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함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새벽에 기도를 끝마치고 집에 가면서 저도 모르게 찬사를 불렀습니다. 산이 하얀 눈을 뒤집어써서 말입니다. 이게 금년의 마지막 눈이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눈 보다 좋은 것은 그렇게 눈이 오고 비가 오니까 온 땅이 해갈되었습니다. 인간이 지하수를 파다가 하루 종일 파다가 몇 평의 땅을 젖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크고 위대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오늘아침에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여시면 메말랐던 땅이 해갈을 하는 것처럼 여기 우리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은혜의 하늘을 열서야지만 우리가 풍족한 영적인 삶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남긴 위대한 고백 가운데 백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이 고백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저는 아직도 이 20절의 의미를 다 알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 20절의 의미를 완전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히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이 십자가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고 생각하다가 알아낸 결론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를 잘 읽어보면 은 20절은 문맥과는 상관없이 마치 삽입된 것처럼 들어가 있습니다. 이 바울은 2장에서 갈라디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쳐준 예수의 복음, 바울이 전한 복음을 버리고 할례도 받고 율법을 지켜야지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이단에 흐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사도바울이 설명해나가다가 갑자가 20절에서 이 개인적인 고백이 끼어들어 오는 것입니다. 삽입되어 있는 것입니다. 읽어보시면 20절을 빼버려도 아주 자연스럽게 19절 21절 3장으로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성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사도가 그러면 육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려는 이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교훈하다가 갑자기 개인적인 이야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까? 문제는 이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갈라디아 사람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단사상에 빠지는 것을 보니까 옛날 자기생각이 났습니다. 바리세인중의 바리세인이요.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며, 베냐민의 지파에서 가장 엄격한 율법의 도리에 따라 생활하고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언제나 그는 신앙을 생각할 때 마다 자기의 자랑이 떠올랐습니다.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라는 혈통, 유대인이라고 하는 선택된 선민의식뿐만 아니라 자신이 율법을 지키며 살았다 라고 하는 의로움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가득차 있었던 그때를 생각했습니다. 그때에는 그것 때문에 예수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내가 유익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까 이전에 자기가 자랑하고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자기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전에는 내게 유익한 것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나니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나로 하여금 예수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장애물 이였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와 같은 똑같은 오류에 갈라디아 교회교인들이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때 계속 율법을 지키면서 사는 것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육체가 없다는 사실,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설명하다가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무슨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사도 바울이 바로 자기의 죄를 위해서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자 자기의 모든 스스로 구원을 얻어보려고 하는 자기의 노력이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아니라 자기의 육체를 자랑하려고 하는 탐심 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지 않는 모든 자랑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자랑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고린도서에서 말하기를 ”무릇 자랑하려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찌니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자기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명령을 다 지키므로 말미암아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지신 십자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에 그가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고 나자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 십자가를 볼 때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고난이 얼마나 크고 엄청난 고난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고난의 비참함을 보면서 그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 죄가 얼마나 심각하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노력하는 것만으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더라도 하는 심각한 자기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왜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도 기뻐하지 않습니까? 왜 성경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하늘의 소망을 인해서 이 땅에서는 어떤 고통스러운 일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하늘이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소망을 갖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에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기뻐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을 숙명처럼 타고난 사람, 살아있는 동안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고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고 가슴 벅차며 감격해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기쁨이 없고, 죄 용서에 대한 즐거움이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하는 깊은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죄를 사하셨다고 하는 이 기쁘고 놀라운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렇게 자기의 죄를 사함 받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 동의 하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죄를 용서받지 못했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 것인가 하는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쉽게 말해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인이며, 자기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갖는 의미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서 그 죄의 지배를 받으며 죄의 종노릇하면서 살아가는 그 인생의 결국이 얼마나 비참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마지막 분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죄 사함의 은혜도 그를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깊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을때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끔찍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때 죄 사함은 얼마나 놀라운 감격을 그에게 가져다주겠습니다.