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가르친 후(2)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눅 11:5-10)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후 마태복음에는 용서에 관한 교훈하십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바로 주기도문을 끝낸 후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또 이르시되…”라는 말씀은 본문에서 두 교훈이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주기도문에 연속되어 나오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주기도문은 기도의 형식, 곧 패턴을 가르쳐주었다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기도의 끈기 있는 자세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II. 밤중에 찾아온 벗
오늘 본문의 첫 번째 교훈은 ‘간절히 구하라’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앞에 하나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한밤중에 여행하던 친구가 자신의 집에 불현듯 찾아왔습니다. 친구는 여행길에 굶주렸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밤이어서 집에는 양식이 없고, 새로 떡을 만들 상황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친구에게 가서 자신의 친구에게 줄 떡을 빌려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렇게 간청하였을 때 이 친구가 “내가 이미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서 너에게 줄 수가 없노라” 라고 말했을까요? 예수님도 “그렇게 말하겠느냐?” 하고 반문하셨습니다. 또한 “벗됨을 인해서는 주지 않으나 간청할 때에는 들어줄 것이라”라고 덧붙여서 말씀하십니다. 무엇인가 이야기 중간에 고리가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고리를 보고 나면 이런 스토리입니다. ‘만약에 네가 친구에게 가서 한번만 그렇게 부탁하고 돌아온다면 안 들어줄 지도 모르지만 계속 간청한다면 차라리 얼른 줘버리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이 낫지, 저 소리를 계속 들으면서 누워있지만 잠도 이루지 못하리라, 친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갈 때 간청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기도할 때 중요한 두 가지 실천적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진실함’입니다. 기도에서 진실함은 모든 능력과 모든 신비한 체험을 능가합니다. 모든 것이 있어도 기도 속에 진실함이 없다면 모두 성령으로부터 말미암는 기도가 아닙니다. ‘진실함’은 ‘인간의 마음과 삶이 진리에 함께 부착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붙어 있는 마음이 진실한 마음입니다. 진실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속임이 없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꾀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함’입니다. 진실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기도의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사람은 속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속을 리가 없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속이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사람에게는 우리가 감출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 진실하게 고백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계시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실해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은사를 우리가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면 이러한 진실을 사야합니다. 우리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진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솔직해질 뿐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도 진실함이 아닙니다. 때로는 뻔뻔스러움으로 귀착되기 일쑤입니다.
두 번째는 ‘끈질김’입니다. ‘끈질김’이란 ‘한번 하고 안 된다고 멈추지 않고 주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끈질김은 주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나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과 나의 기도를 단박에 들어주지 않고 시간을 끄셔도 망가진 나를 고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누가복음 18장의 억울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은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재판장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탄원하는 장면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과부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위협받는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연히 무시당하고 사람들이 함부로 대했기 때문에 많은 불이익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많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과부들은 억울한 자신의 사정을 법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재판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판장을 존경하거나 그들이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장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과부는 재판장에게 울부짖으며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판결을 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처음에 재판장은 들은 척도 하지 않다가 이런 일들이 자꾸 반복되니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눅 18:4-5) 자기 자신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과부의 억울한 형편을 풀어주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불의한 재판장도 계속 간청을 받으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억울한 한을 풀어주는데 하물며 선하시고, 좋으시고, 긍휼이 풍부하신 하늘의 아버지는 그 자녀인 너희들이 간구할 때 얼마나 잘 들어주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III. 필요한 것을 주심
A. 전인격적 접근
오늘 본문의 또다른 주제는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주신다.’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주시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인격적인 접근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딛고 열심히 기도하지만 항상 그들이 구하는 것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는 일단 실천하면 기도가 되든지 안 되든지 그것을 통해서 우리 신앙생활에 유익을 얻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도가 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가 잘못 살지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반대로 기도가 잘 될 때는,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니 내가 더욱 주님을 의지할만 하구나.’ 하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어떤 경우이든지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게 되고, 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가 하는 것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기도는 그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접근을 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교훈인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원하는 것을 간구할 때 우리의 기도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의 세 가지 명령은 같은 말처럼 보입니다. 사실 세 가지 명령형 동사는 우리 몸의 특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구하라’는 입으로 구하고, ‘찾아라’는 발로 걸어가서 눈으로 찾으며, 또 ‘두드리라’는 집 앞에서 손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과 관련됩니다. 우리의 몸의 전체 기관을 사용해서 하나를 찾는 것입니다. 