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펴도 그곳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고,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이 의식을 가지고 살아 갈 때에 살아가는 이 삶속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들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그 사건들의 의미를 우리들이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그 속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자가 신령한 사람이 될 수록 자신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 속에서 주님의 뜻과 말씀이 무엇인지를 더 잘 깨닫게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언제나 같은 크기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어떤 때에는 우리에게 크게 말씀하시고, 어떤 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 여하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도 하고 안 들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주님께로부터 음성을 듣는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보면 이제 여러 나라의 연합군들이 조직을 해서 군대를 거느리고 이 소돔 땅을 공격을 합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는 조카 롯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니까 조카 롯이 그 연합군에게 붙잡혀서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집에서 기르던 병사들을 데리고 가서 전쟁을 해서 이제 조카 롯을 건집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이후에 아브라함은 깊은 걱정에 휩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해서 이기기는 했지만 상대방은 아무리 작은 나라들이라도 연합해서 군대를 조직하고 있는 큰 세력이고 자기는 한 가정을 거느린 사람으로서 집안의 무사들을 조금 거느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깊은 두려움 속에 있을 때에 바로 하나님이 그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면 ‘이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상 중에 나타나 가라사대’라고 나옵니다. ‘이일 후에’라고 되어 있는 것이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 일들’ 혹은 ‘이 사건들 후에’ 그러니까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시련과 사건들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간단한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상 중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실 그 때가 바로 아브라함이 어떤 상태였는지 우리가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왜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셔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셔도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들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오늘 이 성경에 보면 ‘이 일들 후에’라고 했습니다. 많은 일들을 겪은 것입니다. 좋은 일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겠습니까? 처음에는 조카 롯하고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이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갈라지자고 했더니 이제 롯이 먼저 좋은 쪽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자식처럼 생각했던 조카 롯과 갈라지고 그 다음에 조카 롯이 공격을 당해서 생명을 무릅쓰고 가서 전쟁을 해서 그를 건져오고 지금은 또 그 연합군에게 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 속에 쌓여있게 되었으니 일어난 모든 일이 다 시련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아브라함 마음의 상태는 어떠했을까요? 이제 하나님 아니면 아무 희망이 없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희망이 없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상을 보여주시고 그리고 그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 이니라 네가 너를 보호할 것이며 내가 너에게 더 많은 상을 주겠다”라고 하는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브라함의 행동과 태도도 올바른 것이었지만 마음의 상태가 얼마나 절실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이나 어려움, 환란이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어떤 마음으로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시험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아주 훌륭한 준비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브라함이 여기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면 만날수록 이 사람의 신앙이 아주 놀랍게 업그레이드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데 아주 중요한 첫 번째 발자국을 15장에서 뜬 것입니다. 12장에도 나오지만 15장, 17장 그 다음에 22장으로 계속 전개가 됩니다. 그런데 15장에 아주 중요한 전개가 되는 것입니다. 오죽 했으면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방패요’라고 했습니까? 아브라함이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나는 너의 방패요’ 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시련과 어려움을 만나는데 계속 투덜대면서 인생 재수 더럽구나, 옆에 있는 사람에게 너 때문에 재수 옴 붙었다, 내가 하필 이런 일에 꼬여서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 왜 하필이면 내가 이 교회야? 내가 왜 이 직장이야? 내가 하필 왜 이 가족이야? 내가 하필이면 왜 이 지체들이야? 하면서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을 원망하면 이렇게 하나님이 이상 중에 찿아 오셔서 말씀하실만한 마음의 상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 없으면 없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으면 있어서 하나님을 안 바라봅니다.
