서 새로운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정착하고 성장해 나아가서 더 많은 헌신자들이 그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매진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하나는 8년 전에 여기에 왔는데 8년 전에 왔을 때에 비해서는 교회의 규모도 두 배 반 이상이 커졌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훈련된 정도도 그때에는 초등학교 학생이라면 지금은 고등학생이 될 정도로 그렇게 훈련이 된 자원들도 많아지게 되었어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하나님이 그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고 자원들을 주시면 절대로 하나님이 가만히 내버려두시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8년 전에는 보지 못했던 일들을 보게 해주셔서 눈을 뜨게 하셔서 또한 새로운 사역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결국 여러분들이 건의를 하고 그리고 여러 선교위원들이 검토를 하면서 이런 것들도 세워지게 되겠고 또 한편으로는 저를 통해서 새로운 비전들을 보게 하시고 여러분들을 설득하셔서 일을 해나가게 하시겠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을 잘하는 것과 두 번째 그러면 향후 길면 10년 짧으면 5년 어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역량을 모으기를 원하시는 그런 새로운 선교의 비전들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들이 파악하고 그 새로운 것들을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올바로 이루어 나아가 새로운 사역의 지경들을 넓혀서 어쨌든 복음을 온 땅 끝까지 전파되는 데에 이바지하고 우리교회 뿐만이 아니라 보편교회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향후 짧으면 5년 길면 10년 동안 추진해 나아갈 이 모든 계획들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자기의 책속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두 가지라고 보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교회의 영적 번영과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떼어놓을 수 없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늘 삼중구도로 나타타는 이 시편 67편을 통해서도 분명해지는 것이죠. 하나님이 그 얼굴빛을 백성들에게 비추시면 그러면 하나님의 도가 만방에 펼쳐지고 그러면 그 도를 들은 민족들이 우리와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 것 이것이 결국은 교회의 참된 영적 번영에서 그 다음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변화 그리고 이 세상의 도가 전파되고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형성되는 이 삼중적인 구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자 그래서 이제 우리들이 다음과 같은 일들에 우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이제 향후 짧으면 5년 길면 10년 동안에 우리들이 이 일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죠.
Ⅲ. 열린 교회의 선교내용
1. CRTS
① 현황
우선 첫째로 밖에 있는 우리의 사역들을 먼저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첫째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CRTS를 온전하게 정착시켜서 열매를 맺게 하는 그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1,2,3학년 학생들이 모두 차있고 그리고 35명 정도의 학생들이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 26명의 교수님들이 거기와 관련을 맺고 그리고 CRTS의 교수 요원들로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중국선교에 있어서 일익을 감당할 만한 아주 유능하고 실력 있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오래 전에 제가 선교특강을 할 때도 한번 이야기했지만 사실 1997년부터 중국신학교에 대한 꿈을 품었습니다. 수없이 여러 신학교의 강사로 불려 다니면서 설교도 하고 강의도 하였습니다. 개중에는 조선족도 있었고 아니면 한족이나 다른 족속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 신학교들이 모두 너무 열악하다는 것이죠.
우선 입학하는 학생들부터 문제가 되는 것이죠. 알다시피 그 나라에서는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입니다. 돈이 안 들어갑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부터는 의무교육이 아니라 자신들이 학비를 대야해요. 그래서 그 학비가 약 4,000원정도 들어가는데 그 정도의 돈이면 달러로 약 800달러 정도 되는 돈이거든요. 800불 내지 900불정도 되는 돈인데 그 정도의 돈이면 그 나라에서 농촌에 있는 농부들이 일 년을 수확하고 자기들 먹을 곡식을 예비한 다음에 나머지 곡식들을 다 팔았을 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수입이에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지요? 자녀를 고등학교에 진학시켜서 공부를 시킨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리 농촌에서 대학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인 것이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에요. 그러면 기본적으로 농촌에는 꿈이 없어요. 60년대의 한국처럼 전부 도시로 상경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오면 걔네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정해져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사무직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겠어요? 공장에 다니거나 옛날처럼 공장에서 일하거나 발 마사지사가 되거나 신앙이 없으면 윤락산업에 빠지거나 그렇게 되거든요. 그런데 걔네들이 신앙이 있으니까 오는 것이죠. 그러면 와서 주거하고 숙식문제를 해결할 데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신학교는 그것을 완벽하게 해결해주는 것이에요. 여건이 열악할지라도 아무튼 숙식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죠. 그러면 이 사람들이 옵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얘네 들은 이제 16살밖에 안된 아이들이에요. 그런데 그중에는 진짜 신앙이 있어서 열정이 있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냥 막연한 도시의 꿈을 안고 그냥 와버린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이미 현재 목회하고 있는 평신도들이 와서 신학교를 채우는 것이에요. 기본적으로 신학교육을 전달할 수 있는 지적 기반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교육을 시키는데 그 다음에 무슨 문제가 나오느냐하면 교육이라는 것은 신학교육을 시키기 전에 이 사람들을 3년을 가르쳐서 어떤 종류의 신학을 어떻게 넣어주어서 마지막에 이 사람들이 성경을 어느 정도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설교하고 성경의 원리를 따라 살고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훈련해야 되는데 아이들이 워낙 어리고 두 번째는 신앙의 안정감이 떨어지고 그 다음에 더 큰 문제는 그런 커리큘럼을 짜서 엄격하게 분야별로 그것을 가르쳐야지만 골고루 된 교육이 되는데 그럴 수가 없는 것이죠. 이유가 뭐냐 하면 그렇게 다양한 과목들을 만들어놓고 전공한 사람들이 가서 적당한 때마다 규칙적으로 그것을 가르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죠. 더군다나 현실적으로 그 신학교를 유지해야하는 비용의 문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목회자들에게 부탁해서 먹을 것도 사가지고 오고 돈도 기부하고 와서 강의하고 가실 수 있는 분들이 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무엇을 해줄까요?’ 그러면 ‘목회실천신학을 해주십시오.’ ‘성경 신학을 해주십시오.’ ‘조직신학을 해주십시오.’ 그것이 아니라 ‘그냥 잘하시는 것을 해주십시오.’ 그렇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와서 그분들을 그래도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해주는데 결국은 무슨 특별한 학문적인 토대가 없는 가운데 전달하는 사람의 강의도 수준이 안 되고 듣는 학생들도 그것이 안 되니까 결국은 3, 4년을 배웠어도 기본적인 우리 열린 교회에서 하는 새가족 공부의 체제만큼도 체제가 안 잡힌 것이에요. 분명히 신학교는 4년을 숙식을 하면서 다녔는데 정리된 내용들은 거의 없는 것이에요. 그게 또 이제 중국의 이단이 기승을 부리는 요인이 되는 것이에요. 이단이 강력하게 일어날 때 거기에 편승하는 목회자들이 수없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에요.
이런 혼란상들을 보면서 저는 걱정을 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섭리 속에서 한국교회에서 하는 그런 신학교를 나온 사람들로 어쨌든 덕을 보아서 그래도 목회를 하게끔 그렇게 만드셨어요. 구라파와 미국에서 제대로 된 신학교육을 중국에 해보려고 선교사들이 굉장히 애를 많이 썼습니다. 성공한 예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정적으로 거의 안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welcome이에요. 아주 좋아해요. 생긴 것도 비슷하고 그다음에 일본사람에게는 무슨 원한관계가 있지만 우리하고는 별로 없어요. 옛날에 을지문덕 장군 때 싸웠지만 그것은 아주 옛날 수나라 때 이야기니까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잘 통하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의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상대방 나라가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밀접한 무역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활발한 교통이 이루어지고 이렇게 되어왔던 것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제가 계속 고민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은 안 된다. 왜냐하면 중국이 1990년대 이후로 발전하는 속도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발전했던 속도의 두 배 이상 되는 가속도가 붙어서 굉장히 빨라요. 그 증거가 무엇이냐 하면 1997년도에 제가 중국에 갔을 때 일하는 하급 노동자들의 품삯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식당에서 물 잔을 나르고 주문을 받는 아이들의 월급이 한 40달러 미만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냐 하면 지금은 200달러에서 250달러 이상이에요. 그러니까 엄청나게 치솟은 것이죠. 그리고 물가수준은 비교할 수 없어요. 특히 북경 같은 곳은 사실 제가 1998년도에 갔을 때 강의 듣는 학생들이 다 가난한 학생들이었잖아요? 위험해서 많이 모일수가 없는데 한 20명씩 모여서 강의를 듣고 그런 다음에 항상 제가 데리고 나가서 한번 정도만 점심을 사주었어요. 그러면 지금 서울로 따지자면 어디쯤 될까? 미아리쯤 되는 수준이에요. 그래서 가서 동네에 있는 식당에 가서 ‘그저 고생했으니까 많이 먹어라.’ 그러면서 이것저것 시켜주면 접시위에 접시가 나와요. 그렇게 하면 한국에서 나도 먹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먹고 나와도 20명이 먹고 4만원만 내면 뒤집어썼어요. 지금은 지난번에 내가 거기 갔을 때 신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니까 어느 목사가 나를 데리고 밥을 사주는데 둘이 밥을 먹는데 좋은 식당에서 먹었으면 내가 말도 안 해요. 좋지도 않은데 접시 다섯 개정도 시켰는데 100원짜리를 한없이 세어서 내는 것이에요. 그러고 보니까 우리 둘이 먹은 것이 한사람 앞에 35,000원 어치는 되는 것이에요. 그게 지금 그 나라의 실정이에요. 이렇게 되면서 막 빈부의 차이가 급속하게 벌어지고 굉장히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지요.
점점 더 빈부의 차이는 심해지고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뭐냐 하면 연안을 주변으로 교육열이 엄청나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은 안 믿을지 모르지만 상해와 북경 쪽에서는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한 달에 칠십만 원짜리를 시켜요. 별로 안 놀래네요.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아이들의 월급이 우리로 따지자면 35만 원 정도밖에 안되는데 유치원 다니는 애를 70만 원짜리를 시킨다면 놀래야지요. 뒤로 나자빠질 정도지요. 여기로 말하자면 유치원 아이들의 교육을 600만 원짜리를 시키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렇게 말하면 뭐하지만 돈을 쉽게 벌었기 때문에 막 쓰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러면서 교육수준이 엄청 높아지는 것이에요. 그런데 벌써 이게 선교적으로 보상이론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가난하고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으면 종교에서 그것을 보상 받고 싶어 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국민소득 5000불이 기준이에요. 그런데 벌써 연안 쪽은 5000불을 넘어서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종교적인 욕구도 떨어지고 그리고 거기에서 예수를 믿고 크리스천이 된 지성적인 사람들이 갈 교회가 없어요. 정부에서 인정한 교회의 신학은 자유주의에요. 그리고 지하교회는 요즘은 좀 덜한데 옛날에는 진짜 목회자들의 교육수준이 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도 안 되는 것이에요. 그것을 보면서 미래에 이 나라의 교회가 살기위해서는 결국은 제대로 된 지도자들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선 그 많은 교수들을 동원하는 문제도 쉬운 문제가 아니고 또 하나는 학생들을 모집하는 것이 그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정상적으로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영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지만 되겠는데 그런 사람들 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아주 희소하고 그다음에 또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다 신학교에 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것들이 어려웠던 것이에요.
그리고 신학교 교수문제도 보면 잘 부탁하면 한번은 가요. 그런데 두 번은 힘들어요. 그러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오랫동안 준비하신 것이죠. 그래서 제가 한국에 있는 많은 교수들과 많은 교분을 갖고 그리고 또 그 교수들이 열린 교회를 어느 정도 신뢰하면서 동역하기를 원했고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어서 그런 교수들 속에 쌓여진 지난 10년 어간동안의 인맥들을 통해서 가고 그리고 그 교수님들이 절대로 자원봉사로 해서는 한번은 가능하지만 두 번은 어렵다. 물론 그분들이 강사료를 보고 가는 분들은 아니지만 그러나 강의를 준비하고 가서 강의하고 돌아오기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리는 것이에요. 평소에 있는 것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고 아침에 강의를 시작해서 다섯 시가 다되어서 끝나는데 사실은 우리 같은 나이에 하루만 하면 퍼져버립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그것을 밤까지 계속한다면 그것을 살인적인 강행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안하면 그것을 삼일만 하고 오면 될 것을 그렇게 안하고 몸을 풀면서하면 두 배를 거기에 더 체류를 해야 하는 것이에요. 그 사람들도 그렇게 하면 너무 바쁘니까 연구비를 하실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우리들이 사례를 충분히 하고……. 요번에도 너무 감사한 것이 교수님들이 자기가 받는 사례비에서 25%를 전부 걷어서 신학교의 장학금으로 보냈어요. 나는 이게 원하는 것이 아닌데……. 25%를 강의를 더 잘해주면 되는데……. 우리가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닌데……. 그래도 어쨌든 너무 감사하잖아요. 어느 교수님은 아예 안 받는다고 그래서 우리는 딱 잘라서 우리는 그런 규칙이 없으니까 그것은 당신이 나중에 필요하면 헌금을 하더라고 우리는 다 송금한다. 우리가 송금하면 받아서 거꾸로 우리에게 송금해준 교수님도 있고 아무튼 참 은혜로운 역사가 많아요.
