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따르라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눅 23:26-27)
녹취자: 백지영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해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는 장면입니다. 원래 십자가 형벌은 죄 지은 사람의 목숨을 끊기 위한 형 집행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묘사되기 전 그 앞부분에는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법을 모르는 우리들이 보기에도 이 재판은 매우 잘못된 재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재판은 죄 있는 사람을 데려다가 심문하고 그 죄의 사실을 밝혀 거기에 합당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 재판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부터 죄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받게 되었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점에서 잘못된 재판이었습니다. 혹시 죄 없는 사람을 잘못 알고 재판정에 세웠더라도 열 명의 죄수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 고금의 법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죄 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사형언도를 받았다는 점에서 이 재판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명절이면 한 사람의 죄인을 놓아주는 일이 있었는데 일평생 동안 죄를 지으신 적이 없고,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먹이시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고, 민란을 일으켜 살인한 바라바는 놓아준 재판이었기 때문에 이 재판은 잘못된 재판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잘못된 것은 재판장인 빌라도 조차도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였지만 군중들이 데모를 일으킬듯한 큰 기세로 재판장을 위협하여 내린 판결이었기 때문에 이 판결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잘못된 판결의 재판 결과를 그대로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당시 이 십자가 형벌은 죄 있는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었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조용히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는데, 이 십자가 형벌에는 두 가지의 규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이 십자가 형벌을 받을 사람들은 먼저 채찍에 맞는 형벌을 당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판결이 끝난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브라이도리온이라고 하는 왕궁수비대가 있는 곳으로 끌려 가셨고, 거기에서 심히 채찍질을 당하시고 매를 맞으셨습니다. 더욱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혀 가시면류관을 쓰게 하고 그리고 갈대를 들려주어 우스꽝스런 왕처럼 꾸몄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자여’ 하며 조롱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규례는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120kg에서 150kg은 족히 되었을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남기셨던 중요한 가르침은 의로운 삶, 올바른 생활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이 불의한 재판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죄도 없는 자신을 사형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내리고 채찍으로 때리고 무거운 십자가를 매달려 죽게 하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을 끌고 갈 때 예수님이 고요히 이 십자가 형벌을 당하신 것은 예수님의 평소의 가르침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였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재판이 불의한 재판이지만 이 재판의 결과를 당신이 감당하고 죽음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십자가가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때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왔습니다. 이렇게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은 이때가 유월절이라는 유대인 최대의 명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왔고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순순히 죽을 것이냐 하는 것은 최대의 뉴스 거리였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고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이 과연 순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인가 하는 것은 최대의 뉴스 거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빌라도의 뜰에 모였고 그 뜰에서 예수님의 재판의 결과를 지켜보았습니다. 간악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자 하는 음모를 꾸몄고 그래서 백성들을 충동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요구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십자가의 행렬을 뒤 따르고 있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뒤를 따라갔지만 오늘 성경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을 두 부류로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또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퍼하는 여자의 큰 무리들이라고 일컬어지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이 백성들이 누구였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 한 절을 보겠습니다. 3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새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그랬습니다. 47절입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했습니다. 더 볼 필요도 없이 이 두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던 이 백성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하기 위해 따라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어떻게 죽으시는지를 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던 구경꾼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는 광경을 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팔복산에서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실 때 감동을 받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많은 사람을 먹이실 때에 그 기적의 떡과 물고기를 받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구경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셔야 했습니까? 죄라고는 하나도 없으신 그분이 심히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면류관을 쓰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야 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채찍에 맞으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은 바로 이렇게 형벌 받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백성들을 위한 대속적인 형벌이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을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하나님께 형벌을 받으심으로 예수는 고난을 당하나 그 예수 때문에 우리들을 살리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경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이런 저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의 마음속에 이런 저런 감동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많은 기적을 베푸시고 놀라운 말씀을 전하실 때 들었고 그것을 보았던 사람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는 구경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었고, 예수님이 삼년 동안이나 아끼고 사랑하며 가르치시던 제자들은 모두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고,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때 그분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갔던 것처럼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우리 중에는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묶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는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단 한 번의 십자가가 아니라, 구원받은 이후 우리의 모든 삶이 이 십자가의 의미에 묶이고 이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굳게 사로잡혀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는 단 번에 우리를 위해 지신 십자가이지만, 이 십자가의 의미에 붙들린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걸어가는 우리의 모든 삶에 