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쁨의 좋은 소식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8-11)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성탄절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그분은 육신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 이미 이름을 부여받으셨습니다. 예수라는 뜻이니 이것은 그가 구원하신다하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성탄을 기뻐하는 것은 이것이 단지 세속적인 명절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속에 담겨진 구원의 의미 때문에 우리는 이 성탄을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그 참된 성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II. 목자들에게 나타난 영광
제일 먼저 목자들에게 나타난 영광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에게 나시고, 머물 곳이 없어 구유에 강보에 쌓인 채 눕혀지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기쁜 소식은 예루살렘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이나 귀족들에게 먼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던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들렸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취매”했습니다. 성경은 출애굽기 16장, 24장, 에스겔서 1장, 계시록 21장을 보면 하나님의 임재의 효과가 구름, 혹은 밝은 빛, 빛, 혹은 빛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빛은 자연적인 빛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런 하나님 영광의 빛이었습니다.
찬란한 영광이 그 목동들에게 나타났고, 이 기이한 현상을 보면서 이 목자들은 크게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는 두려워하지 말도록 그들을 안심시키며 기쁜 소식을 그들에게 알렸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큰 영광은 예루살렘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나타나지 않고 평범한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하층 사람들인 이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호위와 당신의 면전으로 이 목자들을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은 방금 생겨난 소식이 아니라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예고되어 오던 하나님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오심이 예고되었는데 그분은 거친 보자기에 싸여 말구유에 누이실 것이라고 사자는 가르쳐 주었습니다. 평범하게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낮고 천한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이 기쁜 소식이 들린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소란하고 번잡한 도시를 떠난 고요한 벌판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던 평범한 목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이 제일 먼저 들렸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 눈에 혁혁히 드러날 어떤 괄목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하게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며 사는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기꺼이 그 영광 앞에서 그 영광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 그들 앞에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의 탄생의 첫 소식을 전해주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렇게 들판에서 양떼를 돌보는 것과 같이 평범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함으로 주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사람들 마음에 나타나셔서 성탄의 의미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찮은 신분의 목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그 기쁜 소식의 첫 번째 수신자가 되었듯이 여러분도 아기 예수의 탄생의 기쁜 소식에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III. 큰 기쁨의 소식
큰 기쁨의 소식, 이것이 들렸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기쁜 소식일까요? 우선 기쁜 소식이 있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 상태가 나쁘거나 그만 못한 상태에 있음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이미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너희에게 100만원이 생길 것이라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에게 아주 적은 영광의 자리가 주어질 것이라고 하는 소식은 기쁨의 소식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에게 부자가 될 것이라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고, 억눌리고 짓밟혔던 사람들에게 권세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라는 것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A. 무엇이 기쁜 소식인가?
그러면 오늘 이 주의 사자는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기쁜 소식이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기쁜 소식이 기쁜 소식이 되기 전에 인간들의 상태는 어떠했을까요? 사람들은 각자 그냥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여기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이 자기를 창조하셨을 때 얼마나 존귀하고 명예로운 인간으로 창조하셨는지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 온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창조 세계 안에 당신 자신의 영광을 새겨 넣으시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온 세계를 만든 후 인간을 지으시고, 그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또 이 세상을 알고 인간을 알고 자기를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를 하나님의 마음에 맞도록 가꾸도록 그는 지음 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를 완전하게 창조하셨지만 그러나 더 이상 가꿀 필요가 없이 완전하게 창조하신 것은 아닙니다. 