그렇게 해서 이제 드디어 CRTS가 설립된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또 다 협력할 수 있는 교수들을 예비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아주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지금은 교수들이 다 확보되어있고 지금은 이제 더 좋은 교수님, 더 완벽하게 학생들에게 올바르고 좋은 신학교육을 시킬 수 있는 교수님들과 이것은 나만의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한국의 유수한 대학의 좋은 젊은 교수님들이 우리 CRTS와 같이 인연을 맺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니 정말이에요. 그렇죠? 그래서 아직까지 우리가 부탁했을 때 거절한 경우를 거의 못 만났어요. 그렇게 소장파 교수님들을 중심으로 이 일들이 이루어지고 가능하면 연세 드신 교수님들까지 가서 나이의 균형들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 저의 의도에요. 그리고 철저하게 검증의 과정을 거쳐서 개혁신학을 통일된 사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수님들로 조정하고 이렇게 하는 일들을 우리들이 해나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알다시피 지금 현재 네 가정이 파송되어 있고 두 가정이 그쪽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고 그 다음에 한 싱글선교사가 그곳에서 협력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 자매도 우리 교회에 가끔 오는데 나이 50이 넘은 독신이에요. 대만에서 중국현대문학으로 박사학위를 한 재원이에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이 놀랍게 엮어주셔서 중국에서 비전을 우리들이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이에요.
② 향후 계획
자 이게 지금의 현황인데 앞으로 이것들을 어떻게 갈 생각이냐 하는 것이죠. 여기에서 우리들이 향후 짧으면 5년 길면 10년에 가야할 지도들을 우리들이 한번 그려보는 것입니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3학년 졸업하는 학생들이 계속 공부할 수 있고 그 다음에 사역을 해나갈 수 있도록 우리들이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지금 현재 MD부 과정이 3년으로 마치는데 우리들이 혹시 만약에 수업의 부족으로 인해서 우리들이 만약에 좀 더 연장된 교육을 제시한다면 3년 반 정도에 우리가 아마도 3년 반 아주 길면 1년 정도 연장을 하면 내가 보기에는 6개월 정도만 더 연장한다면 그러면 아마도 이제 MD부 과정의 커리큘럼을 마칠 것이고 거기서 받는 교육은 한국에 있는 유수한 신학교 수준에 못지않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학생들이 아주 우리가 제공하는 신학교육에 만족하고 있고 자신들도 여러 교육을 받아보았지만 이 정도의 높은 수준의 신학교육을 그것도 동시통역으로 완벽하게 번역된 교재들을 가지고 우리들이 이렇게 할 있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라고 자기들도 이제 인정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들어오겠다는 학생들이 지원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고 할 때 지금의 생각으로는 3학년이 끝나는 학생들에게 6개월 정도 연장된 교육을 시킨 후에 그리고 부족한 부분들을 잘 매만져서 보충시킨 후에 우리들이 THM과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THM과정에서는 전공분야별로 나누게 되어서 졸업한 학생들 모두가 THM을 거치는 것은 아니지만 학문에 소질이 있고 그 다음에 미래에 교수요원으로 쓸 만한 사람들을 거기에서 선별해서 그래서 THM과정으로 교육하는 것이죠. 그래서 해마다 12명 정도가 졸업한다면 그중에서 한 3~4명 정도가 THM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고 그래서 그 학생들이 2년 코스니까 8명 내지 10명 정도의 학생이 되지 않을까 보는 것이죠. 그래서 거기에서 구약, 신약, 조직신학, 그리고 교회사, 실천신학, 우선 급한 대로 5개 정도의 분야만 THM과정을 공부하게 해서 거기에서는 훨씬 더 적은수의 학생들이 교수들과 함께 말하자면 거의 2:1 아니면 3:1 많아보아야 4:1 정도의 교육을 받으면서 토론식으로 세미나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해나가는 그런 것들을 원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 가능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 현재도 신약학 교수 한분이 이제 안식년을 맞았는데 6개월 동안 자기가 중국어도 배우고 그 학교에서 봉사하겠다고 해서 우리가 하우징을 해주어서 그 아파트에 있으면서 매주 월요일마다 나와서 학생들을 만나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수진들을 활용하면 우리들이 한꺼번에 5개를 다 개강할 수는 없지만 그러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것도 또 필요하면 집중교육을 해서 그렇게 해서 우리들이 강의를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자란 학생들이 이제 앞으로 지금 있는 A급 신학교 말고 B급 신학교, 대학을 못나왔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혹은 중학교밖에 졸업을 못했지만 이미 목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재교육시키기 위한 B급 신학교를 만들어서 내용을 좀 더 쉽게 덜 이론적이게끔 만들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건전한 목회를 하도록 돕는 그런 신학교를 만들 때 그 사람들을 교수요원으로 쓰려고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신학교가 투톱으로 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학력자들과 전도자를 길러내는 그런 B급 신학교, 그리고 A급 신학교 그렇게 두 개로 이쪽은 본격적인 지도자반이고 이쪽은 말하자면 중간급 지도자반으로써 그렇게 해서 투톱으로 가려고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그 학생들이 이제 졸업을 하는 해 3학년이 내년부터 졸업을 하게 되는데 졸업을 한 후에 이 사람들의 진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오는 것이죠. 우선 교회의 질서와 제도 안에서는 이 사람들을 강도사, 그리고 과정을 거쳐서 목사가 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득불 우리가 나름대로 그쪽에서 강의하는 교수님들과 현지에 있는 목회자들과 잘 협의를 해서 그래서 옛날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노회를 만들고 총회를 만들어서 그래서 교단을 형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입학생들 가운데 현직 교수들이 지금 대충 파악하고 있는 사람만 4명 정도 됩니다. 그래서 그런 교수들이 있고 학교 선생도 있고 기업체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등등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잘 길러내서 그래서 엄격하게 신학시험을 보고 수련을 거친 다음에 강도사, 그리고 목사 이런 말하자면 안수를 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서 풀어야할 굉장히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뭐냐 하면 지금 와서 신학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거의 다 평신도에요. 그런데 그들을 전도하고 목회하고 있는 사람도 목사가 아니라 평신도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이 사람들에게 목사를 주어버리면 교회가 이상하게 되는 것이에요. 담임목회자는 전도자고 그 전도 받아서 한 아이가 CRTS에서 와가지고 목사라고 등장하게 될 때 교회의 밸런스가 어떻게 되느냐하는 문제가 나와서 사실은 이 목회자들의 현지에 있는 목회자들의 저항이 상당히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것들이 지금 풀어야할 숙제인데 그쪽에 있는 팀들하고 현실적으로 그쪽에 있는 목회자들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저 갖는 생각은 뭐냐 하면 이미 그들의 목자로 있는 사람들을 어느 날 갑자기 가서 우리가 이렇게 해서 이 사람들을 안수주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잘 설득해서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적절한 신학교육을 제공하고 3년 과정을 모두 거치지는 못했지만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을 시켜서 기왕에 목회를 하고 있으니까 목사 안수를 그 사람들에게 먼저 주고 그리고 후에 신학교 졸업생들이 목사가 되는 절차를 밟는다면 그러면 그런 충격들을 좀 완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생각인데 문제는 어느 날 가서 ‘그대 안수 줄게!’ 그러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그래서 이제 그렇게 협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나와 우리 교회 그리고 지금 강의하고 있는 교수님들에 대한 믿음과 관계가 상당히 심화되어야겠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죠. 그게 사실은 지난해에 방문했을 때 그쪽에 있는 선생들하고 이야기하면서 나한테 어떤 제안을 했느냐하면 그쪽에 지금 현재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회자들을 열린 교회가 비용을 부담해서 한국으로 초청해서 열린 교회가 얼마나 건강하고 괜찮은 교회인지도 보여주고 그러니까 거기의 학생들은 알지만 거기에 학생을 보낸 담임교역자는 아무 배경을 모르는 것이에요. 그리고 한국말을 하면 나를 알겠지만 한국말도 못하니까 사실은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것이죠. 이렇게 저렇게 들어서만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 사람들을 한국에 오게 하면 거부할 일은 없으니까 그렇게 해서 교회에서 좀 따뜻하게 welcome해서 성도들과도 교제를 갖게 해주고 그 사람들에게도 말씀을 전할 기회도 주고 그래서 교류를 몇 번하고 그리고 한국교회의 이런 사정도 보고 또 강의하는 교수님과도 교제를 하고 이렇게 하게끔 해서 그래서 심리학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에 ‘그러면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가 졸업했는데 이 학생들이 안수를 주어야겠는데 교단 없이 어떻게 안수를 받느냐? 그러니까 당신들이 교단을 먼저 만들어라. 그러면 우리 신학교가 그리로 들어가마.’ 이렇게 회유를 하려고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교단을 만들려면 그 사람들이 평신도로서는 교단을 만들 수 없고 목사 안수를 받아야하는데 그 사람들은 다 독립해서 교회를 개척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가 어디 가서 안수를 덜렁 받을 수 없는 것이에요. 이런 목회자들도 우리들이 기본적인 신학적인 입장을 천명하고 그 다음에 그 이후에 우리가 여러분들을 어떤 절차로 안수를 줄 것인가에 대해서 의논해서 한 학기든지 아니면 집중해서 몇 달이든지 아니면 일 년이든지 아니면 우리학교 3학년에 편입을 하든지 이렇게 해서 코스를 밟고 정식으로 여러분들이 자격이 갖추어진 것이 인정될 때 그러면 우리들이 안수를 주겠다. 그리고 안수를 주면 여러분들이 만들어서 총회를 만들고 그 총회가 만들어지면 당신들은 교회에서 각자 담임목사가 되었을 테니까 그때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강도사 과정을 거쳐서 그래서 여러분들이 시험도 보고 이렇게 해서 자격이 되는 사람을 선별해내면 그러면 안수를 주자. 그래서 여러분들 스스로 교단을 형성하도록 하자. 이렇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에요. 그런데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것은 우리 집사님이나 장로님들이 가서 타협을 보고 그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발 벗고 뛰어서 이 문제를 풀어야하는데 솔직히 이야기해서 해도 해도 일이 끝이 없어요. 이것만 하는 것 같으면 내가 풀지요. 우리 최 간사의 이야기는 목사님 주변에 큰 일이 9개 정도가 계속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중에 하나에요. 이게 해도 해도 일이 끝이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갈 때마다 그쪽에 있는 좋은 목회자들을 만나서 교제도 하려고 그러는데 관건은 뭐냐 하면 그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여기 선교위원들도 계신데 중요한 숙제가 사실 지금 CRTS위원회가 있어서 하지만 사실은 그 나라를 위한 협의체가 있고 그래서 그런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든지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에요. 이게 무슨 내가 중국어도 못하지……. 그러니까 이중 삼중으로 보통일이 아니에요. 이것만 하면 그래도 하겠는데……. 그래서 이것을 현재 금년에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내야 하고 그리고 내년에는 반드시 풀어내야합니다. 내년 한 해 동안이 문제를 풀어내야 되요. 그래서 어쨌든 그분들에게 내가 보기에는 신뢰를 주고 그리고 한국으로 초청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 같아요. 그래서 원래 계획은 올봄에 사실은 초청을 하자고 그랬는데 알다시피 다른 일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서 우선순위가 밀려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가서도 그 문제를 의논하려고 하는데 이제 이렇게 일이 형성되려고 하는 것이에요. 대충 그림이 그려지겠지요.
