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가르친 후(2)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눅 11:5-10)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후 마태복음에는 용서에 관한 교훈이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바로 주기도문을 끝낸 후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한다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또 이르시되…”라고 한 본문의 이 말씀은 두 교훈이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주기도문에 연속되어 나오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주기도문이 기도의 형식, 곧 패턴에 대해서 가르쳐 준 것이라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기도의 끈기 있는 자세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긴 본문의 한 가지 주제는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시는 방법이 첫째 ‘인격적인 접근을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딛고 열심히 기도하지만 항상 그들이 구하는 것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는 일단 실천을 하면 기도가 되든지 안 되든지 그것을 통해서 우리 신앙생활에 유익을 얻게 됩니다. 기도할 때 기도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가 잘못 살지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기도가 잘될 때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니 내가 더욱 주님을 의지할만 하구나.’ 하는 신앙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를 통해서든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게 되고, 또 그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가 하는 것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그저 간구가 아닌 전 인격적인 접근을 요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유명한 교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받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같은 말처럼 보이는 이 세 가지 명령형 동사가 사실은 우리의 몸 전체의 특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구하는 것은 입으로 구하는 것이요, 찾는 것은 발로 걸어가 눈으로 찾는 것이며, 또 두드리는 것은 바로 원하는 그 집 앞에서 손으로 두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 전체의 기관을 사용해서 하나를 찾는 것입니다. 찾는 것은 눈으로 찾고, 구하는 것은 입으로, 그리고 두드리는 것은 손으로 두드리지만 이 모든 몸의 찾는 지체들은 한 가지 마음에 연결되어 있어서 그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단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우리의 온 몸이 하나가 되어서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단지 마음으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마음의 눈으로 간절히 우리의 바라는 것을 찾고, 또 믿음으로 막혀져 있는 것 같은 삶의 상황을 두드리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것이 기도의 자세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게으름의 문제만이 아니라 기도가 영적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을 하면 그냥 일을 하지만 기도를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뵈옵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일을 하는 것은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지만 기도를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항상 그 기도의 실천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받습니다. ‘너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어려운 것이고, 사람이 다른 신앙적인 의무를 이행하기는 쉬워도 기도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기는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하기를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최고의 표현이라고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뵈올 때 삶을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하려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렇지 못했던 지난날의 삶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고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양심의 채찍질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율법의 정죄와 양심의 송사를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에 대한 믿음으로 뚫고 통과하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단호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용서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과 그리고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우리가 그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다시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마음을 갖게 되고, 이 마음 안에서 우리는 기도 중에 만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시든지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야 되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여러분들이 간절한 기도로 나오기를 원한다면 먼저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기를 결단하십시오. 그러나 혹시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으로서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시지도 않는다든지 혹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제는 더 이상 나를 향하지 않는다든지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자녀를 기를 때에 너무너무 많이 화가 나면 잠시 그 아이와 아이 앞에서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 아이를 반성하게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여러분들이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는 것처럼 느끼는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 자신이 좀 더 자신으로 돌아가 자기를 성찰하며 하나님 앞에 진정한 회개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주님이 그리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기도할 때에 기도가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더 간절한 기도로 부르시는 한 과정이고 아직까지도 여러분들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하나님의 은총의 표징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당신 앞으로 부르십니다. 