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신자와 성화(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녹취자: 임지연
성도 여러분 진도가 많이 나갔죠? 지금 오늘 9장 신자와 성화를 공부할 차례입니다. 사실은 구원받은 신자에게 성화는 가장 커다란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화 되는 것만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성화가 무엇인지 오늘 우리 같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경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과거의 구원은 중생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영접하고 이제는 다시는 정죄함이 없도록 구원받은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중생은 하나님을 향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것. 이것을 중생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우리 지난 시간에 배운 것처럼 이렇게 살아난 것을 최초로 의식하게 되는 게 이게 회심입니다.
회심 그러면 이제 그다음에 성화는 뭐냐 하면은, 성화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구원이 크게 두 종류로 제시가 되는데 하나는 뭐냐면 이미 받은 구원 있고, 그다음에 이것은 이루어가야 할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에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는다라고 하는 것은 과거에 이런 구원은 즉각적인 구원이고, 이것은 점진적인 구원입니다. 이건 완성적인 구원입니다.
그래서 이제 끊임없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미 받은 구원을 가진 사람일 수가 없다. 이게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중생하고 회심한 사람은 현재적으로 성화를 이루어 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 빌립보서 2장 12절에“더욱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마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게 구원의 성화적 측면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영화는 미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썩을 몸을 변화시켜서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살리신 그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그래서 우리의 몸이 완전하게 변화가 된다는 것 이런 상태에서 우리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자 그다음 그러면 이제 성화가 왜 필요할까요? 우리에게는 이제 크게 두 가지 죄가 있죠. 원죄와 그다음에 자범죄가 있습니다. 혹은 실행죄라고도 말합니다. 이거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고. 이건 후천적으로 자기가 지은 죄입니다.
그런데 이제 성화의 필요성은 뭐냐 하면은 죄를 지었으면 죄에 대한 죄책이 따르게 됩니다. 이건 뭐냐 하면, 사법적 책임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거는 칭의를 통해서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즉각적인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제 죄책과 함께 또 우리 안에는 오염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염은 더럽게 타락한 성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거는 뭐냐 하면, 사법적 책임이라기보다는 이거는 실질적 상태입니다. 실질적인 상태가 오염돼 있습니다. 이것은 이제 성화를 통해서 이제 깨끗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이제 점진적인 구원을 통해서 깨끗해져 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이제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여러분들이 차를 몰고 어디론가 열심히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너무 인제 시간이 늦어서 좀 밟았습니다. 근데 과속으로 오다가 그만 어느 집 담장을 들이받았습니다. 그래서 담장이 우지직하고 나무로 된 담장이긴 하지만 부서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거 어떡하지 그러고 서 있는데, 주인이 이게 뭔 일인가 하고 달려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까,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입니다. 그래서 이 집사님 이게 웬일이세요? 제가 교회 갈 시간이 돼서 빨리 가다가 담장을 받았습니다. 이게 나무 담장인데 이게 뿌개져 버렸으니 이거 어떡하죠? 그러니까 주인이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 남편이 잘 고칠 거예요. 걱정하지 마시고, 얼른 늦기 전에 빨리 가세요. 정말 제가 고쳐드려야 되는 거 아닐까요? 아이 글쎄 걱정하지 마시고, 가세요. 그래서 그냥 가게 됐습니다. 예, 그것으로서 이제 담장을 부서뜨린 죄책은 사법적인 책임은 면제가 된 것입니다. 왜? 주인이 봐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차가 찌그러진 게 있습니다. 이거는 자기가 해결을 해야 될 문제입니다. 그렇죠. 그것이 말하자면, 오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제 자기 힘으로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성화시켜 주심으로써 해결이 되는 거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죄책의 문제는 칭의로 해결이 되고, 그다음에 이제 남아 있는 오염은 그래서 신자 안에도 죄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자는 그런 질문을 또 합니다.
왜 그러면 한 번에 칭의 될 때 그때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버려 주셔서 어떤 죄의 영향도 없게끔 그렇게 해주셨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왜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죄에서 완전히 해결을 안 해주시고 죄를 남겨두셨을까? 이제 그런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죄가 남아 있음으로써 신기하게 죄가 남아 있기 때문에 오히려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분투하게 되고, 또 그게 자기 힘으로 잘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신기하게 하나님이 죄는 나쁜 것이지만 나쁜 것을 사용하셔서 더 우리가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도록 매 순간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죠.
