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시크릿 약국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 10:4)
녹취자 : 박나리
여러분 반갑습니다. 비가 오는 날 ‘다시 게으름’ 마지막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방학이 있었지만 정말 순식간에 7과까지 온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유익을 많이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잠언 10장 4절에 이러한 말씀이 나옵니다. ‘게으른 손바닥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고 부지런한 손은 부를 가져 오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한 번 마지막 과에서 무슨 이야기를 다루는지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게으르면서도 부자라고 하면 무슨 뜻입니까? 게으른데도 부자가 되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부자가 되었으니 게으르게 살 것이라는 말입니까? 저에게 질문을 했다면 저 질문이 불명확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부지런한데 어떤 면에서 부지런한 것입니까? 부자라면 어떤 면에서 부자입니까? 돈이 많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마음이 부요하다는 뜻입니까? 부자라면 어느 정도가 부자입니까? 결국 사람들마나 다 일리가 있지만, 그러나 부유하게 살고 가난하게 사는 유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분명한 목표가 정해져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나온 열린신문에 맨 뒷 페이지의 간증을 읽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도 마음의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행복해지지 않으면 신나서 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지런할 수도 없습니다. 방향에 정해지고 마음에 올바른 열정이 생기면 그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면 게으름에 대한 경고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가난, 고통, 책망을 이야기합니다. 게으르다는 것은 영혼과 육체를 나눠 설명하면 영혼이 싫증이 나고 육체는 나태해진 것입니다. 결국 영혼의 싫증이 구체적으로 육체를 통해서 나태하게 나타나고, 그것을 우리들이 게으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의 본질은 영혼의 질병 상태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해 있다면 게으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에 빠졌는데 그 사람이 사랑하는 일에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혼의 싫증이 질병이고 그 질병이 육체에 나타난 것이 게으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의가 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더 진도를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적인 복을 오해를 합니다. 성경적인 복을 위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요행,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인 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적인 복은 하나님이 뿌린대로 거두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수고한대로 열매를 얻게끔 해주시는 것, 그래서 원인과 결과 사이에 분명한 연관이 있으면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서 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성경적인 복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수확의 기쁨이 있고, 장사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익을 얻는 기쁨이 있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학문이 축적되는 보람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당연하게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날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많이 당합니다. 그 분들 중에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다들 이른 새벽에서부터 밤까지 고생 많이 합니다. 모두 다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택배 기사들이 이번에 전국적으로 주일부터 3일 정도 쉬셨다고 합니다. 저는 택배를 시킬 것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기뻤습니다. 진짜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총알배송이 아니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하루쯤 늦게 받아도 일하다가 과로사하는 불행한 일은 없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한 템포 느리게 살면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4~5일씩 걸려야 받을 수 있는 것을 이틀 안에 받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돈을 좀 많이 내라고 하고, 그 시간에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택배 노동자들이 더 이상 과로사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수고하지만 사실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게 하는 제약들이 자연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수고한 열매를 정당하게 거둬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다시 화면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러니까 당연히 수고하지 않고 게으르면 요행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은 그런 요행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잠언 6장 11절에서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게으르면 그렇다고 했습니다. 강도는 당할 수 없는 무력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저항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수많은 군대가 한꺼번에 밀려닥쳐 저항할 수 없습니다. 운명처럼 가난과 빈궁이 다가오게 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보면 나무가 서있습니다. 책에 나온 대로 썼습니다만, 이렇게 살인, 간음, 허영, 탐욕, 폭행, 교만 등 죄의 열매들을 맺습니다. 모두 죄라는 뿌리로부터 올라옵니다. 죄라는 뿌리에서 게으름이라고 하는 둥치를 형성하고, 거기에서 뻗어나가면서 맺게 됩니다. 살인은 어떤 것입니까? 살인의 동기는 미움입니다. 끊임없이 그 사람을 용서하기에 게을렀던 그 결과가 극단적인 살인으로 나옵니다. 배교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기를 게을러 했던 사람들이 마지막에 저기까지 갑니다. 간음은 순결하게 살고 싶은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써 저런 데까지 갑니다. 허영, 탐욕, 폭행, 교만 모든 것이 똑같이 그렇게 결국 우리의 게으름을 동반합니다. 순결하게 살려면 육체와 정신이 함께 부지런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찬양도 부르고, 은혜의 수단에 자신의 마음을 담그면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 살아야만 됩니다.
