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씻기시는 주님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계 21:4)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신자들이 하늘나라에 가서 마지막 영화의 몸을 입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었을 때에 누리게 될 축복의 약속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큰 행복이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시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저녁에 이 짧은 본문 속에서 세 개의 교리를 입증하려고 합니다.
우선 첫째의 교리는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슬픔이 많은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주님께로부터 받는 혜택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때에 주님 앞에 나온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을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이 씻겨 줄 눈물이 없이 마른 눈을 가지고 살다가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세상은 죄가 들어온 이후부터 원래 고통과 고난이 많은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성도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항상 눈물 골짜기를 지나면서 사는 그러한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있는 불완전한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많은 고통이 있고 그리고 성도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교리는 두 가지 방면에서 입증될 수 있으니, 첫째는 일반적인 이 세상의 본질이 고통이라는 점에서 입증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교의 사람들도 이 세상은 쓰디쓴 바다, 곧 고해라고 말했으며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 세상이 고통과 시련이 많은 슬픈 곳이라고 하는 사실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눈을 들어 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일반적인 차원에서 이미 고통의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보면 어딘들 고통이 없는 곳이 없고, 아픔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고 고난을 당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의 무질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어긴 인간의 죄로 인해서 이 세상에는 고통이 가득하게 되었고 그래서 주님 밖에 있는 외교인들조차도 이렇게 눈물 골짜기를 지내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들도 이 세상을 지나면서 종종 기뻐하는 때가 있고, 행복해하는 때가 있지만, 그것은 물이 잠시 얼어서 물의 모양이 아닌 생김새를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시간이 지나고 따뜻한 햇빛이 비치게 되면 얼음이 녹아 물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또한 이 세상의 사람들의 기쁨도 그러합니다. 근본적으로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이지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 찬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도 고통 가운데 살고 거기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우리도 신자이기 이전에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눈물을 나누고 그리고 고통을 함께 물려받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세상에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죠.
이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찬 곳이라고 하는 것은 두 번째로 신자의 삶 속에서도 입증이 됩니다. 신자의 삶 속에서도 이것이 입증이 되니, 우리 신자들도 이 세상에 살면서 눈물을 많이 흘리는 고통의 시간들을 지나게 됩니다. 오늘 저녁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잠시 묵상을 했습니다만, 우리가 살아 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가슴 시려 올 정도로 행복했던 날들이 많지 않고 있어도 그렇게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길을 되돌아보면, 가슴 터지는 기쁨 속에 살았던 것 보다는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고통 하였던 시간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통이 많게 되면 아침에 눈을 뜰 때 마다 ‘이렇게 눈 뜬 여기가 하늘나라였으면’ 하는 바람도 갖게 되지요. 신자의 흘리는 눈물은 이 세상 사람들이 이 세상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흘리는 그 눈물과는 다른 눈물입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니, 하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 때문에 그 눈물이 특별하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향해서 가지고 계신 사랑이 각별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신자가 이 세상에서 흘리는 눈물은 주님을 섬기면서 흘리는 눈물이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의 눈물과는 다르다는 것이죠. 성도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 죄 많은 세상에 속한 한 사람이기 때문에 당하는 일반적인 고통, 거기에서 흘리는 눈물이 있지만, 그러나 그에게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는 눈물이 있으니, 그것은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 그에게 있다는 말이죠. 물론 신자라고 해서 흘리는 그 모든 눈물이 모두 주님을 섬기다가 흘리는 눈물이 아닌 것은 명백합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의 골짜기에서 흘린 많은 눈물은 주님 앞에서 흘린 눈물이 아니었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난 후에 주님 앞에 흘린 눈물이었다고 하더라도 사실 주님을 섬기다가 흘린 눈물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주님 앞에 앙탈을 부리다가 흘리는 눈물이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서 흘리는 눈물이거나, 하나님께 대한 섭섭한 마음을 품고 흘리는 그런 눈물도 우리의 눈에서는 많이 흘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기대하시는 눈물은 그 이상의 눈물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흘리는 눈물이 바로 그런 종류의 눈물입니다. 