자 그러면 그 다음 문제에요. 그것도 CTRS와 관계된 것이에요. 그러면 거기에서 배출되는 엄청나게 많은 신학생들 일 년에 10명 이상씩 배출될 텐데 이 사람들은 이렇게 교육을 시켜서 개 교회에 갖다 두면 끝난 것이냐? 이렇게 우리들에게 질문할 것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우리들이 그 사람들을 기를 때에는 물론 교육을 잘 받고 개 교회에 돌아가서 열심히 봉사하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그 일도 해야 되겠지만 우리가 맨 처음에 신학교를 한 목적 자체가 선교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가 꿈꾸는 것은 뭐냐 하면 이 졸업한 학생들과 함께 내륙사역을 하고 싶은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 중국의 판도를 보면 연 안쪽 이쪽에서 국민소득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소위 이야기하는 3D업종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내륙 쪽으로 내륙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에요. 그러면 올라갈수록 물가나 단가가 계속 떨어지는 것이죠. 내륙 쪽으로 쭉 들어가면 음식 값부터가 피부로 느끼게끔 현저하게 차이가 나요. 지금도 저쪽 내륙 쪽으로 들어가면 인구조사가 안 되어 있어요. 인구조사는 무슨 인구조사에요. 토굴 속에서 가마니 데기를 쳐들고 나온다고요. 그러니까 그런 정도에요. 그러니까 그 수준의 차이라는 것은 굉장한 것이죠. 그래서 그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되느냐하면 농촌사회에 살아가면서 목회자가 없어요. 그러니까 거의 다 이제 그냥 그 동네에서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도시에서 그렇게 좀 엉성하게 신학교육을 받고 온 사람들 그나마도 못한 사람들도 있어요. 자기가 일터를 떠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밑에 놀랍게도 200명 600명이 모이는 것이에요.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회심한지 2년 6개월 되었다는데 목회자에요. 교인이 몇 명이냐고 그러니까 6,000명이래요. 아이고, 열린 교회 새가족반을 마칠 정도의 수준인데 6,000명이 모인대요. 그래서 내가 ‘서로 고생이겠구나!’ 그랬어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제가 고민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비록 토굴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엄청나게 추운겨울에도 모여요. 어는 강사가 자기는 다시는 중국에서 신학 강의하라고 그러면 안 간대요. 왜 안 가려고 그러느냐고 그러면 추워서 죽을 뻔했대요. 너무 추워서……. 그러니까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서 아예 불을 안 때는데 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단련이 되어서 괜찮은 것이에요. 그 추운데 맨발로 강의를 듣더래요. 우리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추위래요. 입이 얼어붙어서 말이 안 나온대요. 그런 열악한 속에서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제 이 졸업한 학생들을 졸업을 하고 나서는 최대한 설득을 해서 복음사역에 전념하도록 해서 이 학생들을 데리고 내륙사역을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하면 일단은 이제 한 달에 한주정도씩 시간을 내서 아웃리치를 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기차를 타고 다섯 시간 내지 열 시간을 들어가야 해요. 들어가서 그래서 한 선교사가 학생들 열 명이면 열 명, 처음에는 열 명이 안 되겠지요. 한 4명 정도 맡아가지고 가서 그 학생들과 조인해서 그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을 모아서 우리들이 교육을 하고 우리들이 농어촌 지도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처럼 교육을 시키고 교재도 만들어주고 해서 그 교회에서 가르치는 커리큘럼이나 이런 것들을 만들어주고 그것을 교육시킬 수 있도록 그런 모든 것을 Assist해주는 것이에요. 나의 관심사는 그 보편교회의 진정한 성장에 있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고 전도하고 하는 것들은 그 사람들이 주도가 돼서 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한 사람당 교회를 4교회든지 6교회든지 맡아서 돌아가면서 돌아보게 하고 만약 4교회를 맡는다면 일 년에 한 교회에 세 번을 갈 수 있어요. 한 달에 한번 나가니까 가서 한주동안 있으면서 그 교회를 섬기면 만약 한 삼일씩 쓴다면 6번을 가서 돌아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그 학생들과 손잡고 내륙사역을 펼치려고 하는 것이에요. 그쪽에 있는 우리 선생들에게도 내가 이야기한 것이에요. 각자 자신들의 비전이 있을 것이다. 나는 캠퍼스 선교를 해야겠다. 나는 문화사역을 해야겠다. 나는 번역 선교를 해야겠다. 해라. 하는데 3주 만 해라. 그리고 한주는 시간을 내서 그 학생들과 더불어 내륙사역에 들어가라. 내륙사역에 들어가서 그 학생들과 더불어서 내륙사역을 하고 그러다가 보면 그 학생들에게 선교지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거든요. 그러면 거기에 가서 자기가 정착된 목회를 하겠다고 하면 목회를 하게끔 지원을 해주고 선교비도 필요하면 본국 교회하고 엮어서 선교비도 지원해주고 그래서 그 다음에 때가되면 일 년에 한 번씩 모두 모아서 목회자 재교육을 시키면서 영적 수련회를 하면서 그렇게 Refresh 시켜서 보내고 이런 일들을 이제 꾸준히 하려고하는 것이에요. 대충 감이 잡히시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일하고 있는 선생들이 어학이 훨씬 개선되어야하고 좀 더 많은 통역 요원들이 좀 더 유능하게 통역할 수 있는 요원들이 끊임없이 양성이 되어야하는 것이죠. 대충 감이 잡히죠? 그렇게 하면 그렇게 신학교가 펼쳐질 그림들이 보이잖아요. 그러면 지금 현재 첫해에 열 명이 졸업을 하고 3년 후면 졸업생들이 30명이 되고 재학생들이 30명이 되잖아요. 재학생들은 파트타임으로 가서 그 일을 하고 졸업한 사람들은 풀타임으로 그 일을 한다면 졸업한 모든 사람들이 그 일을 전적으로 거들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충 쳐서 숫자가 계속 올라가겠지요. THM까지 치면 한 40명 정도만 그 일을 하고 한 사람이 4교회정도씩만 맡아서 그 일을 한다고 하고 한 교회에 200명씩 다닌다고 치면 그러면 거의 8000명의 중국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기본적인 틀들이 짜이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신학교는 계속 사람들을 배출해서 보내고 그 다음에 또 방향을 바꾸는 사람들은 보충하고 그 다음에 남는 인력들은 새로운 내륙지방의 사역을 찾아서 발굴해서 그들을 보내는 사역을 계속 펼쳐나가는 것이에요. 그림이 보이시지요? 대충 떠오르지요?
그런 신학교를 중국에 4개 정도 하는 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꿈이에요. 좀 더 진전시킬게요. 지금 하는데 그럼 3개정도를 더 해야 한다는 것이잖아요? 중앙, 북부, 서부, 동부 이렇게 해서 4개쯤 만들어놓고 신학교를 운영해나가는 것이에요. 그리고 각자 4개의 신학교가 교단을 따로 세울 필요가 없이 통합을 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각자의 신학교가 지금 이야기한 것같이 비전을 가지고 계획을 가지고 그런 식으로 똑같이 틀이 돌아가는 것이에요. 그러면 신학교육을 어떻게 하느냐하는 문제가 나오지요? 그래서 어떻게 되어야하느냐 하면 가능하면 그런 시기가 빠르게 오기를 바라는데 5년은 너무 긴 것 같고 빠르면 2년 늦어도 3,4년 내로 4명 정도의 전임교수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Job을 갖지 않고 그 신학 교육만을 담당할 교수들을 4명 정도 확보해서 그 사람들로 각 4개의 신학교의 학장이 되게 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그 사람들이 4명이 다른 각각 다른 과목을 맡아서 비행기를 타고 도시를 돌면서 4학교의 강의를 소화해주는 것이에요. 무슨 뜻인지 알지요. 그리고 그다음에 여기에서는 계속 교수님들을 Recruit해서 강의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이런데서 모아서 그 사람들을 이 4학교의 학기에 맞추어서 돌아가면서 하도록 하고 그래서 이번에는 A도시에서 했는데 이것이 끝나고 나서 그 다음 시간에는 빨리 비행기를 타고 그 다음 도시의 B라는 신학교를 하고 움직이면 지금보다도 오히려 경비는 훨씬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역시 학교는 학자에 의해서 장악이 되어야지만 제대로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제 참답게 개혁신학의 입장에 서있고 그리고 열린 교회의 이런 선교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을 보내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이제 여건이 좋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박사 인플레에요. 그래서 학위를 받고 와도 지금 취직이 안돼요. 그래서 사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유학을 하신 분들 가운데는 선교에 뜻을 가진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학자로서 선교에 봉사하기 위해서는 그보다도 더 좋은 위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가족은 함께 중국에 가서 생활하셔도 괜찮고 아니면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생활을 하셔도 좋고 아이들이 어리면 한국에 정착을 하고 드나들면서 사역을 하시면 되요. 그렇게 해서 5명 정도의 전임교수를 갖추고 한국에는 이 4학교를 모두 통활 해서 사무를 볼 수 있는 여기에 본부가 하나 서야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명의 교수는 본부에 남아서 4학교 전체의 Network를 통활 하는 것이죠. 그러면 아까 이야기했듯이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면 한학교가 8000명 정도의 내륙사역을 감당하면 4학교면 32,000명 정도가 되고 한 학교에서 너무 많이 욕심을 내지 말고 한 학교에서 15명씩만 신학생을 배출한다면 한해에 60명씩 나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변이 없는 한 그 사람들이 2년 정도 후에 목사가 되는 것이죠. 그러면 이게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4학교가 정착이 되어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8,000명이라는 계판(?)은 그쪽에 Recruit되는 학생들의 수에 따라서 이 계판(?)은 계속 늘어나는 것이죠. 그 속에서 소명 받은 학생들이 내륙을 가는 것이에요.
제가 어떤 경험이 있었느냐하면 신학대학원 3학년 때인데 미국교수님이 선교학 시간을 맡아서 오셨어요. 그리고 이 양반이 굉장히 힘든 숙제를 내주셨어요. 뭐냐 하면 한국에 사방 4㎞가되고 아직 교회가 서지 않은 곳 530군데를 조사해가지고 온 것이에요. 그것을 조사를 그 당시에 한국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미국 장로교 선교회에서 조사한 것이에요. 그러면서 뭐라고 그러느냐하면 이게 너희나라의 무교회지역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그중에 골라서 가서 보고 선교현황을 조사해서 Report로 내라는 것이 숙제였어요. 꾸물거렸더니 가까운 데는 다 도장을 찍고 저 강원도 동해가 하나 남았어요. 그래서 그때 할 수 없이 백목사하고 나하고 둘이 짝이 되어서 갔는데 그렇게 우리 반 학생들이 확 퍼져서 했는데 그중의 한 학생이 자기가 조사를 갔던 그 지역에 가서 교회를 세웠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현장을 보여주면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굉장히 많은 현지의 목회자들을 훈련받은 신학생 중에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보는 것이에요.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야심찬 신학교육의 계획이 사실은 그 나라에도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토털신학교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해서 4학교인데 내 생애에서는 그 이상까지는 욕심을 못 내겠어요. 그것도 사실은 내가 할 수 있을까 모를 정도인데 대충 한 2년 전에 계산을 해보니까 그렇게 형성이 되었을 때 들어가는 비용이 줄잡아서 1년에 10억 정도 들어가더라고요. 물가가 계속 오르니까 더 들어갈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쨌든 한 달에 1억 정도를 지출해야할 정도의 케파(?)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럼 거기에서 그런 사람들이 배출되면서 그러면서 그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여진다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래서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꿈은 뭐냐 하면 교회가 얼마나 더 커질지 모르지만 그래서 각 신학교마다 아예 학장을 임명하고 그 다음에 이사장은 한국의 열린 교회의 평신도가 되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이사회에서 그 학교를 독자적으로 커다란 틀 안에서 위임된 것들을 독자적으로 해나갈 있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냥 아무나 시키면 안 되고 대기업체에서 임원을 했다든지 아니면 선교에 대해서 상당한 식견이 있다든지 아니면 자기의 회사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든지 뭐 어쨌든 학교의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되는 분들이 있을 것이 아니에요. 그럼 또 장로님하시다가 은퇴하신 분들이 시간도 많으실 테니까 필요로 한다고 하면 언제든지 날아가서 하게하고 물론 월급은 안줘요. 월급을 주면 지망자가 너무 많겠지요. 그리고 자원봉사로 가서 그렇게 해서 몇 명의 동아리들이 모여서 그 학교를 위해서 우리의 남은 인생을 한번 불태워 보자고해서 시간도 노력도 들이고 땀과 눈물로 장로님이나 안수집사나 거의 장로님이 되지 않겠어요? 그런 분들이 거기에 딱 틀어잡고 있어서 온 마음으로 눈물을 뿌리면서 그 학교를 한번 키워놓고 죽는 것이에요. 그럼 그 이상의 영광이 어디 있겠어요? 솔직히 얘기해서 평생 예수를 믿다 죽었다고 그러는데 자기가 한 것이 무엇이 있어요? 목회자를 만날 괜히 심방이나 시켰지요. 교회에 안 나와서 심방이나 시키고 말이지 한 것이 무엇이 있어요? 그런데 얼마나 영광인지 생각해보세요.
지난번 Internship 때 보니까 학생 하나가 합격해서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까 내가 주일학교 전도사 때 초등부 2학년 학생이 와서 결혼해가지고 전도사 졸업반이라고 그러면서 왔어요. 주일학교 한반만 맡아서 잘해도 그렇게 보람 있는 일들이 생겨나는데 학교를 하나 맡아서 한다는 것은 굉장한 것이에요. 그런 놀라운 섬김의 기회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게 해봐야 10억이에요. 100억 번 사람이 십일조 한 달만 내면 10억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려고 마음만 먹으면 일도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묻는 것이에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에요. 뭐냐 하면 여러분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해서 자기가 그 학교에 학장이 되고 물론 그것은 교수들이 하는 것이겠지만 이사장이 되고 혹은 재단 이사가 되고 그래가지고 그렇게 부지런히 그 나라를 넘어들면서 눈물로 기도하고 해서 거기서 자식 같은 사역자들이 생겨나서 그 나라의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고 그렇게 한번 잘 세워진 학교는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것을 아시죠? 그게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그렇게 여러분들이 가서 눈물을 흘리며 키운 학교 중에 나중에 연세대학교나 이화여자대학교가 될 수 있는 것이에요. 물론 신앙적으로는 더 좋은 학교가 되어야겠지만 말이죠. 누가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겠어요. 아펜젤러선교사가 와서 할 때, 크레스톤 부인이 와서 조그만 방에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가르치기 시작할 때 그렇게 세계적인 명문의 이화여대로 클지 누가 알았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이 좀 더 큰 꿈을 갖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선교헌금 한 주에 돈 만원을 하면서 그것에 만족하지 말고 ‘아 그래도 아웃리치에 가서 열심히 봉사하는데…….’ 그러지 말고 물론 그것도 해야겠지만 더 큰 꿈을 꾸어서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하겠습니다.’ 그래야지요. 그 나라에 대한 그림은 대충 나왔지요? 이거 십년 안에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그런데 십년 이전에 내가 제시한 이것들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제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너무 많아요. 그래서 내년에는 이런 업무를 담당하는 영어도 아주 능통하고 중국어도 능통하면 더 좋지만 그래서 그런 일을 전담할 수 있는 교수정도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교회에서 써서 그래서 이쪽 일들을 전체적으로 주관해서 내 일들을 덜어 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쪽 나라의 일이 대충 그림에 들어오지 않아요? 가슴이 뛰지 않아요? 안 뛰면 사실 쇠로 만든 심장이지요. 나는 갈 때마다 마음이 뛰어요. 막 설레요. 언어가 안통해도 가면 학생들이 막 착착 안기는 느낌이 드는 것이에요. 요새 제가 이제 교수들을 모두 동원하고 나서 강의를 전처럼 안했거든요. 그랬더니 학생들이 김 목사님 왜 와서 강의안하시느냐고 그래요. 그래서 이번에 20일 날 가서 바쁘긴 하지만 내가 한 4시간정도 강의를 하겠다고 그랬어요. 내 강의를 굉장히 좋아해요. 왜냐하면 내 강의는 어느 교수하고도 안 비슷해서 여기저기를 넘나들면서하니까 학생들이 질문도 많고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그렇게 사역을 펼쳐나갈 것이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가슴이 막 떨려요. 그 동아리 하나만 끌어안고 해도 얼마나 가슴이 벅차요? 그까짓 거 1년에 10억인데 십년이라고 그래봐야 100억밖에 안되는데 아무것도 아니지요. 하나님이 하시려고 마음을 먹으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나의 확신은 뭐냐 하면 목회를 경험해보니까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불가능한 것도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셔요. 큰일 났어요. 내가 강의를 1/3밖에 못했는데……. 자 이게 한 덩어리에요. 오늘 아주 시원하게 CRTS 사역을 펼쳐보였어요.
