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자기 심판과 자기 처벌
녹취자: 이 솔
성도 여러분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자기 깨어짐 제7장 자기 심판과 자기 처벌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표지에 나오는 이야기를 한번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자기 심판과 자기 처벌은 자기 부인의 의지로서 자신의 죄를 변호하려는 부당한 자기 사랑을 누르고 영혼에 다른 기능들의 도움을 받아 객관적으로 자기를 심판하고 처벌함으로써 죄를 향해 옛 자아를 죽이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 심판과 처벌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제 하나님이 말씀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성령의 조명을 주시죠. 그렇죠. 그리고 그 하나님의 율법을 올바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양심이 작용을 하게 되죠. 그래서 이제 율법의 기능은 정죄고 그다음에 이제 이게 이제 판단을 통해서 그 유죄 판결을 받는 걸 정죄라고 그러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이제 양심의 기능은 송사예요. 잘못됐다고 계속 법정으로 보내는 거죠. 그래서 잘못됐다. 잘못됐다. 넌 틀렸다. 그리고 이제 소송한다 그럴 때 송사예요. 송사를 하는 거죠. 송사를. 이것은 정죄를 하고. 그래서 이제 성령의 조명이 있는데 이제 이것은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엄격함을 인식하고 그다음에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비추어서 죄를 인식하게 하는 거죠. 그때 이제 우리의 영혼의 상태 그다음에 삶과 율법 이런 것들을 함께 인식하면서 이제 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는 상태예요. 이게 성령의 조명이죠. 성령의 조명은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그 빛을 주시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도덕적인 문제와 관련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에 양심의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사용하여서 그다음에 마음과 행동의 시비를 판단하고 송사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법정에 고발을 하는 거죠. 자기 자신을 고발하는 것. 결국 이것이 없으면 자기 깨어짐에 이룰 수 없겠죠. 그렇죠. 이것만을 가지고는 자기 깨어짐을 이룰 수 없지만, 이것 없이도 자기 깨어짐에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자기 깨어짐에 이르도록 기여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다음에 이제 하나님의 법정에서 이제 이렇게 자기 심판을 받게 되고 유죄 판결을 받게 되죠. 그렇죠. 그건 자신의 죄를 자기가 잘못됐다는 거를 깨닫지 않으면 자기가 깨어질 수 없겠죠. 그렇죠.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깨어지는 걸 기대할 수가 없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그게 뭐냐 하면 자기 자기에 대한 유죄 선고예요. 유죄 선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는 걸 뭘 통해서 깨닫는다 그랬어요? 율법을 통해서 양심의 작용으로 깨닫게 되는 거예요. 이게 성령의 조명이 있는 거죠. 그다음에 이제 자기 심판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자기 깨어짐의 대상인 자아. 이것은 신자의 부패한 옛 성품 옛 본성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법정에서 유죄로 판결을 받고 그리고 이제 되는데 이제 그 전에 어떻게 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느냐 하면 자기 부인의 의지 그러니까 자기를 부인하려는 그 의지 안에서 조명을 통해 죄를 확신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마치 이제 자기 자신을 또 다른 사람인 것처럼 또 하나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심판해요.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자기 깨어짐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자기 심판이 이루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 깨어짐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그 이렇게 하나가 되어서 여기에 이렇게 그 이렇게 거듭난 새 본성이 있고 그렇죠. 그다음에 이제 이렇게 옛 본성이 있는데 이게 평상시에는 이렇게 다 모두 묻혀서 그냥 하나인 것처럼 살아가요.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면 때가 되면 이제 이게 의식 속에서 분리되기 시작하는 거죠. 둘 사이에 충돌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받으면서 말씀의 빛을 받으면서 이제 새로운 본성과 옛 본성이 갈등하는 게 눈에 들어온단 말이죠. 그때 이제 이렇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죄를 확신하게 되고 그 다음에 그 죄에 대해서 양심의 법정에서 고발을 받아서 심판을 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자기 깨어짐에 이르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거죠. 어려운 것은 아니에요. 뭐 늘 우리가 경험하는 거니까. 자기 심판이에요.
자 이제 양심과 자기 심판이에요. 이제 양심의 기능이 뭐냐 하면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의식하는 거예요. 그리고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발하는 거죠. 그리고 죄를 하나님 앞에 악이라고 판단해요. 그런데 이때 자기 혼자 그냥 판단하는 게 아니라 율법을 사용해서 율법을 사용해서 판단해요. 율법은 하나님이 돌판에도 새기고 인간의 마음에도 새기셨죠. 그래서 그 양심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이 의식 안에서 작동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을 모르는 사람도 마지막에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 근거가 뭐냐면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이런 그 십계명을 심으시는 거죠.
