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냇물 흘러 흘러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아가 4:15)
녹취자 : 김경애
Q1
일단 우선 마음에 대한 자각이 생기는 것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생명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속에서도 잠깐 나왔는데 결국은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으면서 동시에 인간의 죄와 대조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서 여기에 복잡한 과정을 생략했지만 어쨌든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생명적인 관계가 다시 회복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이 부어지고 이 생명이 나를 움직여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결국은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소망이 생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너그럽게 대하고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메마르게 되었을 때에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를 깨닫고 회복된 마음에는 이렇게 생명이 넘쳐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동력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영혼의 힘입니다.
Q2
사람이 정말로 하기 어려운 일이 두 가지 있는데 마음에 누군가를 미워할 때 말하지 않는 것과 사랑에 빠졌을 때 표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는 원리가 알고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흘려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람을 움직이고 있는 삶의 동력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삶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은 거짓증거를 하고 싶어서 거짓증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은 많고 말은 많지만 인격에 사랑의 열매가 없습니다. 비록 자기가 많은 신앙의 내용들을 터득했다고 하더라고 기본적으로 사랑이 없기 때문에 결국 이 사람을 통해서 흘러나가는 것은 온갖 육체의 열매입니다. 여기서는(사랑의 열매는) 당연히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면 온갖 육체의 열매들이 맺히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 육체의 열매를 보면서 결국은 마음을 알게 되고 그 마음은 하나님에 대해서 보여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탐욕에 가득한 하나님이거나 아니면 우리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그런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는 것은 이런(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미 ‘경륜이 있는 복음’에서 설교를 다 했습니다. 우리의 목양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빌립보서 1장 9절부터 11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목양은 결국은 궁극적인 목표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 사실 이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이 목양을 하는 목표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고, 이미 사랑한 사람은 그 사랑을 점점 더 풍성하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목양은 마지막에 열매를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비판을 잘하고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해도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가’입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해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사람을 복음으로 인도하고 또 그 사람을 예수 믿게 만들었다고 할 때에 궁극적으로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상태는 어떤 상태입니까?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Q3
일치점은 시야를 동원하는 것이고 차이점은 시야의 방향입니다. 이쪽에서 보면 결국은 동산이 이렇게 있고, 우물이 있고, 샘물이 있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들어가고 14절에는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근 동산이 있고, 덮은 우물이 있고, 그 우물의 자장 중심을 형성하는 봉한 샘이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가고 여기서는 이 봉한 샘으로부터 우물을 만들고 시내가 되어서 흐르는 광경을 묘사해서 결국은 이것이 잠근 동산 안에서 흐를 뿐만 아니라 잠근 동산을 지나서 흘러서 동산 밖까지 부요하게 하는 그런 형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것이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 사랑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그 다음에 이런 사랑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삶으로 넘쳐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불행한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결국은 궁극적으로 선교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은 당신이 영광을 받으시는 그곳에서 인간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교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섬김은 자기 자신이 선하고 행복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 선하고 행복한 것은 그냥 도덕적으로 선하고 심리적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 속에서 그 선함과 행복을 누리는 사람으로 만드는 그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넘치는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Q4
결국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게 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결국 참된 복음은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입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그것이 마치 봉한 샘에서 우물을 거쳐서 시내가 되어 흐르고 그렇게 흐르는 가운데 모든 생태계가 다시 형성되듯이 똑같이 은혜를 경험한 사람에게서 그 생명이 솟아나서 넘치게 흐름으로써 참된 복음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7장 37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수라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 구약성경에서 이미 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이 생수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결국 ‘메화야’라고 하는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말하면 생명의 물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물인데 이 물 혹은 그 물이 생명의 물 생수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것은 시편 42편에 나오는 것처럼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다고 했는데 이 생수라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관계가 수립되고 그 관계를 통해서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생명을 힘입어 지탱해나가고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관계에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인간의 덕이라는 것은 영혼이 가지고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하고 그 속에서 은혜를 경험함으로써 마음은 생명수에 넘친다는 문학적인 표현을 말하는데 궁극적으로 넘치게 만드는 궁극적인 비결은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이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Q5
