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되신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I. 본문해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요한복음 첫 부분입니다. 요한의 관심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맨 처음 시작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시작합니다. 말씀이라고 번역된 이 희랍어 단어는 로고스인데, 이 로고스는 희랍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들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이 로고스가 사실은 성자 예수이셨고, 그 예수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셨다는 기독교의 절체절명의 교리를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과 생명이 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서 비롯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II. 사람이 되신 하나님
기독교의 최대의 신비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굳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A. 하나님을 보여줌
우선 첫째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고,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섬기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은 가장 행복할 수 있도록 그렇게 경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사물을 보는 눈이나 귀나 코나 살갗으로 만지고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시라 순결한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직접 볼 인간이 없기에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와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인간들과, 하나님이 이 인간들을 돌보시고 이끄시는 섭리의 과정과 인간 자기 자신의 영혼과 마음의 구조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맨 처음 타락하기 전에 조상들은 이 모든 방법들을 통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깊이 찬송하고 경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직접 말씀하심으로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그 분을 믿을 수 있는 신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신앙과 이성의 지식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만큼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 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놀라운 흔적들은 대부분 지워져 버리게 되었고, 인간의 영혼은 어두움이 가득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그러한 눈먼 자가 되었습니다. 죄가 들어와서 제일 먼저 파괴한 것은 믿음이었으니 이제는 마음으로 주님을 믿는 일들을 포기하고,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인간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와 명백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 마음과 정신의 구조를 살피는 일을 통해서는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갈 뿐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정당하게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시지만 인격에 있어서 셋이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아들이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친히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 만질 수 있게, 냄새 맡을 수 있게, 들을 수 있게, 맛볼 수 있게끔 그렇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당신을 떠난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어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 분 안에는 참 하나님이신 신의 성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사람이신 사람의 성품,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었으나 그 분은 사람의 인격은 없으신 신의 인격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신성과 인성이 하나님의 한 인격에서 만나게 되어 인성으로 행한 그 일은 신성으로 교통하고 신으로서 행한 신성의 일은 인성에 교통함으로써 한 인격 안에서 두 성품이 조화를 이루는 참 하나님과 사람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 위해서 이제는 더 이상 자연을 들여다보고, 그리고 사람들의 신비한 경험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지상에 사셨던 생애와 그 분의 가르침과 그 두 가지 속에 묻어놨던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인격은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준 현시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성경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쓰여진 계시의 책이니, 구약은 이 예수를 향하여 달려온 책이었고, 신약은 그리스도 예수를 이제 미래의 세계에 선포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무지한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도록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당신을 통해서 아버지께로 갈 수 있게 만들어 주셨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더듬어 알 수 없는 아주 무지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 순간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되었고 또 그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될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되도록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본분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분명하게 당신의 사랑과 온갖 아름다운 성품을 알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보내 주시고,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사신 기록들을 계시의 책에 남겨두셨으니 누구든지 이 복음의 계시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주님을 아는 이 지식을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받았으니 또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우리는 이 지식에 빚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고, 모두들 평안하기를 원하지만,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안한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는 그들이 물질이 없고 명예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고, 건강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고,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모르는 무지 때문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분신처럼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사람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보면서 그 분이 하나님이신 그분이 최초로 이 세상에 내려오신 선교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생애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보여주기 위해 자기를 비우시고 이 세상에 낮아지신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또한 우리를 낮추고 낮춰 죄인들이 있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예수를 선교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기를 온전히 버려 예수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신자의 가장 최고의 섬김은 이 세상의 무지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아지신 것처럼 또한 우리도 그 하나님 앞에 낮아져서 주님을 위해 섬기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B. 사람을 보여줌