이 세상의 악함과 그리고 본질적인 이 세상의 고통과 더러움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살려고 할 때에도 이 세상의 불안전함은 우리의 섬김 가는 그 길에 끊임없는 장애물이 되고, 그 속에서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한 끊임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땅에 태어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부름 받은 사람들은 예외 없이 눈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이처럼 눈물을 많이 흘리며 외로운 섬 밧모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요한은 이 편지를 쓸 때에 90세가 넘는 노구를 이끌고 사랑하는 가족과 정든 양떼들과 헤어져 절해고도의 외로운 섬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고난을 받게 되었습니까? 1장에서 그는 자기를 소개하기를 ‘예수의 복음을 인하여 고난을 받게 된 나 요한’이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려고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려고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당하지 않아도 될 쓰디 쓴 고난을 90세가 넘는 노구를 이끌고 당하면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그 가시와 같은 외로운 고난 속에 이 편지를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을 봉사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이 세상은 가만 두지 않습니다. 주님을 섬기면서 살려는 사람들에게는 끊임없는 고난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자기만의 고통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성도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 온 모든 세월들은 섬김 속에 주시는 위로와 기쁨도 있었지만, 그 순간보다도 더 많은 시간동안 성도는 눈물을 흘리고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며 많은 눈물을 하나님 앞에 쏟아야 했습니다. 주님은 이 고통스러운 눈물 골짜기를 지나게 하시면서 은혜 받은 성도들이 그 은혜로 인하여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계시를 많이 받고 진리를 많이 깨달은 당신의 자녀들이 그 많은 지식을 인하여 마음이 높아지지 아니하도록 다스리십니다. 형통한 길로만 인도하셔서 우리를 오만하게 인도하지 아니하시고 주님을 섬기려는 우리의 뜻을 끊임없이 실현하시고 연단하셔서 온전한 동기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게 하시고 우리를 깍아 내시고 다듬으셔서 그래서 주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섬김을 받으시는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은 성도들, 능력을 많이 받은 주의 종들은 한결같이 찌르는 것 같은 가시를 심장에 끌어안고 그리고 눈물 골짜기를 지나며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순교의 순간을 앞두고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기록한 편지 속에서도 바울의 이러한 생각이 나타나니 그는 복음의 능력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어린 디모데에게 권면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많이 받은 사람들일수록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고, 디모데는 목사가 되기 위해서 안수를 받을 때에 각별한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일생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할 그러한 신령한 운명이 이미 지워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쏟아지는 하나님의 많은 은혜는 감사하고 놀랍지만,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그 많은 은혜는 우리에게 많은 소명으로 인도하고 그 소명은 반드시 우리에게 눈물 흘리는 섬김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이 세상에서 섬기며 사는 동안에 눈물을 흘리는 아픈 일을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이미 주님이 우리에게 예고하신 일이고 예수님이 몸소 자신의 생애를 통해서 이것이 진실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신 바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 찬 생애였고 주님을 향한 그 모든 섬김은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양떼를 향한 사랑과 자신에게 그 양떼를 맡겨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사랑에 매여서 예수님의 일생은 펼쳐졌습니다. 하나님께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셨으나 우리는 예수님의 피 저린 생애를 보면서 왜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이 그렇게 기뻐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이 세상에서 그렇게 밖에 대접을 해 주시지 못하셨을까? 주님의 생애를 읽을 적마다 우리의 눈에 눈물이 흐릅니다.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 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니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그런 생애였습니다. 하나님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렇게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주님 속에 하나님이 싫어하실만한 것이 없었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께 기쁨이셨고 그 분의 마음속에는 우리 같이 쓰레기 같은 죄인들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위해서 생명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시키고 그 우리의 죄로 인해서 무너진 하나님과의 평화가 복원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의 몸을 제물로 드리실 때까지 십자가 못지않은 고통을 받으면서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 33년의 긴 생애가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생애는 피 마름의 생애였고 그리고 죽음의 기운에 베인 삶을 예수님께서 33년 동안이나 사셨습니다. 그 속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셨으니 오죽했으면 그 진중하신 분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올렸다고까지 기록이 되어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뜻을 세우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여. 그대들은 이 섬김을 계속하면서 눈물 흘리는 것을 조금도 이상한 것으로 생각지 말아야 하고 오히려 눈물이 없는 섬김을 경계해야 합니다. 섬기는 그것은 항상 아픈 것이고 섬기는 그 가운데는 항상 이 온전한 섬김을 방해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나타나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찢을 것이고 여러분들은 수많은 원수들에게 에워싸이게 될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들은 장애물들을 만나서 외로워지는 상황도 수시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여러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눈물을 흘리고 고난을 받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십시오. 세상은 원래 그런 곳입니다.
