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전도
제가 경기도 인근에 있는 우체국에서 우체국장을 했어요. 조금하다가 도저히 신학공부와 병행할 수 없어서 승진하고 얼마 안 된 다음에 사표를 내고 그리고 나왔습니다. 어쨌든 잠깐 했어요. 그 옆에 수영장이 있었어요. 그 수영장이 크지는 않았는데 이름 난 유원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꽤 많이 와요. 바글바글했어요. 수영장을 사서 하는 것이 아니고 주인이 수영장을 만들어놓고 그 수영장 전체를 7월 15일부터 8월 31일까지 뭐 이런 식으로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두 달 빌려줘요. 그때 돈 몇 천 만원을 받고 그냥 빌려줘 버리는 거예요. 어짜피 6월 달에는 추워서 수영 못하고 9월 넘어도 한기가 느껴서 수영을 못하니까 그러면 이 사람은 몇 천 만원에 그걸 받아서 다시 또 나눠주는 거야. 이 수영장에 와서 핫도그 파는데 얼마, 호떡 만들어 파는데 얼마, 튜브 빌려주고 하는데 얼마, 그리고 하청을 다시 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이제 머리를 잘 쓰면 빌린 돈을 그런 식으로 다 빼고 그 다음에 입장료를 받는 거예요. 그것을 받아서 수돗물도 공급하고 청소도 하고 하면서 어쨌든 한 철 벌어서 가는 거예요. 그 수영장의 제일 깊은 곳이 어른 목 밖에 안 오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그것도 어른이 거기에 빠져 죽었어요. 참 이해가 안 가는 게 그 안전 요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 위에 배구 심판 보는 곳 같은 수영장 꼭대기에 올라가서 그리고 이렇게 한 사람이 쳐다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엄청나게 온 거예요. 그러니까 쳐다보는데 그렇게 멀쩡히 보고 있는데 그것도 밤에 몰래 수영하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저녁때에 청소하다가 사람이 죽은 것을 발견한 거예요. 대낮에 죽은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이 헤비적거리니까 이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 있으니까 이 사람이 잠수하는 줄로 생각하고 사람들이 다 내버려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수영장 청소를 하려고 하는데 물속에서 안 나오는 거예요. 뭐 그랬겠죠. ‘나와요. 아저씨. 이제 나와요.’ 그랬겠죠. 안 나오는 거죠. 그래서 가서 툭툭 쳐보니까 죽었더라는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똑바로 서기만 해도 안 죽었을 텐데 심장에 무슨 쇼크가 온 거죠. 그러니까 이제 잠수한 것처럼 같은 그런 폼으로 물에 가라앉았다가 발견이 된 거예요. 수영장을 하려면 법적으로 일정 면적에 일정 수 이상의 감시요원을 배치를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거거든요. 안전요원이 호루라기를 매고 거기에 앉아서 잘 지켜봐야 하는데 대낮에 뭔 일이 일어나랴 하고 그늘에 앉아서 소주 마시며 고스톱을 친 거예요. 죽은 거죠. 이것을 우리들이 보면서 우리들이 선생님이라고 하잖아요? 선생님의 일차적인 직무는 잘 가르치는 거죠. 잘 가르치는 건데 교회의 교사는 학교 선생님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이것은 뭐냐 하면 영혼을 지키는 사람이에요. ‘영혼지킴이’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에요. 영혼 돌보는 일. 그러면 그렇게 영혼을 돌보는 사람, 영혼을 지키는 사람이 교사인데 가장 그가 영혼을 지키는 사역을 핵심적으로 요약을 하자면 둘이에요. 영혼을 지킨다는 것은 살아있고 우리 안에 들어와 있어야지 지키지 자기의 목장의 양이 없는데 뭘 지키겠어요? 말뚝을 지키겠어요? 그러니까 영혼을 위한 교사의 봉사는 둘로 나뉘어지는 것이죠.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전도하는 것과 두 번째는 구원 받은 영혼을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그 영혼들을 잘 돌보는 것, 이게 교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이에요. 그러나 놀라운 것은 전도에 대한 간절한 마음과 영혼을 돌보는 목자의 두 마음은 비례해요.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할 것 아니에요. ‘목사님, 안 그런 것 같아요. 어떤 교회는 전도에만 엄청난 열심을 내는데 그래서 사람들을 와락와락 모으는데 그렇게 꼼꼼하게 심방하고 사랑으로 돌보고 가르치고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러면 나는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답할 수 있는 거죠. 그게 뭐냐 하면 전도에 열심을 낸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에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세요? 이해가죠? 그러니까 그런 거죠. 그러면 예를 들면 ‘여기에 전도프로그램을 만들자. 여기를 꽉 채우자.’ 어느 교회에서는 애들한테 가서 목사님이 그랬대요. ‘여기 꽉 채우면 내가 만원 짜리 부패 사줄게.’ 그랬대요. 그러니까 꽉 채우자 그러면서 운동을 했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들이 제시한 목표에 심취하는 거예요. 그럴 경우에는 애써서 영혼들을 모아 왔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그것이 영혼에 대한 진솔한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에 꼼꼼하게 잘 돌보지 않을 수가 있는 거죠. 그러면 반대도 성립하는 거예요. 영혼을 돌보는 일들, 공과공부를 꼼꼼히 준비해가고 지난 시간에 얘기했죠. 그 다음에 교회에 행사가 있을 때에 열심히 자기 의무를 다하고 하는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심방을 하고 하는 이런 활동들이 있잖아요. 이게 영혼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 없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 이거죠. 그러면 무슨 다 해결이 됐죠. 전도에 열심히 있으면서도 영혼을 돌보지 않는 교사들, 또 전도는 안 하면서도 영혼을 돌보는 교사들 모두가 다 어느 한쪽에 쏠린 것 같지만 사실은 양쪽 다 모자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라 이거죠. 물론 사실은 이런 경우는 있어요. 어떻게 전도는 영혼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있어서 열심히 달라붙어서 전도는 했는데 불행히도 어떻게 이 아이들을 목양을 해야 되는지를 목회자를 통해서 잘 배우고 아니면 자기 스스로 교사생활을 가지고 고민하면서 터득하지 못한 거예요. 그렇게 될 경우에는 전도를 열심히 했어도 그 영혼을 돌보는 것을 못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그러면 안 되죠. 그래서 교사는 주님만난 뜨거운 사명감과 함께 뭐가 필요하냐면 잘 훈련되어 있어야 해요. 훈련이 주님을 만나는 뜨거운 신앙을 대신 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주님을 아무리 깊이 만나도 그 사람이 영혼을 돌보는 이 사역을 통해서 헌신할 수 있도록 잘 훈련되지 못하면 그러면 적절하게 사역을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허드슨 테일러가 말하기를 ‘훈련되지 않은 열심은 거의 쓸모가 없습니다.’