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때 열린 하늘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눅 3:21)
녹취자 : 김미현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성경구절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원래 세례라고 하는 것은 죄를 씻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었기 때문에 죄 씻음을 상징하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고 어떻게 보면 세례를 받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습니다. 이것을 아주 잘 설명한 신학자가 있는데 레온 모리스(Leon Morris)라는 신학자입니다. 요즘은 레온 모리스(Leon Morris)의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 것 같지 않은데 벌써 오래 되었으니까 저희 공부할 때는 레온 모리스(Leon Morris)와 조지 엘든 래드(George Eldon Ladd)라고 하는 두 신학자의 책들이 아주 많이 읽혔고 저는 그분들의 책을 원서로 학부 때 야간신학교 다니면서 읽으면서 많은 유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굉장히 감동적으로 설명하는데 그분의 논리는 이것입니다. ‘세례는 죄를 씻음의 표도 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로 연합되어 들어가시는 것, 그래서 백성들과 당신 자신이 하나가 되기 위한 의미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죄는 없으셨지만 세례를 받음으로서 그래서 모든 백성들과 한 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입증하신 것이다.’ 그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를 설명하시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이 세례는 겸비한 의미에서 단지 죄를 씻는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메시야로서 공적인 취임을 갖게, 공적으로 취임하시게 해주시는 사건이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읽은 21절 바로 뒤편에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셨다.’ 거기에서 이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장소에서 만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과 성부가 만나시는 지점입니다. 이것이 이제 화란의 개혁신학자들은 처소 속에서 그 삼위일체가 만나는 두 번 다시없는 유일한 장면이라고 그렇게 묘사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리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입니다. 이것을 청교도들이 더블 실링이라고 해서 ‘이중의 인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모해야 할 축복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는 관계에 대한 인침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회 사역을 하면서 지금도 방금 그 글을 쓰다가 왔는데 정말 어려운 것은 이 관계의 인침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인침이 무엇입니까? 사전 찾아봐도 안 나오는 단어입니다. 인침이 무엇입니까? seal, 도장을 찍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장 찍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를 들어 1억 원짜리 수표가 있는데 어디에서 한 장 주웠습니다. 도장이 안 찍혀 있습니다. 그러면 휴지입니다. 그런데 도장이 찍혀있으면 바로 현찰로 바꿀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관계의 인침’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믿은 다음에 원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의 인 쳐진 확신의 정도는 우리의 성화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막달린대학(Magdalene College)의 총장을 지내던 막달린대학(Magdalene College)이 지금도 있는데 옥스퍼드의 40개의 대학이 모여서 옥스퍼드 대학(Oxford University)이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막달린대학(Magdalene College)입니다. 거기 총장을 지내던 토마스 굳윈(Tomas Goodwin)이라는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유명한 성학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인침은 보증이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적이다.” 그래서 저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세례 이론에 대해서 동의를 안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걸어가다가 걸어가는 동안에 그 아들은 아버지 아들이지만 어느 한순간에 아버지가 너무 이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끌어안고 막 볼을 부비고 뽀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 이 사람이 자기 사랑스러운 아버지라고 하는 것을 아이가 더 강렬하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말하자면 ‘인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인침’은 당연히 성령으로서 인쳐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인격을 우리에게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오직 성령을 통해서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중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여전도사님들도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남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 딸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 딸은 상속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랍어에서 ‘테크논’과 ‘휘오스’는 다릅니다. ‘테크논’는 그냥 그 핏줄에서 난 아이를 모두 ‘테크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락지를 끼워주는 것은 ‘휘오스’입니다. 