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로 지으시다(1)
녹취자:이경순
반갑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제 12번에 걸쳐서 가족의 관계회복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여러분에게 강의할 열린 교회 김남준 목사입니다. 반갑습니다. 가족에 대해서 생각할 때 가족이라고 하는 것은 먼저 엄마 아빠가 있고 자녀들이 생기고 그 엄마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하면서 가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첫 번째 시간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을 보면 두 종류의 그림이 나옵니다. 한쪽은 남자가 여자를 누르고 사는 집안이야기입니다. 남자가 힘으로 여자를 꽉 누르고 삽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이런 사람들의 수는 매우 적습니다. 그 다음에 옆에 여자가 남자를 꽉 누르고 삽니다. 이런 가정들의 모습이 여기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진정한 가정의 평화라고 하는 것은 남자가 힘이 더 세서 여자를 누르거나 여자가 더 힘이 세서 남자를 누르는 것이 아닙니다. 임마누엘 칸트입니다. 18세기의 독일의 철학자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전통적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근대 계몽주의를 데카르트에 이어서 정점에 올려놓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3대 비판서를 쓰게 됩니다. 이 사람이 쓴 책 가운데 『영구 평화론』 이라고 하는 책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평화는 저 자유의 무덤 속에 행해지는 전제주의처럼 모든 힘들의 약화에 의해서 초래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자유를 모두 반납하고 큰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왕 한사람에 의해서 권력으로 통제되는 그런 속에서의 평화가 아니라 “모든 힘들의 활기찬 경쟁 속에서의 균형에 의해 초래되고 보증되는 것이다.” 이것을 부부관계에 적용시키면 상대방 한사람이 큰 힘을 가지고 있어서 누르면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활기차게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면서도 힘의 균형에 의해서 이런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이상적인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선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를 지으십니다. 천상의 세계는 하늘나라로 하나님이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당신이 직접 다스리시지만 지상의 세계는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지 아니 하시고 인간을 대리자로 두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전혀 간섭하시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을 대리자로 세우셔서 당신의 마음으로 이 세계를 다스리고 돌보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인류사회를 이루고 또 그담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세계를 돌보고 이렇게 해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사람을 지으신 이유였습니다. 자 이렇게 하나님이 이런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창조하셨으니까 사람은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흙으로는 육체를 지으시고 그담에 영혼은 직접 창조하셔서 사람을 만드십니다. 그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영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두 가지가 있는데 지성과 의지입니다. 이 지성으로서는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고 의지로서는 그것을 행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지성과 의지로 행하게 하시고 육체를 사용해서 당신을 섬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이 남자와 여자를 지으십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하나님이 남자는 흙으로 빚으셔서 창조하셨지만 하나님은 여자는 흙으로 빚지 않으시고 이 남자의 몸 중 일부를 취하여 이것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결국 무엇을 보여 주냐면 남자와 여자가 남편과 아내가 둘이 한 몸 이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유는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거나 혹은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의미에서 하나는 흙으로 하나는 그 사람의 만든 갈비뼈로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핵심은 한 사람만 흙으로 지으시고 그 다음사람은 사람을 재료로 해서 지으심으로서 사실상 이 두 사람이 둘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둘이 한 몸이고, 그 사람이 자신처럼 아내를 사랑하고 또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한 몸을 두 사람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세 가지 의미는 이렇게 하나님이 흙으로 남자를 창조하셨고 또 그 몸으로 여자를 창조하셨는데 이렇게 하나님이 두 개의 성별로 창조하신 것은 서로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를 통해서 하고 싶으셨던 일 여자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일들이 둘이 함께 어우러져서 하나님이 사람을 이 세상에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을 이런 방법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남성과 여성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은 아버지가 되고 그 여성은 어머니가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성품 안에 이미 아버지의 마음도 담겨있고 어머니의 마음도 담겨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당신 안에 있는 이 모든 인간과 자연세계를 돌보는 그 마음을 하나님이 하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 세상에 계시하셨고 또 하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 세상에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리면 우리들이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규칙, 엄격함, 인간사는 도리, 이런 것을 가리켜주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라면 어머니의 마음은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고 돌보고 하는 것입니다. 원래 죄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아버지의 마음 에는 이런 어머니의 마음이 스며들었고 어머니의 마음에는 이런 아버지의 마음이 스며들어가 있었을 터인데 죄 때문에 이런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폭력과 그리고 무자비함, 혹은 자녀들을 향한 과도한 징계 이런 것들이 들어오고 어머니의 마음에도 이런 결함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아무튼 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납니다. 태어난 이 아이가 성장하고 마지막에 노인으로 늙어갑니다. 물론 엄마 아버지는 어느 시점에서 세상을 뜹니다. 그 때까지 엄마 아버지의 그 두 성품의 돌봄을 받으면서 아이는 참된 인간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이유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한 사람이 온전한 사람으로 살고 또 변화되어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아담이고 그리고 이 사람이 하와입니다. 