라고 얘기 한 거예요. 그러면 훈련되지 않은 열심은 쓸모가 없다. 또 열심히 없는 훈련된 상태도 거의 쓸모가 없는 거죠. 그래서 잘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죠. 그래서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면 교사는 영혼에 대한 관심은 둘로 표할 수 있는데 하나는 전도자가 되는 것이에요. 그 잃어버린 영혼들을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어떻게든지 복음을 전해서 저 영혼들을 구원해야 되겠다고 하는 사모함을 가질 때, 그때에 비로소 그 사람이 그렇게 할 때에 이 사람이 비로소 이미 우리에 들어와 있는 양떼들도 사랑으로 잘 돌볼 수 있는 것이죠. 생각해보세요. 말씀을 가르치는데 기가 막히게 가르치지만 영혼에 대한 사랑은 없다. 심방을 가는데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없다. 상담을 하는데 영혼에 곤고한 것에 대해서 어떤 안타까운 심정도 없다. 이렇게 될 때에 그거 어떻게 될까요? 그래요. 그건 하나의 일일뿐이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생겨나느냐? 그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사랑은 이미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래서 뭐냐 하면 자극과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해요. 그래서 뭐냐 하면 진짜로 전도현장에 나갈 때, 그래서 그 영혼 하나하나를 인도하기 위해서 분투하고 애쓸 때, 그때에 속에 잠자고 있던 주님이 맡겨주신 영혼을 향한 사랑이나 뜨거운 열망이 이 안에서 불러일으켜 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뭐냐 하면 교사들을 전도현장에 데리고 가면 그러면 공과공부가 틀려져요. 공과공부를 훈련을 시키면 공과공부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전도현장에 데리고 가면 공과공부가 틀려져요. 여러분, 오늘날에 우리 목회학에서는 토요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토요일 날은 목사가 뭐하는 날이겠어요? 조용히 설교를 준비하고 기도하고 외부사람과도 거의 안 만나고 이러면 자기를 탁 준비하고 있다가 그 다음에 육체적으로도 푹 쉬고 그리고 하잖아요? 그죠? 근데 청교도 목회자 가운데 리처드 백스터라는 목사님이 계셨어요. 유명한 분이잔하요. 그분은 토요일이 심방하는 날이에요. 아침서부터 쭉 심방을 하는 거예요. 현대 목회학하고는 정 반대죠. 토요일 날이 아주 바쁜 거죠. 심방을 쭉 하면. 그럼 뭐냐? 토요일 날 그렇게 심방을 하고 밤에 잠자리에 들면 일주일동안 외부에 사역을 하고, 자기 목회에 관한 일, 연구, 또 사회에 관한 여러 가지 일들도 있잖아요. 교회가 국가가 일치되던 시대니까요. 그런 것 등등등 많이 하다가 토요일은 온전히 시간을 비워서 심방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심방의 유명한 일화가 있잖아요. 심방을 가면 그 집에서 제일 먼저 어린 아이에게 요리문답을 물어보는 거예요. ‘야, 사람의 제일 가는 목적이 뭐지?’ 그런데 말을 못하고 더듬어. 그 다음 주일은 그 부모들이 저 뒤에 서서 예배를 드려요. 그러면 요새 아마 등록하는 사람 거의 없을 거예요. 그죠? 그래서 부모가 혼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심방을 하게 되면 이 목사님 말에 의하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일날 설교를 했는데 월요일부터 막 여러 가지로 바쁘면서 마음이 영혼을 향해 안 모아졌던 것이 토요일 날 병든 가정, 실족한 가정 쭉 돌면서 마지막에 토요일 날 와서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잠자리에 드는 가운데 영혼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꽉 찬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미 준비해놓은 설교가 달라지는 거예요. 왜? 그런 사랑이 없을 때에 설교를 읽는 것과 그런 사랑을 가지고 외칠 때에 훨씬 다른 그런 분위기가 되는 거잖아요. 교사들도 전도를 하면 전도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과를 준비해가지고 오는 게 틀려진다는 거죠. 왜냐하면 이 영혼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기 때문에 이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되겠다는 사명감 이런 놀라운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영혼을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에요. 건강한 교회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교사들이 구령의 열정으로 불타는 전도자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 오면 교역자들을 예외 없이 오는 첫해, 늦어도 그 다음 해에 CCC에 전도학교로 보내버리는 거죠. 요새는 이제 그렇게 안하고 교회에서 NATC 훈련을 하니까 그 속에 집어넣어서 아주 강력하게 돌리는 거예요. 그래서 영혼에 대한 뜨거운 전도의 마인드를 품게 만드는 거죠. 그리고 교사들이 모였을 때에 그러한 사모하는 마음으로 불타야 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뭐 요새 우리 집사람에게 들으니까 사모님들이 계속 기도제목을 내놓는데 교사가 부족하다고 기도해달라고 기도제목이 나온다고 해요. 그런데 전도하면 해결이 되요. 놀라워요. 여러분들, 나가서 잘 들어요. 불타는 마음으로 전도해서 130명밖에 안 나왔는데 180명으로 늘어난다면 교사가 와요. 사실 그게 논리가 됩니까? 지금도 모자라는데 아이들이 50명이 더 오면 최소한 7명의 교사가 필요한데 그게 어떻게 된단 말입니까? 된다니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영혼들이기 때문에 그 영혼들이 모인 곳에 하나님이 교사를 보내주세요. 신기한 방법으로 보내주세요. 전도할 때에 어떻게 저 영혼들이 전도가 될까? 그런데 그 영혼들을 보내주시잖아요. 하루 종일 토요일 날 교인들이 모여서 방배동을 누비면서 전도를 했는데 성과가 없어요. 그래가지고 낙심해서 토요일 날 오후 기도하고 집에 가면 방배동은 누벼도 전도해도 사람들이 안 왔는데 사당동에서 사람들이 전도도 안 받은 사람들이 그냥 우연히 오는 거예요. 이거는 우리들이 15년 동안의 간증이에요. 그러니까 열매를 보려고 전도하지 말고 자세를 주님께 보여 주려고 전도를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이쪽에서 죽어라고 팠는데 이쪽에서 똑같이 맞춰서 보내주면 전도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겠어요? 아 내가 하니까 되는 구나. 내가 안 하니까 안 되는 구나.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쪽을 팠는데 이쪽에서는 교인이 안 오고 가보지도 않은 쪽에서 교인이 오는 거예요. 그때는 뭐냐면 하나님이 하셨다 인정을 하게 되는 거예요. 선생님들도 놀랍게 보내주세요. 영혼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영혼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면서 혼자 있게 내버려두시지 않고 반드시 그 영혼들에 부담을 느끼는 교사를 보내어 주시는 거예요. 전도해야 되는 거죠. 