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자교육
녹취자: 이새봄
예배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 순서는 하나도 없겠습니다. 예배의 시작부터 해서 마지막의 축도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순서도 중요하지 않은 순서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 기도 순서는 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 기도를 우리들이 정말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기도의 내용과 형식부터 말씀 드리고 그 다음에 영적인 자세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대표 기도는 자기 혼자 하는 기도가 아니라 예배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을 자신이 안고 대신 기도한다는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 대표기도 할 때에는 '우리'라고 하는 복수 명사를 사용하셔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시간의 길이가 문제인데, 이것을 너무 길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오랫동안 열린교회 다니면서 신앙생활한 사람도 있지만, 회심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아내 따라서 겨우 교회에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이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눈 감고 있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5분, 6분, 7분, 8분 심지어 10분까지 그렇게 기도를 하면 이것은 선교적으로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서 이엠 바운즈라고 하는 목사님은 자기의 책속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대표 기도는 간결하고 짧아야 한다." 이 분은 하루에 여덟 시간씩 기도하시던 분입니다.
어떤 분들은 보면 너무 많이 써갖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이 기도가 중간밖에 안된 것입니다. 이것을 그렇게 하지 말라고 수없이 설득을 해도 안 고쳐집니다. 심지어는 정해진 규격으로 기도문 작성하는 용지를 나눠주었는데도 그 용지 분량대로 안합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기도 좀 짧게 하라고 장로님들께 하도 호소를 했는데도 장로님이 하도 기도를 길게 하더랍니다. 10분이 넘었기에 뒤에서 목사님이 바지자락을 잡아당겼더니 목사님 손을 때리고 다시 10분을 더 하더랍니다. 어떻겠습니까. 교인들이 거기에 와서 배겨나겠습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대개 개인기도가 짧은 기도자들이 대중기도를 길게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대중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 면전에 있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개인기도는 많이 하고 준비하고 오시고 대표기도는 짧게 하셔야 합니다. 2분 정도가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 우리 교단에 강도사 고시의 설교가 7분입니다. 7분 동안에 설교 한편을 하도록 요구를 하는데, 2분이라는 시간이 긴 시간이 아닙니다. 여러분 15초짜리 광고 8개 정도 할 정도의 시간의 길이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을 맞춰주시기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기도에 감정이 없습니다. 거기서 감정을 꾸며내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그냥 신문을 읽듯이 기도문을 읽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할 준비가 영적으로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오히려 1부 예배 같은 때에 뭐 특별히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여 집사들,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눈물로 간절히 기도할 때에 오히려 은혜를 받습니다. 무엇인가 판에 박히고 그렇게 군더더기 같은 것들이 잔뜩 붙고, 그리고 열린교회 교인들은 저를 닮아서 그런지 형용사를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형용사를 줄줄이 나열하면서 긴 기도를 드리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간결하게, 그러나 많이 기도하고 오셔서 기도하는 그 시간에 성령이 움직이시는 역사가 있게끔 그렇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말에 의해서 감동을 받는 게 아니라, 그 기도시간에 마음을 쏟아놓는 기도자의 모습, 기도 속에서 자신이 감화를 받아서 울먹이는 태도, 자기를 하나님 앞에 그대로 드리는 철저한 회개에 진심어린 고백. 이런 것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부탁합니다. 기도하는 목소리와 평소 하는 목소리하고 바꾸지 좀 마십시오. 그러는 분들이 있잖습니까. “거~~~룩하신". 우리가 평소에 말할 때 그렇게 말한 적 없잖습니까. 우리가 얘기할 때, “어 있지 나 오늘 거~~~~룩하신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셨어." 그러고 우리가 일상대화를 합니까. 그것은 모두 꾸며내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여기 모였습니다. 은혜를 주십시오. 저는 잘 모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십시오. 저희에게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굽어 살펴주십시오." 얼마나 진솔하고 좋습니까. 성도들은, 특히 처음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기도할 때에 평소에 내는 게 아닌 것 같은 태도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반대하는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심하면 그런 것들이 온몸에 닭살 돋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럴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그것이 세 번째 지적 사항입니다.
