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카르페 디엠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전 10:18)
녹취자: 조경훈
안녕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오늘은 새로운 장소에서 여러분들을 구역예배로 모셨습니다. 교회 7층 어거스틴 파크입니다. 지난주에는 다시 게으름 시작 시간인데 제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공과공부에 참여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즐거운 공과공부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다시 게으름 제 2과 카르페 디엠입니다.
문제1) 자신이 게으르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깨닫게 된 경험을 말해 봅시다. 지체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답변1) 자신이 게으르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깨닫게 된 경험은 하나님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는 그 은혜의 힘을 저만을 위해서 사용한 때입니다. 자기 전에 새벽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눈을 떴을 때 ‘하나님. 이렇게 일찍 일어나면 하루 종일 피곤해서 일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하면서 다시 눈을 붙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오늘도 주님의 이름을 위해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제 마음은 빨리 퇴근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 종일 꽉 차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반성하며 오늘 자기 전에 주님과 깊은 만남의 시간을 갖게 해 달라고 회개했는데 정작 텔레비전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 제 모습을 볼 때입니다.
답변2) 저는 항상 제가 게으르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코로나를 겪음과 동시에 육아를 함으로써 사람들과 직접적인 교류가 적어지고 하루하루가 정신이 없어지니까 다른 사람의 성실과 저의 게으름을 딱히 비교하지 않게 되고 게으름은 타고난 성격 중에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극복할 수 있는 게으름은 극복하려고 애쓰고 그렇지 않은 게으름은 애쓰지 않고 그냥 수긍합니다. 그러다보니까 게으름을 진지하게 깨닫고 돌아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질문을 보면서 나는 게으르다는 사실에 딱히 진지함이 없을 만큼 게으르구나 하면서 부끄러워졌습니다.
[목사님] 여러 가지로 자기가 게으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경험들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 누구도 게으름에 있어서 나는 게으르지 않다. 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한 번 공과내용을 보겠습니다. 이 부분이 서까래입니다. 이것은 들보인데 뜯어 고칠 수가 없습니다. 서까래는 수시로 썩어서 전부가 아니라 썩고 망가지는 것이 보이면 즉시 갈아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자체가 무너져버릴 것입니다.
전도자가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합니다. 단순한 허무주의자의 시각에서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 허무하고 모든 것이 헛되니까 대충 오늘의 즐거움에 살자.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도표를 보십시오. 인생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면서 삽니다. 세상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허무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의미만 추구하고 세상과는 상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이 두 개가 중첩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에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땅에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결국 세상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중첩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가 없는 사람이 여기에 풍덩 빠지는 것이라면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오늘을 살아갑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선적인 행복이 있고 점적인 행복이 있습니다. 선적인 행복은 미래로 유보되어 있습니다. 점적인 행복은 매일 매일 경험하는 행복입니다. 어차피 이 두 가지는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죽을 육신이니까 육신을 위해 먹을 필요도 입을 필요도 주거할 곳을 찾을 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입을 것, 먹을 것, 살 것이 궁극적인 행복을 넘어서서 삶에 기준이 되고 추구점이 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지혜로운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거기서 의미를 찾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서 세상 사랑을 버리고 그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그러면서도 현실에서 느끼는 행복을 무한한 의미로 연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균형이 잡힌 하나님 자녀의 삶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게으름이 위치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이 의미를 따라서 사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에 게으름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곳은 없다는 뜻입니다.
문제2)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예수님이 집 짓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5장에서 시작된 산상수훈이 7장에서 끝나면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바로 집을 짓는 비유입니다. 그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이 교훈을 주셨는데 깨달은 바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답변1)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하신 부분에 대해 깨달은 바는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와 지혜를 얻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행하며 살아가지 아니하면 서까래가 썩어 무너져가는 집에 누워 낮잠을 자는 게으른 자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경외하는 하나님의 질서를 받아들여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이키고 하나님께 구하며 살아야 된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답변2) 인생을 사는 것이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생이 나오는데 하나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인생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경험에 의하면 쉽게 얻어졌던 것들은 또한 빠르고 쉽게 무너지고 없어져 버렸습니다. 빠르고 쉽게 얻어진 지식, 쉽게 얻어진 돈, 쉽게 얻어진 기회들은 그렇게 가치가 없었습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는 것처럼 어렵고 오랜 시간을 들여 조금씩 전진하는 일들은 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했고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거기서 얻어지는 지혜와 경험들은 참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떠한 충격에도 버티는 견고한 집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생의 경륜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지혜를 최고로 삼아 내 자신을 누르고 그분께 맞추어가는 삶을 부지런히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새삼 감사한 마음과 삶의 경주를 부지런히 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답변3) 집을 짓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분명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 교훈을 주신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도 튼튼하고 아늑한 집을 짓는 것과 같은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것임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다보면 때때로 지치고 힘든 일에 놓여 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멀어져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럴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생각하며 견고한 반석 위에 지혜롭게 신앙의 집을 짓는 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님] 이렇게 놓고 보면 인생을 사는 것 자체가 집을 짓는 것입니다. 