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내의 꽃을 피우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녹취자: 이 솔
안녕하십니까? 성도여러분.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햇빛은 따가와도 부는 바람이 시원하니까 산책하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 이제 이 계절에 맞게 우리들이 새 책으로 공과 공부를 하게 되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험에 관하여 제2장 인내의 꽃을 피우라에 대해서 우리 공부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모든 구역 식구들이 함께 우리 야고보서 1장4절 본문을 같이 한번 소리 내어서 읽어볼까요. 시작.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아멘.
구원받은 신자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성령의 열매를 성경이 아홉 가지로 제시합니다. 그래서 희락과 사랑과 양선과 화평과 자비와 충성과 인내와 절제와 온유 이렇지요. 신앙의 성화의 정도에 따라 이게 많아지고 커지는 사람이 있고 또 작고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경의 열매가 크기는 달라도 모든 신자들에게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성령의 열매는 실제로 어떤 상황을 맞났느냐에 따라서 이것들이 발휘가 되어야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자비라고 하는 이 성령의 열매가 작동을 하겠죠. 이제 은혜 생활을 많이 하고 열심히 예수를 믿어서 자비가 커진 사람은 더 많은 자비를 베풀고 그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겠죠. 이게 거의 쪼그라 들어서 얼마 안되는 사람은 무정한 사람이 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놓고 보면 다시 그림을 보시면 시험을 만났을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아홉 가지 열매 모두 필요하지 않을 때가 없어요.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인내라고 하는 성령의 열매예요. 그것이 바로 시험을 당했을 때에 그로 하여금 그 시험을 통해서 엎드려지거나 미끄러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더욱더 진보한 믿음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시험에 걸린 사람들은 모두 인내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것을 먼저 우리가 전제해 놓고 나가겠습니다.
그러면 인내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와요. 인내란 괴로움이나 어려움 따위를 참고 견디는 것이다. 이렇게 국어사전에 나와요. 그런데 인제 같은 단어라도 성경 속으로 들어올 때에는 의미가 좀 달라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괴로움이나 어려움 따위를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인내가 아니라 이제 우리의 인내는 그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과 사랑으로서 하나님을 위해 견디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인내라고 하는 것은 사랑과 믿음이 결혼해서 태어난 자식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사람의 인내의 크기와 인내의 신실함을 보면 과연 그 사람이 사랑이 있는 사람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참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과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이죠.
여기에 보면 1장 4절이 나옵니다. 왜 시험이 당했을 때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되는지 그 이유가 나오는데 우리 모두 구역 식구들 같이 한번 소리 내어서 읽어 봅시다. 시작.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 그랬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한번 눈여겨 보십시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랬으니까 예수를 믿고 신자가 되었어도 모두 온전한 인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알수 있지요. 그러니까 그 인내는 누구에게나 더 온전해질 필요가 있고 발전할 필요가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죠. 그러니까 이 인내는 죽을 때까지 성화되는 과정에서 점점 더 발전해야 되는 것이다. 더 커져야 되는 것이다. 이걸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 이 말씀을 뒤집어 봅시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지 못하면 너희는 온전하지 못하고 여기서 구비한다 그랬는데 이것은 잘 준비된 걸 이야기하는 거죠. 그래서 효율성 있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한 거죠.
예를 들자면 험한 공사판에 나왔는데 만약에 아주 투피스를 입고 뾰족구두를 신고 나왔다면 적합한 것이 아니잖아요. 전투에 나가는데 이렇게 저 같은 평상복에다가 그 다음에 운동화를 신고 총을 한 자
받고 전쟁터에 나간다면 그건 온전히 구비한 게 아니죠. 철모를 쓰고 그 다음에 갑옷을 입고 그 다음에 단단히 띠를 동이고 그 다음에 군화를 신고 심지어는 방탄조끼를 입고 완전 무장을 하고 총을 들고 탄알을 차고 수통을 차고 이렇게 됐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전투하기 위해서 구비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똑같이 다시 장면을 넘어가 보면 인내를 온전히 이루지 못하면 너희는 모자라는 사람이 되고 구비하여는 반대로 덜 떨어 진 사람이 된다. 그래서 결국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영적인 군사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이런 뜻이에요. 가운데 보시면 사람의 손이 펼쳐져 있고 성경이 위로부터 내려오죠. 하나님이 성경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17절에서 말하죠. 성경을 주신 이유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불신자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는 믿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예요. 그래서 여기의 그림을 보시면 이렇게 새카만 마음이잖아요.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고 죄로 가득찬 마음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성경을 읽고 구원을 받아요.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 사랑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차서 변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이 사람이 하나님 전혀 사랑하지 않고 죄에 가득 차 있다면 이 사람이 걸어갈 인생의 길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서 걸어 갈 인생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사뭇 다르잖아요. 이 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창조 목적을 따라 사는 생활이 될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 다음에 쾌락을 좇는 삶이 되겠죠. 결국은 죄를 짓는 삶이 되겠죠. 얘는 사랑을 베푸는 삶이 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불신자에게도 성경이 필요하고 또 신자에게 성격이 필요한 이유는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거죠.