이렇게 보면 생명의 작은 샘물들이 있습니다. 비유를 해보자면 이런 것입니다. 작은 생명의 샘물들이 있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듯이 그 배에서 예수의 생명이 넘쳐흐릅니다. 그러면 이것이 흘러갑니다. 당연히 만약에 물이 굉장히 많으면 흐르는 물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존엄성에 있어서는 어떤 사람이든 똑같이 존엄한 사람이지만 실제로 하나님 앞에 얼마나 쓸모 있는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 각자에 따라 각기 그릇이 다른 것입니다. 그릇이 다르기보다는 각자에 따라서 각기 하나님을 향한 다른 효용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능도 주시고, 어떤 환경도 주시고, 다양한 것들을 주시는데 이중에 어떤 것들은 사실 우리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이 비록 적은 능력이라고 할지라도 만약에 이런 충만한 생명의 물을 가지고 있다면 이 사람은 주어진 한계 안에서 최대의 영향을 사람들에게 미치면서 자신도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이 사람이 아무리 많은 재능을 가지고 혹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렇지 못할 때에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 때문에 불행해지기도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 때문에 불행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의 물은 우리 안에 있는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가 물이 흘러가는 방향 자체를 결정하고 우리의 삶의 질 자체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우리에게 우리 각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지 성경이 허락된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기독교의 관심은 우파를 좌파로 만들거나 좌파를 우파로 만드는 그런 것이 성경의 중심적인 관심사가 아닙니다. 한 시민으로서 한 국민으로서 정치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고 다양한 나름대로의 판단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딘가를 추종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의 정치나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중요한 관심사가 이념의 길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명의 샘이 솟아나서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진리의 빛 아래서 하나님 앞에서 각자 자신이 성경에 가장 부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상의 어떤 측면들을 우리들이 성경과 위배될 때 당연히 비판할 수 있고 우리들이 그것을 거론할 수 있지만 기독교의 중요한 관심사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그 충만한 생명의 힘과 능력을 얻어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가 하는 것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여러분들이 구역장으로서 구역을 인도할 때 자기의 정치적인 성향을 너무 쉽게 드러내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최근에도 그런 유사한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에는 조용하던 구역원들이 좌, 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열변을 토하는데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목양에 있어서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눔으로써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게 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하기 바랍니다. 구역원이 짓궂게 물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신은 좌파냐 우파냐고 집요하게 물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되물어 보십시오. 그것을 내가 왜 말해야 하는지 말해보라고 말입니다. 구역원의 3명은 좌파고 3명은 우파인데 (구역장이) 아주 선명하게 어느 한 파에 속했다는 것을 말하는 그 순간 마음속에서 구역장은 사라지고 그 사람의 정치적인 성향만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가르치는 모든 가르침이 이념에 도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땅 위에 온갖 종류의 식물이 자랍니다. 그런데 독초도 기름진 땅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풀들도 기름진 흙을 먹고 번성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무슨 뜻이냐 하면 어느 한 정치적인 견해를 독초 아니면 유익한 풀이라고 비유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 땅 위에 박혀있는 모든 식물들은 땅이 기름진 것을 이용해서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예를 들자면 여러분들이 밭에 여기는 무, 여기는 배추, 여기는 고추, 이렇게 심습니다. 그런데 어느 식물도 땅이 척박할 때 좋아하는 식물은 없습니다. 땅이 기름진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하는 목양사역은 바로 이 땅 자체를 기름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고, 그 올바른 판단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목양을 통해서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교회가 목양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설득해서 좌파를 만들고 우파를 만드는 것이 교회의 존재의 목적은 아닙니다.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념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언제든지 그 신념은 성경에 의해서 부서질 수 있고 다시 세워질 수 있어야 하되 자기의 정치신념을 목양의 현장에서 공공연하고 어리석게 선포함으로써 정치적인 대립각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경의 근본적인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게 될 때에는 당연히 교회가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의 정부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면서도 각각의 영역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기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충만하게 받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흘려보내는 역할들을 함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이런 재능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흘려보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저런 재능으로, 어떤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데 결국은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 안에 있어서 넘치도록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사람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는데 이바지하는 그런 목양사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그래서 경솔하게 나는 좌파다. 나는 우파라고 선언해서 구역 자체가 정치적인 토론의 현장이 되도록 하시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Q6
생수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결국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통해서 영적으로 회복됩니다. 그 다음에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교회도 아주 다양한 견해들이 있습니다. 이런 속에서 성경이 이것을 규율합니다. 성경이 허락하는 근본적인 것들이 있고 세부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근본적인 것들을 벗어나 버릴 때는 참된 기독교신앙이 아닙니다. 이단이거나 이교에 속한 것입니다. 세부적인 사항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는 자기가 믿는 바를 고백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자기가 알미니우스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그런 교회를 찾아가면 됩니다. 그리고 각기 자신들이 믿는 바를 공동체적으로 고백했으면 여기에 있는 회원들은 이 고백을 따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교회의 규약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가르치고, 안 사람들은 그것을 생명으로 누리게 하면서 교회를 세워나갑니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은혜가 회복됨으로써 교회가 영적으로 회복되고, 이럼으로써 각 모든 사람들이 어느 현장에 있든지 그곳에서 자신의 영적이고 신앙적인 영향력들을 사람들에게 끼칩니다. 그럼 사람들도 다시 이런 교제로 회복되고 다시 교회의 회복을 돕고 세상의 영향을 미치면서 살아가는 순환이 일어나게끔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이루는 것이 궁극적이 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구역원들의 영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분과 생각이 조금씩 달라도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 한 여러분들이 그 사람을 존중하면서 그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돌보고 돕고 섬기는 것이 구역장의 임무입니다. 어쨌든 한해가 기울어져 가는데 그동안 여러분들이 너무나 수고를 많이 하셨습니다. 다음 주 한 주 구역장 모임을 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