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더 값진 예물
-참회가 있는 예배입니까?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녹취자: 장미연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벚꽃이 만개한 계절입니다. 정말 너무 아름답고 벚꽃뿐만이 아니라 개나리, 진달래 모두 한꺼번에 목련까지 피어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계절입니다. 정말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구나” 하는 말이 실감나는 계절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느덧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를 8장까지 나가고 있습니다.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마지막 1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정말 많이 달려왔지요?
오늘은 “더 값진 예물-참회가 있는 예배입니까?”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헌금도 예배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배웠지만 이제 우리는 또 한편 이 예물보다도 더 값지고 소중한 것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우리의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사실 이것 없으면 찬송도 기도도 헌금도 모두 의미가 없다고 해야 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 같이 시편 51편 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아멘.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밧세바와 간음 사건이 있게 되지요. 이때에 다윗은 신앙의 길에서 넘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려고 하지만 이미 마음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싸늘하게 식었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에게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사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건 당연하지 않을까요? 제사 그 자체가 죄 있는 사람을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제사로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한 것은 아주 훌륭한 아이디어였습니다. 더욱이 다윗에게는 제사를 드려 줄 제사장들이 얼마나 제사장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한 나라의 임금인데 바칠 제물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이 세상 누구도 드려보지 못한 최고의 성대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능력이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하나님이 전혀 그 제사를 받아주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다윗도 그의 마음으로 양심으로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뼈저린 고백을 하게 됩니다. 시편 51편 16절입니다. 우리 같이 읽어볼까요?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제사는 그냥 일반적인 제사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번제는 제사를 드리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번’ 불에 태운다는 뜻입니다. 제물을 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짐승을 태워서 드리는 그 번제는 굉장히 많은 정성이 필요합니다. 짐승을 가져오고 거기에 제사장이 기도해주고 그 짐승을 잡고 그 짐승의 각을 뜨고 그중에서 필요한 부위를 잘라내어서 불에 태워서 하나님 앞에 바치는 시간도 굉장히 많이 소요되는 큰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일을 위해 정성을 쏟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왜 기뻐하지 않으셨을까요? 무엇 때문일까요?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제사를 드리는 헌제자. 제사를 드리는 사람 헌제자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내용과 헌제자의 삶이 일치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시는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뇌물의 개념으로써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헌제자의 삶이 제사에 합당한 경우에 하나님이 마음을 다해 드리는 그 제사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삶이 부득이해서 제사에 합당한 삶을 못살았다면 거기엔 깊은 회개가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제사로서는 실패했지만 결국은 다른 계기로 영혼이 돌이키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말씀을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지요.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라 하리라.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고 하는 엄청난 재앙의 말씀이 선고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결국은 역사 속에 다윗의 생애 안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나단 선지자의 지적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그 말씀을 깊이 깨달을 때에 성령의 감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 다윗은 간절히 회개하게 되고 하나님을 열렬히 갈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깨지고 상한 그 마음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쳐질 때에만 그 제사가 진정한 제사가 될 수 있다는 오묘한 복음의 비밀을 다윗이 이 사건을 통해서 깨닫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과만 교통하던 아주 순결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다윗의 모든 아름다운 정원과 같은 그 마음에 세계를 황폐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서 다윗은 자신이 이런 범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죄를 통해서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모든 죄를 짓는 사람이 이런 은혜의 세계를 경험할까요? 아닙니다. 