두 번째 교리는 하늘나라에는 이런 넘치는 그리스도의 위로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생을 당신을 위해서 살다 온 성도들의 흐르는 그 눈물을 씻겨주실 때에 그 분의 마음이 어떠한 마음이었을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마음은 아무 감각 없이 자신에게 부과된 의무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한 그러한 사무적인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당신 앞에 나아 온 성도들의 눈물의 눈을 닦아 주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당신 앞에 나아와 눈물을 흘리는 한 성도 한 성도를 향해 말할 수 없는 넘치는 애정을 가지고 두 눈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말할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의 정서를 가지고 우리를 한없이 긍휼히 여기시며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라는 사실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에서도 입증되지 않습니까? 그 분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사랑하는 우리들을 어떤 태도로 섬기셨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분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어 피를 흘려 아버지께 드리기 전까지 먼저 그 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찢어드리는 피를 받으시기 전에 아들은 먼저 우리를 위한 눈물을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의 생애는 정말 위로자의 생애였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은 그 분에게 엄중히 책망을 받고 진노를 샀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앞에 나아오는 흉악한 죄인들은 그분께로부터 한없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땅에 계실 때 죄인인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과 괴로운 눈물 흘리는 것을 보실 수가 없어서 주님 친히 눈물을 억제하시지 못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천국에서 우리의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그 분의 마음도 지상에 계셔서 우리를 대할 때와 동일한 마음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행동은 우리의 구원의 완성일 뿐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살다 온 성도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의 표현이라고 우리는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뛰어난 자비는 존재할 수 없고 주 친히 그 거룩하신 손으로 죄악 된 세상에서 살다 온 성도들의 눈물을 씻겨주시는 이 자비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최고의 표현이라고 우리는 단정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분이 그 애틋한 마음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물을 씻겨주실 것이니, 이는 하늘에서 받는 위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 밖에서 흘린 눈물, 혹은 죄악 된 세상에서 자신의 잘못 때문에 방황하다가 흘린 그런 눈물을 주님께서 씻겨주실 것입니다. 여기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으니 주님이 노인네들의 눈물만 씻어주는 것도 아니고 젊은이들의 눈물만을 씻어주는 것도 아니고 어린 아이들의 눈물만을 씻어주는 것도 아니니 이는 자기의 자비를 의지하고 가슴에 기대기 위해서 나아오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성도를 향한 우리 주님의 최고의 자비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자신의 죄와 강퍅함을 인해서 흘리게 된 많은 눈물, 자신의 오류와 잘못으로 인해서 당하게 된 그 뼈저린 고난, 그리고 그 뼈저린 눈물도 또한 주님이 그 손으로 깨끗이 씻겨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 없이 흘렸던 쓸모없는 눈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것도 주님이 모두 씻겨주시고 주님을 멀리 떠나 죄악 가운데 고통하며 그리고 가시에 찔린 채 슬피 울던 방황하던 외로운 날에 아픈 그 눈물도 그 나라에서는 예수님이 씻겨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도의 눈의 눈물을 씻기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한 위로는 당신을 섬기기 위해서 고난의 길을 가던 성도들의 눈의 눈물을 씻기실 때에 더 탁월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 사랑을 끊임없이 십자가에 못 박고 자기와 같이 쓸모없는 죄인을 구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에 벌레 같은 죄인이지만 용서 받은 나를 한 구석에 세워주셔서 그곳에서 섬김을 받으시는 주님이 좋아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괴로운 날이나 슬픈 날이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때나 상처를 받을 때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나 고통을 당할 때나 자기를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그 흘리신 보혈의 은혜가 감사해서 어느 한 모퉁이에서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흘렸던 눈물.
