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돌아온 사람
“이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 하니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서는
그 중 한 군인이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라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요 19:31)
녹취자: 신현희
오늘 이 장면은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마지막에 마치 예수님을 확인하여 죽이듯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물과 피가 쏟아지는 광경입니다. 이미 십자가 처형은 끝났고 사람들도 모두 돌아갔습니다. 이튿날은 안식일이기 때문에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아 두는 것을 그들이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이 십자가의 시체들을 모두 끌어내렸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이 복음서는 요한복음입니다. 이 기록 특히 창으로 허리를 찌르매 물과 피가 흘러나왔다고 하는 이 기록은 이 네 개의 복음서 중 오직 요한복음에만 실려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세 복음서에 없는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내용이 이 복음서에만 실려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56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께서 끌려가실 때에 제자들이 모두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이 이 복음서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자 물과 피가 쏟아지는 것을 자기가 직접 보았노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 요한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사람이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증인이 되었을까요?
성경은 이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있지만 이 모든 스토리를 성경을 근거로 재구성하자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잡히시던 날 밤에 결국 예수님은 체포되셨고, 이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한 사람이 예수님이 끌려가시는 그 광경을 멀찍이서 바라보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예수님이 끌려가시는 길을 먼발치에서 추적하였습니다. 가야바의 뜰에까지 들어간 것은 예수님이 거기서 어떻게 심문을 당하시고 어떻게 심문을 당하시고 경과가 어떻게 될까 한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예수님을 믿는 담대한 믿음이 부족했고 그래서 그는 거기서 부끄럽게도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마지막에는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하는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베드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나 이미 베드로에게 예고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린다고 할지라도 자신은 죽는 데까지 예수님을 따라가겠노라고 호언장담하던 이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닭이 울기전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그러한 배반에 개의치 않으시는 것처럼 돌이킨 후에는 내 형제들을 굳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당신을 모두 버릴 것을 아셨고, 그래서 이 십자가는 당신 홀로 짊어지고 가셔야 할 고난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배반할 제자들 중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노예의 몸값을 받고 팔아버린 사랑하던 제자 가롯 유다조차도 미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가 이르게 될 멸망에 가슴아파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당신을 배반하고 버린 제자들이 당신에게 용서를 빌기 전 이미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그들을 주님의 강한 사도들로 세우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커다란 두려움이 엄습하였고, 그리고 베드로를 제외한 나머지 사도들은 어디엔가 은신처에 숨어서 두려움으로 떨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함께 도망가서 한 곳에서 은신했는지 흩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이 로마의 군병들과 그리고 대제세장 수하에 있는 종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하여 흩어졌을 가능성이 많지요. 아무튼 그들은 은신처에서 오들오들 떨며 두려워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을 서슬이 시퍼래서 찾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의 수색에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의 사랑 가장 많이 받았던 어린 제자 중 한사람인 요한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실 그때에 그리스도께로 돌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세 번째 말씀 “여자여 보소서 아들입니다” 할 때에 요한은 함께 그 십자가 아래 마리아와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그 어느 시점에 그는 돌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 골고다 언덕을 가득 매웠던 사람들 혹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광경을 보고 혹은 가슴을 치고 슬퍼하며 혹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내려오는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거꾸로 거슬려 올라가고 있는 한 젊은 청년을 생각해 보십시오. 인파에 떠밀리면서도 그는 내려오는 사람들과 거슬러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의 제자인 것이 알려진다면 그 역시 처형을 당하거나 커다란 어려움을 당할 것이 분명했는데도 이 요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잠시 전에 있었던 두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고 있었다고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도대체 이 사람의 마음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던 것일까요? 