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강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1
녹취자 : 오희열
하나님을 위한 기도의 첫 번째 제목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해서 두 가지를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그 하나님의 이 땅에서의 영광은 가변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의 핵심적인 요소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두려움으로 떨거나 하나님의 완전하심 앞에서 이끌리는 사랑을 느끼는 가운데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면서 살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할 존재라는 것을 알고 거기에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주기도문의 첫 번째 기도제목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깊이 읽는 주기도문”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까지는 하나님 자신을 위한 기도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을 위한 두 번째 간구, “나라가 임하옵시며”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 가운데 “나라가 임하옵시며”라는 말은 원래 헬라어 성경에는 “그 나라가 임하게 하여 주시오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개념은 주기도문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너무 중요하고 이 기도제목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신약성경은 물론 구약성경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두 시간에 걸쳐서 “나라가 임하옵시며”라는 이 기도제목과 관련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 전편에 흐르고 있는 아주 중요한 사상이, “하나님 나라”의 사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성경책은 하나님이 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려는 위대한 경륜을 기록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을 먼저 성경적인 가르침에서 보자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선포하신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사상은 아주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시편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말로써 “당신의 나라”를 뜻하는 “마르쿠테카”()라는 표현이 히브리어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한 나라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영토, 국민, 주권입니다. 그 나라 백성이 사는 땅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이 남의 나라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나라를 통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의 역사에서는 일제강점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나라를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땅 덩어리가 어디로 가버리거나 국민이 어디로 사라져서 빈 땅이 된 것이 아니라 땅도 있고 국민도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를 잃어버렸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이해가 잘 됩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왕권입니다. 왕권이라는 것은 왕으로서 그 나라 백성들을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고 통치하고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이 신약으로 넘어오게 되는데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왕권은 구약 성경에서 세 가지와 관련되어서 등장합니다. 첫째는 하나님 자신과 관련해서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왕권을 가지고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을 다스리십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왕이 없었습니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직접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메시야와 관련해서 나타나는 왕권입니다. 메시야라는 인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때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을 통해서 그 나라를 다스리셨습니다. 처음에는 왕이 없었는데 나중에 백성들이 왕을 구하니까 왕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왕, 선지자, 제사장이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도록 나라를 질서로 통치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고, 제사장은 거룩한 죄를 지어서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게 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분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후에는 이 모든 세 왕권을 아우르는 궁극적인 인물이 나타날 텐데 그분이 바로 메시야입니다. 메시야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는 인간의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메시야가 그 평화와 권능과 영광을 가지고 다스리는 나라가 될 것이며 이 나라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의 권력에 의해서 진동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셋째로는 인자와 같은 이와 관련된 왕권입니다. 다니엘서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와서”, 그리고 그 마지막 구절에, “그의 권세는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다”(단 7:13-14)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인자 같은 이”라는 표현은 메시야이면서도 유대인이 생각하던 메시야보다는 훨씬 더 초월적인 존재, 하나님과 같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주의라고 하는 자기 나름대로의 종교사상 안에서 구약의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을 비틀어서 왜곡된 채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실 때 그 나라가 구약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어지는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이 세상의 정치적인 왕국으로 이해되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실 때 그들은 그것을 정치적인 나라로 오해했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서 왕 노릇 하실 정치적인 지도자로 생각하던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형편에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표 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신약시대에 와서 이것은 영적인 왕국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며 구약 이스라엘 나라의 육적인 껍질을 깨고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도입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실 때에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희미하게나마 이것을 이해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각 사람 하나하나를 회개하고 당신을 믿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가 그들의 마음속에 이루어져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소위 “시온주의”(Zionism)라는 운동을 봅니다. 이 시온주의라는 것은 유럽에 만연했던 반유대주의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 그리고 유대인들을 멸시하는 이러한 사상들이 나치, 독일을 비록해서 유럽에 널리 퍼지자 반유대주의에 대한 강력한 저항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멀리 보면 출애굽 이후 가나안 정복에서부터 제2성전시대 사이에 축적된 이스라엘 종교의 독특한 신정사상을 반영하지만 가깝게 보면 19세기 말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운동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결국은 1948년에 이 시온주의의 결실로 이스라엘이 독립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현대 국가가 성립하기 전에, 약 25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라를 잃어버린 채 살아갑니다. 이스라엘은 두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북 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에게 망하고, 남 왕국 유다의 경우는 586년에 바벨로니아에게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흐릅니다. 그렇게 보면 그 땅을 차지하고 있던 팔레스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2500년 전의 조상들이 이 땅을 소유했으니까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장이 황당하기 그지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시온주의에 입각해서 어떻게 하든지 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기를 원했고 결국은 역사적으로 성립이 되어서 이스라엘은 독립한 것입니다. 이런 것은 국제적으로 많은 지원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아무튼 이런 것들도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르쳐주신 그 가르침대로 이해하지 않고 있는 구약의 가르침을 유대주의로 곡해하여 내려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한 이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이 마태복은 21장에 나타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는데 “호산나”라는 것은 히브리말로 “제발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당부가 “다윗의 자손이여”와 함께 나옵니다. 이 “다윗의 자손”은 왕국과 관련된 것입니다. 다윗 왕국은 다윗의 자손에 의해서만 계승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왕국의 결정적인 개념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만드시려는 나라가 사람들이 다윗의 왕국으로 오해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다윗의 왕국은 강성한 국력, 무력, 군대, 이런 것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나라이지만 예수님이 이루시려고 했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각각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그 생명을 가지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 땅에 이루어가는 영적인 왕국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나라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주기도문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으신 이유는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시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의 떡과 물고기를 먹이시고 이적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그런 큰 권능을 로마를 향해 행하셔서 로마나라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다윗 왕국의 시절처럼 되돌려 놓으시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