원래 하와라는 말은 생명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보면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라고 했는데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케메께또’라고 나옵니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그의 맞먹는’ 혹은 ‘그와 상응하는’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를 위하여’ ‘이 사람을 위해서’ 종속된 존재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하여 그에게 상응하는 존재로 여성이 창조된 것입니다. ‘돕는 배필’이라고 했는데 이 의미도 원래 히브리말로 ‘에제르’ 라는 단어인데 원래 ‘응원군’이라는 뜻입니다. 전세가 기울어져 가고 있을 때 달려와서 도와줌으로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고 이 성경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의미하는 구절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은 남녀가 서로 평등하고 질서 있는 관계를 가져야하며 또 남자의 모자라는 부분을 여자로부터 여자의 모자라는 부분을 남자로부터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남녀로 만드신 것이고 이 둘을 함께 만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림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함께 곡식을 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결국은 남성이 땅을 개척하면 그 개척한 땅위에 씨를 뿌리고 함께 가꾸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원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셔서 그들을 서로 결혼 시켜서 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은 이처럼 누가 누구에게 종속되는 관계가 아니라 남녀가 평등한 가운데 질서를 유지하고 서로의 모자란 점을 보충하며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사람이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대한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지만 이런 관계로 돌아갈 수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신앙을 다시 한 번 강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갈비뼈 에서 취하여 여자를 만드십니다. 그랬더니 이 아담이 이 사람이 아담입니다. 아담이 고백하는 바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무엇 중에 무엇’ 이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 문학에서 ‘최고’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 하나님이 이 여자를 창조하셔서 당신에게로 데려오실 때 아담의 마음속에 있었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진실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에 오늘 지금 여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아담이 하와에게 남긴 첫 번째 고백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창 2:23)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오다가 넘어졌습니다. 어제 몸이 좀 좋지 않아서 계속 한 12시간 동안 누워 있었는데 좀 어지러웠습니다. 건너다가 탁 넘어졌는데 일어났더니 핸드폰도 떨어지고 그래서 주섬주섬 챙기고 일어났는데 다행히 다친 데가 없는 줄 알았는데 손이 확 까졌습니다. 많이 까졌습니다. 굉장히 아픕니다. 그런데 자신의 몸에 어떤 상처가 나면 그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듯이 이렇게 아내에게 어떤 고통이 있으면 그것을 남편이 절절하게 느끼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두 사람만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서로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는 사회가 진정으로 사랑의 사회입니다. 예수님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말씀이 신약시대의 새 계명의 핵심이라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을 때 그 때 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사랑의 관계를 표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이 말씀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면 이렇게 아담과 하와가 등장합니다. 만약에 죄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 두 사람이 이런 사랑을 가지고 계속해서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담에 타락하게 됩니다. 미끄러지게 됩니다. 일어난 다음부터 이렇게 서로 사랑의 관계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난 가인 그담에 아벨 둘 사이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관계가 되었어야 되는데 살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광경이 아담과 하와에서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요? 왜냐하면 사람이 죽는 것을 본적이 없고 원래 그런 죽음을 보지 않도록 창조된 사람인데 피 흘리며 죽어간 시체를 보면서 그들의 공포와 두려움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부관계도 깨집니다. 그래서 남성이 여성에 비해서 우월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사회의 제도 권력 이 모든 부분에 있어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사람의 숫자에도 계산을 하지 않고 재산의 일부처럼 사고팔기도 하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인류가 계속되어오면서 이런 가정에 담겨진 하나님의 소중한 뜻들이 무시되어 온 것입니다. 그 결과 그럼 남성들은 행복하냐 하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며 살아가야 할 관계가 깨집니다. 남편이 아내로부터 그런 것들을 채움을 받지 못합니다. 당연히 아내도 남편으로부터 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럼 그런 참된 행복을 잃어버리고 사니까 그런 행복을 다른 곳에서 채우려고 합니다. 그것이 인간을 점점 더 타락하게 만들고 인간으로 하여금 잘못된 삶을 살게 만들고 그 고통은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통해서 그런 올바른 관계를 배우지 못하게 되니까 자라서 결혼을 해도 어떻게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존중하고 서로 함께 평등한 가족관계로 살아야 될지에 대한 그림을 못 그립니다. 그러면서 타락하고 잘못되어가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내버려두시면 인류사회가 너무 불행해 지게 될 것이 너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교회를 세우십니다. 교회를 세우셔서 참 인간의 하나님의 남자를 창조하신 도리와 여성인 창조하신 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셔서 원래 남편과 아내의 사랑의 관계로 돌아가도록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들이 인간의 사는 도리가 무엇인가를 신앙을 통해서 깨닫고 가족관계가 회복되는 사람들을 우리가 많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들을 구원하셔서 교회에 일원이 되게 하십니다. 그럼 이렇게 해서 교회 속에는 이렇게 구원 얻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이 모인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남편의 모습이 무엇인가 아내의 자리가 어떤 것인가 이것을 깨닫고 돌아가므로 서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원래 아담과 하와를 통해 이루시려고 했던 사회의 모습을 복원해 가는 것입니다.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그리고 교회의 신자가 된 후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가 오는데 그때에는 모든 인류가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되는 때가옵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 대해서 서로를 사랑하기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이라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실 때에 흙이 아니라 남자의 갈비뼈로 만드신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입니다.
