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호 6:1-2)
가끔 넘어갈 수 없고 넘어올 수도 없는 휴전선을 목숨을 걸고 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저히 그 땅에 살 수 없어서 휴전선을 넘어온 사람들을 가리켜서 귀순용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때로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 귀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오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정말탁월하고 특별하게 깨어있지 않는 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점차 하나님을 떠나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점자점차 하나님을 떠나가는데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을 곁을 떠나가는 것입니다. 몸이 교회에 몸조차도 교회에 나오지 않고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은 이미 그가 오래전에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있는 것이 오랜 후에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오랜 동안 준비된 마음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어느 순간에 자기가 진정 하나님 곁에 있는가,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도 문제가 없는가 하는 것들을 깊이 성찰을 하고 그리고는 한번 사선을 넘고 휴전선을 넘는 각오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기 변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난 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큰일 일어날 때면 꼭 기독교인들이 개입되어있어서 이번에는 누가 꼈나? 아니나 다를까 그 회장이 영락교회 장로님이라고 합니다. 어저께 교수들이앉아서 이야기하는데 어느 교수가 이야기합니다. 한 달 전에 당회장목사님이 그 장로님을 불러서 그렇게 신앙생활하면 안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신앙생활 똑바로 하십시오. 경고가 나고 나서 한 달도 안 된 후에 저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위기를 만난 다음에 이게 이 길이 아니었구나, 깨달을 때에는 깨달아서는 이제 하나님 앞에 돌이킨 삶을 살 수 있게 될지는 모르지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있습니다. 이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누가 그것을 회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울며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미 일어난 사건들은 돌이킬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는 여호와께로 귀순하라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라 성경이 외칠 때 그것은 최대한 사랑의 표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당신과 빗나간 관계 속에서도 문제없이 살아가는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보고 어떻게 경고하시는지를 깨닫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의 영혼을 자기의 곁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고난가운데 두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두십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시편 기자는 말했습니다. 인생들이 경험하는 그 모든 곤고함과 모든 고통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고 그 지존자의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였기 때문에 당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위로나 사람의 칭찬이나 사람의 인정이 아닙니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해 주시고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삶이 하나님 그분의 원하시는 삶의 길에 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호세아 선지자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예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위대한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권력은 왕의 손 하나에 있었고 나라는 일사분란하게 왕의 통치하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국방은 튼튼해졌고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유한나라가 되면 될수록 사람들의 마음도 동일하게 부유하게 갔습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호세아 선지자는 오늘 예언하기를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와 같으리라..하나님이 당신이 택한 유다와 이스라엘을 향하여 사자와 같이 되고 젊은 사자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싸우는 젊은 사자가 아니라 마치 양을 탈취하고 그리고 짐승을 삼키기 위하여 목장에 도전해오는 사자와 같이 될 것 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말이 가당하기나 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하나님과 함께 그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 나타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자였고 유다의 공격자였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왜 사랑이신 하나님이 유다를 택하시고 에브라임을 도우셔야 할 하나님이 그들에게 대적자가 되고 공격자가 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이키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또 선지자는 말합니다. 저희가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 고난의 때는 주님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속에 고통이 있고 그리고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고통이 있고 고난이 있는 그때에 고통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과의 관계를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호세아 선지자는 후일에 유다가 모두 망하고 그리고 북 왕국 이스라엘도 망한 다음에 그들이 후에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오늘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늘 말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당신과의 관계를 돌이키기 위하여 치시기도 하시고 찢으시기도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사자가 양을 공격하기 위하여 달려 들어와서 발로 양들을 치고 그리고 이빨로그들을 찢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또 우리를 치셨으나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복된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하나님의 능력을 내 인생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그 모든 부요한 것들을 나의 것으로 누리면서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는 하나님에게 있는 능력이나 하나님이가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때가 많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한순간도 우리 자신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가장 커다란 소원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들로써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변화되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존재자체를 기뻐하시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함으로 그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나로 말미암아 기쁘게 해드릴 것보다도 관계의 문제는 접어두고 자가기 원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심해지고나면 결국은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일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한창 잘나가면 자신의 힘으로 능히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며 왜 내가 많은 날들을 그렇게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내 능력을 그렇게 과소평가하면서 살아왔는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인생이라는 것이 나 혼자 힘으로도 제법 살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기를 위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신앙은 껍질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고난 가운데 두십니다. 그러나 고난 가운데 두셔도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도록 버려두십니다.