법적인 상속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딸이라는 표현이 없다고 해서 그것을 섭섭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쨌든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에게는 영혼의 침체라든지 하는 것이 없었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목회 사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목회자가 된 보람 그런 속에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 된 기쁨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모든 목회 사역의 그 힘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아서 언제나 하나님을 대면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인쳐주시는 그것이 우리의 목회 사역에 있어서 너무 너무나 필요한 것입니다. 목회 사역이 아니라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 너무나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도 이제 스치고 지나갔던 많은 교역자들에 대해서 회고하면서 안 목사님과 걸어오면서 얘기했는데 결국은 목회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신앙생활이 어려운 것입니다. 정말 못된 인간도 은혜 안에 있으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진짜 아름다웠던 사람도 그 은혜에서 멀어지고 나면 그렇게 못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목회생활 하다 보면 목자도 인생 중에 하나니까 내 맘대로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내 맘대로 안 될 때가 세상일보다 더 많습니다.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망가져서 추적을 해보면 항상 과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의 현재는 과거의 반영이고 미래는 그 사람의 현재를 보고 점칠 수 있습니다. 점친다고 하기보다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절대적인 법칙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고 믿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아버지가 사업을 망하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그래도 엄마 아빠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살았던 아이들은 구김이 없습니다. 인생에서 좀 어려운 일을 만나도 구김이 없습니다. 관계가 박살나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장가 안간 사람 누구입니까? 손들어 보십시오. 박지훈 전도사님입니다. 손 내리십시오. 제가 말하는데 엄마에게서 사랑을 많이 받은 자매를 고르십시오. 그러면 60%는 성공한 것입니다. 예쁘지 않아도 어차피 인물 뜯어먹고 살 것 아니니까 엄마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자매, 그래서 엄마가 애들이라면 벌벌 떠는 환경 속에서 자란 자매, 그런데 그것도 또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주 버릇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골라내야 합니다. 그러면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구김이 없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어떻게 맘대로 되겠습니까? 어떻게 주님도 마음대로 안 되어서 우셨는데 어떻게 맘대로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 무슨 일에 마음대로 되는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얘기합니다. 아이들 기를 때 맘만 먹으면 된다는 것을 먼저 가르쳐주지 말고 안 되는 것이 많다는 것, 안 되도 괜찮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안되면 큰일 날 것처럼 가르치니까 아이들이 한번 좌절하고 나면 주저앉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방법으로 기를 살려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목회하다 마음대로 안 될 때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그런 주님과 그런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누리면서 살 수 있다면 잘 안 되도 그것이 그렇게 막 영혼과 정신에 깊은 상흔을 남겨서 망가진 인격이 되도록 그렇게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어떻게 해야 되겠는지 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두 번째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 다음에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십니다. 이것은 청교도들의 설명에 의하면 아까가 관계에 대한 인침이라면 이것은 사역에 대한 인침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님이 하시려고 하는 일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예표가 되었던 가장 현저한 인물이 누구였느냐 하면 다윗이었습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이는 내 마음에 합한자라.’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 원하는 것을 다 이루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하고자 할 때 기준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입니다.
(예화) 지금은 이제 오래 되었고 다 떠났으니까 얘기해도 되는데 리폼드 라이브러리에 책을 구입하라고 간사에게 맡겼습니다. 여러 개가 중복이 되어서 들어왔습니다. 그 돈만 해도 벌써 몇 백 만원 될 정도였습니다. 200만 원정도 넘게 들어왔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 때는 실장도 없고 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냥 목사님이 사라 그러시면 구입을 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내가 구입하라고 할 때는 전에도 얘기했듯이 지금 이미 책이 내가 다 못 외우니 있나 없나 대조를 해서 있으면 내가 체크를 했어도 사지 말고 없으면 사야지.” 했더니 그 다음 대답이 너무 황당합니다. “목사님, 그렇게 하면 너무 힘들어요.” 그 자매가 정말 스스로 고백을 하기를 자기는 어려서 무엇이든지 딱 앉아서 두 발로 구르면 엄마가 무엇이든지 다 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도 그 중에서 골라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이제 인생이 많이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인생이 꼬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황당해서 그 사람이 이제 그런 사람들은 또 다루는 방법이 막 윽박지르면 안 됩니다. “얘야, 거기 앉아 보아라. 이 책이 네 책이고, 네가 월급 받은 돈으로 책을 산다고 하면 대조하겠니, 안하겠니?” 한참 생각하더니 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 내 책 살 때도 대조를 하거라. 그리고 중복되는 이 책은 반납하도록 하거라.” 반납이 쉽습니까? 몇 백 만원 어치 반납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잡혔는지 어땠는지 그렇게 되었습니다.