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보는 순간 이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나 스스로 율법을 지키고 베냐민의 지파로 히브인중에 히브리인으로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며 살아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이 죄의 문제..율법을 지키고 그 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것이 율법이 내게 들어오고 그 송사가 내게 들어와서 각양 탐심을 이루고 결국 나를 열심을 내면 낼수록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던 이 율법의 깊은 한계 그래서 구원으로부터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절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자기의 죄를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피 흘려 죽으신 표적이며 지금도 믿는 마음으로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사죄함과 용서와 은총을 베푸신다고 하는 이 놀라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깨닫는 그 순간 그는 진정으로 자유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서 그가 흘려죽은 그 피가 바로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죄가 운데서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용서하시고 다시 살리신 놀라운 표적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깨닫는 동안 그는 이전에 하나님 앞에 구원을 얻어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며 율법을 지키며 자기의 의를 붙잡고 있는 동안에는 붙잡고 살면 살수록 더 큰 죄의 멍에가 자기를 지배 했습니다. 더 커다란 죄악의 고통이 자기를 종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서 자기를 속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 놀라운 구원의 십자가를 목격하고 그 십자가에 자기의 마음의 모든 시선을 모아서 그 십자가를 주목하는 그 순간에 그는 그 십자가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놀라운 진리의 빛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앞에서 나는 내스스로 죄 가운데서 구원해서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내가 내 자신을 세울 수가 없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깨닫고 고백하게 되자 드디어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는 일을 포기하게 되자 그리스도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 바울을 구원하는 위대한 사랑이 그에게 강물같이 흘러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순간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이렇게 소망 없는 인생을 위해서 피 흘려 자기의 몸을 값주고 사신 그 구원의 놀라운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무언가 말을 이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구원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하게 죽어간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에서 나타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그 사실을 피 흘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의 찢어진 그 살과 흐르는 모든 피가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 살기 원했지만은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으며 하나님 밖에서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려고 몸부림치며 투쟁하고 있었을 때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슬프시게 했던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사도는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사랑은 너무나 놀라운 사랑이 되어서 죄인중의 괴수와 같은 바울을 구원하였습니다. 혹은 무지로 말미암아서 혹은 알지만은 피할 수 없는 노예됨에 의해서 죄와 결별하며 살수 없어 그 죄 때문에 숙명적으로 불행과 고통가운데 살다가 자기가 심은 그 죄의 나무에서 사망의 열매를 따먹고 지옥의 불 가운데 고통할 수밖에 없는 그 처지로부터 헤어나려고 했던 그 수만은 날의 몸부림은 자기를 구원해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한 그리스도 예수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내스스로 잘 살아가고 내스스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한 그리스도 예수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는 그 그리스도 예수를 보는 순간 지푸라기와 같은 자기의 의에 놀랐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를 가리켜서 경건한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충성된 사람이라고 좋게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보는 순간 입을 다물고야 말았습니다. 자기의 살아온 모든 삶이 심지어는 하나님을 찾으면서 살아온 모든 삶이 죄의 덩어리였습니다. 그리고 죄악의 덩어리인 자기의 존재 앞에 놓여진 하나님의 끔찍한 심판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에 진노하시는 하나님과 형벌 받아야 맞당한 자기 사이를 가로막고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받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모든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무에 달려 가시면류관을 쓰고 손과 발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일생이 그 십자가에 사로 잡혔습니다. 