하나님이 탄탄하게 지은 집을 갑자기 벼락을 떨어뜨려서 무너뜨리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자신들의 잘못한 것들, 우리가 뿌린 것들, 하나님을 거스르면서 뿌린 죄의 열매들을 우리가 만약에 다 거두도록 하나님께서 거두도록 내버려 두신다면 그러면은 아마 우리는 감당할 수없는 심판을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시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죄로 말미암아 당할 심판들을 감하십니다. 그리고 끈질긴 인내로써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를 책망하고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다.
부모들도 다 선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악이 맺히게 되면 아이가 잘못할 때라면 자기 분풀이로 때리면 큰 일 납니다. 마음과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때리는 것과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아이를 때릴 때 그 때리는 것 자체에 쾌감을 느끼거나 만족을 느끼는 부모가 있다면 정신병자입니다. 때리는 것은 목표가 무엇이냐면 어떻게 하면 이아이가 정말 우리의 자녀다운 아이가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다루셨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풍부하고 부유한 시대를 누리면서 이렇게 떵떵거리고 많은 부와 나날이 부유해져 가는 국력을 자랑해 가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돈을 의지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의지하고 나라의 힘을 의지하면서 평안하다하는 시대를 살았지만 오늘 눈물을 흘리며 호세아 선지자가 너희가 언젠가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부르짖을 때가 올 것이 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가 올 것이 다 예언이 있고 나서 200년도 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앗수르의 손에 붙이셔서 쓸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우리자신들이 변화해서 하나님의 관계로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매일 매일 살아가는 이 신앙생활로는 충분하지 않고 어느 한 순간에 자신의 신앙생활을 총 점검하고 그리고 자신의 삶을 여호와께로 귀순하고자하는 그러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매일 매일 드리는 기도도 소중하고 매주 매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도 귀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신앙생활 가지고는 자가가 어느 지점에 와 있고 그리고 어떻게 자신이 잘못되어 가는 것에 대하여 깨닫기가 충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고난을 당하기 전에 오히려 고난을 당한 것과 같은 마음과 겸비해진 태도로 하나님 아버지여 이시간도 내 모습을 보여 주시고 그리고 오늘날 내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을 통해서 무엇을 경고하고 무엇을 깨닫게 하기 위함 이옵나이까? 하나님 아버지 내가 깨닫고 당신께로 돌아가고 당신과의 관계 속에서 살기를 소원하오니 나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을 향하여 주목하는 일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을 향하여 주목하는 이런 일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작은 경고는 우리에게 일어날 더 큰 일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을 크게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이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는 자들은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새롭게 회복시키시고 그리고 그들에게 새로운 능력을 주셔서 자기가살아가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선지자는 말합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죄를 짓고 하나님의 관계를 벗어나서 지존자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그렇게 너희 마음에 원하는 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를 거절하고 나와의 관계에서 이탈된다면 나는 너희를 찢고 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손을 들어라 우리를 치시는 손은 바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그 손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당신 앞에 나오는 죄인들을 받아 주시는 손입니다. 세상에서 고통하며 참회하는 자의 눈물을 씻기시는 그 손입니다. 아파하는 자들을 치료하시고 위기 가운데 벗어날 희망이 없는 자들에게 구원의 밧줄을 던져 주시는 그 손입니다. 그 손이 때로는 아들을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우리들을 치시기도 하고 찢으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 살아갈 때 고통을 받게 되고 고통 속에서 아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그 죄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아파할 때 주님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세월을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것을 인하여 아파하시고 고통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아들을 내어 주신 손으로 지금도 우리의 고통으로 흘리는 눈물을 씻어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그 손으로 우리를 찢으시고 우리를 치시는 이유는 우리를 단지 징계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고치시고 살리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당신 품에 다시 돌리시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로 귀순시키기 위하여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눈물을 머금으면서 찢으시고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 가운데 있을 그 때에 우리가 바로 깨닫기만 하면 크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그 속에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축복의 장소로 변화되는 은혜를 경험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는 유익이라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당한 후에는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렇게나 살아도 우리를 내버려두시고 계속헤서 자기 힘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짐승처럼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간섭하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주워 온 자식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주워 온 자식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구원과 생명을 위하여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기까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때로 찢고 때로 치시나 그러나 우리를 찢고 때린 그 손으로 우리를 도로 낫게 해주시고 우리를 싸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료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고치시는 은혜를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떼어질 수 없는 관계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입니다. 