너무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기도도 자기 머릿속에는 이 기도 진짜 필요할 것 같다고 해서 간절히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면 기도에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사실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1년 전에,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1년 반쯤 전에 교회를 계속 이렇게 할 수 없으니까 지으면 어떻게 하냐고 해서 손사레를 쳤습니다. 그런 것은 안한다고 했더니 “연구는 한번 해봅시다.”합니다. “안 지을 것인데 연구를 해보느냐?” 했더니 “그래도 지을지 안 지을지 판단을 해보려면 연구를 해보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하긴 교회 지도자들로서 상황은 알고 있어야지 해서 연구를 했더니 몇 층을 올리면 논리적으로 계산을 하면 지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열린 공간 쪽을 헐고 짓는 것으로 했더니 진짜 기도를 했는데 딱 좋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무엇 하다가도 기도 안 되다가도 기도하면 들어가야 하는데 이것은 아예 안 들어갑니다. 그래서 한두 달 기도하다가 “정말 미안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아닌 것 같다. 지금 시점에 왜 그런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하면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아이가 만삭이 되어서 나오지 않습니까? 자신도 모르게 아랫배에 힘이 확 들어가면서 아이를 밀어냅니다. 그런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준점이 무엇이냐 하면 ‘이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그리고 이것이 교회에 어떤 유익을 주는가?’ 그것을 기준으로 생각하면서 기쁘게 헌신하면 하나님이 그 일에 대해서 인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정말 놀랍게 함께 하십니다.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화) 제가 내수동 교회 고등부전도사로 있었을 때 한 2년, 늘 그랬지만 어쨌든 열심히 심방을 했습니다. 한 2년 정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늘 했지만 특별히 열심히 했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정말 싫어하는 것이 교역자회의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교역자 회의를 3시 30분쯤 하는데 정말 싫어하셨습니다. 안 나가면 찍힙니다. 그런데 4시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주일날 저녁 이외에는 평일 날은 만날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이제 목사님께 “아이들이 정말 심방을 해야 하겠는데 아이들 만날 수 있는 날이 주일 밖에 없습니다.”했더니 목사님이 정말 기뻐하면서 교역자회의 안 나와도 좋으니 심방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보고는 따로 드리고 심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두시쯤 심방 나가서 밤 11시까지 심방을 하면 잘하면 15명 정도 심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 나오는 애들이기 때문에 얘네들은 미리 약속해서 어디로 나와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은 15명 가운데 5명도 안 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이놈들은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정보를 다 수집해서 학원으로, 집으로, 아니면 놀이터로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하나님이 심방하면 거의 만나게 해주십니다. 아주 절묘하게 만납니다. 그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하는 것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새문안교회 가서 그 간증을 했는데 한 녀석은 땡땡이를 쳤는데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집이었는데 그래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인간을 내가 꼭 만나고 가리라.’ 그리고 집 앞 놀이터에서 두 시간 가량을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진짜 밤늦게 터덜터덜 들어오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교회 간다고 나가서 땡땡이 쳤으니까 즐거울 리가 없습니다. 낮에는 즐거웠겠지만 곤고한 얼굴로 들어옵니다. “야!” 하고 불렀더니 깜짝 놀랍니다. 그래서 이제 붙들고 잔디에 앉아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한 30분하다 “기도하자.” 그러면 언제나 예외 없이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래서 한번 심방하고 오면 그 다음날 심방한 아이들이 거의 옵니다. 최고한 한주는 와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라는 확신이 드니까 아주 힘이 나고 순간순간 하나님이 문을 열어주십니다. 목회자는 그런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은혜가 있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만 은혜가 좀 식으면 나는 못한다. 은혜 받을 때까지.’ 그것은 아닙니다. 은혜는 그 일을 하게 하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은혜의 상태와 상관없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학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지하고 열렬한 사람보다는 약간 열렬하지 않아도 제대로 신학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이 오히려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냐 그래서 이번에 하나의 셀을 계획하면서 한번 여러분들의 사역을 객관화해보십시오. 주님의 마음으로 사역을 보면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면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실까? 그러면 어떤 일을 하면 주님의 교회에 병들고 상처 난 몸을 어루만지는 주님을 대신하는 사역이 될까?’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리고 하나님이 인 쳐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있기 전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늘이 열리며’였습니다. 하늘이 열렸기 때문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라는 주님의 음성도 들렸고 성령도 비둘기와 같이 임하셨고 그리고 ‘이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성부의 음성도 들렸습니다. 하늘이 열려야 합니다. 정말 하늘이 열려야 합니다.
(예화) 저는 그렇게까지 이야기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본인 말이 맞겠죠. 양목사가 간증하라고 하면 저한테 야단맞은 이야기. 그 때 참 못됐습니다. 제가 그랬다고 합니다.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양전도사, 자네 그렇게 사역해서 되겠어? 한번 열매를 봐. 아무래도 하나님이 너의 사역에 대해서 하늘 문을 닫으신 것 같다.” 제가 그랬다고 합니다. 벌써 그 때도 못됐으니까 그렇게 얘기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학교 채플실에 가서 펑펑 울었더니 친구들이 “왜 그러냐?”, “우리 목사님이 하늘 문이 닫혔대.” 친구들이 막 모여서 벌떼처럼 모여서 기도해 주었다고 그런 얘기를 합니다.