두려움 속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쳐 어딘가 은신하며 떨고 있었으나 어느 한순간 예수님이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그리고 그분이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셨는지 자신에게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셨는지를 생각하면서 그는 이렇게 예수 홀로 십자에 못 박힐 때에 은신하며 두려워 떠는 것은 자신의 도리가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물론 사도는 예수님이 비록 여러 차례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에는 다시 살아날 것이라 가르쳐 주셨지만, 그러나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영광스럽게 부활하실 것이라고 하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향한 그 사랑이 이 요한으로 하여금 그 모든 두려움을 무릅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께 달려가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그 십자가 아래 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죽어가고 계셨고 그 십자가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땅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 계셨습니다. 그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제자의 마음을 풀어주시려는 듯 육신의 어머니인 자신의 마리아를 이 제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는 충실하게 주님께서 부탁하신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아달라는 그 모든 요청을 일평생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홀로 돌이킨 요한이었기 때문에, 그는 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어 가신 그 모든 광경을 십자가에서 남기신 나머지 다섯 마디의 말씀과 함께 모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최후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끌어내어 마지막 옆구리를 찔러 마지막 물과 피를 모두 쏟으시는 그 광경까지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옆구리를 찌른 로마병정들의 창은 허파를 뚫고 심장을 찔렀고, 거기에서 쏟아지는 그 모든 피와 모든 물들이 사도 요한이 보았던 그 흐르는 물과 피였습니다. 오직 이 사람 혼자 사랑하는 제자들 중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마지막 증인이 되었고, 그래서 다른 사도들과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마지막 죽어 가시는 광경을 이 사도의 증언에 의하여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멀리 떠났지만 한때는 두려움 속에서 주님을 버렸지만, 자기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자신의 생명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를 멀리 떠났지만, 그러난 어느 한순간 그는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베푸신 사랑을 생각하며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향해 다시 달려갈 수 용기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서 그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먹고 마셨던 요한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린 이 제자를 예수님은 특별히 사랑하셨고 아끼셨습니다. 사랑은 모든 죽음의 공포를 이겼습니다. 모든 핍박과 고난과 시련의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의 그 기억이 이 요한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래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로 돌아갔습니다. 그 분은 황금으로 만든 의자에서 금 면류관을 스신 영광스러운 분이 아니라 멸시와 욕을 당하고 죽으신 십자가였습니다. 그리고 핍박의 위험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이제 이전의 요한이 아니었습니다.
그 십자가의 의미를 모두 알 수는 없었으나 어쨌든 자기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이 이 요한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십자가 아래로 달려가 자신들을 위해 죽어 가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대면하도록 만들어주었던 것입니다.
(찬양)
새벽닭 울 때 난 괴로웠소, 풍랑이 일면 난 무서웠어. 하지만 이젠 두렵지 않아.
이 세상 끝까지 주님을 위하여 죽을 턴데.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날 위해 바친
고귀한 사랑. 당신과 함께 있고파서 사랑의 십자가를 나도 지네.
한때는 두려움 속에 예수를 버렸지만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생각하자 그는 마음에 깊은 찔림을 받으며 잠시 예수보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해 존귀하신 주님을 버린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무릅쓸 용기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아래로 달려갔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인격적인 신앙입니다. 여러분들을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주님을 믿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사 여러분을 이끄시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지를 생각나게 하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모두 그리스도께 돌아가는 사람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을 버리고 배신한 요한이었지만 그리고 당신 홀로 그 끔직한 고난을 당하고 계셨지만 사랑하는 제자가 돌아왔을 때, 오히려 마음을 풀어주신 분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당신의 모친을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시며 그 마음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당신의 십자가의 마지막 유일한 증인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이 새벽에 주님을 버리고 살았던 옛 삶들을 깊이 뉘우치고 예전에는 괴로워했고 풍랑이 일면 두려워했으나, 이제는 주님을 온전히 사랑함으로 두려움 없이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멀리 주님을 떠났든지 그리고 여러분들이 얼마나 많이 주님을 배반하였든지 개의치 아니하시고, 오늘도 주님은 거기 계셔서 당신께 돌아올 용기를 가진 여러분들을 용납하시고, 여러분들을 사랑으로 다시 받아줄 겁니다. 그러므로 이 주님께 돌아가는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