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기도를 경험하라
녹취자: 백지영
기도에 관한 팁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뭐냐 하면 기도할 때 깊은 기도에 들어가는 비결인데 굉장히 많은 조언들이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라, 그 다음에 말씀의 은혜를 받아라 등 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무엇이냐 하면, 기도할 때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가고 마음이 갈리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깊은 기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마음이 갈리는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외부의 모든 환경이 아무리 좋아져도 마음은 저절로 모아지지 않습니다. 옛날에 카메라(돋보기) 렌즈를 생각해보면 사람의 손으로 그것을 움직이기까지는 조리개가 맞춰지지 않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지만 우리 마음도 자기가 간절한 기도를 드려야 되겠다고 하는 절박한 소원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렇게 기도하지 못하고 나왔을 때에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언어로는 정말 형언할 수가 없는데 중심을 다하여 간절히 마음을 모으면 신기한 게도 (마음 안에서 기도가 흘러나옵니다). 걸레나 물수건은 짜면 짤수록 물이 나오고 물이 나오면 나올수록 물기가 없어집니다. 나중에는 온 힘을 다 해서 짜면 그 다음에 털어도 물기가 안 떨어집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우리의 마음은 짜면 짤수록 아주 풍부하게 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 시간에 얘기를 안 한 것은 아닙니다. 깊은 두레박을 던져서 긷는 것처럼 그렇게 기도하라고, 그리고 반드시 언어를 실어서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언어를 실으면서 마음을 움츠리면 응축되는 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굉장히 힘듭니다.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기도를 오래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응축시키면서 간절히 기도를 해 보십시오.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기도의 세계에서 뭔가 막혀 있는 것들을 뚫어버리는 힘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머리나 손에 주시는 게 아니라 마음에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간절히 마음을 모으면 신음소리가 나오면서 (우리 속에 막혀 있는 것들을 뚫게 하는데) 비유를 하자면 마치 망치나 곡괭이로 두드리던 광산을 큰 굴착기로 소리를 내면서 뚫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는 우리가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간절하고 열렬하게 기도드릴 수 있을 때 제일 첫 번째 피해자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죄들이기 때문입니다. 지하실 열린교회에서부터 신앙생활을 한 교인 계십니까? 여기는 지금 아마 없으실 것입니다. 대부분 방배동 예배당 시절 정도가 될 것입니다. 지하교회였을 그때가 제가 마흔 다섯 살 경이었습니다. 교회 개척을 서른아홉 살에 했는데 이후 7년 동안 교인들 중 그 누구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교인들이) 젊었습니다. 교인 5백 명 정도 모일 때까지 제 나이가 전체 20위 안에 들었으니 얼마나 젊은 교회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너무 청년들만 등록을 해서 말입니다. 60퍼센트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때에도 열렬하게 설교를 했고, 개척 후 십년 만에 평촌으로 와서 설교를 했으며, 그 후로부터 거의 1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사람들은 옛날 설교가 좋다고 하는데 저는 별로 안 그렇습니다. 저희 목회 여정이 마치 산에서 내려오는 강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시절에는 좁은 공간에서 똑같은 물이 막 쏟아져 내리듯 바위에 부딪치면서 굉장히 큰 소리와 거품을 내면서 흘러갔습니다. 음악으로 말하자면 비바체쯤 되겠지요. 그때 저는 그렇게 밖에 흘러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설교하게 하셨고 그것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그 설교 듣고 변화되었고, 그 설교 듣고 화가 난 사람은 그렇게 떠나버렸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니 강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좀 더 세월이 흘러서 10년쯤 지난 다음에는 물의 양은 훨씬 더 많아졌지만 천천히 흐르게 되고 그 다음에 다시 한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는 더 천천히 흐르는데 물의 양은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시지만 저는 사람들하고 만나서 처음부터 허물없이 막 친해지는 타입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차가운 사람도 아닙니다. 따뜻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교회가 갑자기 커지고 나니 마냥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 공정성의 문제가 생겨나니 몇 사람만 막 친절하게 대해주고 그러면 안 되잖습니까? 그리고 교인이 천명쯤 모였을 때부터 일주일 내내 다녀도 도저히 새로 온 사람을 심방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심방을 내려놓게 되면서부터 더더욱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한테 사실 너무 미안합니다. 그때는 어린아이들까지도 다 이름을 꿰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우스갯소리지만 그래서 제일 무서운 일이 어디에선가 ‘목사님, 저 누군지 아세요?’라고 물어보며 교인들이 다가올 때입니다. 지하실 교회에서는 모든 교인들의 영적 상태를 다 알았습니다. ‘저 사람은 마음이 꼬부라져서 설교를 안 듣는구나. 저 사람은 은혜를 받는구나.’ 말씀을 듣고 펑펑 울고, 교회에서 철야한다고 열쇠 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모두 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릅니다. 간간히 들리는 이야기를 (다른 이들을) 통해서만 압니다. 하긴 그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들으면 교만해 질 것 아니겠습니까? 전혀 안 들으면 또 너무 낙심하게 될 것이고 말입니다. 