그래서 참고를 하시고 제 생각으로는 세상의 한 교회가 생겨나서 선교를 한다고 말하는 것에 있어서 지금 제가 말한 이 사역만 훌륭하게 수행을 해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앞당기는데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 나라에 갈 때마다 제 마음이 뜁니다. 아! 여기에서 뭔가 우리들이 아마 선교를 많이 알고 그 나라에서 이런 저런 풍파를 겪으면서 이러저런 과정들을 겪었던 사람들은 지금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주 굉장히 어린아이같이 천진난만한 생각이라고 깎아 내릴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제 세월이 지나면서 구체적으로 하다보면 아주 디테일한 부분들에 있어서는 현실이 좀 다른 것도 있고 좀 깎여나가는 것도 있고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것은 인정해요. 그렇지만 커다란 그림은 그렇게 그리고 우리는 간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또 모르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놀랍게 역사해주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죠. 그렇게 될 때 사람들이 물질문제를 가지고 걱정을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해요. 교회를 지을 때도 700명일 때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걱정하고 근심을 했는데 어는 한순간에 기도하면서 탁 털어버렸어요. 아, 내 집을 짓는 것도 아닌데 당신 집은 당신이 짓고 나는 이 집에 심부름 온 사람인데 당신이 하시겠지! 진짜 하나님이 하셨어요. 그래서 일만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일이고 순수한 마음이고 그리고 목적과 의도가 올바르고 하나님이 응답하시면 그 다음에 하나님이 놀랍게 하시는 것이에요.
서울 근교에 있는 신학교인데 이사들이 모여서 고민을 했대요. 총장이 고민을 하니까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신입생들이 계속 들어오는데 기숙사를 지어야 되는데 땅은 있는데 도저히 질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는데 이사 한 사람이 손을 들더래요. ‘총장님 그 기숙사 몇 명이나 들어갈 것을 지으려고 그러세요?’ 한 200명 정도인가 봐요. ‘그게 전부 얼마나 듭니까?’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요. 그 당시에 ‘15억 정도 듭니다.’ ‘그냥 제가 하지요. 왜 나를 이 학교의 이사로 보내셨나 했더니 그것을 그렇게 해놓고 저를 보내셨군요. 그냥 제가 지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20년 전 이야기인데 그 당시의 15억이니까 지금 한 70억 되는 돈이겠지요. ‘제가 그냥 하겠습니다. 번잡하게 모금을 하지 마시고 제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었어요.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상상이나 결론을 아주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우리들이 믿으면서 그러면서 우리의 꿈을 한번 펼쳐보는 것이에요. 그 일이 나의 재직 기간 중에 이루어질지 아니면 절반 정도만 하고 물려주게 될지 아니면 상상이외로 이것들이 빨리 진척되어서 이것들이 이루어져서 그래서 이런 사역에 동참하려는 교수들은 줄을 섰어요. 정말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해봐야 뭐 웃기겠지만 교수들이 우리 교회와 함께 일하는 것을 굉장히 기뻐하는 교수님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일들이 일도 아니고 그리고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CRTS를 한 4년 동안 우리들이 이끌어오면서 내린 결론이에요. 그러니까 가슴이 뛰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꿈을 크게 그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나이가 들고, 젊은 이사들이 섞어서 한 학교에 이사가 열두 명 정도 된다고 치고 그렇게 해서 모여서 일 년에 한 번씩 그 학교에 가서 교수들과 수련회도 하고 모금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그 학교가 눈물의 기도 속에서 이루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뛰는 것이에요. 그런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들이 기대해보는 것이죠. 지금도 정말 교회에서 받혀만 주면 내년에는 좀 힘들지만 일 년 반 정도만 시간을 주면 저 북쪽으로 올라가서 하나 더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언제든지 장로님들이 ‘됐습니다. 실행하십시오.’ 그러면 나에게 일 년 반만 여유를 주면 나는 하고 싶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가능합니다.
2. 목회자와 해외에 있는 미래의 목회, 신학지도자들을 위한 헌신
그 다음에 이제 아무래도 내가 오늘 4개를 말해야하는데 4개는 다 말 못하고 하나나 시간이 되면 두 개를 더 말하고 두 번만 가슴이 뛰고 너무 많이 뛰면 가슴이 터질 것 아니에요? 터지면 안 되니까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무엇과 관련된 것이냐 하면 목회자와 그리고 해외에 있는 미래의 목회 그리고 신학 지도자들을 위한 선교적 헌신이에요. 자 이 문제를 두 가지 방면으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뭐냐 하면 제가 영국을 지금 벌써 7번 정도 갔나요? 꽤 많이 간 편이죠. 그리고 항상 가면 이제 집회를 하고 목회자들을 모아놓은 강의, 그 다음에 거기서 신학 연구 중인 신학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강좌, 이런 것들이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해왔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관되게 이 나라에 나를 계속 보내시는데 그것도 무슨 뜻이 있을까? 작년부터 시작해서 제가 1년 반 사이에 영국을 세 번 정도 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이 있을까? 그러면서 보는데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 다가하는 하나의 부담이 움직이는 꿈틀거림이 마치 그 나라를 가면서 CRTS를 품고 꿈틀거렸던 그런 유사한 마음의 변화들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지금 영국에는 런던에만 약 150교회정도 된다고 그래요. 어떤 사람은 200개가 된다고 그러는 사람이 있는데 어쨌든 그 정도의 교회가 됩니다. 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솔직히 이야기해서 한 도시에 교회 하나만 있으면 될 텐데 많으면 10개 적으면 3개씩이나 교회가 난립을 하는 것이에요.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한국 사람들은 정해져 있는데 거기에서 목회를 할 수 있는 또 목회를 해야 하는 교역자의 수급이 너무 많은 것이에요. 왜냐하면 유학을 하러 간 것이에요. 그러면 거기에는 누구든지 목사가 되었으면 목회를 하고 싶지 않겠어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목회를 하면 일부 생활비가 나오잖아요? 그리고 또 정식적으로 목회자로 청빙이 되면 영주권을 비롯해서 모든 이민법적인 혜택이 있는 것이에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이 목회의 소명이 없이 그런 이익만을 보고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래서 가면 항상 내가 비판적으로 이야기해요. ‘왜 여기에다 교회를 또 세우느냐?’ 그래서 ‘합쳐서 한교회만 하면 되는데 왜 이것을 교인을 20명 30명 찢어서 이렇게 교회를 하느냐?’ 그러니까 교인들이 교회를 갈라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떤 이유에서 쪼개져 나와도 자기 교회에 오겠다는 목사들이 줄을 서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것은 정말 옳지 않다고 보는데 어쨌든 현실은 그런 현실이에요.
자 그래서 하나님이 저를 보내셔서 제가 가서 강의도 하고 설교도 하게 하셔요. 그러면 보십시오. 이번에도 제가 전부 3일을 했습니다만 3일간 이어지는 목회자와 선교사들을 위한 집회를 했어요. 그러면 가서 보십시오. 저에게 오전에 한 시간 오후에 한 시간 두 시간이 주어진다고 칩시다. 자 그러면 내가 거기서 조직신학 한 과목을 완성할 수 있겠어요? 3일 동안에? 말도 안 되지요. 그럼 무엇을 하고 오겠어요? 그러면 신학적으로 뭔가 전체적인 것을 가르쳐주기 보다는 기도에 대해서 도전하든지 설교에 대해서 도전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탐구에 대해서 도전하든지 교역자의 인격이든지 삶이든지 그럴 것 아니에요? 그러면 은혜를 받아요. 안 받겠어요? 이번에도 그 교회에서 설립하면서 3년인가 되면서부터 영국에서 재충전을 받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많은 것이에요. 미국에서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꽤 제시 되요. 그런데 가려면 여비가 들어야 되지요. 등록비 내야요. 가서 숙박을 해야지요.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고 또 미국교회에서 그런 좋은 프로그램을 할 때에 돈을 다 대줄테니 거저 오라는 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런 강좌를 여는 것은 굉장히 잘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분들이 교인들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시간은 많아요. 오는데 멀리서부터도 옵니다. 차를 타고 4시간씩이나 걸려서 몰고도 와요. 한 45명 모였대요. 그런데 이번에 125명이 모인 것이에요. 제가 교회 안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어도 밖에 나가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꽤 잘나가는 강사입니다. 그래서 125명이 모였어요. 그런데 그것 몇 시간을 도전해주고 오면 눈물도 흘리고 가슴에 ‘아 이렇게 해야 되겠다!’ 그러면서 오겠지요. 물론 그것도 필요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실제로 목회를 한다는 것은 그런 정신도 필요하겠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술도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애국심이 막 넘쳐요. 애국심이 넘쳐서 이 한 목숨 조국을 위해서……. 그렇지만 맨주먹 붉은 피에요. 첨단 무기를 가지고 달려오는데 맨주먹 붉은 피로 어떻게 싸우느냐는 것이에요. 옛날에는 탱크가 달려오면 소주병에 휘발유를 담아서 그 속에 들어갔다고 그러는데 그것으로 탱크가 터졌는지 나는 궁금해요. 그런데 초등학교 때 그렇게 배웠거든요. 병에다 기름을 넣고 불을 붙여가지고 갔다고 그러는데 아마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요. 누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 되요. 그런데 하물며……. 그래 그때는 탱크가 후져서 그렇게 기름병을 들고, 수류탄을 들고 들어가서 자폭을 하면 탱크가 잠시 멈췄다고 칩시다. 요즘 탱크가 어떤 탱크인데 맨주먹 붉은 피로 가서 그렇게 한다고 해서 되겠느냐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이렇게 보면 그분들이 이해는 되요. 왜냐하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쨌든 목회에 잔뼈가 굵었잖아요. 그리고 우리 부목사님들은 앞으로 목회를 잘할 것이라고 봐요. 개인차야 있겠지만 말이에요. 왜? 와서 확실히 회심했지요. 은혜를 받았지요. 많은 내용들이 마음에 쌓였지요. 그 다음에 실제로 목회를 하면서 담임목사한테 야단도 맞고 지적도 받으면서 10년 11년씩 훈련을 받았지요. 그러니까 뭔가 그래도 좀 하지 않겠어요?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거기에 가있는 분들은 대게 전도사 때 유학을 간 사람들이에요. 끽해봐야 부목사 때 교구도 잘못해보고 그냥 청년부를 지도하다가 교육목사쯤 되었다가 그냥 간 거예요. 그러니까 목회다운 목회를 해볼 수 있는 장도 부족했고 또 충분히 자기가 목회를 하면서 숙성할 수 있는 훈련의 시간들도 짧은 것이에요. 그런데 갔는데 거기에 있는 교인들은 또 이쪽 한국에서 경험한 교인들하고 완전히 성질이 다른 교인들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목회를 하는데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그냥 심오한 사상이나 정신 그런 것 말고 기술면에서 봐도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이 하는 것이에요. 참 답답한 것이죠. 그래서 제가 잘 쓰는 말로 철물점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라고 불판을 만들어 주어서 사왔는데 그것을 가지고 강에 가서 팔뚝만한 잉어를 잡겠다고 계속 물질을 하는 것이란 말이에요. 어느 눈먼 잉어가 그 불판에 걸려서 나오겠느냔 말이에요. 논리적으로는 가능하지요. 확 뜨면 잉어가 여기 올라가있을 때 확 잡아채면 물이 빠지고 지가 이속에서 펄떡 뛸 것이라는데 실제로 안 잡히는데 어떻게 하느냔 말이에요. 가지고 가서 해보세요. 그것이 되나……. 뭐 제대로 된 낚싯대를 가지고 그리고 민물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 물때와 시간에 맞춰서 거기에 알맞은 미끼를 가지고 가서 던져서 그것을 그렇게 해서 잡아야하는 되는 것이지 그게 그런다고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제가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여러분 요새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서 알지만 솔직히 몇 년 전부터 그렇게 보편교회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계속해서 주셨어요. 여러분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2005년도인가 새해 말씀사경회 때 설교가 나오고 나서 우리 교구의 교역자들이 다 뒤집어진 것 아세요? 왜냐하면 1월 달 부흥회인데 1월 달에 거의 100명 내지 200명이 교회에 유입되어서 들어오거든요. 11월 달부터 서서히 교회의 망을 보다가 ‘아, 이 교회에서 새해에 정착을 해야지!’ 그랬는데 다 돌아가 버렸어요. 교역자들이 황당했지요. 그런데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다시 교회에 돌아온 분들은 교회에 정착했지만 어쨌든 보편교회에 대한 그런 절절한 마음을 하나님이 부어주셨어요. 그래서 사실 그 영국교회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이잖아요. 그러면 그 교회들도 건강하게 자라야 되잖아요. 너무 안타까운 것이에요.