하늘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역자들이 이것을 운명론적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신 사람. 저 사람은 닫힌 사람.’ “너는?” 그러면 항상 “나도 열렸어. 닫혔어.” 말하지 않고 “글쎄.”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판단을 유보합니다. 사람들이 하늘이 열렸다는 인상은 이 기사를 읽으면서 팍하고 꽂힙니다. 그런데 왜 열렸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하늘 문이 열렸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그런데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주목을 하지만 ‘기도하실 때’라는 말은 주목을 안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그런데도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열어 주셨을 때에는 예수님의 기도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이제 이것은 올해, 내년입니다. 돌아가고 나서 이후부터 양보할 수 없는 사역의 말하자면 구심점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복들이 쏟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여러분들이 개인적인 기도를 기도가 기도의 사역이 헌신이 모든 사역의 토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 설교도 그런 내용이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면 우리 목회 사역은 계속해서 피상성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스며들어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고하게 목표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기도를 전혀 안하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소수이기는 하지만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교역자들의 기도가 약합니다. 더군다나 제가 아직도 옆구리 쪽에 통증이 계속 남아있습니다. 제가 한달 전에 새벽기도를 나가려고 결심을 하다가 우리 집사람이 하도 말렸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후유증이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그 이후로 새벽기도가 너무 약해지고 교역자들의 기도가 현저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무슨 제도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깊이 은혜를 받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3개월에 한 번씩 여러분들의 새벽기도 생활이나 이런 것이 전부 다 올라옵니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목회를 하려고 그럴까? 그 젊은 나이에, 그 젊고 건강한 나이에 이렇게 자기를 이기지 못해서 어떻게 할까?’ 그런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회의할 때 이야기하겠습니다만 밤늦게까지 사역하는 것은 좀 줄이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밤 시간을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으면서 기도한다면 사역에 정말 놀라운 변화가 올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항상 오래 계신 분들 기억하시겠지만 목회자 한 사람이 나갈 때 청빙 받고 나가거나 개척할 때 제가 항상 퀴즈를 던졌습니다. “이번에 아무개 목사가 나가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 같은가? 일 년 후에 교인들이 어느 정도 모일지 점쳐보라.” 물론 누구도 손을 번쩍 들고 “목사님 그 사람 목회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슴 속에 생각해 봐라. 대답할 필요 없이 가슴 속에 생각해 보라.” 그러면 결국 그것은 그 사람의 신앙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방법을 익혔어도 신앙입니다. 그 중에 무엇으로도 바꿔 놓을 수 없는 것이 마음을 쏟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 줄 수가 없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아예 기도시간이 있어서 들어올 때 카드 긁고 나오고 그 시간을 채우고 예배당에서 나와야 합니다. 화장실도 못갑니다. 그것을 두 시간, 세 시간 정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가 될 것 같습니까? 기도하려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겠습니까? 기도회 인도할 때만 열렬한 기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합니다. 들어갔다 나와도 좋으니까 한번쯤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에스라 3장에 나옵니다. 성전 지대를 놓을 때 새로 태어난 세대들은 환호성을 치고 늙은 할아버지들은 눈물을 펑펑 흘립니다. 왜입니까?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우리가 도달한 예배의 수준이 이러니까 예배는 이 정도 가지고 아니야.”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이 정도가 아니야.” 이래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 가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곧 끝납니다. 좀 더 지나면 야단 칠 사람도 없고 잔소리 할 사람도 없고 절대로 기도 안하고 죽을 때까지 생자로 살아도 “당신 그러면 안 된다.”라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가 제일 높기 때문입니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깊이 생각하면서 들어갔다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저는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회 사역은 한편의 소설을 쓰고 한편의 시를 쓰는 것과 꼭 같습니다.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들다 온 사람들은 시에서 피 냄새가 납니다. 피의 비린내가 확하고 납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드라마 수준의 작품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할 것이냐?’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히 바라기는 교회 전체적인 부흥, 그것을 우리들이 사모하지만 자기가 하고 있는 부서에서 괄목할 만한 부흥을 보아야 합니다. 부흥이라는 것이 숫자가 늘어나고 이런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 할 수 있는 그런 아주 현저한 각성과 은혜, 그런 것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을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돌아가면 이제 학교 다니는 사람들은 종강하고 정리됩니다. 다 졸업하니까 너무 잘 된 것입니다. 