시시때때로 주 만 봅니다.
많은 눈물을 흘립니다. 사람들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흘리는 눈물에 별로 관심이 없고 우리도 그들이 우리가 흘리는 이 소명의 눈물에 관심 갖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이 자리에 세워 준 것은 우리의 섬김을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은밀히 계시는 주님이 우리를 각자 받은 바 그 은혜를 따라서 거역할 수 없는 사랑의 소명에 붙잡혀서 우리를 거기에 세우셨기 때문이죠. 거기에서 우리들이 많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릴 때마다 우리는 항상 혼자이고 그리고 홀로 그 많은 눈물의 순간들을 홀로 맞이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들이 받은바 은혜의 자리에서 사명을 따라 섬기기 위해서 괴로운 날에 홀로 울 때에 주님은 가까이 계셨으며 그 굽이굽이 살아 온 인생의 여로 가운데 어느 지점에서 그렇게 많이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고난을 당하고 많은 아픔을 겪게 되었는지 주님께서는 모두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우리가 아주 낙망하지 않기 위해서 시시 때때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지만, 그러나 그것은 장차 나타나게 될 완전한 위로에 비하면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생을 예수 위해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누구도 알 수 없는 영혼의 깊은 고통 속에서 눈물을 흘리다 온 성도들이 그 볼에 주님이 못 박힌 손을 대고 그 눈물을 친히 씻어주실 때, 거기에서 천국에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는 가장 탁월하게 빛날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많은 날 동안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처럼 흘렸던 눈물이 주님의 손에 의해서 씻겨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받은바 사명은 중대하고 자신이 지니고 있는바 능력은 한없이 부족해서 감당해야 할 사명과 자신의 부족 사이에서 아파하며 날마다 험한 십자가 붙들기 위해서 흘렸던 그 눈물도 씻겨주실 것입니다. 함께 섬기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위로가 되었었는데 그런 사람들과 헤어져서 먼저 죽음의 강 저편으로 떠나보낼 때, 사별과 함께 흘렸던 그 많은 외로움의 눈물들도 주님이 우리의 눈에서 씻겨주실 것이고, 이렇게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셨을 때, 우리의 삶이 주님을 위해서 시종일관 섬기는 삶으로 이어져 왔다면 그 위로는 더욱 탁월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는 그 날에 주님 앞에 뵈올 때 우리의 눈에 그런 눈물이 흐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긴 세월동안 눈물 없이 살아 왔고 그리고 너무나 긴 세월동안 상 받을 것이 별로 없는 일로 인해서 아파하고 자기 설움에 겨워 흘리는 값싼 눈물로 우리의 얼굴을 더럽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그 분 앞에 갔을 때 그분의 손이 우리의 볼에 닿고 우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씻겨 주실 때에 우리가 만약에 주님을 위해서 순수하게 고난을 당하고 주님의 명예와 그 나라를 위해 부여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흘린 눈물이 우리의 볼에 뜨겁게 흘러 내려 왔고 또 흐르고 있다면, 주님이 우리의 볼에 그 눈물을 씻겨 주실 때, 그 눈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주님의 마음에 큰 아픔과 연민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그것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크신 사랑의 표명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땅에 있는 동안에 흘리는 눈물은 이 세상에서는 고통뿐이고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그 흐르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주 앞에 섰을 때 우리 모두에게 면류관에 달려야 할 빛나는 보석과 같이 소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날에 주님 앞에 흘린바 눈물이 별로 없는 성도들, 바짝 마른 눈에 주님의 손이 나아와 우리 눈에 있지도 않은 눈물을 씻어주시려고 할 때 우리는 얼마나 무안하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우리의 눈에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렀다면 그래서 그 눈물자국이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고 하면, 지금도 이 땅에 두고 간 수많은 지체들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이 땅에 남겨 둔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이 땅에 남겨둔 나의 회심치 않은 피붙이들을 위해서 주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눈에 눈물이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다면 주님이 우리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씻겨주실 때, 씻겨도 씻겨도 마르지 않도록 그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의 마음에서도 우리를 향한 사랑이 그렇게 물같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전도사 때 매일 토요일마다 가서 회심하지 않은 영혼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선생님들하고 같이 기도를 하는데 거의 심정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막 기도하는데 꼭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은 날이 있었어요.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내가 너희의 마음을 안다.’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지금도 귓가에 들려오던 그 음성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내가 너희의 마음을 다 안다.’ 