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새벽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요 20:15-18)
무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낮에 보면 파란 잔디들과 그리고 주위에 둘러 싸여 있는 울창한 수목들이 보이고, 그 파랗게 깍은 잘 정돈된 잔디 앞에 하얀 화강석을 깎아서 상을 만들어 놓고 비석을 세워나도 어두음이 이르게 되면 그 아름다운 모습은 보이지 않고 시체 옆에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렇게 어두울 때에 그렇게 음산 무덤을 찾아갔던 한 여인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라고 하는 한 여인 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혀 죽으시고 아리마데 요셉의 무덤에 안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여인은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무덤은 열렸고 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로 달려가서 누군가가 예수의 시체를 가져갔다고 호소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달려가서 무덤을 들여다보니깐, 정말 예수 그리스도는 간곳이 없고 그 가 누웠던 자리에 고요히 수건이 개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여전히 무덤 앞에 서서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여인이 찾았던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시체였습니다. 아직도 미명이 온 땅에 가득한데 그 어두운 때에 이 여인이 흐느껴 울면서 그러면서 그 무덤 앞에서 어찌 할 바를 모르며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흰옷 입은 두 천사가 보였습니다. 제자들이 모두 돌아가고 이 여인이 혼자 있게 되었을 때에 전에는 없었는데, 다시 한 번 울고 구부려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까, 거기에는 예수님의 시체가 뉘였던 그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사람들이 어디에 두었는지 내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 여인이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물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나 그러나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여러 번 여러 번 제자들에게 그리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도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이 여인이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기뻐해야할 이 자리에서 이 여인은 흐느껴 울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는데도, 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들의 희망이요, 기쁨인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모든 슬픔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모르고 그가 무슨 일을 행할지를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에 이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태어나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할 거란 사실을 굳게 붙들고 소망하고 있었더라면, 이 무덤이 얼마나 기쁨의 무덤이 되었겠으며,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나타나시고, 천사가 그리스도예수의 부활하신 소식을 알려주는 징표로 무덤에 이처럼 있게 되었을 때에, 이 여인이 얼마나 기뻐하고 감격할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무지는 우리의 눈을 가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대한 무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기뻐 할 줄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여전히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사랑하는 그리스도 예수가 다시 사셨는데도 자기의 사랑의 대상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보지 못하고 여전히 슬퍼하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무지로부터 벗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천 년 전에 무덤에서 죽음을 깨트리고 다시사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늘 어떻게 우리가운데 다시 살아나시길 원하고 이 천 년 전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생명의 기쁨을 주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늘 어떻게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과 그리고 그 기쁨을 주실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시는 방법, 이전에 다시 사셨지만, 그러나 오늘도 우리 믿음 가운데 오셔서 현재로 다시 부활하시고 다시사시고 그리하여 당신이 살아계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방법을 우리는 깨닫고 배우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무지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썰렁하고 황량한 무덤을 부활의 기쁨으로 충만케 하신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잠시 무지로 말미암아서 깊은 어둠속에서 살아나신 주님조차 다시 보지 못하는 이런 어리석음과 어두움 가운데 있었지만 그러나 오늘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결국은 이 여인에게 당신의 부활하신 영광스런 첫 번째 모습을 사도도 아니고 권능이 많은 제자들도 아니고 많은 물질들로 자기를 섬긴 사람도 아니고 한때에 귀신이 들려서 소망이 없었던 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여인에게 부활의 영광스러운 첫 모습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부활하신 영광스런 첫 모습을 제자들에게도 감추시고, 이 무덤 앞에서 홀로 우는 여인에게 그것도 긴 울음이 지나간 뒤에 천사들을 보이시고 이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 천 년 전에 부활하신 때나 또 이천년이 지난 오늘이나 예수 그리스도는 여전히 다시 사시고 그 부활의 기쁨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십니다. 그러나 그때나 이제나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의 편입니다. 