게으름에 대한 첫 번째 경고는 가난이었고, 두 번째는 고통입니다. 게으르게 되면 결국 고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신이 올바른 데에 닻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을 하게 되고, 육체는 반드시 방탕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육체가 방탕하게 된다고 해서 꼭 죄 짓고 술 취하는 것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목적 없이 살아가는 안일한 삶이 다 방탕입니다. 오늘 하루를 왜 살았나, 오늘 하루가 정말 내 인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정말 중요한 날이었는가 반문해봐야 합니다. 게으르면 육체는 그런 식으로 방탕하게 됩니다.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받게 되고 육체적으로도 방탕한 삶을 살면 고통 받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들입니다. 멀리 가서 굶주리게 되고,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집을 떠났으니 방황하고, 육체적으로 방탕합니다. 마지막에 온 것은 지독한 고통입니다. 돼지우리에 함께 있으면서 쥐엄열매 조차도 없는 가난과 고통을 함께 겪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게으른데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행복이라기보다도 만족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했듯이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훨씬 더 고차원적인 고뇌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있는 강아지 코코를 봐도 노동하는 것이 없습니다. 집 안에서 돌아다니다가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습니다. 산책 나가자고 하면 따라나서는 것이니 무슨 노동을 하겠습니까. 인간이 사는 삶이 훨씬 고달픕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간의 삶은 짐승이 살아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입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말할 수 없이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괴로워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특권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결국 게으른 사람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만약에 게으르면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동물적인 삶에서 오는 만족이지 진정한 행복에서 오는 고통 없음은 아닙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게 되면 반드시 그 고통을 겪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잠언 12장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지만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습니다. 부지런한 자가 게으른 자보다 더 존귀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는 뜻도 가질 수 있겠지만, 부지런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분투하는 믿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사람은 게으른 삶을 삽니다. 죽어있는 믿음입니다. 결국 분투하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어쨌든 존귀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이 반드시 돈을 더 많이 벌고 부지런한 만큼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나태하고 죽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존귀해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일반은총의 차원에서 봐서도 어떤 한 분야에서 부지런하게 애쓰고 분투하고 몸부림치는 고뇌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무언가가 더 좋은 것이 나오지, 나태하고 태만하게 사는 사람에게서 그런 것이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어느 한 화가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2~3m 큰 캔버스에 그렸습니다. 거기에 그림을 30분 안에 그렸습니다. 그 화가는 자기의 원칙은 영감이 떠오르면 맨 먼저 칠한 물감이 마르기 전에 마지막 붓질이 끝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작품 값을 매겼습니다. 30억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비싸냐고 그랬습니다. 30분에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 인생 전체에 걸쳐서 이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떠오르는 예술적인 영감과 미술에 대한 자부심과 기술, 영감을 옮길 수 있는 붓질, 이런 것들은 치열하게 일생을 미술가로서 고뇌하며 살았던 인생 전체가 뒤에 있기 때문에 30분만에 나온 작품입니다. 누가 살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분명히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도 사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책이 항상 비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되고 나서 보니까 절대로 비싼 게 아니고 그 속에는 물론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고뇌도 분명히 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말할 수 없는 노역이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작가 중에서 작가로서 제대로 대우 받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몇 퍼센트나 될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분이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나중 문제입니다. 다음 주에 책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험에 관하여’라는 책입니다. 여러분들이 들으셨던 설교로는 ‘시험을 이기는 길’입니다. 열린교회를 시작하고 2번을 설교한 시리즈입니다. 쉽게 쓰려고 애를 쓰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려고 했습니다. 원고와 싸우면서 엄청난 체력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부 출판으로 나오는 책을 기준으로 볼 때 확실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3교 정도 본 듯 합니다. 