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장 사랑 안에서
녹취자 : 강정아
1.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교회의 확장은 공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세계를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재창조된 세상은 사랑의 사회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있는 동안에만 세상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세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세상이 아니라 갈등이 존재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결국 구속은 완성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회복되며 모든 인류가 모여서 사는 사랑의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가 선교적으로 계속 확장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주신 이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확장 될 때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서로를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창조의 목적과 재창조의 목적은 똑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창조하셨습니까? “흙으로 사람을 빚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주 하나님” 육체는 흙으로 창조하시고 영혼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심으로 사람을 만드셨는데 이 사람이 처음 창조될 때에 사랑의 사람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고 모든 자연 세계의 피조물들을 선의로 대하는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답고 선한 세계가 인간의 노동으로 인해 더 아름다워지고 그 선한 상태가 증가할 수 도록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을, 아름다움을, 현실적으로 주시고 또 잠재적으로 주셔서 노동을 더 할 때 거기에서 아름다움과 선함이 증진되어 나타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이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셨더라면 되었을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피조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고도의 정신력을 가져야했습니다. 지성과 감성, 의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인간의 영혼 안에 주셨습니다. 영혼의 기능은 지성, 감성, 의지 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인간은 아주 대단한 능력과 존엄한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인간의 사람됨의 깊이는 사람을 어떻게 여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인간하고 사람하고 다를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인간과 사람은 현저히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인간은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회를 전제로 합니다. 사회를 통해서 사람을 보는 게 인간인 것입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벌써 사회에 속해 있는 한 구성요소로서의 인간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사람에 대한 아주 객관적인 성찰입니다. 이에 비해서 사람이라는 단어는 사회와도 관련이 되어 있긴 하지만 사회와는 상관이 없이 한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을 통해서 사회를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표현이 사회를 통해 본 사람이라면, 사람은 자신을 통해 본 인간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라는 단어를 번역할 수 있는 언어는 없습니다.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에도 없는 아주 독특한 언어입니다. 인간이라는 단어는 번역할 수 있지만 사람이라는 독특한 뉘앙스는 너무나 탁월해서 번역할 수 없습니다.
3. 신자는 사랑 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사람의 한 인간성의 깊이는 그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이나 미움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설령 나를 해친 사람이라 할지도 그를 여전히 사랑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에게 어떠한 악을 행한 사람이라도 그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움과 복수, 그리고 그의 비존재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재창조도 똑같이 비록 인간이 타락을 했지만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다시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때문에 새로운 인간이 되는데 그 인간이 바로 사랑을 가진 인간입니다. 창조의 목적과 재창조의 목적은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관되게 당신의 창조의 목적을 창조를 통해, 구속을 통해 완성해 가십니다.
교인들이 계속 늘어나고, 건물이 커지지만 사랑의 확장이 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성장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괴질’이라고 얘기합니다. 몸이 부어서 커지는 것, 즉 질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숫자를 확장시키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불신자가 회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던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그 사랑을 하게 된 사람이 그 사랑을 계속해서 보존하고 증진하는 것이 사랑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변질하는 여러분 자신을 보면 그 사랑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인들이 교회가 이사도 오기 전에 50가정이 이사를 왔습니다. 불신자 부동산에서 우리 교역자들에게 복비 벌게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배를 박스로 들고 와서 말할 정도였습니다. 교회는 1년 후에 이사를 왔습니다. 믿음으로 1년 일찍 이사를 온 사람이 교회에서 사당동으로 출퇴근 하면서 너무 좋아했습니다. 새벽 기도를 너무 드리고 싶어서 방 3개짜리를 정리해서 2개짜리를 얻어서 이사를 왔는데 이사 오고 나서 너무 행복해하더니 언젠가부터 새벽기도를 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인간 심리입니다. 의정부 등 먼 곳에서 새벽기도 너무 나오고 싶어서 이사를 온 사람들이 이사를 오고나면 새벽기도를 안 나옵니다.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사랑을 확장하는 것도 어렵지만 자기 안에서 사랑을 보존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결국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게 해서 큰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3-1. 신자의 사랑이 정화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며, 정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랑이 정화 된다.”라고 하는 것은 사랑의 방향을 올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빗나간 사랑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단입니다. 이단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 추종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추종합니다. 선교지에 나가보면 정통교회의 선교의 열심은 이단의 열심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아예 전세기를 띄워서 그 전세기를 타고 선교지에 와서 자기돈 다 들여서 온몸을 불사르며 선교합니다. 그걸 보면 사랑의 방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랑이 정화된다는 것은 사랑의 방향이 올바르게 향한 것입니다. 사랑의 품질을 순수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관계를 가지고 서로를 깊이 사랑하면 이것이 고품질의 사랑입니다.
반면 타락은 사랑의 방향이 망가진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사랑으로 가거나 자기 사랑 둘 중 하나로 가게 되는데 그 중간에 있는 것이 싫증입니다. 영혼의 싫증을 느끼게 되면 그것은 육체 속에서 게으름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창조된 영혼의 기능이 부패해버리는데 그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사랑할 수 없는 노예적인 의지와 병행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자유로운데 자유롭지 않는 것, 중독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람은 마리화나에 속박 당합니다.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도록 사랑의 방향이 망가진 것입니다.
중생하고 은혜의 역사가 있고 회개와 자기 깨어짐을 통해서 자기 사랑을 버리고 여기에 이끌리는 사랑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입니다.
3-2. 신자의 사랑의 풍성함이란 무엇이며, 풍성함으로 누리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사랑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어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졌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세상 것들에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강력하게 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기뻐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즉, 사랑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기도하기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지식과 사랑은 양립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총명이 계속 부어질 때 사랑의 불꽃이 계속 타오르게 됩니다. 지순의 사랑이 회복되면 기쁨으로 삶을 드리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며 쾌락, 이생의 자랑, 안목의 자랑, 육신의 정욕 등을 다 버리게 됩니다.
4. 신자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사랑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리를 깨닫기에 가장 좋은 환경입니다. 순종하는 생활과 죄를 죽이는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이 마음 안에서 자라기에 최고의 환경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있고 거기에 자신의 행함뿐만 아니라 마음 까지도 여기에 합치시키는 게 그게 진실입니다. 사랑은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 만족시키지 않고 거기에 자신의 마음과 삶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① 진정한 의미의 용서란 무엇이며, 그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해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복수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다시 사랑의 교제를 시작하겠다는 결단까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했던 말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 들이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니이다” 하신 말씀이 닮아 있습니다. 즉, 사랑은 용서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도로부터 죄 용서를 받고 사랑하게 된 사람이 끊임없는 용서를 통해서 망가진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고 잃어버린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다.
② 신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은 나보다 없거나 연약한 사람을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것들로 그들을 부요케 해서 같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치로 나타나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상대방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과 동일시하게 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섬김은 번성의 빛 아래서 이루어집니다. 신자들의 섬김은 일치를 통해 나타나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자연스러운 열매이고 유한한 자원을 함께 나누며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세우게 하는 것이 신자들의 섬김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자원이 되어서 사람들을 용서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용서, 관계 회복, 나눔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넉넉히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5. 신자가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새 계명은 옛 계명과 대조됩니다.’ 옛 계명이 십계명 이었다면 새 계명은 십계명이라는 육체에 영혼을 불어넣은 것입니다. 사랑의 원리 속에서 그것을 지켜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사랑의 원리를 져버리고 율법을 지키니까 지키지 못한 사람은 무시하고 지킨 자신은 오만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주셔서 그 사랑으로 상처 난 교회들을 치료하고 마지막엔 이 세계를 완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의 한 지체로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