기도 하나만 해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살짝 타낸 후 다시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살아가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오늘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고 혹은 불순종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이 중요한 기도의 제목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고치시고 새 사람을 만들기 위해 기도로 나아오게 하신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공간을 숨 쉬고 삽니다. 우리는 여전히 육신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는 우리도 채 알지 못하는 각양 많은 욕망들이 용솟음칩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떤 사물들을 보며 원해서 하나님이 사물을 주신 그 목적과는 벗어나는 표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표상들은 우리의 욕망과 함께 합쳐지며 우리에게 수많은 그릇된 또 다른 욕망들을 양산해 냅니다. 그런 표상의 물결에 우리들이 출렁거리며 떠내려갈 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을 향할 때 하나였던 우리는 그 시간과 표상 속에서 갈가리 찢어져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처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전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 빛나던 삶의 아름다운 지혜는 빛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어느 곳에서도 우리에게 금욕적인 삶을 칭송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은 선한 것들이니 그 선한 것을 선한 의도를 가지고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만물을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도 합니다. 만물은 선하나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의 마음은 부패에 흐르기 쉽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욕망을 절제하도록 그리고 지나친 세상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에게 경고하시고 세상을 사랑할 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전 인격적인 접근입니다. 한 사람은 그가 기도할 때에 그 사람을 능가할 수 없으니 그 기도는 그 사람됨 안에 갇히고 그 사람됨은 그가 하는 기도를 능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듣고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여러분들은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생각하고 그 모든 제약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그리고 풍부한 기도의 세계 속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삶 전체를 돌아보며 기도 생활을 고쳐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밤중에 찾아온 벗
마지막 두 번째 교훈은 “간절히 구하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 바로 앞에는 한 비유가 등장합니다. 한밤중에 여행을 하던 친구가 자신의 집에 불현듯 찾아왔습니다. 여행길에 이 친구는 굶주렸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밤 자신의 집에는 양식이 없고 새로 떡을 만들 처지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친구가 생각이 나서 그에게 가 친구에게 줄 떡을 빌려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렇게 간청하였을 때 이 친구가 “내가 이미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서 너에게 줄 수가 없노라. 그렇게 말하겠느냐?” 하고 예수님이 반문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씀이 벗됨을 인해서는 주지 않으나 간청할 때에는 들어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뭔가 중간에 고리가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고리를 보고 나면 이런 스토리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네가 친구에게 가서 한번만 그렇게 부탁하고 돌아온다면 안 들어줄 지도 모르지만 계속 간청한다면 차라리 얼른 줘버리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이 낫지, 저 소리를 계속 들으면서 누워있지만 잠도 이루지 못하지는 아니하리라 친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에 있어서 간청하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기둥과 같이 매우 중요한 실천적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실함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에 있어서 진실함은 모든 능력과 모든 신비한 체험을 능가하는 것이며 모든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도 속에 진실함이 없다면 그것은 모두 성령으로부터 말미암는 기도가 아닙니다.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에 인간의 마음과 삶이 함께 부착되어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바로 진리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 붙어 있는 마음이 진실한 마음입니다. 진실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속임이 없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꾀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함입니다.
진실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이것이 기도의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사람은 속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속을 리가 없으신 분이니 우리가 하나님께는, 주님께는 우리들이 속이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사람에게는 우리가 감추어진 것이 있지만 하나님께는 우리가 이미 진실하게 고백하지 않아도 모두 알려졌으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해지는 것 이외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를 빛나게 하는 모든 은사를 주고도 사야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진실입니다. 이 진실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진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에 청렴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에게 솔직해질 뿐입니다. 그런데 그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은 진실이라기보다는 때로는 뻔뻔스러움으로 귀착되기 일쑤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실천의 한 기둥은 진실함이고, 두 번째는 끈질김입니다. 