한 번 집 짓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기초 공사부터 시작해서 매일 매일 쌓아올리는 하나하나의 재료가 모아져서 집이라는 건축물이 됩니다. 당연히 거기에는 어떤 집을 짓겠다는 건축자의 의도 그리고 그 의도대로 능숙하게 집을 지을 수 있는 기술자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인생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체적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이것들을 찾지 못해서 사람들이 방황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런 것을 가르쳐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이것이 설계도라면 매일 매일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루하루의 삶이 쌓여서 집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짓기 시작했는데 짓다가 그만 둔 건축물들을 종종 보셨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아주 흉물스럽습니다. 어떤 때는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짓다가 말면 그렇게 흉물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여러분들이 보실 때 왼쪽에 있는 그림은 반석 위에 지어진 집입니다. 콘크리트처럼 나왔지만 반석위에 튼튼하게 지어진 집입니다. 지진이 나거나 홍수가 나거나 바람이 불어도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밑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만큼 기초가 내려서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건물자체가 되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모래입니다. 밑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래만 쓸려 내려가면 이 집도 함께 무너지는 것입니다.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 라는 건축 의도, 좋은 재료, 부지런한 시공 이런 것들이 있을 때 집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계획도 없고 좋은 재료도 없고 숙련된 기술자도 없다면 그 집은 날림으로 지은 집이 됩니다. 바람이 불면 쓰러집니다.
어제 뉴스에 보니까 미국에서 최근에 팔린 집이 한 채에 30억대에 팔린 12층 아주 아름다운 우리로 말하면 별장 빌라가 있었는데 한 쪽 귀퉁이가 우르르 무너져 내려 버렸습니다. 한 사람이 죽은 것은 확실하고 상당히 많은 사람이 깔렸다고 생각하며 구조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지진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하게 건축이 부실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일 것입니다. 미국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무너지는 그 시간에 옆 골목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라디오에 뉴스를 듣는데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리고 고개를 돌려보니까 흙먼지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건물이라는 것이 그렀습니다.
여러분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반성해보겠습니다. 유명한 말입니다. 카르페 디엠, 카르페는 ‘잡아라’ 라는 명령형입니다. 디엠은 날, 디에의 목적격입니다. 오다에 라고 하는 송가의 1장 11절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이 글을 쓴 사람은 호라티우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유학했고 특히 풍자시, 서정시로 유명해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예수님 시대와 가깝습니다. 대표저서로서 서정시집, 풍자집, 서간집, 시학집 등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기본적인 사상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 엿보면 영원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고 보이는 세계가 전부이니 보이는 삶으로 만족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면서 살라고 하는 말하자면 현실주의자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카르페 디엠 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원문 자체가 깁니다. 가능한 내일은 적게 믿으면서 세월은 쉼 없이 흘러가고 내일이라는 것은 우리의 날이 아니니 오늘 하루를 즐기면서 살아라.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살아라. 극단적인 쾌락을 부추기 보다는 영원이라는 것, 내가 어디서 왔냐는 것 이런 것들을 다 제외하고 나면 오늘밖에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행복을 미래로 미루지 말고 적금 붓는 듯 하는 인생을 살지 말고 오늘 하루하루를 즐거워하면 살아라. 라는 뜻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아주 널리 알려진 말입니다. 주위에 가 보면 카페 이름 중에서 카르페 디엠이 아주 많습니다. 오늘 하루를 즐거워하면서 살아라. 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인생을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될까요? 확실한 사실 하나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극단적인 미래, 극단적인 현실 양쪽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히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영원한 나라를 향해서 사는 사람으로서 살아야 되지 않겠나? 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보십시오. 사람이 돈이 많아서 막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노인이 되었습니다. 청구서가 날라들었습니다. 이미 벌써 노동 능력이 없고 겨우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살아가는 처지가 되었으니 결국 이 사람은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젊을 때 젊음을 허비하는 것은 노년에 갚을 어음을 남발하는 것입니다. 노년에는 청구서가 날라드는데 결국 그것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상적인 면에서 인생에 대한 철학을 확고히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십대 때만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50대, 60대가 되어도 방황하게 됩니다. 그것은 젊어서 치열하게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자기의 인생의 철학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젊어서 저축하지 않고 낭비하면 노년에 반드시 그런 어려움이 다가오게 됩니다.
저도 사실 너무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젊은 분들에게는 젊어서부터 노년을 준비하라고 꼭 권하고 싶습니다. 신앙적으로, 사상적으로, 경제적으로, 육신의 건강에 있어서 노년을 대비하면서 살아라. 그것이 인생을 슬기롭게 사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결국 부지런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주위에는 연세가 80세, 90세가 되셨는데도 정정한 선배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그분들 대게 보면 70퍼센트 이상이 젊어서는 물론이지만 특히 50대에 자기 몸을 관리하는 일에 헌신했던 분들입니다. 저는 그런 시절을 잘 못 보냈으니까 매우 아쉽고 그런 결과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절대 그렇게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지체들이 오래간만에 댓글들을 보내셨는데 한 번 볼까요?