교사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여기에 광고 올리지도마. 여기에 그거를 불특정 다수에게 광고해서 손드는 사람을 여러분 신뢰할 수가 있겠어요? 아무나 하겠다고 하면 시켜줄 거예요? 대답해 봐요. 그럴 수 없어요. 이게 무슨 뭐 노동하는 것도 아니고 땅 파는 것도 아니고 삽질 하는 것도 아니고 그건 영혼을 돌보는 건데 손든다고 다 시켜준다고? 그러다 이상한 사람 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옛날에 내가 전도사 할 때에 교사 한 사람이 시켜달라고, 시켜달라고 그래서 내가 오기 전에 벌써 시켜달라고 해서 막 3개월을 졸랐대나. 그런데 공과공부는 안 가르치고 맨 날 부흥회를 하는 거예요. 그 되지도 않는 소리,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뭐 내가 본 천국, 이런 이단적인 책들을 읽고 와가지고 말이지 중학교 애들, 애들이 싫어하면 그것도 눈치라도 채야지 되는데 그것도 상관없어요. 싫어하거나 말거나 애들이 하나씩 둘씩 다 떨어져도 워낙 진리의 말씀을 맛을 못 봐서 애들이 다 떨어져 나간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는 소용없어요. ‘교사 좀 해주세요.’ 해서는 소용없어요. 여러분들이 해결책을 갖는 거는 청년부에서 쫙 봐요. 쭉 봐서 말씀이 딱 들어가고 성실하고 애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러면 청년부 구역장이라도 가서 꼬셔가지고 잡아당겨가지고 ‘야, 12월부로 끝내고 너는 요번에 교회학교로 와라.’ 청년부가서 그런 얘기 하지 마요. 싸움나니까. ‘야, 구역장은 다른 사람보고 하라고 그러고 야 너는 여기와라.’ 해가지고 그리고 교사들이 가서 교사사역이 보람 있는 것을 자랑을 해야 돼. 그래야지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려면 죽겠어.’ ‘늦잠 좀 자봤으면 좋겠어.’ ‘아 저렇게 힘든 거구나.’ ‘나 교사 좀 해볼까?’ ‘아, 넌 못해.’ ‘난 있지 그때 교사 한다고 그런 게 너무 후회가 돼.’ 이런 소리나 하고 다니는데 누가 오겠어요? 누가. 지금은 전성기가 지났어요. 한때 우리 그 교회 간사가 인기가 최고였던 적이 있어요. 여러 해 전인데 이렇게 얘기하면 에이, 목사님 또 뻥친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진짜로 내가 들은 얘기에요. 아주 공부를 많이 했거나 아니면 공부보다도 뭐 그때는 뭐 연구실 그런 쪽도 없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공부보다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뭐 교사나 뭐 이런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말고는 그냥 평범하게 대학 나온 자매들의 꿈이 열린 교회에서 간사 한 번 해보는 거였던 때가 있었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월급 많이 주나? 아니 60만원 받고 시작을 했어요. 교회가 그렇게 많이 줄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조금 더 나아졌는데 그래도 뭐 삼성이나 이런 데하고 비교할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뭘 부러워했냐? 이 자매들이 간사가 되기 전까지는 좀 써금써금 했는데 간사가 되고나서 얼굴이 활짝 피고 기도도 많이 하고 은혜도 많이 받고 가서 맨 교회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자랑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도 좀 한 번 하면 안 될까? 손들고 있는 자매들이 많이 있었어요. 교사도 마찬가지에요. 가서 아주 행복하게 자기가 교사 생활하고 있고 거기서 얼마나 많은 보람을 느끼고 그리고 신앙생활에 있어서 내가 이 교사를 감당하면서 얼마나 행복한지를 그 아이들을 보면서 이 자그만 아이들이 자기에게 덤벼드는 것이 기쁘고 감사한 것을 그리고 영혼들이 변화되고 하나님이 나를 사용해주시는 간증을 막 하는 거예요. 교역자들에게 내가 얘기하는데 교역자 회의에 올라와가지고 뭐 장년부에서 교사도 안 보내주고 그리고 그저 뭐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그래봐야 은혜 떨어져. 그거는 그렇게 보내주는 사람은 잘해봐야 반타작이야. 반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야. 여기 저기, 교회에 나와서 교리반까지 마치고 그런 정도로 교회 다녔는데 아무데서도 안 데려갔는데... 그 뭐가 그렇게 쓸모가 있겠어요? 탐내는 부서가 없는데? 아, 그래요 안 그래요? 진짜 그렇잖아. 그러니까 그거를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내가 아주 확실한 방법 알려 줄 테니까 제일 좋은 게 뭐냐면 교회 오래 다닌 사람도 교사에 적합하지 않아요. 회심한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아주 열심히 해요. 회심한지 한 2년 미만 된 사람, 그렇게 회심해서 은혜 받고 그 다음에 부지런히 해서 성장반에서 은혜 많이 받은 사람, 목자와 양에 나오잖아. 성장반에서 은혜 많이 받은 사람, 그리고 새가족 일꾼으로 섬기던 사람, 그리고 아직 교구에서 구역장을 시킬 수가 없고 이거를 뭘 좀 시키나 이러고 있는 사람을 빨리 교리반 보내서 그래서 마치기 전에 입도 선매하는 거예요. 그래서 교역자들이 잘 해야 돼요. 가끔 가서 새싹들 중에서 아주 쓸 만한 사람들을 미리 가서 뽑아내가지고 야, 우리 전도사님이 와서 저녁이라도 같이 하잖다. 그러고 부장집사님하고 가서 우선 먹는 거예요. 그게 제일 좋은 거거든요. 전도할 때도 잘 먹이면 이게 얼굴이 있어서라도 한 번은 교회에 나와요. 그러니까 잘 이렇게 하고 거기서 화기애애하고 행복해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뭐라고 그러냐 하면 적당한 때에 ‘뭐, 이제 회심한지 일 년 반 밖에 안 됐는데 교사는 할 수가 없고 그 아침에 일찍 와서 신발이라도 좀 정리할래?’ 그러면 얼른 와요. 그 신발 정리하는 사람도 애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르거든. 보조교사. 그렇게 해가지고 와서 봉사를 하면서 쫙 보는 거예요. 그러다가 딱 세우는 거예요. 그거를 갔다가 지금 구역장 하고 있는 사람, 교리반 마치고 산전수전 다 겪고 적어도 죄와 은혜의 지배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 정도를 찾으니까 교구에서 줄 리가 있나. 안 주지.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생산성이 별로 없어요. 진짜 열렬한 사람, 밤 11시에도 빨리 나와요 그러면 택시타고 달려올 수 있는 사람은 수십 년 다닌 사람이 아니야. 회심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나오고 애들 여름성경학교 하는데 돈이 모자란다고 하니까 우리 교사들은 자기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도 팔아버리더라구요. 그렇게 그냥 할 수 있는 무제한의 헌신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래서 교회에서 이 부서, 저 부서에 가가지고 닿고 닿은 사람 쓰지 말고 새내기, 하튼 새로 된 그런 사람을 찾아. 구워내는 거예요. 찾아내는 거야. 멍하고 이러고 있다 보면 무럭무럭 자라나는 새싹들에 대한 정보가 누가 제일 빨라요? 교구에서 빠삭하잖아. 그러니까 벌써 쫙 어느 정도 달았을 때에 감투를 하나씩 탁탁 씌워주는 거예요. 부구역장, 뭐식이 뭐식이 막 씌우는 거예요. 그러면 벌써 이제 말뚝 꼽아놨기 때문에 거기에는 안 간단 말이야. 그러니까 말뚝 박기 전에 그때 가서 여기다 딱 붙여놓는 거예요. “보조교사” 그러면 어떻게 해?