자기 스스로 헤어날 수 없는 인생절대의 비극과 고통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형상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로부터 구원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가 힘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당하신 그 모든 고난과 고통은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그 십자가에서 내려놓고 가시면류관과 나무의 십자가와 그 나무에 박힌 못을 그대로 버려두고 예수 그리스도 대신 내가 거기에 못박히면은 가장 적합한 것이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끊임없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어찌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꼬 어찌하면 목자잃은 양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이 불쌍한 인생들을 위하여 살 것인가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분의 의식 세계 속에는 흩어짐이 없었고 그 분의 정신세계 속에는 사악한 욕망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머리위에는 가시 면류관이 씌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가시에 찔려 피 흘리고 계셨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속에서 자기의 머릿속에 있었던 수많은 더러운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를 저렇게 가시면류관을 쓰고 나무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그 손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가난한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누구도 손대지 않는 더러운 문둥병자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의 몸에 그 거룩한 몸을 대시고 치료하셨습니다. 고통 하는 자들의 죄인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그 손으로 씻기셨습니다. 그 손이 행한 일은 의롭지 않은 일이 없었고 그 팔로 행하신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슨 나쁜 일을 하셨길레 십자가에서 일평생을 섬기며 거칠어진 그 손에 굵은 못이 박혀져 있는 형상을 사울은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속에서 그는 문득 자신의 손을 보았습니다. 일평생 이 손으로 행하면서 살아온 그끔직한 죄악된 일들과 마지막에는 그 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증인 이였던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그 옷을 맡아서 쥐고 있지 않았습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그 발은 또 어떠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그 발로 데가볼리와 갈릴리와 유다와 심지어는 사마리아와 가이사라 빌립보에 이르시기까지 다니시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병자들을 찾아다니셨습니다. 이동리에서 저동리로 핍박과 고난을 피해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다니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발로 심방을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발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그분에 가슴속에 있었던 단 하나의 소원은 하나님과 등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였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거스르고 살아가는 인생들을 향한 진노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풀어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심지어 하나님을 향해 분노하고 하나님을 향해 노여워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풀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속에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의 어떠한지를 알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예수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날 동안에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을 받았던 그 사람들은 자기들을 향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던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을 찌르기 위해서 날카로운 창끝으로 옆구리를 후비었습니다. 그리고 그 창끝은 폐를 뚫고 심장까지 깊에 박혀 물과 피를 다 흘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찬양)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이러한 놀라운 사랑을 깨달은 최초의 사람이 바울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깨달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깨달았고, 그리고 갈리리 에서 왔던 수많은 여인들이 깨달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핍박 속에서 담대하게 예루살렘에서 굳게 서서 그리스도예수께서 나무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너희의 죄 때문이라고 외쳤던 베드로와 요한과 수많은 사도들에게 이미 알려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 알려졌던 그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 이것으로서 만은 이 사도바울의 인생이 바뀔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말로만 듣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못 박히신 그 놀라운 은혜를 예수그리스도의 발앞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형상을 볼 때 그 마음은 큰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없는 슬픔과 고뇌속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죄인을 위해서 자기몸을 버리신 이 놀라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그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 자기의 아들의 피를 밟고 걸어오는 자마다 용납해 주시는 놀라운 사랑을 십자가에서 발견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이 만난 그리스도 예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설교자가 감격하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는 여러분의 그리스도 예수가 아닌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사도는 그 이전에 수없이 예수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과 그가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거룩하고 놀라운 사랑의 고난을 증거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라고 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의 형상이 자기의 시야를 가득 채우면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의 모든 죄를 위해 살 찢고 피 흘리시고 자기의 몸을 찢으셔서 내어주신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되자
그는 이제는 다시는 나를 위해서 살지 아니하고 그리고 스스로 내 구원을 위해서 내가 노력하지 아니하고 나를 위해 이루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받아들이며 살도록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서 할례를 받고 율법의 의를 지키기로 다시 굳게 다짐하며 거짓된 가르침에 미혹되어 있을 때 그는 말했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에게는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그 사랑의 눈빛과 마주하는 순간에 그는 이 세상과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며 수많은 삶이 얼마나 허망하고 멸망에 이르는 게임인지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그 사랑을 깊이 기억하자 그는 이제 그 예수께 사로잡혔습니다. 모든 생각과 삶과, 모든 의식과 모든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께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줄만한 사랑이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과 그의 인생과 그의 모든 생각과 모든 삶을 오로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빼앗아가버렸습니다. 그 후에 모든 것들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가 나무에 달아 매달려 죽으셨을 때 수많은 악한 자들이 그를 향해 멸시하고 천대하고 욕하고 비난했던 것들을 들으실 수 없었던 것처럼 사도는 자기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를 만나자 그는 자기 자신이 그 십자가에 굳게 매달리는 놀라운 신앙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못박혔습니다. 