자, 여기 보면 사람이 있습니다. 남녀가 있고 그 남자와 여자에게 하나님이 생명과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남녀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을 계속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결혼하셨지만 ‘남편이 참. 내가 이 남자한테 시집와서 행복하다.’ 하는 때도 있고 ‘이 남자하고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나’ 하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에게 주어진 명제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보게 됩니다. ‘아 이 남자의 결점을 내가 참고 견디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잘 해주면 물론 행복하겠지만 아내도 남편에게 항상 잘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남편도 아내에게 그렇게 해 줄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와서 자기 남편이 얼마나 잘 해주냐를 이야기하는 것 부러워 할 필요 없습니다. 감춰진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더 다른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와서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좋은 이야기만 골라서 스토리를 만들면 모든 사람이 여러분의 남편과 살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만들 그런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스토리를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일부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세요. 하나님께로부터 끊임없이 부어지는 생명과 사랑이 우리에게 계속 있을 때에 비로소 그 사랑과 생명으로 남편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아내가 모자라지만 그러나 그것도 자기가 극복해야할 하나의 숙제려니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인간관계입니다. 그런 속에서 그 사람들이 가정을 이룹니다. 그렇게 가정을 이루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죄가 들어왔기 때문에 이 관계가 자꾸 깨집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부부의 도리가 먼지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며 살아가야할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서로 옳다는 것만 주장 하게 될 때 가정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그럼 그것이 부부만의이야기가 아닙니다. 애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엄마아빠를 보면서 그 아이들은 인간으로 참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 이런 도리들을 다 못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엄마 아빠의 불행한 가정생활을 자기 자신도 대물림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구원한 사람들을 교회의 식구가 되게 하시고 이런 교회는 끊임없이 바깥으로 뻗어나가면서 선교를 하게 됩니다. 이 선교가 결국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어떤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고 어떤 자녀가 되고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해 주고 그 생각한 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선교입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가 모두 이루어져서 인류사회가 완성되게 됩니다. 이때에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함께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맨 처음 두 사람을 창조하셔서 이루고 싶으셨던 사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의 배운 내용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앞에서 배운 내용을 모두 잊어버렸어도 이 다섯 가지를 정확하게 기억하시면 오늘에 공부한 내용은 여러분들의 것이 됩니다. 우선 첫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목적 있게끔 창조하신 것입니다. 세계를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세계를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그 뜻에 맞게끔 사람들을 사랑의 사회를 이루고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모든 만물들을 친절하게 대함으로 그들도 모두 다 행복하고 선한 상태가 되도록 그렇게 돌보게 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매우 특별한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영혼을 가진 피조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기능중 제일 중요한 것이 지성과 의지입니다. 그리고 그 남자와 여자를 한 몸으로 만드셨으니 이는 한 사람만 흙으로 창조하시고 그 다음 사람은 그 사람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둘이 마치 자신의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게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한 몸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정에 남편과 아내사이에 질서를 주십니다. 그래서 남편은 거칠고 힘든 일들을 해 나아가고 창의적이고 이렇게 해나가고 아내는 남편이 정복하고 획득한 것들을 돌보고 가꾸고 이렇게 함으로서 둘이 못하는 일들을 서로 행하면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정은 완성된 인류 사회의 씨앗입니다. 그래서 이 가정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서로가 무슨 목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를 올바로 알 때 그 때에 그 가정은 교회가 됩니다. 그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긍휼이 여기고 허물을 용서하고 자기 있는 소유들을 함께 나누면서 서로 살아가게 되는데 그런 사랑의 삶이 결국 미래의 인류사회가 보여 주어야 할 그 사랑의 사회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리는 결론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람으로 창조하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으니 우리가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긍휼이 여기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연의 만물들을 친절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살아 가게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인간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이 이렇게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를 잘 이해하므로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Q.. 남편을 사랑하지만 금방 미웠다가도 다시 좋아지고 웃게 되는데 시댁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좀 잘 회복이 되지 않고 시간이 오래 지나도 가슴이 좀 그럽니다. 그게 지금 고민입니다.