정말 하늘나라에는 위로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이런 위로의 날을 준비하지 못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주님의 심판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들이고 이 세상에서 비록 만물의 찌끼와 같이 여김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흘리는 눈물을 가지며 주님을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는 이런 위로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놀라운 하늘나라의 위로는 하늘 자체에 있는 특성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 있는 특성이라는 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지옥에 간 사람들 중에도 이 땅에서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은 주님의 손에 의하여 닦이지 아니하고 지옥의 불길에 의해 말라버리도록 운명지어져 있습니다. 사실 주님께로 가는 우리들이 지옥으로 던져질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보다 덜 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먹고 마시는 세상에서 우리들도 먹고 마셨고, 그들이 죄짓는 세상에서 우리도 함께 짐승같이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모든 긍휼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은 버리시고 우리를 선택하시는 것을 기뻐하셔서 우리를 천에 하나 만에 한 사람으로 불러서 우리에게 예수 사랑을 믿어지게 하시고 우리도 알지 못하던 때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 피로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나오는 이 위대한 주님의 행동, 사랑하는 성도의 눈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시는 어머니 같은 이 예수의 마음에서 비롯된 넘치는 위로는 이 땅을 살다간 성도들의 공로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구원해 주신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고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살다가 고난을 당할 때,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을 지나다가 시련을 당하고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아픔과 배신을 당할 때, 그 때 우리는 당하고 있는 그 고통의 크기를 생각하지 말고, 우리를 그 피로 구속해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의 은혜에 깊이 감격하여야 합니다. 이 벌레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 고난 당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나 어려움쯤은 넉넉히 이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해방이 되고 군대가 만들어졌는데 나라가 가난해서 군인들 월급을 몇 달 못 준적이 있습니다. 군인들의 불평이 심해졌고, 월급을 줘야지 먹고 살 거 아니냐고 군인들이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이승만 대통령이 군인들을 모아 놓고 그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월급, 중요하지, 그렇지만 나라를 찾았잖아.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았는데 그까짓 월급이 안 나와서 잠시 굶주리는 것이 그리 큰일이냐.’ 라는 반응이었던 것이죠. 정말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큰마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거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에게 맡겨진 섬김 또한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의 모형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섬기며 살아갈 때에 항상 사람들에게 박수 받고 높임을 받게끔 그렇게 하나님이 놔두시지 않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기는 비결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동행해 주시는 도다.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신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에 대한 깊은 감격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구속의 은혜에 의해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본분을 깨닫게 되고 하늘나라에서 누리게 되는 이 넘치는 위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누릴 수 있도록 허락된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하신 은혜를 깊이 찬양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상 이 세 교리를 마음에 두고 여러분들은 눈물 흘리는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만약에 섬기면서 눈물을 흘려야 하고 아파하는 일들이 생겨나게 되면 이것이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서 주신 은혜로운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수많은 사람 가운데 택해서 예수를 위해 이처럼 아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전 아직 목회를 하면서도 ‘예수 위해서 이렇게 많이 고생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봉투에 써서 헌금 내는 사람을 거의 본 일이 없습니다. 예수 위해서 당하는 많은 고통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로 하여금 예수 닮게 만드는 주님의 은혜의 선물이고 흘리는 그 눈물이 크면 클수록 그 나라에서 다른 성도들에 비해서 주님이 오랫동안 우리를 붙들고 더 많은 시간동안 우리의 눈물을 씻겨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때에 많은 성도들은 우리를 부러워할 것입니다. 그 날까지 예수 위해 헌신하고 주님 위해 눈물을 흘리며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