있어서 만나는 고난과 시련들을 십자가로 생각하고 이 십자가를 짊어지며 어려울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이루셨지만 그 십자가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이 부르심들을 감당해 나가며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성취해 가는 것이 이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십자가를 구경하면서 따라갔던 것처럼 또한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고백하지만 예수님의 이 십자가를 구경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신앙, 자신의 상식에 맞고 자기를 행복하게 할 때는 예수를 따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셔서 고난도 받고 시련도 감당하라고 주시는 날이면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십자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 이 성경에 나오는 백성들과 같은 사람들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이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기적과 그리고 그의 행하신 일을 보고 그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때 구경하며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실 뿐 아니라 죄를 지으실 수조차 없는 분이셨는데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바로 이런 백성들을 구원하여 죄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옮기기 위하여 당하신 고난이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지만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사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지신 십자가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대신 십자가를 타고 가려고 하고, 세상의 소금이 되는 대신 설탕이 되려고 하는 우리 신앙의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빛을 잃어버리면 이 어두운 세상은 빛을 찾을 수가 없고, 그리스도인이 참된 소금이기를 거부하면 부패하는 이 세상을 온전케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그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함께 고난에 참여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여러분들도 이 사람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았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의 떡을 먹고 그분의 은혜 때문에 매일매일 살아가면서도 사실은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는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구경거리가 되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고 할지라도 자기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져야 할 자기의 독특한 십자가를 깨닫지 못했다면 그 십자가를 지고 그 십자가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있다면 그는 진정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찬양)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아주 미묘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가장 가슴 아팠던 때가 사실은 가장 기쁨이 충만하였던 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그 고통을 내가 느끼며 아파할 때 주님이 나 같은 인간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나 자신을 주님 앞에 드리고 싶기 때문에 예수를 안 믿었더라면 져야 할 이유가 없는 그 십자가를 예수님을 믿게 되었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삶, 그것 때문에 늘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받을 때 사실은 그때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가장 컸던 때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한 인격 안에 동일한 시간에 기쁨과 슬픔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한 인격 안에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때문에 가슴 아파 하는 그 사람 마음 안에 충만한 기쁨이 있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고통의 생활 바로 그 속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타락은 바로 자기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 나같이 쓸모없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귀하신 그분이 십자가에서 흉악한 죽음을 당하셔야 했던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원의 은혜가 아주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릴 때 거기에서 모든 기독교인의 타락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찬양)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그런 십자가의 은혜가 눈물이 되어 흐르는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해 순종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영광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찰스 해돈 스펄젼이라는 영국의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성도는 마른 눈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눈에 자기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사라질 때, 인간의 마음은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놓으신 그 계획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는 삶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유혹에 지고 세상의 욕심에 따라가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이 십자가는 이 모든 삶의 훌륭한 처방이 됩니다. 분주했던 마음을 거두고 가슴에 손을 모두어 조용히 눈을 감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그리고 나 같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신 그분을 생각합니다. 자신을 지극히 낮추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합니다. 멸시와 욕을 당하신 지상 생애의 그 모든 쓰라린 고난이 바로 나의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핏빛 진노를 감당하고 짓이겨지는 고난을 당하시고 남으로써, 우리가 바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그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깨끗이 씻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라고 불러주시게 된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었던 우리들이 이제 무슨 일을 만나든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 어디서나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심을 생각합니다. 이 모든 축복이 오로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은 바로 이 십자가 사랑에 사무쳐서 그래서 나를 버리고 예수를 붙잡는 생활입니다.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붙드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자녀인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녀의 삶인 것입니다.
이렇게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경하며 따라가고 있었습니다만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른 방식으로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들이 예수를 뒤따르더라” 이 사람들은 멀리 갈릴리로부터 온 사람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여자의 무리들이 가슴을 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 여자들에게는 무엇이 있었길래 구경하며 따라가는 백성들과는 달리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을까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이 여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경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뒤를 가슴을 치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었고 슬피 울지 않고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뒤쫓아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여자들은 아직 복음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시면 얼마 후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는 십자가의 죽음이 자기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여자들의 마음속에는 백성들에게는 없는 예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투성이가 된 채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왕궁 수비대로부터 끌려나와 골고다 올라가는 길에 서게 되셨을 때 그분의 어깨에 매달린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보며 이 여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당신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주신 사랑의 감동이었던 것입니다.