보조교사인데 어떻게 해. 아이고, 머리를 써요. 머리를 써. 그러지 말고 그리고 보조교사 왔을 때에 아무개 형제, 자매 그러지 말고 깍듯이 부장집사부터 시작으로 해서 전도사, 목사까지 깍듯하게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거예요. 미리 암시를 주는 거예요. ‘너는 여기서 선생이다.’ 계속 암시를 주는 거예요. 이렇게 해가지고 진짜 영혼을 사랑할 교사들, 예수를 만난 흔적이 있는 교사들을 찾아내야 되는 거야. 그리고 교사 많아서 되는 일없어요. 그렇게 많을 필요 없어요. 뭐냐 하면 강력한 훈련과 경건생활로 말하자면 소수정예부대를 만드는 거예요.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냐면 훈련을 받아야 돼요. 훈련을 받는데 하기 싫은 사람, 그저 공익근무만 하고 때우려는 사람을 불러다가 특공대 훈련을 시키면 하겠어요? 벌렁 나자빠져버리지. 안 돼잖아요. 우리 아들이 공수부대 나왔잖아요. 부대이야기만 나오면 기가 살아요. 왜냐하면 아빠는 방위출신이고 그 다음에 작은 아빠는 병출신이에요. 그러니까 맨 날 김장로가 그랬어요. 온 가족이 모여서 군대 얘기 나오면 군대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현역이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밖에 얘기 할 사람이 없어. 셋째는 면제, 넷째는 공익, 방위 뭐 이러니까 우리 아들이 군대갔다오고 나서는 이제는 쑥 들어갔어요. ‘아버지.’ ‘왜?’ ‘우리 부대는 굉장히 특수해요.’ ‘그러니까 특수부대아니겠니?’ ‘그게 아니구요.’ 정말 재미있더라구요. 중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 대위에요. 근데 중대가 12명이에요. 12명이 중대에요. 일개 대대를 지휘하는 사람이 무궁화 2개에요. 60명이에요. 왜 그렇게 짜냐했더니 그 특수부대에는 저쪽 마찬가지고 이쪽도 마찬가지고 북한군 옷가지가 창고에 있대요. 전쟁이 나면 그것을 입고 비행기를 타고 가서 떨어뜨리는 거예요. 투입은 시키는데 귀환계획은 없대요. 그래서 하는 말이 뭐냐 하면 한사람의 특수대원이 떨어져서 막 헤집고 돌아다닐 때에 그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수를 그 사람과 맞서기 위해서 동원되는 수를 800명으로 본대요. 그렇게 훈련을 시킨데니까 얼마나 지독한 훈련을 시키겠어요? 저쪽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무섭게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그러면서 소수정예부대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한 번 생각을 해봐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말이죠, 10명, 12명씩 맡기면 교육학적으로 관계가 형성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도 뜨거운 사랑이 있고 영혼들을 위한 열심히 있으면 그런 열심히 없이 3명을 맡은 것보다도 훨씬 더 아이들이 신앙적인 영향을 많이 받아요. 수는 문제 안 된다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물량공세로 하지 말고 소수정예부대를 만들어서 그런 새내기들을 탁 뽑아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냥 교구의 목사가 있고, 전도사가 있고 아무리 해도 자기가 교회학교에 꽂혔으면 말 안 듣고 그곳으로 가. 사랑하는 곳으로 흐르는 거 아니야. 그렇게 해가지고 말이지 마음을 뺏어버려. 그래가지고 너무너무 교회학교를 사랑하고 사역을 사랑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죠. 그러면 교사도 조심해야 되는 게 맨 날 결석하고 전도사 말 안 듣고 속 썩이고 어디 나오라고 그러면 안 나오고 맨 날 핑계되고 이런 사람이 ‘전도사님, 얘도 교사하고 싶대요.’ 하고 데려오면 대부분 자기하고 비슷한 사람을 데려와요. 왜냐하면 노는 물이 그렇기 때문에. 근대 틀림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그런 사람을 만약에 만나서 그런 사람이 나도 교사 좀 시켜줘 그러면 전도사한테 데려오기 전에 얘가 카트해버려. ‘야, 너는 그렇게 교사해서 안 된다.’ 그러면서 접어버려. 그러고 자기 같은 사람을 데리고 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모두 다 전자의 사람들이잖아. 안 웃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데리고 온 사람은 틀림없을 것 아니야. 그래서 그런 사람을 데리고 오는 거야. 그리고 또 뭐가 좋으냐면 아주 친한 지체들을 데리고 오는 거야. 마음이 잘 통하는 설마 자기가 교사 하나 데리고 오라고 하는 대판거리 싸우고 겨우 화해할까 말까하는 사람 데리고 올리는 없잖아. 교회에서 이따금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거기에다 놓고 왜 얼굴을 마주보겠냐 이거야. 그러니까 자기 친한 사람을 데리고 오잖아. 그러니까 요렇게 요렇게 묶이는 거야. 그래서 뭘 할 때도 너희 셋이서 해. 그러면 너무 좋아하는 거라 이거에요. 그런 식으로 해서 전략을 짜야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 여기서 여기서 각 부서에서 그저 별로 그 관심 없다고 내친 사람들을 말하자면 모여 있는 재활용품같이 모여 있는 사람 중에서 하나씩 뽑아가지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모아놓으니 그러고 하는 말이 목사님 우리 부서는 이상하게 단합이 잘 안 돼요. 처음부터 단합이 안 되게 하려고 만들어 놓고 무슨 이제 와서 단합이 안 되네, 단합이 안 되네 그러냐 이거에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런 역량이 안 되기 때문에 전도가 동력화가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놀라운 게 뭐냐 하면 얘들이 선생님이 아무리 가서 전도해도 전도한 선생님 보고 교회에 나온 애들은 거의 없어요. 몰라 선생이 대학교 1학년쯤 돼가지고 아주 꽃미남 같으면 그러면 또 중학생들이 따라 올려나? 그건 모르지. 그렇지만 가서 아이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해요. 반감만 안 주면 잘한거야. 원래 애들은 노털을 싫어해. 싫어해. 우리 딸이 중학교 때에 저희 사촌이 고등학교를 갔나.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우리 언니는 이제 늙었어.’ 애들이 생각이 그래요. 그런데 여러분 같은 아저씨, 시집은 안 갔지만 거의 아줌마 같은 그런 사람이 가서 뭘 좀 애들한테 호감을 사려고 할 때에 개내들 보기에는 장수무대 같은 분위기라이거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데려올 수가 없어요. 그래서 뭐냐 하면 아이들은 아이들이 데려오는 거야. 교사는 교사가 데려오고. 그것을 동력화 해야 되는데 그게 전도라 이거에요.
