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제3장 죄와 은혜의 계획 (1)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롬6:14)
녹취자 : 김경애
성도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한주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지난 한주간도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졌나 했더니 100명에 육박하는데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기가 막히게 잘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유를 많이 풀어준 것에 비해서는 훨씬 더 국민들이 잘 협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잘 협조합시다. 어쨌든 주일에 교인들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하면서 삽시다.
오늘은 ‘죄와 은혜의 지배’ 죄와 은혜의 계획에 대해서 앞부분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잔존하는 죄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죄인인데 구원을 받고 나면 그러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시고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데 여전히 인간 속에 죄가 남아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원죄의 두 요소인 죄책은 죄에 대한 사법적인 책임은 칭의로 해결되고 오염은 성화를 통해서 일생동안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해져 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누구에게나 크기의 차이는 있지만 구원받은 자녀의 마음 안에도 잔존하는 죄가 있습니다. 그것이 없다는 것은 이단입니다. 잔존하는 죄가 있는데 그 죄는 사람 안에 있어서 이것이 점점 커져서 영향력을 확대해 가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이렇게 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영혼에 대한 지배력의 강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죄는 죄대로 계획을 가지고 있고 또 은혜, 여기서 은혜라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런 뜻이 아니라 우리 안에 주신 하나님 사랑의 감화입니다. 이것을 존 오웬 목사님은 그냥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은혜 이것은 이것 나름대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개가 충돌합니다. 그러면 공통된 목표가 무엇이냐 하면 지배력입니다. 무엇에 대한 지배력입니까? 인간의 영혼에 대한 지배력입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면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은혜는 당연히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 구절에서 혹은 축도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교통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은혜의 원천은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는 다시 한 번 반복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은혜라고 할 때 항상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무엇이냐 하면 ‘구원의 길’ 이 자체가 은혜라는 말로 부릅니다. 예전에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고 했는데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 자체가 은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이 은혜는 구원의 길이 아니라 ‘호의’입니다. 가치 없는 무가치한 죄인에게 베푸시는 넘치는 호의입니다. 그런 것을 받은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넘치는 호의를 주시는 것 그것을 우리가 은혜라고 부릅니다. 여기 죄와 은혜의 지배에서 은혜라고 이야기할 때는 이 세 번째 용례에 해당됩니다. 이 세 번째는 사랑의 감화입니다. 무슨 사랑이냐 하면 아무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의 감화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대들이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셨죠? 이제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그럴 때는 1번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이것은 몇 번입니까? 2번입니다. ‘너 요즘 은혜가 떨어졌구나!’ 몇 번입니까? 3번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 쓰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은혜는 사실 이 세 가지가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영혼을 지배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 세 번째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이 세 가지가 다 선물입니다. 그런데 특히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의 감화가 선물입니다.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선물을 받습니다. 그런데 양손이 있는데 한 손은 믿음이고 한 손은 순종입니다. 기가 막힌 설명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아무리 두 손을 벌리고 있어도 줄 사람이 안 주면 나는 그냥 공중에 손만 벌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크리스마스에 무슨 선물을 갖고 싶으십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전도사님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습니까? 우리 조희숙 전도사님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노트북을 받고 싶답니다. 혹시 선물하실 분 있으시면 참고 바랍니다. 노트북을 갖고 싶은데 조희숙 전도사가 두 손을 벌리고 아무리 이러고 있어도 노트북을 주는 사람이 없으면 이 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노트북을 선물로 주었는데 조희숙 전도사가 받았습니다. 그럴 때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 노트북 어떻게 생겼어?’ ‘내가 두 손을 내미는 수고 때문에 받게 된 것이야.’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말할 때 ‘믿음과 순종이 은혜를 생산해 내었다.’ 그러게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수단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처럼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렇기 때문에 이쪽에 나오는 것처럼 믿고 순종하지만 이것을 자랑하는 것은 안 됩니다. 왜? 이것이 은혜를 생산해낸 공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줄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입니까? 당연합니다.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런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랑의 감화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 피 흘리는 속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여기까지 모르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맑은 가을하늘처럼 명쾌합니까? 그리고 다시 책을 읽어 보십시오. 아주 쏙쏙 들어올 것입니다.