눈으로 찾고, 입으로 구하고, 그리고 손으로 두드리지만 우리 몸이 찾고 있는 지체들은 한 가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기도는 단지 입술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온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단지 마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마음의 눈으로 간절히 우리의 바라는 것을 찾고, 또 믿음으로 막혀져 있는 것 같은 삶의 상황을 두드리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것이 기도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게으름의 문제만이 아니라 기도가 영적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은 그냥 할 수 있지만 기도는 하려고 마음먹으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뵈옵게 돼서 쉽게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은 하고자 하면 할 수 있지만 기도는 하려고 마음먹으면 우리는 항상 한 가지 질문을 받습니다. ‘너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느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어려운 것이고, 다른 신앙적인 의무를 이행하기는 쉬워도 기도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기는 그만큼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하기를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최고의 표현이다.”라고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뵈올 때 하나님 앞에 삶을 올바르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렇지 못했던 지난날의 삶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양심의 채찍질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율법의 정죄와 양심의 송사를 이기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에 대한 단호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용서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과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우리가 그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다시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마음을 갖게 되고, 이 마음 안에서 우리는 기도 중에 만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시든지 말씀대로 순종하여야 되겠다는 의지를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여러분들이 간절한 기도로 나오기를 원한다면 먼저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기를 결단하십시오. 그러나 혹시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으로서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시지도 않는다든지 혹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제는 더 이상 나를 향하지 않는다든지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를 기를 때, 부모는 화가 많이 나면 잠시 아이 앞에서 침묵함으로써 아이를 반성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는 것을 느끼게 함으로써 좀 더 자기를 성찰하며 하나님 앞에 진정한 회개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기도할 때에 기도가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더 간절한 기도로 부르시는 한 과정이고, 아직까지도 여러분들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하나님의 은총의 표징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를 당신 앞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필요한 것을 살짝 타낸 후 다시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내가 오늘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고 혹은 불순종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기도의 제목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고치시고 새 사람을 만들기 위해 기도로 나아오게 하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숨 쉬며 삽니다. 우리는 여전히 육신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각양각색 욕망들이 용솟음칩니다. 때로는 우리는 어떤 사물들을 보며 하나님이 사물을 주신 목적과는 벗어나는 표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표상들은 우리의 욕망과 함께 합쳐지며 우리에게 수많은 그릇된 또 다른 욕망들을 양산해 냅니다. 그런 표상의 물결에 우리들이 출렁거리며 떠내려갈 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을 향할 때 하나였던 우리는 시간과 표상 속에서 갈가리 찢어져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처지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은 예전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 빛나던 삶의 아름다운 지혜는 빛을 잃게 됩니다.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금욕적인 삶을 칭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은 선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한 의도로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만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만물은 선하나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의 마음은 부패에 흐르기 쉽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욕망을 절제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세상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경고하십니다. 또 세상을 사랑할 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전인격적인 접근입니다. 한 사람의 기도는 그 사람을 능가할 수 없으니 기도는 그 사람됨 안에 갇히고 그 사람됨은 그가 하는 기도를 능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이 말씀을 듣고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생각하고 그 모든 제약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그리고 풍부한 기도의 세계 속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삶 전체를 돌아보며 기도 생활을 고쳐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간절히 구함
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히 구하게 함으로써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완전하게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며 살기에 충분하지만 우리가 간절히 간구하게 하십니다. 어떤 기도는 한번 했는데도 들어주시고, 어떤 기도는 기도를 하지도 않고 마음으로 생각만 했는데 들어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 왜 그러실까요?
최근에 저는 외국에 있는 어느 한 학교의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일꾼들을 길러내기 위한 중요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독지가가 그 계획을 듣고, 정말 하나님의 나라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며 우리나라 돈으로 약 50억을 쾌척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의 기부가 이어졌습니다. 학교 관계자들이 회의를 열어 미래의 계획을 보고하였습니다. 이때까지 들어온 기부금과 학생들이 내는 소액의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면 앞으로 한 5~6년까지는 계속이 되는데 그 후에는 계획이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이냐를 염려하며 대책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앞으로 5~6년 동안 계속할 수 있는 자금이 학교에 남아있다는 것은 너무 훌륭합니다. 저희는 방배동에서 셋집에서 쫓겨나 올 곳,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이 땅을 36억을 달라고 하는 땅을 39억을 주기로 하고 계약을 했고, 그때 교회에 남은 돈은 1500만원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온 성도들과 저는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교인 중 한 사람이 3억을 빌려주어서 그것으로 계약금을 냈습니다. 그리고 기도 속에서 하나하나 이루어서 70억이나 되는 교회 프로젝트를 모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10년 치씩, 20년 치씩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면서 일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주님을 의지할까요? 그래서 우리는 눈앞에는 보이는 것이 없지만 주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선한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또한 마지막까지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나아갑니다. 그때 교회가 돈이 없어서 제가 교회의 기본적인 설계를 했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군화를 신고 하이바를 쓰고, 일꾼들을 지휘하면서 첫 번째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그때 잊히지 않는 일화가 있습니다. 공사현장에 와서 일하는 일꾼들이 많을 때는 70명씩이나 되었는데 이 사람들 중에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신자였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미장일을 하고 있는데 그 어수선한 공사판에 의자도 없는 빈 예배당에 성도들이 밤중에 와서 서서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남아있는 불신자였던 일꾼들이 ‘성도들이 저렇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예배당을 짓고 있으니 내가 잘해주어야지만 복을 받겠구나.’ 