이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요. 이럴 때 이 선한 마음이 되는 거잖아요. 그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에요. 성품이 사랑으로 꽉 차게 되면 당연히 이 사람의 생활도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될 것 아니에요. 이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꼭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되게 하고 싶은 말하자면 이상적인 인간이에요.
그러면 결국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면 이거예요. 인내 없이는 이런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그 말씀이에요. 그래서 인내라고 하는 그 성령의 덕이 우리가 시험을 통하지 않고는 이 인내가 발전할 수 없다. 그래서 인대가 점점 커지는 것은 반드시 시험을 거쳐야 된다. 그래서 그 시험에서 지고 패배하고 짓밟히면 인내는 자랄 수 없어요. 그런데 그 시험을 이기고 극복하고 슬기롭게 승리하면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하고 큰 인내의 덕이 우리 안에 생기게 되는 거죠. 그 인내의 힘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뭐든지 선한 것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즉시 엄청난 힘이 내 안에서 내 바깥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 수 있어요. 그러면 결국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국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믿음에 있어서 성장한 사람, 발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의심 없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죠.
그 다음 보시면 이제 이런 그림이 나와요. 그러면서 이제 1장4절이 나와요.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제일 먼저 인내를 하게 하는 이유는 아까 말씀드린 걸 다시 세부적으로 설명하는 거예요. 그것은 뭐냐 하면 온전한 인격을 위한 거예요. 뒤편으로 넘어가 보시면 이렇게 나왔잖아요. 그래서 여기에 보면 성품이 있고 그 다음에 생활이 있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이 성품을 먼저 설명을 하는 거예요. 이 다음에 보세요. 온전한 인격을 위하여, 성품이라는 것은 결국은 인격이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만드셔요. 그 형상은 우리의 170, 180 되는 우리의 키나 몸무게를 이야기하는 그 형상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 하나님을 닮은 형상을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죄 때문에 오염이 되요. 그래서 이렇게 정신과 영혼이 원래의 기능을 할 수 없도록 망가진 거죠. 궁극적으로는 이 죄가 이렇게 침투해 들어가서 그래서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끼침으로 궁극적으로는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이 결국은 죄를 향해서 작동하게 만든 거예요.
그런데 많은 시험을 만날 때 그때 인내하게 되면 그러면 하나님이 이제 이런 죄를 물러가게 하시고 이 정신과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의 지배를 받게 해 주시는 거죠. 이렇게 맑게 이렇게 하나님 사랑으로 지배가 되게 해 주시는 거죠. 성화의 정도가 더하면 더할수록 이 빨간 부분은 많아져가는 거죠. 그렇게 인격적으로 온전해져 갈 때에 그게 누구를 향하냐 하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모든 인간에게 그렇게 살기를 바라셨던 하나님이 원하셨던 그 표본을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계실 때 보여주셨기 때문이에요.
