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위한 가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도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8장 9절)
녹취자 : 권정희
주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그거야 어떤 사람들은 그 지식이 부요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지식이 천박하겠지만 차이야 있겠지만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지식이 없으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야 말로 그의 그 되는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적으로 볼 때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즉,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하게 한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유독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찬양과 감사를 많이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 인가하니 그분이 그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이고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시면 사랑해 주실수록 우리는 이 큰 사랑을 기능하게 하기 위하여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물론 아들의 그런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받아주도록 계획하신 성부 하나님과 믿어 질수 없는 우리들에게 아들의 그 십자가가 믿어지게 만들어 주신 성령 하나님도 우리는 찬송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곧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십자가의 사건과 우리를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신 그 진실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난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많이 사랑 하셨겟습니까? 우리는 그 사랑을 모를 뿐이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우리를 부르셔도 우리는 그 부르심을 듣고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할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게 만드셨습니다. 아버지는 가라고 명하셨고 아들은 순종하며 이 낮고 천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하늘을 떠나면서 예수님의 생애는 마지막에 하느님이 그를 부활로 일으키셔서 다시 모든 이름의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모든 피조물들로 그 발아래 무릎을 꿇어 주라고 불러 주시기 전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그야말로 가난하고 비참한 생애였습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그 일이 우리에게 은혜가 되기 위하여 그 은혜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희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들이 받고 그리고 희생은 예수님이 대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오늘 말하기를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해 지셨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가난한 생애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정신적인 가난함과 지적인 가난함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의 마음은 한 없이 풍요롭고 그리고 또 의를 향해서 하나님의 거룩을 향해서는 목마른 분 이셨지만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풍요롭고 지식으로도 넉넉한 분 이셨습니다. 여기서 가난하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살지 못하셨던 그러한 생애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거친 광보에 싸여서 말구유에 오셨고 마지막에 돌아가실 때는 호지않는 통을 탐아 그것도 군병들에게 제비뽑으라고 두고 그리고 벗으신 몸을 통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실 때는 광보에 싸여 오셨지만 가실 때는 그 보자기마저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러한 생애였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이 세상에서 철저하게 가난하게 사신 생애였는데 어느 성경은 말하기를 주님이 그렇게 가난하게 사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것이 믿음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냐면은 단지 물질적으로 궁핍하게 산다는 것만을 의미 하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셨다 하는 것은 그분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자신의 것을 이 세상에서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니까 모든 것을 가지실수 있고 자기의 것 삼으실 수 있고 누릴 수도 있고 그랬는데 모든 것을 갖으시는 대신 버리시고 취하실수 있으셨는데 나누어 주시고 다스릴 수 있으셨는데 오히려 섬기는 생애를 사시는 것을 가르쳐서 오늘 예수님이 부요한자로서 가난해 지셨다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마땅히 누릴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대접과 부와 그 다음에 명예를 포기하고 오히려 섬김을 받아야 할 자리에서 섬기시고 취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누어 주신 생애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입은 것처럼 이제는 정반대로 우리가 그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면 그 예수그리스도께 영광과 찬송이 돌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공평하신 분이신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많이 알고 그 십자기의 사랑에 감격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더 많이 가난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 이였지만은 자기가 가난한 인생을 사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된것처럼 이번에는 그 사랑을 안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가난해짐으로서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찬송을 받으시는 겁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하늘에서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을 때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우리를 섬기기 위해 하나님께 보냄을 받았는데 종이 아니라 왕처럼 군림하시고 그리고 고난을 받고 죽으신 후에 받아야할 영광을 그 세상에서 누리길 원하셨다고 할 것 같으면 아마 예수님이 오셨을 때 제일 먼저 유다의 광야에서 나비가 천하만곡을 누비며 내게 절하면 이 영광을 네게 주리라고 하는 그 시험에 굴복하고야 마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천하 만곡을 보여주며 “이는 나의 것이니 네가 나를 경배하면 이것을 너를 주겠다”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다만 주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배하여야 한다고 대답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방식으로 주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배 하셨습니까? 그것은 자기가 이 세상에 내려와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버리고 십자가에 화목재물로 못 박혀 죽으실 때 까지 그때에는 영광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냄 받을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고난을 받아야 할 때요, 낮아져야 할 때요, 섬겨야 할 때요, 오히려 짐승과 같은 우리들을 섬겨야 할 때라고 하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께만 경배하라 기록 하였느니라 말씀하신 다음에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종 된 생활을 하시면서 우리를 가르치는 그런 가난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광은 함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주를 위하여 가난해지고 멸시를 받고 주께서 주신 목적을 자신의 인생의 목적보다 소중하게 여기며 그것을 위해서 궁핍하고 고난을 받으며 혹은 얼마든지 섬김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 사람들을 섬기며 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들로 상 받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주를 위해 가난해 지기를 거부하고 너무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이 세상에서 영광을 받은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부요한 자로 가난하게 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제것 우리가 누구 때문에 하나님 믿으며 살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믿으며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끔직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서 감히 우리 같은 죄인이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그럴 수가 있었습니다. 날마다 낙망하고 이 세상에서 혼자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마다 결국은 찾아 오셔서 우리가 혼자가 아니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분이 누구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주님이 낮아지셔서 이런 놀라운 일들이 행해 지셨습니다. 우리가 질병에 걸리거나 혹은 우리가 말 할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 속에 시달릴 때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말씀으로 치료하셔서 우리를 고쳐서 새 삶을 살게 하신분이 누구 셨습니까?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를 주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주님 앞에 인도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주셨으리 만무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여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것까지 수 많은 병들어 있는 사람들 지금도 병상에서 고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버릴 적 거리면서 가끔 잔병 걸린 적은 있었지만은 우리의 생명을 이렇게 유지시켜주신 분도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더 노골적으로 얘기해서 죄 많은 사람들이 고통하고 어려워하는 때에 이제까지 굶지 않고 밥술이나 먹도록 우리를 여기까지 복주시고 응해주신 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주시고 주님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능력 주셔서 우리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인도하셔서 사후에서 낙오되지 않고 이만큼 살아오도록 하나님께서 복주시고 인도해주신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고 우리의 모든 부요한 것들이 우리가 받은 모든 영육간의 은혜들이 주님의 그 고난과 낮아지심과 가난해지심은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으니 이번에는 우리들이 주를 위해서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우리는 많은 물질이든지 적은 물질이든지 결국은 주님이 그것들을 축복하심으로 당신의 일들을 이루어 가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런 정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이 이제껏 우리를 위해서 가난해 지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으니 이번에는 내가 주를 위해서 가난해 지고 내가 가난해 짐으로 주님이 부요해 지시고 주님의 나라가 부요해 지고 하나님의 교회가 부요해 지는 축복들이 또 우리가 가난해짐으로 다른 지체들이 부요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입도록 우린 하나님 앞에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우리가 헌금에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헌금시간에 기도 할 때에 하나님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한없이 가난하고 또 겸비하게 낮아 지셨으니 하나님 이번에는 우리들이 우리가 주를 위해서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우리의 마음으로나 우리의 육신으로나 육적으로나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