그래서 낙심할 때쯤에는 하나님이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강물처럼 흘러가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생각났던 것이 이것입니다. 그때는 제가 건강했지요. 교회에서 모든 교역자와 직원들은 저의 건강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억나실 것입니다. 미국에서 집회하고 밤비행기를 타고 새벽 여섯시에 내려서 집에 가서 샤워하고 8시 예배 설교 강단에 섰습니다. 지금은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 자만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잘 몰랐습니다. 이때는 막 흘러가던 때니까 안 흘러가는 인간들을 보면서 '정말 저 인간은 왜 그럴까?'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초창기 제 설교 보면 연구대상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그 후로 많은 시간을 지나면서 제 마음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 가엾게 느껴졌습니다. 담벼락을 살금살금 걸으면서 지나가는 길냥이부터 시작을 해서 죽음을 앞에 둔 노년기의 사람들과 젊은 나이에 뭔지 모르고 까불면서 사는 젊은이들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정말 가엾습니다. 나같이 못된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많이 주셨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관련해서 이런 설교를 수없이 들으면 뭐합니까? 누구는 이렇게 기도했다더라, 기도의 사람 아무개는 매일 3천명을 놓고 기도했다더라고 말만 하면 뭐합니까? 하루에 350명 놓고 기도하는 우리 집사람은 봤어도 3천명 놓고 기도하는 사람은 아직 못 봤습니다. 다른 기도제목을 두고 더 많이 기도했을지 모르지만 저도 매일 3백 명의 사람들을 앞에 두고 기도는 못해봤습니다. 요즘은 참 많이 기도합니다. 매일매일 여러분들 위해서 기도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반드시 이끼가 끼게 되어 있습니다. 구르는 돌이어야지만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임직하고 교회의 항존직이 되면 세상의 큰 벼슬 같은 것이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더군다나 교회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교회의 기둥이며 울타리가 되는 것입니다. 기둥과 울타리는 평상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날 때 울타리 하나가 쓰러지면 물이 막 밀물처럼 밀려들어옵니다. 그래서 임직교육계획을 우리 부목사님들하고 거의 두 달 이상에 걸쳐져 세웠습니다. 마지막에 제가 확정하고 고민을 하면서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냐 하면 이 교육은 우리의 일생에 있어서 너무너무 중요한 특별한 순간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순수한 마음으로 임직을 받고도 온전하게 마무리하기는커녕 임직을 한 것을 교회가 후회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보시면 알겠지만 그런 순수성을 끊임없이 간직하고 사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환경을 통해서나 때로는 개인적인 시련을 통해서나 우리를 달아보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 달아보시는 때가 특별한 때입니다. 그때에 어떤 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신실하게 산 것 같은데 결정적인 순간에 어그러져서 이상한 결정을 내리고, 어떤 사람들은 조금 걱정스러울 정도로 가다가도 결정적인 시점에 똑바른 결정을 내려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길로 갑니다. 그 차이가 무엇이냐 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자는 늘 기도하는 사람이란 점입니다. 기도는 이처럼 너무나 중요합니다. 인생의 어떤 변곡점에서, 곧 삶의 전환점에서, 신앙의 전환점에서, 섬김의 전환점에서 그 순간 자기를 쏟아 부어서 기도하는 그 차이가 그런 결과들을 낳습니다. 그렇게 착실해 보이던 사람을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하고, 믿음성이 좀 떨어져 보이는데도 결정적인 순간에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것이 모두 지속적인 기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얼마나 기도하느냐, 그것은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마음을 들여서 하나님 앞에게 기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헛된 시간을 보내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간절히 모으십시오, 여러분.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 우리 앞에 있을 때에 마음을 모아 수시로 기도하십시오. 계속 움직여야 할 때에 길게 한 자리에서 기도하지 못할 때에 짧게라도 수시로 마음을 모아 기도하십시오. 차타고 가다가도 짧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운전하면서도 신호대기할 때에 ‘오, 주님!’ 주님을 간절히 부르는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말입니다. 짧게 짧게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오. 그런 사람에게 길게 기도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너무 바쁩니까? 그런데 사실은 그 일이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닙니다. 정결한 마음은 수시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수시로 드리는 기도는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싶게 만듭니다. 이런 때가 있잖습니까? 단정하게 하고 외출한 날에는 누구를 만나도 당당하지만 ‘아이고 어떻게 하누? 이 꼴로 나왔는데 저 사람을 만나네.’라는 때도 있잖습니까? 이와 똑같습니다. 마음을 쏟아 수시로 드리는 기도는 마음에 단장을 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십시오. 기도시간에도 그리하십시오. 단 한 번에 길이길이 남을 기도를 드릴 생각을 하지 말고 그렇게 마음을 간절히 드리면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한때 제가 했던 행동이 핸드폰을 일정한 시간에 맞춰 놓고 기도시간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핸드폰 알람이 기도해야 할 시간을 알려줍니다. 그 시간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길게도 아니고 짧게 드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바뀔 때마다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여러 사람들이 따라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