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누리고, 여행하고,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열렬한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유독 하나님을 찾는 일에 있어서는 세상 것을 찾는 것보다 더 뜨거운 열심을 갖기를 게을리 하니 어찌 한탄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어야할 줄을 아시는데도 하나님은 왜 그렇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질 때까지 혹은 우리의 기도를 우리의 눈물의 병에 담기까지 응답을 연장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기도의 목적과 관계가 있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바로 기도라는 은혜의 수단을 통해서 우리가 매일 당신만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다 드리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 의존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삶의 모든 방면에서 순종해야 할 자신의 위치를 배우게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욕망을 가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짓게 되고, 그 죄는 결국 그를 영적인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너희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그렇게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어 하나님 떠나지 말고 하나님 의지하며 살라’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남겼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6-17)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가져야 하고 거기에 이끌려 그 욕망을 불태워야지만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를 짓고 사망에 이르지만 너희는 속지 말아라.’라는 의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모든 좋은 것들과 은사, 온전한 선물은 하나도 빠짐없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온다고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요? 또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모두 주어지면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될까요? 오래전 명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아이가 울며불며 무언가를 요구했습니다. 식구들은 모여 앉아서 떡을 썰고 있었습니다. 떡을 썰던 식구들이 모두 잠깐 자리를 비웠고, 잠시 후에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족들이 놀라서 와보니 울던 아이가 떡 썰던 칼을 들고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손을 배인 것입니다. 주위에 있던 어른들이 사라지고 자신이 원하는 칼을 손에 넣었을 때 이 아이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아이가 가져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완벽하게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완전히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서 안 주신다면 하나님이 우리가 그것이 필요 없기 때문에 혹은 그것을 구한 것이 우리의 정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주신 것이라 믿고, 주신 모든 것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신앙이 부족한 자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욕심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 끈질기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결국 모든 좋은 것들이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배웁니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고, 아무리 많이 소유하고 있어도 마음에 억눌림이 없는 자유가 주어집니다. 간절한 소원을 끈질기게 열심히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연약한 자신을 배우게 됩니다. 어거스틴을 깊이 감동시켰던 시인들의 경건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찬양)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내 심사를 통촉하시고 부르짖는 소리 들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내가 주께 기도하니 주께서 내 소리 들으리니
오 주여 아침에 내가 기도하고 주께 바라리이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도, 위대한 통치자도, 뛰어난 모든 시인들도 이렇게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목회자와 장로들이 있는 교회는 어려움을 당해도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교회를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눈물로 의지하는 하나님이 그들의 간구를 들어 가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이렇게 자신의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한, 아빠가 그런 간절한 기도로 자기를 깨뜨리며 가정을 보호하고 있는 동안에는 가정이 깨지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두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든지 하나님이 이 말씀으로 나를 그렇게 불러주셨다고 믿고 주님께 간구하여 하늘 문이 열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인색하거나 능력이 없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끔 기도의 응답을 지연시키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간절히 열렬히 매달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린 시절 대장간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농촌에서 낫이나 호미, 칼들을 만드는 지를 보셨을 것입니다. 역청탄을 놓고 불을 피워 거기에 철판 쪼가리를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잠시 후면 빨갛게 달아오르다 못해 눈부신 빛이 나옵니다. 그러나 아주 잠깐입니다. 길어봐야 7초 내지 10초 밖에 안 되는 시간동안 그 상태가 유지되고, 뜨거운 숯에서 꺼내자마자 쇠는 식기 시작합니다. 달아오른 쇠가 식기 전에 빠른 동작으로 망치로 모루 위에 놓고 두드리면서 각양 도구들의 형체들을 만듭니다. 그리고 다시 까만 쇠가 되어 식어지고 나면 더 이상 두드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불속에 집어넣어 시뻘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기다리고 두드립니다.
이제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 마음이 간절한 기도 속에서 빨갛게 달구어지기 전까지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은 굳어져 있어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두드리셔도 좀처럼 변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질러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변하되지 않는 마음을 절실한 기도제목을 주셔서 치열하도록 연단의 숯불 속에서 붉게 달아오르도록 만들고, 간절하고 뜨거운 기도 속에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그렇게 달구어졌을 때 하나님은 말씀의 망치로 여러분들을 빚어 새 형상으로 만드십니다.
이렇게 주님은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 자신을 바꾸시는 것이니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바꾸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열렬하고 간절하게 그 일이 안 이루어지면 죽을 것처럼 기도하다가 마지막에는 ‘그 일이 이루어지던, 안 이루어지던 사실은 별 상관이 없는 거구나.’ 하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 자신이 주님 앞에 변화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사실을 터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일생에 걸쳐서 기도를 통해 우리를 훈련시킵니다. 기도 없는 사람은 하나님 의지하는 대신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을 맞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잡다단했던 우리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그리고 조용히 한번 자신에게로 돌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주님 없이 살수 없는 자신을 확인하십시오. 지친 자신을 추스르며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IV. 적용과 결론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관계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오롯이 하십시오. 그리고 상한 갈대처럼 꺼져가는 등불의 심지처럼 그렇게 연약한 자신의 처지를 깨달으십시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여러분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알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지혜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은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이 모든 삶의 상황을 넉넉히 이기게 하실 주님 안에 있는 영적인 부요함을 바라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