네 번째는 뭐냐 하면, 기도할 때 자기 주관적인 느낌에 흔들리면 안 됩니다. 옛날 우리 교회에 교역자 하던 분이 하나 있었는데 금요기도회 때 기도를 시킵니다. 사람들이 열렬히 찬양을 하다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뭐라 하냐면, “하나님 우리는 일주일동안 다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살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 희망도 없고, 어떤 때는 교회도 나오기 싫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 자기가 침체에 빠졌으면 침체에 빠졌지, 왜 온 교인을 죄인으로 만드느냐." 자기 느낌에 충실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런가봅니다. 자기가 교회도 나오기 싫고 아무 희망도 없고 이제는 주님께 불순종하고 싶고 그렇겠지요. 그럼 그것은 대표기도할 때가 아니라 자기 혼자 골방에서 은밀히 기도할 때, 그 때에는 그보다 더한 이야기를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대표기도할 때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자기 기분에 따라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공적인 대표기도의 태도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모든 것들을 아우르면서 그래서 이 사람들과 함께 기도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기도해야지, 주관적인 감정에 빠져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니 옳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가벼운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자기감정에 충실해지는 기도니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이 뭐냐 하면, 기도가 자기에게서 시작되어서 자신에게로 뱅글뱅글 돌다가 끝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원래 교회의 대표기도는 목회자가 하는 것인데, 선교 초기에 선교사들이 한국어도 어눌하고 하니까 기도라도 한국사람 시키려고 그렇게 해서 이 목회자의 기도가 장로들이 하고 이러는 기도가 된 것입니다. 장로님들이 기도를 독차지하는 것도 그렇게 썩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처럼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할 때 기본적으로 옛날에는, 보편 교회와 지역, 자기 교회, 세계와 자신의 나라, 그리고 지역, 가정 이 모든 것들을 다 기도하였기 때문에 이 범위가 굉장히 넓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세 가지의 기도는 짧게, 그러나 빼놓지 말고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전 세계의 보편교회를 위한 기도, 우리교회만을 기도하는 게 아니라 조국의 교회, 그리고 이 땅의 교회에서 모두 주님을 경배하며 드리는 교회들을 하나님이 복주시고 영적으로 번영하게 해달라고 하는 이 기도는 꼭 들어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우리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남북문제를 비롯해서 정치문제, 경제, 실업자들의 문제, 그 다음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왕따와 폭력, 이런 것들, 얼마나 시사 속에 떠오르는 기도제목들이 많습니까. 이런 것들을 다 하라는 것이 아니라, 시사성이 있는 기도제목을 하나만이라도 간절히, 예를 들자면, “하나님, 온 나라가 친구들로 인해서 폭력을 당하고 고통을 받다가 죽은 어느 학생에 대한 이야기로 신문지상에 메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육의 현실을 돌아보아주셔서 고쳐주십시오.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놀라운 각성을 주시고 특별히 예수 믿는 선생님들에게 이 현실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이 얼마나 적실한 기도입니까.
그리고 이제 마지막 하나는 선교지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것도 선교사 파송한 사람들이 많은데, 하나하나 나라마다 다 돌면 끝이 없습니다. 그것은 선교회들 모였을 때 그렇게 기도하시고, 여기서는 선교사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간절히 빌면 됩니다. 그리고 어디서든지 주를 섬기는 사역이 마찬가지잖습니까. 선교사들만 애쓰는 것이 아니라 본 교회에 남아서 부목사들이나 전도사들이 요새도 일주일에 스무 가정씩, 스물다섯 가정씩 심방하면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마치 본국에 남아있는 목회자들은 편안하고 좋은 환경에서 호강하고 있고 선교지에 간 사람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간 것처럼 그런 식으로 대조해서 기도하는 것도 그것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에 감정이나 균형을 이루면서 신실하게 지금도 조국교회를 위해서 애쓰는 모든 사람들, 신학생, 입학 때가 되면 신학생들을 위해서 이렇게. 그것을 2분정도 안에 아주 효율적으로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말로 잘 배치해서 그래서 그것들이 일주일동안 준비기도 한 것에 핵심이 되게 만들어서 그래서 와서 그날 그것을 중심으로 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의심될 때도 있습니다. 이름도 없는 젊은 자매들이 그렇게 1부 예배 시간에 기도를 하는데, 어쩜 그렇게 자연스럽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기도를 합니다. 가끔 눈을 뜨고 봅니다. ‘저거 혹시 원고 없이 즉흥기도 하는 거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예외 없이 원고 딱 가지고 기도하는데도 충분히 기도하고 오니까 이 속에서 이게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는 절대 내 기도문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위선입니다. 위선입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연애를 하는데, 애인이 나한테 막 좋은 얘기를 하는데 자기 이야기하는 태도를 통해서 옆에 있는 다른 남자에게 그렇게 얘기를 한다면, 여러분 역겨워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기도자는 하나님 한 분을 앙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중심을 쏟아놓고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부목사님들이 시간이 너무 길면 종을 치겠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상처받지 마시고. 옛날에 있었던 일인데, 어느, 나중에 회심을 하셨는데, 회심하지 못할 때 그분이 뭐라 하냐면 ‘열린교회 못가겠다'고 ‘전도사님, 기도가 너무 길어서 그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혼자 버림받은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변화되기를 원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들이 얼마든지 배려하고 고칠 수 있는 문제들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진심으로 이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러분들이 깨닫고 지혜롭고 진심어린 기도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