그럼 정리를 하면 결국 이렇게 되겠죠. 결국 우리가 시험을 만나는 것은 결국은 우리로 하여금 그 시험을 통해서 우리를 좀 더 온전한 사람을 만들고 또 온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자들을 삼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우리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구비하여 그랬습니다. 이거는 생활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죠. 생활인데 구비하여 조금 더 부족함이 없이 하려함이라. 그랬습니다. 여기에 구비한다는 이 말이 홀로클레로스라고 하는 뜻이고 클레로스는 목 부분이에요. 그래서 구약에서는 이게 기업이라는 말로 쓰여지는데 거기에 홀로스라는 말이 붙어서 이런 호울 전체 총체적인 완전한 이런 걸 의미하는 거죠. 그래서 이제 모든 인간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의 기대에 부흥하기에 어떠한 결함도 없이 완전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봅시다. 아까 잠깐 설명했지만 전쟁이 나요. 전쟁이 나면 이제 다 애국심이 있어서 참전을 해요. 러닝셔츠에다가 속옷 바지에다가 슬리퍼를 끌고 오고 겨우 소총 한 자루 받았어요. 그 사람이 치열한 전투지 속으로 들어갈 때 살아남기 쉽지 않지 않겠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완전히 철모를 쓰고 그래서 혹시 탄환에 맞아도 결코 머리를 상하기 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당연히 이제 갑옷을 입고 그리고 안에다가 방탄조끼를 입고 그리고 어떤 풀숲도 헤쳐 나갈 수 있는 군화를 신고 각반을 메고 그리고 그 다음에 수류탄을 달고 탄환이 떨어지면 다시 보충할 수 있는 탄띠를 메고 그리고 혹시 백병전이 있으면 있을지도 모르는 칼도 휴대하고 그리고 완전히 충만하게 장전된 총도 들고 그런 상태에서 출전을 하는 것이 구비하고 출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는 그 시험을 만나서 잘 인내하므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서 이 세상에서 빛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 밑에 그림에 보시면 한 사람이 믿음을 가져요. 그것은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에 대한 믿음이죠.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렇게 되면 영원히 거듭나서 그 마음이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이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찬 마음은 최고 선을 추구해요. 그러니까 부분적으로만 선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혜택을 보면 그 혜택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손해를 봐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최고의 선 모든 사람이 그 선 안에서 그 선을 지향할 때 가장 행복하고 평안한 상태가 될 수 있는 그 최고의 선을 향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이제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이렇게 넘어져 있는 불쌍한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러한 구비된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시험을 당한 적이 없고 혹은 당했어도 인내함으로 그 인내를 발전시킨 적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사랑이 부족하게 되고 그러면 이렇게 넘어져 있는 사람을 이렇게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안 생기는 것이죠. 그러니까 인내도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그 사랑이 크면 인내도 크고 그 다음에 사랑이 작으면 인내도 작아지는 것이다. 우리 이렇게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편 66편 10절에서 아주 잘 예로 들었어요. 우리 한번 같이 큰소리로 읽어보실까요? 시작.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과 같이 하셨으며’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옆에는 이제 용광로예요. 용광로가 나와요. 그러면 이제 이거는 이제 광학에 관한 건데요. 이제는 기술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예전보다도 훨씬 더 쉬운 방법으로 금을 추출해냅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제일 큰 광산에서 채취하는 게 매년 금 24톤 정도가 된다고 하니까 엄청난 거죠. 그런데 이제 금이 이렇게 금 덩어리째 지하에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매우 희귀해요. 이거는 금 자체의 성분만 퇴적의 작용 때문에 모여서 오랜 세월 압력을 받으면서 금띠가 형성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금 덩어리가 바가 골드바가 그냥 한 지층이 되어서 깔려 있는 거라고 보면 되는 거죠. 그걸 사람들이 노다지. 노터치. 