죄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돌이켜서는 사람이 그 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죄를 싫어하게 될 때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시인이 드디어 진정한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말할 수 없이 놀라운 시인의 심정이 여러분에게도 전해집니다. 그게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첫 번째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옵소서.’ 왜 그렇습니까? 이제 그 마음이 이미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던 정직한 정신을 사라져버리고 비겁하고 두려움에 가득 찼기 때문에 부정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쫓겨날 것 같은 위기를 느꼈습니다. 성령을 거두실 것 같은 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요? 다윗의 전임자가 누구입니까? 사울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버림받는 장면을 이 시인이 생생하게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부으신 성령을 거두게 되자 그냥 사울은 보통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악신이 그에게 임하여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게 너무너무 무서웠던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 지점까지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죄의 그 어마어마한 능력을 그는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주님 앞에 새로운 걸 구합니다.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라는 기도였습니다. 그 구원의 즐거움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그때 깨달은 것입니다. 다윗은 이전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건져주신 구원을 수없이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때마다 한없이 즐거웠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해주시는 것을 그의 온 마음과 영혼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겼을 때 적을 무찌른 것도 행복했지만 그러나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를 깨달으며 하나님 앞에 감격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깊은 웅덩이와 같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조차도 결국 하나님이 구원해주시면 그의 마음에는 환난에도 불구하고 큰 기쁨이 넘쳤던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행복입니다. 여러분 이런 행복을 누리고 싶지 않습니까? 아멘. 이 행복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내게 회복시켜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셔서 나를 붙드시옵소서. 이제 하나님 앞에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 두려워서 무서워서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꺼운 마음으로 그것이 너무나 즐거워서 행하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심리학자였습니다.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이 사람처럼 깊이 파고들어가서 이해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다윗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게 됩니다.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목을 회복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고통을 경험하면서 자기가 깨뜨려지고 그렇게 자기가 깨뜨려진 가운데 정말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자화상들을 세워 나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이고 이 일이 우리의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일어나야할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보면 결국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가장 훌륭한 제물이 무엇인가?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는 태워드리는 연기를 하나님이 흠향하시고 뿌리는 피를 주님이 받으시고 또 그 피로 맹세하는 사람들의 서원을 들으십니다. 짐승의 고기는 하나님께 바쳐지고 혹은 제사장에게 드려지고 혹은 그 짐승의 고기를 모든 사람들과 함께 먹으며 공동체의 일체를 누립니다. 화목제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것은 결국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냐 하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바쳐져야할 예배자의 마음. 즉, 헌 제자가 이런 제사를 드릴 때 자기의 마음에는 일체의 변화가 없이 그냥 짐승만 죽이고 피를 뿌리고 짐승의 고기만 먹는 것이 되어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제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헌제자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 결국은 죄에 대해서 어떻게 나타나냐 하면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상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그릇에 이렇게 금이 간 것입니다. 금이 가거나 아니면 이렇게 깨뜨려지게 된 것입니다. 금이 가거나 깨뜨려졌다고 하는 것은 원래 하나로서 존재했던 이것이 뭔가 그 내부적으로 불화가 일어나고 있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구성 요소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진 심령은 율법과 양심으로 각성된 심령입니다. ‘그게 뭐 다른 사람도 그러고 사는데 누가 나를 정죄 할 거야?’ ‘그래 내가 그렇게 잘못했다. 어쩔래?’ 이러던 마음이 율법과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두려움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예전에 없었던 각성이 일어나게 됩니다. 깨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 내가 이러면 안 되는 것이었구나.’ 그러면서 두려운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엄위와 심판에 대한 그런 무서운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여기에 나오는 통회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게 아니라 짓이겨진 마음입니다.
