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돌아보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녹취자: 오희열
I. 들어가는 말
나이 많은 사도 바울이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인생을 산 말년에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목회자가 성도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다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나옵니다. 당시 교회에는 과부들이 많이 있었는데, 교회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당시 버려진 고아들과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돌보는 이 없는 과부들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과부들을 경제적으로 돕는 문제에 있어서 충고를 합니다. 즉 어떤 불쌍한 과부가 있으면 자녀나 손자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그들을 권해서 먼저 자식의 도리를 다하여 그 과부들을 섬기게 하라는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고아나 과부들을 돌보는 것을 교회가 회피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도는 사람 사는 진정한 도리가 무엇인지를 이 젊은 디모데에게 가르치면서 교인들을 훈육할 것을 권고한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때에도 이미 아마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 부모를 돌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던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주 중요한 경고와 책망을 주는,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의 말씀이 불신자를 향한 말씀이 아니라 신자를 향한 말씀이라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 이것은 신자에게 하는 이야기이지 불신자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족이 모두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데, 가족에게 나쁘게 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마 있어도 그것은 아마 질이 매우 나쁜, 인간성에 있어서 매우 나쁜 사람에게 국한된 이야기일 것입니다. 문제는 가족이라도 끊임없이 갈등이 있고 마음에 고통을 주고 섭섭함을 줄 때에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는 “가족을 돌보라”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친족을 포함하니까 훨씬 넓은 의미입니다.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라고 말합니다.
II. 가족을 돌아봄
그러면 여기서 가족을 돌아본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돌본다는 말은 염려하는 마음으로 보호하고 격려해주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돌봄이 없으면 사람들은 외롭고 궁핍하고 소외되고 고통 받을 때에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우리들이 가족을 돌아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A. 육신을 돌아봄
우선은 제일 먼저, 가족들의 육체적인 형편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결국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실 그 육체적인 필요에 아주 민감하게 되어있고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제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들을 공급받고 사용하지 않으면 궁핍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족들이 가족이 자기를 도와줄 때 소속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서로의 육체적인 형편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건강부터 시작해서 먹을 것, 입을 것, 그의 필요한 것, 이런 것들을 돌보아주는 것으로부터 가족에 대한 돌봄이 시작된다고 생각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으려는 생각만 하고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거나 무엇인가 주려는 생각들은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같이 핵가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분가해서 나뉘고 나면 형제들 간에 아주 냉담합니다.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갈라서서 따로 살림을 하고 나면 그렇게 애틋하게 서로의 육체적인 형편을 돌아보는 일에 인색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말고 가족들을 돌아보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과테말라라고 하는 곳에는 ‘크놉’이라는 족속이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아주 독특한 표현을 가지고 있는데 “사랑은 내 영혼이 죽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성경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아주 유사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이기심의 포기, 자기 유익과 편함의 포기,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것 없이는 결코 사랑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가 좋아하고 그 사랑이 될 때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잘 되지 않을 때에라도 마땅히 사랑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지를 생각하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자기보다는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을 가지고 육체의 형편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제일 먼저 가족들에게 ‘착하다’는 인상을 주어야 합니다. ‘참 착하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야 할 아주 좋은 인상입니다. 더구나 가족들 중에서 여러분이 신앙의 우위에 있다면, 다시 말해서 더 오래 예수 믿고 은혜를 더 많이 받았고 여러분이 부모이고 형이고 누나이고 그렇다면 더 많이 여러분이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이 전도를 목표로 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우리가 가족들이나 이웃을 향해 착하게 사는 것이 그들을 예수 믿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그러나 나의 한 번의 물질적인 섬기이나 나의 돌봄을 통해서 그것이 저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를 믿어주는 대가로 당장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어떤 대가를 요구하고 나에게 잘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의 착함입니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도 힘들고 어려운 인생을 살아가지만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크다고 생각하고 그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돌보고 그에게 유익을 주고 어떻든 내가 그의 옆에 살아있어서 한 가족이 된 것이 티끌만큼이라도 그에게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되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젊은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도 사실은 철이 지난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돈을 좀 아껴 쓴다고 해서 결혼하고 몇 년 만에 집을 장만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너무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집값은 좀 떨어져야 합니다. 