자 그다음을 보겠습니다. 다시 그리스도의 속죄로 들어가서 상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류 중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습니다. 그리고 순종합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믿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슨 의미냐 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의 뜻대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당연히 순종하게 됩니다. 당연히 내가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은 예수를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혹시 타교회에서 들어오셨거나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천지창조의 목적’ 이라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설교 란에 들어가셔서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8개로 된 시리즈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현재의 세계의 상태가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상태가 A라면 A’로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원래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회복시키는데 이바지하도록 하나님이 소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 세계 전체에 퍼지게 되는 우주적 구원이 되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인생관 세계관, 물질관, 이런 모든 것들이 다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똑바로 하나님을 향해 사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 다음에 보면 죄의 계획을 보겠습니다. 죄는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여기에 보시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죄가 들어와서 이렇게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오염시키는데 죄가 들어와서 오염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생물과 같습니다. 여러분 혹시 옛날일인데 가난할 때인데 40년도 넘은 45년쯤 된 이야기인데 돼지고기를 먹고 싶어서 잘라왔습니다. 냉장고가 없었습니다. 그날 해 먹으려다가 부뚜막에 놓고 들어가서 그날 못 해 먹고 그 다음날에 가서 보니까 곰팡이가 하루사이에 하얗게 피었습니다. 너무 아까웠습니다. 물로 박박 씻어서 그냥 구워먹었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굉장히 큰일 날 일입니다. 아무리 닦아내어도 상한 것은 속에서 화학적인 변질이 있기 때문에 먹으면 큰일 납니다. 젊을 때이니까 큰 탈이 나지 않고 먹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하루 만에 고기에 곰팡이가 이렇게 하얗게 필수도 있으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 곰팡이가 떨어집니다. 그 곰팡이가 가만히 있습니까? 잠깐 사이에 수없이 번집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조금 다릅니다. 바이러스를 생명이라고 하는데 바이러스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살았다 살아있지 않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활성화 되었다 비활성화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신문지상에 보면 가끔 이상한 뉴스가 나옵니다. 브라질에서 중국 사람들이 생선을 수입했는데 거기에 코로나 바리어스가 살아서 전달되어 왔다더라. 생물학에 대해서 너무 몰라서 그런 이상한 기사를 쓰는데 바이러스는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쓰지 않고 활성화되었다 비활성상태로 몇 십 년씩 있다가 다시 활성화되기도 합니다. 바이러스를 죽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락스입니다. 락스를 스프레이로 뿌리면 살아남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락스가 우리 몸에 해롭습니다. 거기에서 조심해서 균형을 찾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어느 대통령은 살균제를 몸에다 주사를 하면 안 되느냐고 하는데 본인이 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런 발언은 굉장히 무식한 발언입니다. 어쨌든 그래서 죄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죄가 확장됩니다. 그러면 잔존하는 죄는 누구에게나 있는데 왜 이 사람 속에는 계속 죄가 성장하고 결국은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인 범죄를 하는 것입니다. 개별적인 범죄는 무엇입니까? 특별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죄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게으름, 돈을 사랑함, 승질부리는 것입니다. 성질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승질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교만입니다. 이런 것에 도움을 받으면서 죄는 급속하게 성장해가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들을 총 지휘하는 친구가 사탄입니다. 그래서 죄의 목표는 무엇이냐 하면 영혼 전체를 새카맣게 물들여서 거의 자기의 영향력에 의해서 기계처럼 움직이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자, 보겠습니다. 성경구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주관치’ 라고 번역된 이것이 ‘퀴리유세이유’라고 읽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님이라는 단어가 같은 어근입니다. 그래서 주인노릇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자가 죄를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명심하셔야 합니다. 주관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번에 성취된 구원은 무엇입니까? 죄를 용서받았고 죄를 누를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죄 없이 살 수는 없지만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어떻게? 은혜를 많이 받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종말론적 유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종말에 가서는 모든 죄를 하나님이 소멸하셔서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복습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가 옛날에 가르쳐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신국론에서 인간의 상태를 넷으로 분류했습니다. 첫째가 무엇이냐 하면 타락하기 전에 ‘죄를 지을 수 있는 인간’, 타락한 다음에는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그 다음에 구원 받은 다음에는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천국에 간 다음에는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것을 라틴어로 말하면 뽀새=할 수 있다. 빽까레=죄를 짓다. 논=없다. 그렇게 해서 뽀세뻭가레=죄를 지을 수 있다. 논뽀세논빽가레=죄를 안 지을 수 없는 뽀세논빽가레=죄를 안 지을 수 있는, 논뽀세빽까레=죄를 지을 수 없는 이렇게 라틴어 3개를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이것을 머리에 넣고 계시면 편합니다.