그다음에 죄에 대한 가책으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슬퍼하고 죄의 경향성을 보고 용서와 은총을 갈망합니다. 죄를 향한 부패한 욕망을 마치 범죄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처벌을 하는 거죠. 이것은 발현됐을 수도 있고 안 발현될 수도 있는데 어쨌든 이렇게 저희가 이렇게 있는데 이렇게 외적으로 이렇게 그 행동으로 죄를 지어요. 그것을 통해서 거슬러 들어가면서 이 안에 죄를 짓게 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집요하게 찾아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때 이제 여기에서 이제 말하자면 자기에 대한 그 사랑이 변해서 자기에 대한 미움이 되는 거죠. ‘아 내가 내가 하나님을 버리고 네 말을 듣다가 결국은 내가 이렇게 됐구나’라는 자기 미움이 생기는 거죠. 이게 자기 깨어짐의 계기가 되는 거죠.
그다음에 자기 처벌인데 자기 처벌은 뭐냐 하면 자기 심판을 통해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 후회하고 그 죄로 말미암아서 내적인 고통을 겪음으로써 이제 처벌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이게 어떻게 보면 그 하나님의 하나님의 그 꾸짖음이죠. 그것을 자기가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것을. 그래서 결국 자기가 깨어질 때가 되면 하나님 앞에 모질게 반응하는 마음이 변해서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내가 잘못했습니다 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이제 생겨나는 거예요.
나중에 그다음에 이제 고통의 선취적인 경험. 양심에 가책이 주는 고통, 죄로 인한 비참함의 상태에 이르는 고통, 마음과 영혼 육체에 이르는 고통,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죄에 대한 혐오 이런 것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면 내가 이제 이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잖아요. 그러면 내 마음에 이런 죄가 있어요. 그런데 이 죄를 실제로 저지르게 되면 하나님 앞에 처벌을 받을 거 아니에요. 세상에서 처벌을 받든지 아니면 불신자면 영원한 처벌을 받을 텐데 그게 아직 안 왔는데도 이 죄를 발견하면서 고통을 선취적으로 느끼고 겪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알겠죠? 그게 회개잖아요.
예를 들어서 내가 누구의 집에 돈을 훔칠 마음을 먹었어요. 근데 아직 실행을 안 했어요. 근데 회개할 때는 어떻게 돼요? 그런 죄를 짓게 되었을 때 그 뒤에 따르게 될 하나님과의 관계의 파괴, 그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 이런 것들을 모두 느끼는 거 아니에요. 그걸 이제 고통에 대한 선취적인 경험이라는 거죠.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이제 그 고통을 느껴요. 자기를 보며 아파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또 하나님께 불명예를 돌려드리고 그다음에 뭐 불명예를 배신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불명예를 드리고 그다음에 그분의 사랑을 배신한 거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결국은 이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고통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자기 처벌은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하는 후회예요. 그다음에 고통 이게 자기 처벌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처벌을 받으면서 자신은 죄를 짓고자 하는 그 마음을 버리게 되고 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게 되는 거죠. 고통이 크면 결국 포기하지 않겠어요.