제가 꼭 집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한 절반정도 이하로 집값이 떨어져서 사람들이 집에 욕심을 내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서 먹고, 자신의 몸을 의탁할 거처가 있고 그것이 아주 훌륭하고 좋을 때에야 자기의 능력껏 하는 것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큰 고통 없이 비와 햇볕을 피하고 자신의 몸을 안식할 수 있는 그런 공간과 기본적인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음식과 의료, 교육, 이런 것들을 어떤 식으로든지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런 일이 어려운 때지만 오래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집을 한 2년 늦게 장만하고 경제의 모든 계획들이, 여러분이 허리띠를 졸라매면 도달할 수 있는 그것보다 한 2,3년 늦게 된다고 해서 인생에 그렇게 커다란 손해가 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자식으로서 부모도 섬기고 가족들도 돌아보고, 특히 불신가정에서 예수를 믿을 때에는 그 사람이 예수를 믿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착한 인격의 감화를 끼쳐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조금 늦게 집을 장만하고 경제계획이 조금 늦어져도 아끼고 절약하면서 부모를 섬기고 가족들을 돌아보고 자녀들을 돌아보고 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족들을 돌아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끊임없는 ‘여유’를 필요로 합니다. 아침부터 점심, 오후, 늦게까지 계속 일에 일이 밀립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 나를 찾거나 전화를 해달라고 하거나 뭔가를 해달라고 하는 그 자체가 힘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유’가 너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것들을 이기면서 여유를 갖게 하는 것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나의 인생이라는 것은 어차피 사람 사이를 흘러가고 그들에게 유익을 주고 오늘도 나를 스쳐 만난 사람들이 나 때문에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유익을 얻을 수 있다면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도 내가 그들의 가족이었던 것이 내가 죽은 이후에도 그 가족들에게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으면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 빛나는 것입니다. 가족을 향해 지나치게 인색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분수없이 그렇게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깊이 가족들을 돌아보고 나보다 어려운 가족들을 향해 마음의 짐을 지는 것은, 이것을 마음에 기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B. 영혼을 돌아봄
두 번째는 그의 영혼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영혼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영혼에 대한 사랑과 비례하고 자기의 영혼에 대한 사랑은 정확하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아마 저와 동일할 것입니다. 정말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 물론 그때에는 지금처럼 제가 활발하게 목회사역을 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지만 나는 나의 기도의 굉장히 많은 시간, 절반 가까운 시간들이 대부분 나의 이 추루한 영혼, 하나님 앞에 서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나의 이 모습, 이것을 위해서 그 많은 기도의 시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깊이 다가오는 그림은, 내가 지금의 나인 것이 주님께 너무 죄송한 것입니다. 좀 더 나은 내가 되어서 주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쨌든 이것밖에 되지 않는 것, 그것을 보면서 좋으신 하나님 앞에 내가 이것밖에 못 되어 드린다는 데서 오는 슬픔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영혼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이 인간이고 그 중에서도 인간의 영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의 영혼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그 하나님이 나같이 더러운 인간을 이렇게 사랑하셨다는 깊은 은혜가 우리 마음속에 밀려오면 주님이 나만 이렇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족도, 그리고 우리의 이웃도, 심지어는 나에게 그렇게 큰 고통을 주었던 용서할 수 없는 원수들도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는 주님을 향한 눈물인지 사람들을 향한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영혼을 돌아볼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목회자는 별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별다른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평신도와는 달리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전적으로 생업도 없이 하나님께 바쳐졌으니까 남다른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는 목회자가 받은 소명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평신도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소명입니다. 자, 하나님의 종으로서 복음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목회자가 주님을 많이 닮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는 마귀를 닮아도 되겠습니까? 신자는 어차피 그냥 반은 짐승, 반은 사람처럼 살다가 죽으면 하나님이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전파를 위해서 주의 종은 살아야 한다고 하면 성도는 복음전파를 하지 않아도 됩니까? 주의 종은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 평신도는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됩니까? 그저 목회자가 죽어야 된다고 하는데 그러면 평신도는 살아야 합니까? 