그러면 부활 안에서 충만하게 완전하게 소유하게 될 바에 대한 약속입니다. 무엇입니까? 구원을 받고 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면서 충만한 생명으로 죄의 지배를 받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와 의에 의해 지금 역사하고 있는 약속입니다. 지금 이미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신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긴장관계가 들어옵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만약에 구원은 받았지만 아까처럼 불순종하고 개별적으로 자꾸 죄를 짓게 되면 구원받은 자녀라도 결국은 이 죄가 점점 많아지면서 얼마든지 불신자와 같이 됩니다. 그것을 설명 드렸습니다.
그래서 지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죄가 성장해야 합니다. 지배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됩니다. 힘을 길러야 지배력이 강화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유혹을 합니다. 지금 유혹하고 있습니다. 유혹을 하면 제일 먼저 이것이 생각에 침투되어 들어옵니다. 생각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벌써 마음의 이런 부분들이 검게 변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변하면 이것이 감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이 신령한 은혜에 마음이 꽉 차있을 때에는 그것이 싫습니다.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회심하기 직전에 고등학교 때부터 팝송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거의 그것을 듣지 않고는 공부도 못할 정도였는데 회심하고 나서 어느 순간 듣기가 싫어졌습니다. 나는 그것을 듣는 것이 죄라고 생각해서 듣기 싫어진 것이 아니라 그 가락이 내 마음에 있는 것과 맞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에 맞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은혜로운 찬송 그리고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울려주는 클래식 이것이 변화된 내 마음하고 코드가 맞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집사님이나 권사님들이 요새 트로트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열심히 부른다고 해서 은혜가 다 상실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은혜가 충만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으면 그런 가락이 우리의 심성에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찬송, 클래식, 가곡, 뭔가 이렇게 인간의 감각적인 부분이 아니라 저 깊은 심성을 터치하는 그런 음악을 한번 맛 들여 보십시오.
어쨌든 감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되면 그러면 이 감정과 손을 잡고 의지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생각이 감정, 의지와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범죄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는 것입니다. 욕구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감정이 밀어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의지가 행동대장입니다. 실제로 이것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실행됩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죄가 실행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이 생각과 전부 일치되면서 죄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 마음은 더 검게 되고 굳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 같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는 연해짐, 살코기 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악순환이 돼서 계속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죄는 점점 크기를 더해가고 아주 작은 유혹에도 갈등의 시간이 줄어들면서 쉽게 범죄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점점 더 그런 영혼으로 만드는 것이 죄의 목표입니다.