완전했으나 그 완전은 점점 더 아름답게 가꾸어 상승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완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완전함은 발전할 수 있는 완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이 세계를 가꾸고 다스릴 수 있는 탁월한 지성과 그리고 의지를 주셔서 그래서 하나님처럼 자신이 스스로 주체자가 되어 이 모든 세계를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끔 질서지우고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고, 인간은 그 일을 하면서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불멸하는 행복의 존재로 살기로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성품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반항했고, 하나님과의 계율을 깨뜨리고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교만한 결과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그 영광을 따라 지은 바된 이 모든 창조세계는 본래의 찬란한 광채를 잃어버렸고, 인간은 이전에 경험이 없는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망가진 세상 앞에 망가진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성의 능력과 의지의 능력은 살아있으나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활용되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 인간은 끊임없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미친 듯이 하나님을 뿌리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 인간은 이제 본래 부여 받았던 육신의 불멸성을 상실하고 일정한 시기가 차면 그는 한줌의 흙이 되어 이 땅으로 돌아갈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비참한 것은 자기 앞에 있는 이 세계가 창조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자기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공급받으며 살았던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결국 인간은 허무한 일에 굴복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도 이해하지 못한 채 어리석은 인생의 길로 줄달음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도 행복하지 않고 사람들도 행복할 수 없는 그러한 비천한 삶을 살다가 슬픔 속에 죽는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인류가 어둠 속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위한 한 소식을 언제나 감추어 인간들에게 전해지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한 사람에게, 한 가족에게, 한 민족에게, 한 나라에게 이 계시를 주셔서 언젠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 모든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죄와 그 모든 비참에서 우리를 건져내 주실 것이라고 하는 희망을 갖게 만드셨으니 이것이 바로 구원의 계시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타락하자마자 인간에게 주어졌고,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모두 허무하게 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구원의 소식이 인류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왔고, 어떤 때에는 찬란하게, 어떤 때에는 덜 분명하게 전해져 왔으나 한 번도 이 구원의 계시를 잃어버린 적 없고 또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구원의 날을 앙망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에게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으니 그가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 잃어버린 이웃들과의 관계, 파괴되어 버린 창조 세계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다시 우리 인류에게 당신의 사랑과 생명을 충만히 부어주시고 싶었고, 그 하나님의 갈망이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신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아기 예수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기쁜 소식이 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이루실 하나의 씨앗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잃어버린 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멸망할 인류에게는 기쁜 소식이었으나 그것이 기쁜 소식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에게는 슬픈 소식이어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죽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아기 예수는 곧바로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육신의 부모에 품에서 양육되며 인간이 무엇인지를 몸소 체득하게 하셨고, 죄는 없으셨지만 인간이 누구이고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이고 또 사람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워가셨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다 된 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예정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당신이 구원하실 모든 인류를 당신의 품에 안고 그들의 죄를 짊어진 채 그들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히고 그 모든 하나님의 저주를 한 몸에 받으신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범죄한 모든 인류를 향해 쏟아 부어지는 하나님의 진노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는 없으셨지만 죄인이 경험하는 모든 시련과 고통, 그리고 눈물과 아픔을 겪으셨고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30이 갓 넘은 예수 그리스도를 50살쯤 되신 분으로 여겨볼 정도로 그렇게 온갖 풍상을 다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육신으로 온 예수는 바로 당신의 그 인성 안에서 우리 인간들 구원받을 자들과 연합하셨고, 그들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셔야 했기 때문에 그는 사람의 몸을 입고 아기 예수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우리에게는 기쁜 소식이지만 예수님 자신에게는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의 길이었고, 할 수만 있으면 자신에게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싶으실 정도로 고통스러운 고난의 잔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사단조차도 하나님이 이런 방법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 아니 어떤 의미에선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멸망한 인간을 구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아기 예수로 이 세상에 보내셨으니 이것을 우리들이 기쁜 소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B.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하심