우리 모두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을 받고 왕 같은 제사장들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평신도지만 한때 영혼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마음이 아프고 그 영혼들을 위해서 가슴을 쥐어뜯던 시절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두 번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평신도에게 목사나 선교사가 되라고 소명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은혜의 정도입니다. 정말 우리의 마음속에 은혜가 넘칠 때, 우리는 이상하게 가족들을 위해서는 눈물을 흘린 적이 없는데 보지도 못하고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이것이 결국은 주님의 사랑이 그 사랑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들은 매일매일 부딪히지 않습니까? 매일매일 부딪힙니다. 그래서 사실은 어떤 인간의 영혼의 문제나 구원의 문제에서 본질로 들어가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거의 한결같이 목회자와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지 말도록 경고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들이 인간관계로 두터워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온전히 정화되지 않을 때, 우리는 가깝기 때문에 진리를 많이 양보합니다. 얘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훈련을 다 받고 길 건너 식당에 가서는 거기 종업원들에게 사영리를 전하지만 여러분 자녀들에게는 하지 않습니다. 전도 숙제를 해도 가족들에게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가서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이 구원받았을지, 회심했을지 안 했을 지를 생각하지만 우리 자녀나 남편에게 대해서는 그런 생각을 잘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친밀함은 좋은 점도 있지만 진리를 많이 꺾게 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여러분에게 항상 미안한 것이 있습니다. 사실은 설교를 할 때 눈물을 흘리고 여러분을 너무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나 자신이 차가운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절대 따뜻하거나 여러분이 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 항상 이렇게 우리들이 느끼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진실한 사랑과 인간적인 친밀함은 다릅니다. 그래서 우정에 넘치는 교회가 되는 것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여러분에게 그렇게 강하게 설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우리의 가족들을 이 친분관계가 아니라 한 번 복음의 빛 아래로, 우리 엄마의 신앙은 어떨지, 우리 아빠, 우리 자녀, 우리 형제들의 신앙을 어떨지, 우리 가족들의 신앙을 우리 주님이 어떻게 보실지, 그리고 다가가서 당신 신앙은 틀렸으니 회개하라고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을 가슴에 끌어안고 그의 영혼의 곤고함과 모자라는 은혜를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며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혼을 돌보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셔서 우리의 가족들을 구원하십니다. 혈혈단신으로 예수를 믿었는데도 오랜 세월이 흘러서 가족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하십니다. 자녀의 기도는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사랑이 없고 가족들을 그렇게 돌아보아야할 영적인 열심이 부족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 가족들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신앙의 문제이고 내가 하나님 앞에 살아가고 있는 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랑의 문제입니다.
C. 온전히 사랑함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제안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을 배반한 것이다.” 왜 입니까? 믿음은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네가 받았으니 그런 사랑의 혜택을 너의 가족들이 누리게 하라, 그 은혜와 십자가의 사랑에 깊이 은혜를 입어, 너같이 쓸데없는 사람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그 사랑을 가족들에게 베풀어라.” 오래 참고 오래 기다리며 한결같이 그 사람을 돌보아줄 때, 당장은 그 사람이 생각이 짧아서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됩니다. ‘아, 그것이 참 사랑이었구나!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가족으로 자기를 붙든 그 끈을 놓지 않고 기쁘게 그 짐을 짊어주었던 사람,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해 있을 수 있습니다. 유산 때문에 마음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가슴에 기억하십시오. “너희는 이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이 세상의 빛이라.”
(찬양)
이곳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부르셨네
주의 얼굴 구할 때 역사하소서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우악스러운 인간인데 하나님의 섬세한 어머니 같은 사랑을 입어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이길 수 없지만 십자가의 사랑으로는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또 설령 우리가 일생동안 가족들을 그렇게 선대하고 우리를 희생하며 살았다고 칩시다. 사랑은 보상을 요구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사라질 때 자신의 허물보다는 자기가 한 희생이 아주 크게 보이고 다른 사람의 선한 것보다는 그가 자신에게 잘못해 준 것들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게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누가 얘기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을 섬길 때,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는 것은 천국에서 받을 상급을 가불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해하고 우리 사랑에 반응해주는 사람과 함께 사이좋게 살면서 우리들이 사랑을 베풀고 헌신한 것과 아무것도 알아주지 않고 냉대를 받으며 끊임없이 그를 염려하고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그의 영혼 자신도 그 자신의 영혼을 위해 울지 않는 그 사람을 바라보며 우리가 아파하고 울었다면 마지막 날에 주님께로부터 받을 상급을 누가 더 크게 받겠습니까?
III. 적용과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가정의 달을 맞아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풉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주님의 음성을 새깁시다. “너는 이 세상의 빛이라.” 나를 이 가정을 위해 복음 전하는 자로, 영적인 어버이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 소명의 자리에서 잘 섬겨서 마지막 날에 주님께 칭찬을 받는 그런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우리 같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