주님이 굳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두 번째 이유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되셔야 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관련을 맺으셔야 했고, 또 한편으로는 인간과 관련을 맺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을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신이어야 했고,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는 사람 자체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의 성품은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완전한 중보자가 되어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위하여, 한편으로는 인간을 위하여 구속주가 되셨던 것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그 큰 사랑과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가장 아름다운 삶인지 본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수많은 당신의 종들을 통해 진리의 말씀을 전달해 주었지만, 사람들은 그 전달하신 말씀만을 가지고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지만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인간의 삶의 모습인지를 더듬어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완전해 보이는 당신의 훌륭한 종들을 우리에게 보내셨지만, 그들도 모두 결함이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야할 인간의 모본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완전히 보여줄 수는 없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던 아브라함의 불신앙이나 거룩한 사람으로 명명되던 모세의 혈기나 경건한 임금으로 추앙을 받던 다윗이 정욕에 빠진 이러한 결함들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기의 외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심으로써 죄 없으신 그분이 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섬기는 그 모본이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흠 없고, 티 없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주님을 섬기고 살지를 보여주셨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그 인간에게 순전하게 기대하시던 바가 무엇인지를 그리스도 예수의 친히 보이는 삶으로 입증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 가난한 목수의 집안의 아들로 자라시기 까지 그분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오시고 가난을 이웃삼고 궁핍을 친구삼아 일생을 사셨습니다. 자기 땅에 오셨기 때문에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세상에 친히 내려 오셨고, 그리고 그 분은 일생 33년을 사시는 동안 자기를 온전히 버리심으로 이 세상에 있는 가난하고 불쌍하고 무지한 인간들을 섬기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생애는 진리를 선포하고 그리고 병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고치고 그리고 또한 무지한 사람들을 가르쳐 깨우치시는 삼중 생애가 그 분의 사역의 중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신 그분이시지만 우리와 꼭 같이 연약한 모든 것을 죄 없이 짊어지신 그 분으로서 주님을 어떻게 섬기며 사셨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오셨을 때에는 모르던 참 인간의 본보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지상 생애 안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진리에 불타는 마음으로 무지한 사람들에게 진리를 외치시는 그분의 모습 앞에서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외치지 않는 비겁한 신자의 삶에 대해서 회개하게 됩니다. 병들고,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 친히 내려오셔서 환자들의 헌대를 어루만지시며 사랑으로 고쳐주시고 버림받은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던 그리스도 예수의 지상 생애의 지극한 사랑의 섬김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심과 고통 받고 불쌍한 사랑하는 이웃을 위한 긍휼의 마음이 없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그 모본과 우리의 모본 사이의 현격한 격차를 보면서 우리 안에 남아있는 자기 사랑의 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자기를 모두 버리시고 온전히 남을 위해 자기를 다 포기하셨던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으로서의 아름다운 본을 보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아가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되고, 가책을 느끼며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버려야 할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진리를 선포하셨을 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기를 마치 지혜로운 어미가 자식을 깨우치듯이, 인자한 아비가 무지한 자식에게 지혜를 전해 주듯이 그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돌보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아름다운 모본을 볼 때마다 우리는 비슷하지도 않는 우리의 섬김을 봅니다. 작게 섬기고 크게 꾸짖는 우리의 사랑 없음과 한순간 포기하고 여러 순간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뜻대로 올바르게 행하지 않는 영혼들을 바라보고 분노하는 자기 자신의 사랑 없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구원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살아야 삶의 본분이 무엇이고, 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참으로 살게 하시려는 아름다운 인간의 본보기가 무엇인지를 그리스도 예수의 지상생애를 통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그 큰 사랑을 보면서 매 순간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본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의 더러운 생활과 그리고 이기심과 정욕에 물든 부패한 우리의 일그러진 삶을 봅니다.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죽이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지만 감사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본을 통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었고, 우리는 여전히 죄가 있는 더러운 본성을 가진 사람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다고 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예수와 꼭 같이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분을 모범 답안으로 보고 그 분을 목표로 여기며 끊임없이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 의존적인 자리도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오류에 빠지고 미끄러질 지라도 다시 일어나고 방향을 올바로 잡아서 그 분을 닮아 그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도 참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는 우리 인간들에게 참 사람의 사는 도리가 무엇인지 참 하나님을 믿는 신자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볼 때에는 교만해 질 수 있고 우월감을 느낄 수 있지만 사람의 본보기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를 볼 때에 누구도 교만해 질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예수를 바라보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C. 