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도, 참 신앙의 뿌리임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9)
녹취자: 송미옥
이 설교는 제가 1998년도에 했던 설교입니다. 정확하게 21년 전에 한 설교인데, 지하실 교회 있을 때의 열렬했던 설교가 생각이 났습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결국은 우리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1. 본문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어떠한 고백과도 같다고 말합니까?
제일 먼저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은 것은 어떤 고백과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기도하지 않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없이 살 수 있습니다.’ 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사무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무엘상 12장 23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지자 사무엘은 결국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기도하는 것을 쉬는 것은 죄라고 규정함으로써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할 것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존하는 마음이 될 때 신자는 기도가 가장 풍부해지는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려고 할 때 기도는 점점 줄어들어서 마지막에는 할 것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기도의 샘을 우리들이 막지 않고 풍부하게 솟아나도록 유지하는 것이 모든 세상과 자기 자신을 이기면서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들이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믿음의 선조들과 바울은 시련과 고난의 때에 무엇을 통해 힘을 얻었습니까? 또한 우리의 신앙은 무엇을 통해 성장하였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코 꽃길만 걷도록 놓아두시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우리를 고생시키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시련과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최고의 표현이 바로 기도입니다.
신앙이 시작될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이 점점 자란다고 하는 것은 기도가 점점 강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은 고난을 통과할 때 그 고난을 통과하면서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은 결국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충만할 때 그 때 고난을 겪으면서도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편안하고, 좋은 환경에 거하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 공통된 바램입니다. 육신의 욕구가 있으니까 쾌적하고, 편안하고, 고통 받지 않는 환경을 원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집요하게 의미를 묻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고통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도달할 수 없는 신앙을 가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미국에 가서 회의를 하면서 목회자들을 여러 명 만났는데,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속에서 기도의 큰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신앙이 없고 결정적으로 인생이 어려울 때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시련의 물결에 그냥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고난의 때에 우리를 연단하시는데 기도를 통하지 않고, 누구도 그 연단을 통과 할 수 없습니다.
3. 시련은 우리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신 바는 무엇입니까?
아주 순결한 신앙을 이미 가지고 있고, 그 의를 위해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시련을 통해서 그들에게 때로는 순교의 기회를 주시고, 때로는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 불타오르게 합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에게 시련은 그들을 더 순결하게 만들고, 멀리 떠났던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죄를 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시련 그 자체가 우리를 정화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시련 그 자체가 우리를 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 그 의미를 찾고,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과 영혼에 정화가 일어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29절에서 예수님이 귀신 들린 자를 쫒아 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제자들이 쫒아내 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못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말씀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로가 나갈 수 없느니라’ 귀신도 등급이 있어서 제자들이 내어쫒을 수 없는 귀신들이었는데, 예수님은 이 깊은 기도의 능력 속에서 능히 이것들을 쫒아낼 수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를 미워하거나 죄에 대해서 우리에게 보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두려움 가운데 홀로 있지 말고, 당신께 돌아오도록 찾으시는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시련을 만날 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신이 욥의 화신인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중에 하나님이 인정하실 일이고, 우선 깊은 시련 속에서 고통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이 나의 어떤 부분을 깨끗하게 하시려고, 이런 시련을 주실까?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더 큰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을 기억해야하는 것입니다.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거나 하나님이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 복수하시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그 시련을 통해서라도 당신에게 돌아오기를 부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4. 이사야는 우리에게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부르짖다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며,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부르짖다’ 라고 하는 것은 소리를 내어서 큰소리로 간절히 요청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외관으로 소리를 지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부터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는 ‘어려움을 크게 당한 사람들이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절실하게 의지하는 사람들만이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렇게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외의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가 완벽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그렇게 간절히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부르짖는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버릴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너무 보고 싶어 하면 마음이 아프도록 보고 싶지 않습니까? 보고 싶어서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은 경우는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헤어져있어도 그 자체가 너무 편하고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립지 않습니다. 왜 그립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 이외에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르짖을 수 있는 것입니다. 존 오웬 목사님은 그 당시 청교도들이 열광주의에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막 소리지르며 광신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를 인정했습니다. 자신도 간절히 부르짖지 않을 수 없을 때 그때는 소리를 내어 부르짖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 엄격한 청교도가.. 그것은 무엇이냐하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 진실하고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그 때에 하나님을 절실하게 의지하면서 부르짖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르짖을 때에 히브리어로 ‘테샤바’라고 하는 것은 ‘큰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2인칭 접두어이고, ‘샤바’는 동사입니다. 이것은 절박함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해결해 주실 수 없으며, 나는 하나님만을 절실하게 의지한다.‘ 라는 표현입니다. 그 속에서 부르짖는 것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묘사한 바와 같이 소리로는 조용하나 정으로는 부르짖나이다.’라고 한 것 처럼 외면적으로 소리를 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나님 앞으로 기울어져서 쏟아지는 그런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5. 이사야가 “네가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보면 ‘네가, 네가’ 가 반복됩니다.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내가 여기있다 하리라. 이것은 짝을 이루는 것입니다. A, B, C, A', B', C'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지만, 하나님이 간절히 찾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는 것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일의 모본이 되셨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셨지만 항상 기도하심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의 모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기도가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위해 가족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만으로 남이 해주는 기도만으로 우리는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할 몫이 남이 우리를 위해 많이 기도해 준다고 그것이 대체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남이 많이 기도해주면 해줄수록 우리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살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연세가 들면 돌아가시는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는 폐렴 아니면 폐에 문제가 생겨서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호흡자체가 스스로 하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가사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6. 견고한 신앙생활은 무엇으로 가능합니까?
우리가 처음 배울 때 기도가 신앙의 뿌리라는 것을 배우면서 이런 신앙의 나무가 자랄 때 그 밑에 뿌리가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는 하나님이 당신의 생명과 사랑을 우리에게 부으시는 수단입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치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세우신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간절히 하나님과 교통할 때 하나님이 불결한 사람을 깨끗하게 하시고, 능력이 없는 사람을 능력 있게 하시고 죄인을 용서하셔서 순결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관해서 공부만 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간절히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서 이번 공과를 하는 동안에 여러분과 구역의 식구들이 기도의 부흥을 맛보게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