그러면 전도를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물론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되겠지요. 그것은 원론에 속한 거고 실제적인 실행에 들어가는 게 문제라는 거죠. 그래서 뭐냐 하면 지금 여러분들이 전도하는 것을 보면 갑갑해요. 토요일에 전도를 하는데 두 명, 세 명 심지어 많아봐야 네 명, 그렇지 않으면 두 명 옛날에 보면 교역자 혼자 전도지 들고 다녀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내가 제시하는 게 뭐냐 하면 그렇게 해서는 교사들 자신 속에 전도를 해야겠다는 뜨거운 사명감 같은 것이 안 생겨요. 그리고 아무리 많이 기도해도 나가서 입을 열어서 예수의 복음을 말하지 않으면 안 돌아올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겠어요? 모여야 돼요. 모여야 돼요. 그래서 내가 항상 하는 얘기가 그거잖아요. 일주일에 두 사람씩 나가서 모일 바에야 차라리 모이지 말고 한 달에 마지막 주에 한 번 모이더라도 그때에는 모두 모여야 돼요. 모두 조퇴라도 하고 오던지, 휴가라도 내고 와야 된다. 모두 모여야 된다. 모여서 전도 전략을 정확히 짜서 그래서 꼼꼼히 현실성이 있게 열매가 있는 전도활동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전도할 그날을 위해서 온 마음을 모아서 기도하고 그 날은 큰 잔칫날처럼 교사들이 모두 모여야 돼요. 교사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교사부인도 데리고 와야 돼요. 집에서 뭐해요? 전도해야지. 그렇게 다 데리고 와서 그때에 교사들이 모여서 뜨겁게 눈물로 영혼들을 위해서 우리들이 매일 나와서 전도 못하지만 이 한 번 있는 전도회에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달라고 하고 교회학교 부장집사들은 그날 수박이라고 큰 것 사고 닭튀김이라도 튀기고 이렇게 해가지고 교사들이 와서 열심히 전도를 한 다음에 아주 푸짐하게 먹고 기분 좋게 딱 끝내고 그렇게 평가를 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사실 지금은 전도하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거죠. 왜냐하면 옛날에는 놔먹이는 애들이 많았기 때문에 북만 치면서 골목을 다니면 애들이 우루르 모였어요. 왜냐하면 텔레비전이 있나, 비디오가 있나, 뭐 게임이 있나, 게임이라고 해봐야 구슬치기 아니면 잣치기 뭐 망까기, 아니면 말타기인데 전부다 그거 방안에서 하는 게 아니라 골목에서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막 북치고 다니면 애들이 막 새카맣게 모이고 어떤 사람은 망원 하나를 고물상에서 사가지고 야 이리와 내가 이거 보여줄게 그러면 아이들이 이렇게 봐요. 그러면 금방 뺏어. 그러면 ‘나 이거 또 보고 싶어요.’ 그러면 뒤에 와서 서. 그러면 애들이 계속 달라 붙는 거예요. 그렇게 해가지고 ‘저기 멀리 보이지? 멀리 보이지. 저기 가깝게 보이지?’ 그러면 애들 30명 40명씩 매달려가지고 쭉. 그러면 교회 지하실로 데려가는 거예요. 실화예요. 밀과 보리가 자란다는 게임이 있었어요. 애들 모아놓고 ‘밀과 보리가 자란다.’ ‘밀과 보리가 자란다.’ 그래 놓고 3명 모아놓고 6명 만들어 오기 하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것 같지? 그렇게 해가지고 30명까지 만들어 봤어요. 그 다음에 온 애들은 자기가 왜 가서 애들을 불러와야 되는 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가서 불러오는 거예요. 게임이니까. 그러면 서너 명밖에 안 되던 애들이 갑자기 30명이 모이는 거예요. 그때는 애들도 많이 낳았어요. 지금은 하나나 둘 밖에 안 낳고 셋 낳으면 이상한 눈빛으로 보지만 그 당시에 둘만 낳으면 이상한 집안이다 그랬어요. 이상적인 가정이 3남 2녀 이랬거든요.
우리 어렸을 때에. 그러다 양보해서 2남 1녀 이렇게 내려 간 거죠. 그러다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그러다가 그 다음에는 외아들, 외동딸도 많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꼭 낳아야 하나? 이렇게 된 거죠.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하는 거예요. 그때에 60년대에 산아 제한하지 말고 막 낳았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 우리 인구가 1억이 되었어야 되는 거죠. 전략적인 실패였죠. 그런데 그렇게 했으니까 아이들이 막 오는 거죠. 지금은 상상도 못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들이 모여서 할 때는 그러니까 우리들이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렇게 선생님들이 모여가지고 골목에 나가서 전도를 해봐야 많은 성과를 거두기 어려워요. 그리고 옛날에는 애들이 집에 들어갔다가 가방만 던져놓고 다 밖으로 나왔어요. 왜냐하면 집이 컴컴하고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놀이를 하던 게임을 하던 땅바닥에서 애들하고 하는 게임이었어요. 지금은 한번 들어가서 문 쾅 닫으면 경비아저씨도 못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 때 전도사 할 때부터 그런 상황이 벌어졌어요. 그래서 이제 어떻게 했냐면 학교 앞 전도를 하는 거죠. 기도를 많이 하고 아주 현명하게 지혜를 짜야 돼요. 그러면 놀라운 성과가 있어요. 여러분 대부분 다 교회를 다니는 것 같아도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아직도 교회 다니는 아이는 소수에요. 우리는 실제로 이렇게 했어요. 어떤 식으로 하냐면 학교를 정하는 거예요. 그때는 제가 주일학교 할 때까지는 아까 얘기한 논리가 다 통했어요. 그래서 그냥 떼거지로 몰려가서 그냥 전도지 들고 아이들 붙들고 귀찮게 하면 다 끌고 왔다고. 그리고 막 교회에서 영화 상영한다고 표 만들어서 나눠주면 아이들이 막 새카맣게 몰려오고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중고등부 맡게 되면서 사회가 발전하면서 상황이 현저하게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학교를 정하는 거죠. 그러면 보세요. 아이들이 선생님이 우리 광화문 앞에서 전도도 해보고 다 해봤거든요. 광화문 앞에서 전도할 때는 어떻게 하냐면 그때는 내가 교수였으니까 이제 영향력이 있죠. 합창단하는 애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두목 하나 붙들어서 점심 사줄 테니까 너 이 다음에 목회하려면 가서 전도 열심히 해야 되잖아. 그러니까 합창단 한 7, 8명만 데리고 와라. 7, 8명 데리고 광화문 지하도에 쫙 세워놓고 그 지하도는 ‘아’ 하면 쫙 울리잖아. 그러면 얘네들이 최고야. 뭐 극동방송 복음성가 대회에 나가서 동상타고 은상타고 이런 애들이니까 기타 치면서 노래를 쫙 부르면 막 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그 공연을 들을 정도야. 그렇게 화음이 잘 되고 쫙 울려 퍼져. 거기서 일 만장의 전도지를 돌렸어요. 특별히 거기에 중고등학생들 거기서 저쪽에서 배제, 양보고등학교, 휘문, 중앙대, 중동고등학교, 수성고등학교, 뭐 수없이 숙명 뭐 만났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서 나눠주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이 많이 받아가지고 가. 그리고 나서 그 다음 주에 오나? 오긴 뭐가 와. 그래서 결국 전도지만 만장 날리고 그리고 거기서 그냥 물론 거기서 그 사람들이 받고 어디서 영향을 받았겠지요. 그래서 야, 이거는 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죠. 내실이 있는 전도를 해야 되겠다. 그 다음서 부터는 어떻게 했냐면 학교 앞 전도를 한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아이들은 사전에 학교별 모임을 갖는 거예요. 2부 순서를 공과공부가 끝난 다음에 3부 순서가 있잖아요. 애들은 하여튼 먹을 것만 사다주면 병아리 모이듯이 쫙 모이거든요. 먹을 것이 참 중요해요. 모이가 중요해요. 모이를 주면 쫙 모인다고.