끝났으니까 각오를 단단히 하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그러면서 중심점을 항상 목회의 중심점을 옮겨가서 공부를 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죽도 밥도 안 됩니다. 제가 누구 못지않게 공부했고 책을 쓰고 있지만 제가 그렇게 합니까? 공부를 해도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작년 이맘때 인도차이나 선교 계획이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뚝뚝 떨어지는 것입니다. 2900몇 십 명 까지 떨어졌습니다. 다 계획 짜놓았다가 한번에 전부 접어버렸습니다. “지금 제가 갈 때가 아닙니다.” 그렇게 중심을 놓고 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공부하는 것이 목회 사역에 방해가 되면 책을 탁 덮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은 말발이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얼마나 목회사역이 우리의 삶에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껏 강의해서 은혜 받고 나면 진학한다는 얘기들만 합니다. 그렇게 적용을 그렇게 합니까?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목회의 중심을 깊이 실었는지 안 실었는지는 첫째는 하나님이 아시고 두 번째는 자기 양심이 압니다. 세 번째는 주위의 동역자나 교구의 식구들이, 지체들이 다 압니다. 그런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 때 거기에서 삶과 기도가 일치하면서 하늘을 여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얘기해도 끝까지 안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자기 운명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자기 분량의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절대적인 사역이지만 고독감 속에서 하나님 앞에 몸부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그 때 주님은 깊이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 문이 열려서 내년부터 사역에 여기 와서 12년 세월 흐른 사이에 부서에 몇몇에서 그런 부흥과 유사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공통점은 그 안에 간절한 기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번 하늘의 불이 여러분들의 사역지를 한번 훑고 지나가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 은혜의 세계, 그리고 설교 사역이 얼마나 장엄한지, 목회가 무엇인지 그런 것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설교 하나를 통해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그렇게 설교를 다 잘하겠습니까? 심방이면 심방, 설교면 설교, 아이들 상담이면 상담, 모든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한 그 부흥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디서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깊이 하나님 앞에 자기를 쏟아 부으며 그런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이 하늘을 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없이 나랑 같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각기 길을 떠나야 합니다. 교회가 새로운 시스템에 접어들면서 그러면서 여러분 모두를 졸업하는 대로 전부다 전임사역자로, 준전임 사역자로, 그러다 보면 전임 사역자로, 그러다 보면 부목사로, 그러다 보면 수석부목사로 그렇게 써줄 수가 없습니다. 미워서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허락을 안 합니다. 상황이 그러면 여러분 저처럼 한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13년씩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제가 13년을 전도사 생활을 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제 언젠가 헤어집니다. 그 때에는 이상적인 것은 좋은 교회에 가서 담임 목사님 설교 들으며 은혜 많이 받고 여러분 자신이 돌봄을 받으며 그렇게 하기 원하지만 그런 교회는 별로 없습니다. 아주 소수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동의할 수 없는 말씀이 울려퍼져서 이단이 아닌 한 가서 내가 섬겨서 이 교회를 세운다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 때에 여러분 자신을 지탱하게 만들어 주는 그 힘은 하늘로부터 오는 힘이 아니면 못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무엇으로 견디려고 합니까?
(예화) 우리 교회 이민환 목사라고 부목사님이었는데 오락가락하다가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역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평신도로 들어와서 있다가 교역자가 되었습니다. 부목사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많이 받고 어쨌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2000명 모이는 교회에 가서 자기는 정말 잘해 보려고 맡겨진 교구식구들 모아놓고 열심히 교재 만들어서 하나님 말씀 가르쳤더니 어느 날 당회에서 불러서 ‘하지마라. 그냥 상당하면 심방하고 담임 목사님 심방하라고 하면 심방하고 보고하지 교구식구들하고 그렇게 자주만나지 마라.’ 그것이 당회에서 돌아온 답입니다. 그래도 거기서 자신이 살려면 하나님 섬겨야 합니다. 영혼 섬겨야 합니다. ‘당회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데 냅두라고 하지.’ 하고 월급만 받고 있으면 삯군입니다. 그 때 그런 것들을 견뎌 나가게 하는 힘을 어디로부터 공급받으려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그리고 여태까지 지금 6명 정도가 교회를 개척하거나 청빙 받아 갔는데 이런 얘기 미안하지만 안 될 사람은 안 됩니다. 그 중 한 사람은 “개척하지 마라.”, “왜요?”, “안 된다. 내 명예를 걸고 안 된다. 너는 문 닫는다.” 닫았습니다.
안될 사람은 안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 번 쯤은 하늘이 열리는 것을 경험을 해서 목회의 진수가 무엇이고, 하나님 말씀의 진수가 무엇이고, 기도의 진수가 무엇이고, 영혼들의 변화가 무엇이고, 이것을 경험해야지만 다다르고 싶은 목표치가 생기는 것입니다. 목표치가 생겨도 마음을 안 쏟아 붓는데 목표가 없는데 미친 듯이 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역의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입니다. 정말 신앙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는데 사역이 여러분들의 신앙의 일부가 되게 신앙에서 사역이 떨어 질수가 없습니다. 하나가 되게끔 하는 것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마음을 쏟아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집에 사모님들하고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 때에 모종의 강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