그다음에 이제 그 죄를 인식하잖아요. 그렇죠. ‘이것이 죄다’라는 사실을 이렇게 이렇게 인식하게 될 거 아니에요. 인식하면 이것은 결국은 두 가지를 앞을 내다보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직 죄를 안 지었어요. 근데 자기가 죄를 지어요. 그러면은 어떻게 돼요? 결국은 섭리 속에서 하나 이렇게 징계를 받겠죠. 또 그다음에 마지막에는 결국은 마지막에는 결국은 섭리 속에서 징계를 받을 것이고 그리고 마지막 믿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없지만, 그러나 어쨌든지 간에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판단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건 너무나 분명하잖아요. 근데 이제 이렇게 이런 섭리 속에 징계를 받을 뿐만 아니라 결국은 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까지 함께 깨닫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십자가의 사건이 참여하는 신자 안에서 실제화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 수 있겠죠. 그게 무슨 뜻이냐면 죄를 인식하잖아요. 혹은 이제 그렇게 되면 결국 섭리 속에서 징계를 받겠죠. 아니면 이미 섭리 속에서 징계를 받을 수도 있죠. 그렇죠. 받고있는 경우일 수도 있잖아요. 그때 결국은 처음에는 자기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 게 괴로워서 하나님 앞에 매달렸는데 마지막에 도달되는 결론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이 이 사람 속에 실제화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죄에 대한 후회가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옛 성품이 그리스도 안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고 그래서 거기서 이제 그 그리스도의 죽음이 스며 들어와서 죄를 짓고자 하는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이제 자기 처벌의 고통을 경험하는 방식이에요. 자기 처벌의 고통을 경험하는 방식인데 죄를 올바로 인식하는 고통이 있고 그래서 죄를 확신하게 돼 경험적으로 확신하게 되므로 이제 고통이 시작이 되는 거죠. 그다음에 자기가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을 깊이 통감하게 되는 거죠. 그게 죄의 자각이에요. 확신이에요. 말하자면. 그런데 이제 섭리 속에서 이제 결국은 징계를 받게 될 거 아니에요. 이렇게 죄를 지으면 징계를 받게 된다. 그것을 인식하는 고통이에요. 그래서 이게 이제 아직 징계를 안 받았는데도 나중에 이렇게 받게 될 거라는 것이 이제 이 사람 속에 그 어떤 죄로 인한 결과를 미리 보게 되는 거죠. 율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죠. 이제 결국은 그러다가 보니까 이제 회고적으로는 그 회고적인 경험 이러니까 회고라는 건 이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옛날에 일어난 일이니까 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바로 나의 이 죄 때문에 못 박히셨구나’라고 하는 것이 깨달아지고 그다음에 이제 전망적으로는 심판의 고통을 미리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서 결국은 이제 자기 처벌이 이루어지게 되는 거예요. 이해하시겠죠.
문제 1 번. 자기 심판은 무엇이며 그것은 자기 부인과 어떻게 다릅니까? 자기 심판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법정에서 유죄로 판결을 내리는 것 자기 부인은 자기 사랑에 대한 의지적인 거부에요. 근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추상적이죠. 근데 이것은 이제 자기 심판은 구체적이에요. 내가 지은 구체적인 죄에 대해서 그래서 유죄 판결을 내리는 거예요.
2번 양심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판단과 관계가 있어요.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심으신 율법이 마음 안에서 작용하는 그 기능이 바로 양심이에요. 그 다음에 우리가 죄를 감추지 못하도록 하나님 앞에 우리를 고발하는 기능을 하는 게 송사라고 그랬죠? 그렇죠. 송사. 송사하는 거죠. 판단과 송사예요.
그다음에 3번. 자기 심판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이미 실행된 죄 아주 구체적이죠. 그렇죠. 구체적으로 ‘자기가 A라는 죄를 지었다’라는 것을 놓고 이제 심판을 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다음에는 마음에 아직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욕망으로 남아있는 이 죄 이거다 라는 것에 대해서 심판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4번. 신자는 자기 처벌 안에서 죄가 가져다 줄 고통을 선취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두 가지는 어떻게 요약됩니까? 양심에 가책이 주는 고통. 그것이 결국은 ‘아 내가 왜 그랬을까’라고 하는 후회와 그 다음에 심판에서 오는 그 고통이죠. 죄책감이죠. 죄책감 같은 거 대표적이죠. 이것은 뭐냐면 이것은 이런 것은 사실은 그 율법적인 회개도 가능한 거예요. 근데 이제 이런 경우에 이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느끼는 그 죄책감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하면 이거는 복음적 회개예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그 사랑을 거슬렀다 이게 이건 율법을 거슬렀다고 하는 거고 이건 하나님의 사랑이 용기가 되어서 그래서 이제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되는 거죠.
그다음에 5번. 자기 처벌을 통해 고통을 경험하는 방식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죄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고통, 그다음에 징계를 인식하는 고통, 마지막에 심판의 고통. 이것 때문에 이제 그리고 자기 가지고 있는 이 죄를 다시 생각하는 거죠. 결국 이것이 결국 모두 이런 세 가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버리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뭐 쉽게 이야기하면 그런 거 아니겠어요. 담배 피우던 사람이 누가 이게 담배 해악에 대해서 낱낱이 조목조목 이야기할 때 갑자기 싫어지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처럼 그렇게 이제 우리도 그 고통을 올바르게 인식하게 될 때 그때에 결국은 지금은 달콤해 보이는 이 죄가 마지막에 이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하는 것을 깨달을 때 그것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는 거죠.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러분 장마철에 건강 유의하시고 다음 주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