그래서 이제 먹을 것을 조금씩 싸가지고 가서 학교별로 친목회를 한다. 그러니까 이제 양명 고등학교, 휘문 고등학교 뭐 무슨, 무슨 배제 뭐 무슨 학교 무슨 학교 이렇게 해서 다 모이는 거예요. 그래서 아는 얼굴들이지만 다시 한번 확인을 하는 거죠. 그때 선생님들을 배치를 해. 너는 김선생님은 배제 중학교, 박선생님은 풍문 중학교 이런 식으로 배치를 해. 그리고 가서 너희 어떻게 지내니 하면서 쭉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그때부터 본론에 들어가는 거예요. ‘야, 어렸을 때부터 예수를 믿지 않으면 믿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러면서 몇 주 전부터 설교 시간에 전도해야 한다고 설교를 하는 거예요. 애들이 상당히 부담을 느낄 때 쯤 해서 그 모임을 딱 갖는 거예요. ‘저렇게 전도사님이 안타깝게 전도해야 된다고 설교를 하는데 야 니네 전도 좀 해라.’ ‘ 아이, 선생님 우리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전도는 너희들 보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애들만 데리고 와라.’ 그리고 이제 대상자를 찾는 거예요. 내가 구체적으로 2주 후에 토요일날 11시 20분에 정문 앞으로 데리고 올 아이들 명단 이걸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7, 8명은 못해. 왜냐하면 다 가고 싶어 안달하는 애들이 아니고 간다고 했다가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애들이니까 많아봐야 세 사람,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 아니면 한사람이면 충분해. 그렇게 해가지고 어떻게 하냐면 이제 모이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조를 짜서 명단을 써. 그걸 가지고 전체를 묶어 놓고 기도표를 만들어서 계속 기도를 하는 거예요. 집에 부인들 한테도 갖다주고 남편들 한테도 갖다줘서 기도를 열심히 하고 아이들도 계속 기도하고 선생님들은 금식기도 돌아가면서 하고 심지어는 그거 있는 40일 동안에는 매일 교회에다가 출석부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해놓고 직장 끝나고 교회에 와서 한 시간 이상 기도하고 가기. 그리고 거기에 담당을 다 써 놓는 거야.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직장 끝나고 9시에 와서 10시까지 기도하다 가고 8시에 와서 하고 가고 일찍 끝나는 사람은 5시에 와서 6시까지 하고 가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계속 해서 기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아이들 기도를 시키는 거예요. 그렇게 해 놓고 토요일날 11시 20분쯤 되면 아이들이 막 쏟아져 나오거든 그러면 이제 가서 기다리는 거죠. 그런데 그것도 잘 봐야 되는 게 가까운데 모임 장소가 있으면 그냥 가면 되는데 학교가 외져 가지고 그 근처에 모일 장소가 없으면 봉고를 가지고 가야 돼요. 차나. 근데 그때 애들이 봉고를 되게 무서워 했거든요. 왜냐하면 그때 인신 매매범이 하도 많아가지고 그래가지고 굉장히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단단히 받았어요. 봉고타지 말고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차 태워 준다고 하면 타지 말아라. 그랬는데 그렇게 와요. 그러면 이제 아이들이 선생님한테 인사를 시켜 주는 거예요. ‘우리 선생님이셔.’ 맨 처음에는 선생님이 오니까 그런 얘기 안 하죠. 그러면 안 만나려고 하니까 살짝 데려와서 우리 선생님이셔 그러면 항상 선생님이 나갈 때는 커플이 나가는 거예요. 남자선생 하나, 여자 선생 하나 이렇게 나가서 말을 거는 거예요. ‘너 몇 학년이니?’ 다 알면서 물어보는 거죠. 2학년이 데리고 왔는데 1학년을 데리고 왔겠어요? 3학년 데리고 왔겠어요? ‘저 2학년인대요.’ ‘어, 그러니? 너 집은 어디니?’ ‘저 장지동인대요.’ ‘우리가 거기 살았는데, 어 그래? 너 어디냐? 너 거기 아냐?’ 이런 사이에 벌써 봉고까지 간 거예요. 태우는 거죠. 그래서 이제 꽉 차면 문 탁 닫고 가서 출발하고 가죠. 얘네들이 수군수군 하는 거죠. 야 우리들 어디 가냐? 야 그러지 말고 만났는데 짜장면이나 먹고 가자. 애들은 짜장면 제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짜장면 집에 탁 가.