영원히 죽었습니다. 이전의 사울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기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 안에 살아계셔서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새로 태어난 바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의지하여서 여러분에게 간곡히 당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도 그리스도 예수를 개인적으로 만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누구도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 없이는 그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든 문제의 핵심과 내면에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만남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그 십자가에 자기를 위해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를 발견하자 그는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을 때 발견했던 신학적인 편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유대인이라고 자부하던 어리석은 편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헬라인과 이방인을 우습게 알던 어리석은 상식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꼭 같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놀라운 사랑은 만나고 그 사랑에 붙잡히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의 가장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짧은 인생이지만은 가문에 상관없이 학벌에 상관없이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불꽃과 같은 삶은 살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 어제 아주 성대하게 결혼 예식이 행해진 어느 식장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아주 근래에 보기 드물정도록 성대한 예식 이였습니다. 마치고 그 호텔을 걸어 나오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내 마음에 강하게 자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혼예식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세상의 마음이 정말 하나님을 버렸구나 하는 그런생각이였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온 천하를 두루 감찰하고 살펴도 자기를 찾는 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과장이 아니라 정말이겠구나. 하는것이였습니다. 그러면 다가오는 질문이 그러면 나는 하나님을 그렇게 찾고 있는가. 하는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속에 보면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교회역사를 보아도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매어서 불꽃과 같이 이 어두운 세상을 지났던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신앙의 특징은 개인적으로 깊이 십자가를 만난 사람들이였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 놀라운 사랑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핍박의 골짜기를 노래하며 지났고 사망의 들판을 찬양하며 걸어갔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 사랑에 사로잡힌 것을 오늘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지를 깨닫게 되자 이전에 자기의 인생의 주관하던 자기의 모든 것들이 못 박혔습니다. 육체의 꿈도 못 박혔습니다. 포악하고 사악하던 모든 성품들도 못 박혀. 미움과 잔인함으로 가득 찼던 던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도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고통스러웠던 일들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위해 받으신 그 고난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었습니다. 개같이 여기고 언약 밖에 있어서 짐승과 같이 생각하던 이방인들도 그들을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깨닫음에 붙잡히게 되자 사도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힘이 하늘로부터 그의 마음을 주장하였습니다. 용서할수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위대한 용서 그렇게 용서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바로 자기를 용서하셧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할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두운 세상을 불꽃과 같이 살았던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개인적으로 깊이 체험하고 만났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추구한다라고 하는 의미는 곧 십자가를 추구한다는 의미인것입니다. 사도바울을 붙잡았던 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오늘도 우리의 삶을 붙잡게 되기를 사모하고 그리고 그 십자가의 지식을 더 깊이 갖고 알기를 소원하는 이러한 몸부림이 우리가운데 있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사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내가 산 것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것이라는 고백이 나오기에 앞서서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안에서 살겠다는 결심에도 불구하고 늘 실패하기를 잘하는 것은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힌 이 고백이 결핍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의 선포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고 자기를 구하신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깨닫는 사람마다 입이 다물어 지는 경험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을 붙들어서 핍박자요 포행자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으로 만들어준 이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앞에 우리자신도 그렇게 녹아지는 역사가 있어야 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오늘 성경은 여러분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여전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가 그 십자가에 다시 못박혀서 그렇게 매달려 있는지 성경은 묻고 있는것입니다. 이전에 여러분들을 주장하던 어리석은 편견과 교만과 사랑없음이 여러분들을 주장하고 있다면 우리는 다시한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두 번째 영적인 깊은 각성과 그리스도 예수와의 만남이 있어져야 될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끊임없이 신앙고백속에서 종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이적적인 구속의 능력을 찬미 했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한번 오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일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생각이 그렇게 이미 그리스도가 그것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혔음에도 불구하고 결별하지 못하고 그것을 붙들고 욕망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이 아닌지를 깊이 뉘우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