자 그다음에, 그러면 성화가 무엇인가? 그림에 보면 성부 하나님이 계시고, 성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 다음에 성령님이 구원을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적용하실 때 우리가 구원받은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금 그런 상태입니다. 그래서 성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 한번 같이 정의를 이런 것들은 꼭 외우고 계셔야 합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성화란 성령께서 구원받은 죄인을 죄의 부패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그의 전 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롭고 계속적인 작용이다. 그래서 눈길을 끄는 게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죄인을 그러니까 성화란 구원받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두 번째 죄의 부패가 그들에게 남아 있다. 그런데 그걸 깨끗하게 하시고 그의 전 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여 선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롭고 계속적인 작용이다.
자 성화와 거룩이라고 그러는데 이건 좀 틀렸고요. 거룩함이라고 그래야 맞습니다. 이 거룩은 형용사입니다. “거룩함”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거룩함의 본질이 무엇이냐? 그래서 뭐냐 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존재적인 초월성입니다.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렇게 모든 만물이 있습니다. 여기 인간을 비롯해서 개, 돼지 같은 짐승도 있을 수 있고, 그다음에 산도 있을 수 있고, 그다음에 나무도 있을 수 있고, 벌레들도 있을 수 있고, 별난 것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존재를 하나님은 이 존재와 비교할 수 없이 초월해 계신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아무리 많이 합쳐도 하나님과 같아질 수는 없다. 이게 하나님의 존재적인 초월성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이제 여기에서 하나님의 일 이것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얼마나 존재해 있어서 초월하신 분인가 하는 것을 깨달을 때 그 때 존재의 유한함과 미약함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이 유한하고 미약하다는 것을 깊이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어떤 마음이 생기냐 하면 아주 하나님을 향한 겸비함과 그다음에 의존의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게 또 하나는 뭐냐면 도덕적 완전성입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에게도 여기 인간이 있는데, 모두 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얼마나 의로우신 분인지를 깨닫고 나면 사실은 우리의 의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랬더니, 무의미하거나 가치가 없다.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비교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그것에 비하여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죄인인가 하는 걸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겸비와 의존의 마음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성화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달은 것만큼 자신의 불결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존재적인 초월성’ 앞에서 자기가 미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덕적인 완전성’ 앞에서 자신이 너무 연약한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성화의 본질의 네 가지입니다. 첫째, 성화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역사입니다. 자기 자신이 갈고 닦는 수양과는 다릅니다. 성화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역사입니다. 둘째, 성화는 옛사람을 죽이는 것과 새사람을 살게 하는 것 혹은 살리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근데 옛사람이라는 건 뭐냐 하면 하나님 없이 살아가던 옛 본성입니다. 새사람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새 본성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한 사람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투쟁합니다. 그래서 옛사람을 죽이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은 죄 죽임이라고 말하고 새사람을 살리는 것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은혜 살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옛사람, 옛 본성 혹은 죄를 죽이는 것만큼 새 본성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두 가지를 잘 해야 되는데, 옛사람을 죽이는 것. 새사람을 살리는 것. 그래서 은혜를 받고 계속 은혜 안에 살면서 믿음으로 일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화는 인간의 전 인격에 영향을 줍니다. 성화는 인간의 전인격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까 감정이나 혹은 지성이나 의지 어느 한 군데만 주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영향을 주어서 결국 인간의 모든 전 본성이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넷째는 성화는 하나님이 단독으로 사역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함께 협력하는 사역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중생시키실 때는 혼자 하시지만, 인간을 회심하게 하실 때에는 인간의 협력을 요하시고, 또 성화도 성령이 주도적으로 사역하시지만 순종하는 인간의 의지를 사용하셔서 성화되게 하신다. 그래서 한 사람이 예수를 오래 믿고도 옛사람이 여전히 살아 있고 혈기가 살아 있어서 새 본성이 죽은 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 그만큼 협력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고 남은 부분은 다음 시간에 나누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한 주도 말씀과 함께 기도 생활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