건드리지 마라 해서 노다지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이런 것이 발견되는 건 매우 희귀하고 대부분 이제 광물 지질 조사를 하면 무슨 성분이 거기 많이 있나 검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여기는 다른 데 비해서 금의 함유량이 뛰어나게 많다 하면 거기에 금을 채굴하는 광산을 세우게 되는 거죠. 지금은 지하로 한없이 파고 내려가지만 예전에는 그 정도 과학이 발전되지 않았을 때는 수평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그 광석을 지게로 실어 나르는 거예요. 실어 날아온 그 광석은 당연히 돌멩이 덩어리죠. 거기에 아주 조금씩 조금씩 금이 섞여 있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하냐면 그걸 빻아요. 방아 같은 걸로 짓빻아요. 충격을 주어서 그 광석 덩어리를 거의 굵은 모래 수준으로 빻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그것을 불에다가 계속 씻어요. 그러면 수리의 작용에 의해서 질량이 가벼운 것은 멀리 떠내려가고 질량이 무거운 것은 물을 흘려보내도 바로 그 앞에 있을 거 아니에요. 이런 작업을 계속해서 금이 한쪽에 모이게 하는 거죠. 그런데 그걸 다 모았는데 그래서 여러분도 아마 시내 같은 데 가보면 반짝이는 그 금빛, 금빛 쪼가리들이 있는 걸 발견하신 적이 있을 거예요, 그렇죠? 그런 것 들을 모은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는 금붙이로서는 쓸 수가 없으니까 그걸 이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용광로에 집어넣어요. 그러니까 이제 유리는 한 650도에 녹고 쇠는 1250도에 녹으니까 아마 금은 쇠보다는 아마 덜한 온도에도 녹을 거예요. 어쨌든 거기다가 불을 땠니다. 장작불 같은 걸로 안 되고 그 이렇게 코크스 같은 그런 아주 강력한 열을 내는 그런 고열을 내는 연료를 때웁니다. 지금은 다 전기로 하죠. 그러면 그게 삽시간에 천도가 넘게 올라가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서 대부분의 물질은 다 녹아 버리는 거죠. 녹아 버리고 나면 그다음에 어떻게 비중이 각기 다르니까 이게 재료 분리가 일어나게 되는 거죠. 금은 금대로 모이게 되죠. 그래서 금 있는 부분을 잘라내고 나머지는 버리고 그걸 다시 한 번 또 하는 거예요. 그걸 여러 번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순도 100%에 가까운 금이 나오는 거죠. 그래서 그걸 100이라고는 말을 못하고 99.99%의 순도를 가진 금을 우리는 대충 순금이라고 불러요. 그렇지 않은 금들은 18금, 14금 등등으로 분류되면서 그건 값어치가 적고 순금이야말로 그야말로 가장 비싸고 그리고 변하지 않는 금이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여기에 나오는 단련하다 라고 하는 단어예요. 이게 히브리어로 짜르프인데 이게 연단하다. 용광로에서 이렇게 달구어서 금과 다른 광물질들을 분리해 내는 것입니다.
이쪽 그림으로 와 보면 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는 해요. 그런데 마음의 검은 부분들이 많아요. 이 검은 부분은 결국 자기 사랑이고 그 다음에 또 자기 사랑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세상 사랑이에요. 이런 것들로 가득 차 있다가 시험을 만나요. 그러면 이게 불이 되어서 여기에 있는 이 사람에 이 심장을 이 불 속에서 말하자면 태우는 거예요. 그렇게 비유을 들면 딱 좋아요. 그래서 이렇게 검게 되어 있는 이 부분을 태워서 그래서 이 검은 부분을 분리해내고 그 다음에 이 빨간 부분만 남기 위해서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게 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기를 은 단련함과 같이 하였으며 라고 했는데 이걸 9번이라고 성경에 나와요. 사실 이건 상징적인 것이고 이것은 무수히, 무수히 많이 반복해서 함으로써 이게 단련된 은과 단련되지 않은 은은 여기에 이렇게 실버바가 있다면 이게 이렇게 있고 여기에 실버바가 있다면 이거는 싸구려예요. 싸구려. 이거는 아주 엄청 비싼 가격에 팔리는 거죠. 순은이니까. 순은이니까. 순은.
그렇게 하나님의 우리를 변화 시켜나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큰 섭리 속에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신다라고 하는 거죠. 이 시험이 결국은 유혹의 시험이 있고 시련의 시험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것 들은 우리들이 죄에 이끌려서 유혹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죄와 상관없이 우리들이 시련을 당하기도 하는 거죠. 혹은 죄가 있어도 그것을 믿음으로 극복해 내면서 유혹에 빠지는 대신 부단한 싸움을 통해서 우리들이 시련을 겪게 되는 거죠. 이걸 통 털어서 시험이라고 부르는 거야. 이제 이해하실 수 있겠죠. 하나님이 우리 대충 있는 우리를 온전한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림에 나오는 사람은 여러분 들이 잘 아는 헬렌켈러에요. 생후 19개월에 뇌수막염이 걸려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사람이 되요. 그래서 이 아이가 아버지가 굉장히 부잣집 사람이었고 그 당시에 벌써 신문사를 운영할 정도였고 그랬습니다. 제가 헬렌켈러가 태어난 집에 가 봤거든요. 그런데 어마어마해요. 그 집 대지가 한 만평 가까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고 하인들 살았던 집들이 꽤 큰데 거기도 있고 그 다음에 가축들이 있는 곳 그리고 이제 주인이 거처하는 방 이런 걸 다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래서 7살 될 때까지 헬렌켈러가 아주 비뚤어진 소녀가 됩니다. 