그래서 미리 짜장면 집에 예약을 해 놔서 방을 빌리는 거예요. 중국집에도 방이 있잖아요. 바닥에 상 놓고 짜장면 먹는 그런 방이잖아요. 빌려요. 잘생긴 사람이 전화 와 가지고 우리 15명 온다고 예약을 하니까 엄청난 요리 시키는 줄 알고 제일 큰 방을 준다고. 그럼 가서 짜장면 15개요. ‘아저씨, 바쁘지요? 천천히 내오세요. 천천히’ 그리고 짜장면 먹을 때 엽차 한잔씩 놓잖아요. 그리고 이제 얘기하는 거죠.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각자 한번 이야기를 해보자. 각자 한번 자기 소개해보자.’ 애들은 그런 것 잘 하잖아요. 저는 요 무슨 초등학교 나왔구요 지금은 이 학교에서 1학년인데요 어쩌구 저쩌구, 옛날에 교회는 다녔구요 어쩌구 저쩌구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서로 아냐? 모르는 애들도 많죠. 그럼 장난도 치고 쭉 얘기를 해요. 그러면서 거기서 이제 짜장면을 먹이는 거예요. 뭐 누구한테 배운 것이 아니라 다년간 해보다가 터득한 거예요. 짜장면을 쭉 먹여요. 거기서 교회학교 안에는 학원 선생들 되게 많잖아요? 학원 선생도 있고 학교 선생도 있고 또 뭐 심지어 주산학교 선생도 있고 속셈 학원이 그렇게 유행이었어요. 속셈학원 원장도 있고 속셈도 많으니까 아이들에게 잘 와 닿는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준비해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아주 막 첫날 너희들은 모두 지옥 갈 죄인들이고 이렇게 복음 전하는 것을 해봤는데 효과적이 아니더라고. 짜장면 하나 먹고 다 언칠 정도야.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안 하고 한 번 더 기회를 보자 해가지고 짜장면을 잘 먹이고 그 다음에는 너무 좋은 것 말고 예쁜 것 깔끔한 선물 하나씩 주는 거야. 요만하게 연필 뭐 들은 거라든지 뭐 이런 것. 그래서 그건 선생님들이 각자 만들어가지고 가는 거야. 그래가지고 성경구절 같은 것 하나 써서 그러면서 주고 그러면서 선생님도 사실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교회를 안 다녔다는데 그러면서 나는 대학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주님을 믿고 이제 주님께 돌아와 보니까 너희들만한 때에 주님을 잘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단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를 쫙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같이 있던 선생들은 전부 다 그 교회에서는 막 청년들이 다 공부를 잘 했어요. 전부 다 서울대. 애들이 선생이 서너 명이 쫙 나가서 아이들이 선생님 소개 시켜주는 거예요. 거기에서 아이들이 한 풀 딱 꺾어지는 거예요. 우리 선생님은 지금 서울대 4학년이고, 우리 옆에 선생님은 별로 좋은 데는 아닌데 연대 다녀. 야, 너 물리학과 가고 싶다고 했지? 이 선생님이 지금 물리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계셔. 애들이 거기에서 한 풀 딱 꺾이는 거예요. 너희 제일 재미있는 과목이 뭐냐? 못하는 과목이 뭐냐? 그러면서 구석구석 앉아가지고 짜장면 먹으면서 말을 계속 거는 거예요. 수학을 하는데 뭐 어쩌구 저쩌구, 그건 뭐 어쩌구 저쩌구, 공부 얘기도 하고 막 이러는 거예요. 그러다가 선생님이 간증을 짧게 15분, 10분 정도 돌아가면서 재미있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뭐라 하냐면 바쁘겠지? 그렇지만 다음 주에 한 번 우리 교회에서 그것도 딱 토요일이건든요, 내일이야. 내일 어디 약속있냐? 물어보는 거죠. 없다고 그러죠. 그러면 교회에서 한 번 만나자. 그러면 거기 짜장면 먹은 애들 중에서 평균쳐서 60%내지 70%가 교회에 와요. 왜냐 하면 애들이 한 그릇 먹었기 때문에 한 번은 교회에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도리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어쨌든 와요. 그러면 이제 왔을 때에 그들을 아주 따뜻하게 환영해주되 첫날 복음을 전해야 되는 거죠. 교회에 발을 들여논 첫날, 그래서 딱 하면서 쫙 복음을 전해 주는 거죠. 완전히 개인이 해야 돼요. 쭉 전하면 공과공부에서 빠져나와서 고걸 가르치는 사람들만 따로 준비를 해야 되는 거죠.
그렇게 해놓고 쫙 말씀을 가르쳐주는 거야. 그러면서 ‘아, 이렇거든. 이제 너의 선택에 달렸어. 주님을 영접할 것인가, 문 밖에서 서서 너의 마음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을 내어 쫓던가 그것은 너에게 달려있는 거야. 주님이 문을 부스고 들어오시지는 않아.’ 그러면서 그림을 하나 딱 보여주는 거죠. 등불들고 예수님이 두드리시는 장면있잖아요. 거기에는 문고리가 없다고요. 안에서 열어주게 되어 있거든요. 그것을 보면서 설명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중에서 그게 진짜 회심을 했든지, 안했든지간에 상관이 없어. 일단 ‘그럼, 나 영접할께요.’ 그러면 잘 된 거야. ‘영접한 사람은 모두 교회에 다녀야 되는 거야.’ 그리고 딱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교인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가지고 기가 막힌 고리에요. 거기에서 그 분위기상 자기 나는 싫다고 그럴 수가 없거든요. 아주 따뜻하게 분위기를 이렇게 해주면 말이죠. 그러면 어떤 애들은 처음 왔는데 거짓말 같이 복음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애들이 나와요. 그게 회심이 아닐 수도 있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애들이 나와요. 왜냐하면 벌써 중학생만 되도 이 세상이 곤고하거든요. 괴로움과 죄만 있는 곳, 나 여기 살아도 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막 괴로워요. 입시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더 많이 눈물이 나와요. 가정의 상처가 있는 아이들, 그럼 여기에 깨끗한 하얀색 수건을 준비하는 거죠. 눈물 나올때에 콧물도 나오잖아요. 주는 거예요. 그거를 받고 닦고 나서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해주는 거예요. 계속 신세를 지게, 부담스럽게 계속 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도 또 뭐 친절한 여선생님이 막 그렇게 다독거리면서 이야기를 해주는데 나중에는 한참 만난 동생처럼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를 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얘기하던 사람 중에 80%는 다 영접을 하겠다고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다 구원받았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래 영접했지 그러면서 이제 교재를 탁 펼치는 거예요. ‘영접했으면 교회를 다녀야 됩니다. 영접했으면 성경을 읽어야 됩니다. 영접했으면 기도해야 됩니다. 영접했으면 전도해야 됩니다.’ 까지 그냥 탁 끼는 거야. 너는 이제 여기에 등록됐다. 그러면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까지만 가면 안 나와도 ‘왜 전화했어요? 나 안갈건데.’ 이러는 애들이 없어요. ‘죄송해요. 다음 주일에는 꼭 갈께요.’ 이런 다고. 그러면 이제 완전히 양떼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편지를 쓰는 거죠. 그래서 자 손들어 봅시다. 1월달부터 20통 이상의 편지를 쓴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아이들에게 10토, 5통, 3통, 빵통, 여러분 빵접이야. 그렇게 해서는 안돼. 나도 편지를 쓰는데 나도 어제 편지를 썼어요. 내 얘기 잘 들어봐요.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엄청 옛날에는 상상도 못할 수많은 관계들을 가져요. 그런데 그 관계들이 전부다 상업적이고 피상적인 관계들이에요. 그런데 솔직히 아이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관계를 갖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그럼 여러분 그러면 안돼요. 그리고 이메일이 있기 때문에 편지를 많이 써야 돼요. 그래서 이 편지와 예쁜 편지지와 봉투, 카드 그 다음에 깨끗하게 글씨써지는 펜은 여기에 항상 가방 속에 넣고 다녀야 돼요. 그래서 그것을 쓰려고 따로 시간을 내지 말고 밤에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 점심 시간, 아니면 커피솝에서 누구하고 만나기로 했는데 기다리는 시간 그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가지고 편지를 쓰는 거예요. 그렇게 있으면 내가 보여주고 싶은데 깨알같이 깨끗하게 써가지고 그런 편지를 5통정도 받고 감동하지 않을 아이는 현대에 거의 없어요. 왜냐 하면 엄마도 그렇게 안 해줘요.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안써요. 그건 정말 꽝이다. 일주일에 최소한 한통은 써야지. 뭘 이렇게 장문의 논문을 쓰려면 안되고 딱 편지는 한 장은 안돼.