예화) 여러분 혹시 아세요? 사당 사거리 가면 지금은 거의 다 없어지고 딱 한 집 남았는데 요새도 하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집 있을 겁니다. 몇 년 전까지 있었어요. 한 집이 태평 백화점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 앞쪽에 포장을 치고 튀김을 하는 집이 있습니다. 그중에 한 집이 닭튀김을 해줍니다. 통닭을 튀기는 게 아니라 닭을 잘게 칼로 짓이겨서 닭을 양념을 해서 살코기를 해서 이렇게 뭉쳐서 고로케처럼 튀기는 것입니다. 원래 그 사당동이 옛날에 개발되기 전에 엄청나게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제가 1968년도에 친구네집이라고 해서 왔는데 볼 수가 없는 달동네였습니다. 나는 그래서 사당동이 모래사자인줄 알았습니다. 모래가 엄청 많았고 밤이면 몰래 건축 자재 만드는 사람들이 모래를 리어커에다가 훔쳐가고 그랬습니다. 노동자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 굶주릴 때니까 노동자들에게 단백질과 지방이 필요한데 공급할 수 있는 통로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당동에서 노동자를 위한 튀김집들이 생겼는데 닭 모가지 튀김이었습니다. 닭이 있으면 머리 부분은 잘라내고 부리 튀어나오고 이런 것들은 잘라내고 머리를 바짝 자르면 모가지가 남잖아요. 목뼈가 꽤 단단하잖아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옛날에 톱니바퀴 같은데 돌려가지고 오징어포 만들던 거 기억나지요? 한 번 구운 오징어를 한 번, 두 번 , 세 번 이렇게 돌려가지고 잘 찢어지는 오징어포를 만들었잖아요. 거기다가 생닭 모가지를 집어넣습니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여러 번 합니다. 그러면 그 닭 모가지 뼈가 가루로 으스러져 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흐물흐물한 고기가 됩니다. 그걸 가지고 튀김옷을 입혀가지고 튀기면 닭기름이 줄줄 흐르는 아주 맛있는 닭 모가지 튀김이 됩니다. 그걸 노동자들이 사서 먹으면서 뼈가 나오면 퉤퉤 뱉으면서 기름기 있는 목 부분을 그렇게 먹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기서 나오는 통회하는 이라고 하는 히브리말 ‘다끄에’라고 하는 단어가 바로 그렇게 닭 모가지 뼈 같은 것들을 망치로 두드리거나 아니면 톱니바퀴에다가 수없이 통과시켜서 완전히 살과 뼈가 한꺼번에 짓이겨진 상태. 그런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설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다 물같이 녹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빚어질 여지가 충만한 그런 상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날 빚으소서 기도하오니’하는 그런 찬송처럼 주님에 의해서 기꺼이 빚어질 그런 마음이 된 것입니다. 이 통회하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훌륭한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한 심령이 발전해서 통회하는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진정한 영적 제물인데 이런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이 정말 하나님 앞에 의미 있는 헌금이고 이런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찬양이고 이런 마음으로 듣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심령을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이번 주에 상한 마음이었습니까? 깨어진 마음이었습니까? 짓이겨진 마음이었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께 온전히 바치고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받으시고 응답해주시는 주일예배였습니까? 이번 부활절 예배는 꼭 이런 예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렇게 아주 높은 의자에 앉아서 고관대작 행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죄와 허물이 많은 자, 상한 마음으로 회개하는 자.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입니다. 상한 마음으로 회개하는 이것. 그다음에 통회하는 심령으로까지 나아가는 이 기도. 통회하는 심령으로까지 나아가며 하나님을 찾는 이러한 간절함은 이런 사람을 능가합니다. 우리 밑에 나오는 성경 구절을 같이 한 번 읽어볼까요?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아멘. 어떤 처지에 있든지 이렇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문제 1번입니다. 범죄 한 다윗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제사였습니다.
다윗이 통회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나단 선지자의 지적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고 이 말씀의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 없이는 누구도 회개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3번입니다. 죄 때문에 깨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서만 다시 하나님과의 화목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용서를 비는 간절한 갈망이 마지막으로 가장 훌륭하게 녹아있는 것. 비유를 하자면 어떤 사람이 바라는 바가 있어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밉니다. 도와달라고. 그때 이렇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이것이 기도입니다.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기도. 통회하는 심령으로 드리는 기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사람의 구체적인 실천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이 용서를 구한다는 믿음을 기도의 실천을 통해 보여야 되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이란 무엇입니까? 깨어진 심령. 죄를 깨달으며 각성된 마음. 용서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님만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5번. 상한 마음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의를 바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리스도입니까? 자기의 공로로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그 당시에는 제사로 지금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용서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에게 믿음을 보시고 당신의 나라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염려의 관하여” 라는 책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는 방법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즉, 어떻게 사랑이 정의를 완성하는지 그 부분을 읽어보시면 아마 커다란 신학적인 감동을 받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 아주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이 봄날에 야외도 구경하시고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시고 교회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속히 오도록 기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