이것이 진정으로 기쁜 소식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하심 이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이른 바 큰 기쁨의 소식은 그냥 일방적으로 선포되는 큰 기쁨의 소식이 아니라 그 소식을 향해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그분께 생명과 사랑을 받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그 모든 공급이 끊어졌을 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한번 보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소망들을 품고 있지만 그 소망들 중 많은 것들은 선한 것이지만 많은 것들은 선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마음대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더 많은 이 세상의 자원을 끌어 모으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열하게 경쟁하여 세상의 자원을 빼앗고 자기에게 없는 자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거나 조달 받으면서까지 행복을 도모해 보려고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우리를 우리의 불행과 비참의 궁극적인 원인은 우리 인간이 원래 창조될 때 누리고 있던 하나님과의 생명과 사랑의 관계에서 끊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입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곧 사랑입니다. 그 생명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잇대어 그분께로부터 공급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명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 모든 생명은 창조되지 않은 생명이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있고 기동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지독하게 감기 몸살을 앓고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제도 아주 피곤하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아, 하나님이 오늘도 또 이렇게 살려 주시는구나.’ 우리의 육체의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매일매일 붙드심으로 그 생명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생명을 꼭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육신의 생명도 그러하다면 우리의 영혼은 어떻겠습니까? 우리의 어떤 것들은 우리의 육체의 생명을 북돋아줍니다. 보약은 원기를 회복하게 만들고 적절한 투약은 질병에서 우리를 도와줍니다. 그러나 어떠한 약품도 생명 그 자체를 우리에게 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일지 모르는 어느 시점에 하나님은 우리를 붙든 생명의 손을 놓으시고 이제 ‘네가 충분히 살았다. 이제는 나에게로 오라’ 하고 그 생명을 거두실 때 우리는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시 있다 사라질 우리의 육신의 생명도 그렇게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거늘 하물며 우리의 영혼은 어떠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매순간 붙들어 우리에게 사랑과 생명을 공급해 주실 때만 우리들이 하나님과 사람과 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쁜 소식은 오늘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친히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사실과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구원의 길을 버리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그 기쁜 소식에 의해서 예전에 우리들이 견제하고 있던 삶의 목적과 목표를 재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구원의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성적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과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던 이집트의 파라오와 중국의 황제들이 한 일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라오가 즉위하고 나면 즉시 자신이 죽게 되면 묻힐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고 중국의 황제들도 그러했습니다. 제가 마침 사역을 위해 방문했던 두 도시 중 한 도시는 진시황이 묻혀있는 그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깐 짬을 내어서 그 진시황의 왕릉을 가보게 되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전경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사람 실물 크기의 똑같은 크기의 인형을 토기로 구워서 그래서 질서 정연하게 도열하고 그리고 그들을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2,200년의 세월이 지난 후 우물을 파던 동네 남정네들 손에 의해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진흙에 찹쌀을 섞고 그 위에 꿀을 넣어서 반죽을 해서 최고의 공예가들이 사람의 모양을 만든 후 그것을 불에 구워서 일곱 가지 찬란한 색깔로 색칠을 해서 그래서 약 8000개의 인형을 정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위에 커다란 덮개를 하고 그 속에는 이제 수많은 무기와 왕궁에서 쓰는 금은보화들과 갑옷들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고 2200년 후에 발견된 것입니다.
뚜껑을 열었을 때 찬란한 색깔의 아주 아름다운 토기 인형들이 발견되었고, 놀랍게도 공기와 접촉하자마자 그 눈부신 색깔들은 모두 변색이 되었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주전 3세기에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천하를 손에 넣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최초로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를 만들었고, 그리고 소위 이야기하는 분서갱유의 끔찍한 사건도 저질렀습니다. 실로 자신이 온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의 자리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13살에 등극하자마자 그는 자신이 묻힐 그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라를 통일하고 박차를 가하여 어마어마한 규모의 능을 만들었는데 지금 우리 앞에 발굴된 것이 발굴할 수 있는 지역의 1/700이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것이 거기에 묻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당대의 최고의 임금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사람은 나는 행복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진시황에 대한 책 한 권을 밤에 모두 읽어버렸습니다. 