그래서 이제 계속 생각을 구체화시키다가 이번에 가면서 마음속에 아주 강한 소원이 일었어요. 아 이것은 이렇게 두면 안 되겠구나. 10년이 지나도 영국의 상황은 나빠지면 나빠졌지 제대로 변화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죠. 그리고 주변 자체가 이미 벌써 새빨갛게 자유주의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 어느 정도냐 하면 영국에 있는 교회에 토마스 목사를 파송했던 교회와 같은 경우에 굉장히 성공회가 아닌 건전한 복음주의 교단에 소속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의 생활비를 총회에서 주어요. 그런데 그 생활비를 풀타임으로 받으려면 8개 교회 내지 12개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야 된대요. 그러니까 황당한 것이죠. 그러니까 뭐냐 하면 12개 교회의 당회장이에요. 그러니까 한주에 한 교회씩 돌아도 석 달에 한 번씩 자기교회를 못 가보는 것이에요.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겠어요? 간단한 것이죠. 토마스 목사를 파송한 교회도 옛날에는 선교사까지 파송했던 교회인데 12명이 모여요. 그러니까 목회자가 없어요. 그래서 이사람 저사람 꿔다가 주일날 한 번씩 예배를 드리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굉장히 딱한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영국교회의 상황 자체가 한국교회를 자극해서 더 부흥의 불을 붙이기에는 오히려 더 반대의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앞으로도 저를 계속 부르겠지요. 부르면 제가 가서 이번에도 사실 재영총신 동문회에서 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어요. 그런데 못 간다고 그랬지요. 또 가면 돈을 만 불정도 가지고 가야되는데 지금 당장 만 불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지금 상황이 돌아가는데 그들을 정말 그 교회들을 우리들이 돕는 길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한 것이 나야 혼자서도 잘해요. 그러니까 그쪽에서 나를 부를 것이고 내가 가겠다고 하면 나를 필요로 하는 모임이 언제나 있으니까 일 년에 몇 번이라도 가고 또 네덜란드나 독일이나 이쪽으로 출장 가는 길에 내가 거기 간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이 교회 저 교회에서 와달라고 하고 목회자들이 모입니다. 그런데 아까 이야기했듯이 가서 정말 내가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목회현장 자체가 바뀌는 것하고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제 이 정도 가지고는 안 되고 실질적으로 어떻게 양떼를 돌보며 전도를 하고 양떼를 돌보며 그들을 세워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으로 그렇게 키워갈 수 있는지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Practice에 대한 것을 그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그래서 이제 그쪽에 오래 있으면서 그쪽 사정을 잘 아는 목사들 몇 사람과 본론을 의논하면서 대충 정리를 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이제 예산문제도 있고 또 선교회 스텝들이 구체적으로 이제 이 비전을 실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도 이루어져야겠지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이죠. 한 십년동안 눈을 딱 감고 뭔가를 회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십년정도를 보고 매년 그분들은 시간은 많아요. 교인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거기는 또 교인들이 바쁘게 다 일하고 공부하러 다니기 때문에 돌볼 교인이 없어요. 그래서 시간은 많아요. 그래서 영국을 이렇게 보면 제일 이쪽의 귀퉁이 부분이 웨일즈, 아랫부분이 잉글랜드, 위가 스코틀랜드, 이쪽의 섬이 요즘 난리치고 있는 아일랜드에요. 그런데 아래쪽은 평지고 위쪽 스코틀랜드에 올라가면 산악지대에요. 영국 사람들은 되게 산을 보고 싶어 해요. 그래서 스코틀랜드면 우리로 말하자면 설악산 정도라는 느낌으로 생각하시면 되요. 그래서 거기에 성수기에는 비싸서 도저히 안 되고 비수기에 호텔 하나를 빌려서 너무 후진 것도 말고 너무 화려한 것도 말고 그저 우리가 설악산 갔을 때 묵으면 ‘여기도 참 좋다.’ 이런 느낌을 받을 정도의 호텔을 하나 빌려서 다 오라고 그러면 좋겠지만 100명 정도. 내가 보기에는 학생들까지 오라고 그러면 300명도 모을 수 있어요. 그러면 경비가 엄청 드니까 100명 정도로 인원을 제한해서 매년 그 사람들을 거기에 불러서 먹이고 재우고 그래서 한 3박4일 정도만 저녁때마다 집회를 해서 영적으로 도전을 하고 깨어나게 하고 그 다음에 아침에는 신학공부를 시키고 그 다음에 오후에는 목회의 실천적인 Practice들을 해서 전도하는 것, 새가족을 교육하는 것, 교리반을 운영하는 것, 심방을 하는 것, 상담을 하는 것이 이런 것 등등을 상세하게 아예 자료를 직접 가지고 가서 자기네 교회에서 쓸 수 있는 자료들을 전부다 만들어 가지고가서 풀 서비스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거기 와서 3박4일 동안 빡세게 훈련을 받으면 가서 열린 교회에서 하는 성장반공부 정도를 바로 오픈할 수 있게끔 하고……. 그분들은 다 공부는 잘하는 분들이에요. 소수의 사람을 빼놓고는 유학을 갈 정도니까 공부는 잘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고 가면 교인들에게 그 교재를 나누어주어서 바로 공부를 시킬 수 있게끔 그렇게 해서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을 십년정도만 눈을 딱 감고하고 나는 욕심 같으면 한 300명 정도 부르고 싶어요. 그래서 원 없이 4박 5일로 잡아서 이번 코스는 성장반 코스라고 해서 아침에 잠깐 신학공부를 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부터는 교재를 이쪽에서 부목사들이나 아니면 평신도 중에 뛰어난 사람들이 가서 소그룹으로 같이 모여서 공부를 하면서 실제로 여기의 Practice를 그대로 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고 테이프를 듣고 우리가 하는 것 있잖아요? 그렇게 해서 은혜를 받게 만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자기가 그것을 완전히 소화하고 가서 똑같은 클래스를 자기 교회에 가서 여는 것이에요.
보니까 전도도 거의 못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민을 오면 전도를 받고 가고 그런 것이 잘 안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런 경험도 부족했기 때문인지 그렇게 내가 많이 충고하는데도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에 대한 도전을 하고 그리고 필요하면 이쪽에서 전도파트에서 일했던 분들이 가서 실제로 전도하는 사례나 이런 것들을 보여주면서 계속 컨설팅을 해주어야겠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100명 정도로 시작을 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예산의 여유가 생기고 능력이 생기고 후원자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면 300명 정도를 스코틀랜드의 괜찮은 호텔에다가 모아놓고 ‘아무것도 필요 없고 와서 훈련만 잘 받아라. 그러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여유가 있으면 기름 값까지 주마.’ 그러면서 철저하게 한 십년만 하는 것이에요.
그것을 잘하는 단체가 빌리 그래함 전도단체에요. 거기에서는 캐나다에 갔을 때 놀라운 것이 레이크 루이스라는 노래도 있는데 그림같이 예쁜 호수에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호수라고 그러더라고요. 호수가 이렇게 있고 호수 앞에는 파란 풀밭, 파란 풀밭 앞에 꽃이 있고 양쪽에 이렇게 산이 있는데 완전히 그림이에요. 호수는 에메랄드빛이고 이 두산 사이에 말하자면 만년설이 있는 하얀 산이 있는 것이에요. 이쪽에는 꽃이 피고 잔디가 있고 그 다음에 에메랄드빛 호수가 있고 양쪽에는 푸른 숲 저 가운데는 아주 솟아서 하얀 눈이 쌓인 것이죠. 9월에 갔는데……. 캐나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꿈이 부부가 그곳에 가서 한번 자보는 것이 꿈이래요. 그런데 1박에 40만원 정도해요. 그런데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에서 그것을 통째로 빌려서 그래서 전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목회자를 초청한 것이에요. ‘오기만 해라. 여기서 일주일동안 최고급으로 먹여주고 재워줄테니까 전도훈련만 받아라.’ 누가 안 오겠어요? 신청이 쇄도하는 것이에요. 그 그림 같은 곳에서 황홀하게 자면서 낮에는 전도 못한 것을 회개하고 밤에는 또 즐기고……. 그래서 야 정말 대단한 분이다. 그 단체에 기부 들어온 돈이 쓰지 않고 남아있는 돈이 몇 천억이 있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런 것은 일도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에요. 그래서 또 돈의 문제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100명 정도를 모아서 정확한 계산은 안 해봤는데 3박4일정도면 얼마정도 들까 생각해보면 우리 스텝들이 가는 비행기 표 말고 그쪽 호텔을 빌려서 하는 정도만 그저 대충 생각할 때에 6천에서 8천정도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더 디테일한 것은 더 들어가 봐야 하겠지만 대충 그 정도 생각이 되요. 그래서 10년 정도만 그렇게 클래스별로 새가족반, 성장반, 교리반, 심방, 이런 것들을 한 Categorize해서 그것을 아주 철저히 가리키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놓고 3년 정도 이수한 사람에게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거기는 주일날 하루정도 빠져도 그것이 문제가 안 되거든요. 거기는 신학생들이 많으니까 2주정도 오라고 그래서 여기 열린 교회에서 숙식을 하면서 그러면서 예배, 그 다음에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사역들을 현장에서 다 보고 그 다음에 빡세게 전도훈련도 시키고 그래서 돌아가서 Practice를 자기들이 하게끔 이렇게 해서 10년 정도만 무릎을 꿇고 영국에 있는 한국교회를 섬기면 확실한 변화가 오리라고 나는 믿어요. 모든 교회에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에요.
그럼 이것들을 목사님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확신합니까? 이야기하면 나는 국내 아웃리치를 보면서 나는 확신하는 것이에요. 국내 아웃리치를 우리가 14년 전에 맨 처음에 시작했을 때 14명이 가서 한 교회를 했는데 그때 정말 미미하고 하나님이 이렇게 일하시리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50개 교회에 세미나를 했고 내년에는 스텝들을 불러서 100교회라고 아예 못을 밖아 주었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지금 현재는 이것은 국내 파트이긴 한데 우리가 현재는 올해 35개 교회에 나가잖아요? 그래서 내년에는 이것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 동참하는 교회들을 수집하는 것이 목표에요. 그래서 해가지고 우리교회 지휘를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조남구 목사가 개척해나갔잖아요? 한 교회를 맡으라고 그랬어요. 그러면 그대하고 사모하고 둘이고 전도사 부부면 4명이다. 그러면 장로 둘이 따라가면 6명이잖아요. 그러면 누가 그래도 있겠지? 그러면 10명은 갈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10명이서 조그만 교회를 맡아서 해라. 우리가 전혀 간섭은 안한다. 그 대신 우리가 훈련시켜주고 관리는 해준다. 그리고 가서 미친 듯이 거기서 전도하고 그 교회를 위해서 울어주어 봐라. 그 복이 자기네 교회로 돌아오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 교인들이 돌아와서 솔직히 이야기해서 국내 아웃리치를 가서 돌아온 교인들은 한 6개월 동안 교회에서 목양하기가 너무 좋아요. 왜냐하면 이렇게 편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너무 감격적인 것이에요. 그것을 아무리 구역장들이 ‘고마워해라. 감사해라.’ 그래도 무슨 소리인지 몰라요. 가서 그 열악한 환경 속에 있는 교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복되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교인들이 그런 자극을 받고 돌아오게 해라. 그래서 노회에 있는 교회들도 수소문하고 이렇게 전부다 해서 그렇게 해서 이것들을 모아서 내년에 100교회를 모아서 수련회를 할 때에 최소한 70개교회 정도를 엮어주어서 가서 실제로 전도를 하게하자는 것이 내 얘기에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우리들이 하고 보니까 교회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잖아요. 그러니까 목회자 자신이 변하는 것이에요. 변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갔던 임실중앙교회 같은 경우는 간증을 가지고 있잖아요. 우리 14년 전에 갔을 때 아니 14년 전이 아니지 몇 년 전에도 내가 갔었는데 그 목사님이 거기에 470가정이 있는데 한 번도 다 돌지를 못해대요. 그런데 우리 전도대원들이 가서 다 돌았잖아요. 끝나자마자 이만한 책을 한권 만들어드리고 왔어요. 각 470가정을 다 돌아보면서 그들의 구성원이 누구이고 복음에 대한 태도는 어떻고 영적 상태는 어떻고 전도의 가능성은 어떤지 전부다 상중하로 평가해서 책을 만들어 주고 온 것이에요. 목사님이 그것을 가지고 심방하고 전도하기 시작한 것이에요. 15명이 모이던 교인이 100명까지 올라갔습니다. 안 믿어지잖아요. 그게 가능하겠어요? 20년인가를 목회해서 그렇게 되었는데 10년을 내버려두면 그 교회가 그렇게 모일수가 있겠어요? 어떤 사람은 그러겠지요. ‘에이 그래봐야 노인네들인데…….’ 아니 노인네 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아니 그분들도 영혼인데 그러면 없는 청년들을 가지고 타령을 하려면 집어치우고 도시로 가야죠. 그런데 얼마나 감동적인 일화가 많은지 몰라요. 그렇게 빗자루를 들고 삽자루를 들고 집어던지면서 욕을 하다가 그래도 열린 교회의 별명이 진드기에요. 가서 막 빗자루를 들고 그러면 안마해주면서 ‘할머니 왜 그러세요?’ 나중에 그 동네 사람들이 우리교회 청년들을 거머리라고 그랬어요. 한번 달라붙으면 안 떨어진다고 그랬어요. 나중에 뜸을 해주고 안마를 해주고 노인네들은 안마해주면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안 한 것이에요. 그러면 계속 안마를 해주면서 귀에다 대로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나중에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너희들은 그 좋은 예수를 왜 이제야 와서 전해주느냐?’ 지금 다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그때 그 할머니가 회심을 했는데 어느 눈 오는 날 목사님이 걱정이 돼서 봉고를 몰고 나가보니까 그 언덕을 올라가지 못해서 그 고무신에다가 새끼줄을 매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힘이 없어서 못 올라가고 거기서 엎드려 울고 있더래요. 목사님이 가니까 그렇게 좋아하면서 울더래요. 그런 영혼들 하나하나를 데리고 돌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게 하는 그것이 그 도시에서 젊은 애들 모아놓고 으싸! 으싸! 하는 사역보다 못한 사역이라고 누가 얘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에요. 그때 내가 갔을 때 그랬어요. ‘하나님이 나에게 소명을 주시면 정말 나도 이런 일을 하다가 죽었으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랬어요. 그래요. 14명밖에 안모이던 교회가 그렇게 해서 100명이 모였을 때 제가 갔을 때는 75명이 모였을 때였어요. 교회가 꽉 차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얼마나 목회자 뜨거웠겠어요. 오죽했으면 그 목사님이 그 가난한 교회에서 우리가 올라오려고 그러는데 봉투에 넣어서 가다가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으라고 십만 원을 봉투에 넣어서 주는데 그것을 어떻게 가지고 와요? 가지고 오려고 그러기에 내가 교역자한테 가서 얼른 가서 헌금 통에 넣고 와라. 헌금 통에 얼른 넣고 왔어요. 그런 간증들이 수없이 생겨나는 것이에요.