화목제물로 죽음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가 화목 제물로 죽으시기 위함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인간의 불순종과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망가지게 되었고,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더럽힌 인간의 죄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도전이요, 반역이었기 때문에 그 죄의 크기는 무한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손해를 입은 하나님께 배상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죄 가운데서 신음하다가 죽는 것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외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33년 사시는 동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인간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 지 사람들에게 눈물과 사랑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그 아름다운 모본을 아무리 놀랍게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할지라도 그렇게 살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참 인간이 사는 도리를 가르쳐 주는 것만으로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분은 죽으실 수 있기 위하여 죽으실 수 없는 하나님으로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의 몸을 친히 입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나 계셨지만 사람의 몸으로는 한정된 장소에 계셔서 그래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 앞에 싫어버린 바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세례 요한이 예고한 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양이 되셨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하나님의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싫어버린 바 되셨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했기 때문에 미워 버린바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당신이 지극히 사랑하고 위하는 인간들로부터 더 버림을 받으셨는데 이는 이 양측으로부터 버림을 받음으로써 제물로 죽으사 그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하여 죽으신 것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 분이 무슨 나쁜 일을 하셨습니까? 천국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셔서 멸시와 욕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버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마지막 결과였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요한은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시켰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그리고 주님을 배역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그 때에 오히려 주님께서는 당신을 그렇게 미워하는 인간을 사랑하사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천한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33년 동안 자기의 진액을 다 짜서 바치며 액체의 생애를 사셨고 마지막에는 사람들을 섬기다가 남은 마지막 당신의 옥체를 깨뜨려 그 흐르는 피로, 찢으신 살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살로 우리를 먹이시고, 그 피로 우리를 마시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죽음의 삼킨바 되시고 우리는 그 생명을 덧입을 수 있도록 그렇게 죽으시기 위해서 무한하신 하나님이 작은 크기의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신 그분이 낮고 천한 마구간에 오셨고, 강보에 쌓여서 그 구유에 겨울 위에 누이셨으니 이는 사람 중 가장 가치 없는 가난한 집안의 헐벗은 자식의 몸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십자가의 죽으심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성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우리 된 이 모든 은혜, 하나님과 누리는 이 생명의 교통과 그 분 안에 있는 모든 이 영생의 복이 바로 그렇게 화물 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형벌 받은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낮고 천한 구유에 오셔서 자기를 다 버리신 희생을 통해 우리가 모든 좋은 것을 누리게 되었음을 기억하고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이 땅의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어려울 때마다 예수 안 믿는 집안에서 참 신자로 모본을 보이는 것이 힘들 때마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이신 그 분이 천한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보다는 훨씬 쉬운 것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그 분의 권한을 가슴에 새기고, 또 아로 새겨서 그리스도 예수처럼 날마다 낮아져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도구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III 독생자의 영광을 보는 길
이렇게 한 뼘 사람으로 오신 그 분이 사람이셨으나 사실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이 구원에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그 독생자의 영광을 모든 사람들이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독생자의 영광은 사물을 보는 우리의 육신의 찢어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유에 놓인, 강보에 쌓인 아기는 영락없이 낮고, 천하고, 헐벗은 집안의 볼품없는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그 분께 와서 왕이심을 알아보고 경배했고,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신 이 기쁜 소식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다는 사실이 더 이상 기독교의 중심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세상이 되었고, 이 아름다운 도성인신의 교리는 교회에서도 이제는 지루한 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구유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놀라운 독생자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분인지를 압니다. 독생자의 찬란한 영광은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니 믿음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이 세상과 자기의 속한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주님을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얻은 사람이요, 예수를 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눈을 가지고 아기 예수를 바라 보십시요.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읽으십시요. 그때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의 임금들이 꽃으로 만들어 쓴 이 세상의 면류관에 없는 영광이 그렇게 천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초라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 안에 충만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고 그 그리스도 안에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시는 찬란한 진리의 빛이 가득하니 그 독생자의 영광과, 그리고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고 거친 이 세상에서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께 순종하며 사는 것이 신자의 본보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아기 예수의 성탄하신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가슴 저미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니 주님을 더 잘 믿고, 더 잘 사랑하고, 더 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