그리고 출판사와 열린교회 출판부와 함께 양쪽에 원고를 넘겨줬습니다. 교회 내부 공과가 먼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일반 출판으로 나오는 것은 2~4번을 더 볼테니 보통 15~18교 정도 될 것입니다. 250페이지를 10교를 보면 2500페이지를 봐야하는 것이고, 15교를 보면 3750페이지를 읽어야 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고, 그것을 다시 읽으면서 끊임없이 고치며 새 것을 만들어냅니다. 거의 자신을 불태우는 노력이 없이는 안 됩니다.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부지런해도 능력이 못 미치는 사람이 있지만 어쨌든 부지런한 사람에게서 무엇인가 새로운 길도 제시되고 새로운 지식도 전달됩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한 번 더 보겠습니다. 마지막에 게으름에 대한 세 번째 경고가 나오는데, 책망입니다. 한 사람이 게으르게 있고 온갖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울고 웃으면서 살았지만 결국은 저 사람이 살았던 삶 가운데에는 하나님 앞에 칭찬받을 만한 일이 없습니다. 책망이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을 보겠습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를 붙들어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약한 자는 격려해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약하다고 버리지 말고 격려해주라고 합니다. 이렇게 약한 사람도 있구나 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힘을 주라는 것입니다. 힘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힘이 없는 사람이 있고 육체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같습니다. 육체적으로 힘이 없으면 알아도 목표를 따라 살 수 없듯이, 정신적으로 힘이 없으면 마땅히 생각해야할 바를 해낼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냐면 힘이 없다고 밟히라고 하면 안 됩니다. 붙들어주라는 것입니다. 또 까다로운 사람도 만납니다.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사람을 오래 참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게으른 자들은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혼내어 바로 잡으라고 합니다. 지금 이불을 덮고 자고 있습니다. 맨 끝에 나와 있는 이 그림이 발입니다. 혼내어 바로잡으라는 것이 권계하다는 말의 뜻입니다. 혼을 내주라고 합니다. 마음이 약한 자는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는 붙들어주고 까다로운 자는 오래 참으라고 했는데, 결국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게으른 자는 혼내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커다란 책망의 음성으로 들립니다. 게으른 것은 마음이 약하거나 힘이 없거나 까다로운 것과는 비교될 수 없도록 위험한 정신의 질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장의 그림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액체의 생애였습니다. 땀 흘리신 봉사, 눈물 흘리신 기도, 마지막은 피 흘리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요약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같이 한 번 생각해봅시다.
파스칼도 강조하는 바가 끊임없이 우리의 삶이 허무한 것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무한지를 아는 것은 단 한 가지 때문에 안다고 했습니다. 자기 의지로서가 아니라 어느 한순간에 ‘무’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것,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무’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보이는 세상 안에 우리의 삶이 묶이면 결코 그 허무한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진통제를 찾는 듯한 삶을 삽니다. 결국 궁극적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면 책의 에필로그를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꽃잎이 떨어진다. 길과 하늘 사이를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던 벚꽃들, 그 꽃들은 피어있는 때가 아니라 허공에 흩날리는 시간이 절정이다. 생명을 끝내며 떨어지는 꽃잎들의 떼춤은 낙화암에서 떨어지는 삼천 궁녀가 아니다. 경사스러운 날 밤하늘에 작렬하는 불꽃놀이다. 늦겨울부터 생명을 잉태했다. 꽃봉오리 맺고 꽃 피던 때, 꽃샘추위와 비바람을 견뎌온 것이 이 한 순간을 위함이었다. 수많은 관객들이 환호해도 무대의 막은 내린다. 이 길 끝에서 내 인생의 막도 내릴 것이다. 걸쳤던 무대 의상을 벗고 화장도 지우고 나면 거기는 홀로 던져지는 우주 공간, 있었던 것들은 없고 없었던 것들은 나타날 것이니 그 때 몸 안에 쏟아지는 엔도르핀은 은퇴식장의 꽃다발이다. 하나님, 내 영혼을 받으소서. 인생나무 꽃잎 되어 떨어지는 순간, 아무나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잘 살려고 애쓴 사람만이 그럴 수 있으리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렇게 산 사람. 그때 나도 예쁜 한 장의 꽃잎이 되고 싶다. 그대도 나와 함께 푸른 하늘에 나부끼는 어여쁜 꽃잎이 되어지이다. 살아야할 이유가 죽어야할 이유만큼 분명한 사람으로 사소서, 그래야 그대, 행복할 것이기에. 저 멀리 아이들 뛰노는 소리, 어느새 봄날이 저물어 가는 군요. 아,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봄이겠죠?
여러분, 제가 이 책을 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계절이 바뀌어서 여름이 꺾여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빨리 흐르고 흐른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우리 남아있는 인생의 날들을 잘 헤아리면서 주님 앞에 보람 있는 삶을 살아서 주께서 우리를 부르는 순간이 우리의 인생 전체의 절정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기쁜 소식 하나는 두 주 후 8월말쯤 ‘다시 게으름’이 어린이판으로 나옵니다. 예쁘게 그림책과 설명이 들어있는 동화책 형태로 나옵니다. 어린이 게으름을 위해서도 많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7과까지 공부하느라 애쓰셨습니다. 좀 더 나은 공과공부가 되도록 우리 모든 교역자들과 스텝들이 더 많이 애를 쓰겠습니다. 부족한 것들은 여러분들이 너그럽게 봐주시고 더 좋은 제안이 있으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은 ‘다시 게으름’ 전체를 돌아보면서 책 한 권 끝나는 책거리 시간을 갖도록 순서를 만들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