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짖음이 주의 귀에 들릴 때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시 18:6)
녹취자: 손경숙
오늘 쓰여진 18편은 다윗을 모든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신 때에 하나님께 드린 노래라고 되어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의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크게 몇 단어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환란, 성전, 부르짖음, 응답 이런 단어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도 아주 잘 연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인데도 환란을 만나는 때가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어떠한 선과 악의 이론을 뛰어넘어서 아주 신비하게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하나하나를 이루어나가시기 때문에 완전한 지혜가 없는 우리가 보기에는 모순처럼 보이기도 하고, 왜 이때에 이러한 고난을 당해야하는지 하는 의문을 낳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섭리하시는 것을 마치 비단을 짜는 것과 같습니다. 비단으로 옷을 짤 때는 아름다운 수를 놓으면서 비단을 짜는데 그 아름다운 수가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놓습니다. 그래서 비단을 사람들이 비단 짜면 그 위에는 온갖 실밥이 엉키지만 그 아래에서는 아름다운 자수들의 모여서 온갖 그림을 만들어 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라는 날줄, 공간이라는 씨줄을 사용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짜 가십니다. 반드시 우리가 믿음 생황을 잘못하고 또 하나님 앞에 죄가 있기 때문에 환란을 당하는 때도 물론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선과 악의 인과응보를 넘어서 하나님의 더 큰 경륜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시련과 환란을 주시는 때도 있습니다.
만약 다윗이 목동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면 반드시 실패하고 말았을 것 입니다. 그 어린 아이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국가를 경영할 정도의 지략과 그리고 모사가 없었습니다. 그저 순진하고 무고한 젊은 신앙인이었습니다. 깨지기 쉬운 아주 투명한 유리그릇 같은 사람이었지만 이 길고 긴 사울의 치하에서 핍박과 시련을 당하면서 그는 사람을 보는 법 그리고 위기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신앙이 전쟁과 정치를 어떻게 조화를 이루시는지를 배워갔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환란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더 고결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커다란 지혜의 행사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쓰신 훌륭한 사람들은 모두 한 결 같이 많은 환란을 격은 사람이고 다만 환란을 격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쓸모 있게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환란을 신앙으로 이겨낸 사람들이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환란을 만날 때 다윗의 신앙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성전신앙과 기도신앙이다. 성전신앙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실 때 한 곳을 지정하셔서 당신의 왕권을 행사하시겠다는 예언을 이미 광야교회 시대에 주십니다. 이미 모세 시대에 그것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모세와 다윗은 약 500년의 차이가 나는 사람입니다. 그런 신앙을 따라서 성전을 앙망하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곧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앙망이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크고 작은 문제들을 가지고 성전에 올라가 마음을 토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에서 언약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할 본분을 배워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소는 그저 단순한 성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이 있는 성소였고 하나님과의 은혜의 보증이 있는 성소였습니다. 그런 깊은 사랑과 그런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다윗도 시련 가운데서 성소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에는 교회를 찾고 교회에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신앙을 가져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교회에 나아와서 많은 성도들이 기도했고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기도신앙입니다. 성소를 찾아서 성소를 찾은 순례 자체가 더디 된 것이 아니라 거기서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시인 다윗이 생각할 수 없었던 어려운 환란 속에서 이 시인을 건져주셨다는 고백을 이 한 곳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저녁 때 혹은 오전에 교회에 나오면 교회 한 곳에서 흐느끼며 기도하는 성도들 있습니다. 무슨 사연을 안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에게 그 하나님의 교회에서 간구하는 시간은 위로의 시간입니다. 하나님 은혜의 시간, 교통하는 시간, 마음을 쏟아 놓으면 자기 마음은 없고 하나님의 마음이 형성되는 시간입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바꾸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사실 우리가 바뀌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 자신을 바꾸어 나가는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한 번 환란을 만나 간절히 기도하고 나면 우리 기도가 상황을 바꾸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상황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환란이 아니었더라면 바뀔 수 없었던 내가 하나님 안에서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성경에는 얼마나 간절한 기도였는지 부르짖음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시인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고 그래서 이 시인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을 다시 한 번 찬송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흔들리고 방황하지 말고 이 시인처럼 주님의 집에서 기도신앙으로 주님 앞에 응답을 받고 그의 위엄과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신앙을 갖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