자 그러면 어떤 식으로 성장하게 되는지 보겠습니다. 지금 죄가 공격합니다. 공격을 하는데 온몸을 갑옷으로 에워쌌습니다. 어디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부분이 맨살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이 부분에 창으로 찌르거나 칼을 꽂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운이 장사인 사람도 이렇게 결정적으로 아킬레스건이 있는 데를 한방 창으로 찔리거나 칼로 베어지면 제아무리 천하장사도 이 한쪽 발을 쓸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군인으로서는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데 심각한 지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쓰러집니다. 불신자처럼 됩니다. 죄가 점점 자라서 치명적으로 여기를 공격했지만 이것은 온 다리에 영향을 미쳐서 이 다리를 못 쓰게 만들고 이것의 신경이 뻗어나가서 이쪽 팔을 못 쓰게 만들고 부자유하게 만들어서 결국은 기운이 빠져서 온 몸을 쓸 수 없게 만들어서 마지막에는 출혈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전쟁에서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싸움을 못해서 이런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가 목표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사람은 생각 없이 죄를 지어도 그 죄를 짓게 하는 그 악을 행하게 하는 죄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바뀌어도 죄는 그 목표에 대해서 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변심하지 않고 부지런히 한곳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입니다.
자, 죄가 성장합니다. 그 죄는 어떻게 성장하느냐 하면 인간의 마음 안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죄, 사랑, 모두 같은 자리에 위치합니다. 다 여기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죄도 사랑도 신앙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신앙의 자리도 여기입니다. 그러니까 죄와 신앙이 똑같이 마음을 차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마음은 전쟁터입니다. 특히 신자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구약에서 이 마음은 히브리말로 ‘레바브’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의미냐 하면 생각, 느낌, 의지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죄의 자리입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무슨 뜻입니까? 이 마음 안에 죄가 꽉 차있으니까 생각하는 모든 것이 죄고 그 죄를 실행하고자 하는 계획도 죄입니다. 목표는 이것을 실천에 옮겨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이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또 마음은 영적인 갱신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할례를 베푸사’ 할례가 남성 성기의 표피를 벗기는 것인데 불결을 잘라내는 것인데 마음의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마음의 더러운 것을 모두 버리고 순결한 마음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도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리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마음 안에서 신뢰의 작용이 일어납니다. 당연히 자기의 똑똑함을 의지하는 이런 불신앙도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그러면 죄가 성장합니다. 그래서 죄도 인간의 마음을 영혼의 좌소로 삼아서 죄를 확산해 가고 은혜도 마음 안에서 확산해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가 사랑을 확산해 감에 있어서도, 죄가 인간의 마음에 죄를 확산해 감에 있어서도 결국은 신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어떻게 마음을 갖느냐에 의해서 이쪽 편을 들 수도 있고 이쪽 편을 들 수도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성경이 무릇 지킬만한 모든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지킨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뭐냐 하면 성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 성에서 적군이 쳐들어올까봐 군사들이 성을 지키고 있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지배되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무엇을 보호합니까? 당연히 부드러운 마음,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 은혜의 마음, 선한 마음 이런 것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선한 마음, 부드러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 은혜의 마음 이런 것들을 지킵니다. 이것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힘이 강해도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마귀가 내 손을 강제로 붙들어서 누구를 죽이거나 때리거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해되십니까? 여기서 소위 인간의 책임성이 등장합니다. 성화를 위한 책임성이 등장합니다. 이 마음의 상태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삶의 전 영역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속이기를 좋아하고 돈을 좋아하면 누구에게 그 일을 하겠습니까? 돈만 되면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부모도 속여서 유산을 빼앗을 수도 있고, 동업자에게 사기를 칠 수도 있고, 그리고 고객의 돈을 사취할 수도 있고, 남이 맡긴 돈을 자기가 횡령할 수도 있고 그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동원해서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리를 해서 두 문제가 나옵니다.
(문제1) 은혜는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주시는 것이지만 베푸신 은혜에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 계획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가득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문제2) 신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의 원대한 계획이 있듯이 죄에도 궁극적인 계획이 있습니다. 그 계획은 무엇입니까?
(답)신자의 영혼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지배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꼼짝 못해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 것이 지배입니다. 결국은 저항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거의 다 빼앗아 버려서 자신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할 수 있는 영혼을 만드는 것이 죄의 계획입니다.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