[댓글1] 야외가 아닐까요?
[목사님] 야외 아니고 7층 아우구스티누스 파크입니다.
[댓글2] 교회 앞 카페 아닙니까?
[목사님] 교회 아니고 교육관 7층입니다.
그림이 좀 희미하긴 한데 사람이 춤추고 놉니다. 자기 욕심에 이끌려서 자기 좋은 대로 사는 것입니다. 저는 별로 춤추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춤추고 노래하고 자신의 마음에 있는 감정을 표현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선물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춤추는 사람들을 굉장히 경박하게 생각을 하고 청소년 때 선배들이 너 춤출래 맞을래? 그러면 나는 언제든지 맞는다고 했습니다. 선비가 무슨 춤이냐 그랬는데 알고 보니까 선배들도 추던 춤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은 지금에 와서는 긍정적인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못하는데 춤을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에 보면 사람이 지금 춤추고 노래하는데 이것은 이 사람의 육체입니다. 여기 보면 누워있는 사람이 나오는데 영혼입니다. 죽어서 피가 나오는 것입니다. 시체가 되어서 썩어 들어가고 구더기들이 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삶을 정말 신나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봅니다.
영혼과 육체가 아울러 살아서 내면과 외면, 감각과 정신이 모두 만족할 수 있어야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누구든지 이런 삶을 살고 싶지만 성경은 그런 점에서 새로운 삶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인데 세네카입니다. 네로 황제의 교사였습니다. 말하자면 황제의 스승이었습니다. 스토아학파 철학자였는데 이 분의 책은 무엇을 읽든지 굉장히 깊습니다. 기독교하고는 거리가 있지만 당시 쾌락주의자들의 관점과는 매우 다른 관점을 보여줍니다. 제가 회심하기 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그렇게 좋아해서 거의 외우다시피 읽었습니다. 마음에 위안을 주었고 어느 정도는 스토아적인 생각들이 인생의 허무에 대해서 생각하고 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마음에 준비를 해주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가 무릎을 칠 만한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우연히 저 책을 읽다가 적합한 때에 저 구절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실은 이러하다. 우리가 받은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인생의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낭비하는 것이다.’ 인생의 덧없음에 관하여 혹은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라는 책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황제의 반역 음모사건에 연루돼서 자살했다고 하는데 사실 자살을 한 게 아니라 자살을 하도록 강요당합니다. 결국은 죽습니다. 굉장히 고상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세상적으로 보면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카르페 디엠이라는 모든 내용을 정리하자면 세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신앙적으로는 우리가 깨어있어야 하고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해야 하고 우리의 생활은 부지런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고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라면 이것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태도입니다.
인간은 두 가지를 항상 후회하게 되는데 의미 있는 일에 게을렀던 것, 의미 없는 일에 부지런했던 것을 후회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후자부터 얘기하자면 의미 없는 일에 열심을 품고 열렬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의미 있는 일, 가치 있는 일에는 제대로 헌신하지 못하며 살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것이 후회입니다. 오래도록 후회로 남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이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으니까 후회가 없을 수가 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인생의 질서가 무엇인지를 잘 생각하면서 그 질서에 맞게끔 허비하는 일이 없이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도표로 돌아가서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렇게 될 때 이 지식과 사랑으로 질서에 대한 깨달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 충만하지 않은 사람이 깨어있을 수 없지만 아무리 아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지지 않으면 그 질서를 따라 살 힘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갈 길을 몰랐는데 이제는 길을 압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생활에 적용하자면 일체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매일매일 살아가서 삶의 열매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되도록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거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될 때 비교적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설명이 끝난 것 같습니다. 오늘 공과공부가 너무 간단했습니다.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그것을 우리에게 다시 수정해서 적용한다면 오늘 하루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사는 것을 기쁘게 여기면서 만족을 느끼며 사는 삶이 하나님 앞에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번 한 주 더 열심히 사시고 은혜 충만히 받으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는 두 달 정도 넘게 교회 운영과 교회 생활 심지어 교육, 자녀들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앙케트를 냈습니다. 많은 분들이 거기에 응답해주셔서 그것을 분석했습니다. 당연히 공과공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아사밤을 할 때는 인터뷰하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사람들이 죄와 은혜의 지배를 하면서 너무 정답만을 얘기하니까 신앙이 있는 사람은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없고 신앙심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정답만을 얘기해서 기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음 주 부터는 새로운 스타일의 공과공부로 여러분들을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스타일의 공과공부로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게 될까요? 다음 주에 기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 즐거운 신앙생활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