(예화) 한국의 사업가가 필리핀에서 공장을 차렸다고 합니다. 저도 한때 필리핀에 자주 다녔는데 그 나라는 필리핀뿐만이 아니라 열대지방이고 동남아 지방이니 덥지 않습니까? 더워서 그런 것들이 생겨 낳겠지만 정말 게으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가서 일을 시키면 답답해서 속이 탑니다. 선교사 한사람이 화장실을 짓는데 남자 화장실 하나, 여자 화장실 하나를 예쁘게 짓는 것도 아니고 벽돌 쌓아서 똥통 두개 묻고 문을 매달아 달고 위에 슬레트 달고 시멘트 발라서 만드는 것인데 네 사람이 삼일을 했는데 아직 못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아마 두 사람이 하루면 만들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시간이 걸립니까? 수세식 화장실도 아니고... 제가 막 웃었습니다. “어떻게 일을 하기에 그렇습니까?” 이만한 철판 위에 시멘트를 놓고 모래를 가져다 섞는 것인데 넷이 앉아서 한사람은 망보는 사람처럼 서 있고, 한 사람은 입으로 떠들고 그러니까 두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그 중에 한 사람이 한국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내가 이것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줄게! 이리와 봐! 이렇게 파고 여기에 물을 집어넣어라. 그 다음에 너희 넷이 여기에 차례대로 서라. 그리고 비비는데 한국에서는 둘이 한다. 툭 치면 물이 쏟아지는데, 쏟아지는 것이 흘러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비벼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 일을 할 때 손이 안 보인다.”라고 했더니 눈을 뚱그렇게 뜨면서 “진짜 손이 안보이냐?”해서 “안보이지 이 사람아! 얼마나 빠른데... 너 같이 이렇게 일하면 한국 가서 밥도 못 먹는다.” 지금은 일을 잘 안하지만 옛날 70년대에는 정말 무섭게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한국 사람이 가서 사업을 했는데 한 아이가 전혀 필리핀 아이가 아닙니다. 얼마나 열심인지 너무 기특해서 두 달 일을 했을 때 이 아이를 불러서 월급날 봉급을 주고 한 달 치를 더 주었습니다. “넌 정말 필리핀 사람 같지 않다. 넌 정말 착하다 잘했다.” 하고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월급 받고 일주일을 무단결근한 것입니다. 그 다음날부터 안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다음날 더 일찍 나와서 더 열심히 청소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투덜투덜 왔습니다. “야! 너 어떻게 인간이 그렀냐? 너 한 달 치 월급 주면 되는데 네가 하도 열심히 일해서 한 달 치를 더 주었는데 너 왜 일주일 동안 결근했냐?” “사장님! 돈 받았는데 써야죠!” 그러니까 돈 쓰느라고 일주일동안 안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곤궁하고 어려우면 없어서, 근심이 많아서 하나님을 못 의지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환경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는 사람은 은혜가 있고 신앙이 있으면 없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있는 사람에게 은혜가 있으면 있기 때문에 감사해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만나기 전에 성경에 상세한 묘사가 안 나오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아브라함에게 털어버릴 마음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련과 어려움이 일어나게 놓아두신 것입니다. 거기에서 마음이 가난해질 대로 가난해지고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거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전쟁을 하면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방패가 없으면 죽는 것입니다. 방패 뒤에 자신의 몸을 철저하게 감추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환란이나 어려움, 시련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서 놀랍게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는 아주 훌륭한 준비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더 깊이 침체에 빠뜨리는 그런 재난이 될 수도 있은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 그곳에서 여러분들은 소리칩니다. 너무 환란이 많고 어려움이 많아서 너무 괴롭다. 그리고 너무너무 힘들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주님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마음이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일들이 일어 날 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의 어떤 것들을 하나님이 털어 버리기 위해서 이런 어려움들을 주셨을까? 이러면서 하나님을 찾으면 많은 물결 속에서 하나님밖에는 바라 볼 분이 없다고 하는 하나님을 향하여 고정된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간증을 보면 평탄하고 모든 것이 행복할 때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보다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속에서 인간의 마음은 이 욕망을 떨어 버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에게 닥친 많은 어려움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마지막에 결국은 이렇게 여러분들을 바꾸어 놓아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많은 일들이 여러분들에게 일어 날 때에 그 속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의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