신앙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세상을 사랑했고 나를 사랑했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난 다음부터는 날마다 나를 버리고 예수를 사랑하고 날마다 세상을 사랑하던 자신을 미워하고 나를 사랑하던 예수 그리스도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런 일들은 예수를 믿을 때 한 번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매일매일 일어나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회개의 신앙생활입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헌신한다고 할지라도 회개가 없다면 그는 점점 나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마다 떠오르는 십자가의 은혜, 나는 형벌 받을 죄인이요 어두움의 자식이요 진노의 자녀였으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이 깊은 감격, 이것이 없이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이렇게 매일매일 십자가 앞에서 깨뜨려지고 회개한다면 그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여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도 부활의 영광도 미처 몰랐지만 예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은 통곡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2000년 전 골고다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매일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잠잠히 하고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의 영혼의 시선을 고정시켜 보십시오. 그러면 도처에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는 모습이 우리에게 보입니다. 시련을 당하는 형제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애통해 하는 목회자의 마음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봅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인데도 세상을 더 사랑하여 그것을 버려 내버려 둔 그 교회의 현장에서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져야 할 십자가가 많이 있고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가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계셨더라면 함께 섬기고 고난을 받으셨을 그 일이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도처에서 이 십자가를 발견하게 만들고 그곳에서 주님을 섬기며 예수님이 거기에 계셨더라면 하셨을 그런 태도로 주님을 위해 봉사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섬기는 삶의 동기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지신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무가치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깨달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느끼는 사람, 그래서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가 자신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찾으셔서 당신의 십자가 고난에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나 새로운 신앙생활의 방법 그리고 교회의 부흥의 비결이 아니라,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의 의미가 모든 성도들의 가슴 속에 찬연히 드러나 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성도들, 그래서 이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하나님께 진 사랑의 빚을 생각하고 주님에게 받은 그 은혜의 크기와 넓이를 생각하며 감격할 수 있는 사람, 형벌 받아야 할 자신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과 화목한 당신 자신이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대속의 길을 열어주신 것을 생각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릴 때 이 세상 사랑의 마음은 사라질 것이고 순수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뒤를 따르려고 하는 제자의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고, 우리를 위하여 가르쳐 주신 기독교 신앙의 길이 바로 이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이 십자가의 죽음,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이번에는 내가 죽을 차례입니다.”라고 하는 죽음 신앙의 고백이 낯선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까? 고난 대신 영광을, 고통대시 기쁨을, 사명대신 나의 안락을 따르는 삶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증거인 것처럼 사람들에 의해 자랑되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복음 신앙은 진정으로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주시고 교회에 주셔서 이 세상에 있는 교회들로 하여금 하늘 뜻을 이루며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는 수많은 군중들보다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어두운 세상을 불꽃처럼 사는 한 사람에 의해서 복음의 도리는 더 잘 알려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셨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구경하며 따라갔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 여자들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슬피 울었습니다. 사랑이 시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아픔 때문에 가슴을 두드려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때문에 나같이 쓸모없는 인간을 위하여 예수님같이 고결하신 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리스도의 은혜 앞에 감격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세월이 많이 흘러갔어도 신앙의 원리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바로 그 사랑 안에서 나의 이웃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 가장 훌륭한 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고, 죄 없으신 그분이 이 더러운 인간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는 것도 예수님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릴 때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신 최고의 증거이기 때문이고, 이 최고의 증거에 대해 감격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증거들에 대하여 감격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깨닫는 대신, 오히려 이 세상에서 세상 때문에 기쁨을 얻어 보려고 하고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갖는 소유 때문에 행복해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하나님 이외의 다른 곳에서 기쁨의 근원을 갖고 있을 때 그의 영혼은 이미 망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자신들의 기쁨이 예수 안에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피투성이가 되어 끌려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뵈었을 때 한없는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였던 것입니다. 아마 이 여인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몰랐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난을 자신들이 대신 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간악한 로마 병정들은 예수께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는 이 여인들을 허락했을 리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고 계셨고 그 형장이 가까워 올수록 여인들의 울음소리는 피어린 통곡으로 변해 갔습니다. 이 여인들이 통곡하였을지라도 결국 사형은 집행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여러 곳을 다니며 우리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발에 못 박히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병자의 헌 데를 어루만져 낫게 해 주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으로 가득 찬 손은 나무에 못 박혔습니다. 지금도 조용히 눈을 감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찬양)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마지막 피 한 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처음 우리가 회심하였을 때 그 때에 우리의 마음에는 늘 슬픔이 있었고 우리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이 벌레 같은 나를 위해 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 비천한 인간을 영적으로 문둥병자된 나를 영적으로 소경이 된 나를 찾아오셔서 피 묻은 손으로 어루만지시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순수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신앙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거기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흘리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로마 병정들도 돌아갔고 슬피 울던 이 여자의 무리들도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예루살렘에 가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넘어진 곳에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종종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고난의 돌길을 걸어가며 소리 없이 흐느끼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비록 이 십자가의 행렬은 모두 흩어졌고 그리고 지금은 그 골고다 언덕에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보이지 않는 십자가는 지금도 교회 안에 있고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구경하며 따라가고 어떤 그리스도인은 지금도 교회에 남겨두신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을 생각하며 눈물로 그 십자가의 고난을 온 몸으로 느끼며 자신의 인생을 통해 티끌만큼이라도 그 주님을 섬기고자 하며 고난의 길을 갑니다. 여러분들은 이 두 부류의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서 예수를 따르지 않는 삶은 비참한 생활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할 때 세상을 배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주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세상은 이미 그 옛날 우리들이 즐거워하던 세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위해 지신 십자가를 기억하며 이 여자들처럼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함으로써 눈물로 이 십자가의 뒤를 따라 순종하고 헌신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