한번 안 되는 것으로 멈추지 아니하고 주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나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이 기도를 단박에 들어주지 아니하시고 시간을 끄시는 것은 이 기도를 통해 망가진 나를 고치시기 위함이라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억울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가 생각납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억울한 일을 당한 한 과부가 그 재판장에게 나아가 자신의 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탄원하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당시에 과부는 사회적으로 소외 받고 위협을 받는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연히 무시당하고 사람들이 함부로 대했기 때문에 불이익을 많이 당했고, 그렇지 않아도 상처가 많은 사람들에게 억울한 일이 더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억울한 사정을 법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재판장밖에 없었고, 그 사람을 존경하거나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 밖에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리가 없기 때문에 그에게 나아가 울부짖으며 자기의 억울한 이 사정을 들어 판결을 내려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었을 때에 이 재판장은 들은 척도 하지 않다가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눅 18:4-5) 자기 자신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이 과부의 억울한 형편을 풀어주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불의한 재판장도 자기가 계속 간청을 받으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억울한 한을 풀어주는데 하물며 선하시고, 좋으시고, 긍휼하신 하늘의 아버지는 그 자녀인 너희들이 간구할 때 얼마나 잘 들어주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III. 필요한 것을 주심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완전하게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며 살기에 충분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간절히 간구하게 하십니다. 어떤 기도는 한번 했는데도 들어주시고, 어떤 기도는 기도를 하지도 않고 마음으로 생각만 했는데 들어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 왜 그러실까요? 저는 최근에 어느 외국에 있는 한 학교의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일군들을 길러내기 위한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기도를 했는데 미국에 있는 어느 독지가가 그 계획을 모든 들은 후에 정말 하나님의 나라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며 우리나라 돈으로 약 50억의 돈을 쾌척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의 기부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그 학교에 관계자들이 미래의 계획에 대해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때까지 들어온 기부금과 학생들이 내는 소액의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을 하면 앞으로 한 5~6년까지는 계속이 되는데 그 후에는 계획이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이냐를 염려하며 대책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앞으로도 5~6년 동안 계속할 수 있는 자금이 학교에 남아있다는 것은 너무 훌륭한 것입니다. 저희는 방배동에서 셋집에서 쫓겨나 이게 올 곳,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이 땅을 36억을 달라고 하는 땅을 39억을 주기로 하고 계약을 했고, 그리고 그때에 교회에 남은 돈은 1500만원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온 성도들이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고, 저도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교인 중 한 사람이 3억을 빌려주어서 그것으로 계약금을 하고, 그 다음에는 기도 속에서 하나하나 이루어서 70억이나 되는 이 교회 프로젝트를 모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하면 당신이 어떻게 이루실지를 하나님은 10년 치씩, 20년 치씩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면서 일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을 의지할까요? 그래서 우리는 눈앞에는 보이는 것이 없지만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이 선한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또한 마지막까지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 이 교회 전체를 기본적인 설계를 제가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제가 군화를 신고 하이바를 쓰고 그리고 지휘를 하면서 일꾼들을 데리고 첫 번째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그때 잊히지 않는 일화가 있습니다. 와서 일하는 일꾼들이 많을 때는 70명씩이나 되었는데 이 사람들 중에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신자였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미장일을 하고 있는데 그 어수선한 공사판에 의자도 없는 그 빈 예배당에 성도들이 밤중에 와서 서서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남아있는 불신자인 일군들이 ‘저렇게 성도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 예배당을 짓고 있으니 참 내가 잘해주어야지만 복을 받겠구나.’ 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누리고, 여행하고,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열렬한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유독 하나님을 찾는 일에 있어서는 세상 것을 찾는 것보다 더 뜨거운 열심을 갖기를 게을리 하니 어찌 한탄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어야할 줄을 아시는데도 하나님은 왜 그렇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질 때까지 혹은 우리의 기도를 우리의 눈물의 병에 담기까지 하나님은 그 응답을 연장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기도의 목적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기도의 목적은 바로 기도라는 매일 매일의 은혜의 수단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만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다 드리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 의존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삶의 모든 방면에서 순종해야 할 자신의 위치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욕망을 가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짓게 되고, 그 죄는 결국 그를 영적인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너희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그렇게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어 하나님 떠나지 말고 하나님 의지하며 살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남겼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6-17)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가져야 하고 거기에 이끌려 그 욕망을 불태워야지만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를 짓고 사망에 이르지만 너희는 속지 말아라 모든 좋은 것들과 은사는 그리고 온전한 모든 선물은 하나도 빠짐없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온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또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모두 주어지면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될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오래전 명절에 제 방에 한 아이가 울며불며 무언가를 요구했습니다. 