오늘 이 여인은 훌륭한 가문의 여인도 아니었고 복음 전파를 위하여 혁혁한 공로를 세운 권능 있는 제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이 없는 죽음과 다름없는 인생가운데서 자기를 살리시고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순간을 모두 목격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분은 죽었고 그리하여 수치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도 끝났지만 그렇지만 이 여인 속에서 계속되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죽음도 지울 수 없었고 사망도 갈라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고, 무덤에서 사라지신 것 시체를 누군가가 치워 버려서 없어져 버리고 그리하여 텅 빈 무덤이 되어버린 것 이 모든 것과는 상관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어도 여인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시고 시체라도 만지기 위해서 무덤에 달려온 이 희망도 좌절되었지만 그러나 사랑은 꺾이지 아니하였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런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부활의 생명과 다시 살아난 기쁨 속에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도처를 보십시오. 어느 곳에서나 생명의 흔적은 희미하고 죽음의 그림자는 짖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무덤에서 그리스도는 다시 사셔서 당신의 부활한 모습을 이 여인에게 보여 주셨지만,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무덤조차 찾지 아니하는 어두운 세상을 봅니다. 사람은 살아있으나 죽음의 그림자는 그들의 영혼 속에 깊게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더욱더 어두운 밤과 같이 캄캄하게 넓게 드리워지고, 그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범죄하고 그리고 자신들을 죄가 운데서 건져내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를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런 죄 가운데에 살아가는 삶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에도 세상은 여전히 도망하지 못한 어두움이 주장하고 있듯이 세상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짖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렇게 잠들어 있고 어두운 이세상의 유일한 소망은 생명이 없는 가운데 참된 생명과 죽음이 지배하는 땅에 참된 기쁨이 다시 한 번 넘쳐 나는 것 이외에는 희망이 없고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죽음의 그림자는 교회 밖에 세상에만 드리워진 것만 아니라 이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도 짖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보십시오.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수고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사형선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동려가 끌려 나가서 목이 잘리어서 죽어져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사라져 가고 죽어져 가는데, 베드로는 그 옥 속에서 사형당하는 날짜를 잡아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가 와서 깨우기 까지 일어날 줄 모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죽음을 눈앞에 둔 그 순간에도 깊은 잠에 빠져서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그 힘이 무엇입니까? 오늘 예수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운데 평강이 있을 지어다”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속에 있는 그 놀라운 평안은 결코 육신의 피곤함이 가져다준 육체의 평안함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가 죽고, 다시 살아나셨으니 내가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죽어도 다시 살겠고 살아서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이 희망이 그에게 평강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아침의 시간에 우리는 이 평강의 소망을 만 천하에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평강을 잃어버리고 기쁨과 소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평화와 그리고 예수로 말미암는 참된 샬롬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늘 이 무덤 속에 다시 살아나시사 사망과 죽음이 지배하던 이 캄캄한 무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부활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찾으러 왔지만 그러나 그 막달라 마리아의 사랑은 시체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예수를 향한 사랑이었기 때문에 시체를 찾아온 이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가 이렇게 죽음도 갈라놓은 수 없고 사망도 나눠 놓을 수 없었던 진실한 사랑은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던 것처럼 오늘도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사모하는 이 마음을 우리들이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시체를 찾았으나 우리에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죽어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가져가길 원했으나 오늘 우리에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예수께서 오늘 우리에게 생명을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잃어버린 모든 평강과 그리고 이 세상에 없어져버린 모든 평강, 이런 참된 샬롬을 이 세상에 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예수의 그 놀라운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의 부활로 다시 한 번 다가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시체라도 전심으로 찾았던 것처럼 우리는 부활의 약속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여인이 울면서 이 예수를 찾았다면 우리는 기쁨으로 소리치며 부활의 그리스도여 당신이 어디 계시옵나이까.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 제자들이 기쁨으로 넘치고 평강으로 가득 찼던 것처럼 사망과 죄가 지배하는 이 어두운 세상을 그리스도의 참된 기쁨으로 밝힐 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의 부활의 기쁨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마리아가 가서 슬픔과 어두움 속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이 죽음의 소식 앞에 깊이 고통하며 잠들어 있는 제자들에게 주를 보았다고 전파하자 마리아에게 있었던 참된 생명의 기쁨이 다른 제자들의 가슴속에도 역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건지신 그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오늘로 하여금 충만한 기쁨과 희락으로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는 이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