그래서 당연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니까 아주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그런 통제 불능의 어린이가 되요. 그때 설리반 선생님을 만나게 되요. 그때 설리반 선생님의 나이가 10대 후반 내지는 20대 초반.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19세에서 21세 정도 됐을 거예요. 이 사람은 학교 교육을 받았고 가정이 굉장히 불우했어요. 이 설리반이 그런데 이 아이를 만나면서 취직 일자리를 얻게 되었고 그리고 하나님이 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이제 하나님이 사명감을 주셔서 이 아이를 진짜 사람답게끔 생활하게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 해요. 그리고 그 집안에서도 이 설리반 선생님을 아주 인격적으로 훌륭하게 대접을 해 줬다고 해요. 본 적도 없으니까 또 듣지도 못하니까 언어를 배우는 게 문제잖아요. 그래 가지고 이제 유명한 실연식 교육을 하게 되요. 지금도 거기 가보면 그 시대의 아버지가 펌프를 거기다 놨어요. 그것도 밀 펌프예요. 그런데 그 펌프에 데리고 가서 이제 물을 퍼요. 그러면 물이 막 쏟아 질 거 아니에요. 거기를 이제 이렇게 설리반 선생님이 헬렌켈러에게 손을 대게하고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거기에다가 WATER이라고 써 준 거예요. 당연히 나뭇잎은 나뭇잎을 만져 보게 하면서 거기에다 LEAF라고 리프라고 써줬겠죠. 그런데 그리고 이제 말이 안 들리니까 선생님이 말을 해도 못 알아듣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이제 예를 들자면 작은, 작은 잎파리가 있을 수 있고 큰 잎파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설리반 선생의 도움으로 레드 클리프 대학을 졸업하게 되요. 그런데 이게 하버드예요. 하버드. 그래서 예를 들면 옥스퍼드 대학 안에 작은 단과대학들이 있어서 그래서 거기에 킹스 칼리지 그 다음에 막달린 막달라 마리아죠 막달린 대학교 이렇게 있듯이 그 하버드 안에 있는 그 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거죠. 굉장한 거죠. 엄청난 거죠. 그리고 일생을 사회 운동가로 활동해요.
그런데 그 2층을 보고 1층으로 이렇게 내려오는데 거기에 벽 쪽에 이 사람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이 밑에 성경 구절이 영어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 헬렌 켈러가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자기 손수 글을 쓴 성경 구절이 있었어요. 그게 바로 시편 23편 4절이었어요. ‘내가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썼어요. 그리고 이분은 84세를 일기로 하나님 나라로 가게 됩니다. 갈 때까지 빈민들을 위하고 또 문맹자들을 위한 운동, 사회적으로 돕는 일에 헌신하면서 일생을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지금도 거기에 가보면 세계 각 나라에서 헬렌켈러에 대해서 쓴 책들이 많이 여러 나라 언어로 비치되어 있어요. 한국 책을 못 봤어요. 그런데 어쨌든 헬렌켈러는 그런 시련들을 믿음으로 극복해 내면서 그러면서 저렇게 하나님의 일을 한 훌륭한 사람이 된 거죠.
그러니까 시험이 결코 우리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조차도 우리를 좋게 만드시려면 시험을 사용하셔야 한다는 은혜로운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1. 성경에서 말하는 인내란 무엇입니까? 믿음과 사랑으로 참는 것입니다.
시험이 온전한 인격을 이루는 데 어떻게 도움을 줍니까? 결국은 우리를 잘 참고 견뎌서 은혜와 사랑으로 이기면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시험이 완전한 생활을 하는 데 어떻게 도움을 줍니까? 하나님을 사랑함로서 선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선한 일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잘 구비되게끔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4번 우리는 하나님 덕분에 세상적으로 잘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거짓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때문에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참된 기독교인은 하나님 때문에 거룩해 지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거룩함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령한 행복입니다.
오늘 첫 번째 공과를 마쳤습니다. 여러분, 어떠셨습니까? 좋으셨습니까? 이제 제가 새로운 문체로 쓴 이 일과를 꼼꼼하게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2019년도에 설교했던 시험을 이기는 길이라는 시리즈를 집중해서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이 어떠한 시험에 있든지 잘 벗어나고 이기고 승리해서 면류관을 받으시기 바라고 또 이 지식을 가지고 사랑의 마음으로 시험에 빠져 있는 지체들을 말씀으로 붙들어 줄 수 있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정말 큰 섬김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