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들지 않게 기도하라
조금 더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 26:39-41)
녹취자: 김은선
과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물질생활이 아주 넉넉해지면서 사회가 아주 풍요로워집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는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고난과 시련이 많을 때에 믿을 지켰던 사람들이 오히려 편안 할 때에 믿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고 구라파의 역사들이 이 모든 것들을 다 증명합니다. 우선 물질이 풍족하고 문명이 발달되게 되면 우리가 육신적으로는 예전보다 더 편안한 삶을 살게 될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날 중산층의 삶이 17세기의 왕족들이 누리던 물질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이제 오늘날 우리의 삶이고 점점 더 발전을 하시지 않습니까? 이제는 아마 가전제품에 대한 욕망을 느끼고 그것을 부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발전해 갈 때 그때에 우리의 시험의 원인이 뭐냐 하면 시험에 들 가능성이 훨씬 더 많아지는 것 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러합니다.
우선 적극적으로는 견물생심이라고 우리가 보지 않았을 때에는 모르는데 우리가 보고 알고 나면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욕망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욕망은 화수분과 같아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즐기고 누리고자 하는 욕구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19세기 말경에 미국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게 몇 가지냐, ‘빵이 있어야 됩니다.’, ‘물이 있어야 합니다’ 등등 있을 거 아닙니까? 열아홉 가지밖에 안됐답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는 계획표를 보니까 256가지로 늘어났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핸드폰이 없다면 인간다운 삶을 살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30년 후에는 한 400가지 로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전 세계에서 영세민 핸드폰 보조해주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이 물질생활들이 너무 깨질 때 우리에게 욕망이 계속 생기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열망이라는 것은 크기 자체가 정해져 있어서 끊임없이 잠재적인 욕망들을 이끌어 내어 하나님 아는 것들에 쏟아 부으면 그만큼 하나님을 향해 가질 수 있는 욕망의 크기는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에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없다 그랬던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면 이 세상에 많은 물질문명의 발달과 그것들을 모두 누리면서 사느라고 우리들이 노력을 하다가 보면 정신이 분산되어서 하나님께 집중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빵 한 덩어리, 물 한 잔 있으면 풍족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조금만 일해도 됐는데 지금은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뼈 빠지도록 일을 해야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는 하나님을 향해 드릴 수 있는 마음 자체가 적어지거나 분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웠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고민하면서 주님이 하나님께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이나 신앙의 대의 같은 것들이 신앙의 본질에서부터 멀어지고 우리 자신의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되고 행복하게 해주는 이 모든 것들로 우리의 마음이 쏠리고 집중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살고 내 마음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치열하게 경쟁으로 움직이니까 나는 그것과 상관없다 그러면 떨어져나가서 농사를 짓던지 사회의 리듬하고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도 선교 적으로 반드시 바람직한 삶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이잖습니까? 예를 들면 공무원 사회가 썩었다고 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아무도 공무원 안하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연예계가 썩었다고 해서 아무도 연예계에 진출을 안 하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도 완전히 선교 적으로 좋은 삶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속에서 맞서서 싸워서 자기 정체성을 이기고 세상을 바꾸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전보다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밭 갈러 나가고 논매러 나가고 저녁때 되면 일찍 감치 밥해 먹고 어두워지면 호롱불 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하다가 쓰러져 아홉시쯤 돼서 쓰러져 자면 죄 지을 것도 없고 유혹받을 것도 별로 없습니다. 이런 얘기는 조금 우스울지 모르지만 그럴 때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조금 덜 기도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고 유혹도 많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기도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던 제자들이이었는데 마지막 십자가를 앞두고 피가 떨어지기까지 기도하실 때에도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나태함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배어있는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생활을 좀 더 단순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의 길이는 정해져 있는 것, 더 많이 쓸 수가 없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인생을 보람되게 살기 위해서는 남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시편 150편을 묵상하니까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궁창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분은 신앙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분의 성품을 찾고 자연과 학문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 그 위대한 존재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대의다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삶을 정말 아름답게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