그러면 거기는 목회자들은 유학을 갈 정도니까 한국에 있는 시골의 목회자들보다 훨씬 더 머리가 깨이고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은 반드시 변화가 올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것을 우선 10년만 해보자는 것이에요. 그러면 100명이 너무 작다면 200명쯤 잡아서 한해에 갈 때 일억쯤 든다고 칩시다. 10년 해봐야 10억이에요. 내가 돈 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이게 항상 여러분은 ‘그게 돈이 얼마나 들까?’ 그게 굉장히 궁금하잖아요. 결과가 어떨까 보다 더 궁금한 것이 그게 돈이 얼마나 들까? 그래서 내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저것은 이렇게 하면 안 나오겠어요? ‘목사님 금년에 영국 목회자들 제가 섬기겠습니다.’ 한번 단추를 누르면 일 년이 해결되는 것이에요. 그래봐야 8천만 원 정도지요. 한번 해보세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이에요. 또 8천만 원이라고 그래야 한 달이면 700만원씩이면 되지요. 그렇지요? 700만원씩 100명만 헌금하면 100명씩 되는 목회자가 와서 거기에서 뭔가 보고 가는 것이에요. 다는 아니겠지요. 우리도 아웃리치를 하면 모든 교회가 다 그렇게 불붙습니까? 어느 교회는 아웃리치를 와달라고 그래서 갔더니 우리교인들이 전도하러 막 나가려고 그러는데 자기는 성경책이 아니고 낚싯대를 들고 가더래요. 왜 그러느냐했더니 친구하고 오래전에 낚시약속을 해놔서 자기는 가야된대요. 사람을 낚으러 가야지 고기를 낚아서 생선회나 처먹으면 그게 무슨 목회에 영광이 있겠어요? 갔다 온 지체들이 전부 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상처 받을 것도 쌓였다.’ ‘그 목사님을 보고 아웃리치를 간 것이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에요.
똑같이 가슴이 뛰어요. 저녁마다 아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저녁때 가서 그냥 집회에서 불을 붙이고 좋은 교수들을 데리고 가서 아주 적실성이 있는 강의를 하고 그리고 열린 교회 평신도들과 부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이 가서 전도나 양육에 대해서 다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확실하게 사람들에게 심어놓고 오는 것이에요. 잘하고 싶은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을 가르쳐주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제가 직장을 다니면서 결혼을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 집사람이 지금은 반찬을 잘해요. 초창기에는 늘 기숙사 생활만해서 항상 똑같은 반찬만 싸주었어요. 계란말이만 싸주었어요. 계란말이를 어디서 배워서 계속 그것만 싸주었어요. 그 후에 제가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서 그래서……. 아니 진짜에요. 우리 집사람 자기 자신이 신앙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요리에 있어서도 우리 남편의 수제자라고 그러는데 오늘 여기에 와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데 어느 날 도시락을 꺼내놓고 먹는데 직원들이 그러는 것이에요. ‘김 선생님!’ ‘왜요?’ ‘아니 김 선생님은 만날 계란말이만 싸와요?’ 그러는데 내가 어떻게 거기서 우리 집사람이 이것밖에 못해요. 그러느냔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워낙 이것만 좋아해요.’ 그랬어요. 우리 집사람이 나를 사랑 안 해서 그랬겠어요? 물론 돈이 없어서 그랬지만 사랑을 안 해서 그랬겠어요? 사랑은 하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계란말이밖에 할 줄 몰라요. 그래서 나중에는 거기다가 김도 넣어서 김말이 비슷하게도 하고 그랬는데 그래봐야 족보는 다 마찬가지로 계란말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잘하고 싶어도 본 것이 없는 것이에요. 그리고 훈련받을 기회도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가서 정말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너무 너무 간절하고 절실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10년 동안 우리들이 쏟아 부어서 만약에 100씩 그렇게 교회가 오는데 한번에 20교회 정도가 변화를 시도해서 절반만 성공한다고 하더라고 100교회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에요. 그럼 한번 생각해보세요. 전부 다 교회의 형편들이 어려우니까 어느 한 교회에 변화가 일어나고 은혜가 쏟아지면 반드시 그 교회는 한국보다 더 빨리 어떤 변화가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속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죠. 그리고 더 좋은 것은 뭐냐 하면 이미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자리를 쭉 깔아놓으셨어요. 그래서 가면 목회자들이 거기 가면 무엇인가 우리에게 강한 도전과 은혜의 자극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모일 것이에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일해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지금 이런 꿈을 꾸는 것이에요. 그리고 자꾸 이상하게 영국에 있는 교회들하고 하나님이 엮으셔요.
그래서 제가 영어로 읽는 거야 웬만한 것은 다 읽지만 내가 외국에 가서 한 달도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영어도 잘 못하는데 사실 우리 그때 영어공부한 사람들은 수준이 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어쨌든 9월에 영국교회에서 집회부탁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가서 9월 달에 가서 집회를 하는 길에 그쪽 목회자들 중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는 목회자들이 있어요. 그리고 간곡하게 우리 교회를 향해서 도움이 되어달라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부탁을 해요. 그래서 그분들을 만나서 한 1박2일 정도의 수련회를 하려고 해요. 그러면서 한번 폭넓게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리고 우리들이 어떻게 도와야 될 것인가를 고민하려고 해요. 그렇게 해서 내년도에는 만약에 이런 일들이 구체화하게 되면 이 자체가 굉장히 큰일이거든요. 선교위원회에서 다 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이런 것들을 담당할 수 있는 외국에 있는 이민교회 목회자들의 교회를 Reformation하는 이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말하자면 사역 위원회가 하나 있어서 담임목사의 지휘를 받으면서 장로님들을 보좌해서 이 일들을 해나가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영국에 있는 교회들에게도 우리가 무엇인가 변화의 요인이 될 수 있게끔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에요.
이번에 세미나를 갔을 때 목사님 한분이 강한 챌린지를 받으셨어요. 그런데 그분이 큰 교회는 아닌데 영국교회를 담당하는 목사님이에요. 그리고 자기가 자진해서 영국에 있는 목회자들에게 한국에 갈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때 이틀만 시간을 내서 열린 교회에 가서 좀 보자. 그래서 7월 20일에서 22일 사이에 8명의 영국인 목회자들이 우리교회를 방문합니다. 그래서 그동안에 우리가 그분들이 와서 설교할 기회도 주고 우리가 그분들에게 그런 사역들을 어떻게 이루어가고 있는지를 제시 가능한 부분들만 잘 정리해서 전해주고 오시는 분들이 홈스테이를 하면서 한국의 교인들과도 교제를 나누면서 한번 실제적인 성도의 삶이나 이런 것들을 대화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런 장들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에요.
이런 식으로 해서 이제 마음 같아서는 사실은 영국과 똑같은 형편에 처해있는 나라가 호주에요. 그리고 캐나다에요. 그런데 캐나다는 미국이 가까이 있어서 조금 나아요. 그런데 호주는 그런 점에서 굉장히 심각해요. 그래서 일단은 그런 나라들이 펼쳐져 보이지만 그러나 우선 급한 대로 영국만이라도 그렇게 해서 일단 10년을 목표로 하고 10년을 깊이 헌신한 다음에 우리들이 평가해서 그 다음에 다음세대의 10년의 계획을 한번 짜보자. 그렇게 하다보면 내 생각에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던 좋은 부목사나 신학생들이 그쪽의 교회에 가서 사명감을 가지고 이민교회를 일으킬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거기에 있는 교인들을 살려내는 것 그것이 결국은 그 땅에 있는 교회들을 세우는 비결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을 저는 굉장히 설레는 마음으로 가슴에 품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소원을 아뢰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이 교회들이 정말 10년 어간에 변화된 모습을 본다면 그러면 그쪽에서 지금은 굉장히 수동적이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퍼서 날라야 되지만 아마 굉장히 기쁘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증거가 국내 아웃리치에 있는 것이에요. 국내아웃리치에서 어떻게 하느냐하면 저쪽에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국내 아웃리치에서 그렇게 변화된 교회들, 그 교회 목사들을 여기 목회자 수련회에 자꾸 강사로 세우는 것이에요. 도시에서 목회하는 사람이 막 이야기를 해봐야 ‘아이고 지들은 젊은이도 많고 돈도 많고 환경도 좋으니까 그렇게 했지!’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런 얘기에도 도전을 받지만 그러나 자기와 똑같이 좌절한 교회였었는데 은혜를 받고 새로워진 교회의 간증을 들을 때에 자신도 해봐야겠다는 강한 욕구가 생겨나는 것이에요. 엊그제도 자기가 수련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여름 아웃리치에 와달라고 간곡한 편지를 몇 통 받았어요. 이런 것이니까 분명히 거기에도 그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면 그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더 많이 참석해서 그래서 ‘아, 변화가 되더라! 우리 교회를 봐라.’ 이런 간증들이 생겨나기까지 내 생각에는 3년 안에는 그런 간증들이 생겨나서 우리들이 가고자하는 것들을 합리화할 수 있겠다고 보는 것이죠.
3. 해외 신학교들을 위한 사역
이것과 똑같이 맞물려서 또 하나의 사역이 새롭게 펼쳐진 사역인데 해외에 있는 신학교들을 위한 사역이에요.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알다시피 국내의 경험이 축적되어서 해외로 하나님이 쓰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미국에 있는 개혁주의적인 신학교 가운데 대표적인 신학교가 몇 개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Calvin Seminary에요. 칼빈 신학교인데 이 신학교에서 한국학생들이 80명 정도 있다고 그러는데 사실은 작년에 나보고 와서 집회를 해달라고 그랬어요. 그랬는데 작년에 도저히 시간이 없어서 못 갔고 올해 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이 왔어요. 그래서 이제 가겠다고 그랬어요. 그 학생들은 가난하니까 우리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고 오히려 우리가 가서 도와줘야 해요. 그래서 가겠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 학교에 가는데 학생들은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가서 그 학생들에게 3일 세미나를 하고 그 다음에 집회도 하고 그 다음에 책을 약 350만원어치를 선편으로 보냈어요. 그래서 그 책을 한 6,7권씩 주어서 읽게 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다시 시카고로 와서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똑같은 일들을 하고 그곳도 80명 정도 모인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하느냐하면 학생들에게 강력하게 이렇게 우리들이 배운 쪼가리 쪼가리의 신학 지식이 어떻게 융합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내는가 하는 것을 나의 설교를 통해서 먼저 보여주고 그리고 그들이 신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올바르게 신학을 공부해야지만 결국은 목회에 유익한 신학공부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들을 도전해주고자 하는 것이죠.
그래서 작년에 영국의 동문 수련회에 갔을 때 한 65명 정도 모였는데 그때 나하고 백목사하고 가서 강의를 했어요. 마지막 결론이 뭐냐 하면 ‘우리들은 한 방면을 되게 파면서 공부했지만 이번 주간에 두 사람의 강의를 듣고 보니까 결국은 박사학위를 받을 공부와 그 다음에 목회를 하기 위한 공부는 각각 다른 것이더라.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통합하여 녹여내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이번에 이것들이 이루어지는데 어제 방금 LA 탈버신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박헌준 목사가 있는 학교인데 그 학교에서도 오는 길에 LA도 들러서 신학생을 위한 집회를 단 하루만이라도 해달라고 그래서 스케줄을 보니까 월요일 하루를 뺄 수 있겠어요. 그래서 가신 분들은 먼저 오고 나는 LA가서 LA에서 집회를 하고 그리고 그 학생들에게 책 두어 권씩 나누어주고 집회를 하고 도전을 하고 오려고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에요.