그리고 세장은 너무 많아. 한 장에서 시작을 해가지고 한 장 반이나 두 장정도에 끝나는 진심이 담긴 편지를 쓰는 거예요. 이걸 토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이게 나오지 않는 거죠. 그렇게 해서 깔끔하게 해서 써서 보내주는 거예요. 그렇게 해놓고 안 나오면 방법이 많아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은 전화하는 것, 아이들을 보는 방법, 편지를 쓰는 것, 그 다음에 무슨 행사가 있다고 초청장을 보내는 것, 우리는 녹음 테잎도 보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아이가 상태를 보면서 음악을 틀어놓고 녹음을 하는 거예요. 아무아무개에게 보내는 글. 해가지고 음악에 맞춰 녹음을 해. 보내잖아 그러면 얘는 그것에 대한 답례로 선생님에게 보내는 글 해가지고 그 공부안하고 그 음악 틀어놓고 사연을 주저리주저리 엮어가지고 얘들을 그거 더 잘 만들잖아요. 그때는 뭣도 없고 옆에 녹음기 틀어놓고 그냥 이게 음악 이렇게 했는데 지금은 인터넷에 별에별것 다 있잖아. 그렇게 해가지고 카세트 테잎을 딱 보낸다고. 그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주고 받는 거예요. 커뮤니케이션이 돼야 돼요. 선생님이 그것을 아이들에게 먼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넌센스에요. 선생님들이 먼저 손을 뻐쳐야 돼요. 그러면 놀랍게 딱 한번 전도 나갔는데 그렇게 해가지고 학교 옆에서 전도해가지고 밥 한번 사주고 교회 한번 데려오고 딱 끝났다 그러면 개는 안 붙어있어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그러한 것들로 아까 얘기 한 것같이 심리적으로 이 사람에게 신세를 많이졌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부담스러운 행동들을 계속해서 그리고 이후에 편지를 보내주는데 누가 자기 교회에 한번 안 나왔다고 그렇게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 첫 번째 받아보면 이거는 자기 직업상 한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세 번만 받아보면 마음을 움직이는 거예요. 세 번쯤 보낸 다음 전화하면 100% 목소리가 틀려져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교회에 데리고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에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도와 목양이 분리가 안된다는 거예요. 그런 사연이 가지고 선생님하고 정신적인 연합을 이루어서 교회에 들어온 아이들은 목양이 잘 된다는 거예요. 이 아이가 비록 거듭나지 않았어도 통하는 거예요. 선생님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런데 아에 이런 접촉점이 없어요. 왔는데 아이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고 친구가 데려왔으니까 이름도 못 외우고 이러면서 가르치는 것이나 열심히 하고 이러면 아이 자체가 목양권에 들어오질 않는 거죠. 그래서 전도가 목양하고 떨어질 수가 없다는 거죠. 그렇게 해서 그렇게 선생님들이 예를 들면 유년부가 클라스가 몇 개가 되나? 스물 여섯 개 반에서 한주일에 한명씩만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러면 스물 여섯명이 더 출석을 하는 거예요. 교회학교 그 한명은 굉장히 사소한 거잖아요? 그런데 교회학교 전체적으로 출렁거리는 것이 보이는 거예요. 아이들이 새얼굴이 보이기 시작할 때에 아이들이 구태의연한 공동생활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거죠. 그때 아이들이 전도에 대한 동기도 부여받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간에 아이들을 전도에 참여시켜야 돼는 거죠. 그래서 아이들이 아이들을 끄는 거지 선생님이 아이들을 끌어서 여기에 데리고 올 수 없어요. 거의 불가능해요. 누가 요즘 어떤 아이들이 학교 앞에서 전화번호 불러주고 그런 것 다 가짜예요. 개네들이 자기네 집 전화번호를 왜 가르쳐주겠어요? 열 개 가르쳐주면 7명은 그냥 가짜에요. 귀찮아서 둘러대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들을 이 전도에 참여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아이들을 데려다가 전도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전도자체가 단순히 아이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동역화 되고 교회학교 전체 아이들이 자기가 영혼들의 이름을 걸고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놀랍게 응답해주셔서 변화가 일어나더라.
이런 것들을 영혼들이 만나고 보게 될때에 이때에 여기서 아주 뜨거운 간증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자기 친구를 기도하다가 신앙을 회복하는 아이들이 생겨나게 되고 전도하다가 다시 은혜로 돌아온 아이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아주 탄탄하게 다졌다가 여름수련회때에 탁 깨는 거예요. 여름수련회에 가는 것은 대개 아이들이 비장하게 오늘 벧엘로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야 되겠습니다 그러고 가는 아이들이 많지 않거든요. 친구들이 가자고 잘 꼬시면 따라간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계속 관계로 묶어놓으면 하나를 딱 수련회 가야지 하고 잡아 끌면 줄이 쫙 달려 가지고 얘 딸려서서 7명이 따르르 딸려오는 거예요. 안간다던 아이들이. 그렇게 해서 여름수련회로 가는 거죠. 여름수련회는 주일학교로 말하자면 성경학교죠. 성경학교에서 큰 은혜를 받고 그 다음에 가는 거죠. 대체로 보면 겨울에 기지개를 켜고 잘 준비해서 3-4월부터 새친구들이 모이면서 굉장히 많아요. 친구 초청도 해보고 새학기 되면 그 친구를 위해서 계속 기도하다가 한명씩 데려오게도 하고 그런 식으로 해서 발동을 계속 걸어서 4월, 5월, 6월달에 전도의 불을 확 붙여서 그걸 성경학교로 딱 끌고 가는 거죠. 그래서 그때에 영혼들을 가장 많이 모아서 그다음에 8월, 9월, 10월, 11월까지는 더 이상 전도는 잘 안되니까 계절적으로 이렇게 모은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잘 간수하는 거예요. 그리고 다시 1월, 2월, 3월 기지개 켜서 4월, 5월, 6월에 밀어부쳐서 그 다음에 7월에 활짝 터트리고 다시 이렇게 해가지고 그렇게 교회학교 농사를 지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어떤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의지와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지만 그게 가능해지는 거예요. 그리고 영혼을 전도해야겠다고 하는 절실한 마음만 있으면 그러면 그 영혼들은 전도되는 거예요.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같이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영혼들을 전도하고자 하는 그런 열심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우리 한번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