범사에 당신의 이름을 의지하며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만들기 위하셔서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북한 땅을 넘어 남쪽으로 넘어 귀순한 사람들의 성공담을 듣습니다. 거기에는 언제나 생명을 건 각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죽음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로 귀순하는 일에도 동일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고자 할 때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저희의 행위가 저희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게 하는 까닭이라 수시로 하나님께로 귀순하고자 하여도 그렇게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요인들이 우리 주위에 또 우리 안에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요인과 일일이 타협하게 되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해보입니다. 때로는 사람이 그렇게 만들고 환경이 그렇게 만들고 여전이 그렇게 만들어서 나를 거기 묶어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변명에 동의해 준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그렇게 우리가 당신께 완전히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심지어는 하늘에 두고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품안에 우리를 안으시기 전에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고계십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싸매어 주실 것이다. 귀순이 어렵지만 한번 귀순한 사람에게는 직장과 생활의 터전이 보장됩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께로 돌아오기 전에는 우리를 찢으시며 우리를 향해 진노하셨으나 이제는 그 찢으시던 손으로 눈물을 흘리며 우리를 낫게 해주실 것이고 분노 가운데 치셨으나 이제는 긍휼가운데 우리를 낫게 해주실 것이며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삶을 고치고 치료하실 것이다.
이 모든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아오라고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어떻게 돌아가야 하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주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돌이키고 마음의 가죽을 베고 너는 여호와께로 속하라 네 마음에 나만이 생각나게 하고 네 인생에 나만이 너의 목표가 되게 하고 네 사랑이 오직 나만이 되게 하고 그리고 너는 나와 더불어 살자 주님이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테이프 뒷면으로 넘어감)
하나님께서 유다와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시기 전까지 그 한 번의 분노 이전에 수만 번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한번진노하사 그들을 심판하시기 전까지 거기는 끊임없는 부름과 끊임없는 회개의 초대와 진노의 음성으로 그들을 책망하시기 전에 애타는 음성으로 그들을 부르시는 사랑의 초대가 수 없이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회개의 초대장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방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흔히 내가 이렇게 노력을 한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다시 살리실 것인가 나를 다시 예전과 같이 은혜를 베푸실 것인가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벗어나서 죄 가운데 굳어진 삶을 산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가장 큰 걸림돌은 그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이 나를 받으실까하는 거절감입니다. 일종의 거절감. 하나님께로 내가 거절 받고 있다는 거절감 그 속에서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선지자는 간단하게 말합니다.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라 이틀과 삼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가까운 시일 내에 그런 뜻입니다. 곧 그런 뜻입니다.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삼일 후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라 엎드린 자를 일으키시며 죽은 자와 같은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시며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서 누워있는 자와 같은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삶을 일으켜서 하나님을 위하여 다시금 살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른 뼈와 같은 자들도 하나님께서 살리실 수 있고 그리고 마른 뼈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도 새롭게 살리실 수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 앞에 살게 하는 것이 목표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 아니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를 살리시며 우리를 일으키시며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 앞에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 때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지나는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사람들이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이 그런 생을 살며 인생을 허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눈을 열어 주셔서 인생이 무엇인지를 보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그 길속에서 참다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과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닫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또 그렇게 환난이 많고 고통이 많고 그렇게 시련이 많은 세상을 실제로 이겨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그렇게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를 고치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들이 이와 같이 당신에게로 귀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깊히 자복하고 그리고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점검하며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새로운 회복을 위하여 이 고통 가운데 주님의 경고의 음성을 들으며 신앙생활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각오를 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사람들을 오늘이 시간에도 찾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언제까지 우리들이 우리를 즐겁게 하고 우리를 인정해 주는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그렇게 마취제와 같은 그런 것들을 통해서 매일 매일 고통을 잊는 그런 식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하나님께로 귀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 분 안에 온갖 풍성한 것들을 누리시며 그 분 앞에서 사시는 그런 기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시간같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