식구들은 모여 앉아서 떡을 썰고 있었습니다. 공교롭게 잠깐 사이에 떡을 썰던 식구들이 모두 자리를 비웠고, 잠시 후에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어린 아이가 다들 놓고 떠난 떡 썰던 칼을 들고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손을 배여서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위에 모든 어른들이 사라졌을 때 자신이 원하는 칼을 손에 넣게 되었을 때 이 아이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아이가 가져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는 무엇이 필요한지 완벽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완전히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서 안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그것이 필요 없기 때문에 혹은 그것을 구한 것이 우리의 정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주신 것이고, 주신 모든 것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신앙이 부족한 자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욕심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끈질기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결국 모든 좋은 것들이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배웁니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부끄러움이 없고, 아무리 많이 소유하고 있어도 마음에 억눌림이 없는 자유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간절한 소원을 끈질기게 열심히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연약한 자신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을 깊이 감동시켰던 시인들의 경건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찬양)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내 심사를 통촉하시고 부르짖는 소리 들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내가 주께 기도하니 주께서 내 소리 들으리니
오 주여 아침에 내가 기도하고 주께 바라리이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도, 위대한 통치자도 그 뛰어난 모든 시인들도 이렇게 하나님을 어린 아이처럼 갈망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목회자와 장로들이 있는 교회는 어려움을 당하나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교회를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눈물로 의지하는 하나님이 그들의 간구를 들어 가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이렇게 자신의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한, 아빠가 그런 간절한 기도로 자기를 깨뜨리며 가정을 보호하고 있는 동안에는 가정이 깨지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두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든지 하나님이 이 말씀으로 나를 그렇게 불러주셨다고 믿고 주님께 간구하여 하늘 문이 열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인색하지 않으시고 능력이 부족하시지도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끔 기도의 응답을 지연시키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간절히 열렬히 매달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린 시절 대장간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농촌에서 요긴하게 사용하는 낫이나 호미, 칼들을 만드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역청탄을 놓고 시뻘겋게 불을 피워 거기에 철판 쪼가리를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잠시 후면 시뻘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눈부신 빛이 나옵니다. 그러나 아주 잠깐입니다. 길어봐야 7초 내지 10초 밖에 안 되는 시간만 그 상태가 유지되고, 뜨거운 그 숯에서 꺼내자마자 쇠는 식기 시작합니다. 식기 전에 아주 우람한 팔에 망치를 움켜쥐고 아주 빠른 동작으로 망치로 모루 위에 그 쇠판을 놓고 두드리면서 각양 도구들의 형체들을 만듭니다. 그리고 다시 까만 쇠가 되어 식어지고 나면 더 이상 두드리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불속에 집어넣어 시뻘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두드립니다.
이제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마음이 간절한 기도 속에서 빨갛게 달구어지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은 굳어져 있어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두드리셔도 좀처럼 변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질러버리기나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변하되지 않는 마음을 절실한 기도 제목을 주셔서 치열하도록 연단의 숯불 속에서 붉게 달아오르도록 만들고, 간절하고 뜨거운 기도 속에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그렇게 달구어졌을 때 하나님은 말씀의 망치로 여러분들을 빚어 새 형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 자신을 바꾸시는 것이니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바꾸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열렬하게 간절히 그 일이 안 이루어지면 죽을 것처럼 기도하다가는 마지막에는 그 일이 이루어지던, 안 이루어지던 사실은 별 상관이 없는거구나 하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 자신이 주님 앞에 변화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일생에 걸쳐서 기도를 통해 우리를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기도 없는 사람은 하나님 의지하는 대신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니 언젠가는 하나님을 맞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잡다단했던 우리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그리고 조용히 한번 자신에게로 돌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주님 없이 살수 없는 자신을 확인하십시오. 지친 자신을 추스르며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IV. 적용과 결론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관계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오롯이 하십시오. 그리고 상한 갈대처럼 꺼져가는 등불의 심지처럼 그렇게 연약한 자신의 처지를 깨달으십시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여러분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알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지혜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은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이 모든 삶의 상황을 넉넉히 이기게 하실 주님 안에 있는 영적인 부요함을 바라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