이번에 제가 지난 주간에 함께하는 교회라고 뉴스에 나왔잖아요. 거기에 갔거든요. 거기의 목회자가 누구냐 하면 거의 1.5세에요. 9살인가 12살 때 미국에 건너가서 그래서 거기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고등하교 대학교 신학대학원까지 마친 미국교사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형제요. 그 형제가 누구인지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어요. 그러더니 자기가 나를 만난 이야기를 상세히 하는데 알고 보니까 10년 전에 제가 미국의 동부에 있는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갔더니 학생들이 내가 뉴욕에 집회를 갔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있는 교회에서 집회를 하는데 학생들이 왔어요. 그러면서 그 형제가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같이 밥을 먹는데 장로님들한테 그래요. ‘장로님! 우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교만한지 아십니까? 세상없는 사람이 한국에서 왔다고 그래도 학생들이 안갑니다.’ 그때에 학생들이 3,40명이 매일 저녁집회에 참석한 것이에요. 그리고 학생들이 은혜를 받은 것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날엔가 그날 내가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가서 한국학생들 한 40명을 모아놓고 내가 누가복은 1절을 가지고 한 40분간 설교를 했어요. 그러면서 그 친구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저희가 그때 너무 갈급해있었는데 목사님이 딱 한번 설교해주었을 때 끝나고 나서 학생들이 펑펑 울면서 다시 학생들이 힘을 내서 새벽기도회에 모이고 그렇게 했습니다.’ 나는 새카맣게 잊고 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뭐냐 하면 그러면서 자신들이 깨달은 것이 뭐냐 하면 우리에게는 이런 경건에 대한 강한 자극이 필요하고 사실 그것이 좋은 강의를 한 학기 듣는 것보다도 더 가치 있는 말하자면 자극이 된다는 것이었었어요.
그렇게 해서 사실 이번에도 칼빈 신학교에 있는 학생들이 가족들까지 전부 다 포함해서 밥을 한 끼 사겠다고 그러는데 통계를 내보니까 백 몇 명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많이 모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모인다고 그럴 때 벌써 연락들이 막 왔는데 너무 너무 좋아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자기네들은 내가 가봐야 비행기 표 하나 사줄 형편이 안 되니까 그런 것이죠. 그래서 너무 감격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밥 한 끼하고 책한 권 들고 가는 것은 너무 그래서 그러면 장학금을 주고 오자 그랬더니 고맙게도 우리 연구 분과 장학위원들이 이백만 원씩 삼백만원씩 걷어서 5,000불을 해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칼빈 신학교에다가 이야기를 했어요. ‘매년 5,000불씩 5년을 도우마.’ 그랬더니 거기서는 깜짝 놀란 것이에요. 한국에서 이런 예가 없는데 이 교회가 자기네 학생들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준다고 그래서 학교에서 쓰는 호텔을 할인을 받을 수 있게 배려를 해주고 아주 따뜻하게 배려를 해주어서 우리가 갑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학생들에게 강한 도전을 주고 오는데 이것도 1,2년은 안 돼요. 그래서나는 항상 무엇을 할 때는 짧아도 5년 그렇지 않으면 10년은 해봐야 된다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10년은 안보고 일단 5년만 해보려고 해요. ‘5년만 해서 성과를 중간평가를 해서 된다고 그러면 내가 숨질 때까지 하마.’ 그랬어요. 요번에 그랬어요. ‘금년에 한번만 가는 것이 아니라 너무 고마워하지 마라. 내년에 또 가마.’ 정말이냐고 그래요. ‘정말이다.’ 보증하시냐고 그래요. 그래서 ‘물론 보증한다. 내가 간다.’ 그래서 5년간만 지속적으로 다니면서……. 그것도 그래요. 5,000불을 가지고 가면서 임원학생들이 모여서 가장 어려운 학생들을 주라고 그러니까 항복했어요. ‘우리는 못 뽑겠습니다. 그냥 학교에다가 갖다 내십시오.’ 그래요 왜 그러느냐고 그러니까 모두 어려워서 뽑을 수가 없대요. 그냥 학교 당국에 맡겨 달래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그 정도로 어려워요. 그러니까 만약에 여력이 있어서 가면서 학교마다 들러서 많이도 말고 매년 만 불씩만 떨어뜨리고 오면 그래서 동부부터 시작해서 동부의 웨스트민스터, 시카고의 트리니티, 그 다음에 RTS, 그 다음에 칼빈 신학교, 그리고 박헌준 목사가 있는 탈버신학교, 그리고 마지막에 서부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이런 6개 학교에 가서 한 2주간 잡고 주일날 밤에 출발해서 토요일 새벽에 돌아올 스케줄을 잡고 빡세게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고 가서 말씀을 전하고 신학을 강의하고 책을 보내주고 해서 그냥 온 힘을 다해서 학생들을 외치고 그리고 학생들이 병이 들었다든지 어렵다든지 해서 도울 길이 없으면 우리가 구제비라도 도와서 만 불이면 6학교에 60,000불이에요. 그러면 5년을 하면 300,000만 불이고 10년을 하면 600,000만 불이에요. 책값까지 다하면 좀 더 들겠지요. 그럼 뭐 그렇게 해서 한 5년 정도 해서 한 300,000만 불이고 그 안에 책값이고 뭐고 해서 넉넉잡아서 400,000불 잡으면 그러면 한 5억 정도 되잖아요. 그렇게 하면 나는 믿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반드시 그 학생들 가운데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적인 가치로 돌아와서 자유주의 신학이나 아니면 힘 빠진 죽은 정통이 아닌 생생한 은혜가 있는 신학으로 돌아와서 열렬하게 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 학생회장 하던 그 목사가 가서 교회를 개척한지 3년이 되었는데 그것도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개척했는데 3년 만에 300명이 모여요. 그래서 내가 웨스트민스터 출신이 맞느냐고 그랬어요.
그런데 또 너무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해서 LA에 집회를 가려고 하는데 편지가 하나 왔어요. 그런데 나는 알지도 못하는 분인데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선교학 교수의 이름으로 왔어요. 뭐냐 하면 자기가 나를 꼭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물어보았어요. ‘왜 나를 만나려고 하느냐?’ ‘나한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랬더니 논문처럼 상세하게 답변을 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보니까 뭐냐 하면 그 교수가 한국인 교수에요. 그런데 2세에요. 그래서 한국말을 거의 못해요. 그런데 우리 교회에 대해서 상당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요. 나에 대한 정보도 상당히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뭐냐 하면 ‘우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열린 교회가 서로 협력을 하자. 그래서 여기는 지금 경건이 굉장히 메말라가고 있고 그래서 열린 교회는 개혁주의로서 나름대로 그렇게 하나님의 열매를 본 교회인데 그런 경험들을 나누고 신학적인 내용들을 우리는 한국에 전파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한 시간을 만나기로 했는데 그 교수하고 4시간 동안을 호텔에 앉아서 국수 한 그릇을 시켜놓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마이클 호튼은 알고 있지요? 마이클 호튼의 책을 봤지요? 그 교수가 둘이서 같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수에요. 그래서 내가 웨스트민스터에 쓴 소리도 하고 그리고 개선될 수 있는 길이나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제시했어요. 그런데 너무 기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 협의 중인데 4월에 마이클 호튼 교수가 우리 교회에 올 가능성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인 답변을 주겠다고 영국에 갔다 오자마자 도착했는데 아마 조만간에 답변이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이클 호튼 교수도 또 나도 알고 우리 교회도 알고 그래서 이제 그분이 이제 한국을 되게 방문하고 싶어 한대요.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다 마당을 펼칠 때니까 어떻게 개혁신학과 목회를 접목해서 갈 것인가 하는 것을 당신들이 이야기해보고 우리들도 이야기하자. 그렇게 해서 교류를 하고 이렇게 하자.’ ‘그쪽에서 어떻게 하든지 열린 교회가 그런 현장들을 보여주면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협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만난 것을 너무 너무 기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서 5월 5일 날 어린이날 굉장히 중요한 학회가 하나 열립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교회 성장의 유산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지난 한 50년 하고 앞으로 50년 정도를 반성하고 앞을 돌아보는 것이에요. 4명의 Speaker가 섰는데 하용조 목사님, 이동원 목사님, 김삼구 목사님 그리고 마지막 시간에 제가 이제 개혁신학을 어울러서 한국교회의 잘해온 점과 잘못된 점들을 반추하면서 그러면서 미래에 어떤 유산들을 후손들에게 남겨야 될지의 문제를 이야기 할 때 그때에 미국인 2세와 1.5세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절반 모이고 한국에 있는 중견목회자들이 모여요. 그래서 동시통역으로 진행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서 이제 그쪽 웨스트민스터에서 나를 추천해서 그 멤버에 들어가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해서 거기에서 온 미국인 학자들과 소장파 목회자들에게 나는 그런 문제들을 도전하고 싶은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 양쪽 나라의 교회가 너무 극단으로 가고 있다. 거기서는 지금 정통적인 신학만을 주장하고 그리고 심각한 것이 도시의 목회자들에게 물어보니까 이력서에 웨스트민스터라고 쓰였으면 자기네들이 교역자로 안 쓴다는 것이에요.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너무 비판적이기만 하고 목회의 열매가 없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쪽으로 가고 또 한국은 우리교회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교회가 너무 탈신학적으로 가서 그래서 목회에 방법론이나 경영학적 논리들을 가지고 성장 위주로 나가고 있다. 이것은 영적으로 극단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묶어내서 올바른 신약시대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겠느냐는 이것이 지금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죠. 지금 논문을 쓰고 있어요. 그래서 내일 하루 이틀 한 삼일 사이에 빨리 써서 영어로 번역해서 현장에 가지고가서 동시통역으로 진행하려고 그래요. 그런데 이런 활동들을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누가 의도한 것이 아닌데 엮어지게 하셔서 역으로 풀어가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일을 이루실 때 결국은 누구를 통해서 이루시지 않겠어요?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주셔서 선한 일을 하게 하시는데 그래서 내 마음속에 저양반이 어디서 우리교회에 대한 정보를 얻었나? 생각해보니까 교수님이 한국에 있는 교수님들과 교류가 많아요. 그러니까 교수들을 통해서 우리 교회를 알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5월 9일 날 그 양반이 여기에 옵니다. 그래서 오후에 우리 아웃리치 헌신예배인데 그때 불렀어요. 그래서 누군가 통역을 하겠지요.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그리고 그런 비전들을 우리들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IV. 열린 교회의 선교 방향
그래서 제 마음에 품는 생각은 뭐냐 하면 이것도 누군가가 마음에 간절한 소원을 품으면 역사가 일어나요. 이유가 뭐냐 하면 그 근거가 있어요. 우리가 국내에 신학교 섬김 사역을 지금 7년째 하고 있거든요. 처음에 했을 때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교회에서도 이런 것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아요. 뭐냐 하면 ‘목사님은 참 이상하다.’ ‘왜?’ ‘요즘에 밥을 못 먹는 신학생이 어디 있다고 가서 맥없이 점심을 사고 그리고 자기 책 한권씩을 주고 오는데 그게 도대체 한두 명도 아니고 총신만 2,000명이 되는데 돈이 얼마냐?’ 그러는데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우리들이 계속 섬기면서 우리를 따라서 섬기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게 되었고 우리처럼 열심히 요번에도 총신에 가서 1억을 헌금하고 오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4년 동안에 갚아나가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는 것을 우리교회가 모범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저도 그랬어요. 배고프던 시절에 한 끼 먹으면서 나도 이다음에 목회를 하면 꼭 후배들에게 한번 이렇게 해주어야지 그랬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들도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 아니에요. 그러고 우리교회가 가면 항상 테이프 한 세트하고 책 한권씩을 주었어요. 그 영향력을 무시 못 해요. 공짜로 주었지만 그 학생들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학생들이 그 책을 읽어요. 그러면서 인터넷으로 들어와서 설교를 듣고 그다음에 열린 교회의 사역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죠. 이번에도 3명의 레지던트를 뽑는데 60명의 이력서가 들어왔어요. 아무 교회나 그렇게 지망을 안 해요. 그래서 마지막에 20명을 면접했고 최종적으로 내가 6명을 면접했고 그중에서 3명을 뽑았어요. 그러면 그렇게 우리들이 계속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간에 올바른 교회의 상,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복음의 정신과 개혁주의에 대한 사랑 이것을 우리가 보여주는 것이 가치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뭐냐 하면 ‘개혁주의 교회는 하면 다 안 된다고 그러더라. 그런데 열린 교회를 보니까 그래도 한 2,500명까지는 모이겠구나!’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에요. 어느 교수님이 엊그제 와서 그런 말을 해요. ‘목사님, 열린 교회가 희망입니다.’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아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뭐냐 하면 ‘개혁주의를 설교해도 그것을 좋아하는 교인이 없다고 다들 그랬는데 요즘 시대에는 그런 것을 싫어한다고 그랬는데 목사님 교회는 모이지 않습니까?’ 설교가 어려우면 절대로 목회가 안 된다고 그랬는데 어려워서 아까 누가 머리가 터지는 것 같다고 그랬는데 그래도 그 터지는 재미에 또 와서 그렇게 해서……. 머리에 연기가 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연기 피우는 재미로 와서 은혜도 받고 변화도 받고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요. 그러니까 생각이 있고 좀 신학적인 지식과 깊이가 있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좀 그렇게 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강한 도전을 받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교회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순수한 복음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개혁신학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해서 그래도 이 세상에는 진리를 외치기만 하면 어둠속에서 그 외침의 목소리를 듣고 손을 붙드는 그런 수많은 굶주린 영혼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에요. 그래서 가면 학생들에게 더 많이 밥을 주고 싶고 책도 성에 안차요. 한 3권씩 주고 오고 싶은데 아니 내가 쓴 모든 책들을 자동으로 집에 배달이 되게 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했더니 놀라운 일들이 생겨나잖아요.