그의 취미 중 가장 독특한 것이 있었는데 사람 죽이는 광경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시황 시대 때에 수많은 다양한 방법에 의해서 사람들을 죽였고, 그중에 가장 끔찍했던 것들 하나는 큰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끓는 물속에 사람을 집어넣어서 삶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 받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이 진시황의 취미 중 하나였다고 하니 이것이 어떻게 행복일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한 손에 가지고 있는 그 불행한 황제는 그 위대한 황제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수은 중독에 걸려서 미치광이가 되어서 결국은 객사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일생이 끝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이 세상에 있는 자원들을 모으고 그것들이 자신의 인생에 모든 결핍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만약에 우리가 그렇게 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하나님은 자기의 외아들을 사람의 몸 입혀 내려 보내는 대신 금덩어리를 하늘에서 떨어뜨리셨을 것입니다. 그 도시에서 젊은 목회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중국 안에 있는 큰 희망을 가슴 벅차게 말했습니다. 자신은 젊은이로서 이공계를 지원하여 돈을 많이 벌 생각으로 학교에 다녔는데 그렇게 무신론에 의해 철저히 교육받고 과학 제일주의적인 사고방식 속에 살았는데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슬픔과 그리고 비참함이 밀려오고 그 방황 때문에 살아갈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도자를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해 듣고는 그 모든 인생의 의문이 풀렸고,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 같은 인간을 이렇게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에 감격을 하고 결국은 가던 길을 모두 접고 복음 사역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비록 정규적인 신학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이렇게 자기가 만난 예수를 캠퍼스에서 젊은이들에게 전해줄 때 놀랍게 그들의 마음이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사실을 내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도시에도 이 기독교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잘 가르쳐 중국의 젊은이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에게 강조하였습니다.
저는 그 진지한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고 이제는 모두 물질을 숭배하고 그리고 유물론에 빠져서 모든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그들 중에 공허하고 그리고 마음이 빈자들, 그리고 고요한 들판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사람들 마음에 오셔서 당신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몸소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모두 맛보고 그리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을 굳게 믿는 사람, 누구든지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셔서 그 죄를 용서하고 다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부어주실 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이 세상에 오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라고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죄는 우리가 지었지만 형벌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시고, 형벌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셨지만 그 유익은 우리가 갖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구원은 단지 고통스러운 이 세상을 살고 난 후 슬픔과 아픔이 없는 하늘나라에 가는 것만이 천국이 아닙니다. 오늘 그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 성탄절의 의미를 모르고 사람들은 명절에 들뜬 마음으로 기뻐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이신 그분이 왜 사람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찬양) 머리에 가시 면류관 어이해 쓰셨는가 채찍에 피 흘리심을 우리의 죄 값인가 마지막 피 한 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그렇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이 죽으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으셔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빌어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 성탄의 기쁜 소식을 들으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를 메시아로 믿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삶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IV. 적용과 결론
예수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마땅히 있어야 할 사람으로 살려면 마땅히 지녀야 할 하나님의 생명을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는 형벌을 당하고 죽음 당하셔야 했고, 죽으시기 위해서는 사람의 몸을 입으셔야 했기 때문에 그는 2,000년 전 스스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화려한 궁전과 그리고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의 가문에 태어나는 대신 오히려 말구유간에 태어나셨습니다. 당신이 오신 이 첫 번째 아름다운 소식을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들려주셨고, 그래서 어떠한 못난 사람도 자신이 못나고 비천하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없다는 핑계를 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 목자들에게 첫 번째 소식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셨던 생애와 마지막 자신의 몸을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목재물로 바치셨던 그 예수의 사랑을 믿는 믿음이 요구됩니다. 한번 믿을 뿐 아니라 매일매일 그 사랑이 나를 살게 하고 그 은혜가 나를 붙들어 살게 하는 그 은총을 힘입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죽어있는 우리를 살리시고 살아계신 당신은 죽으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그분이 우리를 그 모든 죄와 비참 가운데 구하시기 위해서 당신 스스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어떻게 받은 구원인지를 생각합시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살려주신 이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생각합시다. 모두들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는 성탄절 속에서 자기를 내어주시기까지 우리 불쌍한 인간을 사랑하셨다는 하나님의 눈물을 읽읍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한없이 기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자기 아들 사람의 몸 입혀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주신 이 구원의 은혜에 헛되지 않은 삶을 삽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