A. 참 어렵겠죠. 그리고 특히 시자를 싫어하잖습니까? 자매들은 ‘시 월드’, 그런데 우리들이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보면 예수님이 “네 원수도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시부모님들이나 시집의 식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생활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으면 어쨌든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들도 용서하고 긍휼이 여기고살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시댁으로부터 받는 상처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어렵지만 그러나 그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모르기 때문에 ‘나에게 이렇게 부당하게 하는 것이다.’ 혹은 내가 실제로 잘 못하고 있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그런 가족관계들을 이겨가면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선교적인 삶입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우리 집안에서 두 번째 동생이외에는 아무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가족 중에 없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러나 인내하고 기도하면서 사랑으로 극복한 결과 모든 가족들이 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들이 이겨야하고 져야할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생각하면 그 일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 일을 생각하면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에게 매일매일 필요한 것입니다.
Q. 배우기로 지성과 정서와 의지를 배웠는데 오늘 말씀에 지성과 의지 부분만을 언급을 하셔서 정서의 자리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A. 우리들이 전통적으로는 지성 정서 의지 이렇게 나누는데 사실은 엄밀하게 보면 지성과 의지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어느 쪽으로 끌리고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의지적 활동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학자들에 따라서 셋으로 나누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둘로 나누기도 하는데 어쨌든 아무튼 정서가 어느 쪽에 끌리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의지의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둘로 나누기도합니다. 그래서 정서는 의지의 작용 속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셋으로 나누어서 설명을 해도 굳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담에 마지막으로 한 사람만 더 할까요? 자 질문을 들어봅시다.
Q. 오늘 말씀처럼 남자와 여자가 각자 다음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잖아요 부부관계에 있어서 생활할 때 어떤 사소한 집안일을 할 때도 그렇고 저는 인식하는 문제를 남편은 인식을 아예 못하는 경우를 많이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러다보니까 물리적인 횟수로 제가 더 많이 인식한 경우들이 있어서 그것을 남편에게 처음에는 알려준다고 하는 의미들이 지적을 하게 되고 그게 나중에는 제가 의지하는 대로 제가 원하는 대로 방향을 이끌어 가는 모습의 저를 발견하면서 그게 혹시 제가 성경적으로 맞지 않게 혹시 군림하나 이런 생각도 하게 되어서 그게 고민이 됩니다.
A. 특히 성품적으로 남자를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여성이 그러지는 않은데 특히 직업이 사람들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유별나게 그런 성향이 강합니다. 평생 그렇게 사람들에게 지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설령 그런 직업을 갖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남편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남편들도 보면 유난히 둔감해서 아내가 문제로 삼는 것을 머리구조자체가 전혀 그런 것들이 문제로 안 삼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집안을 정리하는 것 같은 것 저 같은 사람은 그래도 물건이 제자리에 놓이기를 원합니다. 우리집안에는 문제없는데 우리 집 애들하고는 다릅니다. 어쨌든 남편은 그런 것 이 분명한데 여성들 중에 이게 오만 물건들이 제자리에 없는데도 이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 얼마나 자유롭고 좋으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리 지적하고 이야기를 해도 설득이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대화를 많이 해서 그래서 이것이 왜 문제인가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안 바뀌면 그냥 운명이려니 하고 살아가는 것도 지혜다 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 우리는 가족관계 회복에 관한 첫 번째 시간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족한 것이 많지만 서로 자신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랑은 해석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이해할 수 있게 금 자신의 생각이 바뀌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남편과 아내사이에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므로 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남편과 아내로 만나게 하신 뜻들을 이 세상 속에서 이루어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