그래서 이것은 실화에요. 총신에 있는 P모 교수가 나를 개인적으로 만났는데 입학사정회 때에 20명의 학생을 자기가 면접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20명의 학생 중에 모두 똑같은 질문이 있었는데 ‘네가 교회를 하고 싶으면 모델이 되는 교회가 어디냐?’ 그랬더니 11명이 열린 교회라고 그랬대요. 그냥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그들을 품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물론 신학교에 문제도 많고 그리고 비판받을 점도 학생들에게 많아요. 그러나 그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진심으로 끌어안고 기도하고……. 어느 학생이 그래요. ‘목사님 교회에서 교인들이 와서 밥을 퍼주는데 정말 아첨이 아니라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들이 신학교를 섬겨온 것이잖아요. 그게 올해 9개 학교를 섬겨요. 따라 다니는데 위원들은 보통 일이 아니에요. 심지어는 어떤 때는 자기 돈을 거두어서 신학교에 돈을 주고 오잖아요. 아주 조그만 신학교도 가요. 그 학교에는 감히 나를 강사로 부르는 것 자체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우리가 직접 전화해서 가주겠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점심, 저녁밥을 대접하고 학생들에게 책을 주고 큰 학교보다도 더 온 마음을 실어서 지하실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어요. 학생들이 그 사랑이 느껴지는 것이에요. 우리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죠. 우리가 갔을 때 그렇게 들어주는 학생들이 있고 섬김을 받아주고 고마워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설레고 좋은 일이에요? 그것 다 합해봐야 일 년에 일억밖에 안 돼요. 그런데 그 놀라운 일들을 지금 7년 만에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이것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계속 할 것이에요. 내가 아무리 늙어서 이제는 신학교에서 당신은 너무 늙어서 기력이 없으니까 말귀를 못 알아들을 테니까 오지 말라고 돈이나 보내라고 그럴 그때까지는 내가 갈려고 하는 것이에요. 가서 그래서 참되어라. 바르거라. 진리를 외치면 반드시 붙드는 사람이 있다. 그들만이 너의 양떼이지 나머지는 양이 아니다. 그렇게 굽히지 마라. 끝없이 무릎 꿇지 말고 성공에 도취되고 야망을 품지 말고 목회를 자기 성취의 수단으로 삼지 말고 해라. 모자라지만 열린 교회가 사실 그 모델을 좀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니 나는 이만큼 하고 죽지만 너희들은 이 교회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라. 그렇게 유언을 남기고 싶은 것이에요. 그까짓 거 1억이래야 돈 많은 사람들 타고 다니는 좋은 자동차 1대 값밖에 안 되는데……. 성도들이 축복받기 위해서 매일 기도해야 되요. 1억을 벌면 십일조 1천만 원은 할 것 아니에요. 내가 언젠가 이야기 했지요? 은혜 받은 성도 한사람이 8천만 원을 그 자리에서 그것도 온라인으로 생색도 안내고 십일조를 그냥 보냈어요. 그런 교인들 100명만 있으면 여태까지 이야기한 것 다 해결이 되고도 남아요.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지요. 1500만원 가지고 교회도 지었는데 무엇을 못하겠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렇게 변화되었는데 그 외국에 있는 신학생들은 더 갈급해요. 더 원해요. 그러면 그 학생들에게 그것을 보내는 것이에요. 할 수만 있으면 좋은 책이 나오면 리스트를 미국에 있는 신학생들 천명이나 이 천 명 정도 명단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오면 자동으로 우편으로 보내주었으면 너무 좋겠어요. 그렇게 하면서 우리들이 그게 돌아와서 열린 교회의 유익이 될까 그것은 너무 소아적인 생각이에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위해서 우리들이 수고하는 것이에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으면 그런 꿈을 꿀 수 있겠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려고해도 기회를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겠어요? 그 사람들이 원하고 기회를 준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지금도 신학교 협력위원회 일이 너무 많아요. 인턴 십뿐만 아니라 9개 신학교까지 가야하는데 이번에 신학교 협력위원장하고 몇 분은 미국을 나와 동행해요. 자기 돈을 들여서 가서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일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내년도에는 내 생각도 해외에서 일어나는 그쪽 영국의 그런 컨퍼런스 말고 이런 해외에 있는 신학교들을 섬기는 해외신학교 협력위원회가 따로 생겨서 그래서 이것도 계속해서 학교 수를 늘려가자. 영국에도 지금 한국 유학생이 있는 학교들이 많아요. 그래서 캐나다, 미국과 영국을 묶고 호주도 묶고 이렇게 해서 힘이 닿는데 까지 펼쳐서 꾸준히 책을 보내고 그 다음에 말씀을 전해서 강하게 도전을 주고 그리고 무엇인가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그러면 그 학생들이 여기게 돌아와서 교수를 해요. 교수를 하든지 아니면 목회를 하게 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알다시피 교수가 한마디를 해서 영향을 끼치게 되면 그 영향은 학창시절에 학생들에게 굉장히 절대적인 영향을 갖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받고 그런다면 얼마나 놀랍겠어요. 여러분들이 잘 아는 존 파이퍼 목사님은 깊이 있는 설교로 유명하잖아요? 그분이 오늘날의 존 파이퍼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신학교 신입생이던 시절에 교수님 한분이 들어와서 하는 말이 '얘들아 너희들은 신학을 할 때 이 책, 저책 집적거리지 말고 존경하고 깊이가 있는 한 인물을 파고 그 사람을 멘토로 삼아서 그 사람을 샅샅이 파헤쳐라.' 그래서 이 사람이 그 충고를 받고 조나단 에드워즈를 꽉 붙든 것이에요. 그리고 30년 이상을 조나단 에드워즈에게서 멘토링을 받은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날의 존 파이퍼 목사가 되었고 베들레헴 교회가 된 것이에요. 그리고ㅗ 침례교회의 목사이지만 그렇게 해서 깊이 있는 목회와 신학을 하고 그 영향력이 얼마나 커다랗게 미치는지 생각해보세요. 오늘 동영상으로 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대해서 책을 썼는데 160만부가 한꺼번에 팔렸어요. 미국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8번째의 인물로 뽑혔어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서 훌륭한 선생이 돼서 학생들을 자극할 수 있다면 그것은 교회에서 몇 십억 몇 억의 돈을 가지고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바꿔놓을 수 있어요? 불가능 한 것이지요. 신학적인 변환인데……. 그것을 줄 수 있는 그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도전해야 된다고 나는 보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일들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서 진짜 정신없이 바빠요. 그러면서도 나는 안타까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이러면서도 공부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저 밑바닥의 불신자에게도 가서 집회를 하고 그리고 저렇게 바닥에서 기면서 이제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과도 교통을 하고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정말 능력만 주시면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말하자면 첨단을 달리는 신학자들과도 교류를 나누면서 어떻게 우리의 목회 속에 당신들이 연구하는 개혁신학이 꽃피울 수 있는지 당신들은 그것을 탄광에서 철광석으로 캐내기만 하지만 우리는 교회에서 그것을 가지고 칼도 만들고 창도 만들고 무기도 만들고 그릇도 만들고 거울도 만들고 종도 만들고 이렇게 해서 결국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그 일들을 녹여내서 우리들이 하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것을 그렇게 교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한 것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없어요. 그래서 요즘 마음의 간절한 소원은 하나님이 시간을 오병이어의 축복으로 부어주시기를 나는 간절히 원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면 한번 생각해보세요. 영국을 이야기하면서 가슴이 뛰었지만 지금 이것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일단 5년이라고 그랬지만 10년을 놓고 보면 이제 거기에서 우리에게 식사대접을 받고 강의를 들으며 도전을 받고 그 웨스트민스터 학생회장이었던 그 학생처럼 집회가 끝난 다음에 펑펑 울면서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다짐했다는 사람이 딱 10년 만에 300명 400명 모이는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고 그리고 매년 4000명 내지 5000명의 청소년을 모아놓고 수련회를 하는 한국교회의 영향력 있는 청소년사역자가 되었어요. 그러면 그 수많은 학생들이 자라나서 어떻게 펼쳐질지 보세요.
유학생들의 생활은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학생들이 너무나 많아요. 영국에서 유학했던 어느 학생은 자기는 14년 동안 한 번도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서 정상적인 상품을 산적이 없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했느냐고 그랬더니 항상 변질되기 직전의 식품들만 샀대요. 왜냐하면 반값이니까……. 그렇게 살아요. 제가 7,8년 전에 영국에 갔을 때 그 학생들 한 10명 정도 나오라고 그래서 식당에서 밥을 샀는데 되게 비싸요. 어디로 가야되느냐고 그랬더니 아무도 모르는 것이에요. 왜 그러느냐하면 유학 온 지 3년이 되었는데 한 번도 밥을 사먹은 적이 없다는 것이에요. 먹었는데 별로 좋은 집도 아닌데 비싸기는 되게 비싸요. 그런데 너무 맛있다는 것이에요. 왜? 집이 아니고 식당이니까……. 그럴 정도로 가난하게 살아요. 우리는 너무 풍족한 것이에요.
그래서 이번에도 우리교회 출신 신학생 한사람을 파격적으로 돕고 있어요. 그 학생이 박사논문을 쓰고 졸업을 하면 우리 교회에 와서 봉사를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우리도 그렇게 해서 할 수 있으면 나는 그냥 가지 말고 정말 누군가가 손에 들려주면 가는 학교마다 다만 만 불씩이라도 떨어뜨리고 와서 그래서 정말 고통 받고 어려운 학생들이 1년 등록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우리가 그런 보람에 살지 않겠는가? 라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에요. 그것도 10년 정도만 흘러가면 그 사람들이 한국교회에 중견 교수가 되고 그리고 잘하면 아마 15년 20년 뒤에는 그 학생들이 한국교회 신학교의 주류를 이루는 학자의 군들이 형성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그들이 개혁신학의 가치를 높이면서 그렇게 주님의 교회를 세워간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어요? 지금 이야기한 것만 해도 누군가가 10사람이 끌어안고 그 일을 해서 꽃을 피운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정말 칭찬을 받을 것이에요. 50년 예수를 믿었어도 교역자를 심방시킨 것 이외에 한 것이 별로 없고 그리고 속 썩인 것 외에 한 것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 꽃피우게 만든다면 얼마나 놀랍겠어요.
내가 오늘 강의하려고 한 것의 딱 절반을 한 것이에요. 나머지는 다음에 나한테 언제든지 장을 만들어줘요. 그러면 내가 하겠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온 마음을 다해서 이 일을 위해서는 성도들이 은혜를 많이 받아서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려야 해요. 그래야지 이것을 따라서 뒷감당하지 이것을 터뜨려놓고 그런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감당도 못해요.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지금 이야기한 것만 해도 벌써 얼마를 써야하는데……. 그런데 나는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실 것이라고 확신해요. 우리에게 주실 것이에요. 요새는 너무 바쁘면서도 가슴이 설레요. 처음에 개척할 때같이 초기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막 설레요. 그때는 교회 성도 한사람 한 사람이 오는 것만 가지고 설렜지만 오늘도 40명이 등록했다고 그러는데 지금도 교인이 오면 설레요. 그것도 설레지만 그것과 함께 설레는 것은 뭐냐 하면 ‘아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 흘러가게 하시는구나.’ 그래서 주님의 이름을 온 땅에 높이고 그리고 우리가 정말 허기지고 굶주렸던 사람들로 주님이 우리에게 복음과 자원들을 흘러 보내서 그래서 우리가 그 혜택을 받은 것처럼 우리가 남은 생애를 우리의 젊음, 우리의 늙음, 그리고 우리의 남은 재산, 그리고 우리의 시간, 우리의 열정을 다 드려서 그렇게 흘러가며 살다가 하나님이 ‘너 뭐하다가 왔니?’ ‘하나님 제가 열린 교회에 있다가 제가 그저 장로도 못되고 집사로 죽었습니다만 하나님 제가 해외에 있는 그 신학교를 끌어안고 매일 눈물로 기도하고 제가 그렇게 장학금을 보내고 밥을 사주고 책을 매번 보냈던 그 학생들이 지금 이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저 교회의 큰 목회자가 되었고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서 그래서 열린 교회가 추구했던 아름다운 가치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정말 주님과 함께 행복한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아멘.’ 그리고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인간이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요. 그것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것 자체가 너무 너무 감사해요. 제가 작년, 재작년까지는 외국에서 집회가 오면 굉장히 많이 잘랐어요. 재작년 같은 경우에는 미국에서 굉장히 큰 집회가 두 번이나 들어왔는데 제가 잘랐어요. 10년 전이지만 동양선교교회에서도 오라고 그러는 것을 못 간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 마음이 바뀌었어요. ‘아 이제 흘러가야 된다.’ 흘러가야합니다. 그래서 ‘가자, 가자.’ 그래서 주님이 정말 놀라운 역사를 우리를 통해서 이렇게 펼쳐 보이시는 것을 보면서 조지 휫필드가 말했듯이 ‘병들어서 죽느니 주님을 위해서 닳아서 죽겠습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